수랏간에 들어온지 어언 8년이 되어 오는 몽금이는 나즈막히 한숨을 쉬면서 읊조렸다.
`이제 더이상 만들 재료가 없어...요리 그만둘까봐...'
그녀는 꽃다운 나이에 수랏간에 들어와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어본 나인이다.
온갖 시기와 음모에 분연히 맞서 싸웠으며, 어떠한 유혹해도 굴하지 않은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안에서 오는 갈등으로 인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였다. 8년이란 세월동안
그녀는 궁중에 있는 모든 식재료의 요리법을 섭렵했으며 그것도 수준급의 요리를 내놓아
궁안의 사람들을 놀라게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었다.

미모도 뛰어났었다. 수랏간 5년차 때 몰래 뒷담을 넘어 시장을 다녀온 그녀는 그때 시장에
서 유행을 하고 있는 얼짱 각도로 그린 초상화를 들고 와서 교묘하고 치밀하게 구중궁궐
구석구석 초상화를 유포시켜 궁궐 내 뭇사내들의 춘정에 뜨거운 불을 댕겼었다. 물론 그
로인해 같은 나인들로 조직된 몽금안티찻집까지 만들어지는 부작용도 발생되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미모의 소문이 흐르고 흘러 결국 후궁을 한자리 채울 인재를 갈망하던 주상의 귀에
도 들어가게 되었으며, 차기 후궁 영순위라는 루머가 궁궐내의 소식통인 스상궁이 편집장으
로 있는 월간나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었던 적도 있었다.
`훗 이쁜 건 기가막히게 알아가지고....!'
이러한 자신의 전성기를 회상하면서 몽금이는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위
기가 있었다. 그녀의 절대 스승..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메상궁의 하야는 그녀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였었다. 단지 긴 영어를 쓸 뿐만 아니라 한글로 쓰기에도 쉽지 않은 자음 모음을 달
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걸 고깝게 여긴 최고상궁 플상궁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메상
궁은 궁밖으로 내침을 당해버린 것이였다. 또다른 소문으로는 메상궁의 분홍머리가 너무나
부러운 나머지 플상궁의 염색실패로 인한 화풀이로 쫒겨 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헤어지는 그날 스승님의 두손을 꼭 붙잡고 꺼이꺼이 울던 그녀에게 스승은 강해져야 한다는
작별의 인사말을 남기면서 궁을 떠났었다.
억울하게 쫒겨난 스승생각과 지금 자신의 심리적인 갈등때문인지 수랏간으로 향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발걸음도 무겁기 그지 없었다.
수랏간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평소와는 다른 수랏간 분위기에 그녀는 살짝 긴장을 하며 눈에
있는 습기를 제거하고 수랏간 내부로 발을 옮겼다. 한곳에 모여있는 나인들의 웅성거리는 소
리와 함께 최고상궁 플상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렬..정렬...모두 주목하라. 어제 중국에서 온 사신이 귀중한 식재료를 가지고 왔다.
이를 우리 수랏간에 맡기어 최고의 요리로 만들라는 어명이 내려졌으니, 호명하는 나인은
앞으로 나와 어명을 받들어라..!'
순간 수랏간은 정적이 흘렀고 플상궁이 과연 어떤 나인을 호명하게 될지 기다리고 있었다.
귀중한 식재료..양날의 갈과 같은 존재였다. 요리를 잘 만들면 그만큼 출세가 보장되지만,
만약 요리가 형편없을 경우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과 암의 갈림길이 지극히
상반될 정도로 모든 나인들의 두려움 혹은 설레임을 대상이였다.
`몽금이...!! 앞으로 나오너라..'
순간 모든 나인들의 시선은 몽금이에게 쏠렸으며 두려움 반 부러움 반의 시선을 온몸에
받으며 플상궁 앞으로 몽금은 나아갔다. 이미 한차례 스승이 궁에 있을 때 경험을 해본
일인지라 크게 긴장은 안했으나, 왠지 모를 플상궁의 차가운 미소가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였다.
플상궁을 따라 중국에서 온 식재료를 보러 간 몽금은 그만 그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우두수탉' (牛頭雄鷄)
(우두수탉은 말그대로 소의 머리를 한 수컷 닭을 말한다. 몸체는 노란 닭털로 싸여 있으며
머리는 황소의 머리를 하고 있다. 간혹 잡종으로 얼룩소의 머리를 하고 있는 것들은 황소
머리를 한 우두수탉보다 하등품으로 취급 받는다.
10년에 한번 알을 깨고 태어나는 희귀한 종이며, 식재료로서는 최상급으로 통한다. 오묘한
닭과 소의 육질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며, 아울러 이 고기로 만든 국물요리는 한번 맛을 보
면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광년이 마저도 제정신으로 돌려 놓는다고 해서 귀중한 약재로
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다만 요리하기가 까다로워 보통 실력을 가지고는 뛰어난 맛을
낼수 없어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저주받은 식재료라는 이름도 함께 가지고 있다.
국물요리가 최상급으로 통하며, 국물 섭취 후 발라낸 육질을 재섭취함으로써 최상의 궁합을
보여주는 오묘하면서도 신비한 식재료이다.)
이제서야 플상궁의 차가운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린 몽금은 이미 후회를 해도 때가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스승도 없고 미모가 아름다워 본의 아니게 나인계에서도 은따가 된 상황인지라
그녀를 도와줄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스승이 쫒겨나가 전날 그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수랏갓 세번째 기둥에서 삼삼칠 박수 세번치고 추춧돌 밑
을 파보라는..
그날밤 오시경 몽금은 아무도 모르게 수랏간 세번째 기둥에 홀연히 나타났다.
평소 친하게 지낸 조나인의 경공술과 은닉술을 어깨너머로 배운 탓에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 장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조용히 스승의 주문대로 삼삼칠 박수를 치고 추춧돌 밑을 뒤적거렸다..잠시 후 손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걸 주춧돌 밑에서 빼내서 펼쳐 보았다.
서찰이였다. 궁에서 스승님만이 썼던 분홍색 먹물로 한줄의 글씨가 눈에 들어 왔다.
`왼손은 거들 뿐......'
서찰의 내용을 본 몽금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어떤 내용과 어떤 위기대처도 없이 달랑 한줄
만 써있는 스승의 필적은 그녀를 황당하게 만드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재빨리 서찰을 품에 감춘 몽금은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왼손은 거들 뿐....스승님이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다 잠깐 눈을 붙였다.
누군가 흔들어 몽금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눈을 떠 본 몽금은 이미 환해진 밖의 상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 그녀는 생각에 잠기다 잠깐 눈을 붙인 것이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
였다. 바로 오늘 임금님에 진상을 하는 우두수탉의 요리를 시작하는 날인데 황망하게 날이 새
버린 것이였다.
황급히 수랏간으로 간 그녀는 밑준비를 하면서 계속해서 스승이 서찰에 남긴 내용에 대해서 생
각했다. 그말이 무슨 뜻인가..무엇을 내게 말하려고 했는가.. 밑준비가 끝나고 우두수탉을 잡
으러 간 그녀는 그 식재료의 날개를 꺽어 잡고 수랏간으로 오다가 불현듯 스승이 남긴 글에 대
한 해법을 찾았다. `그래... 이번 요리는 양손을 균등하게 쓰지 말고 오직 오른손만으로 왼손은
거들기만 하면서 음식을 만들라는 뜻이야...!!' 해법을 찾은 몽금은 이런 날이 올것을 대비해
주도면밀하게 서찰을 남긴 스승님의 고마움에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주일 후.. 예정된 시간이 왔다. 몽금은 그 일주일 동안 스승의 서찰대로 음식을 만들었으며
한숨도 못자고 일주일을 꼬박 수랏간에 머물면서 요리를 완성시켰다. 주상께 음식은 전달되었고
문무백관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주상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앉아 칼자루가 자신에게
올지 칼날이 자신에게 올지 마음속으로 잣대질을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주상의 결정을 기다렸다.
내심 스승이 남긴 서찰의 도움도 있었고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몽금의 앞에 드디어 주상이 기미상궁의 사전 검사 후 본격적인 시식의 순간이 도래했다.
한 수저를 떠 먹은 주상의 표정은 오묘했다. 갸웃거리면서 다시 한 수저를 더 떠먹은 주상은
비로서 밝은 표정과 신비한 표정을 교묘하게 같이 보이면서 큰 소리로 박수를 쳤다. 그렀다
주상이 맛난 음식을 먹었을 때만 보이는 저 모습.. 항간의 나인들에게선 `박수손주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초극상의 표현을 주상이 몽금의 요리를 먹고 행하고 있었다.
몽금은 생각했다. 이로써 주상의 총애를 받았고 두번이나 튕긴 후궁의 자리를 이번에 제의하면
기어코 차지하리라는. 슬슬 요리를 하는 것도 지켜워졌고 더군다나 플상궁의 요즘 눈초리가 그
리 곱지만은 않았다.
뛰어난 식재료에 훌륭한 음식을 섭취한 주상은 이 음식을 만든 나인이 몽금이라는 사실에 내심
기뻤다. 이번 기회를 빌미로 반대하는 중전을 누르고 드디어 몽금을 후궁자리에 앉힐 수 있다는
생각에 황급하게 몽금에게 직접 전언을 했다.
` 나인 몽금은 고개를 들라...!!'
주상의 명령에 마지못해 고개를 살포시 들은 몽금은 주상을 살짝 얼짱 각도로 쳐다보면서 상콤한
미소를 날렸다.그러나 주상의 표정은 어찌하여 그 맛난 음식을 먹고 저리도 오이꼭지를 씹은 표
정을 짓고 있는 것인가. 몽금이 고개를 든 순간 주상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문무백관
과 나인 상궁들은 기겁했다. 절세미녀로 소문이 자자하고 궁안의 뭇남성들 오죽하면 내시까지도
그녀의 자태에 밤새 춘정을 불살랐던 그 경국지색의 미모는 저기 저 먼나라로 사라져 버린 것이
였다. 주위의 수상한 공기를 감지한 몽금은 서둘러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탱탱했던 피부는 잡히지 않았고 도톰한 앵두같은 입술 또한 안잡히는 것이 아닌가. 서둘러 뒷전
에 서있는 조나인의 거울을 뺏어 얼굴을 본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파릇파릇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방금 꽃게장을 담그고 온듯한 나이가 지긋이 먹은 웬 아녀자
의 얼굴이 거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였다. 옆에서 이러한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을 하고
있는 궁안의 소식통 스상궁은 날개가 달린 듯 붓끝을 놀리면서 중얼거렸다.
`마침 잘되었군 소재가 떨어졌는데...이기회에 일간지로 확 바꿔버릴까...'
황망한 주상은 몽금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으나. 이 이유를 모르는 몽금은 어떠한 설명도 못하고
그냥 닭똥깥은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거북한 모양세에 환멸을 느낀 주상
은 내시와 상궁들을 시켜 몽금을 내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끌려 나가는 몽금은 큰소리로 궁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주상~~ 깊고 구수한 맛을 내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쳤사옵니다.. 주상~~ 억울하옵니다..~!!'

다음날 스상궁이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나인의 헤드라인의 기사는 이러했다.
미모의 몽금. 일주일만에 안면변신으로 주상을 포함한 모든 궁안의 사람들 경악~!!
전문) 미모의 몽금은 주상의 어명을 받들어 우두수탉으로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데는 성공했으나
그의 스승인 메상궁이 남긴 서찰을 잘못 이해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메상궁의 주문은 삼삼칠 박수 세번하고 수랏간 세번째 기둥 주춧돌 밑에 있는 물건을 살펴보라
했으나 몽금은 세번의 삼삼칠 박수를 축구응원박수(짝짝짝 짝짝 대~한민국)박수로 잘못 오해해
서찰의 숨겨진 글씨가 일부만 보여 이런 변을 당했다는데요. 현장에 나가있는 특파원을 통해 들
은 바로는 서찰의 숨겨진 내용은 이러했다 합니다.
모든 요리를 만듬에 있어 왼손은 거들 뿐~ 이런 정신머리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다. 행여 중요한
음식을 만들 때 특히나 일주일이나 걸리는 그런 음식을 만들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행여나 늬가
한손으로만 음식을 만드는 잔머리를 굴릴 시 나의 저주로 인해 너의 젊음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할
것이니 그리 알거라.
-긴 영어를 쓸 뿐만 아니라 한글로 쓰기에도 쉽지 않은 자음 모음을 달고 있는 메상궁이-
-끝-
출연 : 몽금이 - 누굴까..??
메상궁 - 누구게..??
플상궁 - 알아맞춰보세요~!!
스상궁 - 알면서~
조나인 - 비~~밀~~!!
글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메상궁은 여장을 한 남자로 설정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키득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