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상태로 마트에서 장 보기를 하면 안 된다. 뭐라도 자꾸 사게 된다. 필요한 것들, 구매할 목록을 작성해도 소용없다. 바로 먹을 수 있는 빵이나 분식을 사고 만다. 적당히 배가 불렀을 때 장을 봐야 한다. 온라인 쇼핑에서도 마찬가지다. 불만이 있거나 불안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은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를 누른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취소를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빠른 업체의 배송 중이라는 알림은 취소를 해도 소용이 없다.

 

여유로운 마음이 점차 사라진다. 책장에 있는 책을 찾지 못하고 덜컥 주문하고서 책장에서 책을 발견한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면 더욱 그렇다. 도움을 주는 이의 상황을 알고 배려한다고 생각해서 미리 부탁을 할 때가 있다. 가족의 경우, 이럴 때 뭐 그리 급하냐고 한 소리를 듣거나 그때 말하라며 대화는 멈춘다. 그러면 상처를 받고 소리를 내지 못하는 말만 허공을 떠다닌다.

자꾸만 조급함이 나를 덮친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조급함이라면 부지런으로 연결 시 킬 수 있을 텐데, 그건 아니다.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아져서 걱정이다. 깨는 게 문제가 아니고 잠드는 일이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 늙어가는 거라고 농담처럼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닌 요즘이다. 이런 날들에 허수경 시인의 글을 읽는 일이 그나마 정신을 맑게 만든다. 이런 짧은 문장을 오래 바라보고 몇 번씩 읽는다.

 

 

하루에도 몇 번은 절망한다. 하루에도 몇 번은 희망한다. 그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언젠가 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충동적으로 사들이는 책들, 그 책의 미래는 읽지 않고 정리하는 책이 될지도 모를 일. 그런데도 책들이 나를 또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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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1-0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 글인 줄 알았지 뭐에요. 장바구니 열기 전엔 배부터 든든히ㅎㅎㅎㅎ

자목련 2019-11-08 09:51   좋아요 1 | URL
모두 비슷한가 봐요. ㅎ

수이 2019-11-06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감기 걸리지 말아요 감기 조심!!

자목련 2019-11-08 09:51   좋아요 0 | URL
넵!! 수연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향기로운 11월 보내세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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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내부의 변화다. 외부를 바꾸는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내부의 변화는 정말 어렵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어떤 자극을 원한다. 외모를 정리하고 여행을 계획하고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수만 번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내부는 철옹성처럼 단단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내부를 움직이는 건 아주 커다란 사건이나 상처를 동반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 혹은 ‘성숙’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속 ‘나’에게 그것의 시발점은 아내 유디트의 이별 통보였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이런 편지를 받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나’ 역시 그러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당장 미국으로 떠난다. 아내를 찾기 위한 명분이 있었지만 ‘나’에겐 일종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내가 묵었던 호텔을 찾았지만 아내는 떠났고 그에게 남겨진 건 사진기 뿐이었다. 어디서 아내를 찾아야 할까. 아내의 흔적을 뒤쫓고 있지만 항상 한 발 느린 상태다. 아내를 향한 감정도 모호하다. 호텔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아내에게 욕을 내뱉고 만나면 당장이라도 죽일 듯 화를 낸다. 그럴 봐에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나’의 모습이다. 미국의 술집에서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을 관찰한다. 호감이 가는 여자를 발견해도 그뿐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여행자란 위치 때문일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을 들여다보다가도 감정에 못 이겨 화를 내고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한다. 아내와 ‘나’사이의 거리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불편한 여행에 동행하는 건 지루할 뿐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런 여행에 변화가 온 건 과거 하룻밤의 연인 ‘클레어’를 만나는 일이다. 그녀의 어린 딸 ‘베네딕틴’과 여행을 한다. ‘클레어’와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저 친구로서의 만남과 대화가 전부였다. 그러나 ‘클레어’와 ‘나’의 대화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듣기도 한다. ‘베네딕틴’이 질문을 하면서 둘 사이의 대화를 끊어놓지만 그 역시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아이란 존재가 주는 특별함이라고 할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모든 사물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의 순수함에 놀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왜 내게 유독 불안 상태에 대한 기억력만 살아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돼. 내가 매일같이 보아왔던 것과 비교해볼 대상을 아직 가져본 적이 없었던 거지. 내가 받는 인상들이라는 게 모두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 인상들의 반복일 뿐이라는 거야. 그 말은 내가 아직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 보지 못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음을 의미해.” (78쪽)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클레어’의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장소를 바꾼다기보다는 미래 속으로 달려가려고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이 이곳으로 왔어. 하지만 이곳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알 수 없어. 우리가 무언가를 비교한다면 그 대상은 과거가 되겠지. 우리는 기껏해야 다시 아이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83쪽)

 

‘클레어’가 ‘베네딕틴’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나’가 아내 유디트와의 이별로 인해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처럼 ‘클레어’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나’가 이 여행에서 읽는 책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히리』에 대해서도 이어지는데 이 책은 소설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나’는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둘은 소설에 대해, 하인히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녹색의 하인히리는 아무것도 해석하려 하지 않았지.” “비겁하거나 소심해서 경험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자신에게 별 가치가 없거나, 그가 관여했을 때 행여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을 뿐이지.” 란 ‘클레어’의 해설은 ‘나’에 관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녹색의 하인히리』의 하인리히는 결국 ‘나’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나’가 미국 여행에서 아내의 행방만 쫓고 그녀를 향한 생각만으로 달려가는 과정이 점점 의새로운 의미를 찾아간다고나 할까. ‘클레어’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그는 화와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라는 작은 조각만 보고 인생의 전체를 상상하는 어리석음을 계속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서른 살 생일을 맞는다. 하나의 세대가 끝나고 다른 세대로의 진입이다. 이러한 여행의 시간들을 통해 ‘나’는 여행의 처음에 느꼈던 감정에 대해 정리를 한다. 그러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이런 부분은 무척 섬세하면서도 황홀하기까지 하다. 혼자만의 시간, 고요한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 존재조차도 잊어버린 채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실측백나무가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내게로 점점 다가와 마침내 내 가슴속까지 파고 들어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머릿속의 혈관은 박동을 멈췄고 심장도 멎었다. 나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피부는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몰려드는 쾌감과 함께 나무의 움직임이 호흡 중추 기관의 기능을 넘겨받는 것을 감지했다. 실측백나무가 나를 자신의 품 안에서 흔들리게 했다. 내가 저항하기를 그만두고 마침내 잉여의 존재가 되어 실측백나무의 부드러운 놀이에서 벗어나자 실측백나무가 내게서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98쪽)

‘나’는 달라졌다. 누군가 그것을 알지 못해도 그의 내부는 그렇게 변화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심지어 발사까지 하고 흥분한 아내 유디트를 지켜보고 그녀에게서 권총을 빼앗아 바닷속으로 던져버릴 수 있었다. 소설의 처음에서 등장하는 ‘나’를 떠올리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둘은 진짜 이별할 수 있을까? 소설의 말미에서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데다 주름진 얼굴에 수염 자국이 하얗게 남아 있는’ 영화감독 존 포드를 만난다. 감독과 만나 함께 걸으며 들려주는 이야기도 부분도 인상적이다. 온통 자기 자신밖에 몰랐던 그들에게 ‘우리’에 대해 알려준다. 진짜 어른이라고 할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인생을 통찰한 이에게 듣는 이야기.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결국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제대로 이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이제껏 몰랐던 자아를 발견했고 유디트 역시 그 시간을 통해 남편과 자신에게 남았던 감정의 실체를 찾았다 할 수 있다.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이별을 배우고 성장한다고 할까. 그들에서 이별은 과거와의 이별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이, 우리가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치 꿈을 잊는 것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게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

​이동한다는 건 장소를 변경하는 단순한 일이면서 지금껏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는 일이다. 어쩌면 소설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안톤 라이저』의 저 구절은 내부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문장인지도 모른다. ‘장소’란 말 대신 넣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누군가 사람 한 명을 만나는 일’과 ‘한 권의 책을 읽는 일’로 바꾼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역시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별, 사랑, 죽음...)들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성장한다는 걸 알려주며 깊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진정한 내부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밀려오는 감동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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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번씩 종말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재해 같은 대재앙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세상이 끝나는 날은 어떻게 올까, 궁금하다. 지난 세기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냉동인간이 가능해지고 늘어나는 수명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만병통치약이 등장할지 알 수 없다. 아니, 반대로 무서운 질병에 빠른 속도로 퍼져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모두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가장 무서운 게 바이러스라는 말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고, 우주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럼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서 세계 어딘가에서는 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저스틴 크로닌의 『패시지』에서 미국 정부가 세상의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완벽한 백신을 연구하는 것도 그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놀랍고 잔인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말이다.

 

소설은 무척 방대하다. 그도 그럴 것이 『패시지』(1,2권)는 저스틴 크로닌의 『트웰브』, 『시티 오브 미러』와 함께 ‘패시지 삼부작’의 첫 시작이다. 올해 미국 FOX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원작이다. 소설은 ‘에이미’란 소녀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엄마 지넷이 유부남이었던 남자와 만나 낳은 아이로 홀로 에이미를 키웠다. 몇 년 뒤 남자가 찾아왔지만 함께 할 수 없었고 지넷은 끝내 에이미를 교회에 버렸고 그곳의 레이시 수녀에게 맡겨진다. 레이시 수녀와 함께 동물원에 간 에이미는 그곳에서 울가스트라는 FBI 요원에게 납치당한다. 울가스트는 왜 여섯 살 어린 에이미를 데리고 갔을까? 울가스트의 임무는 ‘노아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실험체를 구해주는 일이다.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발견하는 프로젝트였다. 실험체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이었다. 에이미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울가스트 요원은 에이미를 통해 자신은 죽은 딸 에바를 떠올렸고 에이미를 데리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울가스트가 에이미가 상대하는 건 정부였고 결국엔 에이미는 그들의 프로젝트에 실험체 13이 되었다.

성경 속 선의의 뜻 그대로 ‘노아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에이미를 제외한 12명의 사전 실험체는 기괴한 능력을 가진 채 세상으로 나았고 사람들을 사냥하고 죽이기 시작한다. ‘트웰브’라 불리는 그들은 뱀파이어 바이러스를 퍼트려 세계 인류를 괴물 ‘바이럴’로 만든다. 그러니까 진짜 종말 아닌 종말이 닥친 것이다. 시간은 흘러 백 년이 지난 후 인류의 생존자들은 ‘퍼스트 클로니’란 요새를 만들어 ‘바이럴’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그곳에 그 소녀, 에이미가 나타난다. 에이미는 ‘트웰브’를 상대할 수 있는 힘,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였다. ‘트웰브’가 세상으로 나갈 때 군부대는 폭발했고 에이미도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다.

에이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일, 그들이 저지른 가장 지독한 일이었다. 시간은 부두를 사이에 두고 갈라지는 물길처럼 그 아이를 피해 움직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도 에이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1권, 374쪽)

소설은 이제 요새 ‘퍼스트 클로니’안에서 ‘바이럴’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새를 보호하는 조명의 배터리가 약해지고 그들을 구해줄 군대를 기다리는 그때 소녀가 나타난다. 바로 에이미가 눈을 뜬 것이다. 마지막 생존자들은 에이미를 경계하지만 곧 에이미가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식한다. 함께 ‘바이럴’과 싸울 수 있는 존재, 바이러스를 이겨낼 희망이라는 걸 말이다.

“93년 전은 바로 ‘제로의 해’, 그러니까 이 전염병이 시작된 그해라고. 93년 전 봄,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에서 누군가가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 안에 자체 전력원이 달린 송신기를 삽입했어. 이 아이는 ‘지난 역사’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거나 다름없어. 그리고 이 송신기를 삽입한 그 누군가는 93년째 이 아이를 돌려보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고.” (2권, 175쪽)

‘퍼스트 클로니’의 원정대와 에이미는 진실을 찾아 떠나고 그 길은 예상했듯 험난하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에이미는 정말 유일한 희망이 맞는 걸까. ‘노아 프로젝트’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World War Z>나 한국 영화 <부산행>이나 <마녀>가 생각나기도 했다. 방대한 스토리와 수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지루하지 않고 집중하게 만든다. SF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만날 것이다. ‘패시지 삼부작’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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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 웨이보 인싸 @하오선생의 마음치유 트윗 32
안정병원 하오선생 지음, 김소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고단하다. 들어준다는 건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고 집중한다는 건 감정을 쏟는 일이기 때문이다. 직업의 경우라도 그렇다. 고객의 불편에 응대하는 상담직원,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교사,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역할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안정병원 하오 선생의 에세이『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에 그런 노고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다고 의학적 용어를 설명하거나 권위적인 의사 이미지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 웨이보의 유명 블로거라는 이력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에세이는 유머가 넘치고 간단명료하며 심지어 재미까지 있다.

 

어차피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읽어도 이해 한 되는 사람이 있고, 계속 읽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15쪽)

책의 서문에서 하오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의미심장하다. 자신을 버섯이라 생각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그에게 자신도 버섯이라고 인사한다. 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환자에게 의자가 버섯은 먹을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고 잠도 잘 수 있다며 그를 치료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과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준다고 할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올리버 색스가 생각났다. 하오 선생과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게 그의 글에서 느껴졌다. 책에서 하오 선생은 자신을 찾아온 환자, 함께 일하는 병원 직원, 광장에서 운동을 하는 이웃, 같은 시각 같은 버스를 이용하는 주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신과 질환에 대해 설명한다.

하오 선생은 사랑에 빠질 때마다 가출을 하는 조카, 도박에 빠져 고생한 친구, 주식투자로 인해 부부 사이가 나빠진 원장, 대학시절 돈을 빌려 갔던 친구가 돈을 갚은 얼마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연, 32가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신질환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자연스럽게 독자는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예전과 다르게 방송에서 공황장애나 대인기피증을 앓는 사례를 통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하지만 막상 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사회적 분위기도 좋은 편은 아니다. 하오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 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고 유쾌하며 재밌는 책이지만 마음 한 편이 무겁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섭식장애가 와서 병원에 입원한 간호사의 모습은 미에 대한 잘못된 기준에 대해, 노인성 우울증 치료를 위해 극단을 시작한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고령화사회의 해법에 대해 고민하고 만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조현병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도 마찬가지다. 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감’과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우리네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건 우울증 치료에 대한 설명과 소아 자폐증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가 ‘마음의 감기’라고 쉽게 말하는데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되다는 전문가의 말을 기억한다. 하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는 급성기, 지속기, 유지기가 있다고 한다. 급성기는 증상을 개선하는 3개월, 지속기는 효과를 확실히 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6개월, 재발 예방을 위해 후속 조치를 하는 기간이 유지기라고 하며 보통은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 전문가와의 진단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자폐증에 대한 건 인식의 차이였다. ​출근길 버스에서 만나는 아이가 창밖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맡아주는 작은 배려, 하오 선생이 출장을 가면 다른 승객이 자리를 맡아주면서 서로를 이해하면 아이의 사회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오 선생이 자폐증에 대해 기사와 승객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듯이 하오 선생의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정신 질환은 불치병도 아니고 감추어야 할 질병도 아니란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이 한 입 베어 문 사과처럼 누구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결점이 비교적 크다면, 그것은 신이 특히나 그 사람의 향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217쪽)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도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때로는 친구처럼, 동네 아저씨나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설명해주는 하오 선생 같은 이들 말이다. 그러니 유용한 정보와 함께 책 읽는 즐거움까지 안겨준 알찬 책이다. 덤으로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결점을 꺼내어도 좋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다정한 눈빛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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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11-01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과 의사는 여러 사람 말을 들어주느라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아픈 사람 마음을 받아들여주면 좋겠네요 예전에는 정신과에 가는 걸 안 좋게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편하게 가는 듯도 한데, 아직도 안 좋게 보는 사람 있겠네요 정신과 의사는 다른 정신과 의사한테 말할지도... 소설에서 그런 거 본 것도 같아요 실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사람은 누구나 이상한 부분이 조금 있을 거예요 그게 심해져서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요


희선

자목련 2019-11-04 14:01   좋아요 0 | URL
정신과 상담을 하는 일이 예전보다는 많이 수월해졌지만 지금도 그런 시선이 남아 있는 듯해요. 맞아요, 저마다 이상한 부분을 갖고 사는 것 같아요. 희선 님, 11월 즐겁게 시작하세요^^*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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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사랑해야 한다.(307쪽)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사랑해야 한다.(307쪽)

​모두에게 좋은 책이라는 평을 받은 책은 읽기가 겁난다.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되었고 꼭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끝내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쉬운 무언가와 마주했다면 더욱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남들이 느끼는 감동의 크기가 나의 그것과 같을까. 누군가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솔직한 기분을 가짜로 포장할 수도 없으니 큰일이 아닌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 그러했다. 열네 살 모모의 성장소설이며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란 질문을 떠올리는 소설 말이다. 아름다운 감동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일찍 모모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럼에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모모는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대신 로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아니다, 모모 스스로 자랐다는 게 맞겠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로자 아주머니가 키우는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다. 어린 모모는 일찍 철이 들었고 긍정적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모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모뿐 아니라 창녀의 아이들을 키우는 로자 아주머니와 양탄자를 팔았던 하밀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 주변의 이웃들. 그들은 모두 상처를 지녔고 버림받았고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 유태인인 로자 아주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힘든 시절을 보냈고 하밀 할아버지는 점점 눈이 보이지 않는다. 모모와 대화를 나누고 모모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건 모두 그들이다. 정확한 나이를 몰라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모모가 마주한 세상은 로자 아주머니의 말처럼 엉덩이로 먹고사는 삶이 있었고 자신과 같은 아랍인이 아닌 유대인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모모는 그만의 유머로 모든 걸 소화해냈고 어린아이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을 모르는 척했다. 그런 모모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왜 세상에는 못생기고 가난하고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나쁜 것은 하나도 없고 좋은 것만 가진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244쪽)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52쪽)

죽었던 사람이 죽기 전으로 돌아가고, 자동차가 거꾸로 달리는 모습은 모모에게 최고의 감동이었다. 영화를 더빙하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영화 되감기처럼 모든 걸 되감을 수 있기를 바라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모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고 싶었던 모모의 진심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철이 들었다 해도 아이는 아니인데. 자신의 보호자인 로자 아주머니가 거구의 몸으로 7층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모모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로자 아주머니의 병은 그녀가 두려워했던 암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식물인간으로 살 수도 있다고 의사는 전했다. 이웃들이 와서 로자 아주머니를 닦아주고 돈을 주기도 하고 의사가 다녀갔지만 희망을 갖기는 어려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로자 아주머니를 모모 혼자 간호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없다면 모모는 살 수 없었다.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아는 로자 아주머니는 자신을 지키고 싶어 했고 모모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로자 아주머니가 원하는 방식대로 말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함에 있어 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모모를 사랑한 어른들이 있어 모모는 사랑을 아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모모를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어서 열네 살이 아니라 열 살이라고 거짓말을 한 로자 아주머니, 세상의 지혜를 들려준 하밀 할아버지, 모모의 존재를 특별하게 인정해준 그들이 없었다면 모모는 웃음을 모르는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외당한 이들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정겹고 따뜻함이 가득하지만 이 소설은 지독하게 아프다. 모모가 조금 천천히 인생을 알았더라면 소년의 날들이 조금 길었을 텐데.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모모가 사랑 때문에 사람 때문에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랑받기 충분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으로도 대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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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10-26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아이는 자신이 자라는 환경 때문에 일찍 철이 들기도 하죠 그렇다고 아이다운 마음이 다 없는 건 아닐 거예요 모모 둘레에 있는 사람도 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지만 모모를 사랑해서 다행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가진 사람이 더 아이한테 사랑을 주지 않기도 하잖아요


희선

자목련 2019-10-30 17:38   좋아요 1 | URL
그래도 아이가 일찍 철이 드는 건 속상한 것 같아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