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장류진.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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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혜진과 한정현의 단편이 참 좋았다. 한정현의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좋은 소설은 많은 생각과 기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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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일은 후회를 남긴다.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속상함까지.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욕심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가족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갑자기 닥친 이별로 남은 구멍은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줄어들지도 않는다. 때때로 선명하게 달려든다. 드라마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같은 이름의 타인을 발견할 때, 밥을 먹다가... 멍해진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기 전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나 그런 준비는 허사가 되었다. 나에게는 엄마라 부를 존재가 없고, 꿈에 나오는 일도 없다.

​엄마는 혼자였다. 못난 우리를 보느라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우리는 늘 등만 보였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등을 어루만져 주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하지만 그 손길 끝에 자리한 엄마의 눈은, 엄마의 입은, 엄마의 주름은, 엄마의 표정은, 무엇보다 엄마의 외로움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였다. 홀로 살다, 홀로 그리워하다, 홀로 받쳐주다, 홀로 홀연히 떠나셨다. (26쪽)

살면서 엄마의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그래서 엄마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게 어려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렇다. 도저히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곁에 없으니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다. 쓰고 보니 서러운 일이다. 어쩌면 저자도 그랬겠구나 싶다.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를 기억하는 일이 참 아팠겠구나 싶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다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수많은 다짐을 한다 해도 어려운 일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다. 저자의 엄마가 우울증을 앓게 된 건 큰 아들, 저자의 형의 우울증에서 기인했다.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는 자식이 우울증에 걸렸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결국엔 우울증을 얻었다. 아들의 병은 쉬운 게 아니었다. 우울증은 공황장애로 불러오고 조현병으로 ​이어졌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단호하지 못했다. 입원한 아들의 전화를 믿었고 퇴원을 시켰다. 아니, 아들을 믿었던 것이다.

엄마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저자는 모든 게 후회스럽다. 병실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랬더라면 엄마는 조금은 괜찮아졌을 텐데. 죽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았다면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엄마를 살폈을 텐데. 엄마에게 함부로 했던 모든 순간조차도 소중하고 나중으로 미뤘던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부질없는 약속이었는지 아프다.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던 미역줄기를 먹을 때마다 그립고 그립다.

하늘에 천국이라는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곳에서도 내 걱정으로 눈물 흘릴지 모른다. 다음 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생에서마저 나를 기억할지 모른다. (130쪽)

 

엄마의 사전에는 ‘괜찮지 않다’는 말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괜찮다는 말로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싶은 사람, 그 모든 걸 괜찮게 만들고 싶은 사람, 엄마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151쪽)

 

우울증으로 형과 엄마의 삶이 무너졌으니 저자는 스스로를 챙긴다. 자신은 괜찮다고 다독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슬픔을, 아픔을, 고통을 가둬 둔 둑은 터져버렸다. 그에게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했고 상담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괜찮을 리가 없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마음을 돌봐야 했다. 늦었지만 치료를 시작했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성취감과 행복을 주는 일이라면 괜찮았다.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유튜브였고  그리하여 저자는 조금씩 회복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울증과 평생 살아갈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고.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삶을 살다 보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땐 그것들을 잠시 내버려 두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을 악착같이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200쪽)

 

책을 읽다 한 번씩 멈추고 만다. 책을 읽다 한 번씩 울게 된다. 엄마, 하고 가만히 불러본다. 아마도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안쓰러운 얼굴이 보일 것이다. 떠난 엄마가 그리울 것이다. 엄마를 곁에 둔 당신이라면 엄마와의 소중한 일상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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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0-04-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보니 서러운 일이다.
너무나도 크게 공감되는 문구입니다.
작가도 글을 쓰면서 수십 번 멈췄겠구나!!
싶군요....

자목련 2020-05-02 14:04   좋아요 0 | URL
엄마에 대한 글은 언제나 먹먹함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는 더욱.
봄인가 싶더니 더위가 몰려오는 듯해요. 책읽는나무 님, 남은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2020-04-2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머니가 나이를 들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것 때문에 이 작가는 더 죄책감을 느꼈을 것 같네요 어떤 건 식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선

자목련 2020-05-02 14:05   좋아요 1 | URL
소중한 것은 언제나 곁에 있다고 하는데, 잃고나서야 후회하는 것이겠지요. 희선 님 말씀처럼 가족도 어찌할 수 없으니 더욱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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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재미와 감동이다. 예측 가능한 캐릭터의 성격, 뻔한 전개라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소설 『침입자들』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제목만으로는 스릴러가 아닐까 짐작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마침내 소설을 다 읽었을 때에는 뭔가 가볍지 않은 것이 남았으니까.

소설의 화자인 ‘나’는 택배기사다. 택배를 담당한 구역이 행운동이기에 그는 ‘행운동’이라 불린다. 타인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공간에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직업군. 뭔가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소설은 택배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물건을 받아 분류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차에서 물건을 전달하는 반복적인 행동. 한 번 동선이 꼬이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제때 밥을 먹을 수 없지만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은 아니다. ‘나’가 택배를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혼자를 고집하지만 어디든 사람이 있다.

이 일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유일한 매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쓸데없는 인간들과 엮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87쪽)

‘나’는 타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만 사람들이 다가온다. 같은 업무를 하는 이들은 동료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택배를 받는 이들은 불편한 요구 사항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똑같은 복장으로 담배 한 개비를 빌리는 이상한 여자, 소변을 보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말하는 젊은 남자, 마스크를 쓴 채 폐지를 줍는 여자, 뜬금없이 자신의 집에 와서 공부를 하라는 노인, 지정된 시간에 택배 배달을 부탁하는 바의 직원. 어쩌다 한 번이라면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있는 상황인데 그게 아니니 신경이 쓰인다. 결국 그들과 엮이고 만다.  

 

담배를 빌리는 여자에겐 우울증이 있으며 죽은 남편이 ‘나’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량학생들에게 맞고 있는 남자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폐지를 줍는 여자에게는 양갱을 건네다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되고 노인의 집에 방문에 저녁을 먹고는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인다. 그러나 ‘나’는 그저 들을 뿐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거나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상식을 지키며 자신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내뱉는다. 그러니 점점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나’가 택배 업무를 끝내고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는 술과 소설 읽기다. ‘나’가 읽는 소설의 줄거리와 구절이 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혼자만의 삶을 위해 택배 일을 선택했지만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나’가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삶의 고단함을 전한다. ​택배 하나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아닐까.

“꾸준히 멈추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지. 그리고 해보면 알겠지만 그게 무척 힘들어. 아프거나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하고 기분이 좋아도 체력적으로 오버하면 안 돼. 매일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지. 말은 쉽게 들리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무척 힘들어. 얘기를 나룰 상대도 일상의 변화도 없어. 매일 똑같은 택배와 고독만 있지. 뭐, 성격에만 맞는다면야 구도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150쪽)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열심을 낸다고 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소설 속 택배 업무는 특수한 경우로 보이지만 결국은 어떤 일이든 다르지 않다. ‘행운동’이 만난 이들이 그런 것처럼.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삶에서 일이란 무엇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일지도 모른다. ‘침입자들’이란 제목처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침입하는지도 모른다. 적정한 선을 찾을 때까지 실수를 반복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게 일적인 관계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의 삶은 그렇게 채워지고 이야기가 된다. 놓쳐서는 안 되는 이야기. 나와 당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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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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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모든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현재가 아닌 과거라는 이유로 미화할 수 있는 생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로 다 채워졌을 수 있고 누군가는 지금 채우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도착하지 않은 미래에서 기대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번은 찾아올 행운의 기회를 위해 비굴한 오늘을 견디고 참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런 일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포기한 채 살아가는지도. 권여선의 소설은 그런 게 생이라는 걸 재차 확인시키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이 살아갈 뿐이라고 말이다. 아니, 내가 잘못 본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극진하게 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들처럼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힘들고 어렵다는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세상은 나쁜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다. 그래도 모두가 그렇다고 나까지 그렇게 흘러가고 싶지 않으니 「손톱」의 소희나 「너머」의 N과 「친구」의 해옥과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고 응시한다. 한 달 월급 백칠십만 원으로 옥탑방 월세와 대출금을 갚고 간신히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소희에게 다친 손톱을 위한 치료비는 과도한 지출이다. 소희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없다. 어디가 아프고 무슨 일이 생겨도 상의할 대상이 없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다. 엄마와 언니가 있었지만 차례로 소희 곁을 떠났다. 엄마가 언니의 적금과 대출을 받아 떠난 것처럼 언니도 소희에게 대출을 남기도 떠났다. 그런 소희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출근 시간에 통근 버스에서 만나는 햇빛이다.

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장에 바짝 붙어앉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버스가 좋은데, 소희는 버스가 슬프다. 그러니까 슬픈 건 버스가 아니라 햇빛인데,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53쪽)

자신의 일상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소희에게 같이 일하는 민경 언니가 학교와 알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엄마와 상의했다는 말에 뭔가 타오르는 걸 느꼈다. 왜 소희에게는 아무도 없는가. 갑자기 나는 화가 났다. 엄마와 언니 둘 중 하나라도 소희 곁에 있었다면 긴 하루의 끝을 수다로 풀고 의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더 큰 사고를 치고 소희에게 떠넘겼을까. 그랬다면 없는 게 나을까.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갇힌 느낌, 바삭하게 구워지는 과자처럼 겉은 점점 검고 단단해지는데 속은 끓는 시럽처럼 뜨거운 핏물이 휘도는 느낌, 겉과 속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54쪽)

 

그날 왜 그랬냐 하면 그때 소희는 달아오르다 달아오르다 끝내 퍽 금이 가야만 했던 상태였으니까. 뿜어낼 구멍이 절실할 때, 그러니 손톱이든 어디든 와삭 깨지고 퍽퍽 터져야 할 때였다. 아하하…… 웃겨 죽을 뻔했지. 엄마랑 뭘 했다고? 상의? 엄마랑 상의를 해? 아하하…… 민경 언니가 소희를 그렇게 웃겼으므로 소희는 박스 밑으로 급하게, 온 힘을 다해 손을 집어넣었던 거고, 터졌던 거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거고. (55쪽)

시청료를 내지 않으려고 텔레비전도 없애고 매운 짬뽕 곱빼기 한 그릇을 선뜻 주문하지도 못하는 스물한 살의 소희에게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럼 「너머」의 N은 어떤가. 두 달간 계약직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N은 어쩌면 한 한기, 혹은 그 이상으로 재계약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학급 담임도 잘 해내고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과도 잘 지내고 싶다. 하지만 N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달랐다.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를 은근히 드러냈고 그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계산하고 먼저 이익을 따지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었다. 치사한 일이었고 부아가 치밀었지만 N은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N을 알아보지 못하고 울음소리만 내는 어머니.「너머」에서 학교와 요양병원은 전혀 다른 공간이지만 N과 어머니가 놓은 상황은 묘하게 닮았다. 둘은 약자였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N의 이런 심정은 소희보다 나은 거라 해야 할까.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세상천지 N에게는 어머니밖에 없고 어머니에게는 N밖에 없다고. (150쪽)

 

기댈 곳이 아픈 어머니밖에 없는 N, 그와 다르게 「친구」의 해옥에게 아들 민수가 전부다. 민수를 위해 일하고 민수를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에는 여성용품 마케터로 일하고 밤에는 고깃집에서 일하는 해옥은 민수의 모습을 보며 고단함을 잊는다. 중학교에 들어간 민수는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해옥에겐 영란이란 친구도 있었다. 지금의 일을 소개해 주었고 해옥의 건강도 걱정해 주었다. 자신의 이모가 파는 다이어트 식품을 해옥에게 아주 싼 가격에 팔 정도로. 그러니까 영란은 교묘하게 해옥을 이용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민수를 때린 아이들처럼. 그래서 해옥은 민수가 학교 폭력 피해자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윽박지르듯 담임은 소리를 높여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민수는 친구끼리 장난친 거라 했고 해옥은 아이들에게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해주기로 한다. 아들인 민수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뭔가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답답함은 무엇일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정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소희, N, 해옥에게 일어난 일들이 그들의 잘못으로 기인한 게 아니다.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기본적인 일상에 대한 보장되는 사회를 원하는 일이 너무 큰 바람일까. 20대의 소희가 마주할 삶이 지금보다는 버겁지 않기를 바란다. 슬프면서 좋은 거 말고 그냥 좋은 걸 느끼기를.

언급한 단편만 좋았던 건 아니다. 삶의 후반부에 접어든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공허함과 죽음에 대한 감정을 만날 수 있는 「모르는 영역」과 「재」, 두 단편 속 인물은 어느 순간 다가올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에 더 애틋했다. 조금씩 죽음을 향해 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받아들일 여유는 없는 슬픔이라고 할까. 하루하루 살면서 그런 감정의 실체와 만나 체득해야 한다는 게 슬프다.

권여선은 불행과 슬픔을 전제로 생을 말하는 건 아닐까. 그것과 온전히 이별할 수 없으나 점차 멀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은 알 수 없으니 조금 더 살아봐야 한다고. 그러니 아직 멀었다는 말은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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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곳이 떠올랐고 길을 나섰다. 어떤 차비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곳에 가서 가만히 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처럼 반가웠다. 올봄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선배 언니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 봄이라서 제 할 일을 하는 자연의 위대함을 마주하는 일상이 감사하다.

 


 

 

 

 

 

멋진 구도의 사진을 찍으면 더 좋겠지만 아무렇게나 담아도 황홀한 봄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차분하고도 혹독한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 많은 이들의 수고와 많은 이들의 한숨과 많은 이들의 기도가 쌓이는 봄으로 말이다. 꽃잎이 지는 자리에 연두 잎사귀가 대기 중이다. 4월이 지나고 5월에는 연두의 물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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