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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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할 때마다, 이보다 더 큰 절망은 없을 꺼라 자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위안도 잠시, 다양한 형태의 절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여, 절망에도 슬픔에도 노하지 않는 건조한 사람이 되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아니, 실은 그리되고 싶지 않다. 적절하게 웃고, 적절하게 화내고, 적절하게 울고, 적절하게 내 소리를 내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제목소리를 내며 산다는 게 가능할까. 
 
 말이 길어졌다. 1987년생, 신예작가 문진영의 소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제1회, 제2회, 수상작이 남겼던 아쉬움이 있었기에 제 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담배 한 개비의 시간>에 대한 편견을 앞세웠다. 이십대 초반의 청춘이 그려낸 세상은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정확했고 솔직했으며 나쁘지 않았다. 

 소설은 화자인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젊은 청춘의 일상을 담았다. 강남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물 한살 나와 J, 나의 대학 선배 M, 카페에서 일하는 물고기라 불리는 그녀.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찾지 못하는 나, 특별한 이유없이 입산을 꿈꾸는 J, 나름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결국 취업준비생인 M, 세계일주를 계획하는 물고기. 일정한 시간 노동을 하고, 그 댓가로 최소한의 생활을 한다. 옥탑방에 살거나, 반지하가 아니면 고시원에 산다. 대단한 것을 원하지도 않고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최선을 다한다. 반복되는 동선의 하루 일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거울을 보듯 서로에게 닮은 듯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습관처럼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고, 열병처럼 사랑을 하고 최저임금인 자신의 일자리를 논한다. 사랑이라 말하기 두려웠던 나와 M, 입산과 세계일주를 떠날꺼라던 J와 물고기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J의 죽음과 혼수상태에 빠진 물고기는 나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준다. 방황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진지한 고독과 존재에 대한 회의와 사랑이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아파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불안의 연속이었던 시간들, 나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만날 빛을 기대하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그 시절을 경험했으나 '88만원 세대'란 말을 꼬리표로 달고 사는 20대를 이해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따금 달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면, 문득 이곳이 아닌 어디에서도 달은 조금씩 제 모습을 바꿔가고,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지구는 저만의 속도로 돌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슬픔도 절망도 아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외로움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세상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p 44

 최근에 만나 젊은 작가의 소설 중 단연 돋보였다. 같은 세대의 고민을 20대만의 감성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투명한 슬픔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러나 이 슬픔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디서든 어떻게든 제 빛을 발휘하는 게 청춘이라 믿는다. 발랄한 감수성을 유려하게 담아 낼, 문진영의 소설을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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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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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은 비주류와 같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 주목받기 보다는 무관심이 많다.  해서, 그런 이유로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로 대다수의 바깥에 있는 이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사는 이들의 시선을 받는다. 안과 바깥을 구분하는 기분은 무엇일까. 그 경계는 또 무엇일까.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라는 부제에서 따뜻함이 전해진다. 누군가의 가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가만히 이야기 하고, 곁에서 들어주는 사람과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인터뷰이는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 사장을 시작으로 연극배우 택배기사 임학순씨, 시간강사, 군무 발레리나 안지원씨, 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절판되는 책, 우표, 막걸리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1등, 2등이 아닌 등외에 있었고,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았으나 자신의 삶에 충실히 생활하며 사랑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여, 내가 갖었던 편견이 부끄러웠다. 우리는 쉽게 속단하는 습관이 있다. 코끼리의 꼬리만 보고 전체를 보았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처럼,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왜 그렇게 사냐고 쉽게 말하고 질책한다. 그리하여 안이 아닌 바깥으로 밀어낸다. 

 진솔한 인터뷰 중 택배기사가 된 연극배우, 군무 발레리나, 메일에 밀려 난 바깥의 대표주자인 우표는 더 눈이 갔다. 예술의 몸짓으로 표현하는 연극배우 임학순씨는 왜 택배기사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컸다. 무대는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연극외에 할 수 있는 일이 택배였다고, 그러나 다시 무대로 돌아갈 거라고. 

 주인공이 있으면 조연이 있고 엑스트라가 있을 터.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기를 꿈꾸나, 조연이기도 하고 엑스트라이기도 하고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미 알면서도 주인공에 시선을 두고 기억한다. 군무 발레리나 안지원씨는 주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역만으로 이뤄지는 공연은 없다. 많은 군무 발레리나가 있어야 작품은 더 빛이 난다. “발레 보시는 분들은 대개 주역을 보러 오시잖아요. 코르드 발레는 들러리쯤으로 생각하기 쉽죠. 발레단 안에서조차 그렇게 여기는 이들도 없진 않아요. 그러면 정말 안되는데….” p 246  발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손 편지의 설렘과 기쁨을 알기에 하얀 편지 봉투에 풀 대신 침을 발라 우표를 붙이는 즐거움을 안다. 이런 우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안타깝다. 편리한 스탬프와 스티커가 우표의 감성을 대신할 수 있을까. “우표는 그 나라 정서와 문화, 역사를 담는 얼굴이잖아요. 국가가 존속하는 한 우표는 영원할 것이고, 그 영원한 상징 속에 저도 담기는 것이니 영광이죠.” p 298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흔희들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삶에서 맞닥뜨리는 세상은 새로운 여행지와 달리 대개는 외롭고 황량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갈 나그네나 구경꾼이 아니라, 불편한 시선을 무릎쓰고 어떻게든 비집고 껴 앉아야 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세상은 그들이 마음 편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넉넉한 세상, 지금보다는 휠씬 헐겁고 느슨한 세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p 313

 인터뷰어의 믿음처럼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여직 만났던 어떤 인터뷰집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책이다.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 안이 아니라 바깥의 삶. 바깥은 춥다. 나 역시 바깥에 있다. 그러나 나는 안을 갈망하지 않는다. 세상살이의 진리는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변두리가 중심이 되고, 바깥이 안이 된다는 걸 알기에.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를 다 읽고 이 책과 어울리는 시가 떠올랐다. 바로, 정현종 시인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가 그것이다.우리는 ‘안’이 아니라 ‘바깥’의 풍경으로 점점 더 빠져든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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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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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소설에 대해 딱딱하고 읽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여, 오랜 시간 손에 잡았던 ‘카프카’의 <성>이 떠올랐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작가나 작품은 많지 않다. 독일편의 작가엔 ‘괴테’, ‘카프카’, ‘헤쎄’를 제외하고 익숙한 이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9개국의 세계 문학 중 영국 다음으로 독일편으로 선택한 이유는 17명 작가의 단편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소설의 분량도 아주 짧은 것부터 중단편까지 다양하여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17편은 하나같이 독특했다. 히틀러의 독재와 유대인 학살, 동독과 서독에서 하나의 독일로 통일된 역사를 배경으로 다룬 단편들이 모여 독일스럽다는 표현이 맞을까 싶다. 기억에 남는 단편들은 표제작인 ‘알렉산더 클루게’의 <어느 사랑의 실험>,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 ‘헤르만 브로흐’의 <바르바라>, ‘지크프리트 렌츠’의 <발라톤 호수의 물결>이었다. 젊은 아내가 정부와 짜고 뚱보 남편을 죽게 만드는 ‘토마스 만’의 <루이스 헨>와 원숭이를 화자로 내세운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도 색다른 단편이었다. 

  제일 먼저 읽게 된 알렉산더 클루게의 <어느 사랑의 실험>은 강제 수용소에서 방사선으로 불임시술을 한 후, 오래도록 그 상태가 유지하는지 포로들을 상대로 실험하는 내용이다. 과거 히틀러의 시대 ‘아우슈비츠’의 한 장면을 떠올렸으며,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듯 보였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은 형 카를로가 자신의 실수로 눈이 먼 동생을 옆에서 보살피며 생활하는 이야기다. 눈 먼 동생에게 동전을 건네며 손님이 형을 조심하라고 장난스런 말을 건넨다. 이 한 마디 말은 동생과 형의 사이를 위태롭게 만든다. 20년의 신뢰는 한 순간 무너지고, 동생은 형의 어떤 말도 믿지 않는다. 급기야 형은 동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경찰에 잡힐 위기에 처한다. 20동안 지속된 관계가 하루의 오해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신뢰는 어디서 오나 묻게 한다. 

 헤르만 브로흐의 <바르바라>는 중년의 의사가 자신이 사랑한 젊은 의사 바르바라를 추억하며 시작한다. 생화학을 연구하던 의사는 소아과 여의사 바르바라에게 첫 눈에 반한다.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 소녀가 입원하고 모두가 뇌진탕을 진단한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뇌일혈을 앓고 있다며 괴로워한다. 의사는 그녀를 위로하다 둘은 가까워져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결국 소녀는 뇌일혈로 죽고 만다. 아이를 가진 바르바라에게 의사는 청혼을 하지만, 바르바라는 휴가를 떠나고 결국 자살한다.  읽는 내내 결말에 대해 궁금했는데, 바르바라는 공상당행동대원으로 사랑이 아닌 사상을 선택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 바르바라와 같은 삶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크프리트 렌츠의 <발라톤 호수의 물결>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오빠와 동독에 남은 여동생이 13년에 만난 가족 상봉기다.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남매는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 단편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특별하게 다가왔다.

 독일편은 단편 17편을 차례대로 모두 해설해주고 있다. 독일 문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 자세한 작품 설명은 많은 도움을 준다.이 책을 계기로 언젠가 읽을 욕심으로 사둔 카프카 단편집을 책장에서 꺼내야겠다. 그리하여 조금씩 독일 문학과 가까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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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그러니까 그저께 3월 15일에 잠깐 울었다. 울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잠깐 내 나이를 생각했고, 3월의 절반이 지났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불안이 몰려왔다. 2010년은 어떤 리스트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 74일이 지났다. 74라는 숫자가 크게 다가왔다. 정신을 차려야지 않냐는 질책의 소리를 들었다. 

 저녁에 고모와 통화를 했다. 사촌들의 근황과 다른 고모들의 소식을 들었고 여전하게 걱정의 잔소리를 들었다.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성의없는 대답을 했다. 고모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살뜰하게 나를 챙길까 알면서도 그랬다. 드라마를 하나 보고 읽다 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왜 울었을까, 생각했다. 

 봄이라는데, 여전하게 춥다. 바람 탓인지, 아직 창을 열고 베란다에서 햇살을 맞지 못했다. 그래도 곧 여기 저기 꽃이 필 것이다. 곧 연두를 지나 초록이 가득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 여물 것이다. 봄은 곧 지나갈 게 분명하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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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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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편혜영의 소설을 기다렸다.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에서 일상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섬뜩하게 그려낸 편혜영. 이번엔 과연 얼마나 끔찍한, 혹은 잔인한 일상을  보여줄까. 눈, 코, 입, 귀, 정상적인 한 남자의 얼굴이 분명한데,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표지는 소설에 대한 암시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제약회사 약품개발원으로 일하는 남자는 쥐를 잘 잡는 이유로 C국의 본사로 발령을 받는다. 전처와 이혼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남자에게 파견근무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C국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면 족했다. 막상 도착하니 C국은 전염병이 돌았고, 남자의 숙소가 있는 제 4구역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본사 직원 몰은 출근이 늦어진다는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는다.

 남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끼며 전처와의 일상을 회상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한 시간이 줄었다. 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전염병으로 인해 제 4구역은 정기적인 소독과 식사가 제공된다. 몰과의 연락을 위해 본사와 회사에 전화를 걸지만, 아무 소식도 전해듣지 못한다.  외부와 어떤 접촉도 없이 지내던 남자는 모국에 남겨둔 개가 생각나 동창 유진에게 개를 부탁한다.

 유진은 남자의 출국 전날 잔인하게 죽은 개와 전처의 소식과 자신이 용의자란 사실을 전한다. 남자는 술에 취한 출국 전날을 떠올리지만, 전처와 개를 죽인 기억은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방문자에 불안해진 남자는 숙소에서 뛰어 내린다. 노숙자가 된 남자는 공원을 거쳐 하수도에서 생활하며 시궁창의 쥐를 잡는다. 방역팀장에 의해 임시방역원으로 선발된 그는 쥐를 잡으며 살아간다.

 남자는 여전하게 몰을 찾는다. 힘겹게 본사에 방문했으나 전영병에 걸려 퇴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몰은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 쥐를 죽이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전염병이 사라진 C국에서 남자는 쥐를 잡아 돈을 벌며 살아간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삶은 고독함과 외로움이 함께였다. 모국에 전화를 걸어 유진을 찾거나, 전처와 같은 이름을 찾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누가 전처를 살해했을까. 소설은 강한 의문을 제시할 뿐 답은 알려주지 않는다.  제약회사 약품개발원인 주인공이 전염병이 도는 나라에게 결국 쥐를 잡으며 살게 되는 이야기. 살아있는 쥐를 죽이는 끔찍함이나 전염병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의 묘사는 전작과 다름없이 그로테스크하나 훨씬 더 꼼꼼하다. 그 기막힌 전개과정을 보면 편혜영이 무척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인물들은 유진을 제외하고 이름이 없다. 주인공 ‘남자’를 시작으로 ‘전처, C국, 제 4구역, 모든 외국인으로 대표되는 , 심지어 이름없는 까지. 익명성으로 부여된 인물은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라도 예외없이 전염될 수 있는 전염병도 그러하다.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좁은 사각형의 유리상자 안에서 그는 공연히 떠오르는 이름들을, 전처의 이름이나 유진의 이름 혹은 자신의 이름을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동전을 넣지 않으면 어떠한 신호음도 떨어지지 않는 수화기는 묵묵히 그가 부르는 이름을 들어주었다.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유리상자 안에서 가볍게 공명했다. 그 이름들은 닿을 수 없는 먼 과거와 유일하게 이어진 것이었다. p 234  

 남자의 삶은 기구한 운명이라 해야 할까. 전처나 직장 동료와 대화를 회피하고 살아온 시간과 명확한 의사 전달을 뒤로 하고 결과를 예측해 결국 고립되고 만다. 따지고 보면, 모두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다. 공중전화를 볼 때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싶은 남자의 간절함은 고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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