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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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과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할까. 그건 소설가와의 세대차이와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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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10-2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전 저만 세대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는줄 알았어요.
전 아예 100자평도 남기지 않았더랬죠.
정영수 작가의 소설을 제외하곤 두 작가의 작품은 읽었지만,읽은 기억이 하나 없네요ㅜ
읽으면서 줄곧 내 머리가,내 가슴이 받아들일 틈을 주지 않는구나!그런 생각을 가지며 읽었던 기억만...
내가 즐기는 소설은 딱 그정도의 테두리가 있다는 자각을 함으로 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뭐 그런 씁쓸함도 느꼈어요.
헌데 자목련님은 소설가와의 세대차이와는 다른 것이라고 하시니....음!! 위로받는 느낌입니다^^

자목련 2019-10-25 09:50   좋아요 0 | URL
소설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떄로 소설을 읽는 행위가 피곤하게 다가오는 소설도 만나는 것 같아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지 않으려는 이상한 말일지도 몰라요, ㅎㅎ
 
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투에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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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토끼라고 생각했다. 당연하다고 단정을 지었다. 그런데 토끼 옷을 입은 단무지였다니. 자세히 보아도 잘 알 수 없는 게 있다. 그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보여주었을 때에 진짜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무지인 자신의 모습을 토끼옷으로 숨긴 ‘무지’처럼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 옷을 온전한 나로 봐주는 이에게는 토끼로, 숨겨진 단무지를 발견해주는 이에게는 단무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어떤 때는 나는 단무지랍니다. 크게 소리치고 싶은 순간도 올 것이다.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주는 ‘콘’ 같은 존재에게는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어릴 때는 구름이 하늘 위에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 보니 구름도 하늘 밑에 있더라.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내가 가진 불안과 긴장도 다시 보면 별거 아닐지도 몰라. 모두 내 안에서 비롯된 거잖아. (51쪽)

누구나 숨기고 싶은 모습이 있다.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모습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시와 모난 형태로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만들던 때 말이다. 그런 일상을 견디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투에고’ 작가는 글이라고 했다. 진심을 꺼내 글로 기록하는 일. 문득 어떤 밤이 떠오른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답답한 마음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때였다. 그러한 밤에 나는 뭔가 썼다. 물론 작가의 글처럼 위로나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그런 글은 아니었다. 욕을 쓰기도 하고 화를 나는 상대의 이름을 나열하기도 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행위, 어떤 분노를 부수는 방법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방법을 추천한다. 후련해지는 기분도 있고 그렇게 뭔가를 쓰다 보면 결국엔 나와 마주하게 되니까.

서로 다른 ‘나’들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 가능한 한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거든. 그래도 그 둘이 평화롭게 만날 때가 있어. 바로 내 진심을 꺼내 글로 기록하는 순간이야. 이 시간을 통해서 난 비로소 내가 누군지 발견하는 것 같아. (96~97쪽)


 

 

우리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다. 나에게 좋은 사람,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된다. 내 맘 같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친구의 말에 네 맘이 어떤데, 하고 물을 적이 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친구처럼 우리는 내 마음의 상태를 정확하게 모른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삶이 존재할 수 없듯 내 마음과 똑같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소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때로는 나를 온전히 이해할 존재가 나밖에 없으니 나를 안아주는 일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를 믿어주는 거, 나는 앞으로 괜찮을 거라고 토닥여주고 응원해주는 거, 바로 스스로에게 가장 완전한 친구가 되어주는 거야. 그 순간 내 감정을 이해해출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137쪽)

그리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콘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을 나의 연락을 기다리며 나를 지켜봐 주는 친구처럼 말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존재, 그런 존재 앞에서는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제목처럼 ‘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본연의 나로 존재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 모르는 걸 인정하고 잘못한 일은 사과하는 것. 상대에게 나를 강요할 수도 없고 누군가 강요하는 대로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그게 우리가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무지해. 나도, 너도 무지해. 모든 걸 완벽히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때로는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다고, 때로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전제하고 출발해보기로 했어. 그러면 다수가 손을 들었다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지.'우리'나 '모두' 같은 말로 뭉뚱그려서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어. (122쪽)

​매 순간 불안과 걱정이 나의 일상을 흔들 때 무지와 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편안해질 것 같다. 아무런 기대 없이 창문을 열었을 때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무지와 콘을 만나는 순간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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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0-2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토끼가 아니라 단무지가 토끼옷을 입은 거였군요. 그냥 지나치던 이모티콘도 자세히 보니 다 사연이 있네요 ^^

자목련 2019-10-25 09:46   좋아요 0 | URL
네,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캐릭터라고 할까요.

또이 2019-10-2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ᆢ단무지였구나

자목련 2019-10-25 10:03   좋아요 0 | URL
토끼가 아닌 단무지였더라고요. ㅎ

희선 2019-10-26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어리테일에는 개구리 옷을 입은 고양이가 나와요 이름은 프로시예요 그래도 프로시는 고양이라는 걸 아는데... 무지는 단무지였군요 이름에 나오지만 잘 생각하지 않으면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는 하죠 그런 걸 잘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희선

자목련 2019-10-30 17:39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개구리 옷을 입은 고양이도 귀여울 것 같아요.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117쪽)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다 읽고 발췌한 문장을 적어보니 내가 어떤 단어에 끌렸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환대’였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현재의 일상에서는 그런 환대가 사라졌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일상에서의 일탈 혹은 탈피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라 여행을 정의한다면 우리는 여행을 통해 뭔가 다른 삶을 꿈꾼다기 보다 반가운 인사와 정성스러운 마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영하에게 여행이 그러했을까.

 

보통의 여행 에세이와는 다른 여행에 대한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남다른 느낌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잦은 전학을 다녔던 그에게 여행은 그 시절의 결핍을 치유해주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언제 다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불안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사귐에 있어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았을 그에게 삶은 여행의 연장선은 아니었을까 싶다.

책은 그가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니라 일(소설 쓰기)과 취재를 위해 여행을 떠난 곳에서 마주한 일상에 대해 들려주는데 다양한 에피소드와 그에 따른 깊고 넓은 사유에 반하고 만다. 중국 여행에서 비자가 없어 도착하자마다 다시 추방당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방송으로 잘 알려진 ‘알쓸신잡’에서의 여행, 힘들었던 배낭여행과 『검은 꽃』집필을 위해 아내와 함께 멕시코를 여행한 이야기. 어떤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게 없다. 김영하는 여행을 말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대학시절 운동권에 속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여행지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으로 존재함과 동시에 특별한 존재를 원하는 여행자의 심리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로 설명하고 ‘알쓸신잡’을 통해 경험한 ‘비(非) 여행’과 ‘탈(脫) 여행’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내게 여행의 의미는 무엇이며 나는 어떤 여행을 꿈꾸는 것일까. 책에도 등장하는 방 안에서도 세계의 모든 걸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직접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이곳과 다른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과 그곳에서 다시 이곳을 그리워하는 복잡한 마음은 아닐까.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충동적으로 짐을 꾸리고 누군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세우고 점검한다. 그러나 김영하가 그러했듯 우리가 기억하는 여행은 완벽한 여행이 아닌 돌발 상황이 삶으로 파고드는 그런 여행이다. 그런 여행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 그 도움을 기억하는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전하고 그것은 아름다운 순환으로 발전한다. 여행이라는 우리네 삶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떠나보내오기도 했다. (139쪽)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며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148쪽)

방구석 여행자에 불과한 내게도 이 책은 여행의 기쁨을 안겨준다. 김영하가 여행과 접목시켜 읽어준 책들과 인문학적 사유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삶에 대해 생각할 것들을 제시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삶이라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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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0-2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대‘와 ‘여행‘ 이라는 두 단어가 닮은 듯 다른 듯이 공존하는군요. ^^

자목련 2019-10-23 14:33   좋아요 1 | URL
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인데 묘하게 공통점이 있는 듯하더라고요.
 

 

그들이 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들어갈 때는 가능했던 자세가

나올 때에는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목한 당신의 마음이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순간이 어째서

관객들에게 패러독스입니까

 

당신은 당신이 밖으로 긴 장갑을

던져주기 바랍니다 간직했거나

감추어졌다 펼쳐지는 지문을 우리는 주울 뿐입니다

당신이 발을 딛는 바닥은

내 머리 위의 심연

가까워지는 당신의 손을 절대

만질 수 없는 투명한 거리가 있습니다

 

하얀 새의 윤곽을 만드는 검은 새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가 지나치듯이 (「회전문」, 전문)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고 입안에 담아둔 말처럼 용기가 고여 있다. 어제는 주기적인 일정을 변경하면서 괜히 짜증이 났다. 한 번 변경한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 일이었다. 누구의 잘못과 미안함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속으로 짜증을 냈고 미안해하는 마음에 화가 났다. 왜 그랬을까. 번거로움, 귀찮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별거 아닌 것들인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사소하다고 여기는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나 아닌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그런 기준들이 싫다. 그런 게 싫으면서도 나는 또 누군가에게 기준을 제시한다. 참 우습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 안에는 비용의 최소화가 있다. 발생하는 비용이 최우선이다. 이게 맞는 것일까? 맞고 틀림의 문제라고 여겨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려 하는데도 한 번씩 복잡함으로 빠져든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피곤한 시간, 아주 작은 일상이 나의 기분을 바꾼다. 가스레인지 점화 손잡이가 부러졌다. 그래서 그쪽 화구를 사용하지 못했다. 인터넷 쇼핑몰에 검색하니 손잡이를 구매해서 끼우면 된다는 설명이 있었다. 제조회사의 것으로 구매를 했고 결과는 꽝이었다. 나의 부주의로 발생한 일이다. 나름 꼼꼼하게 살피고 주문했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더니 바로 부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안내를 받았다. 오래된 제품인데도 부품을 구매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고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냉장고나 TV의 경우는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부품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권장 사용기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의 택배비 2배를 지불했지만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마스크를 채우듯 점화 손잡이를 끼우니 완벽하다.

 

지난주에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되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든다. 이유는 글쎄. 이번에 수상한 작가의 소설을 책장에서 발견하고 언제 이 책을 샀던가, 혼자 웃었다. 한 권은 읽다가 말았고 한 권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어리석은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2018년 맨부커상 수상작 『밀크맨』이 궁금하다. 오래 생각하고 기다렸던 작가의 신간 소식은 기쁘다.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10월의 절반 이상이 흘렀고 아직 감기에는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독감 예방 주사는 올해도 맞지 않을 것 같다. 건강해진 기분이랄까. 그냥 그렇다고 주문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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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9-10-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찾아보니 한 권 있더라구요. 이번 아니면 언제 읽으랴 싶어 책을 들었지만, 영 페이지가 안넘어간다는..

자목련 2019-10-21 16:5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또 잠자고 있었겠지 싶어요. ㅎ
 
세계의 호수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정용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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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이 우연하게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대로 작정하고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선은 만나야 할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굳이 헤어진 연인을 만나고 싶은지 말이다. 주고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가능할까. 아니, 그것도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산뜻하고 좋은 이별은 없다. 그러니 아름다운 이별은 더더욱 없다. 버리고 싶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만남은 가능할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말라비틀어진 감정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으지도 모른다. 정용준의 짧은 소설 『세계의 호수』속 무주와 윤기처럼 7년이란 시간이라면 가능할까.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헤어진 연인이 7년 만에 만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아니다, 나의 마음도 모르는데 상대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소설처럼 둘 사이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이 아닌 먼 타국에서의 만남이라면 그런 감정에 연연하지 않을까.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윤기는 빈에 왔다. 빈의 대학 한국학과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를 번역해 연극을 하는 행사에 초정을 받은 것이다. 그곳은 7년 전 떠난 무주가 사는 스위스의 장크트갈렌과 가까운 곳이었다. 빈에 왔으니까 무주가 산다는 곳이 생각났고 그래서 메일을 보냈다. 연락하지 말라는 무주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윤기는 무주가 자신을 떠났다고 확신했다. 권태기 정도로 여겼던 연애 4년, 이별은 예정된 게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니 무주에게 묻고 싶었다. 왜 나를 떠났냐고,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만날 사람이 있다며 떠난 스위스에서 그 사람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살고 있는 무주는 7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느낌, 그 묘한 감정이 어떤 형태의 것일지 설명할 수 없지만 조금 알 것 같다. 아직 삭제하지 못하고 휴대전화에 남겨진 전화번호의 주인공을 만나는 상상을 하니 그랬다.

 

무주는 장크트갈렌의 삶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단조로우면서도 평온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윤기가 뭔가 더 깊게 알려고 하면 틈을 주지 않았다. 단단한 알맹이는 보여주지 않으려 계속해서 껍질만 벗기고 있다고 할까.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무주와 윤기는 서로에서 속했던 시간에 대해 추억하는 동시에 그것이 과거일 뿐이라는 걸 인정했다. 과거를 살아가는 건 윤기뿐이었다. 무주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을 선택한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무주는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속이 비치지 않는 바다와 같다. 무주는 마음을 말하지 않고 묘사도 하지 않았다. 간혹 무슨 말을 하더라도 눈동자와 표정에서는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보였다. 말해보라고, 설명해보라고 채근하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그저 나를 안아줬다. 걱정 마, 괜찮아, 이런 말만 했다. (101~102쪽)

 

한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소설은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온몸을 다해 마음을 전해도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7년 전 무주가 윤기에게 받은 상처가 그러했지만 윤기는 정작 알지 못했다. 상대와 나 사이의 감정이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빈에서 번역을 도와주던 민영이 장크트갈렌의 ‘세 개의 호수’를 추천했을 때 윤기가 ‘세계의 호수’로 들은 것처럼 그 차이는 엄청나다.

 

난 너와 다시 연락하고 싶어 친구처럼 지내고 싶고. 또 난 너와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아 친구처럼도 지내고 싶지 않고. 어떻게 하면 너와 연락하고 친구로 지내기 위해 연락하고 싶지 않은 이유와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은 이유를 없앨 수 있을까? (135쪽)

 

우리의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 단단했다고 믿었던 사랑은 한순간 물컹해지고 괜찮다고 여겼던 마음은 괜찮지 않다. 소설 속 윤기가 하는 말놀이처럼 말이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이들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러하듯 그들도 나를 잊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 쪽이 아린다. 이별의 유효기간이라는 게 있을까. 나만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이별은 같은 세계의 양끝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면 작별은 각각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헤어진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작은 책상에 앉아 혼자만 펼칠 수 있는 책 한 권을 갖는 일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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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0-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니 방금 동시에 좋아요 누른 거 실화입니까...정용준 소설 괜찮던데 이거도 궁금해집다. 상세한 감상평 감사합니다.

자목련 2019-10-17 11:43   좋아요 1 | URL
같은 시각에 한 공간에 머물렀다는 신기함. 정용준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도 그러하고요. 별점은 별개고요. ㅎ

수이 2019-10-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용준 작가 소설 좋아하는데 읽다보면 좀 많이 평상시보다 가라앉게 되어서 기분 좋은 날에는 좀 피하게 되는 거 같아요. 새로운 신간이 나왔네요. 작가노트 문장들 좋아요. 그리고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_라고 말씀하신 문장도 좋구요. 종종 과거 연인들이 궁금해질 때도 있는데 다시 만날 기회로 만나게 된다면 정말 어색할 거 같아요. 이별이라는 게 온전하게 둘이 합의해서 된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상대방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게 되는 과정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목련 2019-10-17 11:45   좋아요 0 | URL
수연 님이 받은 그 기운을 저도 알 것 같아요. 최근 단편은 초기작보다는 그 가라앉고 어두운 분위기가 좀 덜한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찾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는. 네, 작가노트의 짧은 글이 더 좋았어요.
저도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 떠올리게되더라고요. ㅎ

다락방 2019-10-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니 이 책을 몹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자목련 2019-10-17 11:45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의 리뷰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이렇게 댓글로 만나 더 반갑고요.

책읽는나무 2019-10-1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날 확률이라??
첫 문장에 흠칫!!...멈춰서 곰곰 생각해 보게 만들었어요.
그렇네요?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드라마에선 정말 80%가까운 확률이지 싶던데...현실에선?^^
아..그러고보니 제 친구 하나가 자목련님이 말씀하신 작정하고 만난 경우에 속하긴 합니다.헤어진 둘은 각자 가정을 꾸렸고 그러다 내 친구가 이사를 했는데 헤어진 옛 남친이 같은 아파트 그것도 같은 동에 살고 있었더랍니다.아파트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고...작정하고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각자 살아온 얘기를 나누었고,서로 잘살자고 행복을 빌어줬노란 얘기를 들으면서 아~~저런 이야기를 서로 기분좋게 나눌 수 있는 상황이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좀처럼 상상되지 않더라구요.
그냥 영화나 소설 읽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느낌은 쉽게 상상되진 않지만,어떤 이미지 같은 풍경이 곧 떠올랐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긴 합니다.
오랜만에 긴 댓글을 주절주절 달고 갑니다^^

자목련 2019-10-17 11:48   좋아요 0 | URL
소설이나 드라마의 일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더라고요. 동창회를 통해서 만나기도 하고 정말 우연처럼 마주하는 경우도 있고요. 친구 분의 경우처럼 불편한 사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의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한 권의 소설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