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었는데 책 읽기는 미진하다. 그래도 읽으려는 마음은 언제나 충만하니 괜찮다. 읽으려는 마음, 그 마음으로 이런 책을 구매했다. 어제의 뉴스는 무섭고 두렵지만 신나는 마음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튤립 덕분이기도 하다. 작은언니가 선물 받은 것인데 너무 예쁘다. 튤립과 책을 예쁘게 찍어보려 했으나 내가 원하는 구도는 나오지 않았다. 사진이야 그렇지만 꽃도 좋고 책도 좋으니 충분하다.


백수린의 단편집은 『봄밤의 모든 것』은 이 봄에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마음이다. 그리고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 『빈 자리』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이름만으로 충만하다. 안윤의 『모린』도 기대된다. 주춤했던 읽으려는 마음을 응원한다. 내가 나를 응원한다.







여러 색의 튤립이다. 고유한 튤립의 색들이 아름답다.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고운지 튤립 송이가 저마다 뽐내는 것 같다. 봄의 화려함을 알리는 것 같다. 눈 내리는 봄은 잊으라고 환한 봄을 기대하라고.







신나는 마음이 차오르기를 기다린다. 단번에 차오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차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나는 마음을 채우는 3월이면 좋겠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5-03-0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봄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저는 아직 백수린 작가 책 못 받아서 궁금합니다. 기대만큼 좋을까요? 설레네요.

자목련 2025-03-09 09:18   좋아요 0 | URL
백수린의 단편은 기대보다 좋은 쪽으로~~

페넬로페 2025-03-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 중이예요^^

자목련 2025-03-09 09:18   좋아요 1 | URL
이 봄에 우리는 같은 책을 곁에 두고 만지고 있군요!

망고 2025-03-0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튤립 정말 예뻐요🌷크고 탐스러운 꽃송이 아 예뻐라

자목련 2025-03-09 09:18   좋아요 0 | URL
망고 님의 마당에서 피어날 튤립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예뻐요!

독서괭 2025-03-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백수린 작품을 주문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보뱅 <환희의 인간>을 주문했는데.. 봄밤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자목련 2025-03-09 09:19   좋아요 1 | URL
<환희의 인간>정말 좋아요!!!
봄밤도 좋고요^^

호시우행 2025-03-08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키우는 화분에서도 튤립 싹이 제법 믾이 자랐어요. 조만간 꽃을 볼 수도 있을 듯. 튤립과 함께 행복한 봄날을 보내시길~~

자목련 2025-03-09 09:19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 님이 마주할 튤립이 궁금하네요^^

호시우행 2025-03-0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만발입니다.ㅎㅎ

자목련 2025-03-10 10:53   좋아요 0 | URL
활짝 핀 튤립 소식 기다릴게요^^

구단씨 2025-03-0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저 튤립이 생화인가요?
튤립 색이 저렇게 다양한 걸 처음 알았어요. 세상에나, 너무 예뻐요!!!
저렇게 예쁜 꽃 옆에 두면 책 읽는 맛이 나겠어요. ^^

자목련 2025-03-10 10:54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는 조화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진짜 예쁜 튤립이에요.
노랑, 빨강의 튤립은 정말 예쁘고 보라는 독특하고 신기해요!
 



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어쩌면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나부터도 굵은 팔뚝과 늘어나는 뱃살이 걱정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니지만 신경이 쓰인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옷맵시가 나지 않아 속상하고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날씬한 몸과 맑은 피부는 누구나 원하는 신체 조건이 된지 오래다.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아름답게 보이고자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조절한다. 심각하게 운동을 한다. 하루라도 계획된 식단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진정으로 몸을 사랑하는 일일까?


정신분석가 ‘수지 오바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 몸에 갇혀버린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직접 상담한 사례를 통해 완벽한 몸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쉬지 않고 심각한 다이어트를 한다. 거식증과 폭식증에 시달리다 성형 중독에 빠지거나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여 일부를 절단하기까지 이를 정도에 이른다. 날씬해진 몸과 수술로 얻은 쌍꺼풀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기 때문이다. 자해를 하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야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이 사회가 얼마나 날씬하고 마른 몸을 요구하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가상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가꾸고, 각종 사이트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광고들은 차지하더라도 면접을 위해 미용 성형을 하고, 결혼과 출산 후 변화하는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저자는 우리 몸이 성장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양육하는 태도에 따라 아이의 인격과 감성이 달라지듯 몸에 대한 인식도 그러한 것이다. 몸을 위한 것들, 그러니까 먹고 입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을 소홀히 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유아기를 지나 사춘기에서 접어들고 어른이 되기까지 하나의 몸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이야기다.






몸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측면에서 차차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만들어진다.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으깬 음식을 먹었는지, 음식을 먹인 사람이 재미있게 먹였는지 산만하거나 초조한 태도로 먹였는지, 보호자가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우악스럽게 안았는지 전혀 안아주지 않았는지, 자주 기저귀를 갈아주었는지 충분히 갈아주지 않았는지…… 이와 같이 우리 몸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수많은 변수들이 양육의 물리적 환경으로서 우리 몸을 형성한다. 사전에 주어진 몸이란 없다. (117~119쪽)


엄마가 청결을 중요시하면 아이는 저절로 배우듯 다이어트나 몸에 대한 애착과 불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함부로 날씬한 게 좋다고, 눈(코, 키)가 작아 걱정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이 힘들면 저절로 몸살이 나거나 아픈 것처럼 우리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더불어 내 몸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다양한 몸들과 몸을 꾸미고 움직이는 다양한 방식들은 우리에게 당연히 즐거움과 고마움을 안겨주는 경험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안정된 몸이 필요하다. 그런 몸은 행복과 모험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몸의 존재를 확신하는 그런 순간, 이윽고 우리는 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72쪽)


몸을 주제로 한 책이라 읽는 동안 인문학자가 쓴 『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 인류학』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진 부분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점점 하나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유의 문화나 관습이 서양의 마른 모델이나 다양한 광고(성형, 제약회사, 의류)에 지나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 인류학』이 다양성을 말하고 있다면 『몸에 갇힌 사람들』은 몸에 대한 자존감을 말한다. 다른 주장을 펼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두 책에서 말하는 건 몸의 행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권태기가 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지루하게 느껴져 속도가 나지 않으면 추리소설을 찾는다. 재미와 동시에 온전히 책 읽기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추거나 숨겨진 복선을 찾지는 못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누구나 다 알 정도의 유명한 추리소설을 읽거나 작가를 아는 건 아니다. 셜록 홈스나 뤼팽을 소설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로 본 게 전부다. 그러니 추리소설을 쓰는 다섯 명의 작가가 필독서로 꼽은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목차에서 읽어본 소설은 손에 꽂을 정도였다. 그래도 읽은 책은 몇 권 없지만 영화로 만난 작품이 있어 반가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필독서’라는 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현직의 작가가 추천하는 소설 정도로 여겨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일반 독자가 아닌 추리소설을 쓰고 싶거나 추리소설의 역사나 계보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추천서가 될 것이다. 무경, 박상민, 박소해, 이지유, 조동신 작가의 선정 기준은 단순한 베스트셀러나 인기 작가의 유명 작품이 아닌 고전(발표 연도)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읽은 가치가 충분한 작품, 추리소설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 우리나라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


발간 연도 순서로 소개하고 있으니 그 순서대로 따라 읽어도 좋고 좋아하는 캐릭터나 작가를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을 듯하다. 작품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작품도 소개하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났다면 목록을 목록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이력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이라고 하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삶은 추리소설의 명성과는 다르게 불운 그 자체였다.







추리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범인을 찾는 탐정이나 형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를 돕는 조력자와 함께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로 무한 변주되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셜록 홈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이 그러하다.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릭터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셜록 홈즈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다양하게 변주되어 창작될 것이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비롯한 캐릭터들을 멋지게 창조해 냈다. 코난 도일의 가장 큰 업적은 셜롬 홈즈를 창조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41쪽)


개인적으로 추리소설보다는 장편소설이 더 매력적인 다가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밀실 살인사건, 명탐정 푸아로의 활약, 소설마다 정말 대단한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현대 미스터리의 중요한 원형이 되었고, 후대에 다시 인용되거나 비틀리거나 재창조된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제시한 기법 중 아직도 미스터리와 스릴러에서 쓰이는 기법이 많다. 또한 어떤 기법은 변형되거나 부정당한다. 추리 장르는 그렇게 탄탄한 형식을 확립하고 동시에 무너뜨리며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아서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면,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완성했다.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은 결국 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147쪽)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이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작가와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한 탄생 설명과 함께 줄거리를 들려주면서도 트릭이나 범인에 대한 힌트나 언급은 없다. 그런 부분은 추리소설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미 읽었던 소설이나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도 처음 접하는 소설이라는 기분이 든다. 현직 작가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추리소설의 영역도 확장된다. 고전부터 명탐정, 형사 시리즈가 아니라 스릴러, 스파이물, 미스터리로 다양하다. 사회적 문제를 소설에 녹여 내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등장은 더욱 매력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로 기억하는 작가 김성종이 추리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국내 유일무이한 추리소설 전문 도서관을 세운 사실도 놀랍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원제가 『수도원의 범죄 사건』이었으나 독자들이 미스터리 자체에만 관심을 둘까 봐 파기했다고 한다. 이 책의 목록에서 반가웠던 건 제프리 디버의 『본 컬렉터』였다. 재미있게 본 영화였지만 원작이 있는 줄 몰랐다.


괴팍한 성격을 지닌 점이나 한 줌의 흙과 같은 미세 증거물로부터 현장을 알아내는 마법 같은 능력을 선보이는 링컨 라임은 현대판 셜록 홈즈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소설에서는 특히 과학적인 추론이 환상적으로 구현되어 제프리 디버표 법 과학 스릴러의 모범을 보여준다. (284쪽)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고 잘 모르지만 북유럽 작가의 작품이나 최근에 만난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이유로 필독서라는 개념은 중요하지 않지만 취향에 따라 추리소설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로 충분하다. 추리소설 입문서로도 나쁘지 않다. CSI 과학 수사대를 좋아하고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며 추리소설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만 알고 있는 나와 비슷한 독자라면 반갑고 즐거운 길잡이가 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5-02-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고전적인 애거사 크리스티 만 기억나네요.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기억에 남는 작품이예요.
<본컬렉터> 갖고 있지만 ,,,

자목련 2025-02-26 10:17   좋아요 1 | URL
제가 모르는 소설이 무척 많더라고요.
<본컬렉터>를 갖고 계시다니!

은하수 2025-02-2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저도 어딘가 독서생활에 정체기가 오면 추리소설을 읽어요~~~
전 홈즈, 루팡,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도 북유럽 추리소설 시리즈도 일본 추리소설도 ...
꽤 많이 읽었네요~~~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는 저도 꽤 좋아합니다. 점과 선도 읽었군요...^^
하지만 저도 필독서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지라...
그때 그때 끌리는 대로 읽는, 저만의 방법이 제일인거 같아요!

자목련 2025-02-26 10:19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
요즘 읽는 대신 스릴러, 미스터리 드라마에 빠져서...

관찰자 2025-02-2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쌍둥이를 임신했을때,
막달이 다 되어가자 정말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어서
그 시점에서는 도서관에 가서 거의 추리소설만 빌려 읽었어요.
그 때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을 거의 다 읽었는데,
남편이
˝그거 태교로 괜찮은거야?˝라고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ㅋ

그 아이들이 이제 15살이 되었지만요~

자목련 2025-02-26 10:21   좋아요 0 | URL
끌리는 대로 읽고 보는 게 좋지만, 남편 분의 걱정도 알 것 같습니다^^
쌍둥이, 정말 키우느라 힘드셨겠네요.
저도 첫 조카가 쌍둥이라서 쌍둥이에게 내적 친밀감이~~~

페넬로페 2025-02-2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권태기면 그리스 고전을 추천합니다.
머리에 쥐가 나면서도 인생의 진리와 보편성을 느낄 수 있어 재밌고도 감동적이예요.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힘들고도 재미 있어요^^
그러다 다시 소설 읽으면 너무 좋아 책 속으로 저절로 빠져 듭니다 ㅎㅎ

자목련 2025-02-26 10:23   좋아요 1 | URL
그리스 고전을 추천하시는 페널로페 님은 진정한 독서의 고수!
말씀처럼 과학, 역사, 예술 분야를 읽는 것도 권태기 퇴치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작가가 같을 때 이런 경우가 많다.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를 읽게 된 이유가 그렇다. 『북극을 꿈꾸다』로 그를 알았지만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탐험하고 방문한 장소에 대한 기록과 사유를 섬세하게 그려낸 『호라이즌』은 내가 읽기에 어려운 책이었으니까. 때문에 꼼꼼하게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책이고 놀라운 책이라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저자 배리 로페즈는 여행자이자 탐험가이고 기록자였고 연구자였다. 그의 생은 여행하며 체험하고 읽고 쓴 시간으로 채워졌다. 55년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보고 배우고 느끼고 사유한 것들을 책으로 써냈다. 『호라이즌』은 생전에 마지막 집필한 인문 에세이다. 남극과 일흔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보낸 세월을 돌아본 책이다. 그가 간 장소, 그가 본 역사적 유적지,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니 900페이지가 넘을 수밖에. 누군가는 이 책이 지식과 정보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한 번쯤 찾고 싶은 여행지를 꿈꾸는 시간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공간에 대한 탐구와 사유로 안내하는 문학서가 될 것이다.


책은 오리건주 서부의 파일웨더곳을 시작으로 캐나다 북극 스크릴랭섬, 아프리카 케냐, 적도 인근의 푸에르토아요라,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으로 안내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자주 멈췄다. 인터넷으로 지명을 검색하고 역사에 기록된 탐험가를 검색하며 따라가야 했다. 그가 만난 지구의 곳곳은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의 글로 만나는 황홀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검색이나 정보로 만날 수 없는 놀라운 경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느 장소에서든 눈에 보이는 것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관찰했다. 그리고 과거의 삶을 상상하며 그려보았다. 한 마리 새, 한 마리 고래, 남겨진 뼈나 집 터에서 그가 발견하려고 했던 건 무엇일까. 표면이 아닌 깊숙한 내부, 그곳에 처음 존재했던 동물과 사람의 삶의 형태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돌아보는 것 같았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며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곳의 지배하고 그곳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만 역사의 기록에서 놓치고 만 어떤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라고 할까.





나는 그 장소들에 처음 갔을 때는 놓치는 게 많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갔다면 어떤 것을 받아들이든 간에, 전체적인 경험에서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다른 장소들에서 밤을 보낼 것이고, 날씨도 다를 것이며, 그 사이 내가 읽은 책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 여행 이후 얻은 깨달음들과 내가 살면서 한 실패들도 분명 예전의 인식을 바꿔 놓을 터였다. 아무리 여러 차원에서 엄밀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곳을 아무리 여러 번 여행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 장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장소 자체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장소는 그 깊은 본성상 투명하지 않고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48~49쪽)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일어난 일들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거기에 아직 어떤 실마리가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51쪽)


그러니 그의 가방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하나의 장소를 방문하기 전 그곳에 대한 기록을 찾고 함께 가는 이들(대부분 연구가, 탐험가, 과학자)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미리 세심하게 계획했다. 그의 글은 인류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인류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은 인문학, 지질학, 생물학, 지구과학, 지구 역사, 환경까지 모든 걸 수렴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간 장소에 나는 가지 못할 것이다. 단 하나의 장소에도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 장소를 꿈꿀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여행지로 만나는 남극 대륙에서 지구온난화, 남극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곳에서 운석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놀랍다. 화성, 소행성대, 달에서 조각들이 남극에서 발견된다니. 그 운석 조각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배리 로페즈의 산책을 따라 남극의 풍경을 그려본다.

남극점 기지에서 나가 산책하는 날이면 나는 남극 고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으며 어디를 바라보든 만나게 되는 풍경의 단순함을 즐겼다. 하늘에서는 종종 햇빛이 다양한 종류의 굴절 현상을 일으켜 눈길을 사로잡는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었는데, 이를테면 양쪽으로 아주 연한 분홍색과 라임색의 밝은 빛무리가 생기거나ㅡ이를 환일이라 한다ㅡ 태양과 지평선 사이에 증기로 된 유령처럼 흐릿한 빛줄기가 달의 흙을 연상시키는 회색 기둥을 만들었다.

영원히 지고 있는 태양, 눈을 밟으며 걷는 내 부츠에서 나는 뽀드득 소리, 고원의 광활한 정적 위로 내 숨소리는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어쩐지 내가 투사해낸 실체 없는 환영인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했다. 그것들은 언제라도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816~817쪽)


배리 로페즈의 생생한 글로 지구의 자연과 역사를 만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되살린 기억과 꼼꼼한 기록으로 이끈 자연 여행은 끝나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갈 지구, 앞으로 남겨질 자연에 대한 연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아름답고 끝이 없는 추구여야 한다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나는 우리의 문화적 운명에 관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생물학적 운명에 관해 우리가 마침내 서로 유의미한 대화를 나룰 수 있으려면 어떤 대격변이, 혹은 더 낫게는 어떤 상상의 행위가 필요한지 종종 생각한다. (85쪽)


더 알고자 하는 욕망, 감지하고 측정하는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히 알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비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끝이 없는 추구다. (285쪽)


여행자에게는 아름다운 안내서가 된다. 연구자와 과학자에는 정확하고 사려 깊은 교과서가 된다.그리고 나 같은 독자에게는 자연과 지구의 역사를 선물하는 그런 책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닿을 수 없지만 정말 경이롭고 아름다운 책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힐 2025-01-1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말씀대로 책은 다른 책을 연결하고, 가지 못하지만 꿈 꿀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무척 공감합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닿을 수 없지만 꿈 꿀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책을 저도 보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 합니다.

자목련 2025-01-16 09:42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이지만 정말 좋은 책이라고 말씀드려요!
따뜻한 하루 보내시고요^^

꼬마요정 2025-01-1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도 못 가보겠지만, 함께 꿈을 꾸고 싶어집니다.

자목련 2025-01-16 09:44   좋아요 1 | URL
지명을 검색하고 세계 지도를 찾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바닷가에서 노을 지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2025년이 생경하다. 그저 숫자에 불과한데 먼 미래에 도착한 기분이다. 푸른 뱀의 해라고 했던가. 고모와 선생님이 뱀띠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다정한 동생도. 같은 해에 태어난 건 아니지만 나에게 소중한 이들이다. 이렇게 띠로 연결해 보니 재밌고 한결 친근한 것 같다.


2025년의 첫 책을 샀다. 커피만 구매하려고 했는데 적립금이 아까워서 책을 골랐다. 무료 배송 가격을 맞춰야 해서 책을 더했다. 책을 덜 살려고 하는 마음은 언제나 유효하다. 궁금한 책은 많지만 이상하게 구매하는 책은 시집이다. 유수연의 시집은 처음인 것 같다.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란 제목의 시집.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샀다. 사실은 이 소설도 그렇다. 세라 온 주잇의 『뾰족한 전나무의 땅』이다. 이 소설은 정보가 조금 있다. 윌라 캐더가 극찬하고 직접 편집했다고 한다. 『루시 게이하트』의 작가 윌라 캐더 말이다.







두 권의 책과 커피로 2025년을 시작한다. 8일이나 지났지만 새로운 마음을 지닌다. 나에게는 새로운 마음이 조금 필요하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산뜻함, 새로운 기분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다. 아마도 그 새로운 소식은 모두가 바라는 그것일 것이다.


2025년의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냥 산다. 그래도 이런 건 지키고 싶다. 올해는 덜 사고 많이 읽는 일.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년보다 덜 사고 작년보다 많이 읽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힐 2025-01-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자목련님 처럼 2025년이란 미래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생각 보다 과거와 달라진게 없어서 약간은 실망하고 있어요. ㅎㅎ 그래도 올 해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 하면서 밝은 희망도 가져 봅니다. 자목련님 올해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책 알려 주세요. 감사 합니다.

자목련 2025-01-09 11:26   좋아요 1 | URL
어느 순간 해가 바뀌고 새로운 숫자를 마주하는 게 느낌이 없기도 합니다. ㅎㅎ
나이가 든 탓일까 싶어요.
마힐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환하고 맑은 날들 이어가시길 바라요!

희선 2025-01-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만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래야겠네요 지난해에는 별로 못 봐서... 새해가 됐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군요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네요 나라도...


희선

자목련 2025-01-09 11:27   좋아요 0 | URL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쓰는 속도는 더욱 느려집니다.
올해는 조금 속도를 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희선 님도 좋은 책들 많이 만나시길 바라요.
많이 춥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