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았던 비가 내렸다. 어쩌면 예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곧 장맛비가 내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는 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는 것과 닮은 기분을 데리고 온다. 좀 엉뚱하지만 허연이 만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으면서 책 속의 설국을 마주하면서 비가 쏟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과 비, 그것이 주는 예민한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고 할까. 어쨌거나 이 책이 좋았다는 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읽기도 전에 문장에 미혹된 소설이다. 알다시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니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거나 읽어보고 싶은 리스트에 담긴 소설이 아닐까 싶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되어 소설의 전체를 이끄는 소설은 많지 않다. 첫 문장을 시작으로 눈의 나라로 초대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생각하면 나는 기차와 하나가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 낯선 세계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번도 눈으로 가득한 땅, 그곳이 어디든 방문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아마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 이는 많을 것이다. 눈부시게 강렬하고 차가운 눈과는 반대로 뜨거운 태양의 계절인 여름에 만나는 설국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헌연의 이 책은 설국 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오직 설국만 읽었기에 소설과 작가를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허연이 들려주는 대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나는 일, 그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았다.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내가 남긴 발자국을 바라보는 아득한 기분이라고 할까. 말이 많아진다. 기다렸던 책이라 그랬을까. 읽는 내내 지루함은 찾을 수 없었고 더욱더 가와바타 야스나리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 책을 따라 여행을 할 수도 있고 눈의 계절에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어느 겨울 저녁, 가까이 있는 산과 멀리 있는 산이 한꺼번에 성에 낀 기차 유리창에 비친 풍경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기차 안과 기차 밖, 속계와 선계의 경계에 비친 여인의 얼굴. 그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허무.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나는 에치고유자와를 그리워하며 『설국』을 읽고 또 읽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여인의 옆얼굴을 보는 듯하기도 했고, 때로는 바쇼의 하이쿠 한 구절에서 보여주는 소멸의 미학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어떨 때는 전철역에서 펄럭이는 주간지의 속됨이 느껴지다가도, 어떨 때는 일본에서 처음 봤던 칠흑같이 엄숙한 장례식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게 『설국』은 깨달음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눈앞에 등장하는, 문을 열 때마다 이 문이 끝일 거라고 기대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새로운 문 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되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

 

허연은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유자와를 시작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이 꽃을 피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그의 소설을 하나씩 설명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시인의 해설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완벽에 가깝다. 책은 언제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데 설국이 여러 단편의 연작 형태였다는 것도 그렇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소설을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쓴 게 아니라 연작 형태로 시작했다고 한다.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을까 생각하니 아름다운 문장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가히, 최고의 문장이라 할 수 있는 도입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고치고 또 고쳤을 테니 말이다.

 

책을 통해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인생에 대해 알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 일본의 문화적 흐름, 동료들과의 교류, 사랑까지 말이다.  설국을 비롯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다른 소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산소리, 고도에 대한 소개도 그렇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추구한 이미지와 소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허연은 하나씩 짚어준다. 특히『설국』에 대한 해설은 다시 소설을 꺼내들게 만든다. 주인공 시마무라와 두 여인 고마코와 요코의 심리적 변화를 보여주는 묘사와 대립에 대한 부분은 소설을 빛나게 만든다.

 

설국은 줄거리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정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라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에치고유자와에 도착한 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 드러나는 이미지, 어둠 속 기차 차창에 비친 신비로운 이미지, 바로 그 이미지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가울 책이겠지만 솔직히 나는 허연의 이야기가 좋았다. 위대한 문학 속 장치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고 할까. 시인이 만난 소설가, 설국의 고장인 에치고유자와에 대한 시인의 기대로 시작한 도입부터 여행의 묘미를 만날 수 있다. 고백하자면 지금껏 만났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가운데 제일 좋았다. 읽을수록 끝을 향하는 게 아쉬웠다. 그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인생을 채운 허무하면서도 외로운 분위기와 이전에 몰랐던 그의 소설에 대한 허연의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누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은 죽음과 하나였다. 그런 그에게 생은 부질없이 소멸하는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자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에 충격을 받고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느껴진다. 나 역시 그의 죽음이 그가 살아온 생과 잘 어울린다는 허연의 생각에 동의한다.

 

살아 있어 느끼는 환희와 기쁨보다는 삶 자체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고요한 허무가 그를 지탱했을 것만 같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와 다름없이 성장했고 파혼의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사라진 약혼자로 인해 비탄에 빠진 젊음, 문학이 있었기에 그는 살아갈 수 있었던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그래서 그에게 체념은 체념이 아닌 위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체념의 힘을 알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체념의 깊이와 대가가 느꼈을 그것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는 궁극이 있다. 궁극의 욕망, 궁극의 삶, 궁극의 관계, 궁극을 찾아간 그의 귀착지는 허무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간의 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존재함과 동시에 결국엔 소멸하고야 하는 생의 본질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 어떤 희망이나 행복을 발견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따라 허연은 그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태어난 집을 가만히 지켜보고 그가 걸었을 길을 걷고, 학창시절 다녔던 서점에 가보고 그가 마셨던 커피를 마시면서 그를 생각한다. 허무로 남은 생을 말이다. 닿는 순간 부서지고 마는, 부질없이 소멸하는 생에 대해서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즐거움에 사색이 더해지는 시간이다.

 

온 세상을 순백으로 덮는 눈도 그러하다. 햇빛이 닿는 순간, 녹아버리고 만다.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만지고 그것에 닿기를 원한다. 겨울에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초여름, 설국으로의 초대는 반갑고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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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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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오묘하다. 낮과는 다르게 밤에는 새로운 감각이 살아나는 듯하다. 그건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분출된다. 같은 듯 다른 밤이 펼쳐진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밤은 더욱 그렇다. 밤의 분위기에 취한다고 할까. 분위기에 취해 무언가를 잃어버리기나 잊어버린다. 반대로 누군가는 어떤 것을 얻기도 하고. 노르웨이 작가 한느 오스타빅의 『아들의 밤』은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진 소설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떠날 것이다. 되도록 아주 멀리. 창문으로 언덕과 마을 그리고 호수를 바라보며 낯선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5쪽)

이혼한 젊은 엄마 비베케와 와 눈을 깜빡이는 틱 증상을 가진 어린 아들 욘은 4개월 전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아직 이곳을 잘 모르고 낯설다. 엄마는 퇴근 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길 원하고 여덟 살 욘은 그런 엄마를 방해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맞이하는 적막한 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채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둘은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다. 아니, 그런 여유가 없다. 마치 어겨서는 안되는 약속과 규칙처럼 서로는 그렇게 지낸다. 그러나 내일은 욘의 아홉 살 생일이니 오늘 밤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아들 욘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거나 욘은 엄마에게 케이크를 준비했냐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지 않을까. 욘은 말 대신 조용히 집을 나온다. 엄마가 모든 걸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옆집 할아버지를 방문하고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의 집에 놀러 간다.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차가운 밤은 빨리 도착하고 욘은 소녀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하고 다정한 그 집에 더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기차 선물세트를 받을 아홉 살 생일을 생각하며 문을 열지만 열리지 않고 욘은 혼자 남겨진다. 엄마가 곧 올테니 욘은 기다릴 수 있다.  

 

손이 벌써 차가웠다. 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가 생각났고 잠든 소녀에게서 본 흰 눈동자가 떠올랐다. 진입로를 내려가 도로에 들어섰다. 그는 다음 날 통학버스를 타면 꼭 소녀를 찾아보겠다고 다짐하고 소녀를 발견하면 말을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21쪽)

욘의 생각과는 다르게 비베케는 이동식 놀이동산에 있다. 도서관에 갔다가 놀이동산이 마을에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 거기서 일하는 남자 톰을 만나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그를 꼼꼼하게 살핀다. 혼자 외로웠던 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욘이 집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거라는 걱정은 아예 없었다. 그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단정하고 외출을 했으니까.

 

그녀는 톰과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생각했다. 그녀는 카운터에 기댄 톰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코로 조용히 내쉬었다. 그녀는 남자가 그런 식으로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는 거의 잠든 것처럼 보였다. 순간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했다.(183쪽)

​기다리는 엄마는 오지 않고 낯선 여자가 욘에게 말을 걸고 차에 태운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마냥 엄마를 기다리는 것보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순간 여자가 욘을 납치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조바심이 났다. 다행인지 여자는 욘을 내려주고 자신의 길을 가고 욘은 혼자 눈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불빛을 받는 눈은 황색과 청동색을 띠고 있었고 움푹 패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숲은 고요했다. 욘은 야간 조명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동안 자신이 두려워해온 일을 극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만 밟으며 발자국과 스키 자국 사이로 걸었다. 기차처럼 소리가 나도록 리듬을 넣어가며 숨을 쉬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겨우 반밖에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멀리 있는 듯했다. 그는 오르막길이 나타나기 전에는 결코 앞을 쳐다보면 안 된다고 되뇌며 묵묵히 걸었다.(225~226쪽)

단 하룻밤의 이야기지만 아들과 엄마의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보통의 일상처럼 보이는 밤 일지도 모른다. 일에 치친 엄마가 원하는 휴식과 아들이 바라는 그것이 같은 지점에 닿는 순간은 수많은 감정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외출을 끝내고 돌아와 아들의 잠자리를 확인하지 않는 엄마, 시시콜콜 모든 걸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어린 아들의 마음이 겨울밤처럼 시리다 못해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아름다움의 비극이라고 할까. 비베케의 외로움을 이해한다고 해도 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고요한 슬픔이 흐르는 밤이 사라지고 그들이 마주할 아침이 나는 너무 두렵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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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백수린.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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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돌아 다시 봄을 읽는다. 김수온의 신춘문예 등단작을 떠올리며 이번 단편을 기대한다. 같은 듯 다른 결을 보여주는 백수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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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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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가 날 때도 있다.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고 말이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건  같은데 말이다. 내 고민이 제일 크고, 내 상처가 제일 깊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말해 뭐 할까,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키우고 누군가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잊고 산다.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목도하고서야 비로소 내 삶의 안위에 감사한다. 큰언니의 죽음 후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함을 말하곤 했다. 어느 순간 그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은 늘어난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왜 이 모양으로 사는지 우울해진다. 그러다 또 정신을 차린다.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넘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수연의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지금 여기,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

 

어떤 책은 읽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도 일정 부분 그렇다.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 책,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하루하루의 기록, 감당할 수 없는 통증으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마음, 그것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지켜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까지 담겼다. 졸업작품 전시회로 바쁜 미대생, 졸업을 하면 어떤 일상이 펼쳐질까. 그 기대만으로도 삶이 충만했을 것이다. 그저 피곤함이라 여겼던 증상들이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니.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서울로 달려와 치료에 매달렸다. 빠른 진로를 찾기 위해 검정고시를 선택했고 15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스물도 되기 전에 6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고 투병이 아닌 재생불량성 빈혈을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지만 쏟아지는 울음을 참을 수 있었을까. 수혈을 위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마주한 위급한 상황에 저자의 마음은 우리를 모두 그곳으로 이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곁에 생사를 오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 나도 죽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니 내가 한때 바랐던 죽음을 잠시나마 들여다본 느낌이어서 마음이 걷잡을 수없이 흔들렸다.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단지 내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일이 엉켰다고, 조금 힘들다고 죽고 싶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렸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120쪽)

 

빈혈은 흔한 질병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재생불량성이다. 수혈을 받아야 하고 복용하는 약은 몸을 이전과 다른 몸으로 이끈다. 구토, 설사, 열, 동반할 수 있는 모든 증상이 발생한다. 골수이식을 위한 길도 멀다. 공여자를 찾기도 어렵고 찾는다 해도 기증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사실, 드라마나 방송을 통해 잠깐 보고 들은 게 전부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항생제 부작용에도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항암과 골수이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책은 이처럼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증상, 단계, 치료)를 알려준다. 누군가는 ‘재생불량성 빈혈’ 투병기, 병상일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봐도 좋다. 골수 이식의 과정과 입원 생활, 그 밖에 필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까. 더불어 저자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가지의 겪었던 수많은 감정, 그로 인해 성장하는 모습을 들려준다.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일,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의지대로 걸을 수 있는 일, 퇴원 후 일상으로의 복귀에서 겪는 어려움까지 말이다.

 

누가 내 옆에 남아있건 떠나건,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걸 뼈에 새기듯 깨달았다. 상대에게 크고 작은 의미를 부여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상대를 향한 모든 감정은 결국 내 몫에 지나지 않는다. (…) 타인을 마주하는 일은 어쩌면 좀 더 성숙한 나를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235쪽)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에게 가시를 쥐여준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잡지 말기를. 내가 받지 않으면 그 가시는 상대가 계속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262쪽)

 

6년의 기록을 읽었지만 그 시간을 모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너무도 어린 나이에 단단해진 저자가 안쓰럽다가도 대단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상해서 화가 나서 때려치우고 싶은 생이라고 말했던 우리에게 삶을 보듬게 만든다. 갖다 버리고 싶은 내 인생’이 아니라 꼭 안아주고 싶은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버티는 일, 견디는 일, 힘들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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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는 사이에 6월이 되었다. 더위에 약한 누군가는 에어컨을 켰고 선풍기는 진즉 꺼내 놓았다. 화려했던 꽃잔치가 끝이 나고 초록의 맛으로 가득하다. 가까운 해수욕장의 개장을 시작으로 바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름은 휴가를 계획하게 만든다. 작은언니는 제주도 일정을 잡았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무언가를 계획한다는 건 반복된 일상에 소소한 흥을 돋운다.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예매하고 책을 구매하고 색다른 음식을 먹는 일. 큰 계획이 아닌 작은 계획도 그렇다.

 

사용하고 있는 청소기가 이상하다. 소음이 많아졌고 뭔가 예전과 다르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하는 대신에 나는 청소기를 검색했다. 당장 멋지고 튼튼한 청소기를 구매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일은 일정의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이런 행동도 계획은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사용하게 될 청소기를 검색하는 일, 읽고 있는 책의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하는 일, 신간 알림 메시지를 받고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일. 그 모든 게 제법 신나는 일상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아들의 밤』을 읽으며 소설 속 장면을 상상하는 일, 『소설 보다 : 봄 2019』를 읽을 즐거움을 기대하는 일,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속 OST를 듣는 일, 마트에 좋아하는 자두가 나올 날을 기다리는 일, 생각을 이어가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아, 하는 사이에 6월을 산다. 지난 5개월 동안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속상한 일도 있고 여러 가지 걱정은 여전하다. 그것들과 함께 6월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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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4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