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든 때를 벗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철 수세미에 힘을 가해 열심히 닦아내거나 화학 약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팔은 아프고 진즉 청소를 잘 할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면서도 벗겨진 때를 보면 흐뭇하기도 하다. 주방을 청소하면서 흘러내리는 묵은 때를 보면서 이렇게 미움처럼 묵은 감정도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한 번씩 불쑥 올라오는 감정들, 제대로 된 이별 혹은 관계 정리를 하지 못한 탓이다. 대체로 그들은 좋은 지인이었거나 사랑했던 이들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흐지부지 연락이 끊어지거나 내 스스로 끊어내지 못한 감정이다. 어쩌면 아직 그리움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해가 되었다지만 별단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딘가에서는 굵은 눈발이 내리고 이곳은 흐리기만 하다. 새해의 다짐 같은 것 없다. 다만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운다. 한 해를 보낸 기록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 말이다. 이만큼 잘 살았다는 징표가 되기도 할 텐데.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어떤 날은 괜찮았고 어떤 날은 아주 나빴고 어떤 날은 우울했다. 계획했던 대로 읽고 쓴 날은 괜찮음에 속한다. 그것들을 이어가는 건 참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신간 중에서 가장 궁금한 책은 『읽어본다』시리즈다. 동시에 다서 권이 나왔다. 편집자와 북카페 운영자(부부), 시인과 시인(부부), 온라인 서점 MD와 일간지 출판담당 기자(부부), 뮤지션 요조, 의사 남궁민의 독서일기라고 한다. SNS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출판 관계자의 글들이 많기에 독자의 리뷰를 기다린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남긴다는 건 대단한 일이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직접 한 권, 한 권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난다의 『걸어본다』시리즈처럼 계속해서 나올지 지켜볼 만 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참으로 즐거울 것 같다. 더불어 한 권의 책을 각기 다른 시기에 읽고 그것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는 것도 말이다.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면서도 나눈다는 의미도 남다를 듯하다. 이 모두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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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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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던가. 마치 소설 속 인물의 말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로 향하는 듯한 기분 말이다.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가 참여한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욕을 하거나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대는 소설 속 인물인 현남 오빠일 수도 있고 손녀딸에게 대놓고 심한 언어폭력을 하셨던 돌아가신 할머니 일수도 있고 살아있는 동안 그 모든 걸 감내하다 바스러져 버린 내 엄마일 수도 있다.

 

 어떤 소설은 너무 읽기 힘들었고 어떤 소설은 너무 놀랐고 어떤 소설은 그저 멍했고 어떤 소설은 따라가지 못한 게 당연하다.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의 내 삶과 현재의 내 삶을 생각한다. 내가 부여받은 여성성, 혹은 그것을 이용한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던 지난날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내가 여성 독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관리하고 그에 따라 수긍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던 조남주의「현남 오빠에게」속 ‘나’는 익숙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강한 다짐 같은 게 전해졌다. 그것은 단지 십 년째 만난 연인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잣대와 시선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예의와 존중에 대해서 말이다. 아쉬운 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과거의 나열이었다. ‘나’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와 김이설의 경년更年」은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딸이라면, 엄마라면, 아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주제였기 때문일까.「당신의 평화」속 유진은 엄마 정순의 모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랑하는 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쏟아내지 못하고 쌓아둔 감정을 오롯이 쏟아낼 대상이었다. 같은 여자니까, 딸이니까, 너만은 내 편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였다. 첫딸에게 갖는 기대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주변의 그녀들에게 들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가 아닌 달라진 세대를 살고 있지만 그것은 무서운 감정의 세습이었다. 물론 정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며느리만 생각하는 아들이 꽤씸하고 자신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서러움, 힘들게 살아온 삶이 안타까운 건 맞다. 그래도 유진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수많은 엄마 정순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김이설의「경년更年은 여전히 잔혹하다. 열다섯 살 중학생 아들과 아이돌에 열광하는 열두 살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엄마, 일상은 모두 가족 중심으로 흘러간다. 소설 속 엄마의 모습은 보통의 사십 대 여성의 일과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느라 ‘나’는 사라진지 오래다. 고교입시를 위해 정보를 얻으려 학부모 모임에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여학생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소식이었다. 놀라운 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법이라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남편은 서로 합의했다는데 무슨 문제냐고 받아칠 뿐이다. 그런가 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옹호하다가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는 ‘나’는 혼란스럽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 속 나의 아들과 딸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머지 네 편의 소설 역시 모두 여성의 삶에 대해 말하지만 접근이 남다르다. 최정화의「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대부분 남자들의 직업으로 알려진 촬영기사인 여성 ‘율’이 등장하고 손보미의 「이방인」에서는 경찰인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끈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벗을 수 없는 옷과 구두를 입은 남자 ‘표’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는 유일하게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들의 죄를 심판하고 벌한다. 미래의 어느 날 화성으로 쏟아올린 열두 마리 실험동물 중 살아남은 ‘나’와 그곳에서 만난 개 ‘라이카’와 탐사로봇 ‘데이모스’가 함께 살아가는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에서는 ‘나’가 임신을 한 돌보는 ‘라이카’와 ‘데이모스’를 통해 생명과 출산의 경이로움을 언급한다.

 

 무조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던 시대는 사라졌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부장적 제도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건 그것들과 싸우자는 게 아닐 것이다. 궁극적으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삶을 원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 그 목소리가 너무도 간절하게 전해지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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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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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은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단순하게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사유하는 즐거움을 안겨주다는 말이다. 표제작 「오직 두 사람」은 절대적인 존재와의 관계로 시작한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딸은 말이 통하는 관계로 남다른 사이다. 다른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 수직적 관계. 그러니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 곁에 남은 건 딸뿐이다. 유독 가까운 딸과 아버지를 보면서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존재는 누구인가, 생각하게 된다. 전부였던 존재의 부재 후 다가올 삶은 어떨까. 관계를 생각하니 결국은 두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아닐까 싶다. 적절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동창과의 만남 이후 삶의 변화를 원하는 「인생의 원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이라 여겼던 여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좋았던 감정만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을지 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생각했던 대로 ‘인생의 원점’을 잃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독특한 소재와 예상하지 않은 전개로 이어지며 소설 쓰기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보여주는 「옥수수와 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의「슈트」도 흥미롭다. 말기 암 환자와 싱글맘이 되겠다는 여직원의 이야기「최은지와 박인수」로 보여주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과 누군가 삶을 조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게 만드는 「신의 장난」은 처음엔 소설에서나 일어날 일이지 싶다가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섬뜩해진다. 언제부터인지 소설은 소설 속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소설 밖으로 나와 우리 삶에 나란히 서 있다는 생각을 한다. 김영하의 소설집이 특히 그러했다.

 

 이 소설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단연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그러니까 상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잃어버린 시점에 살고 있는 사람들, 어제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없는 사람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이를 찾았지만 오히려 삶은 더 깊게 무너져내리고 끝나지 않는 삶은 새로운 고통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이를 찾기만 한다면 아이를 잃어버리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은 성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영하의 말처럼 그 이후의 삶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쉽게 잊어버린 일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소재라서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인생의 원점」, 93쪽

 

 7년 전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의 소설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 살아가아 한다는 것. 작가의 말처럼 ‘그 이후’의 삶 말이다. 기발하고 놀라운 소설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하고 견디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때때로 그게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게 만들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그 이후’의 삶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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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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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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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새해의 첫날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막연하게 떠올려보지만 떠오르는 건 없다. 아마도 작은 소망을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작년보다 좀 더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았던 일도 있었고 나빴던 일도 있었고 속상한 일도 있었고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다시 또 같은 날들을 맞이할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제목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김동영의『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 일상은 누군가의  일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들,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들은 많은 이들의 삶과 교집합을 이루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억하고 행동하는지 다를 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김동영 작가를 잘 모른다. 아니,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여행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많이 떠나 있는 사람, 밖으로 나가는 사람,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

 

 단순히 일상의 쉼을 위한 휴가처럼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은 새롭게 다가왔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고 자랑하고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는 조금은 달랐다. 여행을 위한 글이 아닌 순간순간에 충실한 일기와도 같았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만난 장소를 찾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책에 등장한 그녀처럼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위하여 긴 휴가를 내기도 할 것이고 대단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저 떠나는 그 자체를 위해 용기를 내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은 분명 김동영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들을 들려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다른 이들의 삶에 마음이 갔다. 낯선 여행지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고 엄마를 자처했던 사람의 눈길과 소중하게 여겼던 피아노와 이별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사람의 다짐 같은 게 궁금해졌다. 누군가 떠난다는 건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온전히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이도 있겠고 돌아올 타이밍을 놓쳐 계속 길 위에 있는 이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생각한다. 달라져야 하는 게 정답은 아니고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냐고. 어쩌면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저마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하지만 원하는 방향과 자꾸만 멀어지기도 하는 것을. 결핍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번씩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핍이 있어야 우리 안으로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은 덜 채우고 살아가자. (209쪽)

 

 연말과 새해를 맞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나 생각한다면,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떠나는 이들이 이 책과 동행한다면 어떤 글에서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어떤 글에서는 다짐 비슷한 것들 하게 될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딴죽을 걸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삶, 내가 사랑하는 삶,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동영이 사랑하는 오토바이, 고양이, 여행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그것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김동영의 문장에서 여행을 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보았다. 우선은 책이었다. 읽고, 사들이고, 정리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책들 말이다. 책을 통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한다. 당신에게는 그게 무엇일까.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지도 않다. 그저 길을 갈 뿐이다. 거기서 얻은 게 있고 느낀 게 있다면 그건 대부분 여행 중이 아니라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어렴풋이 느낀 것이리라. 여행 중에는 정작 모른다. 여행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123쪽)

 

 대부분의 많은 이들은 무엇이 되려고 그 무엇만 보고 살아간다.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는 건 중요하다. 좋은 성과를 내고 결실을 맺는 것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 역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견디는 과정, 상실의 과정, 여전히 그 과정에 있어 힘들더라도 붙잡고 가야 한다는 걸 안다. 나와 당신, 모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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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법 평온한 날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많이 읽고 조금 더 많이 쓰면 좋겠다고 혼자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게 무엇이든 더 많이 읽고 그게 무엇이든 더 많이 쓰고 싶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 기록 같은 것. 내게 소중한 이들과 더 자주 연락하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명 아이돌의 죽음과 화재 소식이 들려왔다. 뉴스를 보면서 큰 화재가 아니기를 바랐고 숫자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무섭고 처참한 현장의 공포는 꿈이 아니었고 현실이었다. 춥고 쓸쓸한 겨울만 쌓여간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에는 누군가 보낸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이, 고민과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 소식을 받는다는 건 전한 이의 마음 조각이 내게로 온다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또 한 해를 살았구나 생각하다 멈칫하게 된다. 삶을 안다는 건,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렵고도 어렵다.

 

 내년에는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살고 있는가.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지. 그럼 내년에는 해보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나. 연말이라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고마운 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미안한 이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다정하지 못해서 좀 더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 나를 여전히 지켜봐 주고 여전히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인사를 건네고 싶다.

 

 연말 책 리스트는 오정희 컬렉션이다. 소장하고 있는 책은 제외하고 나머지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양장본이나 박스 구매에 대해 큰 욕심이 없는데 오정희 작가라서 자꾸만 눈이 간다. 산타 할아버지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올해 많이 울었고 착한 일도 많이 하지 않았으니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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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12-23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좀더 다정하지 못해서,
좀더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이먹어가는게
인생인가 봅니다.~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17-12-26 10:33   좋아요 2 | URL
북프리쿠키 님,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좀 더 다정한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건강하고 포근한 한 주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17-12-23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기쁘고 좋은 일들이 앞으로는 많았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자목련 2017-12-26 10:3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활기찬 한 주 시작하셨나요?
남은 날들 소중하게 채워요, 우리^^

수이 2017-12-23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연말 다정하게 보내시기를요.

자목련 2017-12-26 10:34   좋아요 1 | URL
다정하고 포근한 야나 님의 댓글로 따뜻한 하루 시작합니다.
야냐 님도 남은 날들 잘 보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그장소] 2017-12-2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서재의 달인 소식 기쁘고 , 축하드려요 . ^^

자목련 2017-12-26 10:35   좋아요 1 | URL
반갑고, 기쁜 댓글입니다.
부족한 이웃이지만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희선 2017-12-24 0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해가 얼마 남지 않은 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다니... 피해가 적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도 않은 듯하더군요

해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요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거죠 그때 그때 일이 생기면 그걸 견디고 지내겠지요 그렇게 지낼 수 있기라도 하면 괜찮은 거겠습니다 무엇보다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자목련 2017-12-26 10:36   좋아요 2 | URL
견디고 보듬고 그렇게 지내길 노력하고 바라는 것이겠지요. 희선 님도 건강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언제나 감사해요^^

깐도리 2017-12-3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천 화재를 보면서, 내가 사는 곳도 제천 소방서랑 발반 다르지 않ㄴ느데, 여기서 화재가 나면 어뜩하나 그 생각이 먼저 을더군요...공교롭게도 예전에 철물점에 화재가 크게 나서 소방차가 출동하고, 난리 났던 기억 나네요...소방관 징계먹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시의원 출동에서 소방헬기 부르고 말이죠 ㅠㅠ

자목련 2018-01-02 08:49   좋아요 0 | URL
네, 이곳도 그리 다르지 않아서 더 마음이 아파요. 규정을 지키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겠지 싶어요. 깐도리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날들로 채워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