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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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고리타분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지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일은 없다고 여겼다. 그들에게 듣고 배우는 삶의 지혜가 나를 키웠다는 걸 잊고 있었다. 노인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었기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늙고 있고 다가올 노년의 삶은 당연한 일인데. 클레어 폴리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은 그래서 더욱 인상 깊고 특별하게 남은 소설이다.


세상에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이라니 어떤 클럽일까.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 곳일까, 아니면 최고령 노인들이 대단한 것일까.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함께 사교 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영국 런던의 작은 마을 해머스미스의 낡고 오래된 주민센터에 일주일에 세 번 오후에 열리는 사교 클럽이 있다. 주인공 ‘대프니’는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아 아파트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시작하고 사교 클럽에 가입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15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과 만났다는 게 맞겠다. 연애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와 다른 것도 모자라 사교 클럽 첫날에 사건이 일어난다. 천장이 무너져 사교 클럽 회원 한 명이 사망했다. 키우던 개를 남기고 말이다. 대프니는 리디이와 아트와 함께 돌아가며 개 매기를 맡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의회는 낡은 복지관을 부수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공고를 냈다. 사교 클럽 운영자인 ‘리디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대프니뿐 아니라 사교 클럽과 복지관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19살 미혼부 ‘지기’는 딸 ‘카일리’를 맡아줄 유아원이 필요했다. 말 못 하는 다섯 살 아이 ‘러키’, 주인을 잃은 개 매기까지.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복지관 운영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다. 유아원 아이들의 성탄극으로 관심을 모으기로 한다. 은퇴한 배우인 아트가 연출자로 연극 공연과 축제 분위기라면 승산이 있었다. 공연 당일 아트가 집에서 가져온 스타벅스 물건들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아트에게는 물건을 훔치는 이상한 취미기 있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딸과 손녀의 빈자리 채우기 위한 아트만의 방법이라고 할까.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좋은 마음이었지만 스타벅스 매니저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매니저는 경찰에 신고한다고 소리치고 곤경에 처한 아트를 구한 건 대프니였다. 대프니는 아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소리쳤으니까. 대프니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지기도 대프니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보충 공부를 하는 동안 대프니가 카일리를 돌봐주고 있었으니까. 사실 리디아도 그랬다. 성장한 두 딸은 리디아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고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대프니는 그런 리디아를 지나칠 수 없었다. 매기를 맡기러 온 리디아를 집 안으로 들였다. 이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디아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를 바랐고 변신을 위해 자신의 옷을 내어주었다. 그녀가 당당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응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복지관을 구할 수 있을까? 실의에 빠진 아트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의회는 아파트 짓기에 더욱 적극적이다. 다시 대프니가 나서야 했다. 우선 아트에게 전화를 거니 다른 남자가 받고 상황을 설명한다. 대프니가 한 번 더 아트를 구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아트는 치매에 걸린 대프니의 남편이 되었으니까. 대프니의 곧바로 물건으로 가득 찬 아트의 아파트도 정리한다. 리디아와 복지관 이용자들이 함께 도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복지관을 이용자에 불과했던 사람들은 복지관이 없어지기 않기를 바랐고 그 중심에는 대프니가 있었다. 대프니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정녕 모두가 대프니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연대하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어려움을 나누고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 모든 일에는 대프니의 말이 주문처럼 따라온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죠.” (303쪽)


대프니는 한 번의 상처와 실수로 삶을 포기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안겨준다. 미혼부 지기에게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홀로 외롭게 지내는 아트를 세상 밖으로 이끌고 리디아에게 남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니 당신이 예상한 대로 복지관을 고치고 운영할 기금 모집도 성공한다. 물론 그 방법은 알려줄 수 없다. 당신이 멋진 대프니를 만날 기회를 날려버리면 안 되니까.


궁금하지 않은가?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말이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대프니의 활약을 직접 마주하길 바란다. 유머 넘치고 감동까지 안겨주는 소설을 놓치지 않기를. 분명 호쾌한 대프니의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다. 따뜻한 소설을 찾는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다면,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을 만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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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5-21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뭘까요?
엄청 궁금한데요^^

자목련 2025-05-23 15:55   좋아요 2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예상했던 해피엔딩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전개도 있고요!

hnine 2025-05-22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영국 출신이라니 이 소설의 분위기가 상상이 되어 흥미가 생기네요. 노인이 활약하는 소설들이 재미있는 것들이 꽤 있지요. 고리타분하게 집을 지키는 노인들이 아니라 활약하는 노인들이 나오는 책, 영화, 드라마, 환영이요.

자목련 2025-05-23 15:56   좋아요 1 | URL
네, 멋지게 활약하는 노인의 모습이 좋았어요!
시트콤으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배우 김영옥, 선우용녀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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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은 뭘까. 산 책을 정리하면서 잠깐 생각했다. 단순한 소유욕일까. 그렇다면 책을 소유한다는 건 뭘까. 읽으려고, 읽기 위해서, 읽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따라온다. 내가 산 3권의 책은 우선 내 소유가 되었다. 가지고 있을 뿐, 온전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읽어야만 조금 알 수 있다. 읽어도 모를 수 있다. 독서란 그런 것이니까. 책을 읽지만 읽고 있어도 읽는 행위에 멈추고 잘 모를 때가 더 많다. 그러니 이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사는 마음은 뭘까.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사는 것이다. 박준의 세 번째 『마중도 배웅도 없이』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도 바로 구매하지 않았다. 박준의 첫 시집에 대한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두 번째 시집을 구매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그리고 결국 구매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 주춤할 수도 있다.

김지연의 『새해 연습』은 다른 경우다. 나는 김지연의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사면서 알았다. 이 소설은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인데 나는 이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이 시리즈의 신간 알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참여하는 작가의 목록을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도 이제야 안 것이다. 더 좋아하려고 구매한 게 맞다. Falstaff 님의 리뷰 덕이 크다. (『겨울 여행』도 마찬가지)


자우메 카브레의 『겨울 여행』은 아직 좋아할지 어떨지 모른다. 다만, 이 단편집의 리뷰가 너무 좋아서 궁금했다. 이 작가의 장편 『나는 고백한다』의 소문을 알지만 읽지 못했고 단편은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은 후에야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하거나 더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책을 샀다.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쌓아둔다.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덜 좋아진 책을 정리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변할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처럼 변덕스러운 것도 없으니까. 우선은 이 세 권에 대해서는 좋은 상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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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5-1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 컬렉션 멋지네요? 자목련님의 추천 시집이 궁금합니다~!
박준 시인님 신작 전 좋던데 안좋은 평도 많더라구요 ㅜㅜ

자목련 2025-05-16 10:21   좋아요 2 | URL
한때는 시집을 더 많이 사랑했는데, 지금은 사랑이 시들었어요 ㅎ
이번 박준 시집은 호불호가 있는 듯해요^^

yamoo 2025-05-14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겨울여행 지금 읽고 있는데 반갑네요! 이제 에피소드 3개 남았어요..단편도 정말 좋네요..^^

자목련 2025-05-16 10:21   좋아요 1 | URL
좋다고 하시니 더욱 기대가 큽니다!!

레삭매냐 2025-05-14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겨울여행, 땡기네요.

책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정리는 못하고 계속해서 사
기만 하네요 ㅠ

자목련 2025-05-16 10:22   좋아요 1 | URL
정리는 잠시 잊고 함께 읽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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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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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 같은 마음이 있다. 알 것 같은 것이지 아는 것 아니다. 그 마음을 아는 건, 오직 마음의 당사자뿐이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기에 상태를 짐작한다. 주저하고 조심한다. 마음은 유일한 것이고 마음은 소하니까. 안윤의 소설집 『모린』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마음 곁에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깨질 것 같은, 얕은 숨에도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마음을 지키려 애쓰는 마음을 보았다.


표제작 「모린」 은 고객의 불평불만을 상담하는 ‘미란’과 장애인 ‘영은’의 이야기의 사랑 이야기로 읽을 수 있고 상실과 회복에 대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시각 장애인 낭독 봉사를 하는 미란은 그곳에서 영은을 처음 만났다. 자신의 전부였던 할머니를 잃은 미란에게 다가온 영은.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과 서로를 향한 마음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위안을 주는 유일한 존재, 무엇이든 다 말하고 싶은 상대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존재. 소설 속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처럼 유일한 사람.


모린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린」, 9쪽)


설령 헤어졌다고 해도 그 고유함은 사라질 수 없다. 누군가를 알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미처 전부를 다 알지 못해도 애서 지우려 해도 끝까지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먼 훗날 가만히 떠오르는 기억에 이름을 불러보게 된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 당신에게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서로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랑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별을 한다. 「담담」 속 ‘혜재’와 ‘은석’처럼 말이다. 11년이라는 긴 연애를 끝낸 혜재는 소개로 만난 은석에게 양성애자라 말한다.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은석에게 혜재의 정체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은석에겐 유가족이라는 정체성이 그러했으니까. 「담담」이란 제목처럼 둘의 만남은 그렇게 지속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일부러 캐묻지 않고 일상을 공유한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 무엇이 상처로 남았는지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은 일과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 간에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관계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갈수록 알 수가 없어진다.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조차도. (「담담」, 121쪽)






안윤이 그리는 관계는 밀착이 아닌 떨어진 사이다. 그러니까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정도라고 할까. 그건 그림자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게 느껴져서 나는 안윤의 소설이 좋았다. 읽을수록 좋아졌다. 「모린」과 「담담」에서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마음, 남겨진 흉터를 어루만지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런 마음은 「하지夏至」에서도 만난다. 서울에서 제과점을 하던 ‘수림’은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 오랜 친구 ‘지언’과 이별 캠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수림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저 곁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지언. 수림이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짐작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믿음이 있기에. 수림이 고향으로 내려가고 지언은 너는 잘 지내라는 문자를 보낸다. 수림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잘 지내지 않고 괜찮지 않더라도 잘 지내고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수림이 아닌 내가 회복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고 낮이 길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천천히 회복될 거라고.


너는 잘 지내. 그건 마치 지언이 내게 거는 주문 같았다. 너는 잘 지내. 그 주문에 단단히 걸려들고 싶었다. (213쪽)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 나는 안다, 때가 되면 다시 점점 길어지리라는 것을, 어김없지만 전과는 같지 않을 낮이. (「하지夏至」, 214쪽)


직접적으로 묻거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처와 마음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건 상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확인하고 확인받으려는 욕망이 아닌 그런 마음. 서툴고 어려워서 시간이 지나서야 보인다. 초라했던 이십 대 초반을 떠올리는 ‘의선’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던 ‘준수’를 회상하는 「작은 눈덩이 하나」. 그 시절 의선에게 유일한 사람은 준수였을 것이다.


그런 유일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아무런 징조 없이 증발해 버린다면. 「틈」에서 ‘사희’가 그러했다. ‘인애’는 사희를 수소문하지만 찾을 수 없다. 사희는 이혼을 했고 사라졌다. 나중에야 사희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우연하게 잡지에 실린 사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다. 구 년 만에 사희는 인애를 근처 저수지로 안내한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그곳에서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량하고 덧없는, 무위에 가까운 풍경들, 자신의 내면과 어딘가 닮은 대상들을 포착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 사희는 철저히 관찰자가 되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건너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거대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고작 찰나를 붙잡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위안을 줬다. (「틈」, 240쪽)


인애에게 사희가 유일한 사람이었던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아니 그 시절을 통과했다고 할까. 사희에게 인애의 사과나 위로가 필요한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놓쳐버렸다는 게 맞겠다. 사희가 보낸 시간을 알 길이 없고 그 시간을 놓쳤지만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긴 것이다.


안윤은 이처럼 저마다의 유일한 사람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유일한 사람을 지키려 노력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런 기억을 품고 살아가도 충분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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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블렌드 오렌지선셋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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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알라딘 커피를 찾았다. 나는 이 커피가 좋아서 선물하고 소개하고 함께 마시는 기쁨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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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5-1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마셨는데 맛있네요!

자목련 2025-05-13 11:23   좋아요 1 | URL
이커피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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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모두 늙는다. 병들고 아프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병을 숨긴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간병을 요청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부모를 홀로 간병하고 돌보다 발생한 사건에 놀라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는 걸 알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가족이 모두 매달려 간병을 하다 지쳐 마지막으로 시설을 선택한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만 늙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간병과 돌봄은 곧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 두 분이 살아계시지만 언제 어떻게 병원 신세를 질지 몰라 무섭다고. 나 살기도 바빠 간병은 엄두도 나지 않고 병원비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소설은 엄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등장해야 할 장례식장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좀 이상하다. 치매의 엄마는 죽었지만 연금이 들어왔고 딸 명주는 엄마의 죽음을 숨기기로 결심한다. 명주는 작은방 관에 죽은 엄마의 시신을 넣고 살아간다. 그게 가능하다고?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이웃 간의 왕래가 적은 사회에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명주에게도 사정은 있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일하다 발에 화상을 입었고 심각한 후유증으로 일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그런 명주에게 엄마가 간병을 제안했다. 엄마의 연금으로 생활한 명주에게 엄마는 살아있어야 했다. 다행히 아무도 엄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옆집 청년만 빼고. 명주에게 아는 척을 하고 할머니 안부를 걱정하는 청년 준성이 문제였다. 물리치료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준성은 집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야간에 대리운전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명주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준성은 한 번씩 반찬을 나눠주시던 할머니가 궁금했다. 할머니 딸인 게 분명한 명주는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할머니가 걱정되었지만 준성에겐 아버지 하나로 벅찼다. 준성이 고등학생 때부터 뇌졸중을 앓았고 지금은 알코올성 치매까지 있다. 형은 빚만 남기고 외국으로 떠났고 준성은 가장이 되었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명주는 딸 은진이 찾아오기 전까지 엄마의 시신을 매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혼 후 엄마와 살던 은진은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치고 아빠의 집으로 들어갔다. 사고 수습은 모두 명주의 몫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에게 마음이 늘 약했다. 대학을 졸업한 은진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명주는 외할머니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은진이 모든 걸 알게 될까 겁이 났다. 은진은 외할머니의 시골집을 찾아냈고 그걸 빌미로 돈을 요구했다.





명주는 엄마를 시골집에 모시기로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런 명주 앞에 손에 피를 묻히고 준성이 집에서 뛰어나왔다. 준성과 함께 들어간 집에는 준성의 아버지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준성은 외제차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고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수리비와 병원비는 준성이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는 다른 수준의 간병이었고 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명주는 담담하게 자신의 집으로 준성을 데리고 와 죽은 엄마의 관을 보여주고 준성에게 제안한다. 모든 건 다 자신이 할 수 있고 두 분을 시골집에 매장하자는 계획을 들려준다. 이삿짐을 옮길 트럭을 빌리고 운전은 준성이 하면 된다고.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218쪽)


50대의 명주와 20대의 준성의 연대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가능하다. 가족을 돌보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육체적 경제적 한계로 보이지 않는 미래와 허방을 딛는 것 같은 삶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런 간병과 돌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다. 돌봄 노동의 피상적인 면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 둘러보면 내 주변의 지인이 겪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래서 몰입하게 되고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와의 이별은 가까이 다가온다. 조금 더 미루고 싶은 마음과 병든 부모와 살아가는 시간이 막막하다. 가정의 달이라는 5얼에 너무 빨리 떠난 부모가 그리우면서도 아빠나 엄마가 오랜시간 병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게 사실다.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고 돌봄을 다른 형제에게 미루고 마는 현실. 류현재의 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서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진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194쪽)외침은 가장 솔직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가족이 되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은 긴 병은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가족을 돌보느라 희생하고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한 여성의 삶을 들려주는 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돌봄은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 노동의 비용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를 간병하고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 정말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차례다. 아픈 가족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돌보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을 기다리고 미래를 꿈꾸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명주가 살고 싶은 이유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고 있고 싶은 이유였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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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5-0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 우리 본인이 당사자가 될 일인 것 같아요. 공감이 많이 갑니다.

자목련 2025-05-10 11: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요즘 친구들과 그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우리의 나중은 어떨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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