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픽션 -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테마 소설집
조남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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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말이다. 지금 나에게 도시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공간일 뿐이다. 서울은 특히 그렇다. 미로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곱 명의 작가가 도시를 테마로 쓴 소설집 『시티 픽션』에서 도시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를 채우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파트가 생각나는 건 나뿐일까.

조남주의 「봄날아빠를 아세요?」는 현미경처럼 도시인의 욕망을 들여다본 것 같다. 거주공간이 아닌 투자공간으로 전락한 아파트. 역세권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을 통해 주민들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아파트와의 시세 차이, 학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도시에는 home이 아닌 house뿐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만약 소설 속 인물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게 현실이구나 싶다.

‘종묘’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정용준의 「스노우」는 도시 속 거대한 고요를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1995년 강도 6.5의 지신이 발생한 서울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지진과 화재는 어이없이 삶을 파괴하니까. 말 그대로 부서진 서울, 불에 탄 ‘종묘’.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는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지만 종묘는 복구작업이 느리게 진행된다. 종묘해설사 ‘이도’는 이러한 사실에 화가 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속상하다. 그런 이도와 달리 경비원 ‘서유성’은 긍정적인 믿음으로 야간 순찰을 한다. 깊은 밤 종묘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스노우’란 이름을 붙여준 그는 그곳이 종묘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공간은 어디일까. 그 공간이야말로 나를 아는 장소는 아닐까. 서유성과 이도에게 종묘도 그런 공간일 것이다.

“모두 잠들고 심지어 종묘의 신들도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깊고 깊은 새벽에 관리실 책장에 홀로 앉아 있으면 이상한 감정이 들어요. 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꼭 장소인 것 같다니까요. 그 기분과 그 느낌이 종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갈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묘사할 수도 있는 곳.” (정용준의 「스노우」, 89쪽)


이주란의 「별일은 없고요」는 제목처럼 별일 없는 하루하루의 일상이라고 할까. 서울에 살던 화자 ‘수연’은 엄마가 계신 지방 소도시로 온다. 아랫집의 화재로 인한 결정이었지만 수연에게는 변화와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작은 소도시에서 새롭게 알아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낸다. 어제와 같은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계획대로 흐르는 시간들. 서울과는 다르게 조용하지만 움직이는 삶의 모습이 다정하게 전해진다. 최근 이주란 소설의 분위기라고 할까. 조곤조곤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인물의 행동과 내면을 묘사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조남주의 단편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는 조수경의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은 내 집 마련의 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잘 보여준다. 월급을 다 저축해도 서울에서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을 통해 지금 이 시대의 청춘들이 느끼는 허탈과 절박함이 씁쓸하다.

언제나 틈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면 이 박사는 틈새를 찾아 회원들에게 알려주었다. 이 박사가 언급한 지역으로 회원들이 몰렸고, 사람이 몰리면 어김없이 집값이 올랐다. 카페에서는 이 박사 덕분에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떠돌았다. 이 박사가 꿈과 불안을 동시에 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세상에 불안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167~168쪽)

화자 ‘의진’은 유튜버의 조언에 따라 갭투자를 시작하면서 직장까지 바꾼다. 직업소개소에서 사무실의 모든 걸 처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사장을 위해 상품권 거래를 하던 중 상대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흔적을 찾으면서 의진은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과 애인 연석의 아파트를 생각한다. 부동산의 소유는 연애와 결혼의 필수조건이었다.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라 부동산 만능 사회가 된 것일까.

한강변에 있는 연석 명의의 아파트. 언젠가 그곳이 재건축된다면 거기 살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생각들은 초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멋진 야경을 보며 다 잊게 되겠지. 잊고 살겠지. (조수경의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184쪽)

내게 도시는 어떤 공간일까. 좋은 사람들과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은 장소이면서도 더 이상 찾아가지 않는 곳. 그래도 그곳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속에서 몽글거리는 무언가를 외면하는 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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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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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마치 도달해야 할 목표처럼 여겼던 잘 사는 일 말이다. 잘 사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기도 하고 사는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거라고 친구는 놀릴지도 모른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냥 순리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날들이다. 그럼 순리는 무엇일까.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을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우리가 살아온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읽었다.


수록된 8편의 소설이 그랬으니까. 소설 속 여성 화자는 모두 우리였으니까. 과거의 우리, 지금의 우리, 미래의 우리 말이다. 어쩌면 모두 여성 화자라서 우리의 이야기로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녀들의 상실과 슬픔을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내 것 같아서 함께 분노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읽은 「매화나무 아래」는 눈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소설이다. 눈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있을까.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지내는 날들에야 가능할까. 아니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치매에 걸린 큰언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 화자 동주가 들려주는 큰언니 금주, 작은언니 은주의 이야기. 세 자매로 지냈던 시절, 그리고 남은 큰언니와 동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삶의 고단함, 이별을 준비하는 가느다란 시간을 생각한다. 연약하고 위태롭게 삶과 이어진 시간들. 사는 건 무엇일까. 가만히 이런 문장을 읽는다. 소설 속 세 자매도 눈이 되었다가 꽃이 될 것이다. 그게 인생일 것이다.


봄이 오면 눈들은 꽃이 되겠지. 새하얀 꽃들이 늙은 나무를 뒤덮으면 마르고 갈라진 나무껍질은 보드라운 꽃잎에 가려 보이지도 않겠지. 벅차게 흐드러진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며 코끝에 매화 향이 날라오는 듯했다. 바람이 불면 새하얀 꽃잎들이 나비처럼 팔랑일 것이다. 그러다 못 이기고 한꺼번에 떨어져 함박눈처럼 흩날릴 것이다. (「매화나무 아래」 중에서)


모든 걸 다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게 노년이라면 치열하게 혼란스러운 지금의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나와 똑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지지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해낼 수 있다. 화자인 소설가가 악플러를 고소한 내용으로 시작하는 「오기」는 그런 마음을 말한다. 이해와 공감, 단단한 연대로 나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이 단편을 읽으면서 여성 서사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했던 어떤 순간들, 당혹스럽고 불편하고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부장제와 차별의 단어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상처들. 그래서 ‘오기’란 제목이 ‘다짐’, ‘결속’처럼 다가온다.


그런 마음은 사랑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나’가 아닌 상대에게 모든 걸 맞추는 「현남 오빠에게」나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수많은 폭력과 폭행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여자아이는 자라서」 속 딸을 둔 화자와 연결된다. 인식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그건 단순하게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유쾌하게 풀어낸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단편을 너무 재밌게 읽었지만 가장 씁쓸하고 속상했다. 직장에서 뭐든 다 해내는 미스 김의 존재가 우리의 20~30대 청춘 같아서.


알면서 버티고 모르면서 버티는 게 삶인가. 자신이 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육아로 힘들지만 복직한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딸의 속상함을 알지만 워킹맘인 엄마도 손주를 봐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오로라의 꿈」 속 모녀는 가장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오로라의 꿈」 중에서)


우리가 쓰는 삶, 우리가 살아내는 삶을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의 삶. 그들의 고군분투는 나의 일상이다. 웃고, 울고, 화내고, 속상한 마음을 다시 다잡고 나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소설 속 그들처럼 우리의 시간이 먼 훗날 어떻게 채워질까 기대하며 오늘을 더 사랑하며 살아간다. 잘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절망하지 않고 같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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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02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말씀 처럼 ‘우리가 쓰는 삶, 우리가 살아내는 삶‘
오늘 하루 열심히, 잘 살지 않아도, 서로 부등 부등 응원하며!
자목련님 7월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

자목련 2021-07-02 17:23   좋아요 2 | URL
응원하는 삶, 좋아요!
더위가 몰려오는 7월 시원하게 보내세요^^

초딩 2021-08-06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앙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8-09 17:34   좋아요 0 | URL
^^*
행복한 한 주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08-0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자목련 2021-08-09 17:34   좋아요 0 | URL
건강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한 시간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8-0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8-09 17:34   좋아요 1 | URL
가을의 소리가 들리는 한 주 보내세요^^

새파랑 2021-08-06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 드려요 역시 👍

자목련 2021-08-09 17:35   좋아요 1 | URL
감사드리며, 저도 한다발의 축하를 드립니다^^

강나루 2021-08-0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8-09 17:36   좋아요 1 | URL
강나루 님도 축하드려요, 시원하고 즐거운 날들 이어가세요^^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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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251쪽)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월급으로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학자금 대출, 전세금 대출의 이자를 내고 월세를 내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이들 말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시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N잡러가 되는 사람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월급날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건 직무유기였다. 그게 뭐든 관심을 갖고 촉을 세우며 달려들어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티끌은 티끌일 뿐 한 방이 필요했다. 장류진의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속 마론제과의 입사 동기 다해, 은상, 지송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겨우 취업을 했을 뿐 나아지는 건 없었다. 동료나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니 인사평가는 매년 같았고 연봉도 제자리였다. 하루하루 버거운 일상, 화자인 다해에겐 은상과 지송과 만난 점심을 먹는 짧은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나와 같다는 동질감이 그들과 더욱 긴밀한 사이로 이끌었다. 누군가 인사평가를 높게 받았거나 나보다 잘 나갔다면 셋의 관계는 화해되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 직장 생활에서는 반드시 필요했다. 다행스럽게 셋은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다. 그래서 연장자인 은상이 ‘이더리움’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을 때 믿고 따를 수 있었다. 가상화폐가 뭔지도 모르면서 은상이 던지는 확신에 확신을 더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세 명의 여성은 지금 우리 시대의 대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본이라고 할까. 취업이 전부가 아닌 시대, 노력 이상의 운이 따라야 내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의 고민과 절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 ‘이더리움’의 등락에 울고 웃는 모습은 부동산과 주식을 향한 누군가의 열망과 포개어진다. 절실한 그들의 마음은 현시대의 흙수저를 대변한다고 할까.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인 ‘가상화폐’란 소재를 떠나서 가장 현실적으로 시대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소설 속 인물에 몰입하게 된다. 가볍고도 발랄한 위트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모래사막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달까지 가자’란 소설의 제목은 허무맹랑한 기대인지도 모르다. 하지만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갈 수 있는 세상을 열망할 수는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명백한 벼랑의 끄트머리였다. 크고 사나운 물결이 너울질 때마다, 험한 파도가 벼랑을 힘껏 때릴 때마다 그 가장자리가 조금씩 침식되었다. 내가 서 있는 땅의 경계가 자꾸만 깎이고 부서졌다. 돌가루가 디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게 내 눈으로 고스란히 보였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부서져 추락한 것들이 어디까지 떨어지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가 끝도 없이 떨어졌다. 땅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게 가장 두려웠다. (331쪽)


열심히 하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를 마주하는 건 서글픈 일이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그만큼 고통을 체득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다. 나가야 한다는 걸 알기에 자꾸만 시선을 돌릴 수밖에. 무엇에 동참해야 할까. 무엇을 놓치지 않아야 될까. 그리하여 시대를 읽는 일, 어떤 시류를 몸을 맡겨야 할지 수없이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두에게 잠시나마 신나는 상상을 선사한다. 독자의 욕구를 잘 파악한 장류진 작가의 영리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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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6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읽어서 리뷰보니 더욱 생생해요! 장류진작가님 정말 영리하게 잘쓰시는 듯 ^.^

자목련 2021-06-28 15:35   좋아요 1 | URL
공쟝쟝 님의 멋진 리뷰가 소설을 아주 잘 보여준 것 같아요. 가상화폐(에 관심 있는 있는 이들에게 아주 즐거운 소설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서니데이 2021-06-26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가상화폐가 뉴스에 많이 나오는데, 시기에 잘 맞는 소재 같습니다.
자목련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6-28 15:32   좋아요 2 | URL
네, 작가가 의도와 시대의 흐름이 잘 맞았다고 할까요.
이제 진짜 더위의 날들이에요. 서니데이 님도 시원한 오후 이어가세요^^

초딩 2021-07-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 님도 축하드려요^^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7-0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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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의 장편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좀 이상한 소설이다. 이상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묘하다고 할까. 그 이상함이 기억 속 시집을 펼치게 만들고 그 이상함이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그리움이며 사랑이다. 재밌고 기발하고 정신을 쏙 빼놓는 유머가 닿는 곳에 그것들이 있었다. 박상의 소설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는데 더욱 강력한 유머로 돌아왔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소설에서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뭐든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자신감과 순수함이 좋아서 나는 고양이가 될 거야.라고 따라 말해버렸다. 고양이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아, 요즘 나는 고양이에 꽂혀있구나.


“나는 시인이나 고구마가 될 거야.”

“그게 뭐야! 이원식, 네가 뭐가 되든 상관없는데 시인이나 고구마는 아니야.”

“왜? 뭐?”

“못 웃길 거야.”

“웃겨야 돼? 그리고 고구마가 안 웃겨?”

“시시해. 넌 이 좁아터진 지구의 뻔한 말장난만 이해하는데 만족할 수 있니? 나는 풍성한 우주의 언어를 이해할래. 그곳엔 스케일이 큰 유머 감각이 있을 거야.”

“흥, 시는 말장난이 아니야. 시아 우주를 더 많이 이해하면 어쩔래?”

“시끄러. 요리나 제대로 배워.” (89~90쪽)


소설은 좀 특이하다. 이상한 건 특이함과 같을 수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이 소설을 잘 읽은 건가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으면서 즐거웠고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으니 충분하다. 어쩌면 박상 작가의 바람이 그럴지도 모르니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요리사 이원식은 이탈리아 옆 삼탈리아에 도착했다. 한국의 떠나 낯선 섬에 그가 온 이유는 단 하나 조반니의 레시피 때문이다. 아니 그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번아웃의 현실이 아닌 낯선 곳으로의 도피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헌책방에서 유연히 발견했던 요리책, 주인이 시집이라고 말했던 책. 그 책이 과연 존재하는 책은 맞을까, 나의 의심은 시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찾는 여정에 동참하고 동행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이원식은 한국에서 유명한 요리 경연 대회까지 참가한 요리사였다. 마지막 결승까지 올라간 실력이었다. 요리사와 레시피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시라면 달라진다. 김밥 집을 하는 엄마의 영향이었을까. 화자인 나는 요리를 배우고 여러 스승을 만나고 요리사가 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듯 소설은 두 공간을 이어간다. 조반니의 레시피를 찾아 떠나는 삼탈리아의 공간과 요리사로 보낸 한국의 공간이다.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긴가 보다. 사람들에게 치여 한국을 떠난 화자에게 결국 위로가 되는 존재 역시 사람이며 그가 사랑한 시라는 걸 보면 말이다.


소설에서 가장 독특한 건 삼탈리아 사람들, 그러니까 이원식이 조반니에 대해 알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 모두 시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것도 죄다 한국시. 아, 우리의 문학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심보선, 최승자, 진은영, 신영배의 시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라니. 그러다 풀이 죽는다. 내가 모르는 시인의 시를 소설 속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규승 시인의 『끝』이라는 시집이 나는 너무 궁금해졌다. 그 끝이 알고 싶어졌다.


이것은 끝 이곳은 끝 태어날 때 이미 끝 세상은 그날 이후 끝 끝이

계속되는 끝 나는 끝 시작도 끝 끝없이 끝나지 않는 끝 (최규승「#297」, 『끝』, 244쪽)


화자가 찾아낸 조반니의 레시피를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랬다. 그것이 끝일까, 아니면 다시 시작일까. 혼자 생각했다. 누군가 이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소설이 아닌 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것 같다. 우리의 곁에 있는 시에 대해서. 알려진 시, 유명한 시가 아니라 우리가 몰라서 그 참된 진가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시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생은 찰나 같은 점들의 연속선이에요.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는 그 소스 코드에 가끔 인식되고 가끔 연결될 뿐이잖아요. 만약 그 가끔 오는 순간들은 우리가 놓친다면 인생은 정말 찰나가 되어버리죠. 훅 가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마는 거예요. 나머지 모든 것에 드문드문하더라도 그 가끔 오는 연결에는 항상 간절해야만 해요.” (287쪽)


사람들이 칭송해마지않는 고수의 삶도 마찬가지다. 원식의 스승이 전하는 말처럼 인생은 찰나 같은 점들의 연속선이다. 아, 이런 통찰은 언제쯤 가능할까. 살면서 수많은 위기와 고비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들. 숨은 고수는 우리 곁에 있다. 이원식의 스승이나 엄마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그들을 향한 애정과 시를 흠모하는 작가 박상의 마음이 전해진다. 어딘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박상이 그려낸 삼탈리아는 아닐까. 모든 걸 잊고 싶은 그대여 유머와 시심(詩心) 충만한 삼탈리아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를 펼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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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H를 만났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그녀는 먼 도시에 살고 있다. 먼 도시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나를 보러 왔다. 우리의 만남은 2016년 가을에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사이 서로에게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삶을 이동하는 일, 삶을 다시 정비하는 일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건 회복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한 바구니의 빵을 사 왔다. 밤이라 그랬는지 사람도 없었고 빵도 없었다. 늦은 밤에는 술을 마셨다. 아니, 술은 나 혼자 마셨다. H가 술과 커피에 대해 민감한 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제대로 몰랐다. 잘 모른다는 걸 알았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으니 더 좋았다. 내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 H는 사이다를 마셨다.


우리의 시간에는 말이 넘쳤다. 말이 둥둥 떠다니고 거실 바닥과 식탁 위에 말이 나뒹구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우리의 말들은 다양했다. 하고 싶었던 말, 주저했던 말, 고민으로 뭉쳐진 말, 모든 말들이 다 그곳에 있었다. 그 말들이 다 우리의 것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그랬을까. 아니, 나의 말을 모두 들어주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맑은 하늘과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며 사진을 찍는 H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감탄은 양이 적다는 걸 발견했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픈 몸에 대해, 늙은 몸에 대해 두려움이 아닌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그런 대화는 책으로 이어졌다. H가 영화로 보고 나는 책으로 읽은 『밤에 우리 영혼은』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말하면서 같은 작가의 『축복』도 좋았다고 추천했고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속 여성 서사와 황정은 소설에 대해 환호하면서 『백의 그림자』 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우리로 채워진 시간은 지나갔고 각자의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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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2 11: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밤에 우리 영혼은> 이 책 정말 좋더라구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영화도 있군요~! 친구와 책 이야기하면 정말 즐거울거 같아요^^

자목련 2021-06-23 09:22   좋아요 2 | URL
그쵸? 참 좋아요. 저도 영화는 몰랐어요.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하죠.
이곳 알라딘의 서재도 그렇고요^^

잠자냥 2021-06-22 14:1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자목련 님이 술 이야기 많이 하셔서(심지어 좋아하신다고 해서) 매우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글을 하도 정갈하게 쓰셔서 술은 입에도 안 대실 줄 알았던 1人.... ㅋ

자목련 2021-06-23 09:21   좋아요 3 | URL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ㅎ 이제는 저질 체력이라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고요.
잠자냥 님의 짬뽕과(맞나 모르겠네요) 맥주 사진을 넋놓고 바라보았지요. ㅎㅎ

coolcat329 2021-06-22 14: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하하 어쩜! 저도 이 글 읽고 이 분이 술을 드시네? 그것도 친구는 사이다마시는데 혼술을...참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ㅋㅋㅋ
맞아요. 글이 참 차분 정갈하셔서...드셔도 다소곳이 사케를 드실거같은데 맥주를 ㅎㅎ
의외의 모습 발견했을 때 더 호감도가 상승되시는거 아시죠? 😅

자목련 2021-06-23 09:19   좋아요 3 | URL
음, 제가 한때는 술을 잘(?) 마시기도 했어요. ㅎㅎ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6-22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전 이런 친구가 없는 거 같아요. 대화하고 나면 왠지 공허한 느낌.. 이건 제 문제겠죵?^^;;

자목련 2021-06-23 09:18   좋아요 2 | URL
너무 많을 말을 하면 공허하지요, 저도 그래요. 근데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요, ㅎ
H는 동생이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어요.
친구가 많지는 않고 소수의 소주한 인연을 오래 지속하고 싶어요.

하늘바람 2021-06-2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책속 한 부분 같았어요

자목련 2021-06-25 18:26   좋아요 0 | URL
ㅎ 감사해요. 하늘바람 님, 시원하고 환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