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이해인 지음, 이규태 그림 / 샘터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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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너는 나의 책, 나는 너의 책.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직 읽을 게 너무 많아 행복하다.

이런 글귀로 시작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친구에게』는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내 친구에 대해서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고 조용히 나를 집중시킨다. 진짜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귀를 기울인다.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내 친구, 보고 싶은 내 친구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책 속의 친구, ‘너’는 온전히 내 친구 같아서 마음이 벅차고 신난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까지 가득하다. 문자처럼, 편지처럼, 짧은 글 안에서 나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걸 느낀다고 할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와 조금씩 멀어지는 걸 느끼는 순간, 얼마나 속상하고 슬펐는지 모른다. 수업 시간에, 자율학습시간에 쪽지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군것질을 하면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나 남학생 이야기에 수줍고 부끄러웠던 순간들. 지금과는 다른 시절이기에 가능했다. 그 존재만으로도 너무 든든했다.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너는 늘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고, 나는 늘 괜찮다 괜찮다 하고,

그러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흐르는구나.

세월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 늙어가는구나. (26쪽)


함께 보낸 시간보다 이제는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낀다. 정말 세월과 함께 늘어가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건강을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다. 갑자기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냥 아무 바람도 기대도 없이 뭐든 말할 수 있는 존재. 친구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오늘은 호숫가에서 너를 생각해.

호수는 고요하게 하늘과 산을 안고 있고,

내 마음은 고요하게 너를 향한 그리움을 안고 있어.

물소리 하나 없는 침묵의 호수처럼

나도 너를 위해 고요를 배울게, 친구야. (56쪽)


어떤 일이 있어도, 설령 그것이 나쁜 일, 잘못된 일이라도 우선은 내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가. 이해인 수녀님의 목소리로 만나는 친구는 온유하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이 작은 책을 읽다 보면 나는 어떤 친구일까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 고집만 피우는 친구는 아니었을까. 내 형편만 봐 달라고 한 건 아닐까. 친구를 만나면 슬쩍 물어봐야겠다.


무엇을 부탁하기 전에 미리 챙겨주고

미리 배려하고, 미리 기도해 주는 너의 정성을

나는 따라가지 못하지만 조금씩 배워보도록 할게.

당연한 듯 받기만 해서 미안해.

늘 앞서가는 사랑 고마워. (62쪽)


봄을 기다리는 날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만나고 싶어도 만남을 미뤄야만 했던 시간들.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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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라서 놀랐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요양보호 센터에서 지내신 걸로 안다. 친구가 시어머니를 뵈러 올 때 그 도시에 내가 있을 때면 항상 나를 보러 왔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주 뵙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하던 친구를 기억한다. 그저 코로나 사태가 안정세로 접어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는데 들려온 소식에 안타까울 뿐이다. 직접 장례시장에는 갈 수 없어 인편에 조의금을 부탁했다.

다시 겨울의 한복판으로 질주하는 양 추위가 몰려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힘겹다. 기다림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듯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기다림을 안겨준다. 그 과정이 삶일 것일까.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일,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를 기다리고, 언제 도착할 거라는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버스를 기다리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이상하게 생각이 기다림으로 모아진다. 연휴로 인해 주문한 책을 받아 볼 마음에 기다리는 택배 상자, 급한 연락을 하고 답장을 기다리려 스마트폰을 매만진다. 일초의 기다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생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조바심을 내는 걸까. 오후에는 조카에게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겨 의향을 물어보는 연락을 했다. 빨리 보고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조카의 상황을 나는 알 수 없고, 조카는 내가 다시 연락을 해줘야 하는 상황을 모른다.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에 나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천천하게 나의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릴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 자리를 조카가 놓칠까 아쉬웠던 걸까. 조카가 하겠다고 응답도 하기 전에 나는 그런 아쉬움을 먼저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하고 날씨가 추우면 따뜻하게 입을 준비를 하면 괜찮다. 설령 우산을 챙기지 못해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음에는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으니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또 온다. 기회도 그럴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기고 준비를 해야겠지만 살다 보면 그 기회가 최선이 아닐 때도 많다. 사람도 그렇고. 좋은 사람을 기다리며 할 일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끝내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지도 모른다. 그럼 또 어떤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걸 내가 알면 충분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 그 순간에 내가 그것을 기다리며 그것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괜찮을 게 아닐까. 컵라면에 물을 넣고 끓기를 기다리는 몇 분, 전자레인지 속 즉석밥을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우리는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즐겁고 행복하니까.


연휴에 기다린 건 이런 책들이다. 노란 표지 때문에 더 읽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이제야 만난 루시아 벌린의 단편집, 무얼 버리는 걸까 궁금했던 시인 문보영의 책. 기다렸던 것들과 만나는 순간, 기다림은 끝난다.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기다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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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 - 행복한 삶을 만드는 17가지 질문들
미리안 골덴베르그 지음, 박미경 옮김 / 청미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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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더 행복해지지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남자들이 누리는 자유가 부러울까? 왜 다른 여자들과 나를 비교할까? 싫다고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어떻게 하면 가볍고 유쾌하게 살 수 있을까? 감정을 빨아먹는 흡혈귀에게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이 드는 것이 왜 두려울까? 나이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 (11쪽)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게 사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시간이 없어서, 부모의 기대 때문에,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용기가 없어서. 핑계를 찾자면 끝도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번쩍하는 때를 만난다. 죽을 고비를 넘겼거나 시한부 생을 선고받았거나 가족의 죽음이 그러하다. 이제는 과거의 나와 이별하고 새로운 나를 맞이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불행하기 위해 사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불행을 걷어차지 못하는가.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따져 물으며 답을 하기가 애매하다. 나를 위한 삶, 나를 돌아보는 질문들에서 한 번 찾아보면 어떨까? 『오늘부터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란 유쾌하고 통쾌한 제목의 책에서 그런 질문에 답을 해보자.


저자 미리안 골덴베르그는 브라질의 행복을 연구한 인류학자로 18~98세의 남녀 50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로 ‘행복 곡선’에 대해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은 어린 시절 행복했다가 점점 불행해지고 소위 인생의 바닥을 찍고 다시 나이가 들면서 행복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흔이 말하는 인생의 롤러코스터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연구는 테드(TED) 강연을 통해 유명해졌고 그로 인해 이 책을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 처음엔 브라질 여성 인류학자의 글이라 브라질 문화와 사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들의 고민과 행복을 향한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책을 통해 던지는 17가지 질문은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부터 인간관계로 인한 피로감, 배우자와 결혼생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우리가 한 번쯤 맞닥뜨린 고민과 문제들이다. 목차를 살피다가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신경 꺼!” 버튼을 아직도 안 눌렀다고?’란 질문이다.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느라 피곤한 관계를 이어온 시간들과의 이별을 위한 처방전이라고 할까. 57세의 한 교사는 남편과 헤어지고 작은 버튼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진짜 신경 꺼, 버튼을 느끼고 경험한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경 꺼 버튼을 이제 맘껏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누군가 듣는 상대가 있지 않아도 혼잣말이라도 신경 꺼, 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후련한 기분이 든다. 저자가 만난 다양한 세대가 느끼는 행복과 감정에 대한 솔직한 인터뷰도 무척 인상적이다.


말끔한 인생 정리는 삶의 모든 영역을 싹 정리해서, 더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 물건을 실제의 혹은 가상의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결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불쾌하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해롭고 과도하고 무익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죄다 없애겠다는 뜻이다. 사람과 물건의 중요도를 평가해서 우리의 행복에 꼭 필요한 사람과 물건만 간직하겠다는 뜻이다. (49쪽)


혈연과 지연으로 채워진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려운 문제다. 저자의 비유대로 우리의 감정을 빨아먹는 흡혈귀가 너무도 많다. 만날 때마다 신세한탄을 하며 부정적인 기운을 전달하는 지인,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하는 친척과 가족,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배우자. 이 글을 읽을 때 누군가 떠오른다면 그가 바로 기생충(흡혈귀)일지도 모른다. 완전하게 단절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65세의 의사처럼 무시하고 웃어넘기는 게 최선일지도. 


우리는 행복을 좇느라 진짜 행복을 놓치는 건 아닐까.‘더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란 질문에서 많은 사람들은 욕망을 표현한다. 독립할 수 있는 자금, 돈 많은 배우자, 성형수술 등 다양하다. 그것들이 충족되었을 때 정말 행복할까. 아마도 다른 욕구가 분출될 것이다.  저자는 행복에 대한 질문으로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물었는데 그 답은 아주 소소한 것이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서 가족들을 볼 때, 친구들과 축구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순간, 친구들과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마련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나이를 먹고 늙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늙고 병든 삶을 어떻게 견딜까 걱정을 하는 거다. 하지만 걱정과 근심만 할 수는 없다. 하루하루 주어진 날들을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 맘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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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와 행복 - 철학하는 삶을 살다
장세익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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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생각하면 학창 시절에 수업만 떠오른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모르겠다. 철학이 왜 필요한가, 속 시원하게 답을 들은 기억이 없다. 익숙하게 잘 알려진 철학자의 이름이 떠오를 뿐 철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우리는 왜 존재하며 산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만 커진다.


『독배와 행복』의 저자 장세익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금융과 벤처 기업에 근속하면서 그 분야에 전문가였던 저자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의 내면을 움직인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공부가 바로 철학이었다.


인류 역사의 한 획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삶의 공허함을 느낀다. 일상은 무너지고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는 사라졌다. 어쩌면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철학은 더욱 요긴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철학의 삶과 사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배운다. ‘독배와 행복’이란 제목이 이상했다. 독배와 행복은 대등한 관계도, 대립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듣고 아, 그 독배구나 싶었다.


가장 친근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란 말로 유명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 어디에도 소크라테스가 직접적으로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처가 악처라는 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흥미를 유도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동안 주장한 철학과 당시 아테네의 주류였던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대해 설명한다. 동굴의 비유로 설명하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며 현재 우리 시대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어 놀랍다. 동굴이 세상의 전부로 아는 이들에서 동굴 밖의 빛과 세상은 두려움일 것이다. 그 밖의 세상을 경험한 이가 진실을 알려줘도 동굴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지한 인간에게 지성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게 얼마나 험난한지 알려준다. 현시대에 우리는 교육을 통해 동굴에서 나오도록 도와줘야 한다. 획일화된 주입식의 지식 습득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영혼의 실물과 진리를 보는 능력을 길러주는 참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에 대해 정의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인간의 정의와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최종적이고 독립적이고 이상적인 단체가 바로 국가다. 국가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건 시민, 그러니까 국민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행할 때 국가는 완전체를 이룬다. 정의로운 국가가 되려면 정의의 가치를 잘 알고 판단하는 이가 필요하다. 한 나라의 대표를 뽑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확인한다. 국가를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바를 살펴보면 그는 철학자가 통치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권력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고 명예만 좇는 통치자와 부를 내세운 통치자를 통해 혼란스러운 시대를 우리는 경험했다.


철학 하는 통치자를 선출하기 위해선 우리가 철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 철학의 끝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당당하고 평온한 태도를 보인 소크라테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영혼과 육체에 대한 설명은 심신 일원론, 심신 이원론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육체로만 존재하는가, 육체와 영혼으로 존재하는가. 이 문제는 죽음 이후의 사후의 세계의 존재와 더불어 신의 영역에 대해 확장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저자는 자살에 대해 언급하는데 자살이 급증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과 마주한다. 불안과 고통스러운 삶을 멈추기 위해 선택하는 죽음과 행복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일, 바로 철학이며 이건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식물, 동물과 다르게 인간만이 삶을 사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두며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존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이에 필요한 게 철학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지식이 아니라 현상과 존재에 대한 근거를 찾는 일.


철학함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항상 있는 것은 아니고 문득문득 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가까이 있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철학함이라는 것은 가까운 듯하나 멀리 달아나 있고, 멀리 있는 듯하나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 인간에게 철학함이라는 것은 완전히 떼어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껴안고 있을 수도 없다. (150쪽)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은 진리에 대한 탐구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 존재할 거라는 의구심, 매일 바라보는 밤하늘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것은 우주론이 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세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옳은 듯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주장으로 우리가 아는 대로 지구는 돌고 있다. 한계를 극복하는 일, 너머를 상상하는 일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삶이 철학 하는 삶인 것이다. 그러니 철학은 단지 철학자에게 국한된 학문은 아니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도 철학이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철학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 말이다. 물질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지만 행복한 이는 많지 않다. 나의 존재에 대해,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고 영혼은 살찌우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순간 우리는 철학 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저자가 들려주는 솔직하고 진솔한 고백을 통해 철학적 생각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 책을 만나는 일도 철학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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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면 훌륭한 삶이라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분명 후대의 많은 이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그녀를 떠올리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일이 먼저 생각난다. 흔히 말하기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조금 읽었다.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읽을 때마다 완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과 삶에 더 가까이 더 깊게 다가가는 시간으로 말이다. 분명 그녀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다르게 강력하고 힘차게 다가왔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원한다는 건 여전히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에서는 네 편의 짧은 단편 네 편과 대표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런던 거리 헤매기」를 수록했다. 단편을 살펴보면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가는 「유산」은 결혼에 대한 시대적 관념과 그 안에서 여성 스스로의 삶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생각한다. 3장 안 밖의 짧은 소설「V 양의 미스터리한 일생」은 존재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다.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V양이 존재했을까. 우연하게 발견한 벽의 자국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벽에 난 자국」과 식물원이란 한정된 공간 그 안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큐 식물원」은 색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소설도 좋았지만 특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싶은 건 그녀의 에세이다. 그녀를 영원한 여성의 멘토, 시대를 거슬러 만나고 싶은 작가로 만든 글 말이다. 어렵지만 집중하게 만드는 글.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방」 중에서 )


버지니아 울프가 강연을 했을 당시에는 여성과 픽션에 대한 주제였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그녀가 말한 ‘500파운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돈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1920년대에는 여성에 해당된 주제였지만. 그 시대를 상상하면서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으로 연결된다. 글을 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전부였을 삶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가부장 제도에 매여 살았다. 문득 생각나는 두 명의 여성. 뛰어난 재능을 지닌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방식도 그렇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썼는지가 아닌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로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니 버지니아 울프가 가상으로 만든 셰익스피어의 누이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애통하기까지 하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 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자기만의 방」 중에서)


책은 어떻게든 육체에 적응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책은 남성의 책보다 더욱 짧고 더욱 응집되어야 하며,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장시간의 독서가 필요하지 않게끔 꾸며져야 한다고 나는 과감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을 테니까요. (「자기 만의 방」 중에서)


모두의 공간인 거실만이 유일하게 허락되었고 가사와 육아에 시달려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삶. 설령 무언가를 쓰다고 해도 비밀로 써야 했던 시대.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였다. 시간을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현재 여성의 삶이다. 차별과 평등은 사라졌을까. 온전하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사회적 제도는 마련되었을까. 보호받는 성이 아닌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나가야 한다.


「자기만의 방」의 강연을 통해 단단하게 접힌 마음은 「런던 거리 헤매기」를 만나면서 부드럽게 펼쳐진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소개했던 아름다운 문장들, 지금 이 계절과 너무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문장들. 시간은 저녁 무렵,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겨울에 샴페인 색으로 빛나는 공기와 거리의 친화력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여름날처럼 그늘과 고독을 바라고 풀밭의 달콤한 공기를 갈망하며 시달리지 않는다. (「런던 거리 헤매기」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런던 곳곳을 거니는 즐거움에 빠진다.


한 권의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어려운 책이었지만 놀라운 발견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소설과 강연,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각각의 매력은 그녀를 더욱 알고 싶게 만든다. 그녀가 바라고 원했던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고민했던 흔적은 우리 곁에 남았다. 책장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격려로 다가올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세상은 언제쯤 올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에게 나쁜 세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지금,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야 할 이유다.


그녀에게는 아직도 싸워야 할 유령과 극복해야 할 편견이 많이 있습니다. 그 방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아직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구를 비치하고 장식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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