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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레이첼 웰스 지음, 장현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3월
평점 :
누구에게나 이별은 힘들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반려동물을 잃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니까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의 슬픔과 절망 말이다. 방송을 통해 주인을 구하는 개나 죽은 어미 곁을 지키는 새끼 강아지 사연을 본 기억은 있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이 이어진 적이 없다. 레이첼 웰스의 소설 『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속 알피를 만나면서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주인공 ‘알피’는 가족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주인 마거릿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기 때문이다. 마거릿의 딸과 사위는 알피를 보호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알피는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집 밖을 나선 순간 알피는 길고양이로 전략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알피는 공격하는 고양이들, 내쫓는 인간이 많았다. 아, 알피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알피는 굴하지 않는다. 알피에게 ‘마당냥이’라는 걸 알려준 단추가 있고 맘에 드는 에드거 로드를 만났으니까. 이제 알피는 가족이 될 만한 인간만 찾으면 된다.
알피는 이삿짐을 내리는 집을 발견했고 슬그머니 그 집으로 들어갔고 클레어를 만났다. 클레어는 알피를 발견하고 안아주며 길을 잃을 고양이라 여기고 먹을 것도 챙겨줬다. 목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알피라고 불러주고 주인을 찾아주려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알피는 클레어와 살기로 결정했다. ‘무릎냥이’로 마거릿과 살 때와는 달랐기에 다른 가족을 더 찾아야 했다. 클레어가 출근하면 혼자 있어야 하니까. 그런 알피 앞에 등장한 후보는 조너선이란 남자. 클레어 집에서도 가깝다. 조너선 혼자 살기에는 무척 넓은 집이다. 알피를 발견한 조너선은 불평을 하지만 내던지지 않았으니 합격이다. 클레어와 마찬가지로 목의 이름표를 보고 전화도 걸었다. 알피는 고마운 마음에 쥐를 잡아 조너선의 현관 매트 위에 올려놨다.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며 두 사람을 관찰한다. 클레어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런던으로 이사를 왔다. 클레어는 혼자라는 사실에 슬퍼했고 우울해했고 싱가포르에 살던 조너선은 해고를 당하고 그 때문에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이곳으로 왔다. 둘의 사정을 알게 된 알피는 클레어의 슬픔과 조너선의 외로움에 공감한다. 다리에 털을 비비거나, 애교 있는 눈망울과 울음소리를 내거나 맛있게 밥을 먹는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자신만의 가족을 찾아 나선 알피의 여정과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이 있다. 매일 씻는 인간을 재미있다고 여기는 알피. 알피는 인간으로 치면 자존감이 높은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가족이 더 필요했다.
인간들은 재미있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침 안의 성분으로 그루밍하는 고양이와 달리 씻는 행위를 하고, 그런 다음 수건이나 옷으로 몸을 감싸는 게 말이다. 고양이로 사는 게 훨씬 더 쉬웠다. 우리는 항상 몸에 털을 두르고 있고, 원할 때면 언제나 씻을 수 있으니까. 정확히는 털을 깨끗이 닦는 동시에 빗질까지 할 수 있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더 잘 설계돼 있는 생물이다. (145쪽)

에드거 로드에서 새로운 두 가족을 발견한다.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보다는 훨씬 좁은 두 집, 아이가 있다. 둘 다 남편의 직장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아기와 적응하기 힘든 폴리는 알피가 아기를 헤칠까 걱정이 많고 폴란드에서 이사 온 프란체스카는 영어와 이웃의 편견 때문에 힘들다. 그러니 이 두 가정에도 알피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가정들은 서로 다른 형태의 공통점이 있었다. 클레어네도, 조너선네도, 폴리네도, 이곳도 각자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그들에게 끌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는 내 사랑과 다정함이 필요했고, 내 지지와 애정이 필요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175쪽)
아, 알피는 이제 네 집을 오가며 지내야 했다.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에서는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프란체스카의 아이와 놀아줘야 하고 불안한 폴리를 들여다봐야 하니까. 어디 그뿐인가. 클레어의 남자친구 조와 조너선의 여자친구 필리파도 주시해야 했다. 조는 형편없는 남자였고 필리파는 이기적이었다. 배려를 모르고 무엇보다 둘은 알피를 싫어했고 학대하기까지 했다.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을 이어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꼭 실행해야만 했다. 미리 알려주자면 알피의 계획은 성공했다는 것.
네 가족을 만든 알피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가만히 곁을 지킨다. 불평과 불만을 알피에게 털어놓던 조너선은 알피와 있을 때 편안했고 사랑받기 원했던 클레어는 알피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알피가 바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모두 알피의 가족이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도, 고양이도 완벽히 상처로부터 치유될 수는 없다. 그저 이해하게 되는 것뿐이다. 한편으로 회복 중이더라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상처 입은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격의 일부가 되고, 결국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회복은 그렇게 진행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까. (185쪽)
세상에 혼자 남았던 알피가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따뜻하고 보드랍다. 유쾌하고 유머가 넘친다. 거기다 감동적이다. 알피는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 속에 있던 알피가 책 밖으로 나와 내 다리를 감싸는 것만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