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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 날씨만큼 변화무쌍한 중년의 마음을 보듬다
한귀은 지음 / 웨일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눈부신 봄날만 봄날이 아니다. 그저 조금만 따뜻해도 된다. 손바닥만 한 양지만 있어도 된다. 숨 쉴 만큼, 함께 이야기 나눌 만큼의 바람만 있으면 된다. 그런 날이 많지 않아도 된다. 봄날이 그런 것이라면 중년을 넘어도, 더 나이가 들어도 간혹 와준다. 그게 생(生)이다. (58~59쪽)
다시 봄을 맞았다. 감사한 일이다. 감사의 뒷면에는 불안이 안착해있다.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나이가 드니 괜한 근심 걱정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저 작년과 다름없이 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 더 괜찮은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해서다. 아픈 곳이 늘어나고 병원과 더 친해져야 하는 걸 아는데도 그 친함을 미루고 싶은 거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지금이 제일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이 그러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를 앞당겨 살 수도 없으니 말이다. 지금을 사는 것, 그게 생이라는 걸 안다. 다만 변덕스러운 감정을 다스리고 싶은 마음과 소멸하는 감정을 살리고 싶은 마음의 균형을 잘 잡고 싶은 것이다. 한귀은의 글처럼 균형잡기가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으려는 노력, 흔들릴 때마다 균형을 잡고 제 길에 서거나 다른 길로 이동하는 것. 어쩌면 인생은 그런 균형잡기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한귀은의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은 대체로 편안했고 제목처럼 맑음이었다. 편안과 맑음의 정의를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리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아니 그건 누군가 내려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귀은의 산문을 꾸준히 읽었다. 좋아한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즐겁게 읽었다. 어려운 문구나 포장된 지식이 아닌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 그 안에서 발견하는 작고 소박하지만 소중한 사유가 빛난다.
나이가 들고 젊음과 청춘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중년, 혹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때로 직설적으로 때로 다정하게 때로 호쾌하게 들려준다. 그녀 스스로 거쳐온 감정의 시행착오나 여전히 견디는 우울에 대해서도 솔직하다.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예전의 글과는 다른 느낌도 있다. 그건 시간의 힘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아프고 병든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다라 달라진다.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편두통으로 고생한 이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어느 나이에 접어들면 누구나 저마다의 병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느끼는 행복은 별 게 아니다. 그저 ‘다행이다’ 싶은 게 행복이다. 덜 추워서 다행이다, 덜 더워서 다행이다, 덜 피곤해서 다행이다, 덜 아파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놓고 그것을 피하면 행복하다고 해석하는 거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 몸의 통증도, 마음의 통증도 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할 대상이다. 통증을 해석하고 나니 통증에 대한 두려움도 좀 사라진다. 통증에 대해 알게 된 셈이다. 무릇 아는 것만큼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31쪽)
백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다. 점점 내가 수긍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사회를 보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살아야 하는 게 맞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아이와 조카에게 느끼는 세대 차이, 어느새 나의 의견은 무시당하고 목소리는 작아진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싶고 그 모습을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다. 친구나 지인과의 통화나 만남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좌절하고 울적해질 때가 많다. 이런 나를 한귀은의 문장이 달래주었다. 공부를 하면서 글을 쓰고 그로 인해 가치를 찾았다는 글이었다. 물론 그녀의 글쓰기와 나의 글쓰기는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굉장히 기뻤다.
공부가 글을 쓰게 했다. 지금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해 쓴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애쓰는 것이 내겐 글쓰기다. 사랑과도 비슷하다. 사랑도 그를 알아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알고 싶어서 사랑하는 거다. 알아가면서 사랑하는 거다. 자꾸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까 사랑을 그칠 수가 없다. 글쓰기도 그렇다. 알고 싶어서 쓰고, 알아가면서 쓰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을 멈출 수 없게 된다. (91쪽)
우리는 작가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다를 것이라 예단한다. 하지만 사는 건 고만고만하고 한귀은의 삶도 다르지 않아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층간 소음으로 정중한 편지를 써서 부탁을 했지만 결국엔 이사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이야기, 인터넷에서 셀프 컷 동영상을 보고 따라 했다가 아침 일찍 미용실로 향한 이야기, 인문학 강의에 온 주부들과 나눈 대화, 어린 제자의 결혼 소식에 걱정이 아닌 응원을 건네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 교수라는 자리를 생각하면 조금 더 철학적인 소재의 접근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자신에게 아들을 너무 사랑한다고 걱정이라는 엄마, 손녀딸과 딸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아버지. 그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일상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더 그녀의 우아한 수다에 빠져들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거기에 늙어가면서 만나는 복잡한 감정을 나누고 같이 웃고 울수 있는 친구 같은 글이다. 좋은 할머니가 아닌 동시대의 삶에 고민하고 참여하고 감사해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글에는 무언의 감탄사를 마구 외친다.
‘어쩌라고’ 하는 상태가 될 때도 있다. 그때도 희망이 없지 않다. 마지막에 힘을 한 번 더 끙 하고 내보는 것이다. ‘어쩌라고’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소리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일말의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기운을 내게 하는 기합인 것이다. 얍, 어쩌라고! (242쪽)
어떤 나이를 살든 그 삶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찾아온 봄날을 놓치지 말고 안아주고, 늙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아닌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삶에 대해 기대를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