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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평점 :
한 해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새해의 첫날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막연하게 떠올려보지만 떠오르는 건 없다. 아마도 작은 소망을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작년보다 좀 더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았던 일도 있었고 나빴던 일도 있었고 속상한 일도 있었고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다시 또 같은 날들을 맞이할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제목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김동영의『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 일상은 누군가의 일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들,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들은 많은 이들의 삶과 교집합을 이루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억하고 행동하는지 다를 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김동영 작가를 잘 모른다. 아니,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여행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많이 떠나 있는 사람, 밖으로 나가는 사람,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
단순히 일상의 쉼을 위한 휴가처럼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은 새롭게 다가왔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고 자랑하고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는 조금은 달랐다. 여행을 위한 글이 아닌 순간순간에 충실한 일기와도 같았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만난 장소를 찾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책에 등장한 그녀처럼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위하여 긴 휴가를 내기도 할 것이고 대단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저 떠나는 그 자체를 위해 용기를 내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은 분명 김동영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들을 들려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다른 이들의 삶에 마음이 갔다. 낯선 여행지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고 엄마를 자처했던 사람의 눈길과 소중하게 여겼던 피아노와 이별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사람의 다짐 같은 게 궁금해졌다. 누군가 떠난다는 건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온전히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이도 있겠고 돌아올 타이밍을 놓쳐 계속 길 위에 있는 이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생각한다. 달라져야 하는 게 정답은 아니고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냐고. 어쩌면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저마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하지만 원하는 방향과 자꾸만 멀어지기도 하는 것을. 결핍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번씩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핍이 있어야 우리 안으로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은 덜 채우고 살아가자.” (209쪽)
연말과 새해를 맞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나 생각한다면,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떠나는 이들이 이 책과 동행한다면 어떤 글에서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어떤 글에서는 다짐 비슷한 것들 하게 될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딴죽을 걸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삶, 내가 사랑하는 삶,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동영이 사랑하는 오토바이, 고양이, 여행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그것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김동영의 문장에서 여행을 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보았다. 우선은 책이었다. 읽고, 사들이고, 정리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책들 말이다. 책을 통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한다. 당신에게는 그게 무엇일까.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지도 않다. 그저 길을 갈 뿐이다. 거기서 얻은 게 있고 느낀 게 있다면 그건 대부분 여행 중이 아니라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어렴풋이 느낀 것이리라. 여행 중에는 정작 모른다. 여행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123쪽)
대부분의 많은 이들은 무엇이 되려고 그 무엇만 보고 살아간다.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는 건 중요하다. 좋은 성과를 내고 결실을 맺는 것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 역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견디는 과정, 상실의 과정, 여전히 그 과정에 있어 힘들더라도 붙잡고 가야 한다는 걸 안다. 나와 당신, 모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