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정말 결실의 계절인가 보다. 아니, 열매의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수북한 밤을 보며 든 생각이다. 무언가를 획득하는 일은 성취감이 크다. 작은 노동의 수고로 비어있던 자루가 차오르는 건 즐거운 기쁨일 것이다. 그 기쁨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밤의 상태는 살펴보지 않고 씻어서 냄비에 삶았다. 지난번 먹은 밤보다 맛이 없었다. 모든 밤이 맛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룻밤이 지나고 밤이 들어있던 자루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알맹이들이 가득하다. 그것은 벌레가 밥을 먹은 흔적이었다. 온전한 밤을 고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벌레가 먹은 밤을 고르는 건 쉬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고른다고 고른 밤을 씻어 물기를 빼고 얼마 후 다시 작은 알맹이가 나타났다. 도대체 벌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떻게 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밤을 먹는 것일까. 똑같이 생긴 밤을 바라보면서 겉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밤이구나 생각했다. 찐 밤을 갈라 보고서야 썩거나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얼마 안 되는 밤의 내면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내면을 아는 일도 그렇겠지. 겉으로는 그의 내부를 알 수 없고. 몇 번의 만남과 대화로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니까. 그럼 밤 껍질은 위장일까. 아니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쉽게 웃으면서도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할아버지 추도 예배를 드린 어제, 홀로 참석하신 작은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봄 입원과 시술, 그리고 계속되는 약 복용으로 부은 얼굴로 등장하셨다.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통증은 없고 약 때문에 붓는 얼굴 때문에 속상하시다고만 하셨다. 몸이 보내는 신호였지만 부은 얼굴이 작은아버지의 상태를 다 알려주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외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내부를.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그의 소설에 대한 글을 많이 접한다. 내게도 두 권의 책이 있다. 읽지 않은 채 구매만 한 책. 조만간 읽으면 좋으련만. 장담은 어렵다.  그럼에도 소장하지 않은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구매해야 하나, 혼자 생각한다. 충동구매로 이어지면 안 되는데. 관심이 가는 책은 첫 소설과 첫 시집. 장수진의 『사랑은 우르르 꿀꿀』, 박사랑의 『스크류바』.

 

 

 

 

 

 

 

 

 

 

 

 도망치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가을이다.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을과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진다. 떠나는 가을을 붙잡을 수 없겠지만 가을과 행복한 이별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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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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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은 대체로 나쁜 것일 확률이 높다. 좋은 기억은 언제나 꺼내볼 수 있게 잘 정리해 둔 사진첩의 사진 같다. 그러나 나쁜 기억은 정리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힘들었던 시절, 상처로 채워진 날들, 원하지 않았던 이별 같은 것들. 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기에 우리는 그것과 함께 살기도 한다. 분리되었다고 믿으면서,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공지영의 소설은 내게 그런 다짐이기도 했다. 아니, 격려였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출간된 공지영의 소설집은『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어떤 다짐을 하는 나는 발견한다. 공지영은 소설집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생을 들려준다. 유명 작가로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삶의 몫, 엄마와 작가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 과거의 상처에서 온전히 떨어져 그것과 거리를 두려는 노력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공지영의 픽션이자 논픽션인 것이다.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가족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글을 쓰는 삶에 대한 사유가 곳곳에 놓여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이라는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를 잡아 하는 수 없이 핀으로 고정시키고 상자에 넣는 일, 죽어 핀으로 고정된 채 상자 속에 넣어진 나바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는 것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숨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 185쪽)

 

 도전적인 열아홉 화자의 목소리로 묘사하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할머니와 그녀가 죽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소리 없는 전쟁 같은 날들을 담은 표제작「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다른 색채를 지녔다. 피할 수 없는 가난과 절망의 현실에서 작고 희미한 생의 빛을 놓치 않는 「부활 무렵」은 공지영의 이전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나머지 3편의 단편에서 화자인 ‘나’는 작가 공지영이다. 「월춘 장구(越春裝具)」는 글을 쓰기 위해 시골집으로 온 ‘나’는 막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왜 하필 이때 아픈 건지, 화를 내면서도 엄마로의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는다. 나를 위한 시간은 없는 삶, 그러나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는 걸 알고 다시 글을 쓰는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하여 산다는 건 결국 누구에게나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분명 작가로의 삶은 나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공지영은 담담하게 힘들었던 지난 삶을 글로 녹아낸다.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 폭언과 폭행, 책 속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던 상처로 얼룩진 시간을 말한다.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일기 같다고 할까. 혼자만을 위한 기록이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되기까지의 통증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는다고 말할 뿐이다. 내가 공지영의 글을 읽고 위안을 얻었든 그녀 역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견딘 이들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프리모 레비와 빅터 플랭클의 생을 언급하고 그들의 글을 소설에 인용한 것이다. 어떤 잘못도 없이 갇힌 고통의 시간을 살고 생존자가 되어 그것을 기록하는 일, 공지영의 상처가 그것과 같을 수 없지만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므로 공지영의 소설에서 화자인 ‘공지영’은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려 글을 쓰는 것이다.

 

 독자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해 ‘나’가 막냇동생 일지도 모른다는 여자와의 기묘한 인연을 들려주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공지영의 정체성과 삶 전반을 흔들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자가 들이대는 증거는 얼핏 자신이 그녀의 막냇동생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형제들과 닮지 않은 외모, 어머니와의 관계, 유년 시절의 추억까지. 그러나 ‘나’는 유전자 검사를 확인하지 않으므로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로 한다. 제목 그대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순간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납북되어 이십 사 년 동안 북에서 산 일본인 번역가 H와의 만남을 들려주는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단편이다. H의 책 출판으로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책이 아닌 H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위안부 할머니를 생각한다.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삶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 지난 과거가 인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이다.

 

 풍랑을 만난 배가 물결을 헤치고 그저 앞으로 갈 수밖에 없듯이 온몸으로, 온몸으로 물결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리하여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행이라는 것이 생의 한 속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는 늪 같은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 200쪽)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후기, 혹은 구름 저 너머」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공지영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다. 혼자 글을 쓰는 삶에 대해, 책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독서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공지영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아팠지만 아프지 않았고 상처가 떠올랐지만 어루만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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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움츠린다. 이대로 가을과 이별하고 겨울과 만나는 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에 누군가는 여행 가방을 챙기고 누군가는 스트레스가 쌓인다. 정보를 알려주는 방송에서는 묻지도 않는 식용유 사용법(전, 무침, 튀김에 적절한)을 상세히 알려준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거나 여행을 계획하지 않은 이에게는 그저 보통의 날들과 같을 것이다. 외지에서 오는 차량으로 도로가 조금 막힐 것이고 친구나 친척들과 안부 문자를 나누고 제법 긴 전화통화를 하겠지.

 

 9월은 어떻게 지냈던가. 10일은 다른 곳에서 보냈다.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어영부영했던 8월과는 어떻게 다른가. 매번 후회가 더 많은 날들이다. 그러고 보니 2017년이 90 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니. 숫자는 왜 이리 정확한가. 숫자는 왜 이리 흔들림이 없는가. 부정을 저지른 숫자마저 당당하다. 정확한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적립금도 마찬가지. 숫자를 지배할 수 있을까, ㅎ 가을이 열매의 계절이 맞나 보다. 맛있는 고구마와 밤을 쉽게 얻는다. 씻어서 냄비에 삶기만 하면 된다. 밤을 먹는 시간은 최대한의 게으름이 필요하다.

 

 

 

 

 연휴에는 게으름이 쌓일 것이다. 책읽기도 마찬가지겠지. 그럼에도 이런 책을 읽고 싶다. 박솔뫼의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김혜진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 읽을 수 있을까. 아니, 읽지 않을 거야. 그냥 빈둥거리겠지. 그래도 한 권 정도는 읽지 않을까.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ㅎ 

 

 

 

 

 

 

 

 

 

 

 

 9월이 지나고 10월이 쌍둥이처럼 겨울을 불러올 것 같다. 회색빛 겨울이 싫다고 했던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건 당연한 일. 고장 난 시계처럼 겨울이 천천히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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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2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17-09-30 17:14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평온한 연휴 보내세요^^

에디터D 2017-10-0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지만 겨울을 특히 좋아하는 저 역시 올 겨울은 천천히 오길 바라고 있어요. 역시나 쓸데없는 바람일테지만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

자목련 2017-10-02 16:22   좋아요 0 | URL
어쩌면 그 기다림은 첫 눈을 기다리는 그것과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라제 님도 따뜻한 추석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7-10-02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오기 전에 조금 남은 따뜻하고 좋은 시간이예요.
자목련님 추석인사 드리러 왔어요.
즐겁고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17-10-10 11:27   좋아요 1 | URL
길고 긴 연휴가 끝나버렸어요. ㅎ
좋은 시간으로 채우셨나요?
서니데이 님, 감기 조심하시고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보통의 연인은 종종 다툰다. 사소한 싸움으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사랑이 더욱 단단해지기도 한다. 보통의 연인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지나치게 사소한 것에 자주 화를 내고 집착이 심해지면 둘의 관계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감싸 안아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짓이다. 그러니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 괜찮을 거야, 내가 더 이해하면 괜찮을 거야 믿으며 만남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강화길의 소설을 읽고 확신했다. 강화길의 단편집 『괜찮은 사람』과 장편소설『다른 사람』은 폭력(데이트 폭력, 왕따, 온라인 댓글 폭력)을 다룬다. 

 

 강화길의 단편에서 공포는 부드럽게 조성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남자친구(「호수-다른 사람」), 모두가 선망하는 유치원(「니꼴라 유치원- 귀한 사람」, 완벽한 연인(「괜찮은 사람)」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처음엔 그들의 삶에 합류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들과 교류하여 그들과 같은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호수-다른 사람」속 민영을 끔찍하게 챙기며 사랑하는 그의 남자친구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호숫가에서 민영이를 해친 범인이 남긴 단서를 함께 찾아보자고 진영에게 그곳에 가자고 했을 때 진영은 완강히 거부해야만 했다. 그에게 전해지는 섬뜩함과 두려움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건 진영에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진영뿐 아니라 강화길의 소설 인물이 대체로 그러했다. 답답할 정도로 상대의 말을 믿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타인의 평판이 중요하기도 했다. 매일 만나는 사랑하는 이가 한순간 공포의 존재가 된다는 걸 믿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것이 나름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이야기할 때면 몸의 어딘가에 난 깊고 붉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쓰리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묵직하게 몸을 짓누르는 느낌.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는 모르는, 나도 모르게 몸에 박힌 상처를 발견하는 기분. 그래서였다.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털어놓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호수 - 다른 사람」, 19쪽)

 

 그래서 진영은 말을 아꼈던 건 아닐까.「니꼴라 유치원- 귀한 사람」속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지만 유치원 원장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유치원만 졸업하면 아이의 미래가 밝고도 환한데, 대기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으니까. 

 

 뒤늦은 후회를 했을 때 우리는 되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걸 놓치고 만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인다. 결혼 예정인 「괜찮은 사람」의 ‘나’처럼 말이다. ​약혼자와 함께 그가 사 둔 집을 보러 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 소설에서 민주는 내세울 게 없는 존재다. 약혼자에게 비하면 그렇다. 그래서 그와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의 폭력과 공격은 감싸 안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늘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실망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빈약하고 허름한 트랙에서조차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불안은 순식간에 번지는 곰팡이와 같아서 쉽게 눈에 띄었고, 그러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것과 정말로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건, 굉장한 차이였으니까. (「괜찮은 사람」, 88쪽)

 

 그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괴기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 내부도 그렇다.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그가 설명하지 않는 이유가, 아니면 별일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더럽고 흉물스러운 풍경, 고약한 냄새, 어느 하나 산뜻하지 않다. 정말 그가 그토록 바랐던 집이 이런 곳에 있단 말인가. 돌아가자고 말해야 했지만, 말하지 못한다. 알면서도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민주는 계속해서 괜찮은 척한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소설 속 인물은 뻔히 보이는 결말을 향해 걸어간다. 두렵다고, 싫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 않거나 그곳에 계속 머문다. 어쩌면 그건 강화길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폭력, 일상이 된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닐까.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의 떨림을 알아채야 한다고. 더이상 괜찮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그에 비하면 장편소설 『다른 사람』에서 강화길은 작정하고 끔찍한 폭력을 들려준다. 직장 상사인 남자친구에게 다섯 번째 폭력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한 진아. 사건이 언론이 알려지고 회사를 관둔 진아의 삶은 온전할 리 없었다. 피해자인 진아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아가 온라인 댓글을 보고 과거 누군가를 떠올리고 소설은 확장된다. 그러니까 진아 혼자만이 아닌 단아, 유리, 수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강화길은 진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회 전반의 폭력을 다룬다.

 

 서울의 대학으로 편입을 하기 전 진아가 다녔던 지방의 대학교, 그리고 진아의 친구들. 그들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잊고 있었다고 믿었던 상처, 시간이 지났으니까 괜찮아졌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시절. 폭력을 행사하며 피해의식이 있다고 말하는 나쁜 남자. 아무렇지 않게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자.피해자였음에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진아, 유리, 수진의 고통.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호감을 갖고 만나 사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폭력,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예상했지만 폭력을 묘사하고 고통받은 일상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자애들이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배운 여자애들. 된다는 말보다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여자애들. (59쪽)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228쪽)

 

 그렇지 않은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일. 그렇게 대단하지도 엄청나지도 않는 사건. 그러나 어넺나 존재해왔던 살마. 이것이 나의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끝없이 편지를 쓰는 것, 혼자 책 속에 파묻히는 것,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러나 때때로 그 모든 것은 날조된 기록이 되기도 한다. 내가 당신 일을 서술할 때가 아니다. 내가 저지른 일을 적어나갈 때다. 나는 여러 버전의 기억들을 쓰고 또 쓴다. 왜냐면 클리세는 문을 닫고 나오는 것까지만 나올 뿐이니까.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 혹은 문들 다시 닫아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너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쓰기도 한다. (332~333쪽)

 

 나는 어떻게 자랐는가. 지금의 나는 조카나, 후배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가슴이 답답했지만 『다른 사람』속 진아, 단아, 수진은 더이상 수동적 삶에서 벗어나려 한다. 리베카 솔닛의 글을 빌리자면 침묵하지 않는다. 두렵고 무서워서 스스로를 가둔 방에서 무수한 질타와 시선을 감내하며 나오는 중이다. 리베카 솔닛의 문장에서 언어 대신 소설을 넣어 읽어보았다. 강화길의 소설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언어가 추구할 가장 진실 되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상을 또렷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잘 보도록 돕는 것이다. 언어와 그가 반대로 쓰였을 때, 우리는 우리가 곤란에 처했고 어쩌면 무언가 은폐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중에서)

 

 강한 흡입력으로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구성과 전개, 앞으로 어떤 결말이 나올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떤 결말을 만들어야 할까. 피해자가 숨지 않는, 혼자만의 방법으로 고통과 싸우지 않는, 따뜻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그런 결말은 과연 올까. 그들이 원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대답할 수 없다. 선뜻 어떤 말도 꺼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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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301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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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의 시집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잎의 여자」의 시인 오규원의 시집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란 시집에는 무엇과 무엇이라는 형식을 갖춘 제목의 시가 전부다. 가와 나, A와 B처럼 동격인 그것들이라고 해도 좋을까. 아주 평이한 사물과 단어들. 목차를 보면서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생각한다고 궁금해한다고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 생각했다.


 

호수와 나무

ㅡ서시


잔물결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 어망에 넣고

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 기다리는

한 사내가 물가에 앉아 있다

그 옆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가

어느새 물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


 

시집의 문을 여는 시를 보면 이 시집은 시인 오규원이 가만히 관찰하는 풍경에 대한 기록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하나의 사물을 관통하는 그것, 시인의 통찰력으로 빚어진 시라고 말이다. 하나의 풍경은 풍경 너머의 것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쉬이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오래토록 지켜보야만 알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애정을 가지고 그렇게.



앞의 길이 바위에 막힌 붓꽃의

무리가 우우우 옆으로 시퍼렇게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에 핀 둘은

서로 붙들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무더기로 핀 아홉은

서로 엉켜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핀 하나와 다른 하나는

서로 거리를 두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붓꽃들이 그림자를

바위에 붙입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바위에 붙지 않고

바람에 붙습니다 (「꽃과 그림자」, 전문)



대충 보면 알 수 없는 미세한 떨림, 사물과 사물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새긴다고 할까. 간단하고 명료한 글이 아름답다, 짧고 평이한 글이 감동적이다. 오규원의 시를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늦었지만 오규원의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떠오른 이가 있다. 그도 이 시집을 좋아할 것 같은 기분.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눈송이가 몇 날아온 뒤에 도착했습니다
편지지가 없는 편지입니다
편지봉투가 없는 편지입니다
언제 보냈는지 모르는 편지입니다
발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수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한 마리 새가 날아간 뒤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돌멩이 하나 뜰에 있는 것을 본 순간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돌멩이와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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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제목의 오규원시집도 있었군요....

자목련 2017-09-28 14:54   좋아요 0 | URL
네, 제목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에 대한 시를 만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