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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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낯익은 장소는 아니었어. 당신이 남긴 소설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 오래 기억하겠노라고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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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의 소품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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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은 글쓴이를 상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니, 그건 글쓴이의 재주일 것이다.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 나중에,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미뤄둔 것이다. 거장이라는 두려움, 모두가 좋다고 하는 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라도 해두자.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나쓰메 소세키와의 만남을 『긴 봄날의 소품』으로 시작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단편과 수필이 담겨 있다. 단편과 수필은 제법 다르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단편 「이백십일」은 두 친구가 아소산에 오르는 과정을 들려준다. 정말 친한 친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아소산에 오르는데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산행은 잊어버리고 만다. 즐거운 수다, 유쾌한 수다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열흘 밤의 꿈」은 제목 그대로 열흘 동안의 꿈에 대한 이야기인데 꿈속이라는 배경 때문인지 정말 꿈속을 거니는 듯하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 언제 육지에 닿을지 알 수 없는 배를 타고 있거나, 어떤 여자를 따라가거나, 죽은 남편을 위해 기도를 드리거나. 열 밤의 화자가 모두 동일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날에 걸쳐 읽은 책이다. 쉽게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재미의 유무를 말하기는 어려운 종류, 그러니까 산문이 그러했다. 산문에서는 다양한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하루를 그려보기도 했고 그가 가족을 대하는 무표정한 얼굴도 상상할 수 있었다. 잘 알려진 작가로 많은 이들의 방문을 받고 혼자 조용히 쉴 시간이 없었겠구나 생각했다. 표제와 같은「긴 봄날의 소품」의 수필에서는 천을 훔쳐 간 도둑을 잡는데 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는 이야기, 평소에는 밥만 주고 돌보지 않던 고양이가 죽고 난 후 고양이 제삿날을 챙기는 다소 색다른 이야기, 런던 유학시절 하숙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건강이 나빠져서 제목처럼 유리문 안에서 생활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인 「유리문 안에서」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보였다. 아픈 몸에 대한 사색, 늦둥이로 태어나서 다른 집에 입양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부모님을 할머니, 할아버지로 불렀다는 글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적은 글에서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안쓰럽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은 형에 대한 이야기는 형제를 잃은 슬픔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고 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의 방문을 거절하지 않고 병세를 물어보는 이들에게 그럭저럭 살아 있다고 말하다 누군가 원래의 병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을 듣고 쓴 글은 강한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모르는, 또한 자신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들의 가슴에 울리는 커다란 소리로 그것이 한꺼번에 파열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기억은 그때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리라. 과거의 자각은 이미 사라져버렸으리라. 지금과 옛날, 그리고 그 이전 사이에 아무런 인과를 인정할 수 없는 그들은 그런 결과에 빠졌을 때 자신을 뭐라고 해석할 생각일까. 결국 우리 각자는 꿈꾸는 사이에 제조한 폭탄을 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안고 있는지 남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기에 행복한 것이리라.’ (「유리문 안에서」, 286쪽)

 

나쓰메 소세키와의 만남은 무겁고도 경쾌했다. 무겁다는 것은 깊다는 뜻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 읽어야 할 그의 소설이 많다. 다음의 만남은 어떤 느낌일까. 점점 더 그에게로 다가갈 수 있으니 조금 설렌다는 말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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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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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그녀가 다른 사람, 다른 삶으로 향하기를 바란다. 아직 읽기 전이라 내가 말하는 다른 사람과 강화길의 다른 사람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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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사이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저 비가 오는구나, 생각하며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부산에 폭우로 많은 피해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밤이 지나는 사이,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사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집을 떠나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먼지를 제거하고 주인을 잃은 이불을 빨고 시들어가는 나무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동생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보내온 사진에는 너무도 마른 그녀가 있었다. 왜 이렇게 말랐냐며 나는 많이 먹고 많이 자라고 했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니까, 살이 쪄야 한다고. 동생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8월의 어영부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가 감사하면서도 하루하루가 어렵고 힘들다고 답했다.
 
 가을이 시작되었고, 등에 조급함이 매달리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과 같은 확률은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후가 되니 아이들 목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온다. 소리를 듣노라면 달리고 싶어진다. 즐거움에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최선을 다해 노는 아이들. 건강한 웃음소리.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던가. 그동안 올 때마다 문을 닫고 살았던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자라는 선인장(화분의 나무들도 다르지 않다)을 보는 일은 어떤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아주 미세하게 자신을 단련시키는 어떤 것.

 

 

 

 

 

 

 황정은의 인터뷰가 궁금해서 『악스트』를, 조해진과 정용준의 단편이 궁금해서 『이해 없이 당분간』을 구매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들 『빛 혹은 그림자』도 관심이 간다. 그런데 지금 읽고 싶은 책은 그 책이 아니다. 어제 방송에서 타일러가 추천한 작가의 책을 검색했다. 『푸른 밤』이라는 제목이 자꾸 나를 유혹한다. 여름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다. 가을밤에 여름밤을 불러올 것 같다. 왠지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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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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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ㅡ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젠더의 이분번과 한계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가며」, 8쪽)

 

 좋은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알찬 책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니 당신이 직접 읽어야만 한다. 당신이 읽었으면 좋겠다. 바로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리베카 솔닛의 다른 책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읽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 그녀의 글을 처음 읽었다. 그녀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간결하게 말하고 있었다.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날카로운 힘을 지닌 문장에 반했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1부 「침묵이 깨어지다」와 2부 「이야기를 깨드리다」로 나누어 페미니즘의 역사와 함께 토론하고 연대하는 생생한 기록이다.  그 시작은 제목처럼 여성들이 받는 질문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란 질문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왜 그런 걸 묻죠?”라고 반문할 수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왜 이런 질문을 여자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만 하는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갖는 건 여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랬다. 우리는 그동안 여자라서, 여자니까,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질문을 받았고 수동적인 태로도 살아왔고 학습되었다.

 

 리베카 솔닛은 내가 그동안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던 사건들, ​온라인에서 뜨겁게 토론하는 주제들, 잘 몰라서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 몰랐던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말하여지기까지의 과정, 누군가의 희생, 협력에 대해 들려준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혐오, 여성폭력,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이 젠더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라 하겠지만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글이다.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표현하고 진실을 알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 올바르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 여성의 역사에서 더이상 침묵은 존재하면 안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인간다움에서 목소리가 중요한 특징이라면, 목소리 없는 자가 되는 것은 인간다움을 상실하거나 자신의 인간다움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다. 침묵의 역사는 여성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문제다. 언어는 우리를 잇지만 침묵은 우리를 나누어, 말이 호소하거나 끌어낼 수 있는 도움, 연대, 그도 아니면 단순한 교감조차 잃은 처지로 내몬다. 어떤 나무 종들은 땅속에서 뿌리를 넓게 뻗음으로써 낱낱의 그루터기들을 하나로 잇고 개개의 나무들을 좀 더 안정된 덩어리로 엮어 바람에 쉬이 쓰러지지 않도록 ​한다. 이야기와 대화는 그 뿌리와 같다.’ (「침묵의 짧은 역사」, 35~36쪽)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용인할 수 없다는 사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잔인한 폭력 사태,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제도의 잘못, 여성을 지배하고 농락하는 문학작품까지, 리베카 솔닛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그러한 사건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피해를 입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지 낱낱이 말한다. 부부 사이에 벌어진 문제,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생존의 문제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하고 매력적인 책이었지만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2부「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든다」과 영화 「자이언트」에 대한 이야기인「거대한 여인」이다. 리베카 솔닛은 잡지『에스콰이어』에서 ‘남자가 읽어야 할 최고의 책 80권’이란 제목의 글을 언급하면서 많은 남성작가의 소설에서 여성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그려내는지 그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문학과 예술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서도 말한다.

 

 독서가 감정이입을 북돋는다는 주장이 요즘 인기인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독서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을 상상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자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그래서 마음이 아픈 상태, 몸이 아픈 상태, 여섯살인 상태, 아흔여섯살인 상태, 인생에서 길을 잃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좀더 잘 깨닫도록 돕기 때문이다. 자신이 늘 멋지게 그려지고 항상 정당화되고 언제나 옳은 상황에서만, 타인은 그저 자신의 근사함을 뒷받침하는 역할로 존재하는 세상에서만 갈아가는 게 아니라 말이다.’ (「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든다」​, 242~243쪽)

​「거대한 여인」은 「침묵의 짧은 역사」와 함께 책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글이다. 페미니즘, 변화, 화합, 연대, 그로 인한 자유와 행복에 대한 메시지라고 할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직접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침묵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내야만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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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 0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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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1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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