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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발견
이원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평점 :
겨울이 차지했던 공간이 사라지고 봄이 도착했다. 대청소를 계획하기도 하고 옷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입은 옷들을 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책, 그릇, 옷을 정리한다. 내가 모두 좋아했던 것들이며 한때는 집착할 정도의 욕심을 부린 것들이다.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고 할까. 그러니 이원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은 끌리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거기다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묘한 동경이 있지 않은가. 미리 말하자면 이원의 시집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원의 글을 처음 읽는 거나 다름없다. 공교롭게도 항상 밤에 읽었는데 낮보다는 밤에 더 깊게 문장에 취할 수 있었다.
최소는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다. 꼭 필요한 것을 발견하겠다는 의지다. 그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은 대부분 놓쳤다는 뜻이다. 가장 작은 것, 최소를 발견하기까지는 최대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최소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긴다. 최소의 발견만 하겠다는 능동성이 생긴다. (「서문」, 7쪽)
‘최소’라는 말을 떠올리면 아주 작은 것, 뭔가 부족한 것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시인의 글을 읽고 보니 가장 소중한 것이나 가장 놀라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지를 확립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순간을 즐기는 삶이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순간주의자가 되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순간주의자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전생 같다. 나는 순간만 알겠다. 그래서 무모하다.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 아무 의미 없이 질러 대다 사라지는 아이들이 외마디 비명 같은, 신명으로 들끓어 오르는 무당의 맨발이 올라탄 작두 위 같은,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가 좋다. 어쩌면 나는 순간에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48~49쪽)
순간 궁금하다. 무엇이 시인을 순간주의자, 최소 발견자로 살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시의 원천이었을까.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 고독, 그리고 시. 하나의 사물을 통과해서 시를 품고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산문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남다른 시선, 모든 것이 시로 끝을 맺는 듯한 느낌이다. 시를 쓴다는 뜨거운 자부심과 함께 시와 닿는 순간을 위한 처절한 고통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35쪽)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 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 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모니터를 새{鳥}로 만드는 방법」, 75쪽)
우아하고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허투루 내줄 수 없는 시인의 감정을 일부만 보여준다고 할까. 한 번도 꺼내 보여주지 않았던 비밀의 조각과 함께 말이다. 시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매일매일 가방에 넣고 꺼내 보았다는 스무 살 무렵의 시인을 만나고 화가 세잔에 대한 이야기, 그림을 통해 시를 말하는 시인. 그러므로 이 산문집을 읽는 독자는 시인 이원과 비밀을 공유한 것이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글은 더욱 그렇다. 시인 김춘수, 김혜순, 김행숙, 조용미, 김민정과의 인연과 그들을 향한 사랑. 소설가 강영숙과 김경욱과의 우정, 그리고 스승 오규원에 대한 존경까지.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건 시를 읽는 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것은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섣부른 자신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원의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뿐 아니라 그녀가 사랑한 시인의 시도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거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깊이라서 힘겨운 산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산문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최소의 발견』이라고 말하겠다.
최초의 방이 자궁이라면, 최후의 방은 무덤인가. 방은 삶과도 연결되며 죽음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방은 삶이며 죽음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이며 죽음은 삶이다. (「방에 앉아 방을 궁금해하다」, 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