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조금 지쳤다 - 번아웃 심리학
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아웃’에 빠진 사람은 자신에게 번아웃이 온지 모른다. 휴식하고 재충전해야 하는데,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니 치료의 시작도 없다. ‘내가 번아웃이라고?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자신을 속인다. 휴식할 시기임을 인정하고, 마음의 재활을 위한 긴 여정을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데 도리어 억지를 부리며 집착한다. (246쪽)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월요병이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증상일 것이다. 하루만 더 쉬면 좋겠다는 생각,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결근을 해버릴까, 어디서 돈다발이 떨어지면 좋겠다, 등등 이런 생각이 출근을 시작해서 일터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일은 그런 것이다. 생계를 위한 직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고 코로나19시대에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말에는 답할 수 없지만 오늘도 수많은 직장인들은 퇴사를 꿈꾼다. 어쩌다 보니 퇴사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박종석의 『우린, 조금 지쳤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랬다. ‘번아웃 심리학’이란 부제에서 짐작하듯 이 책은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다. 정신의학과 의사가 알려주는 처방전이라고 하면 좋을까. 그러나 개인마다 번아웃의 강도가 다르니 보편적인 처방전이 더 맞겠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번아웃은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과도한 훈련에 의하거나 경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여 심리적ㆍ생리적으로 지친 상태’이며 번아웃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바빠서, 일이 많아서, 일이 좋아서 일에 몰두했지만 결국엔 다 타버리고 마는 상대.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아니야라고 했던 이들도 책 속 번아웃 증후군 체크리스트를 보면 달라질 것이다. 인생에 대한 회의, 자신감 하락, 출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면 당신도 번아웃 증후군이다. 나의 상태를 파악하면 그에 따른 대책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워라밸을 이루기 위한 대원칙을 소개한다.


첫째, 균형은 항상 깨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지 말자. 필연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는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회복력’과 ‘유연성’에 집중하자.


둘째, 모든 면에서 100점을 목표로 삼지 말자. 일이든 취미생활이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밀어붙이는 순간 워라밸은 무너진다. 70점이든 80점이든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절충점을 찾자. 자신의 삶을 100만큼 채워나가는 것보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여백을 찾아내 또다시 자신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오늘 틀려도 내일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자.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말자. 당신 인생은 오로지 당신 것이다. (36쪽)


나 스스로가 의도적으로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좋은 처방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 효과를 볼 수 없으니까. 물론 마음이라는 게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를 점검하는 시간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번아웃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준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의사가, 그것도 정신과 의사가 번아웃 증후군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니 그의 경험에 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병원 출근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어떤 목표도 목적도 없이 지낸 시간, 그때 자신의 마음이 어땠는지 말이다.


번아웃에 빠지면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와도 멀뚱히 쳐다보다가 놓치기도 한다. 가계약금 계좌이체를 하면 되는데 몇 번이나 미루고 부동산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이성적인 생각에 기인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냥 출근하기 싫고 전화받기 싫고 그 어떤 생각을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조차 귀찮고 우울했다. 결국 나는 집을 사지 못했다. (59쪽) 


세상에나, 이런 탄식이 절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저자 역시 그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친구와 형이라고 했다. 그들은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어떤 조언이나 질책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 힘들었겠다는 말, 그게 전부였다. 우리 주변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존재한다면 그래도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느껴지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일도 나쁘지 않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일상에서 필요한 마인드풀니스 호흡법과 요가를 추천한다. 마인드풀니스 호흡법은 1. 기본자세를 취한다. 2. 몸의 감각을 느낀다. 3. 호흡을 의식한다. 4. 잡념이 떠오를 때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인정한다.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참선이나 명상도 좋을 듯하다.


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직장에서 동료와 선후배와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인간관계는 어디서든 필수인데 나와 같은 생각과 공감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괜찮겠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의 사람을 만나면 정말 피곤하다. 저자는 이에 사례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어떻게 응대하면 좋을지 알려준다. 이 부분은 다른 심리학 도서와의 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편집성 인격장애, 분열성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연극성 인격장애, 강박성 인격장애, 의존성 인격장애, 등 다양한 성향과 장애를 통해 어느 시절 내가 만났던 동료나 상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주위의 누군가와 대입할 수도 있겠다. 알고 나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다스리고 나를 챙기는 일이다. 기존의 책이나 방송에서도 언급되고 익숙하게 들어왔겠지만 가장 먼저 나를 응원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 필요하다. 치료를 시작하는 일도 그 하나다. 지친 삶, 잠시 쉬어도 좋다는 말을 당신에게 들려주었으면 한다.


우리 내면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용감한 내가 숨어 있다. 꼰대 상사와 고객의 갑질, 직장 내 억울한 뒷담화, 과도한 업무와 야근, 쥐꼬리만한 월급 등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은 내가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또한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경력을 쌓아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대출금이나 빚을 갚기 위해 직장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계속 달리고 있는 우리 모두는 박수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209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11-02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저 위쪽 1,2,3에 다 해당하는데 왜 출근이 매일 매일 싫을까요? 저의 진정한 리즈시절은 은퇴후라고 매일 다지면서 출근 중입니다. ㅎㅎ

자목련 2020-11-03 15:41   좋아요 0 | URL
추운 겨울에는 더욱 힘들지요.
바람돌이 님의 진정한 리즈시절을 응원합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냥 그래도 된다고 여겼던 사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나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란다. 괜찮게 지속되는 일상이 누군가의 수고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 잊는다. 그게 그 사람의 본연의 임무도 아닌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다른 곳을 꿈꾸는지 묻지 않는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이름은 엄마이거나 언니이거나, 혹은 집안의 누군가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잊은 채 이모로 언니로, 장녀로 살아온 김이설의 소설『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속 화자 ‘나’도 다르지 않다.


“언니는 글을 쓰고 싶은 거지?”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걸 밝혔다. 티끌보다 더 작은 것이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안간힘으로 중력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쳐든 연하디연한 작은 싹과 같은 나의 희망에 대해서.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했다. (63쪽)


어느 순간 집안의 살림을 살고 있는 ‘나’. 재수를 했지만 대학에 가지 못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그런 나에게 글을 쓰고 싶은 거 아니냐고 물어준 동생, 다시 공부를 해보라고 말해준 동생이 고마웠다. 그러니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동생과 조카를 구해야 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동생의 인생은 다시 시작해야 옳았다. 엄마, 아빠, 동생, 모두 일을 해야 했기에 조카를 돌보는 일이 자신의 몫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두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은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 온전한 정성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3년을 넘겼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늦은 나이에 시 창작을 배웠고 등단을 위해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시를 쓰기 위해 시를 읽고, 필사를 하던 밤이 있었다. 연인도 있었다. 시를 배우고 공부하던 시절,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준 남자. 계절마다 안부를 묻고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 동생의 연애를 보면서 그가 생각난다. 두 아이의 엄마지만 젊고 예쁜 동생의 사랑을 지지하면서도 뭔가 화가 난다.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는다. 무엇보다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가 없다. 아니, 시를 읽고 필사를 할 여력이 없다. 두 아이와 일하는 동생에게 방을 내주고 거실이 나의 공간이 되었다.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시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나에게 시를 쓰는 밤은 도착하지 않았고 필사 노트만 두꺼워졌다. 엄마와 여동생과의 갈등이 조금씩 커졌고 나는 지쳤다.“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란 아버지의 말은 화자인 ‘나’에게 또 다른 ‘나’에게 격려이자 빛이었다. 그러나 고단하게 이어지는 하루하루, 그 어딘가에 내가 꽃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자꾸만 커지는 열패감을 걷어낼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다시 만난 연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집을 엄마와 동생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한다. 지난했던 시간의 낡은 빌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더 늦기 전에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일 년이든, 한 달 이든, 단 하루든,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딸에게 아이들은 어쩌냐는 엄마의 질문이 너무나 서글프다. 그래도 ‘나’가 뜻을 굽히지 않고 집을 나와서 방을 얻고 살아가서 기쁘다. 뭔가 대단한 걸 이루지 않더라도 설령 그녀가 시를 쓰지 못하더라도 잘 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오늘은 그래서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짙은 초록색으로 변한 이팝나무 이파리에 관해. 거짓말처럼 맑았던 그날 새벽하늘을 지나갔던 검은 새 한 마리에 대해서. 아무도 울지 않았던 그 밤에 대해서. 엄마의 꽃무늬 블라우스에서 맡아지던 나른한 살냄새와 동생의 품에서 꼬무락거리는 스무 개의 손가락과 스무 개의 발가락에 대해서. 그 손과 발이 잡아당긴 생의 끈질긴 얼룩과 여름 소나기에 대해서, 그 소나기 끝에 피어오르는 흰 구름에 대해서. 그 해의 열대야에 대해서, 깊고 오래된 골목길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운 사람의 그림자와 나의 눈물과 우리의 정류장과 모두의 무덤에 대해서. 서로의 체취로 속삭이던 노래와 지리멸렬한 계절에 속박되었던 오해와 피우지 못한 꽃과 기꺼운 약속과 작은 책상에 낡은 베갯잇과 차마 다하지 못한 희망과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하여. (171~173쪽)


온전히 나를 찾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루를 고스란히 그녀를 위해 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시를 통해서 그녀가 회복될 수 있으니까. 스스로 부족하다고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자책하지 않는 시간이 올 거라 믿으니까. 그녀가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채워가는 시간이 꽃으로 필 거라는걸. 그게 어떤 꽃이든 상관없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움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학위, 명예, 성공, 지적 성취감, 이런 거창한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끝에는 밥벌이가 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그다음은? 취업이 있다.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결과를 내고 그에 합당한 급여를 받는 일. 언어를 가르치고 언어를 배우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언어에 반하여 그 아름다움을 익히고 싶어서 어학당을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최소한 소통을 위해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타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속 어학당 학생도 그랬다. 취업을 위해 한국어학당을 찾았다. 불법으로 취업을 했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는 이들도 적었다. 그들을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 사이에는 못한 갈등이 발생한다. 당연한 일이다. 언어를 배우고 있지만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고학력자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으로 좋은 선생이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3월마다 계약서를 갱신하는 계약직, 시간 강사일 뿐이다. 『코리안 티처』는 H대 한국어학당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강사 선이, 미주, 가은, 한희 네 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학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학당 강사인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을 붙잡고 가르치는 건 둘째치고 어학당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강평(강의평가)도 높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아야 한다.


신입 강사 선이는 베트남에서 온 특별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진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생들의 고충을 알아주며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 말이다. 동료나 선배 강사, 그리고 책임강사와도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타 대학의 어학당에도 강의를 나가는 강사들 옆에서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학생들이 선이의 사진을 인스타에 올린 걸 확인하고 어학당에 알리고 개선과 해결을 요구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만 같았다.


그런 선이와 가장 다른 사람은 미주였다. 이미 8년차 강사였고 어학당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대체로 무시했다. 교재나 수업방식, 서류 업무에 대해 기본만 지키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이와 같은 입장이지만 당당했다. 학생들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 뿐이다. 대책 없이 200명의 베트남 학생들을 데려오고 어학당을 돈벌이로만 여기는 원장과 학교를 상대로 싸우고 싶었지만 미주 역시 참아야 했다. 이곳은 미주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니까.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이 을이고, 바로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은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평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 (121쪽)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어쩌면 인기 강사인 가은을 향한 시선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옷차림이나 외모에서도 자신감이 보였다. 가은은 항상 강평도 1위였고 강사들과 관계도 좋았다. 다른 강사를 의식하지 않았다.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 여겼다. 재계약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 학생과 동료에게 잘 베풀었다. 나중에 신입 강사 선이가 학생들이 올린 사진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놀란다. 가은은 학생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가은에게 이보다 좋은 직장은 없었다.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선이, 미주, 가은과 다르게 한희는 책임강사였다. 말 그대로 다른 강사와는 다른 위치였다. 겨울학기를 마치면 무기계약직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강평은 낮았고 임신 초기에 무리를 해서 쓰러졌다. 어쩔 수 없이 휴직을 선택한다. 그래도 아침마다 단체방을 통해 어학당 상태를 확인한다. 한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학당에서 베트남 학생들 대신 중국인 학생들을 데려오고 이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자 자원했다. 한희에겐 일이 필요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영국인 남자친구가 일을 그만두고 월급도 받지 못했다. 한희가 나서야 했다.


한희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간은 과거였다. 미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라고 현재를 끌어와서까지 미래를 확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한희의 의지와 예상은 늘 배반당했다. (221쪽)


네 명의 강사를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새삼 확인한다. 고학력의 여성 인력이 현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무참함이 전해졌다. 소설 속 그녀들뿐일까. 생계를 위해 일선에 나선 수많은 여성들, 기혼이며 아이가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부당한 일이 많을까. 현재를 지탱하느라 급급해서 계획을 세우거나 수정할 수도 없었던 삶이 여기 있었다. 넘어졌다고 주저앉는 게 아니라 일어서는 여성의 삶 말이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건 바로 한희를 통해 보여준 한국어의 미래 시제에 대한 것이다. ‘한국어’라는 단적인 표현이지만 삶의 미래를 제시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희에게는 미래 시제가 필요했다. 온전한 미래가 필요했다. 의지에도, 추측에도 기대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사실로 존재하는 미래가 필요해졌다. (중략) 한희는 의지 양태도 추측 양태도 아닌 시간으로 미래를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다. (223쪽)


무리하게 어학원에 출근을 해서 조산을 한 한희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미래를 떠올리며 다짐하는 부분에 나는 울컥하면서도 한희를 응원하고 있었다. 소설 속 네 명의 강사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명확한 미래가 다가오기를 희망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일하는 여성 모두에게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들이 살아온 아파트가 서 있었다. 아침 해가 잘 들고, 한희가 아끼는 고무나무 화분이 있는 곳. 이제는 그곳에서 아기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한희는 지금 아주 분명한 미래를 보고 있었다. (25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말의 늦잠은 사라졌다. 귀가 아프고 병원에 다니면서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그랬다. 늦잠의 달콤함은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 건강한 귀를 다시 찾는 건 어렵다. 꼬박 한 달 동안 약을 먹고 있다. 주말에 만난 의사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끝이 보이니까.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 나의 오른쪽 귀는 맑음은 아니었다. 투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불안은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통증도 없다. 그러니 종종 잊는다. 나의 귀가 아직 아프다는 걸 말이다.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처음 귀가 아파서 병원을 찾고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며 들었던 마음과 한 달이 지난 지금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먹는 마음은 같지 않다. 나아지고 있다는걸, 괜찮아지고 있다는걸,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내 귀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밥을 먹고 약을 먹을 때에야 확인한다. 아, 나는 여전히 귀가 아픈 사람이구나. 여전히 귀는 아직 회복 중이구나.


무엇이든 필요한 시간이 있다. 뭔가를 배우데 걸리는 시간, 일을 하는 시간,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양치질을 하는 시간. 짧게는 몇 초부터 몇 시간, 몇 날, 몇 년까지.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즐겁고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힘들다. 가장 공평한 게 시간이라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이는 많지 않다. 배우는 걸 생각해보자. 똑같은 교구, 교수가 아니라면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최고의 교재와 강사가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독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집안을 청소할 때도 최신형 청소기와 구형 청소기를 사용하는 건 다르니까.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다르다. 2020년의 시간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코로나19로 병상에 있거나 그들을 지키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20학번 아이들, 21학번을 준비하는 고3에게도 올해는 남다를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을 맞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낙담하고 지친다. 올 초에 가졌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 괜찮아진다는 다짐, 서로를 격려하던 웃음. 잃어버린 마음, 희망을 품었던 마음, 기대했던 마음, 그 마음이 필요하다. 따뜻한 차 한 잔,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책 한 권.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이 도착하는 가을이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0-10-27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 아픈 게 오래 갔지만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일 듯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 시간을 보낼 때는 시간이 안 가는 듯한데 지나고 나면 빨리 간 것 같기도 하죠 한해라는 시간도 그렇군요 시월 얼마 남지 않았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 자목련 님 앞으로는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지 않으면 아플 때 일을 잘 생각하지 못하기도 해요 다 그렇지 않나 싶어요 마지막까지 약 잘 드시고 잘 낫게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희선

자목련 2020-10-27 14:44   좋아요 1 | URL
네, 끝이 보여요, 근데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조심하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2020년도 2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희선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어디서 일하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 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무턱대고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업무가 쉽다는 생각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게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가쓰키 아마네의 『머지않아 이별입니다』의 주인공 시미즈 미소라의 일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는 대학 졸업반이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고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반도회관의 연락을 받는다. 원하는 분야는 부동산 업무지만 현재는 장례식에서 일하고 있다. 장례식장을 떠올리면 뭔가 슬픔이 몰려온다. 그 슬픔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되도록 가고 싶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가 장례식장이니까.


소설은 장례식장 빈도회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들려준다. 그러니까 미소라에게는 고객들의 사연이라고 할까. 미소라에게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하루 전 언니가 죽은 것이다. 그 언니의 영향으로 미소라는 죽은 자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미소라는 반도회관에서 특별한 죽음의 장례식을 담당하는 우루시바라와 함께 일을 진행한다. 우루시바라는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베테랑이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자실이나 사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죽음의 장례 의뢰가 많다.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 이가 마지막으로 분신을 통해서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이의 장례식, 임신한 채로 사고로 죽은 임산부의 장례식, 인해 아파서 제대로 뛰어다니지 못한 어린아이의 장례식, 병으로 떠난 남편을 부정하는 아버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결국 죽음을 맞은 아내,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다. 온전히 이별하는 일은 죽은 자와 남겨진 자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특히 미소라가 볼 수 있는 영혼에게는 더욱 그랬다. 비슷한 나이에 죽은 언니에 대한 기억이 더욱 컸다. 자신의 장례식에 가방을 들고 찾아온 임산부, 엄마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 미소라는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준다. 소설이니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만약 그런 이들이 가족이라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미소라 같은 이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이 세상을 떠났다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아. 이런 식으로 후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승화하는 수밖에 없지. 장례는 그런 자리이기도 해.” (40쪽)


우루시바라의 말처럼 장례는 가족에게 이별의 시간이자 마지막으로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을 집도하는 일이 참 대단한 일이라는 걸 느낀다. 소설은 장례식장의 업무와 죽음에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미소라의 경우엔 죽은 언니와 심장이 아픈 할머니를 통해 죽음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 동생을 무척 기다린 언니, 자신을 향한 애정을 무한정 표현했던 언니가 미소라가 태어나기 하루 전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할머니를 통해 듣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미소라는 장례식장에서 다양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선뜻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의미 있는 일이구나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해도 인간에게는 반드시 끝이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슬퍼하고 배웅하며 가끔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면면히 이어지는 슬픔의 감정은 시대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97쪽)


우리는 모두 안다. 죽음이 찾아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일은 되도록 미루려 한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란 제목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머지않은 시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그 머지않은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룬다고 해도 좋을까. 죽음을 만나고 죽음을 만지는 공간인 장례식장을 다룬 소설이지만 꺼림직하거나 무서운 기운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소설이다. 아마도 그건 떠난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면 아프고 슬프지만 우리 삶은 죽음과의 동행이라는 걸 알기에 이제는 그 슬픔도 삶의 힘이라는 걸 믿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0-10-23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많이 경험할 수록 (간접이 대부분이겠죠)그리고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록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 뿐아니라,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슬픔이 사라진데요. 죽음과 관련된 어느 책에서 읽었어요. 어쩌면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자목련 2020-10-26 09:55   좋아요 0 | URL
네,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합니다.
많이 쌀쌀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