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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보랏빛소 / 2018년 1월
평점 :
어떤 책은 읽기도 전에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몰려온다. 대게 고전이 그러하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확인을 받은 작가, 출판계에서 추천을 하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에 나만 읽어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게 고전은 언제나 도전이다. 욕심을 부르는 것 역시 고전이다.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 『명암』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소설이자 미완으로 남은 소설. 그는 어떻게 마무리 짓고 싶었을까.
600쪽에 가까운 소설은 남편 쓰다와 아내 오노부의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그들을 둘러싼 가족, 친구, 지인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인간의 겉과 안을 들여다보고 신랄하게 묘사해 보여준다. 남편 쓰다가 치질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 준비를 하는 과정을 아내 오노부와 상의하는 부분으로 시작한다. 쓰다와 오노부는 겉으로는 서로를 완벽하게 믿고 신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의 재력을 믿고 허세를 부리고 오노부는 남편의 사랑으로 모든 게 충분하다는 위장을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면 상대에게 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인물의 설정과 구도는 쓰다와 오노부 부부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같다고 볼 수 있다. 쓰다를 키워준 숙부 후지이와 쓰다, 쓰다와 여동생 히데오, 쓰다와 친구 고바야시. 오노부를 돌봐준 이모부 오카모토와 오노부, 오노부와 사촌 여동생 쓰기코, 오노부와 히데오. 그리고 쓰다의 직장 상사인 요시카와 내외와 관계까지.
쓰다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고 퇴원하여 온천에 요양을 하러 가는 2주 동안 그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서로 다투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중을 떠본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살아가는 쓰다 부부와 가난으로 모든 이들에게 멸시받는다고 여기는 고바야시는 상류의 삶과 하류의 삶을 대변한다. 연극을 관람하고 외식을 즐기는 사업가 오카모토 가족과 글을 쓰는 지식인에 가까운 후지이의 가족의 비교도 마찬가지다.
“숙부가 아이를 오카모토 집에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기질의 차이, 가풍의 차이, 생활의 차이……, 그 모든 것이 금방 떠올랐다. 언제나 책상 앞에 앉아 활자 위에서만 기염을 토하고 있는 숙부는, 현실 사회에서 결코 글만큼 유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암암리에 그 거리를 자각하고 있었다. 그 자각은 또 그를 다소 완고하고 만들었다. 얼마나 배타적으로 만들었다. 금력, 권력 본위의 사회에 나가 타인에게 바보 취급을 받는 것처럼 두려워하는 그의 일면에는, 그 금권 본위 때문에 잣니의 본성이 조금이라도 더럽혀지면 큰일이라는 경계심이 끊임없이 어느 한구석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67~68쪽)
쓰다는 입원해 있는 동안 아내 오노부, 동생 히데오, 친구 고바야시, 요시카와 부인의 병문안을 받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몹시 흥미롭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연극을 보러 가는 오노부를 향해 뭐라 말하지 못하는 쓰다나 곱게 차려입고 이모부 가족과 연극을 보러 가는 게 쓰다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믿는 오노부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다. 거기에 쓰다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한 의도적인 대화도 파악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지원해준 생활비를 갚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병원비를 보태러 온 히데오가 선뜻 그 돈을 주지 않고 결혼 후 변한 오빠를 질책하는 것과 쓰다의 옛 연애를 빌미로 원하는 걸 얻으려는 고바야시와 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쓰다가 나누는 대화도 그렇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논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선뜻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욕을 하지 못하는 주저함은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다. 어느 시대를 살든 비슷한 인간의 감정이라고 할까. 자신의 약점을 틀키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녀가 지향하는 것은 오히려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그리고 그 의심을 푸는 것은 쓰다의 사랑을 대상으로 삼은 그녀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자체가 이미 큰 목표였다.” (438쪽)
소설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은 쓰다나 오노부가 아닌 고바야시와 쓰다의 옛 여인 기요코였다. 기요코에 대해 설명하자면 요시카와 부인의 소개로 쓰다와 연애를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여인으로 쓰다는 아직도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쓰다의 비밀 혹은 약점이 바로 그녀였다. 고뱌야시는 오노부에게 결혼 후 쓰다가 변했다고 흘리고 요시카와 부인은 쓰다에게 기요코의 근황을 알려주며 퇴원 후 그녀를 만나 직접 감정을 정리하라고 부추기며 경비까지 지원한다. 퇴원 후 빠른 회복을 빌미로 기요코가 있는 온천으로 향하는 쓰다. 그곳에서 쓰다를 본 기요코는 몹시 놀라지만 다음 날에는 태연한 태도를 지닌다. “심리 작용 같은 그런 어려운 말은 몰라요. 그냥 어젯밤에는 그랬고, 오늘 아침에는 이런 거예요. 그뿐이에요.” (574쪽) 라 말하는 기요코는 왜 쓰다를 버렸을까,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 둘 사이는 정리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오노부는 과연 모르고 있을까. 10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쓰다와 오노부는 지금을 사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나 놀라울 뿐이다.
소설의 제목인 명암(明暗)을 생각하면 누가 명(明)이고 누가(暗)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받는 것으로 행복하다는 오노부가 명일까. 누구에게도 꺼릴 것 없이 당당한 고바야시가 명은 아닐까. 끝나지 않은 상상으로 나만의 결말을 맺는 것도 재미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대단한 통찰력으로 빚어낸 명암(明暗)이 미완으로 남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