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 펫로스, 남겨진 슬픔을 갈무리하는 법, 202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이학범 지음, 김건종 감수 / 포르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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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가족이다. 가족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곁에서 모든 걸 지켜봐 주고 위로해 주던 대상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아플까. 개나 고양이와 살아가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존재가 무척 크다고 한다. 가족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위안을 준다고 한다. 나는 그 마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상실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상실의 시간이 오래갈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한 생명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순간은 진중해야 합니다. 마치 밀린 숙제를 처리하듯 해치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간적 여유, 심리적 여유를 더 가져도 됩니다. 그게 떠난 동물을 잘 기리는 방법이며, 나의 마음도 잘 추스르는 방법입니다. (82쪽)


우리는 아주 쉽게 말하는 실수를 범한다. 동물인데, 다른 동물을 입양하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너무 유난을 떨지 말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당사자만이 느끼는 아픔과 그리움을 모르면서 함부로 위로를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이학범의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아는 이들, 전혀 모르는 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어떤 면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지침서라 할 수 있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 삶의 질 평가표’, ‘특수목적견’(군견, 마약탐지견, 안내견 등) 과의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의사인 저자는 반려동물과 이별을 한 후 느끼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디고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가족이 아닌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주는 상실감이 정말 크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어떤 사례 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힘들어 일상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례 자도 있었다. 그만큼 당사자에게는 가족 그 이상, 아니 자신과 같은 존재였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병에 걸려 죽었을 때 더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고로 죽었을 때는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 안락사의 경우 잘 한 선택인가. 모든 이별에 후회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상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의 시선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 나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힘들었던 시기, 나는 제대로 위로를 한 게 맞는지.


우리는 반려동물의 모든 것을 엄마처럼 보살펴야 합니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고, 산책을 가고, 잘 곳을 만들어주고, 주사를 맞히는 등 이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해주지 않으면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늙었든 우리는 반려동물에게 말 그대로 ‘엄마’가 됩니다. (107쪽)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었다. 합법적인 사체 처리 방법 중 하나라니. 동물 병원에 의뢰하거나 합법적인 동물장묘업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최근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훈육에 대한 방송이 많다. 하지만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다룬 적은 없는 듯하다.


처음 반려동물을 키우고 죽음을 경험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추상적인 설명보다는 ‘아파서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먼저 떠났다’는 식으로 말해줘야 한다고 한다. 떠난 반려동물을 대신하는 자리에 비슷한 생김새의 동물을 입양하는 것 좋지 않다고 한다.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동물에 대한 법적 절차인 ‘동물등록 말소신고’도 부분도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남겨진 동물도 슬퍼한다는 사실과 함께. 상실을 느끼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같았다. 생각해 보면 항상 같이 먹고 때로 싸우고 놀았던 친구가 떠난 슬픔을 감당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동물도 감정이 있으니 당연하다.


여전히 힘든 마음을 정리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방법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슬픔 나누기’, ‘편지 쓰기’, ‘사진첩 만들기’, ‘자기 전에 사진 보기’, ‘기념품 간직하기’, ‘나무나 꽃 심기’, ‘펫로스 모임’, ‘전문가 도움’을 권한다. 반려동물과 살아가기를 원하면서도 잘 몰라서 주저하는 이들을 위해 유기동물 입양에 대한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 동물보호단체에서 입양, 사설보호소에서 입양하는 절차를 소개한다. 펫로스를 다룬다고 했지만 반려동물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누구나 아프고 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듯 동물도 그러하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정된 이별만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함께해서 행복한 기쁨을 맘껏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 반려동물들도 그걸 원할 테니까.


반려동물은 ‘슬픔과 아픔’보다 ‘기쁨과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프다고 슬퍼만 하지도 않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포기하지도 않죠. ‘순간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작은 기쁨에도 즐거워합니다. 우리도 반려동물처럼 남은 시간을 더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그게 네 발 달린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일 테니까요.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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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2-10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아주 많은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사는군요 거의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은 듯합니다 그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함께 살던 동물이 죽으면 마음 많이 아프겠지요 다른 동물을 만나라는 말은 쉽게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사람도 누군가를 대신할 수 없듯 동물도 다르지 않겠지요 그 시간이 지나면 다른 동물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바로는 어렵고 다시는 동물과 함께 살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네요 동물하고도 잘 헤어져야겠네요

자목련 님 음력으로도 새해가 오는군요 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2-10 16:08   좋아요 1 | URL
네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요. 책임이 따르기에 동물을 좋아해도 선뜻 용기를 낼 수 없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곁에 있던 존재가 사라지는 건 정말 슬픈 일이지요.
희선 님도 새해 복 믾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어젯밤에는 잠들기 전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열리지 않아 당황했다. 사용하지 않을 때 그곳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마지막 이용한 사람이 실수한 것이다. 물론 잠깐의 수고로움으로 문은 열렸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상황이 정리되고 침대에 누워 잠깐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행동들. 나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열쇠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열쇠 뭉치를 찾느라 서랍을 뒤적였다. 가족 중 하나는 열쇠가 있냐고 물었고 다른 누군가는 열쇠가 아닌 도구를 사용하여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열쇠 수리공을 찾았을까? 늦은 시각에 관리사무소에 사정하며 직원의 도움을 받았을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상황이 생각난다. 하나의 에피소드, 하나의 장면에서 확장되는 생각들. 소설도 이렇게 시작되는 걸까. 뜬금없다는 걸 잘 안다. 아마도 소설을 읽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고 있다. 아니, 책에 수록된 단편은 다 읽었고 에세이를 읽는 중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그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시작했을까, 궁금해졌다. 생각을 정리해서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좋은 글은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런 문장들이 그러하다. 연필에 대한 글을 보면서는 김지승의 『아무튼, 연필 을 떠올렸다. 


거리를 거닐고 싶은 욕구가 일 때는 연필이 좋은 핑계가 된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리는 “연필을 사야겠어.”라고 말한다. 이런 구실을 대면 겨울에 런던에서 생활하며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런던 거리를 헤매는 기쁨을 탐닉해도 무방하다는 듯이. 시간은 저녁 무렵,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겨울에 샴페인 색으로 빛나는 공기와 거리의 친화력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여름날처럼 그늘과 고독을 바라고 풀밭의 달콤한 공기를 갈망하며 시달리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 불이 커지면서 제멋대로 굴어도 좋다는 기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평소와 다르다. 맑은 저녁나절 4시에서 6시 사이에 집을 나서면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우리의 자아를 떨치고 익명의 도보여행자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공화국 군대에 속하게 된다. 홀로 자기 방에 있다가 나와서 그들과 어울리면 아주 유쾌하다. (「런던 거리 헤매기」, 중에서 )







버지니아 울프가 감탄했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집도 매력적이다. 여자만의 고유한 감각과 감성, 그리고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독자인 나 역시 여성이라서 그럴 것이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만 기억이 나는데 이 소설집을 통해 다양한 소설을 만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와 캐서린 맨스필드의 이력을 보니 같은 시대에 활동한 소설가들이다. 그동안 두 소설가의 제대로 이력을 살펴본 적이 없었다. 닮은 듯 다른 두 소설가의 소설.


나를 모르는 삶, 내가 살 수 없는 삶을 읽는다. 어떤 삶을 상상하고 미지의 공간을 그려본다. 소설이라 가능할 거라 여겼던 삶과 현실의 간격이 어느 순간 좁혀지고 하나가 되기도 한다. 연필을 핑계로 거리를 헤매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행은 나와 우리로 치환된다. 글을 읽는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다른 행위가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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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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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쌓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낡아가는 몸과 마주하는 일이란 걸, 근주는 근래 들어 절실히 깨달았다. (「우환」, 25쪽)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난 듯 반가운 문장이었다. 반가웠지만 서글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살아가고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한꺼번에 많은 생각들이 나를 덮쳤다. 늙고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진심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서러웠던가. 가장 먼저 온 노화는 눈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안과’에서는 노화라고 말했다. 아무 걱정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안과 검진을 가야 할 시기를 놓쳤다. 안내 문자를 받고 무시했다. 코로나를 핑계로. 하나 둘 늘어나는 흰머리를 신경 쓰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소설 속 인물에 이렇게 쉽게 동화된다는 건 좋은 걸까, 혼자 생각한다.


김이설의 연작소설집 『잃어버린 이름에게』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전혀 모르는 이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공간은 ‘신경정신과’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공간,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작정 털어놓고 싶은 간절함에 찾은 공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이라 선택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를 버티고 견디는 일상은 도처에 있다. 내가 아는 이도 그렇하고 누군가에게 나는 그곳을 추천하기도 했다.


소설 속 중년 여성의 삶이란 대체로 평온해 보인다. 그러니까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돌봄이 필요 없는 아이들, 자리를 잡은 남편, 이제는 잊었던 스스로를 찾아도 좋을 시기처럼 보인다. 그때 몸이 신호를 보낸다. 「우환」의 주인공 ‘근주’는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궁경부암 ’추가 검사, 암에 대한 두려움을 시작으로 천천히 그녀의 일상과 마주한다. 자궁경부암으로 투병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를 간병했던 시절. 결혼과 출산, 육아, 살림으로 이어진 현재의 삶. 그 과정을 지나온 친구와의 대화만이 작은 위안이다. 그리고 매일 삼키는 약. 「기만한 날들을 위해」속 ‘선혜’는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약을 먹는다.


우울증 약이라는 것이 그랬다. 잘 맞으면 일상이 평온해지고 가시 돋친 마음은 무뎌진다. 화날 일도, 노여울 일도, 짜증 날 일도 없었다. 분노나 수치심, 슬픔도 사라졌다. 부정적인 감정은 사그라들고 긍정적인 감정들만 살아남았다. 남편이 혈압약을 먹듯이 나는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감기약이나 비염약을 먹듯이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면 약으로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여기면 편했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 59쪽)


이른 나이에 결혼한 선혜는 23년 차 주부다. 군대에 간 아들, 대학생활을 위해 독립한 딸.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다. ‘빈 둥지 증후군’일까,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한 시간이 허무하다. 운전을 배우겠다는 자신을 타박하는 남편. 어쩌면 선혜가 정신과를 찾은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알게 된 남편의 추악한 행동. 이혼을 생각했지만 선혜는 이혼하지 않기로 한다. 남편과 싸우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누구에게 물어야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무기력한 날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미아」의 ‘소영’의 마음이 그러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이사 온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곳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을 남편은 알지 못한다. 남편과의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멀어진 것 같다. 사소한 것들에 울컥하며 감정을 자제하기 힘들다. 「미아」는 김이설의 이전 단편 「손」, 「빈집」과 겹쳐진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 소통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오후 3,4시만 되면 마음이 가장 힘들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안개가 짙게 가라앉고 그 안개 위에 발을 디디고 싶은 생각? 그렇게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시달릴 때가 많아요. (「미아」, 131쪽)


「경년」속 ‘나’에게 중년은 시련인 것만 같다. 고교입시를 위해 만난 학부모 모임에서 들은 아들의 이야기. 열다섯 아들이 여자아이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놀라운 건 스트레스 해소라는 아들의 입장과 그런 아들을 두둔하는 남편. 이제 초경을 시작한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복잡하다.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을 견디고 지나가야 할까.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 예고 없이 다가오는 몸의 변화는 더욱 힘들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갱년기를 겪는 걸까. 그건 마땅히 겪고 참아내면 되는 시간일까. 폭풍우가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석류 음료나 마시면서, 호르몬제와 여성 비타민제를 찾아 먹고, 어떻게든 친구들을 만나 맛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시기는 끝나는 걸까. (199쪽) (「경년」, 199쪽)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은 그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그들처럼. 김이설 작가가 불러낸 네 명의 여자, 우리는 그들 중 하나로 살고 있을 것이다. 사춘기를 통과했듯 건너야 할 시기, 지나야만 알 수 있는 인생의 과정. 그래서 더욱 이 소설집이 애틋하다. 주변의 언니, 동생, 내가 아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 엄마, 아내로 살아내느라 잃어버린 이름을 가만히 부르며 ‘괜찮냐’고, ‘너는 어떠냐’고 물어봐 주는 이들.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기댈 수 있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녀들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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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2
서유미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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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걸, 아무리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1쪽)


깊은 밤에 읽었더라면 나는 어느 순간 울고 말았을 것이다. 소설이 그렇게 슬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냥 어떤 서러움이 몰려왔다고 할까. 잘 모르겠다. 지난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때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제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유미의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처음엔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조금씩 일렁이는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나는 좀 울컥했다.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나만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어서, 그 마음의 끝에 내가 있는 것만 같아서.


소설의 주인공 ‘경주’는 매일 카페 ‘제이니’에서 구직활동을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때까지 취업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력서를 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경주는 카페로 나온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육아와 집안 일과는 구분된 경주 자신만의 시간 말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다니던 직장은 휴직에서 퇴사로 이어졌다. 지우를 낳았을 때는 바로 복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불안했다. 동료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선택은 경주의 몫이었다. 지우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경주는 다시 일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경단녀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경주는 카페 제이니에게 자신과 마주한다. 그러니까 때로는 과거 어느 시절을 돌아보고 현재의 일상을 생각한다. 아이와 남편이 있는 안온한 삶이었지만 경주는 우울했고 외로웠다. 지우가 어렸을 때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지났고 남편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남편 주원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했고 영화도 보았다. 하지만 한정된 주제였고 확장되지 않았다.


친구와의 관계도 그러했다. 모든 걸 공유했던 친구들과의 간격은 어쩔 수 없었다. 기혼자는 경주뿐이었다. 경주의 결혼 후 자연스레 뜸해졌다.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달라진 것일까. 경주는 종종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혼자라고 느꼈고 단톡방을 나온 후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우연하게 만난 대학 동기 J가 더욱 친근했던 건 지우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주가 취업에 대해 속상해하자 J는 경주의 고민을 가볍게 여겼다. 그러니까 배부는 투정을 하는 양으로 치부하며 가까운 곳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편의점, 마트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내밀한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던 J와도 멀어졌다.


경주는 자신의 이런 마음들을 카페 제이니에서 정리했다. 처음에는 구직 활동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곳은 안식처였다. 카페 제이니가 특별했던 건 카페 사장이 선택한 음악과 그녀에게 전해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카페의 세심한 소품에서 경주는 과거 자신의 취향과 만난다. 점점 더 그녀가 궁금했고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고 자신의 모든 걸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카페 제이니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아쉬움은 커졌다. 경주가 결혼으로 인해 단절된 건 경력과 사회적 활동만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자신감과 경주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무너졌다. 카페 제이니는 경주에게 새로운 통로처럼 보였다. 그건 세상과의 소통이 아니라 경주 자신과의 소통이었다.


경주는 자신이 두 달 동안 시간을 보냈던 카페를 새삼스레 다시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지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고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지만 여기서 보낸 한 시절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건 분명했다. (160쪽)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경주의 생각과 감정의 기록은 중요한 일기처럼 다가온다. 그 일기는 경주가 쓴 것이지만 동시대의 수많은 경주가 쓴 것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경주라는 걸 안다. 소설 속 경주의 삶이 그려본다. 그녀의 하루가, 크게 변화 없는 그녀의 표정이, 그녀의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들이, 그녀가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 선명해진다. 삶이라는 긴 여정의 어느 시절과 이별하고 잠시 멈췄고 다시 이동한다. 목표를 정해둔 건 아니다. 다만 후회와 미련은 접어두고 나아갈 것이다.


#현대문학 #핀시리즈 #핀소설 #월간핀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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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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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봄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法師)다. 휘늘어진 버드나무 둥치에 털썩 주저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 (「달에 울다」9쪽)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달에 울다」의 시작이다. 달과 갈대, 법사의 모습을 묘사한 병풍. 그리고 그 병풍을 바라보는 화자는 열 살 소년이다. 강렬한 아름다운으로 잘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한 편의 서정시 같았고 독자를 소설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녔다. 소년이 사는 산골마을, 사과나무가 가득한 골짜기, 소년과 한 몸처럼 지내는 늙은 백구, 그리고 소년을 미혹하는 소녀 야에코.

야에코의 아버지는 촌장의 곳간을 털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었다. 어떤 이유인지, 왜 그들은 야에코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가장 앞장선 이가 소년의 아버지. 하나의 사건으로 앞으로 소년과 야에코의 관계는 결정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가 병풍의 풍경이 바뀌고 화자는 성장한다. 그러니까 계절이 달라지면 열 살 소년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이 된다. 자연이 사과를 재배하는 마을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누군가는 마을을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운 문물에 빠져든다. 오직 소년만이 부모님과 함께 그 자리, 그곳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다. 소년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감정, 사랑, 욕망은 때로 솔직하게 때로 거칠게 드러난다. 소녀 야에코를 향한 마음, 아버지에 대한 분노.


여름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산기슭에 걸린 초승달, 천지에 무성한 초록 풀, 그리고 거지 법사다. 높다란 바위 머리에 앉은 법사는 흠집 많은 비파를 여인처럼 끌어안고 격렬하게 술대를 치며 은은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달에 울다」, 34쪽)

여름은 병풍의 모습처럼 생동감 넘친다. 스무 살의 청년도 그러하다. 야에코와의 관계는 깊어가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생긴다. 아버지를 잃은 야에코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사과농사를 짓는다. 야에코네 사과는 달고 맛있다. 야에코와 화자는 사랑을 나누지만 결혼을 하지도 함께 마을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가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 그리고 거지 법사다. 흠집 투성이 비파를 등에 멘 장님 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매고 있다.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달에 울다」, 67쪽)

세상은 변했고 작은 산골 마을은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마을의 최고 권력자였던 촌장도 약해졌다. 화자의 진정한 벗 백구도 죽었고 야에코의 어머니도 죽었다. 야에코와의 사랑도 끝났고 그녀는 비누 공장에 나간다. 나만 오롯이 산골 마을에 남아 사과농사를 짓는다. 야에코에게는 아이가 있고 그녀는 마을을 떠난다. 그녀를 배웅하는 건 나의 몫이다.

겨울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잘 닦인 겨울 달, 얼음과 가루눈에 갇힌 산정호수, 그리고 거지 법사다. 자신이 파낸 볼품없는 눈 동굴 속에 앉아 있는 법사는 얇은 누더기를 걸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낮에도 여전히 팽창을 계속하는 얼음의 비명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달에 울다」, 92쪽)

마흔 살이 된 나에게 남은 건 사과나무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차례로 돌아가셨다. 혼자 남은 화자 그의 쓸쓸함이 전해진다. 마을을 떠났던 야에코는 돌아왔지만 눈 속에서 죽은 그녀를 발견한다. 상징과 은유로 채워진 소설, 인간의 심연과 고독을 병풍 속 법사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니까 법사는 곧 화자인 것이다. 삶은 이처럼 허무한 것일까.

「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검둥이를 데리고 고향인 M 마을로 돌아온 화자는 직장을 잃었고 가족과 헤어졌다. 심지어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는 건 아니다. 쇠락한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화자는 모든 걸 버리려 그곳을 찾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욕망과 마주한다. 홀리듯 들리는 피리새의 소리. 어린 시절 집집마다 조롱을 매달았던 기억.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마을을 헤매다 노인을 발견한다. 너무도 잘 차려진 밥상과 피리새. 화자는 피리새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노인에게서 강제로 빼앗는다. 그 노인에게 딸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빨간 하이힐을 신은 딸이 노인을 돌보고 화자에게서 다시 피리새를 가져간다. 노인에게도 피리새는 중요했다. 피리새는 「달에 울다」속 사과나무 같은 존재다. 삶의 이유가 되는 존재.

생각해 보면 겁에 질려 살아온 40여 년이었다. 잃는 게 두려워 분투했음에도 나는 차례차례 잃어만 갔다. 그러나 나는 많은 것을 잃었기에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나에게 눌리어 숨이 막혔다. (「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 151쪽)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묘한 전개. 환상을 통해 화자의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빨간 하이힐의 여자를 미행하고 마을의 온천에서 노인과 마주하고 혼잣말을 하는 화자. 그가 정말로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니,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채우려 해도 결국엔 공허만 남는 게 삶이라는 사실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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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너무 좋네요! 마치 한폭의 동양화가 머리속에 그려 집니다!ㅎ 즐거운 한주되십시요!

자목련 2021-02-02 16:05   좋아요 2 | URL
계절따라 묘사한 동양화를 생각나게 해요. 그 부분이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어요. 막시무스 님 포근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