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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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든다. 뭐든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거니와 괜한 시비에 휘말리는 불편함이 싫기 때문이다. 가족과도 필요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영은 남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손톱의 때만큼도 하고 싶지 않았다. (18쪽)는 세영의 마음이 유별나다고 할 수 없다.

 

 소설은 동갑내기 부부 세영과 무원, 그리고 딸 동주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약사인 세영은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과 딸 동주를 돌보는 그 외의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유산으로 받은 호텔을 관리하느라 집에 자주 들르지 않는 남편 무원의 태도도 무던하게 받아들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가족은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중산층의 모습처럼 보인다. 중학교 2학년 딸 동주의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만 없었다면 이런 일상이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원은 무대로 세영은 세영대로 동주가 다니는 중학교 ‘학부모회’ 부회장인 세영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여해야만 했다. 가해자인 남학생 양은석과 차지수는 동주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피해자 유강은 전학을 온 아이로 조부모와 지내고 있었다.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회의에는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할아버지가 보내는 문자도 부담스럽고 약국으로 두통약을 사러 오면서 은근슬쩍 말을 거는 가해자의 부모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무원을 핑계로 참석을 피하고 호텔로 향했다. 세영에 학교 일로 인해 복잡했다면 무원은 온라인 동호회 활동으로 골치를 섞고 있었다. 자영업자들의 모임에 호텔이 아닌 약국을 운영하는 걸로 가입했다. 어쩌다 보니 무원은 회원들에게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만날 사이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남자 회원이 무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자신이 남자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무원은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해를 확고히 하는 시도를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실제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상황을 그냥 놔두었다. 시간이 그렇게 갔다. (95쪽)

 

 어떻게 보면 세영과 무원 모두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의논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세영과 무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피해를 받고 싶지도 않은 세영이나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무원은 어느 순간의 나였거나 현재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세영이 빠진 학폭위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은 서면사과와 봉사로 결정 났고 피해 학생은 등원을 하지 않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 참석을 두고 학부모회는 참석을 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고 세영의 부담을 줄어들었다. 하지만 반장이었던 동주는 유강을 보러 간다.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데리러 온 세영에게 동주는 완강하게 더 있다 가겠다고 말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유강의 장례식장에 가겠다는 동주가 나중에 가라는 세영에게 “나중에…… 언제요? 엄마, 시간이 없어요.” (122쪽)라고 한 말은 너무도 적확하게 모두의 가슴을 찌른다. 우리에게 나중은 있을까.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구하는 밤이 언젠가 올 것이다.’ (148쪽)란 의미심장한 말도 마찬가지다. 불안하고도 불편한 순간을 모면했지만 언젠가 우리가 당사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모두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소설을 읽고 관심, 관여, 개입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정이현은 당신이 세영과 무원이라면 어떻게 했겠냐고, 묻는 듯하다.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세상과의 나 사이에 불투명한 유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는 타인과의 단절뿐 아니라 스스로와도 단절하고 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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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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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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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란 제목에 자석처럼 내 마음이 달라붙었다. 모르겠다. 무슨 이유인지, 나대로란 말이 좋았는지, ‘혼자서’란 말에 끌렸는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작가의 일기 같기도 한 글이다. 일흔넷 모모코 씨는 혼자 산다. 남편은 죽고 자식은 모두 분가했다. 자식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사는 건 아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기도 힘들고 집안 정리도 귀찮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모모코 씨는 혼자서 웃기도 하고 누군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대화의 상대는 바로 모모코 씨 자신이면서 다른 누군가다. 고향 사투리를 써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해는 하지 말길, 치매는 아니니까. 투박한 사투리로 혼잣말을 하는 모모코 씨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시골에서 태어난 나에게 사투리는 익숙하고 지금 주변에 어르신들의 대화도 표준어는 아니니까.

 

 이쯤 되면 당신이 짐작한 대로 이 책은 노년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소설이 맞다. 뭐 그렇다고 고독이나 외로움을 줄기차게 늘어놓는 건 아니다. 모모코 씨가 들려주는 지난 생은 내 할머니나 어머니의 그것과 비슷해 친숙하다. 고향에서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물넷에 좋아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돌연 도쿄로 향했다. 고향에 미련을 두지 않고 도쿄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러다 남편 슈조와 만나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고 열심히 살았다. 갑작스러운 슈조의 죽음으로 인해 모모코 씨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유로운 해방감이면서도 슈조를 향한 그리움이 동반된 형태의 감정이었다. 지난 삶에 대한 후회나 회한도 있었고 남은 생을 새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모모코 씨는 맞서 싸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함양해 온 것은 순응이나 협조, 요컨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하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맞서 싸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끈기 있게 뭔가에 몰입하는 힘을 미처 기르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는 후회를 질질 끌며 살았다. 왜 그랬을까. (119쪽)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진료 대기실에서 자신과 같은 비슷한 노인의 행동을 살피고 지하철에서는 오래전 기억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모모코 씨의 일상은 언젠가 나와 당신의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혼자 산길을 걸어 슈조의 무덤으로 향하는 모모코 씨의 모습이 대단하구나 싶다. 단순한 여정이 아니기에 일흔넷의 노인에게 고역이다. 그러나 모모코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발이 미끄러져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앞으로 전진을 선택한다. 슈조가 죽기 전 함께 올랐던 길, 혼자서 낯선 불단 앞에서 흐르는 눈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모모코 씨의 감각. 신비롭고 놀라운 감각을 먼 훗날의 나도 경험할 수 있을까.

 

 몸의 표면이 한없이 옅어지고 경계가 사라져 나는 녹아내린다. 나는 공증으로 확산되고 방 안에 나와 나의 슬픔이 충만해진다. 나는 전체이면서도 부분인 듯한, 정처 없이 떠다니다 풀어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들면서, 뭐라 말할 수 없이 온화하고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의식은 어딘가 한 점에 집중해, 지금 일어나는 이 최초의 감각에 경악하고 있다. (133쪽)

 

 모모코 씨의 생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보통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하고 특별한 건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모코 씨이자 이 소설을 쓴 와카타케 치사코의 사고다. 소설 속 모모코 씨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표현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내적 생활을 쓰고 싶었습니다. …… 노년이 되어서야 얻을 수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감각, 그 부분을 소설로 써나가고 싶습니다. 란 말이 주는 아름다운 울림.

 

 모두 늙는다는 걸 안다. 제대로 늙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늘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주한 늙음에 대해선 자신이 늙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경험할 수 없기에 노년의 삶이 안겨줄 충만함을 우리는 짐작할 수조차 없다. 모모코 씨도 그랬을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을까. 떠나온 고향의 사투리와 작고 보잘것없는 핫카쿠산이 다르게 보일 줄 몰랐다.

 

 누구나 혼자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의 늙음은 어떨까. 혼자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현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지키고 싶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겠지. 수많은 모모코 씨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못하는 이들도 나와 닿을 수 없는 이들도 그렇게 살아갈 거라 생각하면 편안해진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있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간다. 모모코 씨가 모모코 씨의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끌어당기며, 등을 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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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 - 덜 신경 쓰고, 더 사랑하는 법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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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을은 조급함을 몰고 온다. 곧 이 계절은 겨울로 바뀌고 올해는 사라지고 내년이 도착하는 사실이 그러하다. 뭔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계획했던 일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계획했던 일들을 다 못했다고 해서 내가 크게 잘못한 걸까. 잘못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이 한결 놓이는 듯하다가 다시 복잡해진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괜한 수다를 떨거나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가을이라서 그럴까. 방황하는 젊음도 아닌데 무엇이 나를 흔드는가. 그러다 이런 문자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말, 내가 사랑하는 말, 어쩌면 누구나 소중하게 여기는 보통의 말.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길이 있다. 저마다의 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한다. (253쪽)

 

 내가 택한 방향으로 열심히 걷고 있다고 믿었는데 저 깊은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다른 이들의 길을 부러워하고 있었나 보다. 나의 삶, 나의 길에 나만의 의미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저마다의 삶을 존중하고 나 스스로 나를 축복하는 일.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단어에 집착하지 않으니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란 제목에서 행복 대신 나는 건강, 즐거움, 평온, 웃음으로 대신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그것을 내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그러니 자신의 상황, 감정에 따라 좋아하는 구절,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다르다. 당연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힘들거나 지난 인연을 자꾸만 붙잡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이런 부분이 위로가 될 것이다. 감정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책은 그런 존재니까. 오늘 읽은 문장이 오늘보다는 내일 더 와닿을 수 있고, 이미 지나간 어느 시절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니까. 하나의 사랑이 끝났으니 마침표를 찍는 일도 중요하다. 다른 사랑이 올 수 있도록. 

 모든 사랑은 서로가 성장하는 과정임을 나는 배웠다. 누가 상처를 주었고 이별을 먼저 말했는지 따져보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행복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173쪽)


 사소한 것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관계에 대해서는 그 사소함과 소소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라는 것을 즐길 수 있다고 여겼지만 온전한 혼자는 조금 힘든가 보다. 오래된 친구,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 온라인에서 만나 지속된 인연, 그 인연들에 대해 생각한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죽은 관계란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 믿음에, 아무 때나 연락해도 반갑게 받아줄 거라 여기며, 무뚝뚝하게 구는 내 마음을 혼내는 것 같다.

 만나지 않으면 죽는다. 평행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서로 연락하지 않으면 죽은 관계이다. (121쪽)

 첫 직장에서 만난 업무의 고단함을 격려하고 상사 욕을 하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렸던 동기는 지금껏 안부를 전하고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사이다. 신기하게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순수한 기억을 공유하며 부끄러운 첫사랑의 속내까지도 꺼내 보일 수 있는 친구, 선배라는 이름으로 내게 너무 소중한 이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맙고도 고마운 친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어느덧 그들의 이름에는 나의 일부가 담겨있다.

 삶의 첫 장에서 만난 인연들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함께한 추억이 많은 친구들을, 그 추억이 별 의미 없고 시답잖은 기억일지라도 함께 공유한 시간과 기억은 삶을 빛나게 하는 보석과도 같다. (280쪽) 

 여러 빛깔의 마음을 불러오고 잊었던 시간을 데리고 오는 책이다.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좋아거나 예쁜 사진과 짧은 글로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이 책이 깊은 밤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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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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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결같은 순간이 있다. 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꿈속처럼 아득한 순간 말이다. 비현실적으로 너무 좋아서 꿈인가 싶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제발 꿈이었으면 하는 그런 순간. 배수아의 단편집『뱀과 물』을 읽으면서도 누군가의 꿈속을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 꿈은 악몽은 아닐까. 악몽이라면 소설 속 인물을 꿈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 배수아를 읽는 일은 흐릿한 이미지를 오래 바라보는 일, 불편한 공간에 둘러싸인 낯선 시선과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설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왔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반두를 다녀온 것 같고, 길을 걷다가 눈 아이를 만나면 알아볼 것만 같다. 누군가는 배수아의 소설에서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어보았을 잔혹동화나 마법의 세계를 보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맞는 말이다. 돌봄을 받지 못한 소녀, 폭력과 폭언인지도 모르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을 소녀, 어머니나 아버지의 부재로 이어진 상실의 결속 같은 것. 그래서 단편의 소녀는 누군가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그 길에서 자신과 닮은 이를 만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곳, 그들만이 알 수 있는 곳이 된다.

 

 그 공간을 만들고 끌어당긴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배수아만의 감각이며 경험일지도 모른다. 공포나 두려움의 기억을 조작하여  환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소녀는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하고 주무르는 건 아닐까. 이제 그 이야기 속 소녀를 만나보자. 키가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았던 소녀와 키가 커서 눈에 띄는 소녀, 아버지를 찾아 반두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탄 소녀, 소년으로 위장해 위험한 기찻길에 누워 엄마를 기다렸던 소녀. 한 번도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어린 시절. 온통 불온하고 불길한 기운이 가득하다. 소녀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니, 성장통을 앓지 않고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소녀 앞에 나타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들, 그러니까 열 개의 손가락에 금빛 반지를 끼고 있었지만 얼굴은 알 수 없고 마술사 아버지와 거인이면서 사령관인 아버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 유년의 기억은 왜곡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견딜 수 있기에. 「얼이에 대하여」속 여동생을 낳고 아팠던 어머니를 기다리던 ‘나’는 소년이자 소녀였던 얼이의 다른 이름이었고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와「노인 울라에서」에서 아버지를 찾는 ‘눈 아이’는 동일 인물처럼 보인다.보호자 없이 아이는 어디론가 계속 이동한다. 이미 거론한 단편 속 소녀뿐 아니라「뱀과 물」속 소녀는 혼자 서류를 들고 직접 전학할 학교에 찾아오고 심지어 「도둑 자매」에서는 유괴를 당한다. 유방암을 앓아 더럽고 이상한 냄새로 가득한 방에 누워있는 여자를 엄마라 부르며 아이에게 언니라며 말하는 이상한 소녀에게서 도망을 치려고 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소녀는 너무 어려 공포를 모르거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 순진하게 믿고 있는 듯 그려진다. 

 

 소녀 곁을 맴도는 어른은 누구인가. 단편마다 거론되지만 등장하지 않는 마술사이거나 사령관인 아버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 대신 「1979」의 남자 교사와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속 할머니는 보호자일까. 남자 교사는 자신의 반 아이들을 과수원 집에 초대하지만 소녀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집안 사정도 제대로 모르며 할머니는 커다란 트렁크에 짐을 챙겨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남교사는 허울뿐인 어른이었지만 할머니는 손녀의 이상이었다. 어쩌면 교사가 매일 통화하는 아픈 동생만이 소녀를 아는 유일한 어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소설집은 그가 정의한 어린 시절로 압축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1979」, 94쪽)


 꿈을 꾼다. 그것이 악몽인지 길몽인지 분간할 수 없다. 아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계속 걷는 소녀는 어른이 되었지만 방향을 잃었고 목적지를 찾지 못한다. 승려를 만나기도 하고 뱀과 물이 나타나 위협하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의 여행자를 알아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편지를 받고 상실의 결속으로 쓰인 시를 낭독한다. 꿈에서 깨어야 할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들에게 어떻게 작별의 인사를 전해야 할지. 망상일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이에게 잘 지내라고, 잘 있으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소리를 내지 않는 대신 입모양으로 길게 말한다. 안녕이라고.

 

 어린 시절이라고 불리는 거무스름한 낡은 주물 거울에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도둑 자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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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당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아침을 먹었다. 멀리서 온 작은 집식구가 만들어 온 음식을 함께 먹었다. 작은 집식구들은 아침을 먹자마자 길을 나섰고 우리는 점심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영화를 보러 나갔다. 영화관에는 삼삼오오 우리처럼 가족들이 많았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달을 찾았다. 아파트 동 사이로 달이 떠올랐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까맣고 까만 하늘에 둥근 달이 참 편안해 보였다. 정말 그 어딘가 토끼가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남은 연휴에는 게으름을 부렸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는 사촌 오빠에 대해 말을 나누고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를 보았다. 얼굴이 달처럼 커졌고 몸무게는 늘었다. 명절이니까, 괜찮다고 어젯밤에는 잠들기 전에 혼자 중얼거렸다.

 

 뒤늦은 명절 인사를 문자로 주고받고 9월이 아닌 10월 달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0월 할 일을 기록하고 병원 예약 일도 챙기고 알람을 설정하고 친구의 생일을 확인했다. 블로그에서 알려주는 지난날의 기록도 읽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르지 않다는 건 좋은 일일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좋지 않더라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 대상 수상작, 우수작품상으로 엮인 신간에 대한 문자를 여러 통 받았다. 한 권으로 충분하다는 소식이나 다름없었다. 걷기 좋은 계절 걸어본다 시리즈도 눈에 들어온다. 베란다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들어 달을 본다.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닿을 수도 없다. 어떤 일이 그러하듯이. 달을 보는 일, 세상사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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