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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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개를 길렀다. 강아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개였다. 친구처럼 지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는 마당에서 달려와 내에 안겼다. 몸집이 작았던 나는 그런 개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그만큼 개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신탕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먹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아는 고깃국(당시 닭고기, 돼지고기,소고기)이 아닌 국이 올라오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를 먹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 개의 이름은 ‘존’이었고 당시 시골에서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약을 먹고 죽었다. 그 뒤로 개를 향한 애정은 멈췄다. 반려견으로 키우던 개가 죽고 다른 개를 입양하지 않는 사촌동생의 마음도 비슷한 건 아닐까.

 

김숨의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읽으면서 ‘존’이 자꾸 생각났다. 이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가득하다. 잔혹한 사건이나 동물 학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쥐, 염소, 자라, 벌, 노루, 곤충(나비)를 소재로 쓴 소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악몽과 흉몽의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쥐를 잡으려고 애쓰고(「쥐의 발견」), 염소를 해부하려고 염소가 오기를 기다리며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만병통치약인 양 노루의 피를 먹기 위해 노루 사냥을 위해 (「피의 부름」) 떠난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에서 남편이 본 쥐를 찾을 수 없고 오고 있다는 염소는 오지 않고 노루 사냥의 길은 멀고 지루하기만 하다. 쥐 한 마리에 10만 원을 달라며 쥐를 잡겠다고 온 이들은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나’는 이제는 제발 쥐를 발견했으면 좋을 지경이다.

한때 저수지에 가득했던 자라로 자라 요리 식당을 했던 여자의 아들이 빠져 죽은 저수지에서 시신을 찾아 헤매는 「자라」, 벌들과 함께 생활하며 꿀을 얻는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 「벌」, 옆 동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흠집 낸 열두 살 아들이 보았다는 나비를 찾아 함께 곤충채집에 나선 「곤충채집 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분명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여자가 늘어놓는 다양한 자라 요리에 대한 설명은 보통의 그것인데 너무도 잔인하게 다가오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아들이 운전하던 자동차 사고로 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척추를 다쳐 앉아 지내면서 벌통을 지켜보기만 하는 「벌」은 종종 방송에서 꽃을 따라 이동하는 양봉업자들의 일상과 비슷하면서도 혈육이 아닌 모자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평범하지 않는 아들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잡았던 수많은 곤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 소설집은 인간을 위해 실험용으로 해부대에 오르고 건강을 위해 사육당한 동물들을 위한 애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거북한 거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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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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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경우는 두 가지 정도다. 책 소개나 주변 반응이 너무 좋아서 나도 읽어볼까 하는 경우와 책 읽기에 속도(읽고 있는 책이 아주 힘들 때)가 나지 않을 때 방향 전환이라고 할까. 완벽하게 맞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러하다. 후자의 경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는다. 왜 그 작가의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마땅한 답을 없다. 그냥이라고 말할 뿐. 추리소설 작가로 내게 각인된 몇 안 되는 작가 중 가장 익숙한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과 단편 모두 나쁘지 않다. 이번에 읽은 『그대 눈동자에 건배』은 단편집으로 9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9편 모두가 추리소설이라 할 수는 없고 일상의 미스터리라 부를만한 이야기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소설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역시 추리소설로「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와 「그대 눈동자에 건배」였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는 인기 미스터리 작가가 된 미네기시에게 10년 만에 연락한 옛 연인 치리코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것도 사랑고백하기 좋은 밸런타인데이에 만나자니 미네기시는 은근히 기대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치리코의 치밀한 계획이었고 세상을 속인 미네기시의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치리코는 자신의 친구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 경찰이 되었고 그와 잠시 사귀었던 미네기시를 범인으로 확신했다. 자신의 죄를 감추고 버젓이 인기를 누리며 살아온 인간의 추악함과 친구를 위한 치리코의 마음이 대조를 이뤄 흥미로웠지만 씁쓸했다. 인간이 지닌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표제작인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경마장을 어슬렁거리는 우치무라가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나 단체 소개팅 자리에 나가게 된다. 상대는 모두 모델로 그 가운데 우치무라 바로 앞에 앉은 이는 모모카로 둘은 애니메이션이란 공통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고 계속 만남을 갖는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우치무라는 모모카가 마음을 열지 않고 애니메이션 이야기만 나누려 한다. 특이한 건 그녀가 항상 컬러 콘택트렌즈를 낀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오치무라에게 모모카는 자신이 애니메이션 속 미소녀 같아서 좋아하는 게 아니냐며 렌즈를 뺀 얼굴을 보여준다. 이 단편에게 내가 기대하고 예상했던 건 모모카가 자신의 상처를 우치무라에게 들려주고 둘 사이에 애정이 깊어지는 것이었는데, 완전 허를 찌렸다는 기분이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둘 사이의 관계는 말할 수 없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둘이 나눈 대화가 무척 의미심장했다는 건 알겠다.

“글쎄, 어째서일까. 아무튼 실제 인간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 그만,이라는 기분이 들어. 사람 얼굴은 현실 세계에서도 지겨울 만큼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사람 얼굴이 지겨워졌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을 거야. 나도 현실의 사람들과 사귀는 데 지쳐버려서 애니메이션에 자꾸 빠져드는지도 모르지” (134쪽)

일상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사람일 때가 많다. 그래서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 요즘은 인공지능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많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결혼생활과 육아를 경험하기 위한 미래의 가상 서비스를 다룬「렌털 베이비」나 외로운 소녀 미쿠가 학교길에 신사에서 만난 고양이 이나리와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사파이어의 기적」은 언젠가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할 것 같은 이야기다.「렌털 베이비」는 말 그대로 아이를 빌려주고 직접 양육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인형이지만 보채고 울고 열이 나고 사라지는 기능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겪어야 한다는 취지다. 「사파이어의 기적」에서도 인간과 고양이의 우정만 다룬 게 아니라 고양이 뇌 이식을 다뤘다. 사고를 당한 이나리의 뇌를 다른 고양이에게 이식 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쿠가 그 고양이를 알아본다는 기이한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엔 항상 우리가 소소한 일상에서 놓치는 가족 관계나 인간의 심리가 있는 듯하다. 아내가 죽고 딸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복잡한 마음을 다룬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가업을 잇지 않고 배우가 되겠다고 미국으로 떠난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유언과 유산인 수정 염주를 통해 심경의 변화를 느끼는 「수정 염주」는 가족에게 나는 어떤 가족인가 돌아보게 한다. 추리소설의 대가이면서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힘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싶다. 보통 단편집의 경우 몇 편은 나쁜 점수를 받기도 하는데 이 소설집의 단편은 모두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9편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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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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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가운데 마음을 움직이는 꽃은 목련이다. (12쪽)

 

가을이 시작되었고 나는 봄꽃을 잊었다. 그랬던 내게 이 첫 문장은 아득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만 같았다. 목련이 환하게 피었던 봄의 기억, 그 숱한 봄의 기억을 건네는 문장이다. 여기저기 꽃들이 핀다고 요란을 떨었던 마음, 그 봄은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목련나무 그 자리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시간들. 김종관의 에세이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는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그 누군가와 그 무엇에 대한 생각과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다. 오랜 시간 한곳을 떠나지 않고 살면서 마주한 일상에 대한 보통의 기록은 그곳을 떠나고 나면 모든 것이 특별함으로 바뀌고 만다. 책 속에서 저자가 살아온 이문동의 골목들이 그렇듯 말이다. 나는 이문동의 골목을 알지 못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의 길고양이나 어떤 분위기를 상상한다. 한 장의 사진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그 골목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짧은 메모,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와 같은 글, 영화에 대한 애정과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면서 그 시간을 나도 지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가을이라는 계절 탓일 수도 있고 어느 시절 내가 몰두했던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커져 만들어지는 어떤 결과가 있기도 하니까. 결핍의 상태에서만 주어지는 긍정의 힘이라 핑계를 댄다. 후회와 미련은 언제나 부질없는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그 감정에 갇히고 만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당시의 고단함을 이겼던 힘은, 가지지 못한 그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지지 못한 위로야말로 때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으로 둔감하곤 하니까. (64쪽)

여행지에서 만나는 표정과 특유의 설렘을 소란하지 않고 담담하게 적은 문장이 오히려 이방인의 시선과 감정을 꾹꾹 담은 것 같다.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을 들킬 새라 얼굴의 표정을 숨기는 모습이랄까. 김종관의 사진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물론 나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조금은 어둡고 불투명한 사진을 오래 바라본다. 그 사진에 녹아든 어떤 감정을 상상하며, 그 공간에서 오고 갔을 말들의 깊이를 상상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의 영화가 탄생했을 거라는 나만의 추측까지. 그래서 그가 보내는 편지를 꼭 받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새긴다. 설사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라도 나는 그 편지의 수신인이 되고 싶다.

 

 

 

 

영화가 가끔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읽히기를,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는 것. 그러한 목적이 살아 있을 때 영화는 살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고단한 여정에 아랑곳없이 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되어, 무관심 속에 서서히 죽음을 맞기도 한다. (131쪽)

잡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생생하게 전해지는 그의 꿈속 한 장면,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을 들려주는 사랑에 대한 아릿한 고백, 지하철 1호선의 풍경, 옛 동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점상의 기억, 사라졌거나 사라질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애틋하다. 영원할 거라 믿었던 시절, 단단하게 자리를 지킬 거라 믿었던 것들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사라지기에 그것들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이 쌓여 그가 만들 영화는 어떤 빛을 낼까. 조금은 우울하고 쓸쓸한 빛을 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빛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완벽한 빛이 될 것이다. 이 책이 그러하듯이.

 

완벽하게 좋은 순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스러져가는 환영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136쪽)

떠나온 곳으로 돌아온 삶을 살고 있지만 종종 그것을 잊는다. 작은 동네지만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자주 찾던 가게는 어느 순간 업종이 바뀌었다. 그래도 친구에게는 이곳은 내가 있는 곳이며 우리가 함께 보낸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 나의 울퉁불퉁한 마음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 당신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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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2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 천천히 사는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한주 한달 한해 휙 가 버려요 뭐 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늘 들고... 세상도 빨리 바뀌고 있겠지요 그것도 어쩌다 가끔 느끼기는 하는군요 날마다 생각하는 건 그대로인 듯도 한데, 그것도 조금씩 바뀌고 있겠습니다 며칠전에 어떤 말을 듣고 나중에 그렇게 바뀌면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아직 오지 않은 날인데...

명절이 갔군요 저는 다를 거 없었지만 편안하게 보내셨기를 바라고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자목련 2019-09-24 10:0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어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어떤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흐르지요.
답글이 늦었어요. 일교차가 심하네요. 흐선 님, 감기 조심하세요^^*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진심이 열리는 열두 번의 만남
이진순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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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산다. 어제와 같은 듯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는 힘겹게 살아내고 누군가는 가뿐한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바라는 건 같다. 불운과 불행이 아니라 행운과 행복을 꿈꾸고 더 나은 성장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고단하다. 내게만 힘든 삶이 몰아치는 것 같고 세상은 자꾸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저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지키는 이들이 있어 더 나쁜 쪽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진순의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속 인물들이 그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미완의 삶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이진순이 만난 12명의 사람들은 최고가 아닌 그냥 우리였다. 영화감독, 교육자, 소설가, 화가, 공무원, 의사라는 화려한 이력을 떠나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이들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대단한 삶이라는 틀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인터뷰어 이진순이 인터뷰이를 선택한 기준은 끌림이었고 궁금함이었다. 사회의 이슈나 흐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삶이라는 점 말이다. 12명 모두가 담담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일상을 들려준다. 아픈 과거와 지독하게 힘든 현재, 그리고 다짐 같은 것들 말이다. 이진순과 그들의 대화를 읽노라면 어느 순간 가슴이 철렁하다가 웃음이 나고 속이 시원한 느낌과 놀람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12명 모두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었지만 내게는 특히 영화감독 임순례, 작가 손아람, 다큐멘터리 감독 장혜영, 효담학원 이사장 채현국의 인터뷰에 마음이 흔들렸고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우리는 항상 좋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그 반대의 경우에 쉽게 절망한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임순례 감독의 이런 말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의 삶을 혼내는 동시에 포근한 위로가 된다.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법칙 같다고나 할까.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는 말을 꼭 붙잡고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잘 되는 것도 물거품 같은 거고, 못 되는 것도 다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해요. 좋은 일에도 마가 끼고, 나쁜 일에도 교훈이 있어요. 모든 일엔 다 이면이 있으니까요.(임순례, 104쪽)

그런가 하면 잘 몰랐던 인물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어 반가웠다. 손아람, 장혜영, 채현국이 그러했다. 손아람은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그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배경은 몰랐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그가 평등, 인권, 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경험 밖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경외감을 솔직하게 말하는 그의 신념 같은 게 전해졌다.

제가 겪어보지 못한 인생 경험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매혹되는 경향이 있어요. 삶의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긴장을 헤치고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이 있죠. 내가 못 살아본 삶. (손아람, 197쪽)

그와 다르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기에 급급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뉴스나 언론을 통해 그들의 삶과 조우한다. 짧은 순간 탄식하거나 감탄한다. 장애시설에 살던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장혜영의 일상은 그래서 처음엔 왜?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나의 편견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왜 장애시설에 계속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세상이라 말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기는커녕 인정하는 일도 어려워하는 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를 쓰고 내달린다. 그러나 그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늘 쉽지 않아서 신기루처럼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기약했던 ‘내일’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장혜영은 경쟁과 도태의 사이클을 거부한 대가로 학벌사회에서 명문대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잃었지만,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오늘’을 벌었다. (222쪽) ​

이런 마음은 시대의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채현국의 말에 중심을 잡았다.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지켜보고 몸소 체험하면서 살아온 인생 선배의 말은 옳았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삶의 원칙을 세우며 그것을 고집하며 살아온 것이다. 오직 성공만 바라보며 살아가느라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했다. 어디서 꽃이 피고 어디서 바람이 부는 지도 모르고 곁에서 피 흘리며 홀로 싸우는 이들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삶에는 원칙이 없어요. 우리가 원칙을 이룩해가는 거예요. 시대마다 최선을 다해서 원칙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있는 거지, 어느 역사에도 주어져 있는 원칙 같은 건 없어요. (채현국, 304쪽)

마지막 채현국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앞서 11명의 인물들이 겹쳐진다. 세월호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숨진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 막막하고 무기력할 때 동료의 이름과 사진을 본다는 이국종, 공무원의 충성 대상이 되는 것은 국민이라 말하는 노태강, 아무도 듣지 않는 노인들의 생애를 듣고 구술하는 최현숙, 아픈 베트남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구수정, 성소수자들에게 행복하라 말하는 엄마 이은재,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게 제일 우선이라는 윤석남, 글쓰기를 통해 자기 치유를 하고 극복한다는 황석영이 살아낸 삶의 순간들 말이다.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함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난 믿는다. (7쪽)

그들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 무너지고 좌절하며 절망했다. 아마도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단단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당신의 오늘은 어떤지 묻고 싶다. 지겹도록 힘들었는지 그래도 괜찮았는지 궁금하다. 이진순의 글처럼 항상 아름답게 반짝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안에 빛의 존재를 믿는다면 어느 순간 반짝 일 것이다. 그 순간이 짧더라도 우리는 그 빛을 발견하고 간직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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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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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은 어른, 대학, 독립, 자유와 같은 단어였다. 적어도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스무 살이 되면 해야 할(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을 작성하곤 했다. 그러나 스무 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성적에 맞춰 들어온 대학에서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연애는 달콤하지 않았다. 당시에 시들하게만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입체적으로 살아나 내게로 달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은희경의 『빛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를 추억한다거나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다.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그 시절과 소설 속 그 시절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다고 할까.

 

1977년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한 여자 대학교 입학한 화자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대학 생활과 동기, 선배들의 이야기로 함축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대상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숙사의 내부 사정도 흥미롭다. 귀가 시간과 점호가 있다거나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과정이나 외출증을 끊는 일은 마치 군대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과거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단순한 구성은 아니다. 1977년과 2017년을 오가며 화자인 ‘김유경’과 같은 대학 기숙사 동기이자 소설가인 ‘김희진’의 시선으로 다루기에 서로 다른 기억으로 서술된다.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소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 있다.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뭔가를 욕망하거나 탄식할 나이도 지났으며 회고 취미를 가질 만큼 자기애가 강하고 기억을 편집하는 데에 능한 사람도 못 되었다. 뜨거움과 차가움 둘 다 희미해졌다. (281쪽)

 

어쩌면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흐려지고 왜곡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소설에서 소설가 김희진의 소설 속에 그려진 1977년 기숙사의 모습은 소설가의 시선으로 재편집되었고 ‘나’는 그것이 때로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4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을 꼬집어 판가름을 내고 싶지 않다. ‘나’는 과거의 자신이 품었던 생각과 의지대로 현재를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일부는 그 과거를 바탕으로 존재하는 건 인정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기대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소설 속 그녀들과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거나 살았다면 당시 서울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유신정권의 시대, 대학생의 정치적 의식과 활동에 대해 은희경이 날카롭게 파고들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 학보사 기자인 화자의 시선으로 스케치를 하듯 보여준다.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의 미팅과 연애, 결혼에 대해서도 기숙사 구성원 각각의 목소리를 빌려 들려준다. 한 방에 네 명씩 생활하는 여대생은 다양한 사회 계층을 의미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 계층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런 구성이 가장 매력적이고 탁월하다. 여자 대학교의 기숙사란 특정 공간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는 가장 정확하고 내밀한 그녀들의 의견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의 곁에서 그들의 수다, 때로는 논쟁을 가만히 듣고 있는 듯 착각에 빠지는 이유다. 40년이 지난 지금의 목소리는 어떤가 생각도 해본다.

 

‘나’가 친구인 김희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은 독자에게도 똑같이 작동한다. 소설 속 그들과 같은 세대가 아니더라도 잊고 있던 어떤 시절을 불러오는 기능을 한다. 동시에 소설가 은희경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자신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게 아닐까 궁금해진다. 나에게는 지워진 기억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명하게 살아날 때 한 편으로는 당혹스럽지만 한 편으로는 반갑고 신기하다. 은희경의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기분을 안겨줄 것이다.

 

기억이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만나 차이라는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337쪽)

 

오랜만에 만난 은희경의 장편을 읽으면서 정미경, 공지영의 소설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던 나를 되찾고 싶어졌다. 이처럼 소설은 때로 잊었던 나를 불러오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이런 소설이 있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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