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기분이다. 비가 오기 때문이다. 겨울비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오는 기운이 전해졌을 뿐이다. 아직 11월인데 겨울의 한복판에 외롭게 서 있는 가을 같다. 어쩌면 가을은 이미 저 멀리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본격적인 추위라고 말해야 할까. 추위가 오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오늘 이후의 추위가 예상되지 않는다. 다만 그저 겨울이니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고 미루고 미룬 내가 싫은 뿐이다. 치과 예약을 했다. 원했던 날짜에는 예약을 잡을 수 없었고 그보다 2주 뒤에 예약을 잡았다. 연말에 나처럼 미뤄든 일정 가운데 치과 방문이 있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미뤄둔 일에는 항상 책 읽기 목록이 있다.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도 그렇다. 읽은 책에 대한 리뷰, 정리한 책에 대한 기록.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바지런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제목처럼 궁금해진다. 당신은 시, 에세이, 소설 가운데 무얼 좋아하나요? 어떤 책을 먼저 읽을 것 같나요? 나라면 이 책을 먼저 읽겠다, 이런 답글은 어떨까요?





정현종의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며』는 출간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정현종 시인을 좋아하는 나는, 조금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이 책은 10월 말에 동네 책방에서 샀다. 동네 책방을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책을 구매한 것도 처음이라 더 남다르게 기억될 책이다. 사두고 읽지는 않았다. 이 시집엔 정현종의 산문이 있어 더 좋다. 괜히 좋아서 아끼느라 읽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신승은의 『아무튼, 할머니』는 아무튼 시리즈로 이웃 님의 리뷰를 보고 읽고 싶어진 책이다. 리뷰는 이렇게 중요하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 잔소리가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가 했던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누군가 내게 잔소리를 한다는 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니까. 


천선란의 『랑과 나의 사막』은 표지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모른 채 읽게 될 것이다. 온라인 서점의 소개 글이나 리뷰도 꼼꼼하게 읽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읽고 싶은 소설이다. 나는 사막도 좋아하고 선인장은 더욱 좋아한다. 사막에 갈 수도 없고 선인장을 안아볼 수도 없지만 외롭지 않은 고독의 이미지, 텅 빈 충만의 이미지라고 할까. 세 권 다 빨리 읽고 싶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시집을 먼저 읽을까? 뻔한 예측일까. 아니면 하루에 세 권을 다 읽을 수도 있겠다. 출근길이나 외출 시에는 소설을 읽고 잠깐씩 시 한 편을 읽고 침대에 누워서는 소설을 읽는 일. 이렇게 읽는 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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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1-28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절입니다. 지금 절정의 Novembering을 하고 있잖습니까. 도서관 창 밖으로 보이는 야산이 느므느므 좋습니다. ˝좋다˝ 보다 더 적절한 술어를 찾기가 힘듭니다.
참. 저는 에세이 빼고 시와 소설을 좋아합니다. ^^;;

자목련 2022-11-29 16:50   좋아요 1 | URL
댓글을 쓰시던 시각에 도서관에 계셨을까요? 절정의 Novembering을 맘껏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골드문트 님을 가을 타는 남자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ㅎ
요즘엔 시 리뷰는 올라오지 않던데요, 기다리겠습니다^^*

hnine 2022-11-28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권을 동시에, 돌려가며 읽어요^^

자목련 2022-11-29 16:51   좋아요 1 | URL
동시에 즐겁게 읽는 일도 좋아요^^
나인 님, 책과 함께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햇살과함께 2022-11-28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무튼 시리즈요~!

자목련 2022-11-29 16:52   좋아요 2 | URL
살짝 알려드리면 저도 아무튼 시리즈를 먼저 읽고 있습니다 ㅎ

책읽는나무 2022-11-28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시집은 잘 읽질 않았었는데, 그래서 예전 같았음 소설이랑 에세이요!!!!! 했을텐데,
요즘 디킨슨이랑 에이드리언 리치 시를 읽고 있다 보니...외국 시라서 적응을 못하기도 하지만, 또 은근 읽을만 하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은 세 권 다 읽고 싶습니다ㅋㅋ
그 중 고르라면 소설 먼저 읽을 것 같기도 하구요?^^
비가 오나 보군요?
여긴 저녁에 비가 온다더니 아직 오진 않고 조금 습하기만 합니다.
곧 추워진다니 건강 조심하세요^^

자목련 2022-11-29 16:54   좋아요 2 | URL
저는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런지 외국 시는 훨씬 어렵게 느껴져요.
세 권을 다 읽고 있다고 하시니 어떤 책들을 읽고 계실까 궁금하네요.
이곳은 어제 비가 많이 내렸어요. 그리고 아주 많이 추워졌어요.
나무 님도 따뜻하게 지내세요^^

- 2022-11-28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를 읽지 않는 그런 사람이지만 ㅋㅋㅋㅋ 시요 라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겨울이라기엔 너무 따뜻한 오늘 같은 가을비엔 누구들은 축구를 보더라도 전 소설을 읽으려고 합니다아!

자목련 2022-11-29 16:56   좋아요 2 | URL
음, 공쟝쟝 님은 시도 잘 읽으실 것 같아요. 분석도 잘 하실 것 같고요.
조만간 쟝쟝 님의 서재에 시집이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어제 비 내리는 밤에는 전반전까지 축구를 보고 침대에 쏙.
쟝쟝 님의 소설이 궁금해지는 오후입니다^^*

- 2022-11-29 20:05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소설은…. 조만간 페이퍼에서 밝히도록 하겠사와요 ㅋㅋㅋ

감은빛 2022-11-2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권을 야금야금 조금씩 읽을 것 같아요. 특히 시집은 오래 두고 읽는 편이예요. 한번에 읽으면 아까우니까요. 제일 먼저 다 읽는 건 아마도 소설일 것 같구요.

겨울비라고 불러야 할까요? 예전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 님이 이 시기의 추위를 단풍추위라고 부르더라구요. 그럴듯하다고 여겼어요. 내일부터는 정말 추워진다고 하네요. 몸은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2-11-29 16:58   좋아요 1 | URL
야금야금 조금씩 읽는 재미도 남다르지요. 그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하고요. ㅎ
한번에 읽으면 아까운 시집, 그래서 쌓이는 게 시집인지도 모르겠습니다,ㅠㅠ
‘단풍추위‘ 기억해두었다가 내년에 쓰고 싶은 말이네요. 감은빛 님도 따뜻하고 다정한 날들 이어가세요^^

구단씨 2022-11-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금은 소설과 에세이를 같이 뒤적이고 있네요.
추운 건 싫은데 이불 속에 파묻혀 책 읽기에는 좋은(?) 날입니다. ^^

자목련 2022-11-29 17:00   좋아요 1 | URL
소설과 에세이를 뒤적이는 날들!
집콕, 방콕이 많아지겠지요. 따뜻한 걸 곁에 두고 책을 읽는 시간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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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삶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의에 빠진 이에게 어떤 희망이나 길을 제시할 수는 있다.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문학이 삶의 전체가 되거나 일부가 되는 건 지극히 사적인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학을 특히 글쓰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많다. 무엇을 쓰는가가 중요할까. 아니면 쓰려는 자가 되려는 게 중요할까. 2021 공쿠르상 수상작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복잡한 마음을 불러오는 소설이었다. 복잡하다는 건 소설이 어렵기도 했고 소설을 통해 작가 음부가르 사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타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통해 문학의 시원이나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 노력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민족의 정체성을 다루거나 역사의 한 장면을 다루는 소설 말이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의 경우도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1990년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정규교육을 받은 작가 음부가르는 소설 속 화자인 ‘디에간 라티르 파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이자 세네갈의 문화와 역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그가 있기까지 지난 성장과정이나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것이 문학의 질료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작품과 작가를 일정 부분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디에간’은 음부가르가 그랬듯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작가다. 아프리카 출신의 유망주 정도 되겠다.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학적 재능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흑인과 아프리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런 그가 세네갈 출신의 문학 선배라 할 수 있는 ‘T.C. 엘리만’의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을 알게 된다. 1938년에 발표된 소설, 단 한 권의 책을 끝으로 문학계는 물로 프랑스에서 사라진 사람, 엘리만을 추적하게 된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책도 출판사도 찾을 수 없다. 실재의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럴수록 디에간은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다 운명처럼 세네갈 출신의 여성작가 ‘마렘 시가 D.’를 만나고 그에게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과 엘리만에 대해 듣게 된다. 출판 당시 책에 쏟아졌던 찬사와 엘리만을 ‘흑인 랭보’라 칭했던 이야기, 그 뒤를 이은 비판과 비평. 소설이 아프리카 세네갈의 기원 신화와 같고 심지어 엘리만이 여러 작품을 차용한 콜라주였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그러나 엘리만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만 고수하다 결국 자취를 감췄다고. 이쯤 되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내용과 묵묵부답 엘리만의 진실이 궁금해진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디에간이 엘리만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들려주는 동시에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들려주는 엘리만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파리에서 시작해 마렘 시가 D.를 만나는 암스테르담, 마렘 시가 D.에게 엘리만을 들려주는 아이티 시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그 여정은 엘리만 한 사람만의 인생이 아닌 다양한 세대의 인생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문화를 경험하고 어떤 차별과 어떤 고통을 견디며 살았는지 말이다. 


엘리만이 책을 쓴 1938년 아프리카 세네갈과 프랑스의 관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세네갈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엘리만에게 프랑스는 어떤 나라였으며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곧 디에고의 정체성과 문학에 대한 질문과 맞닿는다. 디에고뿐만 아니라 파리에 살고 있던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들과 ‘마렘 시가 D.’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가 아닌 21세기에도 과거의 역사는 사라질 수 없으니까. 현재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음부가르까지도.


참기 어려운, 추잡스러운, 부르주아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 우리 삶이야. 문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학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역시 살아 있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문학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아무리 무용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희극이고 무의미할지언정 그래도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 수 있지.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듯 굴 수밖에 없어. 이따금, 아주 드물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야, 파이. (76쪽)


음부가르는 문학이 결코 무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닌 세네갈의 역사나 그들의 전통과 영혼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까. 아니면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엘리만의 목소리를 빌려 대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엘리만을 만나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편집하고 만든 샤를과 엘리만의 다툼에서 엘리만은 ‘문학은 원래 약탈의 유희라고, 자기 책은 바로 그걸 보여준다고 대답했고요. 독창적이지 않으면서 독창적이기, 엘리만은 그게 바로 자기의 목표 중 하나라고, 문학은, 심지어 예술은 그렇게 정의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또 다른 목표는 창작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게 희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271쪽)


프랑스가 세네갈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엘리만 같은 인물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문명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반드시 식민지화가 진행되어야만 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와 고통은 제목 그대로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남았다. 소설 속 프랑스와 세네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과 우리의 역사도 그러하다. 역사가 문학으로 재탄생되는 일이 의미를 지니면서도 아픈 이유다.


어쩌면 문학 속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문학은 시커멓게 반짝이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관과 같다. (526쪽)


그러니 문학은 삶의 일부이면서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속 인물들에게 문학이 그러했듯. 문학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도구이자 역사를 재조명하는 통로가 된다. 삶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운 모두에게 글을 쓴다는 건 내면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직시할 수 있는 길은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것을, 또 다른 것을, 다시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조용해지면 당신은 다른 것, 굴러다니고 달아나는 다른 것, 당신 앞에 놓인 다른 것의 반향과 함께 길 위에, 고독 속에 남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벽을 기약할 수 없는 밤 속에서 언제나 다른 것을 요구한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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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4
곽재식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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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설렘과 동시에 어떤 공포가 함께 한다. 막연하게 우주여행을 하거나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편리함을 생각하던 때와 다르게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미래의 일상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편하고 좋은 것들만이 아니라 공존, 존재, 존엄에 대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쉽지 않은 고민들.


활발한 작품과 방송 활동을 통해 그의 책보다도 이름을 먼저 알게 된 곽재식 작가의 연작 소설집 『은하행성 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에서 말하는 것들도 그렇다.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하고 각기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미래가 도래하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이 책은 잡지 『독서평설』에 1년간 연재하며 사랑을 받은 단편 12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집이다. 그러니까 잡지의 특성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굳이 독자층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은하행성 서비스센터’의 사장 미영과 이사 영식은 다양한 의뢰를 받아 행성을 방문한다. 우주선을 타고 행성을 찾아다니는 미영과 영식의 눈에 비친 12행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게는 미영과 영식의 모습이 맥락은 다르지만 여러 행성을 다니며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어린 왕자처럼 느껴졌다. 철통 행성부터 파동 행성, 정지 행성, 양육 행성, 의미 행성, 생명 행성, 영원 행성, 재생 행성, 기억 행성, 통제 행성, 진공 행성, 매매 행성까지 12개의 행성은 어떤 행성인지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


「철통 행성」은 말 그대로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하는 행성으로 은하연합계열 단체와는 교류를 하지 않은 행성이다. 그러니 외부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소행성이 철통 행성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러 간 미영과 영식은 그들을 외계인이라 부르는 응대관을 만났다. 외부와 교류가 단절된 상태라 은하교통연합에서 보낸 연락 사항을 보는 일조차 어려웠다. 어떤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소행성이 철통 행성에 떨어졌고 행성의 중요한 조각 작품이 무너졌다. 그런 와중에도 행성 사람들은 행정처리는 답답 그 상태였다. 자신들의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는 이유를 내세운 소통 단절로 재앙으로부터 행성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하는 것이다. 


「파동 행성」에서는 농업 행성으로 좋은 말을 해주면 잘 자라고 나쁜 말을 해주면 잘 자라지 못한다는 걸 증명하는 행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식물을 개조해야 했고 그런 식물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직원이 필요했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먹거리와는 차원이 다른 괴상한 식물들이 가득한 행성이라고 할까. 그 안에는 진짜는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파동 행성은 위선과 가짜로 진심을 포장한 행성은 아닐는지. 


「양육 행성」에서는 누구를 양육하는 것일까? 식물, 로봇, 동물을 떠올리지 않을까. 놀라지 말길, 행성에서 양육하는 건 바로 사람이다. 혹여 그 사람이 그 행성을 탈출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미영과 영식은 그를 찾았다. 그런데 원하는 모든 걸 로봇이 다 해준다며 사람은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로봇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로봇이 사람을 기르는 거라는 생각은 미영과 영식만의 것일까. 양육 행성을 읽으면 그려지는 미래가 내게는 섬뜩했으니까.


그런가 하면 「의미 행성」에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동 자리 공동에 살고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한복판에 있는 은하계에 살고 있어서 그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은하계도 많다는 걸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이다. 사실, 그 행성은 은하계의 부유한 사람들의 재미로 만든 행성이었다. 누군가에는 너무고 간절한 궁금증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재미에 불과하다니.


“저희는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주라는 것이 생겨났는지, 왜 세상에 중력과 전자기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냥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세상에 이렇게 있는 것인지, 별이 빛나고 해가 뜨고, 계절이 바뀌고 그에 맞춰서 생명체가 태어나 죽고, 이런 게 다 뭐하자는 것인지, (…) 이 우주에서 우리가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희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의미 행성」, 84쪽)


뇌 수술 상품권이 생긴 김에 뇌 수술을 받겠다는 미영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기억 행성」에서는 뇌 속에 컴퓨터를 심고 난 후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뇌 속에 컴퓨터가 있다고 상상하면 모든 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지식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뇌 속의 지식에 대한 저작권은 누구의 것일까? 내 뇌에 있으니 내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저작권 분쟁은 먼 미래의 우리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저는 뇌에 컴퓨터를 설치하면 항상 뭐든 정확히 기억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뇌 컴퓨터용 백과사전 구독권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한 달 사용료는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프리미엄판을 설치하시면 단순 기억 이외에도 감각 연동도 가능합니다.” (「기억 행성」, 151쪽)


곽재식이 초대하는 상상의 미래는 흥미진진하고 기발하다. SF 소설의 재미를 맘껏 느낄 수 있다. 12행성 방문 기록지는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다양한 행성들을 방문하게 될까 궁금하다. 그 안에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은 얼마나 놀랍고 신기할까. 


아무 행성이나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호기심이 닿는 대로 끌리는 대로 행성에 발을 내딛기를 바란다. 우주여행이 현실이 된 지금, 우주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행성에서는 소설보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인을 기다리는 우주인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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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아는 나이가 오긴 할까. 그런 기대를 갖고 살아도 괜찮을까. 일정 나이가 되면 모든 걸 다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불가능한 믿음 같은 걸 품고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숨기고 사는 일이 상대에게는 괜찮은 걸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 숨겨왔던 나의 상처와 조금씩 대면할 수 있는 것, 이곳으로 오기 위해 떠나왔던 그곳을 그리워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 인생은 정말 알 수 없고 쉬운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읽는 건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오, 윌리엄!』은 앞에 언급한 그런 것들로 채워진 소설이다. 인생을 채우는 것들이 무엇인지, 버려야만 했던 것들이 무언인지.


루시가 자신의 첫 번째 남편 윌리엄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퍼즐의 조각으로 지난 삶을 반추한다. 어떻게 만나 사랑하고 살아왔는지 왜 서로를 떠나 이별했고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담담하게 들려준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이 단지 두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라는 걸 안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일이다. 루시와 윌리엄도 그랬다. 세계는 하나로 합쳐질 수 있고 충돌할 수 있다. 그리하여 루시와 윌리엄은 이혼했다. 루시와 오랫동안 살았던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는 죽고 없다. 윌리엄에게는 세 번째 아내가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한계가 있고 상처가 회복된 건 아니지만 각자의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관계를 지속했다. 이상하게도 루시에게 윌리엄은 유일한 집이었고 윌리엄에게 루시는 자신의 공포와 두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였다. 


노년의 나이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가 있을까 싶은 정도로 소설 속 루시와 윌리엄은 서로를 염려하고 걱정한다. 그러니 윌리엄의 세 번째 아내가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은 루시도 그랬으니까. 아무리 나이를 먹고 살 만큼 살았다 해도 치유될 수 없는 상실과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의 실체를 꺼내 보일 수 있는 이는 얼마 없다. 그저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상처를 꺼내 실체와 마주하는 일은 지우고 싶었던 과거,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의 일부와 대면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게 삶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윌리엄이 돌아가신 어머니 캐서린에 대해 느끼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루시가 떠나온 고향(특히 어머니)의 모든 것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우리를 과거의 한 지점으로 불러 모은다. 저마다의 상처, 혹은 환희의 순간이다. 소설에선 윌리엄이 세 번째 아내에게 받은 ‘조상찾기’가 그 매개체다. 자신에게 이부누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루시와 동행하는 그 여정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알게 된다. 꽁꽁 숨기려 감추었던 내면 한구석에 자리 잡은 슬픔의 덩어리들. 철저하게 차단하고 선을 긋고 싶은 지점,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인간의 처절한 간절함에 대해. 


우아하고 완벽하게 보였던 캐서린이 나고 자란 그곳은 루시가 떠나온 곳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루시에게 보였던 그 모든 행동이 조금씩 이해됐다. 과거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사람, 어린 딸마저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간절히 바랐던 사람.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죄책감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던 캐서린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엄마에게 위로받았던 루시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윌리엄에게는 두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아주 먼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깨달음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윌리엄과 캐서린과 루시의 관계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때는 몰랐던 것들의 대부분을 지금에야 알게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이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 늦을 때까지 모른다는 것.” (257쪽)란 문장처럼.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진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며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전부를 알 것 같은 이들에게 마음을 연다. 루시가 윌리엄에게 귄위를 느꼈고 데이비드를 통해 위로를 받은 것처럼. 인생은 결핍과 상처로 시작해 그것을 채우고 위로받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생은 얼마나 많은 결핍과 상처로 가득할까. 숱한 경험과 상처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은 고유하고 차별적인 것이니까.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298쪽)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배우고 알게 된다. 인생이 뭔지 여전히 모르지만 그래서 그 비밀을 알아가기 위해 살아간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용서하고 성장하며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는걸. 그게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루시’가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조금 더 많이 읽고 싶다. 자신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소설들. 우리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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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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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좋아하는 동생은 공부하는 아이다.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그녀는 항상 공부를 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더 많이 알기 위함이고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함이다.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다양해서 만나면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글도 쓴다. 독립출판으로 곧 자신만의 책이 나올 예정이다. 정희진의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를 읽으면서 줄곧 그 동생이 생각났다. 이 책을 보면 좋아하겠구나, 어쩌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정희진의 책을 몇 권 읽다 말았다. 그러니까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고 어떤 책은 읽기만 했다. 읽으면서 좋았지만 그 좋다는 걸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 훌륭함을 내가 망치는 글을 쓸까 봐 두려웠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그러니 이 책에 대한 리뷰 또는 감상을 쓰는 일은 한 편으로는 용기가 필요했고 한 편으로는 어떻게든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당신이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어서다. 아무튼 그렇다.‘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란 제목만 보며 글쓰기에 대한 안내서 같지만 이 책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공부 좀 하라는 내용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적더라도 최선을 다해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다. 자본에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많은 글 쓰는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13~4쪽)


글쓰기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돈이든 명예든 자기실현이든 고통의 승화든 추구하는 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글쓰기는 왜 쓰는가에 ‘따른’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다. (15쪽)


글을 쓴다는 건 가치관의 문제라는 것, 이 말을 오래 생각했다.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고 원하는 건 뭐든지 쓰고 발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 주저하고 어렵다. 무엇을 쓰는가, 무엇 때문에 쓰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럼 결국 쓰기 위해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게 뭔가를 알아야 하니까. 지금 내가 쓰는 건 이 책이 좋아서 그걸 알리고 싶은 거니까.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라는 부제가 있지만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쓰기와 공부다. 내가 모르는 걸 안다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모르는 데 어떻게 알겠는가. 그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나에 대한 공부.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한나 아렌트 평전』 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공부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란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이런 문장에서 그랬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란 결국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말. 정확하고 뻔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인간은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존재이다. 본질적인 상태는 없다. (33쪽)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한 다음에 가능하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56쪽)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138쪽)


정체성을 찾는 사춘기도 아닌데 우리는 여전히 나는 누군인지 사는 게 뭔지 알지 못해 힘들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는 집중했던 적이 없다. 내가 있는 동네를 시작으로 점차 확장하면 지역사회, 국가, 세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있는 이 작은 사회는 누가 살고 있는가,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돌아볼 수 있다. 말하기와 듣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나가 크게 정치 참여나 학교나 공공기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주의, 사상, 페미니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모든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사회를 이루고 구성하니까. 개별성의 존중도 그만큼 필요하다. 그러니 융합이라는 것도 저자의 설명처럼 먼저 내 몸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가 경험하고 그것이 퍼져 공동체나 함께 공부하는 도반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파성의 지속적인 생산이라고 하는데 가치관의 충돌과 재생산이 없다면 공동체나 도반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건 이런 문장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융합에서 중요한 건 갈등과 공명인 것이다. 새로운 것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필수과정이니까. 


나는 내 몸의 역사다. 개인의 몸은 그 개별성 때문에 앎의 내용과 가치관에 따라 현실과 합쳐지는 범위가 다르며 만들어지는 지식도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101쪽)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는 누구나 지녀야 할 가치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또 경우에 따라 갈등하거나 공명한다. (117쪽)


물론 지나친 갈등은 문제를 불러온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세대 간 간극은 어떻게 봐야 할까. 각자 경험한 시간이,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이므로 서로가 살아온 시대가 비교의 대상과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나의 일자리를 두고도 중년이나 노년이 청년의 그것을 빼앗는다고 말하는 분노하는 시대. 선거철이 되면 더욱 커지는 목소리들. 어떤 세대를 살든 그 세대에 한정된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역시 공부일 것이다. 돈이 되고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앎이라는 공부. 현재의 나이를 감당하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는 공부 말이다. 


우리는 각자 나이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가난하고 나이 든 이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존중하자. 이것이 공정이다. (177쪽)


강자의 주관성은 객관성처럼 여겨져서 투쟁해서 쟁취할 필요가 없는 반면 약자의 삶은 그렇지 않아 고달프다. 약자에게 객관성은 쟁취해서 확보해야만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 사회 운동이다. (221쪽)


굳이 정치적인 이슈를 들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융합이다. 서로의 이익에 따라 절충하는 게 편협한 태도의 융합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 있든 공부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고위 계층에 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현재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우리 사회는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니 공부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일은 공부의 방법 가운데 하나이고 자신만의 언어,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일이다. 이 책으로 정희진의 글쓰기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책으로 시작하는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마침내 쓰는 일은 중요하다. 나를 알고 나에 대해 쓰는 일, 모르는 나를 천천히 아는 나로 바꾸어 가는 과정, 그게 융합은 아닐는지. 진짜 글쓰기가 폭발하는 순간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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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8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공부를 응원합니다💪

자목련 2022-11-21 09:05   좋아요 1 | URL
쟝쟝 님의 응원을 받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