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니, 짧지만 기구했던 나의 음주인생이 생각난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아버지의 영향인지 난 담배도 한모금 피운 적도 없고 그 흔한 술한방울을 목구멍으로 넘긴 적도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봇물이 터졌다.'라는 표현의 정도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던 걸로 기억난다. 해가 벌겋게 떠 있을 때 교양강의 빼먹고 진로를 빨러 다녔고 학생의 신분을 벗어난 시점에서도 음주는 형태는 오히려 다양화되고 일반화 되어 가고 있었다.
학생때의 주종이였던 소주, 맥주의 범위를 벗어나 양주도 마셔보고 데낄라, 보드카..중국에 출장 다녀온 지인을 야밤에 만나 전망 좋은 스카이 라운지에서 웨이터 몰래 항아리 고량주도 까먹은 적도 있고, 사랑의 배신(늦게 들어온 복학생이 졸업 후 채갔음)으로 처음 필림이 끊길 정도로 훌쩍 거리면서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들어간 술이 많다 보니 음주로 인한 사고도 여러번 일어났었다.
그중에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지금은 보편화 되었지만, 초창기 칵테일바..라는 곳에서의 사건이였다. 그당시 친하게 지내던 몇분과 우연히 단골이 되었던 강남의 U모 업소에서 바에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고 술을 홀짝거리면서 바텐더들과 농담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가끔 TV에서 보면 바텐더들이 칵테일을 가시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병을 돌리고 춤을 추며 유리잔을 타워로 쌓아 놓고 도수가 높은 술을 붓고 그위에 불을 붙이는 그런 그런 쇼를 하고 있었다. (이쇼를 보기위한 칵테일은 일반 칵테일보다 좀 비쌌다.)
같이 간 일행 중에 여자분이 `응응응 on the beach'를 일반형이 아닌 특수형으로 시켰기에 바텐더는 우리 앞에서 음악에 맞춰 병을 돌리고 잔으로 타워를 쌓고 술을 붓고 불을 붙이고 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가게이다 보니 이런 걸 한번 하면 대번에 사람들의 시선집중이 되는지라 나는 가급적 일행이 아닌 양 약간 떨어져서 불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도 남자인지라...건너편 바에 앉아 있는 (기억으론 그바는 ㄷ 자형태인 걸로 기억됨) 아리따운 미녀를 보고 그쪽에 정신이 팔려있는 순간... 왼쪽 얼굴과 귀에 생전 처음 접해보는 열기가 들이 닥치는 걸 느꼈었다.
사태는 이랬다. 불기둥을 만든 그 바텐더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불꽃이 안나오자 그위에 소량의 독주를 다시 부울려고 했단다. 하지만 바텐더가 들은 병은 거의 바닥을 보였고 남은 거 다 쥐여 짠다는 절약정신으로 술병 엉덩이를 불기둥에 대고 팍팍 치다가 병안에 차있던 가스에 불이 붙으면서 한자리 건너뛰어 떨어져 있던 나에게 화염방사기 마냥 불꽃이 분출이 되어 버린 것이였다..
날때부터 지성피부인지라 정말 잘 탔나 보다.!!
음악 끊기고 바탠더는 나에게 얼음물 붓고 사람들의 비명소리, 달려온 일행이 입고 온 옷으로 날 덮쳤고 가까스로 화재(?)진화는 무사히 끝났으나...이미 난 마징가 Z의 아수라 백작 마냥 얼굴 반쪽은 다른 반대쪽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사장이 뛰쳐나와 날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모셔갔고 응급실 환자가 밀리다 보니 난 그 흉한 얼굴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쇼크가 왔나 안왔나 살펴보고 불길이 폐까지 들어갔나 확인하더니 날 다짜고짜 응급실 금속침대에 눕혀놓고 얼굴에 식염수 댓병을 부어대기 시작했다.
젊은 레지던트 : ` (식염수 콸콸 부으면서..)어디서 뭐에 화상을 입으셨나요..?
나 : 캑캑캑....쿠어억 쿠어억...
젊은 레지던트: (당황한 듯이) 이봐 선생님 불러와 이 환자 화상쇼크 있는 것 같어..!!
저쪽에서 선생이란 자가 부리나케 달려오고 상황 설명을 듣는다.
선생이라는자: (상황을 살펴보고 젊은 레지던트를 보면서..)
`야이 XX야 똑바로 안할래....?? '
젊은 레지던트:(얼굴 하얗다) 왜...왜요 선생님...
선생이라는자: `이자식아 너같으면 콧구멍 안막고 식염수 얼굴에 꺼꾸로 부으면서
말시키면 대답할 수 있겠어...??'
젊은 레지던트는 황급히 솜으로 내 코를 틀어 막았고 남아있는 식염수 세척을 재기했는데 기다렸다는 듯 그 선생이란 자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선생이라는자:`이거봐라 똑바로 못해 귓구멍은 구멍 아니야...??'
답답했는지 선생이란 자가 나섰고 상황설명을 묻길래.. 술집에서 불맞았다고 말했더니..술집화재 피해자로 알아 듣더라는.....다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더니 날 보고 실실 웃으면서 그 술집 위치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는.....
이런 사고를 당하고 난 3일동안 새벽귀가 새벽출근으로 어머니께 은폐를 시도하다 4일째 결국엔 들켰고 욕을 바가지 바가지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후 그 술집에서 보상을 해줬고 난 갈때마다 왕 대접을 받았고 생일날이라고 찾아간 그집에선 양주댓병을 선물 받기도 했었다.(벌써 안간지 10년이 넘었네...)
이런 저런 술에 관련된 사고로 난 응급실 2번을 실려갔었고 폭력사태 1번..폭력사태미수1번 기타 그밖에 자잘한 사건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정말 억울하다..술을 먹고 주사가 심하다면 뭐라 할말이 없지만 술과 관련된 사고의 경우 내 주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타인 혹은 3차적인 이유에서 발생을 하니 말이다.
술마시면 조용히 졸다가 집에 갈때 한대 툭치면 벌떡 일어나 집에 돌아가는 내 주사에 비해 난 너무 가혹한 술에 대한 안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우리 마님은 주량이 맥주 반잔이다.....
뱀꼬리1: 그 사건 후 친한 선배와 5일후에 만났다. 선릉역이 약속 장소였었다. 선배 기다리는 동안 그 많은 인파를 나를 피해 벽에 붙어서 가는 걸 느꼈다. 더 웃겼던 건 맞은편에서 오던 선배의 모습이였다. 그 선배는 나와 정반대로 오른쪽 얼굴 절반을 갈아 먹은 것이였다. 이유는 회식 후 호텔 나이트갔다가 술에 취해 철재 나선 계단에서 굴렀단다. 그 날 우리가 거닐었던 길과 술집은 이상하게 한가하고 조용했었다. (사람들은 왜 넓은 길을 마다하고 벽에 붙어서 갈 길들을 가는지..)
뱀꼬리2: 치료를 위해 지속적으로 다녔던 피부과 의사가 한달 후 말짱해진 날 보면서 당신 피부는 분명 지구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농담을 들었다. 고로 난 지금 깨끗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다. 아..물론 나름대로....깨끗한.....나.름.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