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예약된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확인하며 의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러했고 AS를 위해 방문한 기사가 주방 베란다로 향하는 창틀을 수리하는 과정이 그러했다. 일정 부분은 짐작했던 것과 같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다음 진료 예약을 하면서 의사와 나눈 대화는 진취적이지 않았고, 기사의 수리 과정은 힘겨워 보였다. 전화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사는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범위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막상 창을 떼어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도움을 줄 수 없이 바라보는 나는 조금 불안했다. 창에 붙인 시트지, 바로 옆에 놓인 냉장고는 기사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레일을 교체하고 간단한 설명을 하고 수리는 끝났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 안다고 단언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니까.

 

 봄에 만났던 친구를 만났다. 그 사이 우리는 조금 더 늙었고 그 늙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20대의 단호했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지금의 그녀가 참 힘들구나 생각했다. 관계에 지쳐있는 모습, 친구들과 지인에게 그녀가 내어주는 공간과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줄어듦은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한국시리즈는 끝났고 ​본방사수를 기다리는 드라마는 없지만 기다리는 글은 있었다. 한 번씩 신간을 검색하는 작가, 한귀은이다. 적당히 쓸쓸하고 고요한 밤을 함께 보내기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밤을 걷는 문장들』, 이토록 적절한 제목이라니. 내가 아끼는 한강의 단편집 『내 여자의 열매』와 『노랑무늬영원』개정판이 나왔다. 표현과 문장을 다듬었다고 하니 더 단단하고 차분할 것 같다. 나희덕의 시집『파일명 서정시』까지, 시를 읽는 밤이 이어져도 나쁘지 않겠다.

 

 잔잔하게 눈이 내리는 밤을 상상한다. 접혔던 밤이 펼쳐지는 순간, 고요해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조심스러운 그런 밤. 잠든 밤을 깨우지 않고 혼자 가만히 지켜보는 그런 밤. 밤이 꿈을 꾸는 상상하는 밤. 잠들지 못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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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눈사람이 되어 버린 그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한강의 소설을 읽는 겨울, 헤어짐도 따뜻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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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경기문학 3
배수아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의 소설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 소설들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감각이나 사고가 마냥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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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리는 걸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날 것 그랬네. 혼잣말로 시작하는 하루다. 미세먼지를 날려 줄 비라 반갑기도 하고 생각보다 제법 굵은 빗줄기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자니 괜히 울울해진다. 초대하지 않은 감기는 빨리 나가지 않고 이제라도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나 생각한다. 생각은 늘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다. 감 농사가 풍년이라 지인이 보낸 상자에는 감이 가득하고 거실에 바꿔 달은 커튼은 무거움이 느껴진다. 11월에는 이런 책들이 나를 부른다. 곧 출간 예정인 박준의 두 번째 시집, 나희덕의 시집. 한때는 열심히 사 모으던 시집, 이제는 모으는 일도 줄어들었다. 여하튼 두 시집은 궁금하다. 시집과 함께 구병모와 정세랑의 소설집도 나왔다. 둘 다 매력적인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집도 마찬가지다. 비 오는 아침에 드는 장필순의 노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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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건너가는 중입니다 - 세상 끝에 내몰린 사람들, 독서로 치유하다
앤 기슬슨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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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들의 고통에 새롭게 민감해지고 스스로의 고통에 더 관대해지도록, 우리에게는 친절과 인내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까닭이다. 우리는 희망한다. 아니, 안다. 반대편에는 건강함과 좋은 느낌이 있고 혼자서든 아니면 치유법을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든 어떻게든 이 나쁜 상황의 연속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259~260쪽)

 

 누구나 가족을 잃는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시기가 다를 뿐 헤어짐은 예정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과 슬픔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것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타인은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는 갑자기 예고 없이 가족을 잃는다. 대부분은 사고로 인한 것이다. 대책을 간구할 여유도 없이 허망하게 가족을 잃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떠올리는 사건이 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순간도 허락되지 않은 이별. 앤 기슬슨의 『슬픔을 건너가는 중입니다』을 읽으면서 그들이 건너가고 있을 슬픔을 나는 알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이 책은 ‘세상 끝에 내몰린 사람들, 독서로 치유하다’란 부제를 달았지만 실상은 저자인 앤 기슬슨의 내밀한 고통과 상처,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앤 기슬슨의 삶엔 쌍둥이 여동생들의 자살이라는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의 슬픔을 알아보는 남편 브래드를 만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새로운 시련은 그녀를 강타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온몸으로 마주한 것이다. 도시 전체가 카트리나의 폭격을 맞은 뉴올리언스는 그녀의 삶의 터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고 아이를 키우고 일상을 영위하면서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했고 삶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지인이 독서클럽을 제안했고 앤 기슬슨과 남편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저마다의 고통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모여 ‘실존적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독서클럽’이 시작되었다. 2011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보통의 독서모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책이라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가 될 것인가? 내 경우를 말하자면 도움이 된다고 답할 수 있다. 앤 기슬슨의 『슬픔을 건너가는 중입니다』이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고는 할 수 없다. 1년 동안 독서클럽은 진행되었다. 한 권의 책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소중한 문장을 읽고 나누며 자신의 일상과 공유하는 과정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앤 기슬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독서클럽이 진행되는 과정에 암 투병을 하던 아버지를 잃었고 상실은 더욱 커져만 갔다. 책에는 그녀에게 애증의 대상인 가족에 대한 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서로를 의지하며 다른 형제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던 쌍둥이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 그녀들의 자살이 불러온 슬픔의 무게로 가득하다. 너무 무겁고 어두워서 독서클럽을 통해 슬픔의 본질에서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지 방법을 기대했던 독자에겐 아쉬울 수 있다.

 

 독서클럽을 통해 읽은 책에 대한 감정을 말하는 과정에서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던 이야기를 토해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혼자는 도저히 꺼낼 수 없는 것들을 같이 거들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에 힘을 얻는 말이다. 어쩌면 책은 하나의 도구이자 방편이며 중요한 건 곁에 있는 사람은 아닐까 싶다. 가족들이 쌍둥이 여동생들의 언급하지 못하고 지내온 시간을 조금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결국엔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누게 된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제외하고 최근에 떠난 아버지와 큰언니에 대한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것이 마치 큰 잘못인 듯 말이다. 그러나 상실과 슬픔은 숨기고 감추어야 할 게 아니다. 앤 기슬슨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쌍둥이 동생들을 “죽은 네 이모”,“죽은 내 동생들”이라 말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사실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힘들다는 이유로, 슬픔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이런 고백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대화를 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쌍둥이를 “너희들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내 동생들”이라고 불렀다. 그 표현이 우리 모두를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쌍둥이를 다른 표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지나치게 그들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우리 모두가 해방되었고, 그들이 살았던 삶과 그들에게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삶의 모습들이 스르륵 풀려나왔다. 그들은 절대 우리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와닿지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도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가끔씩 나는 한동안 보지 않았던 그들의 사진을 볼 것이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웃음보다 그들이 살아가는 실제 모습을 더 잘 포착한 어색한 표정이나 몸동작 같은 것들을. 그러면서 나는 불시에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살았고 사랑받았다. (344쪽)

 

 독서클럽에서 다룬 책과 앤 기슬슨이 언급한 책 가운데 내가 소장한 책도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라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존 치버의 『존 치버의 편지』대신 존 치버의 『존 치버의 일기』가 있지만 그래도 괜찮을 듯하다. 거기다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를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책이 주는 위로, 책을 둘러싼 이들의 공기가 우리를 때로는 숨 쉬게 한다. 내가 느낀 것과 이 책에서 전하려는 게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책과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슬픔을 건너가는 중이겠지만 외로운 그 길을 함께 하는 이가 있다면 조금은 편안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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