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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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좋은 사랑을 했다는 증거다. 아픈 장면, 속상한 장면이 떠오른다 해도 사랑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에는 오직 그에게만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을지도. 설령 시간이 지나 그 순간을 후회하고 삭제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 소설을 생각하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생각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는 그런 사랑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부적절한 관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관계, 이별을 예감하는 사랑.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마도 그건 다나베 세이코라서 그런 것 같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달콤한 말들을 이어가는 대신 솔직한 말과 행동, 후회 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에 만났던 그런 느낌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나의 시선과 시대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대 20대 후반의 여성에게 결혼은 그저 선택이고 이른 결정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 등장하는 자매의 마음은 그래서 살짝 이해하기 어렵다. 동생의 결혼에 대한 언니의 마음. 디자인을 배우고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동생의 결혼 선언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동생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연애에 대한 동경을 하는 언니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역시 다나베 세이코라고 해야 할까. 그런 면을 나는 좋아한다.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잡아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랑에 빠져 행복하지만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눈이 내릴 때까지」는 그런 이야기다. 제목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눈이 그치면 떠나야 한다는 걸 아는 것처럼. 소설 속 여자가 만나는 남자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는 걸 알기에 매 순간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죽는다 해도 더 바랄 게 없다는 주인공의 마음처럼. 그런 남자가 있는 줄 모르고 여자의 언니는 결혼을 위한 남자를 소개한다. 어쩌면 눈이 그치고 여자는 그 남자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지 않을까. 다나베 세이코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집에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하지만 단연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최근에 한지민과 남주혁이 주연한 한국판 리메이크도 상영 중이다.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장애인 조제와 대학생 츠네오의 사랑 이야기. 뻔하지 않은 사랑이라서 더 아름답고 더 고결하게 남은 사랑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제에게 다가온 츠네오. 처음 츠네오에게 조제는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츠네오는 점점 조제에게 빠져들었고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51쪽)


조제가 가고 싶었던 동물원에 가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고 싶었다는 조제의 말은 가장 완벽하고 황홀한 고백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고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이며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과 겹쳐진다. 한지민과 남주혁이 표현한 조제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의 끝에 조제가 홀로 남더라도 행복한 조제였으면 한다. 조제는 충분히 그럴 거라 여겨진다.


물고기와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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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2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좋아도 그 시간이 지나고 그 사이가 끝나면, 많이 다를 듯하네요 그래도 그런 시간을 좋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잊고 싶을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 그런 마음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자목련 2020-12-29 15:29   좋아요 1 | URL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는 게 좋겠지 싶어요. 상대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ㅎ
날씨가 많이 추워지네요. 건강 챙기시고 연말 잘 보내세요^^

- 2020-12-3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래 전 본 이 영화 인생영화라고 좋아했는 데ㅡ 책은 찾아볼 생각도 못했어요. 한지민 남주혁이라니 ㅠ 한국판 조제도 보고 싶다.. 오늘이 하루 남았어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자목련 2020-12-31 10:08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의 인생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단편도 만나보시면 좋을 듯해요.
저도 한지민의 조제가 궁금해요!
공쟝쟝 님, 건강하고 환한 새해 맞으세요!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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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글쓴이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한다.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종종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한 일을 시점을 달리해서 쓰기도 하고 주변의 일을 변주해서 소설을 쓰기도 하니까. 허구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절대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키의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근에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기억이라는 게 항상 정확한 건 아니니까.


내게 하루키는 뭐랄까. 한때 대단한 존재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분하는 능력, 그러니까 어떤 소설은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낯선 여자와의 관계, 음악, 재즈, 술, 이러한 이야기는 살짝 식상하다. 일흔의 나이에 끊임없이 소설을 발표하는 그가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베개에」도 여지없이 비슷하게 전개된다. 이십 대 중반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녀가 쓴 단카집을 받아보고 그것을 담아두는 마음에 대해.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語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돌베개에」, 24쪽)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만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만남을 거부할 수 없다. 아니, 한 번이라서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은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한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을 다룬 「크림」으로 이어진다. 피아노를 잘 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에게 연주회 초대장을 받은 ‘나’는 그곳을 찾아간다. 많은 이들을 초대했을 거라 여겼지만 도착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여자아이의 장난에 놀아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쉬려고 들른 공원에서 노인을 만났고 그가 들려주는 말들이 특별하게 남는다.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 48~49쪽)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영화를 본 것과 야구 경기를 본 것에 대해 읽었기에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야구장에서 보낸 시간, 요구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했던 날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기발하고 기이한 상상의 서사보다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대단하다. 아마도 이런 게 작가의 힘일 것이다. 많은 것들을 함축한 ‘어떻게 잘 지내는가’라는 질문.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131쪽)


8개의 단편 속 일정 부분은 하루키의 경험과 기억이 아닐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엇갈렸던 인연을 떠올리며 그들과의 시간을 복기하듯 소설을 썼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표제작 「일인칭 단수」는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도 괜찮은 삶을 유지하는 나의 일상을 들려준다. 한 번씩 좋은 슈트를 입고 술집에 들어가 술을 주문하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 그리고 느닷없이 직면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나’.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상황와 만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잠시 마음이 주춤한다. 잃어버린 기억과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간 일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 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 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 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일인칭 단수」, 223~224쪽)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만족하거나 후회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를 딛고 살아가는 게 인생은 아닐까. 하루키는 그걸 아는 작가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이 만족스럽다는 건 아니다. 나의 시점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보편적 기대감을 생각하면 아쉽고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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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미세먼지 최악이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목련님 거실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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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크리스마스 ^.~


자목련 2020-12-27 17:16   좋아요 1 | URL
이런 다정하고 귀한 인사,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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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23쪽)


책상 하나와 침대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공간에서 그거면 족하다고 여겼다. 방이자 거실이었던 지난 집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공간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곧 마음은 바뀌었다. 내 공간에 책장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책장을 들이고 나니 흡족했다. 진짜 내 방, 내 공간이 생겼다고 느꼈다. 책상과 책장, 정리는 엉망이지만 방 안에 들어오면 편안해진다. 집을 떠올리면 춥고 어둡던 이미지 대신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집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공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말한다. 공간의 주인이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내 방이 있는 친구와 언니의 방이었다. 그때는 방의 주인이 되면 그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공간이든 관리와 책임이 따른다. 그건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대구시 중구 북성로의 옛집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대가 함께 살아온 시절을 시작으로 집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집의 사회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집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삶의 형태, 이동하는 삶의 궤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족함이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원했던 서울,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꾸미고 수리하던 시간을 지나 동반자를 만나 함께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까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나온 공간을 채운 삶을 말한다. 나와는 다른 과정을 견디고 겪어온 삶이지만 이상하게 모두 그 집을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다른 공간에서 내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각 퇴근할 때마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던 기억,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오르는 아파트 공사를 보면서 허탈했던 기억,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원했던 기억들이 겹쳐졌다.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없다는 생각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간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30쪽)


공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질문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가족 구성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 부엌, 화장실, 베란다에 대해서도 자신의 공간이라고 여길까. 저자의 경험처럼 나머지 공간은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엄마에게는 정작 아무 공간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공간의 이동은 곧 삶의 이동이다. 그래서 원하는 공간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 애쓴다. 공간을 누구와 보냈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소중한 이와의 기억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면 특별한 장소가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간을 점유하고 삶을 이어갈 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속 공간에 대한 사유는 감동을 안겨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쪽)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절망, 좌절, 슬픔, 이별, 애도를 집이라는 공간이 지켜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로 존재하는 걸 말이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감추고 싶은 표정을 바라보는 존재로 있었기에.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이라면 자신의 공간(그곳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크기이든)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삶을 복기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이다.  나와 이어진 공간과 소중한 이들에게도.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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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책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장바구니 속으로 ~@@
주말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고 따뜻하게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21-01-0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포근한 월요일 보내세요^^
 


처음엔 오른쪽 귀가 가려운 정도였다. 그랬던 게 귀가 아프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마스크를 쓰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의사는 무척 심각한 상태라며 나를 혼내는 투로 진료를 했다.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조심하라는 말을 놓지 않았다. 항생제 주사와 약이 처방되었다. 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한동안은 약에 취한 것처럼 잠을 많이 잤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길게 이어졌다. 외투를 챙겨 입을 정도의 계절까지 나는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해야 한다. 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나의 귀, 그러니까 고막을 보여주었다. 나의 일부지만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나의 고막을 화면을 통해 마주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아픈 몸을 달래며 하루하루 생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뭐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귀가 아픈 정도인데도 심신은 무너졌다. 다른 누구를 챙길 여력이 남지 않았다. 정말 나만을 위한 날들이었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내게는 나를 위한 마음이 필요했고 존재했다. 이주란의 소설은 나에게 그런 마음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 단편집은 이런 이야기다,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책이다. 이주란은 그냥 속삭이듯 말한다. 툭 던진다고 할까. 발단, 전개를 생각하고 그냥 한 부분을 잘라 말한다. 이 단편집 전체가 그러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가 이제껏 어떤 문제든, 어떤 상황이든 너무 열심히 설명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너도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근데 우리는 너무 그렇게 살아왔다. 아픔도 슬픔도 감추거나 숨기거나.

이렇게 말하면 이주란의 단편들이 맑고 명랑하고 유쾌한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엄마를 잃은 조카, 그런 조카를 돌보는 이모와 할머니.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 죽은 동생의 공간에서 동생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 불안한 현실, 고단한 월세방의 일상처럼 힘겹고 지친 일상이다. 그런데도 소설 속 화자가 던지는 말들이 이상하게 힘이 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게 악착같이 살아온 시간과는 다르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냥 소소한 일상들을 누리면서 말이다. 조카의 친구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어버이날 꽃을 사면서 그리운 이를 생각하고, 항상 잘 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사는 대신, 힘이 들다고 말하며 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면 어떠냐고. 소설 속 화자의 말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다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들과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이상한 마음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해서 그런 것 같은 미안함. 나는 이제 그런 미안함을 줄이며 살 것이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처럼.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한 사람을 위한 마음』, 134쪽)

그러다 이런 소설을 읽으며 갈팡질팡한다. 권여선의 단편집『아직 멀었다는 말』에서 마주한 인물들이 너무 힘들게 살기 때문이다. 나는 귀가 아파서도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데 권여선이 들려주는 삶의 고통은 그 강도가 너무 세다.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다. 가족들이 남긴 대출금을 갚느라 TV 시청료까지 아끼며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삶이 가혹하다. 혼자 남았다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월급을 고스란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그뿐인가, 권여선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고단한 삶이 어떤지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여준다. 계약직 교사에게 재계약이란 희망, 그 희망이 이뤄져야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돌볼 수 있으니 학교 측에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바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때때로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얼마나 길고 지루할까. 그래도 끝은 아니니까 더 힘을 내야 할까. 그러니 ‘아직 멀었다는 말’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또 나는 그들에게도 그들을 위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를 위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돌아볼 때 코로나19의 공포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픈 귀를 달래며 지낸 2달여의 시간도 기억할 것이다. 거대한 공포 속에서 나의 작은 통증도 중요하니까. 살아 있으니 살아내야 한다고, 이런 말들을 자주 꺼내는 한 해였다.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군가에는 나도 그런 대상이었을 거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이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겹다. 아픈 주사를 맞으러 왔지만 코가 줄줄 흐르고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발을 흔들려 엄마나 아빠, 할머니에게 종알종알 말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된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괜찮아진다. 올해의 일상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한지혜의 산문집『참 괜찮은 눈이 온다』처럼. 아주 작은방이 집이었던 시절을 시작으로 단칸방, 철거민, 임대 아파트에서의 복닥거리며 살아온 이야기,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송별회 자리에서 부른 노래,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으로 위로를 받은 순간, 식물인간으로 긴 시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걸 느낀다. 우리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된다. 실패의 기억, 아픈 일상, 가족과의 이별, 삶의 전반에 대한 한지혜의 담담한 단상은 그 자체가 일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전한다.

지겹고 힘들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조금 달리 보인다. 귀의 통증이 사라지니 나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있던 밤을 잊었다. 어느새 다시 일상으로 회복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새벽을 생각한다. 너무 아파서,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깨우지 않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잘 한 일 같다. 그 몇 시간 차이로 나의 상태가 극명하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모든 게 나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좋은 일도 아주 좋지는 않았고, 나쁜 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64쪽)란 글귀처럼. 그러니 겸허하게 달라진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성공한 삶이 아니라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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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12-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을 읽으면 위로가 참 많이 됩니다*^^* 저는 요즘 거절못하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보단 잘 거절해 보자란 맘으로 살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 가슴에 와닿습니다 ~

자목련 2020-12-16 09:10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이렇게 귀한 댓글에 힘이 납니다. 거절, 정말 어려워요. 우리에게 거절의 힘이 필요하네요.
차가운 겨울, 그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요.^^

scott 2020-12-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것 아닌 증상 자각하지 못한채 살아가는데 그래도 치료 받고 회복중에 계시니 다행입니다
자목련님, 건강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참 괜찮은 눈이 온다 ]

자목련 2020-12-16 09:13   좋아요 0 | URL
아침을 포근하게 열어주는 말씀 감사해요. 별것 아니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계속 귀를 생각하고 관찰합니다. 의사 말대로 제가 의사도 아닌데 말이에요. ㅎ
이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삶이 한결 깊어질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
 


 일기예보는 맞았다. 지금 눈이 내린다. 그런데 눈송이가 너무 작다. 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쌓이거나 하지 않았다. 이제 진짜 겨울 속으로 들어왔다. 진짜 겨울이라고 쓰고 보니 지금껏 내가 썼던 겨울은 가짜 겨울이냐고 겨울이 따지는 건 아닐까. 아무튼 눈이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눈이 온다는 걸 알았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자꾸만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쌓이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다. 쓸데없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눈송이가 되어 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던 때가 기억난다. 추운 겨울이었고 나는 어렸다. 아마도 엄마에게 심하게 혼이 난 기억이다. 밖으로 나왔지만 마당을 서성이는 게 전부였다. 아파트에는 놀이터라도 있지만 한적한 작은 시골 동네에는 그저 산과 들이 전부였다. 사춘기는 아니었고 그보다 좀 더 어린 나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심각했을 것이다. 순간의 마음은 그 순간에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니까.


 어른이 되고 어느 겨울에도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시골 집은 아니었다. 전후 사정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때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디로 갔냐고? 결국엔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안온한 공간, 집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마구 쏟아진다. 곧 쌓이겠다. 밖으로 보이는 집의 지붕 위에 눈이 쌓인다. 무서운 기세로 내린다. 불과 20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얼마나 많이 내리고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녹을 것이다. 눈이 녹고 사라진 뒤에도 눈이 내리던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내리는 아침, 이런 시집을 읽는다. 세상에나 이런 제목인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이규리 시인의 『당신은 첫눈입니까』. 우연을 가장한 아침의 시다. 제목 때문에 구매했는데 이제 겨울의 시집이 되겠다. 겨울에 펼쳐보는 시집. 






 눈이 주는 감성은 묘하다. 멍하니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생각도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 비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눈과 비는 다르다. 눈을 맞는다. 이상하게 그래도 될 것 같다. 물기를 품은 눈이니 눈물을 맞는다고 할까. 눈물을 맞는다. 아프지 않게, 슬프지 않게 눈물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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