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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놀이 Spiel’와 ‘공간 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슈필라움’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 (6쪽)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몇 년 전부터 ‘힐링’이 삶의 목표가 되는가 싶더니 ‘욜로’로 이어졌고 최근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이 대세다. 나만 모르는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삶의 지향점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하면 맞을까.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도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운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 등장하는 ‘슈필라움’은 새로운 유행어가 아닐까.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12쪽)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은 먹고살기에 급급한 일상이 아니라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꿈꾼다. 그만큼 살기가 좋아진 것일까. 그것만은 아니다. 삶의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맞겠다. 지금 힘들더라도 나중에 괜찮을 거라는 막연함이 아닐 지금도 미래도 재밌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심리학자인 저자가 말하는 공간 ‘슈필라움’이 필요한 거다. 저자처럼 여수의 바닷가 횟집을 재정비해 화실로 사용하거나 작은 섬을 사서 작업실을 만들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 없는 형편인 걸 나는 잘 안다. 다만, 그런 공간을 꿈꾸고 계획해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기, 질투 같은 감정에 마음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바닷가에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는 이라면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을 테니까.
저자는 ‘슈필라움’을 빌려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이제껏 살아온 저마다의 삶, 앞으로 살아야 할 삶에 대해 한 번 깊이 있게 고민하고 돌아본 적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물론 그가 화려한 방송 이력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여수로 향한 사연이나 여수에서 화가로서 ‘미역창고(美力創考)’에서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는 모습은 유쾌하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밌게 읽으면서 저자의 그림도 감상하고 사진작가가 담은 여수의 풍경도 마주할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그러나 그게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글을 통해 전하려는 사유가 매력적이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내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시선은 곧 마음이라는 단순한 명제, 그 안에 담긴 삶의 철학이라고 할까. 문학심리학 박사의 강의를 듣는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 joint-attention’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바로 이 ‘함께 보기’에 기초한다. (34쪽)
지금 내가 보는 것들, 그것에 담긴 내 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보고 싶은 것들(물건, 사람)를 향한 나의 마음에 담긴 욕망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혼자이기를 바라면서도 외롭기는 싫어 자꾸만 SNS를 지켜보고 이곳과 그곳에 동시에 발을 걸치는 우리네 모습을 말이다. 마음을 들킨 것 같다고 할까.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소통과 연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보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룰 때 순서를 주고받는다면 불화나 불신도 감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갖는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 주고받기’다. 타인의 ‘순서’를 기다릴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105쪽)
저자의 공간을 보면서 나의 공간을 둘러본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그럴 것이다. 그 공간에서 무얼 할 때 가장 편안하고 가장 행복한가 집중한다. 그런 공간이 없어 우울하거나 불행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내 우울할 필요는 없다. 이런 책을 통해 저자의 ‘미역창고’와 작고 귀여운 배 ‘오리가슴’으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으니까. 거기다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어야겠다는 소망이 잉태했을 테니 괜찮다. 우리가 원하는 공간은 궁극적으로 내가 편안해지는 곳이다. 아무리 넓고 화려한 공간이라도 마음이 불편하면 그곳은 당장이라도 뛰쳐나오고 싶은 곳이다. 모든 건 나로 시작한다. 그래서 나를 알아야 한다. 단호하면서도 진정한 저자의 글처럼 말이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115쪽)
공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순간, 음악을 듣는 순간, 그림을 보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공간이 될 수 있다. 나만을 위해 천천히 흐르는 시간, 그 순간 내 시선이 닿은 그곳(것)이 ‘슈필라움’이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