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는 책들
최원호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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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방법은 그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세상에 책은 많고 그것을 전부 읽을 수 없으니 때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특정 작가나 책을 향한 편견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문학에 편중된 책읽기를 하는 내게 최원호의 『혼자가 되는 책들』은 예술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다. 온라인 서점 MD여서 특별히 책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키웠을 것이다. 책이 출판되고 출판사의 소개글로 처음 만나는 책을 MD가 어떻게 읽고 소개하느냐에 따라 책은 이전의 책과 다른 책이 된다. 일반 독자보다 한발 앞서 책과 소통하는 그가 선택한 책이라는 점에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남다르다는 게 쉽고 친절하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예술서는 어렵고 그것을 자신만의 분명한 색으로 들려주는 최원호의 글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검색에 이어 메모를 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최원호 혼자만 알고 싶었을 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혼자가 되는 책들』에서 언급한 책은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책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내게 음악의 기쁨이 그러하듯이. 지인이 언급한 책이라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다뤘는지 몰랐다. 그러나 책을 덮고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음악 이론과 음악가에 대한 지루하고 재미없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던 내게 얼마나 신선하고 즐겁게 음악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일반 청취자’를 대상으로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은 보다 풍부한 인용과 유머를 사용해서 가능한 한 접근성을 높인다. (61쪽, 『음악의 기쁨』에 대한 글 중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으로 편안하게 독자에게 접근하는 예술서라면 누구라도 곁에 둘 수 있는 친구처럼 친근한 책이 될 것이다. 몰랐던 책에 대해 알고 싶다는 건 거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결국엔 변화를 가져오는 글을 쓰게 만든 대단한 존재가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예술서에 대한 최원호의 애정이 불러온 결과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최원호가 부럽다. 지금 그는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음악을 듣고 있을까. 일상 속에 예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예술서라면 그것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건 『혼자가 되는 책들』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밀회로 유명한 예술가로 알고 있었지만 이런 문장으로 요약되는 삶의 주인공 리흐테르가 나는 더 궁금하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지니까.

 

 가공할 만한 기억력으로 인해 지나온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두 바라보면서 삶의 뒤편으로 물러서야만 하는 사람. 그때 삶이란 별들처럼 영영 그 자리에서 빛나는 기억들일까 아니면 어둠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발걸음일까. (174쪽, 『리흐테르』에 대한 글 중에서)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몰라서 ​혹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예술은 멀고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최원호가 권하는 책들은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가 먼저 읽은 음악, 먼저 만난 그림, 먼저 만난 사진을 통해 그와 함께 예술에 다가갈 것이다. 더불어 음악, 미술, 영화, 사진 중 어느 분야에 더 끌리는지 알게 된다. 읽고 싶은 제목을 먼저 읽어도 괜찮다. 어느 부분에서 시작하든 문은 열리니까. 이처럼 한 권의 책은 예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예술뿐 아니라 삶에 대한 시선도 달라진다. 몰랐던 것을 아는 기쁨,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독자는 그저 사진 속 사람의 형태를, 그들의 얼굴과 몸을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진 안에 찍힌 사람들은 감상자의 감정적 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사체들은 감상자의 마음에 빚을 지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진 위에 존재한다. 이 사진들을 소용되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 (192쪽, 『침묵의 뿌리』에 대한 글 중에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예술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책들은 혼자가 될 것이다. 나 역시 혼자가 된다. 책과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지만 혼자 책을 곱씹는 시간도 충만하다. 예술에 대한 감각이 성장하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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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꽃다리의 연한 자줏빛 꽃봉오리는 우리 아파트에도 봄이 왔다는 신호다. 이사를 오고 3년이 지나서야 겨우 꽃의 이름을 외웠다. 같은 아파트지만 동마다 봄이 다르게 찾아온다. 피는 꽃도 다르다. 제일 먼저 매화가 피고 벚꽃과 목련도 뒤를 따른다. 그렇게 천천히 봄이 오는 동안 4월이 되었다. 도처에 봄이라는 걸 알리는 건 예배를 드리며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자동차들이다. 근처에 바다가 있으니 주말에는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난다. 도로 옆 밭에는 제법 자란 보리가 싱그럽고 하지 감자를 심은 작고 아담한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자동차 차 문을 열면 흙냄새가 맛있게 달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슬픔을 간직한 달이지만 좋아한다. 4월에 기다렸던 소설이 나왔다. 작년 가을부터 내가 기다린 소설집이다. 김이설의 두 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은 여전히 잔혹하고 참담하다. 표제는 첫 번째 소설에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의 4월을 견디는 건 소설이나 현실이라 같을 듯하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도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소설 『선의 법칙』과는 다른 기대감이랄까.

 

 4월에는 이런 책도 읽을 것이다. 한귀은의 문장과 그녀가 선택한 문장을 만나는 시간 『여자의 문장』​, 기억의 끝이 어디인가 스스로 묻고 또 묻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쉽게 읽을 수 없는 예술서에 대한 이야기 『혼자가 되는 책들』 ,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 그날의 기록』.

 

 

 

 

 

 

 

 

 

 

 

 

 

 

 

 

 

 

 

 4월이 되니 낮에는 제법 덥기도 하다. 곧 소매가 짧은 옷을 입을지도 모르겠다. 거리마다 꽃눈이 내릴 4월, 꽃이 지면 눈부신 초록이 가득할 4월, 특별히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는 4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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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4-0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고 딸아이가 그래서 정말? 어제 그랬어요. 오늘은 정말 꽃들이 만개하고 하늘은 맑고... 너무 예쁜 봄날이었어요.

자목련 2016-04-05 18:02   좋아요 0 | URL
따님과 제가 통했나 봐요, ㅎ
눈 닿은 곳마다 꽃이 가득해요. 봄, 봄, 봄이구나 싶어요!
 

 

 창을 열지 않는 봄날이다. 미세먼지와 근처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창을 모두 열고 봄바람을 맞고 싶은 날들이다. 어떤 장소든 창이란 창은 다 열고 싶은 마음이다. 굵은 봄비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꽃향기를 품은 비 냄새는 달콤할 것만 같다. 기다리는 비 대신 시인이 들려주는 비를 읽는다.

 

 

        봄비

 

 3월에 내리는 봄비는

 노름빚투성이 새신랑이

 잠시 옷 갈아 입으러오는

 발소리 같고

 

 3월에 내리는 밤비는

 서투른 새댁이 치마끈 풀어

 만삭의 물항아리로 부풀어 오르는

 숨죽인 물소리 같고

 

 새벽이면 남몰래

 처마 밑으로 흘러가는

 산수유, 꽃눈에 얹힌

 노란 눈물 같기도 하고 ( 박승민 시집,『지붕의 등뼈』)

 

 

 최근에 시집을 몇 권 구매했고 곁에 두었다.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기 시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쩌다 보니 시인이 쓴 산문도 읽었다. 남자 시인이 들려주는 책상에 대한 이야기. 시인의 책상은 글에 대한 욕망을 불러온다.

 

 시를 쓰기 위해 앉은 책상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영감을 주는 어떤 물건이나 인물의 사진이 놓여 있는 건 아닐까. 시가 잉태되는 공간, 시와 시인이 하나가 되는 공간, 오롯이 그들의 은밀한 공간을 엿보는 짜릿함은 무엇일까. 아마도 시인을 흠모하는 나의 격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문장에서 나는 숨소리도 숨겨야만 할 것 같으니까.

 

 ‘잠이 고여 있는 밤이다. 누군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밤이다. 상실감은 상실 이전에도 가능한, 불완전한 사건이다. 당신은 모순을 사랑한다. 모순이 당신을 뒤흔드는 만큼. 누구나 태어나본 적도 없으므로 죽어지지 않는 책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무언가를 쓰는 공간을 갖고 있고, 당신에게 그 공간은 늙을 기회도 갖지 못한 나무의 몸으로 지은 책상이다. 책상은 온전히 책들을 받쳐 앉고 있으나, 시인에게 책상이란 자신을 받쳐 안은 또 다른 종이에 다름 아니다.’ (149쪽, 이이체의 글)

 

 

 책상이라는 사물이 시인에게는 시가 아니라 종이와 같은 것이었다. 책상에 대한 집착 혹은 애착이 시가 되고 문학이 되고 삶으로 확장된 것이다. 책상에 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념이 늘어나는 나와 달리 시인은 상념이 시로 피어난다. 시인에게 책상은 저마다 다른 추억을 불러왔고 다른 의미였다. 나만의 책상을 갖고자 했던 열망이 있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존재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었다. 그들은 규격화된 책상과 함께 책상이라는 이미지를 말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책상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다른 이름, 다른 모양으로 말이다.

 

 ‘책상은 나무를 호명한다. 나무는 바람을, 바람은 공중을, 공중은 새를 다시 호명할 것이다. 새는 깃털을, 깃털은 가벼움을, 가벼움은 운동하는 발을, 운동하는 발은 강물을, 책상이 떠다닌다. 내 손이 닿았던 책상들이 떠다닌다. 침묵들이 떠다닌다.’ (105쪽, 박진성의 글

 

 나무를 호명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호명하는 시인의 책상과 내 책상은 확연히 다르다. 나에게 책상이란 무엇일까. 나의 책상에서 글이라 할 수 있는 게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 욕망을 키우는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 책들과 연필, 볼펜, 가위, 메모지가 너저분하게 자리한 내 책상는  책들과 시집 몇 권도 놓여 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시를 품은 고영민의 『구구』란 시집도 함께.

 

 

  명랑

 

 나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좋습니까

 

 낮에 당신은 당신에게 뭐라 말합니까

 밤에 당신은 당신에게

 뭐라 말합니까

 

 오늘 당신에게 내 생각이 잠깐

 다녀갔습니까

 오늘 나에게 당신 생각이

 잠깐 다녀갔습니까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글빙글 도는

 강아지처럼

 어둔 하늘 아래 천천히 시드는

 방앗잎들처럼

 

 가볍게 오고 싶지 않습니다 가볍게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좋습니까 (30쪽)

 

 

 이런 고백을 받고 싶다. 아니, 당신에게 이 시를 빌려 고백하고 싶다. 봄에만 만날 수 있는 꽃들이 피어나면 사람들은 꽃마주을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깊은 밤 이런 시를 외고 읊을 수도 있겠다.  종잇장처럼 가벼웠을 몸, 마지막 봄일까 두려운 마음을 숨긴 채 어머니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밤을 환하게 비추었을 터. 애절하고 아프다.

 

 

         밤 벚꽃

 

 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며칠을 더 지체했습니다

 

 당신을 업고

 천변에 나옵니다

 오늘밤 저 꽃들도 누군가의 등에

 얌전히 업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나무가 흘러내리는 꽃을

 몇 번이고

 추슬러올립니다

 

 무거운데

 이젠 나 좀 내려다오, 아범아

 내려다오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 더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당신을 업고 나무에 올라

 풀쩍, 뛰어내렸습니다 (65쪽)

 

 

  사랑

 

 늦은 저녁, 텅 빈 학교 운동장에 나가

 철봉에 매달려본다

 

 너는 나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

 끌려오지 않는 너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끌려가본 적이 있는가

 

 당기면 당길수록 너는 가만히 있고

 오늘도 힘이 부쳐

 내가 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

 

 허공 중 디딜 계단도 없이

 너에게 매달려 목을 걸고

 핏발 선 너의 너머 힘들게 한번

 넘겨다본 적이 있는가 (82쪽)

 

 

 좋은 시가 많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구구』란 제목만 보고는 어떤 시가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 만나는 시집에 대한 편견 혹은 경계(?)하고 해야 할까. 펼쳤더니 다정했고 친근했다. 익숙한 일상이 거기 있었고 그리움이 있었고 함께 읽고 싶은 시가 있었다. 3월이 지나면 곧 잔인한 4월이 온다. 잔인한 슬픔이 있다. 시를 읽는 시간, 슬픔이 조금은 약해지면 좋겠다. 그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바람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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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3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자목련 2016-03-31 18:1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맛있는 저녁 드시고 향기로운 시간으로 채우세요^^*
 

 

 

 

 

 

 어떤 바닥은

 허공의 깊은 혓바닥에 매달려 있을 때

 아름답다

 

 마음 속, 아무, 안 된다, 수, 중심을, 일이다

 바닥에, 색이나, 그, 없으므로, 빤히, 끝없이

 깊은, 덧칠도, 구멍에, 세심한, 쳐다보고, 반사되는

 칠을, 하지, 한번, 주의가, 있을, 거울처럼

 아무도, 대 못질은, 세상, 바닥은, 언제나, 캄캄한

 건너오지, 더더욱, 누구도, 이미, 배후를, 블랙홀처럼

 말라, 하면, 빠져나올, 허공의, 경계할, 우리는

 

 어떤 풍경은

 바닥이라는 넓은 그늘에 꽂혀 있을 때

 가장 위험하다 (「바닥을 위한 각서」, 전문)

 

 

 

 

 우연하게 펼친 시집에서 만난 짧은 시가 강렬한 빛처럼 눈을 찌른다. 바닥을 친다는 슬픔, 아무것도 없다는 두려움,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서투룬 위무. 깊숙이 패인 바닥의 골짜기를 채울 그것은 의지일 것이다. 미세먼지로 뿌연 봄이다. 그 안에서 노랗고 빨간 봄을 보는 건 그런 봄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다. 예쁜 봄, 환한 봄, 고마운 봄. 천지가 다 그런 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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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3-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들이 저는 그저 거울의 회색빛 흡반사면 ㅡ(이걸 뭐라 불렀는지 잊음)혹은 동공 ㅡ으로 읽어요....
막막하긴 같음...

자목련 2016-03-28 11:58   좋아요 1 | URL
막막해도, 이 봄이 환했으면 좋겠어요. 다가올 4월에는 더더욱...

[그장소] 2016-03-28 12:02   좋아요 0 | URL
잊지 않고 계신분 ㅡ들이 더 많아야 할텐데 ㅡ단지 기억만 하고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을까봐 ㅡ스며시 초조해집니다..
마음 건강하게 먹어야 하겠습니다..뭐든 지지 않으려면...자신과도...
그렇죠?^^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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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먹는 일은 위대하고 숭고한 일이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타지에 나간 자식에게 항상 밥 먹었냐고 묻는다. 물론 밥 한끼 굶는다고 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끼니를 놓칠 정도로 바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함께 밥 먹을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을 온전히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곁에 계시지 않았다. 그러니 밥을 짓거나 계절마다 제철 음식으로 상을 차릴 때마다 슬그머니 그리움이 올라온다.

 

 좋아하는 사람과 먹었던 음식, 좋아하는 이가 즐겨 먹었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함께 먹었던 즐거운 기억을 다시 쌓고 싶은 간절함. 그러니까 음식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산문 『황석영의 밥도둑』엔 그런 애틋한 그리움과 삶이 있었다. 전쟁을 피해 피난민으로 보냈던 시절의 맛, 감옥의 고독함을 달래주던 맛, 다시 맛 볼 수 없는 북한의 맛, 타국의 시간을 채워준 맛, 절집을 떠돌며 방랑했던 시간의 맛, 친구와의 이별로 기억되는 맛이 있다. 누구보다도 질곡의 세월을 살아낸 황석영을 든든히 지켜준 맛을 하나하나 맛본다. 아무리 상상해도 나는 그 어떤 맛도 짐직조차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족과 친구가 생각나고 언젠가는 꼭 같이 먹어야겠다 다짐하는 마음만 얹을 뿐이다.

 

 황석영이 들려주는 맛은 모두 특별한 인생의 맛이다. 나의 부모 세대가 그랬듯 어렵고 힘든 생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맛이라 그렇기도 하고 지금은 곡진한 그리움의 맛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히 그 삶을 안다고 할 수 없는 나는 감옥에서 카드깡으로 들어온 아이와 부침개를 먹으며 나누던 짧은 대화를 몇 번이고 읽다가 울컥 목이 멘다. 아무 생각 없이 차려주는 대로 먹던 밥상과 무심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사는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을 내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그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된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 나서요.” (44쪽)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한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음식을 먹을 때 그 안에 담긴 노고와 정성을 먹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먹는다는 일은 거룩한 일이다. 함께 먹는 즐거움도 말이다. 어디서든 생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먹어야만 한다. 무엇을 먹든 얼마나 먹든. 허투루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산다는 건 대단하게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 불과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담긴 속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황석영 역시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의 생을 따뜻하게 채워준 사람들과 음식에 대한 찬가이면서도 소박하고 평범한 우리네 밥상 이야기. 책을 통해 들려주는 친절하면서도 독특한 조리법, 식재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 지역별 다양한 향토음식, 시대의 풍경까지. 뭔가 대단한 밥상 이야기가 아니라 이웃과 친구와 함께 음식을 먹는 즐거움과 그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가 내게로 전해지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267쪽, 초판 서문 중에서)

 

 식욕을 돋우는 제철 음식이 있듯 그리움을 불러오는 음식이 있다. 큰언니가 떠나고 처음 맞는 봄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푼 냄비에 쑥과 냉이를 가득 넣어 끓인 된장국을 먹을 때마다 맛있다며 먹었던 큰언니가 함께 한다. 좀 더 많이 같이 밥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걸 아쉬움이 남는다. 평범한 일상의 맛을 그리워하는 삶이 지속된다.

 

 맛을 음미한다기보다 허기를 채우는 목적으로 쉽고 빠르게 김밥 한 줄, 컵라면 한 개, 샌드위치 하나가 밥도둑이 되는 요즘이다. 그것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맛인가. 아무리 떠올려도 따뜻한 인생의 맛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과 음식을 먹으며 수저를 들고 고개를 들며 눈을 맞추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성스럽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상대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이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다. 올봄에는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아니라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는 시구절처럼 내 곁에 있는 좋은 이들과 밥을 먹고 싶다. 갓 지은 밥과 쉰 김장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매콤한 냉이 무침과 개나리처럼 노란 계란말이의 소박하고 단출한 상이라도 충분히 행복한 맛으로 배부를 테니. 진정한 밥도둑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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