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이상하게 밀린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평소에 무척 바쁘다거나 한 것도 아닌데. 주말까지 미루거나, 아니면 주말에 되어서야 집안을 돌아보게 된다고 할까. 이번 주일에도 대면 예배가 아닌 비대면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렸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도 했고 다른 일도 했으니까. 예배에 대한 신성함과 경배의 태도가 흐트러진 것이다. 다잡아야 할 마음이다.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한 제습기를 한나절 햇볕 소독을 하고 다시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다. 그 자리를 대신했던 잡동사니, 생활용품이 우르르 쏟아졌다. 하나하나 다시 정리를 하고 걸어두지 못했던 달력을 버리고 선반에서 잠들었던 액자를 꺼내 벽에 걸었다. 소소한 집안일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말려두었던 꽃다발은 과감하게 버렸다. 꽃잎이 부서지면서 쓰레기가 한가득.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제가 이렇게 사그라드는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워도 치운 것 같지 않은 집안, 우리 집만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읽을 것 같았던 책들도 정리했다. 끈에 묶고 보니 꽤 되었다. 좋아했던 작가의 소설인데,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리 대상이 되었다. 내가 한 말인데, 내가 쓴 말인데,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이 참 서럽게 다가온다. 지금이라는 기준, 그게 중요하다고 나를 다독인다.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도 있으니까. 아무튼 몇 권을 정리하고 이런 사진을 찍었다.





9월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 기억할만한 작가이기도 한 루시아 벌린의 에세이 『웰컴 홈』과 사회학자 노명우가 서점을 운영하면서 쓴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두 권이다. 현재로는 9월의 책이다. 아무튼 좋은 책이다. 제법 잘 어울리는 생감이다. 차와 빵, 그리고 책. 책과 책 사이에 다정함이 있다고 할까. 두 권의 책이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듯하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을지도 모른다. 9월의 맑은 하늘처럼 모두가 맑음이었으면 한다. 흐림이었던 마음이 천천히 맑음으로 변하는 그런 하루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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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자리는 정리할 게 많았다. 현관문을 열자 한가득의 쓰레기부터 식탁 위에 가득한 물건들. 도대체 왜 식탁의 기능을 망각하고 물건을 쌓아두는가. 침대 위에는 도착한 나를 기다리는 택배 상자. 모두 책이다. 떠나기 전에 받은 책, 내가 없는 사이 도착한 책, 도착할 날짜에 맞춰 주문한 책들. 잠깐 다녀오는 일정이 꽤 길어졌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다른 곳에서 보냈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가장 컸다. 아무튼 나는 돌아왔고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걸레질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했다. 내가 없는 사이 자주 사용하는 냄비의 뚜껑이 사라졌다. 언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라면을 끓이는 용도이니 남은 가족이 알 텐데. 아무도 모른단다. 아무튼 대충 정리를 끝냈다.

이곳엔 아직 여름의 흔적이 많다. 침대 이불도 얇고 가벼운 이불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곳은 조금 덥다는 것. 신기하다. 정말 좁은 나라인데 몇 시간 이동 거리로 기온이 다르다니. 9월 말까지는 이대로 갈 것 같기도 하다. 급하게 내려온 것도 아닌데 그곳의 정리는 조카 몫이다. 함께 지내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인다. 목욕탕 샤워기를 바꾸는 일, 장식장을 거실로 옮기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함께 지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음에 만나면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조카는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나는 컴퓨터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일을 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일을 마치고 늦은 귀가를 하던 목요일에는 지금쯤 집에 왔겠구나 혼자 생각했다.









이곳으로 오던 날엔 비가 왔다. 문단속을 하면서 창밖으로 내다본 배롱나무는 분홍 기운을 품고 있었다. 꽃으로 피어날까. 나에게 올해의 배롱나무는 이런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안녕, 나의 배롱나무. 잘 지내고 있어야 해’. 나의 인사를 들었을까. 너무 작아서 못 들었더라도 그 마음은 닿았을 거다. 


나를 기다린 책을 살펴보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는다. 그 사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도 반갑고 궁금했던 책을 먼저 읽은 이웃의 글을 읽는 일도 즐겁다. 한 권의 책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먼저 읽은 이가 보여준 풍경, 읽는 중인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책은 그렇게 나를 누군가와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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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1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의 글도 반갑네요.
:)

자목련 2020-09-19 15:37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의 댓글이 더 반갑지요.
맑은 날씨처럼 신나는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0-09-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책사이를 이어주는것도 결국엔 사람이네요 자목련님빈자리를 지켜준 가족들 모습이 따뜻하네요

자목련 2020-09-19 15:38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모든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이곳 알라딘도 마찬가지고요.

희선 2020-09-1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데서 지내는 거 잘 못하는데, 두달이나 다른 데서 지내다 오셨군요 조카분하고 사이가 좋고 편한 사이인가 보네요 집에 오니 여러 가지가 반겨주었겠습니다 다른 데서 편하게 지내도 집이 가장 편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건 저만 그럴지도... 자목련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0-09-19 15:39   좋아요 1 | URL
다른 곳이라고는 하지만 큰언니가 지내던 집이라 낯설지는 않아요.
종종 다녀오는데 최장 기간 지내다 온 것 같아요. 희선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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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없는 독립 서점 이야기,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도시가 부럽다. 무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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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2-02-07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방금 제 눈에 무진장이 젠장으로 보였어요. ㅋㅋ 제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든 건지 ㅋㅋㅋ 아니 근데 뭔가 문맥의 흐름상 젠장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저도 부러워요 무진장 😭😭😭

자목련 2022-02-07 12:54   좋아요 2 | URL
ㅎㅎ 맞아요. 젠장 부러워요~~
 
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신종원.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자의 소설. 나는 변화하는 소설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까. 문득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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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곤란한 감정 -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
김신식 지음 / 프시케의숲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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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실루엣이 아닌 흐릿한 이미지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모호함이 주는 끌림이라고 할까. 『다소 곤란한 감정』에 대한 첫 느낌이 그러했다. 곤란하다는 난감하고 불편하다는 말과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걸 모르고 살고 있다는 말일까? 이 책의 저자 김신식의 글은 문학평론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 책에 대한 한 줄 평을 감정 비평이라고 말해도 괜찮다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사회의 기준 같은 것에 그것을 맞추려고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어렵기도 했고 지루한 부분도 좀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런 종류의 글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감정에 대한 에세이 혹은 감정에 대한 분석 같은 것 정도만 익숙했던 내게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읽는 일은 마치 저자처럼 누군가 내 감정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 역시 난감해졌다는 말이다.


책은 모두 5부에 걸쳐 포괄적인 사회적 시류, 혹은 분위기를 다루며 그 안에서 섬세하게 감정을 짚어낸다. 1부 우울과 행복, 2부 차별과 혐오, 3부 사랑과 사랑과 사회학, 4부 감정과 공감, 5부 지식사회의 풍경. 개인적으로 1부 우울과 행복, 2부 차별과 혐오에 더 집중하면서 읽었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아니 개인적으로 내가 우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누군가 우울하다고 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를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과연 진짜 도움이 되는가. 우울뿐 아니라, 아픈 환자나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무조건 긍정의 마음을 전하려 애쓰는 일이 과연 진실된 것일까. 그런 생각이 이어졌다.

“당신은 한동안 정체 모를 상태에서 허덕이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당신의 일상은 그림 한 점이 된다. 사람들은 당신의 일상을 관람하다 아쉬운 구석을 찾아낸다” (47쪽)

이런 부분은 4부 감정과 공감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댓글을 통해 모두 상대의 상태를 공감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상대의 SNS 계정의 프로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여 짐작한다. 아름다운 꽃이나 풍경이었던 프로필이 갑자기 바뀌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 여기고 무조건 충고를 하거나 조언을 한다. 이런 감정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피곤한 일인지 아마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혼자를 견디지 못하여 고독을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은 아닐까.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면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

타인의 감정 상태에 이름 붙이기가 심해지면 어찌 될까. 당신의 하루. 본인의 감정을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자신을 잠시 내버려 두고 싶은 날. 그러나 누군가는 당신의 심적 상태마저도 어떤 감정이라며 이름 붙이려 한다. 감정에 관해 스스로 무無의 상황에 놓이고 싶은 싶은 시공간을 확보하기란 점점 어렵다. 감정에 관한 무의 상황도 특정한 감정임을 확인하려 드는 시도 때문에. (212쪽)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론이나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감정에 휩쓸리곤 한다. 그들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른 감정을 소유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사회라는 신을 숭상할 필요는 없겠다.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사회라는 신을 숭상하며 사회의 기분에 맞춰서 살아갈 신도일 필요는 없다. 사회‘신비’학으로서의 사회학이 존재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당신이란 신비를 당신 스스로 지키기 위한 몸짓들이다. 이러한 사회학은 당신을 구경꾼을 두 길 거부한다. 삶과 부대껴가면서 피어오르는 당신의 몸짓, 미화되길 거부하며 현실을 직시하되 상상력을 놓지 않는 당신의 감수성. 그러한 당신이 사회신비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직접 이뤄나갈 수 있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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