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에 피로감을 느끼는 시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다양한 채널에서는 더 짧은 글, 더 자극적인 이미지, 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럼에도 스치듯 마주한 짧은 문장에 이끌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더 많은 글을 만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강렬하면서도 따듯한 문구, 읽는 순간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자극하는 글.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기쁨, 충만, 사유를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박노해의 『걷는 녹서』가 그런 책이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어렵기도 하다.단 한 줄이 전하는 뜨거운 울림. 


한 줄의 문장이 지닌 힘, 그 문장을 통해 전해지는 어떤 떨림, 어떤 숭고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423편의 글과 박노해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기록해온 사진들이 담겼다. 같은 듯 다른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잊었던 삶의 질문이라고 할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성경 공부 큐티처럼 하루에 한 문장씩 가슴에 새기고 그 문장을 기억해도 좋을 듯하다. 또 다른 하루에는 새로운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잊어도 괜찮다. 다시 읽고 다시 느끼면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기계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냥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 당신 곁에 이런 문장이 함께 있다면 좋겠다. 자꾸만 뭔가 채워야 하고 잔고를 늘려야 한다는 게 삶의 의무인 양 달려온 시간 마주한 나는 어떤 모습인가.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나의 표정은 웃고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매일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157쪽)

목적지는 저 먼 어딘가가 아니다. 그곳에 이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적지다. (425쪽)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말 것. (482쪽)


때로 얼마나 더 살아야 인생의 답을 찾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생의 답이라는 건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우주의 작디작은 한 점에 불과한 게 우리의 인생이라는걸. 겨우 100년이라는 시간을 살다가 소멸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지구별에 놀러 온 아이야. 너는 맘껏 놀고 기뻐하라. 그리고 네 삶을 망치는 것들과 싸워가라. (233쪽)

살아 보면 존재는 의식을 배반한다. 인간은 그가 사는 대로 되어간다. (407쪽)


문장을 읽으면서 문득 궁금하다. 얼마나 많은 길을 떠나 그 길에서 걷고 읽고 사람들을 만나야 이런 사유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 무기수로 지내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독서, 걷는 독서가 시작된 그 공간, 나아가 그가 걸어간 길, 그가 만난 세상은 어떤 빛이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박노해 시인이 살아온 삶을 채운 고통과 절망을 생각한다.


돌아보니 그랬다. 가난과 노동과 고난으로 점철된 내 인생길에서 그래도 나를 키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 어쩌면 모든 것을 빼앗긴 내 인생에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한 나만의 자유였고 나만의 향연이었다. (9쪽)


박노해 시인이 스스로를 지키고 단련시키기 위해 놓을 수 없었던 걷는 독서. 그로 인해 우리는 이렇게 쉽고 간편하게 삶을 돌아본다.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다. 한 줄의 문장이 전하는 거대한 울림과 삶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 읽는 일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이에게 읽는 즐거움을 뒤 찾아줄 한 권의 책이 될지도 모른다. 텅 빈 충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사람이다. 삶이라는 한 권의 책을.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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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6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사람이다. 삶이라는 한 권의 책을]
마지막 문장 넘 ㅎ 좋아서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결국,, 걷는 독서 장바구니 속으로 ~~@@
몇년전 박노해 시인의 사진 전시회에가서 직접 만났었는데,,,
세상을 천천히 읽고 사유 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ㅅ^

자목련 2021-08-27 12:03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언급하신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어요.
직접 전시회를 보셨으면 생생한 감동이 전해졌겠네요.
지금도 라 카페 캘러리에서 전시중이라고 해요.
스콧 님, 행복한 독서 이어가세요^^*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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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어떤 사건은 모두가 알고 기억하는 일이 되고 어떤 사건은 당사자만 알게 된다. 사건의 중요도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과장해서 말한다면 권력일지도 모른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채널을 차단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을 생각하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하고 가해자는 그에 준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그렇다. 분명하게 죄를 판단하고 억울한 피해지를 만들지 않는 것. 다소 과격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상의 미래 일본 사회에서 벌어진 일, 그 중심에서 선 이들의 이야기. 재일 한국인 3세가 경험한 것들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시대가 변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하게 뭔가 해결할 수 없는 한의 응어리가 남았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미래의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가 불법이고 사회 전반에 한국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다면 더욱. 한국에서 재한 일본인과 다문화가정으로 살아가는 이들과는 다를 것이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아픈 역사가 있으니까.


그런 사회에서 혐오의 당사자는 하루하루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을 만나 연대의 힘을 키운다. 소설에 등장하는 6명의 청년도 그러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다 서로에게 연결되었다. 일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휘둘리며 살아간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가시와기 다이치를 시작으로 청년들을 데리고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박이화, 청년회 소속이지만 무기력한 존재로 스스로 죽음을 꿈꾸는 양선명, 다이치의 계획을 몸으로 실행하는 윤신, 극우 보수정당에서 활동하며 다이치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 인물인 기지마 나리토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김태수.


다이치가 어떤 계획은 세우고 실해하려 하는지 처음에는 짐작할 수 없다. 일본 국적의 다이치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누가 봐도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재일 한국인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정도로만 보였다. 동생의 죽음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김태수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겠다는 다이치. 일본 가해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이치의 계획에 빠진 이는 오직 박이화다. 청년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그녀는 한국으로 향했으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위한 여정, 마음속 어딘가에서 바라던,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비슷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다. 도피가 아닌 개척, 굴복이 아닌 시작, 슬픔이 아닌 투쟁심, 의지를 관철한 결과로서의, 아직은 위대한 과정일 것이었다. (143~144쪽)


혼자가 아니라 청년들을 데리고 부산에 왔다. 한국에서의 모든 활동을 블로그에 기록하겠다는 그녀의 바람은 너무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었을까. 부산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국정원 직원과 대면하는 부분은 소설 밖 현실에서도 진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이치의 계획을 떠나서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팠던 건 김태수의 동생 김마야 사건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된 그녀. 그녀의 죽음 이후 새로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녀가 남긴 논문, 글에 대해 비방하며 폭력을 가한 것이다. 소설에는 그녀의 글을 통해 페미스트, 가부장제도, 비건, 여성문제, 평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법보다 정의,라는 말에 대해서. 모든 독립운동은 불법이다. 모든 정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부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정의를 행해야 한다. 어떻게? 어디까지? 서프러제트에 의한 폭력 행사가 없었더라면 여성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사회운동에 폭력이 일절 없었더라도, 역사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향했을까?’ (325쪽, 김마야의 글)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에 국한된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죽음의 곁에서 살아가는 난민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해진 양극화 현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빈부의 격차. 점점 더 다양해지는 사회구성원, 누군가의 슬픔의 쌓이다 못해 폭발한다면 다이치의 계획은 현실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미래는 이처럼 디스토피아일까. 두렵고도 무거운 마음을 지을 수 없다. 제목처럼 강렬하고 뜨거운 여운을 남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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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5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은이도 한국인 역자도 한국인이어서 놀랐는데 재일교포가 쓴 글이군요. 소수자의 삶은 언제나 힘든거 같아요 ㅜㅜ

자목련 2021-08-26 09:23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경험이 있으니 더욱 실감나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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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안과 밖, 이쪽과 저쪽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야 분명할 것 같았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그래야 간단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마음조차도 분명하게 나룰 수 없었다. 누군가 안이라고 주장하는 공간은 누군가에는 밖이었고 안도 밖도 아닌 곳이 존재했다. 그냥 그렇게 모두가 존재하는 게 세상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고 할까.


1929년 넬라 라슨이 출간한 『패싱』을 읽으면서 우리가 여전히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소리로 경계하는 대신 조용히 밀어내면서 자신의 자리만을 고집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두 명의 흑인 여성의 삶을 들려준다.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백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지닌 그녀들은 흑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가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닐 수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흑인이지만 백인 행세를 한다는 제목(패싱)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흑인인데 백인처럼 보인다는 걸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필요에 의해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가는 삶으로 이해하면 좀 쉬웠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란 아이린과 클레어는 어른이 된 후 다시 재회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클레어가 무성한 소문을 남긴 채 떠나고 십이 년 만이다. 그 사이 둘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린을 먼저 알아본 건 클레어였다. 클레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누가 봐도 그녀는 백인의 모습이었다. 백인 남편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아이린은 클레어와 재회가 반가우면서도 불편했다. 클레어의 연락을 무시하고 피했지만 그녀가 찾아오자 어쩔 수 없었다.


클레어는 백인 행세를 하는 삶을 탈출하고 싶었다. 흑인 혐오주의자인 남편과의 숨 막히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 아이린과 다른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원했다. 남편이 알아서는 안 되는 시간 말이다. 아이린은 그런 클레어를 통해 묘한 감정을 느낀다. 클레어처럼 완벽하게 백인으로 살지는 않지만 아이린 역시 필요에 따라 백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백인 행세를 하면서 백인의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얻었으면서도 흑인만의 문화를 그리워하고 그 세계로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클레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건 단순하게 질투나 시기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패싱에 대한 아이린의 생각을 말해주는 이런 부분처럼.


“‘패싱’은 정말 알 수 없다니까. 우리는 패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용서하잖아요.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감탄하고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패싱을 피하지만 그걸 보호하기도 하죠.” (110쪽)


그에 비해 클레어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진짜 모습이 탄로 날까 전전긍긍하니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이제야 알았다고 할까. 그러기에 아이린에게 하소연하는 클레어가 비참하기까지 하다.


“네가 어떻게 알겠니? 어떻게? 넌 자유롭잖아. 행복하고, 그리고…….” “안전하고.” (133쪽)


아이린이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넘보며 침범하려는 클레어로 인해 혼란스럽다. 교묘한 고양이처럼 안전한 그녀의 가정을 흔든다. 그렇다.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침범자였다. 그동안 백인 사회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마음이 기울다가도 고개를 흔들었다.


소설 속 미국 사회를 그려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같은 시대 조선의 모습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다른 세계의 문화가 유입하는 시기. 아니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100여 년이 지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봐도 충분하다. 모든 갈등과 불화의 시작은 욕망 때문이었다. 인종차별, 편견, 불평등 그것들의 밑바탕에 자리한 욕망들. 다르다는 것을 잘못이나 낙후로 된 것으로 낙인찍는 세상. 누구나 클레어가 되고 아이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울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경계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경계를 원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다르지만 똑같은, 두 종류의 충성심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했다. 그녀 자신에 대한 것, 그리고 그녀 자신이 속한 인종에 대한 것. 아, 인종이라니! 그것 때문에 아이린은 결박당한 책 질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하건, 또는 전혀 취하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무엇 하나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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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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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와 오랜 연애를 끝내고 결혼을 한 친구가 말했다. 같이 있고 싶어서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친구는 아이를 기다리는 양가 부모님의 시선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 물론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친구의 경우 남매를 낳았다.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보통의 삶,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그런 일상 말이다. 그 가운데 모성애는 신성하고 숭고하게 다뤄진다. 모든 엄마와 모성애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거라고. 과연 그럴까? 왜 유독 모성애만 강조되는 걸까. 애슐리 오드레인의 장편소설 『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를 읽노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슴 깊은 곳에 추가 하나 매달린 기분이다.


소설은 한 가정의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 블라이스는 완벽한 남자 팍스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딸 바이올렛은 무척 예민한 아이였다. 블라이스는 그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단순한 산후우울증이 아니라 바이올렛은 진짜 이상한 아이였다. 모두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주는 아이였지만 엄마 블라이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블라이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바이올렛이 지닌 공포의 기질이 있었다. 처음엔 블라이스가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잘못 판단하는 것이라 여겼다. 블라이스에게는 아픈 과거 있었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 세실리아로 인해 자신도 그런 엄마가 될까 두려웠다. 그건 세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블라이스의 엄마, 세실리아, 세실리아의 엄마 에타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건 블라이스의 외할머니 에타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에타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일만 하다 에타의 남편은 죽었고 그 후 딸 세실리아가 태어났다. 에타는 세실리아를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세실리아에게 엄마는 사랑의 존재와 대상이 아니었다. 방탕하게 지내는 세실리아는 임신으로 인해 원하지 않은 결혼을 했다. 세실리아는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고 블라이스를 감당할 수 없었다. 블라이스를 통해 엄마 에타를 발견할 뿐이다. 아이보다 중요한 게 많았다. 블라이스는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고 성장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불안에서 달아날 수 없었다. 유전적으로 모성애가 결핍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바이올렛과 블라이스의 관계는 대립 그 자체였다. 소설의 다음 이야기를 읽는 게 힘들 정도다. 그렇다. 이 소설은 불편하고 불편하다. 어린 딸 바이올렛의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블라이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 복잡한 내면 심리가 탁월하다. 엄마를 거부하며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이올렛의 말과 표정은 섬뜩 그 자체다.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 딸을 보며 블라이스가 느끼는 두려움을 남편 팍스는 인정하지 않는다. 블라이스만이 정확하게 바이올렛을 볼 수 있다는 걸 그는 모른다.


블라이스와 세실리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모성애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강요당하는 모성애, 스스로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버티는 모성애의 안타까움. 세실리아가 어린 블라이스에게 건네는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좋은 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받지 못한 돌봄, 체감하지 못했던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알지, 우리 자신에게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점이 많이 있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하지만 가끔 어떤 부분은 본 것에 따라 형성이 되기도 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따라.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에 따라.” (387쪽)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삶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고칠 수 있다고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입해야 옳은 걸까. 마음이 어렵다. 그렇다면 왜 모성애에 대해서만 말하는가. 잔혹하게 슬픈 소설이다. 어딘가 현실 속에서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낼 블라이스가 있을 것만 같아 아프다. 누군가는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으로 엄마로 나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블라이스의 다짐이 뜨겁게 날아가 안착한다.


나는 내 실수를 넘어 나아갈 수 있어.

나는 내가 일으킨 상처와 고통에서 치유될 수 있어.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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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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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살아갈수록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데 참 어렵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잘 사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기도 하고 사는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서다.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한 바람을 버릴 수는 없다.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힘겨운 삶을 버티며 나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생각한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수록된 8편의 소설이 그랬으니까. 소설 속 여성 화자는 모두 우리였으니까. 과거의 우리, 지금의 우리, 미래의 우리 말이다. 어쩌면 모두 여성 화자라서 우리의 이야기로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한 번쯤 느꼈을 차별의 시선과 참아온 분노. 그녀들의 상실과 슬픔을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내 것 같아서 함께 공감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과거, 혹은 누군가의 미래와 겹쳐지는 「매화나무 아래」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슬픔도 그러했다. 치매에 걸린 큰언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 화자 ‘동주’가 들려주는 큰언니 ‘금주‘, 작은언니 ‘은주’의 이야기. 세 자매로 지냈던 시절, 그리고 남은 큰언니와 동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삶의 고단함, 이별을 준비하는 가느다란 시간을 생각한다. 그 시간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 연약하고 위태롭게 삶과 이어진 시간들. 사는 건 무엇일까. 소멸하는 생의 마지막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가만히 이런 문장을 읽는다. 소설 속 세 자매도 눈이 되었다가 꽃이 될 것이다. 그게 인생일 것이다.


봄이 오면 눈들은 꽃이 되겠지. 새하얀 꽃들이 늙은 나무를 뒤덮으면 마르고 갈라진 나무껍질은 보드라운 꽃잎에 가려 보이지도 않겠지. 벅차게 흐드러진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며 코끝에 매화 향이 날라오는 듯했다. 바람이 불면 새하얀 꽃잎들이 나비처럼 팔랑일 것이다. 그러다 못 이기고 한꺼번에 떨어져 함박눈처럼 흩날릴 것이다. (「매화나무 아래」 중에서)


꽃이 되는 인생을 생각하면 혼란스러운 지금의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나와 똑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지지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해낼 수 있다. 화자인 소설가가 악플러를 고소한 내용으로 시작하는 「오기」는 그런 마음을 말한다. 이해와 공감, 단단한 연대로 나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이 단편을 읽으면서 여성 서사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했던 어떤 순간들, 당혹스럽고 불편하고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부장제와 수없이 나를 훑고 간 불쾌한 시선과 모욕적인 언어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 같은 상처들. 그래서 ‘오기’란 제목이 ‘다짐’, ‘결속’처럼 다가온다. 화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자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사랑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나’가 아닌 상대에게 모든 걸 맞추는 「현남 오빠에게」나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수많은 폭력과 폭행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여자아이는 자라서」 속 딸을 둔 화자에게도 이어진다. 나를 변호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목소리. 인식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그건 단순하게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유쾌하게 풀어낸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단편을 너무 재밌게 읽었지만 가장 씁쓸하고 속상했다. 직장에서 뭐든 다 해내는 ‘미스 김’의 존재가 과거 우리의 자매였고 지금 20~30대 여성 같아서.


얼마나 힘들었냐고 다독이면서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들이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오로라의 꿈」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아로 힘들지만 복직한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딸의 속상함을 알지만 워킹맘인 친정 엄마도 손주를 봐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지금껏 지켜온 자리, 여유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일과 육아를 저울질하게 하는 만드는 건 누구일까. 가족과 사회 그 안에서 여성의 자리는 너무도 작고 위태롭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삶을 이어가는 여성들이다. 엄마와 딸이 아닌 동등한 여성으로 서로를 지켜봐 주는 「오로라의 꿈」 속 모녀는 애처로운 우리의 모습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오로라의 꿈」 중에서)


우리가 쓰는 삶, 우리가 살아내는 삶을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의 삶.10대 어린 소녀부터 노년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고군분투는 나의 일상이다. 웃고, 울고, 화내고, 속상한 마음을 다시 다잡고 나아가는 우리와 너무도 닮았서 그녀들을 지지하게 된다. 열심히 잘 해왔다고, 잘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미 충분하다고. 그리하여 소설 속 그들처럼 우리의 시간이 먼 훗날 어떻게 채워질까 기대하며 오늘을 더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서로를 응원하며 좌절도 절망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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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0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2관王 추카 합니다
9월 두번째 주말 멋지게~*

자목련 2021-09-13 12: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스콧 님도 축하드려요.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요^^

mini74 2021-09-10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09-13 12:05   좋아요 0 | URL
미니 님도 축하들비니다.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어요^^

독서괭 2021-09-10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으로 당선되었네요.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9-13 12:06   좋아요 0 | URL
독서괭 님 축하드려요!
조남주의 단편집 더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ㅎ
맛난 점심 드세요^^

새파랑 2021-09-10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신기하게 같은 책이네요~!! 축하드려요 😆 2관왕~!!

자목련 2021-09-13 12:07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감사해요. <벨아미>저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어요.
아, 고전은 어렵고 멀기만 행, ㅎㅎ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09-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09-13 12:07   좋아요 0 | URL
저도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
평온한 날들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9-10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9-13 12:0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즐겁고 건강한 9월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09-13 12:08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초딩 2021-09-11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
좋은 날 되세요~

그레이스 2021-09-13 12: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1-09-13 12:09   좋아요 0 | URL
초딩 님, 저도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1-09-1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