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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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 것인가, 계획하지 않고 그저 살아간다. 누군가는 불성실한 것 아니냐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럼, 하루를 잘 사는 게 계획이라고 슬그머니 말한다. 하루를 사는 건 너무 어렵고 금세 지나간다. 월 단위, 년 단위의 계획을 세우지만 대체로 무리한 계획인지 아니면 늘 등장하는 변수 때문인지 계획은 뼈대만 남을 뿐 살을 붙이지 못한다. 뻔한 핑계라는 걸 안다. 그래도 하루를 잘 살고 싶은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다다시’의 삶이나 나의 삶이나 비슷한 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같은 듯 다른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즐겁게 읽고 좋아하기에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건 아니니까. 이혼을 한 중년 남자 다다시가 자신이 원했던 오래된 주택을 구하고 혼자서 자신만의 삶을 계획하고 하나하나 실천하는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으니까.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계절의 움직임과 소리. 집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소유하는 개념도 좋았다. 다다시에게 집주인 소노다 씨가 세를 놓으면서 오래된 집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시야 저편, 공원 안쪽에는 키 큰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 올려다봐야 할 만큼 큰 나무들이 서 있다. 바람에 의외로 잘 휘어지는 큰 나무는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올려다봐야 할 만큼 키가 크다는 뜻은 이 집도 내 모습도 나무가 내려다본다는 뜻이다. 여름이 되면 철새가 날아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울거나 하지 않을까. 지금 들리는 것은 공원을 걷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목소리다. 적당한 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새소리도 아이들 목소리도 들리면 기쁘다. (35쪽) 

 

 나는 북쪽으로 난 이 창문이 좋았다. 옆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사이에 가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나무만 보인다. 창문에는 차양을 깊게 쳤다. 지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뻗은 서까래가 차양을 지탱한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더니 이층 어느 방에서나 창문으로 차양이 보인다는 게 생각 외로 신선했다. 서까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게 실감 났다. (63쪽)

 

 걷기에 충분한 공원, 자동차를 처분하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삶, 나에게 맞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시간, 느리게 천천히 먹고 마시는 다다시의 일상은 여유 그 자체로 다가왔다. 책이나 옷에 대해 의견이 달랐던 전처가 없는 공간, 누구의 참견도 없는 혼자 만의 우아한 삶이라 그를 부러워하는 이도 많았다. 유학을 떠난 아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간다. 옛 불륜 상대였던 가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라 할 수 있는 연인 가나를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전혀 소식을 몰랐던 가나가 지금은 다다시가 사는 동네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좋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 다다시는 혼란스럽다. 그러나 가나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심하게 대한다. 아무렇지 않게 다다시의 집을 들르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다다시와 다르게 가나에겐 관계의 회복이나 불타오를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쯤에서 나는 소설이 뻔한 결말로 흐르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노련하고 세련된 마쓰이에 마사시는 달랐다. 그가 공들이는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사는지 시선을 돌린다. 가나의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다다시는 둘이 아닌 셋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나와 가나의 아버지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퇴원 후 심각해진 치매로 인해 다다시는 자주 가나의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거기다 미국으로 떠난 소노다 씨가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는 사정까지 생겼다. 계획했던 삶의 수정은 불가피하고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까 불안한 두려움을 포함한 기대도. 하루만큼 늙어가지만 내일보다는 젊은 날을 산다는 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애초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키스를 했어도 잠자리를 함께했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은 남는다. 말을 써서 생각하고 말을 써서 뜻을 전하게 되면서,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라는 유별난 생물이 된 이래로, 전달될 게 전달되지 않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말은 머릿속에서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터무니없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엉뚱한 해석을 하게 한다. 말을 초원한 직감도 있지만, 직감도 맞을 때가 있으면 틀릴 때도 있다. (244쪽)

 

 남들이 부러워하는 혼자만의 우아한 삶은 다다시에게는 때로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벽난로 앞의 온기를 나룰 이가 필요했고 냉동실에 만들어 둔 만두를 함께 먹고 차를 마실 이가 그립기도 했다. 그것을 채워줄 가나와 아버지가 등장했다. 가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봐야 하고 다다시는 그들 곁에 머물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피할 수도 없고 피하지도 않을 삶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결정된 것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다시는 충만하다. 소설의 제목처럼 우아한지 어떤지 알 수 없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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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1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리뷰 읽으면서 이 부분이 저는 좋았어요.

- 계획했던 삶의 수정은 불가피하고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까 불안한 두려움을 포함한 기대도. 하루만큼 늙어가지만 내일보다는 젊은 날을 산다는 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따뜻한 바람이 세게 부는 오후예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4-13 10:18   좋아요 1 | URL
이렇게 세심하게 짚어주시니 감사해요. 서니데이 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최소의 발견
이원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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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차지했던 공간이 사라지고 봄이 도착했다. 대청소를 계획하기도 하고 옷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입은 옷들을 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책, 그릇, 옷을 정리한다. 내가 모두 좋아했던 것들이며 한때는 집착할 정도의 욕심을 부린 것들이다.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고 할까. 그러니 이원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은 끌리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거기다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묘한 동경이 있지 않은가. 미리 말하자면 이원의 시집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원의 글을 처음 읽는 거나 다름없다. 공교롭게도 항상 밤에 읽었는데 낮보다는 밤에 더 깊게 문장에 취할 수 있었다.

 

 최소는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다. 꼭 필요한 것을 발견하겠다는 의지다. 그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은 대부분 놓쳤다는 뜻이다. 가장 작은 것, 최소를 발견하기까지는 최대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최소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긴다. 최소의 발견만 하겠다는 능동성이 생긴다. (「서문」, 7쪽)

 

 ‘최소’라는 말을 떠올리면 아주 작은 것, 뭔가 부족한 것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시인의 글을 읽고 보니 가장 소중한 것이나 가장 놀라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지를 확립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순간을 즐기는 삶이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순간주의자가 되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순간주의자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전생 같다. 나는 순간만 알겠다. 그래서 무모하다.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 아무 의미 없이 질러 대다 사라지는 아이들이 외마디 비명 같은, 신명으로 들끓어 오르는 무당의 맨발이 올라탄 작두 위 같은,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가 좋다. 어쩌면 나는 순간에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48~49쪽)

 

 순간 궁금하다. 무엇이 시인을 순간주의자, 최소 발견자로 살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시의 원천이었을까.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 고독, 그리고 시. 하나의 사물을 통과해서 시를 품고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산문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남다른 시선, 모든 것이 시로 끝을 맺는 듯한 느낌이다. 시를 쓴다는 뜨거운 자부심과 함께 시와 닿는 순간을 위한 처절한 고통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35쪽)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 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 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모니터를 새{鳥}로 만드는 방법」, 75쪽)

 

 우아하고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허투루 내줄 수 없는 시인의 감정을 일부만 보여준다고 할까. 한 번도 꺼내 보여주지 않았던 비밀의 조각과 함께 말이다. 시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매일매일 가방에 넣고 꺼내 보았다는 스무 살 무렵의 시인을 만나고 화가 세잔에 대한 이야기, 그림을 통해 시를 말하는 시인. 그러므로 이 산문집을 읽는 독자는 시인 이원과 비밀을 공유한 것이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글은 더욱 그렇다. 시인 김춘수, 김혜순, 김행숙, 조용미, 김민정과의 인연과 그들을 향한 사랑. 소설가 강영숙과 김경욱과의 우정, 그리고 스승 오규원에 대한 존경까지.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건 시를 읽는 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것은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섣부른 자신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원의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뿐 아니라 그녀가 사랑한 시인의 시도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거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깊이라서 힘겨운 산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산문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최소의 발견』이라고 말하겠다.

 

 최초의 방이 자궁이라면, 최후의 방은 무덤인가. 방은 삶과도 연결되며 죽음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방은 삶이며 죽음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이며 죽음은 삶이다.  (「방에 앉아 방을 궁금해하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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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04-0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시인이 쓴 시는 제대로 안 읽고 에세이를 더 열심히 읽어요. 시는 안 읽어봤지만 이 에세이 끌리네요.

자목련 2018-04-09 11:46   좋아요 0 | URL
어쩌면 시에 대한 열망이 시인의 산문집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
 

 

 지난 한주 동안엔 새벽 기도에 참석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날씨가 좋아지자 보이기 시작했다. 막 피기 시작한 매화가 교교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새벽과 달빛, 그리고 매화는 참 아름다웠다. 피고 지는 게 당연하듯 매화는 꽃잎을 떨구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붉은 동백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목련은 맨 마지막에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하는 봄이지만 매년 꽃들을 볼 때마다 대견한 생각이 든다. 친구가 보내온 살구꽃 사진을 보면서는 사과꽃과 배꽃을 맘껏 볼 수 있는 과수원 집 딸이었으면 좋았겠다 생각도 했다. 실은 봄마다 하는 생각이다. 수고로움보다는 예쁜 꽃을 즐길 생각에 말이다.

 

 올 듯 말 듯 줄다리기를 하는 듯했던 봄이 와 있었다. 그리고 벌써 4월이다. 봄이 되면 기다려지는 책도 있다. 젊은작가상, 이번에는 박민정 작가가 수상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작가와 소설을 읽는 일, 봄이 주는 즐거움이다. 테마 소설 시리즈 바통의 두 번째 이야기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음식과 요리를 테마로 했으니 맛있는 소설을 기대한다. 개정판에는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데 김이설의 『나쁜 피』가 개정판으로 나왔다. 아직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9년 전에 만났던 소설인데 다시 읽어도 좋을 소설이다.

 

 

 

 

 

 

 

 

 

 

 

 

 

 

 

 

 

 

 

 

 

 

 

 밭에서 흙은 만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쑥과 봄나물을 캐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이사를 위한 사다리차를 자주 만나는 봄이다.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는 봄이다. 삶이 움직이는 봄이다. 옷 정리를 해야 하고 올봄에는 거실 커튼도 빨아야 한다. 더불어 묵혔던 어떤 마음도 시원하게 빨아야지. 마음을 헹구는 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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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4-0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물이 소생하는 봄, 나이를 먹어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의 몸도 그 섭리에 반응하는 걸 보면 신기해요..^^

자목련 2018-04-02 16:0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참 놀라워요^^

프레이야 2018-04-01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헹구는 봄이길 저도 바래봅니다. 화사하고 온화한 봄날 맞이하세요^^

자목련 2018-04-02 16:08   좋아요 0 | URL
헹구고 헹궈서 깨끗해진 봄이면 좋겠어요, ㅎ 오늘은 살짝 덥기까지 해요. 이러다 꽃이 지기도 전에 여름이 올까 걱정이에요.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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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대학 동기, 학창 시절 함께 예배를 드렸던 이들, 친구의 친구로 잠깐 알고 지냈던 이들이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이도 있다. 아득하게 떠오르는 얼굴. 그런 이들의 이름은 기억하려 애쓰다 마주하는 이름이 있다. 우습게도 소설 속 인물이다.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이름, 그러나 내게는 친구 같았고 동생 같았던 이름. 김이설의 『환영』 속 윤영, 김금희의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속 양희, 가장 최근에 만난 정미경의 단편「못」속 금희, 그리고 최은영의 소설 속 인물인 쇼코나 영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조금은 더 나이를 먹고 삶의 파도를 무던하게 받아들일까. 모두가 여성이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여성 작가이기도 하고 내가 여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길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여러 번 읽었다. 화려하거나 특이한 문장이 생각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건 김금희다. 최은영의 소설은 너무 평이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잔상이 남는다. 그것도 길고 짙게 말이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고등학교 때 잠깐 만난 쇼코와 나의 이야기다. 한국에 온 쇼코와 함께 지낸 며칠. 일본과 한국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편지로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그러다 점점 멀어진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사소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던 순간은 사라진다. 시간을 핑계로 서로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잊고 만다. 쇼코와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관계의 성장.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쇼코의 미소」, 24쪽)

 

 그리고 쇼코와 나에게는 모두 할아버지가 있다. 쇼코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증오하고 분노의 대상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시간이 흘러 일본에 방문한 내가 만난 쇼코는 아픈 상태였고 할아버지가 쇼코를 지키고 있었다. 영화 공부를 하고 감독을 꿈꾸지만 다른 현실을 사는 나는 손녀를 보러 온 할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아픈 몸으로 병원에 다니러 온 것도 모르고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한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생뚱맞게도 나는 피천득의 인연이 생각났다. 세 번의 만남, 피천득은 아사코와 세 번째는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했지만 쇼코와 나에게는 세 번째 만남은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약속을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벅찬 일인가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이라는 소재와 개인의 삶을 연결한 「씬짜오, 씬짜오」 속 투이와 나의 이별, 먼 타국의 수도원에서 만나고 헤어진「한지와 영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서로에게 상처가 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좋았던 순간 마저 꺼내보지 못하는 감정까지.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한지와 영지」, 164쪽)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씬짜오, 씬짜오」, 89~90쪽)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생각한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라며 그 파장은 더욱 크다. 떠난 자리는 그가 아닌 다른 누구로도 다시 채워질 수 없으니까. 관계가 끝났다 하더라도 그렇다. 누군가는 그런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겪으면서 삶은 단단해지는 거라고 말하지만 너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최은영은 그런 관계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낸 작가가 아닐까 싶다.

 
 『쇼코의 미소』속 인물의 목소리는 작고 희미하다. 그러나 강하다. 그건 타인의 아픔을 나누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단편마다 소통, 공감, 이해를 말한다.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과 마주한다. 「쇼코의 미소」,「씬짜오, 씬짜오」, 「먼 곳에서 온 노래」,「한지와 영주」, 여전히 2014년 4월을 사는 이들을 말하는 「미카엘라」와「비밀」은 담담하게 그날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나와 너의 이야기가 결국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것이 최은영의 힘이 아닐까. 진심을 다해 전하는 위로, 당신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소설이다. 소설 속 모든 화자가 여성이라는 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어김없이 봄은 다시 찾아왔다. 겨울을 잊지 말라는 듯 봄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이제 또 우리는 4월을 맞고 그날을 살 것이다. 쇼코와 영지는 어떤 4월을 맞을까. 누군가는 광장으로 모여들 것이고, 누군가는 가만히 기도를 드릴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해서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한다. 나를 떠난 당신의 안부를 잠시 생각한다. 내가 떠나온 당신도 나를 생각할까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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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이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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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자주 악몽 같다. 악몽이라면 잠에서 빠져나오면 그만일 텐데. 그럴 수 없어 더욱 고통스럽다. 이유의 소설집『커트』속 인물은 하나같이 잔혹한 꿈같은 현실을 사는 듯 보인다. 표제작인 「커트」는 단호하면서도 강렬한 의지가 느껴진다. 잔혹학고 섬뜩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미용사인 ‘나’는 과거를 단절하고 싶다.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고 계속 무언가를 잘라야만 후련한 기분이 든다. 기이하면서도 무서운 장면인데 이상하게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날카롭게 벼려진 가윗날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유연하게 휘면서 다가왔다.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가건물이 붕 떠올랐다. 가윗날에서 뿜어지는 빛이 눈앞에서 부서진다. 잘린 머리통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다름 아닌 내 머리통이었다.

 “엄마 아파?

 아이가 태연스레 물었다.

“목이 잘렸는데 안 아프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이 몸에서 분리되자 막혔던 숨이 트였다.  (「커트」, 221~222쪽)


 안면인식장애라는 병에 걸린 형사가 아내를 구분하지 못하는 「낯선 아내」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어제는 분명 아내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범인과 아내를 혼동한다. 아무리 아내의 특징을 떠올려봐도 속수무책이다. 결국 자신도 알아보지 못할 미래를 앞둔 것이다. 과연 형사인 그만 그럴까? 얼굴만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의 대화는 나와 누군가의 대화로 겹쳐질 수 있다.

 

 당신은 나를 몰라.”

 홀리듯 그런 말을 했다.

 “걱정 마, 당신도 나를 모르니까.” (「낯선 아내」, 18쪽)

 

 그런가 하면 가방을 보면 무조건 가방을 열어봐야만 하는 남자의 이야기 「가방의 목적」과 밤마다 집에 침입하거나 주위를 맴돌며 무서운 살기를 보내는 회색 후드를 입은 인물에 대해 묘사하는 「밤은 후드를 입는다」도 흥미롭다. 가방의 노예라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진짜 우리는 점차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방을 대신한 것들은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가장 기억에 남은 소설은 ‘나’의 복제인간을 주문하는 「빨간 눈」이다. 나와 똑같지만 온전한 나는 될 수 없는 나를 관찰한다. 수많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나. 언젠가는 그들 가운데 진짜 나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기억하지 못하는 형사처럼.

 

 나는 나를 주문했다. 너는 포장 없이 걸어서 내게 왔다. 주문한 상품에 두 다리가 달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방식이었다. (「빨간 눈」, 90쪽)

 

 얼마 뒤 너는 쟁반에 받쳐온 세 개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커피 위 휘핑크림을 한 숟갈 떠서 아이에게 내미는 너의 해맑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무거운 고철덩어리로만 느껴지던 카메라를 들었다. 아이는 네게 내민 크림을 받아먹었다. 너의 몸이 자연스레 아이 쪽으로 움직였다. 주하가 고개를 들어 너를 봤다. 나는 숨을 참고 프레임 속 피사체 덩어리를 끌어당겼다. 아이의 머리 위로 두 입술이 맞닿았다. (「빨간 눈」, 107쪽)

 

 꿈꾸는 대로 현실에서 이뤄지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상상하게 만드는 「꿈꾸지 않겠습니다」와 자신이 원하는 삶, 그러니까 꿈꾸는 삶을 찾아 야츠로 떠난 남자의 이야기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는 꿈을 꾸는 달콤한 행복이 아닌 꿈이 현실이 됐을 때 벌어지는 잔혹한 현실을 실감 나게 그렸다.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일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악몽이나 흉몽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유의 소설은 잔인하지만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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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3-23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은 사진으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서재에 와서 보니, 프로필 사진이 더 예뻐요.
햇볕 환한 봄 느낌도 들고요. 그리고 하얀 레이스 보이는 신발도요.
자목련님,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자목련 2018-03-26 14:55   좋아요 1 | URL
예쁘다 해주시니 진짜 예뻐 보입니다, ㅎ 좋아하는 스커트와 신발이에요.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진짜 봄이 오기를 기다려요.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