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30만 부 리커버 특별판)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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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중요하다. 특히 십 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와 잘 지내는 일은 어렵다. 나를 다 보여주면 상대도 다 보여주기를 바라고 내가 비밀을 말하면 상대도 비밀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친구와의 관계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황영미의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는 그런 십 대의 마음을 아주 잘 묘사했다. 학교에서 은따,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가면을 쓰고 마음을 숨기는지 말이다. 그 마음이 안쓰러워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나 따돌림을 하는 아이, 모두 저마다의 아픈 상처와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을 앞두고 다현은 반 배정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자신을 끼워준 ‘다섯 손가락’ 모임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중 두 명과 한 반이 되었다. 문제는 짝꿍이다. 친구들의 밉상 2위에 랭킹 된 은유다. 친구들이 왜 은유를 미워하는지 다현은 잘 모르겠다. 수행평가 때문에 은유와 같은 조가 되었는데 모임 친구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모둠 활동을 위해 은유 집에 간 다현은 은유가 이상하지 않다. 다섯 손가락 친구들은 강남에서 이사 온 은유가 학원도 일부러 안 알려주고 변호사 아빠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모둠의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사정은 달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모가 계신 동네로 이사를 왔고 은유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했다고.


다현은 다섯 손가락 모임의 친구에게 은유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에 말하지 못했다. 다현은 모임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난다는 말도 아이돌 노래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진지충’이라는 것, 비공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은따가 되기 싫어서, 그런데 이 모든 걸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다. 오직 운영하는 블로그에만 자신의 마음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은유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라졌다. 우연하게 길에서 만난 은유와 함께 집에 온 다현이는 은유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가 떠나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올 수 없었는데 다섯 손가락 모임의 친구는 그걸 모르니 은유가 밉고 싫었을 것이다. 은유는 단짝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혼자 지내고 상관없다고 말한다. 


“왜? 친해지는 게 왜 겁나는데?”

“어차피 또 헤어질 거잖아. 난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을 거야.”

“야! 그러다 왕따 되면 어쩌려고?”

“왕따? 왕따 되면 되는 거지. 난 왕따 따위는 겁 안 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지는 게 겁나지.” (114쪽) 


다현이 은유와 가까워질수록 다섯 손가락 모임과는 점점 멀어졌다. 아니 그 친구들이 다현이를 은따, 왕따시키는 게 맞다. 다섯 손가락에서 다현은 친구가 놓고 간 학원 교재를 심부름하거나 눈치를 보면서 맞장구를 치거나 용돈으로 선물을 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하고 싶을 말을 꽁꽁 숨긴 채 그래야 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친구로 대하지 않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156~157쪽) 


다섯 손가락과 다현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다. 나무들처럼 혼자라는 은유의 말이 다현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다현은 비공개 블로그를 공개로 돌리고 모둠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과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공유한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울컥해진다.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는 다현이 대견스럽다. 옆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만 신경 쓸 거야.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면 그냥, 내가 먼저 좋아할 거야.” (179~180쪽)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를 읽으면서 학창 시절 좋아했던 친구와 점점 서먹해졌던 때가 떠올랐다. 무조건 좋아하는 마음에 다가서기만 했던 내 모습이 친구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감정과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로 많이 힘든 시기를 겪는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을 위한 도서여도 무방하다. 그만큼 관계에 대해 잘 묘사하고 설명하다. 아주 좋은 책이라는 설명으로 부족할 정로도 좋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성장한다는 것을. 그렇게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좌절하며 천천히 단단해질 것이라고. 다현이 블로그에 올린 글처럼. 


그냥 웃어, 노래 가사처럼 넘어지면 아픈 게 당연하다. 생채기가 나고 피가 흐르겠지. 하지만 조만간 껍질이 생길 것이다. 새롭고 단단한 껍질. 나의 외피.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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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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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 대한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건 내 나이를 떠올리고 어느 나이가 될 때까지의 시간을 헤아려 본 다음이다. 최근에 읽은 『아무튼, 할머니』의 영향도 크고 주일마다 뵙는 친근한 미소의 어르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는 일, 늙어가는 일,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한 번씩 서럽게 다가온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블라우스를 고르면서 이 옷을 입은 몇 년 후를 생각하면서 주저했다. 나이와 옷의 상관관계가 무엇일까 싶으면서도 그랬다. 물론 나는 그 블라우스를 아주 잘 입고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를 읽게 된 계기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내가 꽂힌 단어는 할머니, 그리고 피아노였다. 어린 시절 겨우 두말만에 그만둔 피아노. 부모님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계속 배울 수 있었을까. 어른이 돼서 자립하고서 배우지 않은 걸 보면 그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여전히 피아노에 끌리는 걸 보면 조금 더 자세히 내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사하겠습니다』의 작가로 이 책을 통해서도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의 삶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배웠던 피아노를 40년이 지난 53세에 다시 배운다. 결코 빠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늦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모든 배움에는 기준을 세운 나이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노년에 무언가를 배운다고 하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나이에 그걸 배워서 뭐 할 거냐고. 쓸모가 있어야 할까. 그냥 즐겁고 신나면 되는 거 아닐까. 


일단은 자기 자신에게 취해서 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 피아노 연주를 가장 많이 듣는 단골손님은 분명히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한다면 피아노를 치는 의미가 어디 있겠는가. (63쪽)


이 책은 피아노를 배우는 기록이자 연습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한,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재미없고 철학적 사유를 전하는 건 아니다. 저자가 피아노를 배우면서 느끼는 고충(?)을 실감 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과는 다르게 피아니스트에게 배우는 특권을(연재를 위한 출판사의 섭외) 얻어 개인 소장의 피아노가 없어 카페에 있는 피아노로 연습을 한다. 무조건 연습이 살 길이라고 여기면서 연습을 하던 그에게 닥친 난관은 하나둘이 아니다. 손가락이 아파지는 일, 눈이 잘 안 보여서 악보를 최대한 크게 복사하는 일, 절대 남들 앞에서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발표회까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경험한 일들이라 생생한 에피소드는 마치 내가 피아노 앞에 앉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올 정도다. 어린 적 학원에서 바이엘, 체르니 순으로 배우고 쳐야만 하는 게 아니라서 지금이라도 당장 피아노 학원을 검색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선택해서 연습할 수 있다는 게 어른의 피아노의 매력이지만 노화로 인해 뇌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에는 속상하고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다시 이런 문장 앞에서 기운을 낸다. 정작 내가 피아노를 배우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피아노 자리에 수많은 다른 말을 집어넣으면서. 


어른에게는 어른 나름의, 어른만의 피아노가 있다. 어른의 피아노의 즐거움은 실력이 좋다거나 없다는 등의 사소한 문제와는 다른 곳에 있다. (148쪽)


저자는 피아노를 치면서 쇼팽, 베토벤, 드뷔시 등 작곡가에 대해서 알아보고 손에 나타난 증상을 덕분에 피아노를 치면서 다른 사람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위안을 받는다. 피아노를 배운다는 건 단순하게 기술적인 연주만이 아니라 피아노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었다. 음악을 만든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곡을 쓰고 연주자들은 어떻게 연주를 하는지. 피아니스트도 실수를 하면서 연주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는 것까지.


저자는 이처럼 피아노를 배우면서 인생 후반에야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뭐든 잘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것, 빨리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실패나 슬럼프에도 담담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늙음과 노년에 대한 막연한 무기력과 두려움 대신 순간을 즐기는 일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치매에 걸릴 사람은 걸린다. 하지만 아무리 증증 치매라고 해도 피아노만은 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아무리 늙고 시들어도 드뷔시의 <달빛>을 화려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연주가 끝나면 다시 멍한 상태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인생의 가능성은 무한대다! 나도 그런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203~204쪽)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다. 뭔가 배우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주저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그게 피아노라면 적극 추천한다. 어른을 위한 피아노 설명서라고 할까. 책 속에는 직접 경험한 저자의 노하우라 할 수 있는 <‘어른의 피아노’를 시작하는 법>이 있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책을 읽어도 좋다. 


설령 아주 조금일지언정 아름답게 쳤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인생 후반전의 삶에는 ‘내일’이 없다. 그렇다면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267쪽)


저자는 인생 후반을 꼭 집어 말하지만 실은 어느 나이를 살든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 집중하는 게 가장 잘 사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 아름다운 일에 만족하며 살면 좋겠다. 나만의 피아노, 어른의 피아노를 찾아보려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간직할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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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12-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안 그래도 저 이 책 읽고 싶었는데 이미 다른 책 주문해서 오고 있어서 ^^;;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야겠네요. 저는 피아노를 꽤 오래 했다 그만둬서 언젠가 다시 재개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어요...

자목련 2022-12-07 11:48   좋아요 0 | URL
피아노를 오래 치시고 재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재개를 앞당길 수 있게 만들 책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여러 모로 재밌게 읽고 즐거운 책이었어요^^

거리의화가 2022-12-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는데 지금은 다 까먹어서 피아노 치는 법은 커녕 악보 보는 법도 다 잊어버렸어요ㅠㅠ 배우고 싶은데 주저할 나이라는 것이 없음에도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데 망설이게 되네요.
블라우스 고르면서 드셨던 생각 공감이 됩니다. 더 이상 예쁜 옷을 고르지 않고 편하고 대충 입지뭐 이런 생각도 드네요^^;;; 주름이 하나 둘 늘고 거울을 보는 것이 예전처럼 즐겁지 않을 때는 좀 서글퍼지더라구요. 그럴수록 새로운 옷도 화장도 시도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목련 2022-12-07 11:50   좋아요 0 | URL
도전이 점점 어려운 나이로 접어들고 있어요. 그 블라우스는 가까이 지내는 동생이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말해줘서 열심히 입고 있어요. 나이를 생각하면서 옷을 고르는 제가 참 속상하더라고요. ㅠ.ㅠ
새로운 화장, 적극 추천합니다!
 

우리는 모두 읽고 쓰는 존재다. 무엇을 읽고 쓰냐가 다를 뿐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소설가의 문장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아주 잠깐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일으켜 세운 건 내가 읽은 소설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꽤 오랜 시간 전에 책을 붙잡고 빠져있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도 책을 좋아하고 읽고 있지만 당시에는 책이 내 마음을 다잡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때 만났던 소설들, 그때 만났던 마음 잡이 글들이 나를 도왔다. 소설이 주는 위안, 소설 속 주인공도 나와 다르지 않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 소설을 쓴 소설가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쓸까, 언제 어디서 소설을 시작할까. 궁금했다. 쓰는 마음이 시작되는 공간, 쓰는 마음이 모이지 않을 때 어떻게 할까.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엔 그런 글들이 있다. 김사과, 김엄지, 김이설로 시작해 박솔뫼, 손보미, 정용준, 한정현, 조경란, 하성란 등 23명의 작가가 쓴 솔직한 자기 고백과도 같은 글에는 소설 쓰기의 즐거움과 어려움이 담겨있다. 그들에게 소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수록된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단편 하나부터 많게는 작가가 낸 소설을 거의 읽은 작가도 있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의 소설들이 따라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설과 에세이는 그 형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른데도 소설 속 문장이 떠올랐다. 결이 같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개인적인 의견일지만 김엄지나 박솔뫼의 경우, 에세이지만 소설처럼 읽혔다. 그의 소설이 마치 산문처럼 여겨졌던 것처럼.


한편의 에세이마다 작가가 보낸 사진이 함께 한다. 글을 쓰는 카페, 서재의 일부가 많았다.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잠깐 상상한다. 그 자리에서 작가는 하루의 작업을 시작하는구나. 작가의 공간에서 얼핏 보이는 책등의 제목을 보면서 작가도 이 소설을 읽었구나 괜히 기뻐하면서 말이다. 글을 쓰는 작가의 많은 에세이가 그러하듯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에서 들려주는 소설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매우 곡진하다.


내가 언제까지 소설 쓰기에 하루 여섯 시간을 고수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가능할 수 있다면 좋겠다. 동료와 후배 작가들과 약속했던 것처럼 건강하게 오래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하니 더더욱 여섯 시간을 지키자. 부디 그러자고, 촌스럽지만 굳은 다짐 같은 것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김이설, 37쪽)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오롯이 소설을 쓰는 여섯 시간을 갖기 위해 무려 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김이설 작가가 쓰는 작업 일지, 이제는 체력이 되지 않아 운동을 하며 소설을 쓴다는 박민정, 정체와 지친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쉬는 일의 두려움을 조심스럽게 들려주는 손보미, 너무 쉽게 글을 배우고 읽혀서 소설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게 힘들다는 정소현, 소리가 깃든 문장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정용준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첫 소설집의 단편이 생각나기도 했다.


문장에 소리가 있으면 좋겠다. 소리를 닮은 문장이 아닌, 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장이 아닌, 실제로 소리가 깃든 문장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장 속에 리듬을 깔고 화음을 만들어 마음대로 변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는가. (정용준, 127쪽)


소설을 썼을 때 이익은 얼마이며 마진이 얼마인지 남을까 알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타이핑 살 수 있도록 빠른 속도의 암살자 같은 태도로 글을 쓴다는 오한기, 자분자분 자신이 살았던 과거와 현재를 통해 그 안에 소설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말하는 전성태와 조경란, 소설을 쓸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대해 설명하는 한은형. 첫 책의 출간을 축하하며 진짜 직업을 구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려주는 정지돈의 유쾌한 농담 같은 글에 담긴 소설에 대한 진심은 그동안 어렵다고 여겨 내가 읽지 않은 그의 소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문학은 포기라는 사실을,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것에 실패했을 때에야 비로소 문학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내 능력 너머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문학이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지돈, 144쪽)


순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좋아하는 작가, 끌리는 작가의 글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아마도 좋아하는 작가의 편을 먼저 읽는 이가 많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작가의 소설을 곁에 두고 읽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마음도 작가의 마음 못지않게 정성스러우니까. 여기 실린 23편의 에세이를 통해 작가들의 소설 쓰기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읽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 작가가 좋아하는 카페의 어느 자리에서 시작되었구나, 한 문장을 쓰면서 몇 번을 고치고 고쳤겠구나. 산책과 수영을 하고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소설 쓰기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끌어안고 지내다 모든 걸 포기하고 편안해졌을 때 쓰인 문장일지도 모른다는.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엇일까 조금 더 닿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최진영의 문장이 괜히 좋아서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 번쯤 혼잣말로 따라 해보려고 한다. “나도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좋습니다”라고 말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소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중에 1퍼센트도 읽지 못하고 죽을 거예요. 이제는 그 사실이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오늘 쓸 수 있는 글을 씁니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합니다. (193쪽, 최진영)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읽고 싶은 소설 몇 권이 생각났다. 김이설, 정용준, 박솔뫼, 박민정, 정지돈, 한유주의 소설들. 어쩌면 다시 읽으면 작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꼐. 아직 읽지 못한 작가의 에세이와 새로운 소설에 대한 기대를 품는 시간이 쓰는 마음과 나란하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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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12-0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자목련님 덕에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자목련 2022-12-07 09:58   좋아요 0 | URL
저는 참 좋았어요. 블랑카 님도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니데이 2022-12-06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책 소개가 나오는 건 본 적 있는데, 조금 더 상품 페이지의 소개를 읽어봐야겠어요.
잘읽었습니다. 자목련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07 09:5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포근하고 건강한 하루 이어가세요^^
 
아무튼, 할머니 - 그래, 사는 게 지겨워질 리가 없어 아무튼 시리즈 50
신승은 지음 / 제철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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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아무튼 시리즈’를 검색한다. 아무튼, 뒤에 나오는 것들은 보통 일상에서의 평범한 것들이다. 그래서 때로 친근감이 가고 때로 관심이 덜 간다.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주제만큼이나 작가의 영향도 적지 않다. 『아무튼, 할머니』는 오롯이 할머니란 말이 나를 이끌었다. 누구나 할머니가 된다고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인지한 순간은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조카에게 할머니가 분명했지만 내게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현재 엄마의 나이를 살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할머니가 된 엄마를 상상하려 해도 쉽지 않다. 엄마는 어떤 할머니가 되었을까. 엄마는 어떤 할머니로 살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작가가 할머니와의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무튼, 할머니』는 할머니가 된 엄마, 할머니가 된 큰언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매 순간 엄격한 잔소리를 하셨던,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 곱게 단장하고 비녀를 꼽고 병원 나들이를 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작가의 할머니처럼 욕도 잘 하셨고 금기시하는 것들도 많았고 손녀에 대한 차별도 많으셨던 할머니다. 작가의 할머니처럼 손녀를 끔찍하게 여기시지는 않았다. 친할머니라서 그랬을까. 그래도 건강이 나빠지고 약해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무섭게 호통치던 호랑이를 닮은 모습이 더 나았다.


작가가 들려주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돌아가신 할머니 단 한 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할머니, 우리가 만나게 될 할머니, 우리가 꿈꾸는 할머니, 우리가 되고자 하는 할머니다. 스스럼없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근감이 넘치는 할머니. 병원이나 시장,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분들이다. 책에 등장한 것처럼 무얼 샀냐고 묻고 일면식이 없는 사이인데도 오랜 친분이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놀랍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어른이 되고부터 아이들과 학생들이 다 예뻐 보이는 그런 마음과 비슷한 것일까. 


유독 할머니들은 왜 그럴까. 할머니들은 때때로 겁이 없다. 남에게 도움을 척척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남에게 도움을 척척 줄 수 있다. 친구는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가 빵을 주셔서 마스크 속으로 쏘옥 넣어 먹고 온 일도 있다. 할머니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도와주고 도움받는 일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52쪽)


작가가 만난 할머니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게 빠져들고 할머니를 응원하는 동시에 속상한 마음도 크다. 주어진 시간에 맞춰 한 번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는 할머니, 키오스크로 쉽게 주문을 할 수 없는 할머니, 비타민이나 처방약에 대한 안내문을 읽기 힘든 할머니. 이게 할머니의 현실이니까. 자연의 이치로 신체의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어디 그뿐인가. 건물 청소를 하는 할머니,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자식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각 시대에 놓인 할머니의 사정은 훨씬 더 어렵다. 그러니 어쩌면 안전한 할머니, 소외받지 않는 할머니가 되는 건 작가의 말처럼 어려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장애물이 참 많다. 또 당연히 안전한 할머니, 소외받지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여성 노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들을 사회는 어떻게 다루는가. 노인 빈곤에 대해 사회는 얼마 나 나 몰라라 하는가. 폐지를 줍는 노인들, 고물상에 가는 노인들이 킬로그램당 얼마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꿈꾸는 것은 그냥 할머니가 아니었나 보다. 친구들하고 다 같이, 안전하고, 빈곤하지 않은, 빈곤하더라도 혜택을 받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할머니를 꿈꾼다. (73~74쪽)


그러니 우리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할머니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뭔가 배우고 싶고 뭔가 즐겁게 살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는걸. 집회, 농성장, 데모의 현장에 모인 여성 노동자의 외침을 간과하지 말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우리는 모두 늙고 할머니가 되니까. 어떤 모습의 할머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난 할머니 가운데 ‘까치산 할머니’라 불린 유창숙 영화배우를 드라마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TV에서 보면 단번에 알아볼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할 수 있는 할머니. 우리가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아무튼, 할머니』를 읽으면서 돌봄이나 희생이라는 프레임에 할머니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작가가 만든 노래로 공연하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처럼 당당하고 멋진 할머니를 응원한다. 그런 할머니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나는 무엇이 될까. 할머니가 될까. 어떤 할머니가 될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할머니가 될까. 우리 할머니처럼 욕을 잘하는 할머니가 될까. 아네스 바르다 감독님처럼 영화를 계속 찍는 할머니가 될까. 흰머리는 염색을 할까, 흰 눈처럼 새하얗게 둘까. 눈 온 다음날 우리 집 옥상처럼 하얀 머리에 듬성듬성 초록색 염색을 할까. 그때도 공연을 할까. 그때도 꿈을 꿀까. 할머니처럼 용한 꿈을 꿀까. 지금처럼 할머니 꿈을 꿀까. 살고 볼 일이다. (166~167쪽)


나의 할머니를 생각하고 할머니가 되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하고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할머니가 되어 살아가는 사회가 책에서 만난 것보다는 나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고 즐겁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 할머니가 된 친구와 함께 신나고 재미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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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2-0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돌아가신 지 오래된 외할머니 생각이 나요. 여리고 순하고 곱디곱기만 했던 분이었어요. 큰소리 한번을 안 내셨지요. 우리의 할머니는 어떤 모습일지 또 할머니가 된 울엄마 모습도 떠오르고 많은 생각이 드네요. 할머니를 마지막 작위라고 어느 수필가가 그랬어요. 아무튼 시리즈 좋은데 이 책도 마음에 들어 냉큼 담아갑니다. 작위 받고 계속 여기서 자목련 님 만날 수 있기를... 할머니가 되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하시는 자목련 님. 토닥토닥^^ 세상은 시끄럽지만 12월의 첫날 화창하게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02 10:46   좋아요 1 | URL
할머니는 아무 무서운 분이셨는데도 가끔 그리워집니다. 나이가 들고 점점 노년의 삶에 대해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엄마는 특히^^*
프레이야 님, 지금쯤은 부산도 제법 추울 것 같아요.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라로 2022-12-01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할머니들과 좋은 추억이 일도 없어서 그런가 할머니 생각은 안 나지만, 제가 할머니가 된다면 정말 좋은 할머니가, 무조건 사랑해 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이 책의 부제가 더 인상 깊네요.

자목련 2022-12-02 10: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부제가 더 멋져요!
라로 님은 사랑이 가득한 예쁜 할머니가 되실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옆모습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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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서 ‘조제’는 특별한 주인공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랑과 연애의 중심에 선 여주인공 ‘조제’. 『잃어버린 옆모습』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제를 둘러싼 남자들의 애정 공세와 그들을 향한 조제의 복잡한 내면 심리의 묘사가 탁월하다. 프랑수아즈 사강만이 쓸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번 『잃어버린 옆모습』에서는 사랑에 매달리는 쪼잔하고 지질한 모습이 한층 더 돋보인다. 


조제는 미국에서 생활하다 미국 남자 ‘앨런’을 만나 결혼해 파리에 돌아와 살고 있다. 조제를 향한 앨런의 집착과 편집증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파국에 이르렀다. 파리에서 좋은 커플로 보이기를 원하는 앨런에 의해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조제는 연상의 사업가 ‘줄리우스’를 알게 된다. 줄리우스의 도움으로 앨런의 극단적 조치로 2주 동안 감금생활을 하던 조제는 집 밖으로 탈출한다. 그 뒤 줄리우스는 조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세가 싼 집을 알아봐 주고 잡지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파리의 사교계에서는 조제와 줄리우스의 관계를 인정한다. 정작 조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조제의 지인도 줄리우스가 원하는 건 뭐든 갖는 사람이라고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조제는 그저 자신을 돌봐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사실 소설 밖 독자의 눈에도 조제를 향한 줄리우스의 흑심이 눈에 선하다. 젊고 예쁜 조제를 선의로 도와준다고? 그런 남자는 부모나 형제 빼고는 없다. 조제는 앨런과의 결혼 생활에 지졌고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의심할 여유도 없었다. 어쩌면 조제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줄리우스가 적극적 구애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결코 심연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지 않을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늘 아침에 짧은 사냥 노래를 휘파람을 불면서 잠에서 깨어날 거야. (94쪽)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고 꼼꼼히 생각하면 줄리우스의 숨겨진 진심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파리의 평균 집값에 미치지 못하는 집세, 줄리우스와 동반한 모임에서 조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말이다. 줄리우스의 의도를 파악한 건 미국으로 간 앨런이 아프다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후였다. 앨런의 상태가 진짜든 거짓이든 조제는 뉴욕으로 향했고 줄리우스는 조제가 머물 호텔과 비서를 보내고 잡지사에 연락을 취하고 자신도 미국으로 향했다. 병원에 입원한 앨런은 여전히 조제를 원했고 조제는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했다.


뉴욕에서 만난 줄리어스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조제와 함께 해변을 거닐고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서 조제는 줄리어스가 신경안정제와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줄리우스가 해변에서 쓰러졌다. 줄리우스의 약한 모습에 조제는 놀랐지만 그의 청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아온 파리에서 그들은 여전히 좋은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조제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등장했다. 시골에 사는 수의사 ‘루이’였다. 조제와 루이는 사랑에 빠졌다. 파리와 시골이라는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이와의 만남으로 줄리우스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루이와의 관계를 알려야 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던 차 조제는 잡지사에서 멋진 제안을 받았고 기뻐함과 동시에 줄리우스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은 언제나 그의 옆모습이었다. 그는 몸짓이 없고 눈길이 없는 남자였다. 또한 앨렌에게 감금이 된 나, 뉴욕의 호텔에서 눈물에 젖은 나, 해변의 피아니스트에게 매혹된 나를 본 남자였다. 나에 대한 특별한, 멜로드라마적인 어떤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남자였다. (210쪽)


그렇다.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왔다는 걸 알았다. 이제야 조제는 자신이 잘 안다고 여긴 줄리우스를 생각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랐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조제는 바로 잡지사를 나와 집을 떠났다. 루이가 있는 시골로 향했다. 줄리우스의 연락은 차단했다. 루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갖은 조제는 파리 근교로 이사할 계획을 세운다. 모든 게 완벽했기에 파리에서 줄리우스를 만났을 때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리우스는 조제가 자신에게 돌아온 것으로 착각했다. 심지어 루이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는데도 조제와 아이가 모든 자신 거라고 울부짖었다. 조제는 경악했다. 세상에나 줄리우스도 앨런과 다르지 않았다. 두 달 후 줄리우스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지독히도 평행이고 지독히도 낯선 서로의 인생 속을 지나갔다. 우리는 오직 옆모습으로만 서로를 보았고, 결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소유하기만을 꿈꾸었고, 나는 그에게서 달아나기만을 꿈꾸었다. 그게 전부였다. (233쪽)


프랑수아즈 사강은 언제나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잃어버린 옆모습』에서 앨런과 줄리우스는 조제를 사랑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부를 걸어 사랑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니다. 1974년에 발표될 당시에는 사랑으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22년 현재 앨런과 줄리우스의 말과 행동은 가스라이팅과 폭력에 해당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구속하는 건 범죄일 뿐이다. 일방적인 강요나 설득이 아닌 서로가 교감하고 감정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다. 루이와 조제의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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