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상 - 조선의 왕 이야기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 지음 / 소라주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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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조선 건국을 밀도 있게 그려낸 <정도전>과 <역사저널 그날>을 열심히 시청하던 나도 그랬다. 거기다 현재 방영 중인 <육룡이 나르샤>를 재미있게 보면서 예전과 다르게 관심이 많아졌다.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정몽주가 꿈꾸던 나라는 달랐지만 그 끝에는 조선이 있었다. 어떤 시대든 좋은 정치가와 뛰어난 외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아닌 국가를 생각하고 야욕이 아닌 진정한 정치가 말이다. 거기다 제대로 된 역사 기록과 공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한다. 여기 그런 것들을 만족시켜줄 흥미로운 책이 있다.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이라는 부제가 붙은 『조선의 왕 이야기 - 상』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한국사가 아닌 왕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들려준다. 학창시절 태정태세...로 외우기만 했던 왕에 대해 말한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세종, 단종, 세조, 연산군 등 몇 명의 왕이 아닌 조선 왕조 전체를 조명한다. 왕위 계승의 정치적 배경뿐 아니라 시대적 문화, 백성들의 실생활, 왕의 사생활 등 다채롭다.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로 내려오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조선의 왕 이야기 - 상』에서는 1대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14대 선조 이연까지 만날 수 있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왕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소한 일화도 무척 흥미롭다. 무사로만 기억되는 태종 이방원이 고려 때 과거에 급제했다는 사실은 새로웠고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20대부터 당뇨병을 앓았다는 세종은 자기 관리를 못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물론 세종의 출산 휴가 장려 정책은 놀라웠다. 출산한 관노의 휴가를 10일에서 100일로 늘려줬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세종이 먼저 시행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책임져야 하는 왕권을 둘러싸고 왕위 계승에 대해 세력을 나눠 암투를 벌이는 모습은 씁쓸하기도 하다. 든든한 방패막 없이 12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과 명종을 생각하면 안쓰러울 정도다.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아들을 지키기 위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이어지고 윤씨 집안은 막대한 힘을 행사한다. 그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신하와 어머니에게 휘둘리지 않을 아이는 없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도 전에 어머니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단종, 애석한 죽음의 애도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문정왕후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걸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사치를 일삼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아래 인물들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문정왕후의 패착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만을 중용하고 반대 의견을 전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겠습니다.’ (명종 이환, 255쪽)

 

 조선 왕조에 관심이 많은 이들과 반대로 무관심한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재미와 더불어 역사 지식을 안겨준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이야기로 여겼던 왕들의 이야기가 현재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재조명되는 건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 현명한 지도자, 더 나은 세상, 좀 더 윤택한 살림살이를 바라는 우리의 지속적이고 간절한 바람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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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날이 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날. 그러니까 전화기를 통해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만나는 날 말이다. 오늘이 그랬다. 오후에 들어 네 명의 목소리를 만난다. 셋은 친구였고 나머지 한 분은 선생님이셨다. 오직 단 한 분, 중학교 3학년 국어를 가르치셨던 분이다. 올 2월에 휴직을 하시고 사부님의 직장 때문에 중국에 나가셨다고 한다. 이상한 건 이번 주 내내 선생님과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스승의 날이나 추석 명절에 작은 정성을 보내드리면 짧게는 문자로 답을 주시거나 전화를 주셨는데 올해는 소식이 오지 않았다. 바쁘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한국이 아닌 중국에 계셨고 잠깐 한국에 들어오셨다가 이제야 내가 보낸 것들을 받으셨다고 한다. 첫 발령을 받은 초보 선생님과 제법 순수했던 소녀는 이제 어떤 소재든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세 명의 친구는 그들의 삶 속에 나를 포함시켰고 나 역시 그러하다. 계획하고 있는 일들과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좋은 사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에게 쌓인 시간의 두께와 상관없이 언제나 단단하다. 단단하다는 믿음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소중한 사람을 곁에 두었지만 삶이란 혼자만의 것이다. 사소한 것들로 시작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것들의 선택은 혼자서 해야 한다. 고통과 슬픔도 나눌 수없다. 나눌 수 없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을 지켜보는 힘든 과정을 견뎌야만 한다. 때로 그것은 길고 긴 시간이 된다. 때로 그것은 혹독한 형벌이 된다. 미셀 슈나이더의 <슈만, 내면의 풍경>속 이런 구절에서 나는 감히 누군가의 고통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만히 기도한다.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다시는 꽃 피지 않기를...

 

 

 고통은 남과 소통할 수도, 남에게 드러내 보일 수도 없다. 고통에게는 탄식이나 한탄이 낯설다. 아마도 고통은 곧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이든 자기 자신이든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심지어는 의미와 무의미의 대조에도 못 미치는, 우리가 의미를 완전히 상실할 때 도달하는 상태일 것이다. 광기 속의 고통은 물론 그 자신의 고통과 소통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말 그대로 무감각한 상태의 것이다. 병든 슈만은 온순하게 의사의 지시를 따랐는데, 아픔을 잠재울 수 있는 처방만은 거부했다. 그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싶어 했는데, 그 원인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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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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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째 안개가 걷히는 모습을 지켜본다. 가려졌던 것들이 보이는 시간. 새삼 새롭다. 거기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사라졌다가 다시 존재하는 것을 보는 건 마치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것처럼 기묘하다. 사라졌다가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세계가 우리가 모르는 우주 어느 곳에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우주를 상상하며 미세먼지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여전히 비를 기다린다. 선명하고 예쁜 노랑들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날들, 그 가운데 노랑 하나를 내 곁에 두는 일도 쉽지 않다. 뜬금없이 이런 문장을 읽고 옮긴다. 

 

 

 슬픔과 애도는 개인적인 것이다. 그 사람이 생전에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의 무늬와 빛깔이 저마다 다른 만큼, 그를 잃은 슬픔의 무늬와 빛깔도 서로 달라 개인적인 것이다. 물론 무늬와 빛깔이 서로 다르더라도 서로를 안아주고 토닥이며 슬픔을 공유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부모를 잃은 형제들 사이에도 그건 예외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금세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자신만이 홀로 남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남긴 빈자리와 공허를 감당해내야 한다.

 

 슬픔과 애도가 개인적인 것이라 말은 그것이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란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슬픔과 애도가 늘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공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긴 하되, 그를 깊이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느끼는 개인적인 슬픔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추상적인 슬픔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를 애도하는 것이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이유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애도의 사적인 공간을 존중해줘야 하는 이유다. (103~10쪽)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175쪽)​

 

 내가 이 소설을 다시 구매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정작 소설을 읽을 때에는 보통의 죽음과 보통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누구나 경험하는 계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여름은 멀어졌고 가을도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삶이 끝없이 계속될 거라 믿는 것처럼 난데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삶이다. 제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여도 애도는 계속된다. 삶과 함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삶이지만.

 

 

 생에서 단 한 번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스무 살, 44쪽)​

 

 김연수의 소설을 읽은 시간은 기쁨이 충만하다. 스무 살로 기억하는 어떤 사람, 어떤 공간, 어떤 색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스무 살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시기를 함께 한 그것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슬픔, 분노, 절망, 두려움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눈 사람들. 스무 살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어제와 오늘을 보내는 것들도 그렇다. 그 놀랍고 감사한 것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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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 스타일 -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김지영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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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책. 제1회부터 즐거움을 안겨준 스토리킹 수상작이다. 100명의 어린이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은 동화. 아이들은 선택은 언제나 정확하다.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쥐포 스타일』(비룡소. 2015)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제목의 탄생 이야기까지 정말 독특하다. 동화는 구인내와 친구들이 펼치는 활약기를 네 편의 에피소드로 담았다.

 

 「돌연변이 말굽자석」은 구인내가 주인공이다. 잘하는 것도 없고 친구도 없는 탐정이 꿈인 초등학교 4학년 구인내는 학교가 재미없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번개가 치던 수업시간에 말굽자석이 재미없는 모범생 나영재의 엉덩이에 달라붙는 사건이 벌어진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엉뚱한 구인내의 장난이라고 혼을 낸다. 말굽자석은 나영재에서 아역배우 봉소리로, 먹방 대장 장대범으로 옮겨간다. 탐정을 꿈꾸는 구인내는 세 명의 모두 방귀를 뀐 공통점을 발견하고 누구라도 방귀를 끼면 말굽자석이 붙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방귀를 모아서 돌연변이 말굽자석을 떼어버린다. 그 뒤로 구인내, 나영재, 봉소리, 장대범은 ‘가스 포’의 줄임말 쥐포(G4)로 불린다. 세상에나 이렇게 기발한 별명이라니.

 

 ‘자석은 서로 다른 극끼리 잡아당긴다고 했지? 번개가 치던 날, 우리는 서로 다른 극을 가진 자석이 된 게 아닐까? N극, S극, A극, B극, Z극……. 우리는 다양한 극이 되어, 지금 서로를 마치게 잡아당기도 있다.’ (65쪽)

 

 친구가 된 쥐포는 어디든 함께 한다. 방학에 영재 집에 놀러 갔다가 온통 책밖에 없는 모습에 놀라고 만다. 많은 책을 읽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영재 엄마는 좀 심했다.「책 무덤」은 모든 게 책으로 통하는 엄마 때문에 밤새 책을 읽다 사라진 영재를 찾는 이야기다. 책보다 소중한 건 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라는 걸 알려준다. 「빛나는 거지」는 아역 배우라는 이유로 여자애들에게 은근 왕따를 당하는 소리가 출연하는 드라마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인공 아역 배우의 장난에 위기에 처한 소리를 구하는 친구들. 마지막으로 방귀 냄새로 음식을 알아맞추는 콘테스트에 나가 대범이가 우승을 차지하는 「방귀 정복자」까지『쥐포 스타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다.

 

 『쥐포 스타일』는 기발하고 독특하다. 모범적이고 착하고 학습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전에 등장하지 않았던 방귀, 구린내, 엉덩이 같은 단어를 자연스럽게 녹아낸다. 구인내, 나영재, 봉소리, 장대범를 이어준 것도 방귀다. 방귀가 없었더라면 네 명은 친구는커녕 왕따가 되었을 것이다. 자석처럼 잡아당겨 하나가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 소중한 우정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아이들의 선택은 옳았다.

 

 동화는 교훈적인 내용이 있어야 할까? 아니다, 『쥐포 스타일』처럼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으면 충분하다. 읽는 내내 유쾌한 시간이었다. 많이 웃게 만든 동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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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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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나면 산뜻한 기분이 드는 소설이 있다. 반대로 읽고 나면 우울함으로 빠져드는 소설도 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정용준의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우울함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담박한 아름다움이다. 정용준의 첫 소설집 『가나』는 지독한 절망의 나열이었다면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삶을 말한다.

 

 죽음은 삶을 관통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이의 삶을 지배하고 어떤 죽음은 영원한 미제(未濟)로 남는다. 정용준의 소설에는 적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이 가득하다. 그래서 아련하고 아프다. 그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은 죽음보다 큰 고통이 된다. 정용준은 죽음과 함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지는 듯하다.

 

 마치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살인을 위한 도구인 것처럼 15명을 죽이기도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죄수와 그를 관찰하는 교도관 이야기 「474번」는 폭력 현장을 세밀하게 묘사할 정도로 잔인한 소설이다. 누나이자 어머니였던 이가 떠나 버리고 존재 자체가 거부된 듯 살아온 이에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이 된 ‘474번’을 호명하는 교도관에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만다. 죽음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던 잔인한 생이다. 마지막으로 누나가 만들어주었던 푹 쪄낸 꽃게를 떠올리는 순간 그는 죄수가 아닌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말이네. 자네의 이름은 뭔가?  글쎄요.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도 들어보지도 못해 잊어버렸습니다. 지금은 474번이라는 이름이 생겼지요. ( 「474번」, 36쪽)

 

 농장에서 무참하게 개를 죽이며 살아가는 「개들」 속 ‘나’도 다르지 않다. 폭력을 행사하는 대상이 인간이 아닌 개일뿐 폭력은 계속된다.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같은 ‘곰’ 의 폭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것과 맞서는 이의 삶은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결국엔 누군가를 죽이고 만다. 눈이 닿는 곳마다 죽음이 가득한 삶. 그 안에서 죽음이 아는 무엇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죽음은 느닷없이 삶을 뒤흔든다. 비통한 죽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그렇다. 베트남 참전 용사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아버지 앞에 군대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사경을 헤매는 아들의 안타까운 모습 「이국의 소년」과  죽음의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군대 내 폭행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안부」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죽음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진 아들의 존재, 그것을 인정하고 놓을 수 없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아들을 보내주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없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단절된 생은 다시 이어질 수 없을까?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다시 만난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속 ‘나’는 그것을 부정한다. 건강 악화로 가석방을 받은 아버지는 투석을 위해 ‘나’가 근무하는 병원을 찾는다. 그것은 하나뿐인 혈육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었다. 곧 죽게 아버지를 향한 최소의 동정이나 연민은 없다.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은 사라진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그저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애도하려는 산 자의 절절함이 있다. 「미드원터」는 이 소설집에서 유독 돋보인다. 그러니까 뭐랄까. 따뜻한 애도라 말하고 싶다. 스웨덴에서 죽은 한국 친구 써니를 위해 한국에서 그를 애도하는 닐스. 써니가 말했던 털모자를 한 여름에 구입하며 닐스는 그를 간절히 이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죽어. 그건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늙어 죽는 것처럼 어쩐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되어버렸어. 그런데 그가 낯선 나라에서, 그것도 내 집에서 죽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자연스럽지가 않아. 이상해. 정말 이상해.’ ( 「미드원터」, 92~93쪽)

 

 닐스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가까운 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때로는 나 대신 죽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남겨진 내가 그의 몫까지 잘 살아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때로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내가 놓인 것만 같다.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무지한 나는 답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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