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라워라 박노해 사진에세이 5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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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일 여유도 없이 삶은 그 자체로 고단하고 피곤하다. 무엇에 쫓겨 사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향해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무겁고 어둡다. 어디론가 도망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나의 마음에 호통을 치는 글과 사진들. 박노해 시인의 사진 에세이 『아이들은 놀라워라』 속 아이들의 모습이다. 


책 전체에 담긴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자 수호천사’란 메시지가 나의 가슴에 꽂힌다. 무슨 불평이 많냐고, 변명 따위 집어치우라고 말이다. 37점 흑백사진과 글이 주는 울림이 켜켜이 쌓인다. 아이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우리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거대한 우주를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전해진다.


아이는 부모라는 지구 인간의 몸을 타고 여기 왔으나 온 우주를 힘껏 머금은 장엄한 존재이다.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고, 그 무엇이 되어 어디로 나아갈지. 지금 작고 갓난해도 영원으로부터 온 아이는 이미 다 가지고 여기 왔으니. (10쪽, 「서문」 중에서)


박노해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만나온 아이들, 지금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웃고 가난한 일상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아들의 표정 속에서 기쁨의 빛이 쏟아진다. 나는 알지 못하는 그 삶에 내가 잠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끄는 아이들의 환한 미소. 


어른의 부재를 홀로 감당하며 아빠에게 물려받은 낡은 손목시계를 차고 길을 떠나는 소년, 감자를 수확하고 벼 타작을 돕는 아이들, 일을 하러 간 어른들 대신 울며 보채는 동생을 등에 업은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의 과거를 보고 그 과거가 만든 현재를 생각한다. 점령당한 분쟁의 땅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자라고 여전히 꿈꾼다. 포기와 절망이 아닌 현재를 사랑하며 책을 읽는 소년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도 양 떼는 풀을 뜯고 아이들은 책을 읽는다. 비록 내일이면 여린 손에 작은 돌멩이를 쥐고 침략자의 탱크를 향해 달려갈지라도. (32쪽, 「헤브론 광야의 소년들」중에서)





모든 어른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분쟁의 중심엔 아이가 아닌 어른이 있을 터. 그 현실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어른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며 의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기특하다. 모든 게 풍요롭다 못해 넘치고 버려지는 시대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아래의 연필을 쥔 흑백 사진은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아이는 진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부족 마을의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의 반짝이는 눈빛에 담긴 결의를 응원한다. 


배움은 간절함이다. 결핍과 결여만이 줄 수 있는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궁리와 창의, 도전과 분투, 견디는 힘과 강인한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아버린 것은 그 소중한 ‘결여’와 ‘여백’이 아닌가. 간절한 마음에 빛과 힘이 온다. (62쪽, 「간절한 눈빛으로」 중에서)





무엇이 부족해 어른들은 전쟁을 놓지 못하는가. 전시 상황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이스라엘 전폭기 집중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 마을 축제를 위해 연극 연습을 하던 아이들이 폭력으로 숨졌다. 비통하고 애통한 심정을 노래로 달래는 사진 속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감출 수 없다. 


친구들이 죽은 자리에 꽃을 들고 서서 참아온 슬픔을 터뜨리며 노래를 부른다. 보아주고 들어주는 건 나 한 사람뿐인데 아이들은 우리 폭탄 대신 꽃을 손에 들자고, 세계를 향해 평화 시위를 하는 것만 같다. (74쪽, 「폭탄 대신 꽃을」 중에서)





어린이였던 시절, 그때의 모든 기억을 다 간직할 수 없겠지만 전쟁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는데 어른이 되는 순간 어린이의 감정을 잃어버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천진함, 어떤 상황에서도 놀이를 찾고 친구와 어울리는 다정함. 정말 아이들은 놀라고 대단하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설렘으로 기대하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 그저 지긋지긋한 추위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땅에서는 어떤 시간에서는 봄은 그냥 봄이 아닌 희망과 평화의 봄이라는 걸 이제 안다.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눈 속에 싹트는 작은 새싹 하나라도 먼저 보고 언 강 아래로 흐르는 봄의 물소리를 먼저 듣고 종알종알 속삭이고 노래하며 봄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은 봄이다. 그 자체로 봄이다. 설원에 어깨 걸고 선 쿠르드 아이들이 이 분쟁의 땅에서 간절히 평화의 봄을 부른다. (86쪽, 「봄을 기다리며」중에서 )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강인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서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버리는 아이들은, 

아이들은 놀라워라. 


아이들은 시대의 전위여라. 

아이들은 인간의 희망이어라. 

아이들은 어둠 속 빛이어라. (111쪽, 「아이들은 놀라워라」 중에서)


37점의 사진 속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준다. 감추거나 숨기려는 마음은 찾을 수 없다. 낯선 이방인이었을 박노해 시인이 내민 손을 가만히 잡았을 것이다. 그 손을 잡아준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이 귀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볼 수 있다. 복잡하고 어두운 내 마음을 단순하고 환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아이들, 당신에게도 빛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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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은 엄중하게 다가온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압축해 놓은 기록이라서 그럴까. 사만다 로즈 힐의 『한나 아렌트 평전』 을 읽기 전 조금 주저했다. 한나 아렌트란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기에 어려운 책이 아닐까 걱정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려운 책은 아니라고 하겠다. 나 같은 독자도 읽었으니 누구라도 한나 아렌트에 대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줄 책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이미 한나 아렌트에 대해 말하는 책들은 많지만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친절한 입문서다. 그의 저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만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그녀의 다른 책들도 궁금하게 만들었으니까.


저자 사만다 로즈 힐은 한나 아렌트 선임 연구원으로 『한나 아렌트 평전』에서 한나 아렌트의 일생과 함께 그의 저작과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인간관계를 다룬다.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나 철학에 치우치지 않고 삶과 작품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좀 남다른 내면을 지닌 소녀였다. 한나가 일곱 살에 아빠 파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 모든 여자가 겪는 일이잖아요”라며 엄마 마르타를 위로했다고 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당할 때 마르타는 유대인으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나는 열네 살부터 철학을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서재를 통해 발견한 세계, 삶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서 철학을 택한 것이다. 그 공간이 한나의 철학을 향한 열정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열여덟 살 즈음에 하이데거의 제자가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 건 운명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에드문트 후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야스퍼스를 만나 철학적 사유를 배우게 되었다. 귄터 안더스와 결혼 후 한나는 안더스의 글을 교정하고 안더스는 한나의 논문 출간을 도왔다. 그러나 한나의 정치적 활동으로 균열이 시작되어 안더스는 파리로 떠나자 한나는 공산주의자들의 탈출을 돕는 지하 조직체를 도왔다. 그 과정에서 당국에 체포를 당했으나 다행히 풀려나자마자 독일을 떠났다.





한나는 파리에서 난민 신세가 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독일이 아닌 프랑스에서 당한 일이라는 게 놀라웠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부당함을 당해야 하다니. 강제수용소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그 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공부와 연구를 했다. 한나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으로 특별한 유대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대인을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항상 생각했다. ‘한나에게 유대인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 문제였다.’(157쪽) 최초의 여성 교수 임용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자 제안을 거절했다. “저는 여성이라는 데 그다지 특별함을 느끼지 않아요. 언제나 여성이었거든요.” (203쪽) 언제나 여성이었다는 한나 아렌트, 정말 멋지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독일을 비롯한 전체주의와 그 안의 유대인 문제를 연구하고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전체주의의 기원』이 나왔고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에서 열린 전범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다른 일정을 다 취소했다. 한나는 아이히만의 재판 참석이 과거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재판은 한나에게 유대인의 슬픔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실태 조사에 가까웠다. 그 기록을 담은 보고서 『예루살렘이 아이히만』은 논란과 비판을 받았다.


한나는 타인의 잘못에 내가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죄책감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잘못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히만처럼 모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한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가담한 자들과 저항을 선택한 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답은 ‘사유’였다.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라는 것을 했다. (240~241쪽)


한나 아렌트에게 철학과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유였다. ‘한나는 낙관과 절망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131쪽) ‘한나에게는 개인의 책임이 집단 경험보다 훨씬 중요했다. 결코 가벼운 고민이 아니었음에도 ‘가볍게’ 결론을 내렸다는 건 한나가 그만큼 개인의 책임에 더 큰 무게를 두었음을 의미한다.’ (133쪽) 현재를 직시하는 힘,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212쪽) 그는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우리에게 사상가로 알려진 한나가 시를 썼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땅은 곳곳에서 시를 쓴다.

가지런히 나무를 땋아놓고 

우리더러 나아가라고 한다.

이 세상 곳곳을.


활짝 핀 꽃은 바람을 맞으며 기쁨을 누리고

풀은 연하고 나긋한 바닥에 싹을 틔우며

하늘은 파란색으로 물들어 밝게 인사하고

태양은 부드러운 체인처럼 회전한다.


한껏 취한 사람들…

땅, 하늘, 햇살, 나무…

봄마다 새로 태어나

전지전능한 놀이 속에서 즐거워한다. (〈프랑스 드라이브〉, 199쪽)





권더 안서스와 이혼 후 하인리히 블뤼허와의 결혼 생활은 균형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어려운 관계를 둘은 지속했다. 노년에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며 보낸 시기에서 사상가가 아닌 한나는 자유로웠다. 생이 끝날 때까지 집필을 놓지 않았던 한나. 그로 인해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연구가 끊이지 않는다. 사만다 로즈 힐가의 『한나 아렌트 평전』 은 어렵지 않은 평전으로 철학이나 사상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훌륭한 안내서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한나 아렌트의 저작을 차례로 만나도 좋을 것이다. 


한나는 사유를 ‘난간 없는 사유’라고 표현했다. 사유란 붙잡을 곳 없는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한나의 따르면 붙잡을 곳 하나 없을지 몰라도 계단이라는 서 있을 곳은 주어진다. 자유롭게 밟고 디딜 이 계단이야말로 한나에게 유서 없이 남겨진 유산이었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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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10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의 지적 사유적인 삶의 이력에 비해 이 책의 서술량이 얇고 좁다고 생각 했습니다
아마도 이책의 작가는 한나 아렌트가 세상에 남긴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 읽기 바랬던 것 같네요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깊고 넓게 사유하는 시간이 줄어 버렸습니다
현재를 직시하는 힘!
결국 독서 만이 오늘 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수이 2022-10-10 12:47   좋아요 2 | URL
와 스콧님 말씀 정곡을 찌르네요. 저도 같은 걸 느꼈어요, 이 책 읽으면서. 저자 역시 한나 아렌트 전공이지만 이 평전을 쓰면서 미지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나 아렌트를 직접 스스로 찾아 읽으면서 사유하고 더듬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느껴졌어요. 많은 이들이 한나 아렌트의 사유의 깊이와 폭에 지레 질리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사만다가 응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자목련 2022-10-11 14:36   좋아요 2 | URL
스콧님과 비타 님의 말씀처럼 이 책은 그런 부분이 아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데, 저 같은 독자에게는오히려 이런 접근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한나 아렌트에 대해, 그의 저서에 대해 검색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레삭매냐 2022-10-10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서 대기 중이랍니다.

곧 읽기 시작해야겠네요.

자목련 2022-10-11 14:36   좋아요 1 | URL
매냐 님, 즐겁게 만나세요^^*

청아 2022-10-10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서야 그녀가 시를 썼다는 걸 알았어요.
시(詩) 적인 표현력이 그녀의 글에도 드러나는것 같아 신기했고요.*^^*

자목련 2022-10-11 14:37   좋아요 2 | URL
어쩌면 철학이 아닌 시인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어요^^

수이 2022-10-10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의 시적 감수성은 한나의 사유를 더 정밀하게 다듬어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게 하이데거의 영향인지 아니면 한나에게 있었던 본래적인 시적 감수성을 하이데거가 알아보고 그 촉을 건드린 걸 수도 있구요. 여러모로 훌륭한 평전이라고 여깁니다. 자목련님 말씀대로 더할나위 없을 정도로 ‘훌륭한 안내서’라고 여깁니다. :)

자목련 2022-10-11 14:38   좋아요 2 | URL
저는 아버지의 서재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했어요.
이 책으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리의화가 2022-10-10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는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 같습니다. 읽어봐야겠어요^^

자목련 2022-10-11 14:38   좋아요 1 | URL
저 같은 독자에게 특히 그랬어요. 화가 님도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책읽는나무 2022-10-10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간 없는 사유...표현 자체도 참 멋있어요.
저도 아렌트 노블책 잡고 읽고 있어서 반갑네요^^
자목련님도 아렌트!!! 그래서 또 반갑구요^^

자목련 2022-10-11 14:40   좋아요 2 | URL
한나를 바라보는 저자의 이해와 사유도 좋았어요.
그로 인해 저 같은 독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으니까요.
노블책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10-12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난간 없는 사유 ‘ 정말 멋있는 표현! 무엇에 기대어 사유하는것이 아니라 위험할지 모르지만 자유롭게 사유하는 것의 의미!일듯요
데려갑니다

자목련 2022-10-13 09:38   좋아요 1 | URL
평전은,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 인물을 대해 연구하고 세상에 내놓은 저자도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제가 한나 아렌트의 생을 다룬 다른 책들을 만나지 못한 덕분이기도 할 테고요. ㅎ
 
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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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시청 중이다. 각각의 드라마에서 변호사는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고 검사는 범인을 잡은 역할을 한다. 변호사와 검사의 좋은 점만 부각시켰을 수도 있지만 현실이 아닌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정의 구현을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다.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살면서 고소, 고발은 하지도 당하지도 않고 사는 게 일반적인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생긴다. 


드라마 때문인지 검사는 날카로운 칼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 칼이 정의를 위해 쓰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뉴스나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된 검사의 모습은 무소 권력 그 자체였다. 변호사 겸 활동가로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일하는 최정규의 『얼굴 없는 검사들』 을 읽으면서 검사라는 직업과 그들만의 세계가 어떻게 단합되는지 알 수 있었다. 책에서 언급된 사건이나 일부 검사의 일이기를 바라면서도 드라마와 달리 불편했고 화가 났다.


검찰제도의 시작이 인권보호 때문이라는 걸 우리는 잊고 있었다.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를 보호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고 검사라는 지위를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는 태도. 재판이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이나 싸움이 아니니 검사에게는 승패가 없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검사의 객관 의무는 지키면 좋고, 안 지키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는 검사가 유능한 검사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그런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인 진짜 검사가 아니다. (49쪽)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검사를 만나려는 이들에게 검사는 닿을 수 없는 존재라니. 여전히 법은 멀리 있다고 여기게 된다. 서면이 아닌 ‘구술 고소’제도가 법으로 규정되었어도 불구하고 검찰은 소극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재고하기 위해 검찰 스스로 도입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재벌이나 권력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되고 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수사기록의 확보에 대한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법으로는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청구를 취하하고 열람등사 신청을 하라고 하는데 이게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는 열람등사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행 중인 사건을 위해 정보가 필요한데 적용할 수 없다니.


수사 기록의 소유권은 검찰에게 있지 않다. 국민인 우리 소유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수사를 한 검찰은 그 기록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수사 기록을 꽁꽁 숨기는 관행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수가 기록을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 중심 검찰의 기본적인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89쪽)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검사에게 주어진 기소권이 어떤 것인지, 그 기소권을 남용하는지 제대로 기소하는지 지켜보는 국민의 일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관심을 갖는 사건의 경우에 더욱.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소.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수술을 대리로 한 사건에서 의사는 상해죄가 아니 사기죄로만 기소하는 검찰. 검찰이 유령 대리 수술 참여자를 상해죄에 적용해서 공소 제기한 사례가 없다. 검찰에서는 상해죄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기 밝히지도 않고 있으니 도대체 왜?라는 질문만 나온다.


일반 시민에게는 한없이 높은 법이 검찰의 식구, 그러니까 검사들에게는 부드럽고 턱 없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 다시 접하니 어이가 없다. 김학의 동영상 사건, 길거리 성추행 부장 검사, 현직 부장검사의 교통사고, 모두 무죄이거나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검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일은 재심도 있었다. 억울하게 범죄자가 된 경우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 <재심>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검찰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검찰이 재심을 청구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더욱 놀랐다. 한데 재심 사건 심문기일에 검사가 어떤 의견 도 내지 않고 출석도 하지 않은 기막힌 사례에 할 말을 잃었다. 지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피의자의 인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검찰이 거악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혹여나 더 중요한 시민들의 인권보호를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282쪽)


앞으로 드라마를 볼 때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검사가 유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 공익의 대표자로 진짜 검사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아, 이제는 재미로 보는 드라마도 다르게 보게 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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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이어진다. 속도는 느리고 집중력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성실한 토끼가 되어야 하는데 자꾸 거북이가 된다. 아니, 베짱이가 더 맞겠다. 그래도 그 느림이 좋다. 적정한 속도를 이룬다고 할까. 책을 들이는 일도 그에 맞게 느려진다. 가을이니까 소설을 읽어야지,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다. 가을엔 소설,이라고 하면서 곁에 둔 두 권의 소설이다. 하나는 단편집, 하나는 장편소설이다. 


요즘 출판사 1984BOOKS에서 나온 책들이 다 좋다. 직접 읽어본 책도 좋고 이웃이나 블로그의 평도 좋다. 그래서 이번에 들인 책은 안드레이 마킨의 소설 『어느 삶의 음악』과 소설 보다 시리즈다. 『소설 보다: 가을 2022』는 이서수, 위수정 작가의 단편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나오는 이 시리즈는 그냥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작가들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느낌을 받아서 신중하게 구매할 생각이다.





가을에 들였으니 이 짧은 가을이 끝나기 전에 읽어야 마땅하다. 그러니 이런 명분은 기껍다. 조금 빠른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사진 속 책장의 책들 가운데 읽어야 할 책이 보인다. 황정은의 글을 천천히 다시 읽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을 아는 것은 다르다. 


어쩌면 나는 황정은의 글을 알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백의 그림자』,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는 다시 읽고 리뷰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세 권은 읽기에 그친 책들이다. 리뷰를 쓸 때 책은 다시 정리되고 그 책에 대한 마음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읽어야 할 책이라는 기준은 딱히 없다. 지난번에도 말한 것처럼  그저 끌리는 대로 읽는 게 즐겁다. 아마도 곧 이어 끌리는 대로 만나게 될 책은 김연수 단편집과 2022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좋은 책이 아니라 내가 좋은 책, 그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잃어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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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06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실한 독서가가 되고
싶으나, 집중력의 저하로(핸드폰
과 너튜브 탓을...) 책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도 느림보 거북스 스타일로
꾸역꾸역 읽고 있답니다.

저도 1984BOOKS에 눈길이 가네요.

황정은 작가의 책은 어떤 책 읽고
나서 식겁해서 소장한 책도 읽을
염두를 못내고 있네요...

자목련 2022-10-07 09:10   좋아요 1 | URL
황정은의 어떤 책일까 궁금하면서도 최근에 나온 연작이나 에세이는
그에 비하면 무난해서 읽으셔도 좋을 듯해요^^

그레이스 2022-10-0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엔 소설!
옳습니다 ~~

자목련 2022-10-07 09:09   좋아요 1 | URL
노벨문학상 발표에 힘입어 가열차게 읽어보아요!
 
부서진 우울의 말들 - 그리고 기록들
에바 메이어르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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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작가, 화가, 가수, 작곡가로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에바 메이어르의 에세이 『부서진 우울의 말들(그리고 기록들)』 은 우울증과 어떻게 지내왔으며 살고 있는지 들려준다. 기존의 우울증에 대해 다룬 책과는 다른 책이다. 의학적 지식이나 이론, 혹은 치료 방법에 대한 내용이 아닌 저자가 느낀 우울증의 현상과 상태를 솔직하게 말한다. 때로 적나라하면서도 때로 문학적 은유가 가득한 문장은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우울하기보다는 아름답다고 여길 정도다.


사실 이 에세이를 읽는 일은 어렵다. 한 편으로는 고통스럽다. 우울증에 대해 적극적인 이해를 구하는 이에게는 색다른 접근 방식이라는 건 인정한다. 저자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울에 민감했다. 그가 우울을 구체적으로 색으로 말할 때 우울은 보다 선명해진다. 한 편으로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저자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예술이 우울에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울에 색깔이 있다면, 단연 회색이다. 그리고 때로는 흰색이다. 흰색은 침묵의 색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색이고, 패배의 색이고, 아무것도 없는 색이고, 상실의 색이다. 만약 모든 색을 함께 섞으면, 그 부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흰색은 눈의 색이기도 하고, 내 고양이 퓌시의 털색이기도 하고, 영원의 색이기도 하다. 영원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의 일부이지만, 우리가 영원 속에서 살 수는 없다. 흰 것에서는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는다. (47쪽)


때로 해 질 녘이면, 나는 그림자 같은 옅은 검은색 층 아래에 있다. 마치 나와 다른 모든 것 위로 수채 물감이 한 겹 칠해진 것 같다. 나는 빛 속에 서 있지 않고, 그렇다고 어둠 속에 있지도 않다. 나는 빛과 어둠을 모두 볼 수 있다. (73쪽)


저자가 본격적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시절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술을 마시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거식증에 시달렸다. 전문병원에 입원을 해 다양한 치료를 받았다. 그가 받은 우울증 치료는 다양하다. 청소년기 상담을 시작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전문 병원에서는 다양한 치료(인지, 행동)에 대한 서술은 우울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그러나 그 모든 방법이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해당되거나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에세이가 우울증 치료기나 극복기는 아니다. 자신의 개인사를 시작으로 전방위적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기라고 하면 맞을까. 죽음에 대한 유혹, 그 안에서 마주한 사유를 통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철학자의 저서와 문학 작품을 통해 우울증에 대한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하이데거(존재에 대한 의문), 자크 데리다(우리는 모두 섬에 있다며 근본적인 실존), 버지니아 울프(시간과 씨름하며 삶의 상실과 덧없음을 말하는),누구든 곁에 우울이 존재한다는 걸 말한다. 


저자는 반복적인 우울증으로 힘들었지만 모든 우울증이 같은 증상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어떤 시기에는 숙면하지 못하는 고통, 어떤 시기에는 자살하려는 충동, 거식증의 시기에는 마른 몸으로 인한 육체적 통증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생각한다. 저자의 경우 몸을 움직이는 일이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달리기, 산책, 돌봐야 할 동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돌봐야 할 동물이 있다는 건 반대로 동물들이 저자의 감정을 알아주는 존재와의 친밀함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 


우울증은 세상을 더욱 하얗게 만든다. 눈처럼 하얀 것은 아니다. 눈은 세상이 우리보다 크다는 것을 매우 아름답게 보여준다. 우울증은 세상을 덮는 것이 아니라 지워버린다. 바깥세상이 더 시끄럽고 활기찰수록 그 대비는 더욱 또렷해진다. 고요함을 망토처럼 둘러쓰고 있다고 해서 우울증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연습을 하면 공허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145쪽)


어떤 일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저자는 자신과 세상을 정지하게 만드는 공허함에 대해 음악이나 밝은 색의 그림으로 대처하는 게 아니라 고요함을 택한다. 글쓰기와 명상이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요함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세상으로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계속 만나기 위함이다. 


바다는 끝이 없고, 저 멀리서 하늘과 하나가 된다. 당신의 몸도 하나의 바다이다. 밤낮을 따라 움직이고 저절로 늙어가며 당신보다 훨씬 더 오래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것은 곧 끝날 것이고, 당신은 본래의 것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러니 지구에, 당신이 지나온 나날들에 의지하자. 내일은 다를 수 있다. (159쪽)


이 책은 그 세상을 향한 다짐이자 우울증이라는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가 전하고 싶은 건 우울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 그게 중요하다는 게 아닐까 싶다. 때로는 참고 견디고 기다리며 나를 만나기 위해 연습하고, 우울증을 삶의 일부라고 인식하는 일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진솔한 조언. 존재의 이유와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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