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었다. 겨우 선풍기 하나만 정리했고 붙박이장에 넣어두려던 제습기는 어제 다시 사용했다. 태풍 11호 ‘힌남노’의 힘이 세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바람이 무서웠다. 창문을 닫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에 깨고 말았다. 스마트폰으로 태풍의 경로와 내가 사는 지방의 날씨를 확인했다. 다시 잠들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고요한 마음을 지키려고 해도 마음이 요란하게 요동친다. 


8월의 마음이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그 마음과 나는 좀처럼 분리가 되지 않는다. 9월이니 9월의 마음이 필요한데 도통 새로운 마음이 자라지 않는다. 달마다 새로운 마음이 자라고 키울 수 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다. 매달 지정된 마음이 내게 도착해도 좋을 지경이다. 아마도 이런 마음은 가까이 지내며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제 오후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친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어려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다만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생각할 뿐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지만 막연하게 아는 것과 체감하는 건 차이가 크다. 내게 맑고 잔잔한 9월의 마음이 필요하듯 친구에게도 평온하고 보드라운 9월의 마음이 필요하다. 


9월은 어떤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기 위해 저마다 애쓰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을 위해 내게 9월의 소설도 필요하다. 소설이 불러올 다른 마음이 나의 9월의 마음을 다스려줄 수도 있다고 믿으니까. 때로는 한 권의 소설 속 하나의 문장이 그런 힘을 불러온다. 





9월의 소설은 공교롭게도 작가의 이름부터 기쁨과 기대를 안겨준다. 장편소설 『자두』로 만나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단편집 『어젯밤』을 읽고 반해버린 제임스 설터의 장편 『고독한 얼굴』, 문장 하나하나 너무 아름다워 읽는 게 아까울 정도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소설 『가벼운 마음』, 보뱅의 소설은 처음이라 설렘이 크다.












‘힌남노’가 지나간 하늘은 더없이 맑고 선명하다. 어제는 볼 수 없었던 하늘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냉큼 잡고 싶은 구름이다. 9월에 냉큼 잡고 싶은 마음도 이런 걸까. 8월에는 숨어 있어 찾을 수 없고 발견할 수 없었던 맑고 선명한 마음 말이다. 9월에 지니고 싶은 마음, 전부는 아니더라도 맑고 선명한 마음을 가끔씩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나뿐 아니라 친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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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9-0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세 권 중에 어떤 책이 자목력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됩니다. 저는 소설 읽기 소강 상태라 그만큼 스마트폰을 보게 되네요. 다음 페이퍼 기다렸다 자목력님 추천하시는 책을 읽어볼까요...

자목련 2022-09-07 15:53   좋아요 0 | URL
설터의 장편도 기대가 되고 이주혜의 단편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아요. 블랑카 님의 댓글로 즐겁게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열심히 읽어야 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9-0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마음, 급 땡기네요.

보뱅의 다른 책들도 검색해봤습니다.
신간이 도서관이 비치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목련 2022-09-07 15:51   좋아요 1 | URL
보뱅의 에세이는 완전 추천하는데 이 소설은 아직 읽기 전이라 모르겠어요.
소설도 좋을까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읽기는 아직이라서요. ㅎ

레삭매냐 2022-09-07 16:05   좋아요 1 | URL
자목련님의 글을 읽고 나서 어제
도서관에 가서 구판 <인간, 즐거움>
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답니다.

<가벼운 마음> 오늘 교보에 가서
샀습니다. 추석 때 읽을라구요.

바람돌이 2022-09-0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에게도 친구분에게도 얼른 9월의 마음이 찾아와 평안하시길요.
우리 마음도 쉽게 쉽게 리셋이 되면 좀 편안할텐데 늘 쉽지 않네요.

자목련 2022-09-07 15: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댓글에 평온이 전해집니다. 감사해요.
원할 때마다 리셋되는 마음이면 좋을 것 같아요.

희선 2022-09-07 0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분은 자목련 님한테 힘든 일을 말한 것만으로도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희선

자목련 2022-09-07 15:48   좋아요 0 | URL
희선 님 말씀처럼 그랬으면 다행이고요. 맑은 오후 이어가세요^^
 

약하든 강하든, 영리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요.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되오. 모든 동물은 평등하오. (42쪽)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 먼저 만났다. 조카를 위해 골랐던 고전과 세계문학의 목록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소설은 모두가 알다시피 우화다. 매너 농장 주인 존스를 내쫓고 동물들이 실질적인 농장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 시대를 풍자한 소설로 당시 러시아(소련)의 스탈린 시대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스탈린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차치하고도 필독서로 꼽히는 이유는 어느 시대든 통렬한 비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 존스의 통제와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는 일은 그 자체로 혁명이다. 동물들을 모아놓고 그 꿈에 대해 말하던 메이저 영감은 혁명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동물들의 봉기는 성공했다. 젊고 영리한 수퇘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을 필두로 농장은 이제 그들의 것이 되었다.‘매너 농장’에서 ‘동물농장’으로 바뀌는 순간 동물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기대했을 것이다. 규제가 아닌 자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때부터 정치가 시작된다. 모든 건 정치적이라는 말처럼 나폴레옹의 정치가 시작된다. 


나폴레옹의 대척점에 있던 스노볼은 나폴레옹과는 다르게 동물농장을 이끌기를 원했다. 동장의 다른 동물들과 조직해서 ‘동물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교육과 규칙 같은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스노볼의 그런 활동이 마땅치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통치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아는 눈치챈 동물은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농장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해졌다. 농장의 노동력을 위해 스노볼은 풍차를 만들기로 한다. 나폴레옹은 동물들에게 스노볼의 풍차에 찬성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풍차를 놓고 의견이 갈렸지만 나폴레옹의 고음을 신호로 개가 들이닥쳤고 스노볼은 동장에서 쫓겨났다. 나폴레옹이 남모르게 다른 동물을 통제하기 위해 개를 사육했다. 더 이상 토론은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게 나폴레옹이 이끄는 대로 흘러갔다. 가장 성실한 일꾼인 말 복서는 더 열심히 일했고 암탉은 더 많은 알을 낳았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무시했던 풍차를 다시 만들었고 농장은 부유해졌다. 하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때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모두가 평등하고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참고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 사이의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다만 말하지 못할 뿐이다. 글자를 배우지 못해서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해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나폴레옹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다. 


동물 농장은 거대한 피라미드였다. 맨 꼭대기에는 돼지 나폴레옹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트렸다. 동물농장은 강자인 돼지들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들 곁에는 개가 있었다. 소설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세상과 독재자의 횡포를 그대로 보여준다. 각각의 동물은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 모습이다. 병들 때까지 일만 하던 말 복서는 노동자의 표본이다. 치료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복서의 모습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모두 똑같았다. 돼지들의 얼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의 얼굴에서 인간의 얼굴로, 그리고 다시 돼지의 얼굴에서 인간의 얼굴로 시선을 움직였다. 누가 누군지 이미 분간할 수가 없었다. (150쪽)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서는 돼지, 침대에서 자는 돼지, 술을 마시는 돼지는 그들이 혁명을 부르짖던 과거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평등과 차별 없는 사회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사회이든 반드시 정치와 권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으로 만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서문이 아니더라도 현재 러시와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국제사회의 흐름과 자원을 무기 삼아 국가적 지위를 내세우는 나라들의 행동을 소설 속 나폴레옹의 횡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공존과 연대의 미래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 것 같아 두렵다. 소설 속 당나귀 벤자민의 말처럼 굶주림, 고생, 낙담이 변하지 않는 삶의 법칙이 될까 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세상이 지금보다 한결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굶주림, 고생, 낙담은 변하지 않는 삶의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141쪽)


조카에게 이 책을 권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좋은 책이니 읽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소설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나폴레옹은 누구일까,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라진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동물들이 제게 힘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녀석에게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과 부자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방식이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이 작품에 대해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이 소설이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실패작이다. 그래도 강조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실제 러시아 혁명의 역사에서 여러 일화들을 가져왔지만 이 소설에는 개략적으로만 사용했으며 시간적인 순서도 실제와 다르게 바꿔놓았다. 이야기의 균형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아마도 내가 충분히 강조하지 않은 탓인 듯하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이 소설이 돼지와 인간의 완전한 화해로 끝난다는 인상을 받을 독자가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커다랗게 울리는 불협화음 속에서 소설을 끝내려고 했다. (29~30쪽, 우크라이나어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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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서재에 가끔 그냥 고냥님 보러 오곤 합니다 ㅎㅎ
축하드려요 ~~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자목련 2022-10-08 13:52   좋아요 1 | URL
냥이는 사진 속에만 존재해요. 오빠네 집에서 사라져버렸어요. ㅠ.ㅠ

서니데이 2022-10-0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08 13:5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저도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즐거운 시간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10-07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맑은 하루 보내세요^^
 
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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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이란 반어적 표현의 제목을 보고 누군가는 종말에 머물고 누군가는 희망에 머물 것이다. 종말에 시선이 닿았더라도 종말을 원하기보다는 희망을 바라는 게 진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주인공 희망이 어쩌다 종말주의자가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희망은 인터넷 플랫폼에 소설을 쓰는 중학생 작가다. 10대들이 좋아할 달달한 로맨스나 판타지 같은 건 쓰지 않는다. 희망의 소설 속 주인공은 항상 죽는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모두가 사라진 종말의 세계에 남겨진 아이들 H, J, D가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종말주의자 고희망』는 액자소설이다. 중학생 고희망의 일상과 희망이 그려낸 종말에 대한 이야기.


희망이는 모범생이다. 부모님 말도 잘 듣는 아이다. 친구는 단짝 지우와 동네 친구 도하가 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도와 국밥집에서 일한다. 아래층에 사는 삼촌은 대기업에 다닌다. 문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상처가 있다. 5년 전 희망의 동생 소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동생을 돌보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할머니가 희망이네 가족을 불러들였다. 소망이의 죽음에 슬퍼서 엄마나 아빠는 희망이를 살피지 못했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먹고 아빠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런 희망이를 유일하게 챙긴 사람이 요한 삼촌이다. 삼촌은 희망이를 위한 책을 골라주고 희망이는 서재에서 삼촌의 책을 읽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희망이네 집에서 소망은 금기시된다. 소망이가 떠난 날에 엄마는 소망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지만 소망이를 추억하거나 기억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희망이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희망이가 1등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시험이 끝난 후 맛있는 걸 먹고 후련함을 즐기는 것도 삼촌과 함께다. 우연히 삼촌이 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퀴어 축제에 참가해 삼촌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희망이네 집은 흔들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는 가게에 나오지 않았고 삼촌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희망이네 가족에게는 소망이의 사고와 삼촌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희망이는 어른들이 이상할 뿐이다. 삼촌의 일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희망이에게 알려주거나 생각을 묻지 않는다. 퀴어 축제에 간 사실과 뒤늦게 기말고사 1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혼낼 뿐이다. 그런 엄마와 말다툼 끝에 희망이는 집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희망이가 찾아간 곳은 5년 전 살았던 동네, 소망이가 사고로 죽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희망이는 소망이한테 사과를 하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한다. 소망이의 사고에 대해 희망이의 솔직한 마음을 들은 엄마는 희망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소망이 곁에 있었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 자책한다고. 


『종말주의자 고희망』 는 제목처럼 무겁거나 우울한 소설은 아니다. 청소년 소설답게 풋풋함과 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지수(J), 희망이(H)와 도하(D)의 로맨스, 어긋나는 우정으로 고민하는 십 대의 모습이 싱그럽다. 거기다 희망의 소설을 읽는 재미도 남다르다. 종말의 순간에 살아남은 아이들의 공통점이 눈물이라는 점도 흥미롭고 남겨진 아이들이 서로를 지키며 종말을 기록하는 모습은 기특할 정도다. 특별한 건 종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종말을 통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기대를 한다는 점이다. 희망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아무리 소중해도, 어려도, 건강해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잖아. 그런 애길 하고 싶은 거야.” (158쪽)


희망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종말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종말은 모양과 형태가 다양할 것이다. 종말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도망가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소망이의 죽음을 피하기만 했다면 희망과 엄마 사이에는 오해가 깊어졌을 것이다. 할머니가 삼촌을 인정하기까지 일정한 거리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죽음과 종말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215쪽)


십 대의 등장인물을 내세운 청소년 소설이자 성장소설이지만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다. 가족 간의 갈등이나 말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방관한 적이 없는지 묻는다. 그랬다면 이제라도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알려준다.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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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 *^^*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1 | URL
미니 님도 신나고 환한 시간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10-07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2 | URL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고요^^

거리의화가 2022-10-08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연휴 잘 보내시길^^

자목련 2022-10-10 10:37   좋아요 1 | URL
거의의화가 님 저도축하드려요.
연휴 마지막 날, 즐겁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2-10-09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10 10:38   좋아요 2 | URL
항상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얄라알라 2022-10-10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 J, D
영문 대문자와, 실제 한국어 이름, 십대 이야기를 다룬 액자소설 리뷰,
자목련님 글 또한 액자소설처럼 ~~
매번 축하드리러 오게 됩니다. 자목련님 계속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2-10-11 14:53   좋아요 2 | URL
얄라 님의 응원과 격려고 힘이 나는 오후, 감사합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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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사는 게 좋은 이가 얼마나 될까. 외모부터 시작해서 성격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속상함만 커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건 평생의 숙제는 아닐까. 감정을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취약한 감정이 있기에 그 감정이 등장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잘 알고 다스리기 위해 누군가는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견딘다. 밴드 ‘디어클라우드’로 활동하며 식물집사인 임이랑은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를 통해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불안에 대해 그것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누구나 불안을 경험한다. 크게는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에 휩싸인다. 저마다의 불안은 다르듯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은 통일된 무엇이 있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한 자신의 상태를 알았던 저자는 열세 살에 자실 충동을 느꼈다. 열세 살짜리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할까 싶다가 무엇이 그토록 그를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약점과 나의 모순, 감추고 싶은 비밀과 굳이 들추지 않는 게 이로운 사실들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증폭된다. 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아주 힘이 세다. (33쪽)


그가 꺼내놓은 깊고 커다란 상처의 시작은 화상으로 인한 몸의 흉터였지만 어린아이를 향해 내뱉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외할머니의 “저 지지배가 지 애미 잡아먹네”란 말은 평생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였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화상 자국이 깊게 남은 발이 얼마나 싫었을까. 자기혐오로 가득했을 시간을 흉터는 그저 흉터일 뿐이라 인정하는 그가 대단하다. 타인과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는 자신의 예민함을 무기로 뾰족해진 삶이 아니라 예민하면서도 안전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예민함 대신에 각자의 상태를 넣어 보면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식물이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듯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를 지닌다. 결국 자신을 돌보며 사는 일이다.


하나의 식물은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식물은 이파리마다 각자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한다. 나는 그 세계를 목격하고 관여하며 식물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연결하고 분리한다. (68쪽)


어쩌면 불안과 함께 지낸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는 식물과 글쓰기가 주는 기쁨과 위로를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불안을 알면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통화를 해야 하거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생긴 불안은 연습을 하게 만든다. 혹여 실수하지 않을까 두려움 마음을 키우는 대신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하며 불안과 마주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분은 글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쓰려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처음에는 너무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낀다.


글쓰기는 즐겁다. 책상 앞에 앉아 한 글자씩 쓰기 시작하면 비밀스러운 짜릿함을 느낀다. 무의식 저 끝에 잠들어 있던 단어와 마음을 연결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문장과 문장을 엮으며 이야기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 간다. (125쪽)


에세이는 자신을 보여주는 글이다. 한없이 쉽게 여겨지면서 한없이 어려운 것이다. 임이랑은 그것을 잘 안다. 적절하게 보여줄 것과 감추어야 할 것의 균형을 맞춘다.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통해 자신이 느낀 예민한 일상과 감정을 공유한다. 자신과 같은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라는 걸 알기에.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려는 그의 태도는 단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며 삶을 살아가는 내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사람은 어렵다. 어떤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진다. 함께 지내온 시간과 역사가 쌓일수록 서로에게 더 복잡한 마음을 적립하고 만다. 이타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나쁜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쓴 채로 곁에 머무르기도 한다. 어차피 계속 모양을 바꾸는 게 인간관계라면 나는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 앞에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204쪽)


저마다 지닌 불안의 형태는 다르다. 하나의 불안이 사라진다고 해서 바로 평온의 상태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온통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이라고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는 일도 좋을 것이다. 그 누구의 불안도 아닌 나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불안을 만지고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안겨줄 테니까.


거대한 바위 같은 불안 앞에 능동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서 불안을 형상화하며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쉽게 잘라 옮길 수 있는 두부 같다고 상상한다. 무기력한 상태로 거대한 모판에 담긴 불안이 나의 중심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조각 두부로, 조각난 두부를 젓가락으로 집어야 할 정도로 잘게 잘라 마음속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하나씩 처리한다.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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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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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산다라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절대 죽음을 갈망하는 게 아니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기에 쓸 수 있는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러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맥락이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잃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을 저버리는 이들에 대해 타인과 사회는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한다. 그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은 그 심연을 깊게 파고든다. 죽음으로 닿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절박함에 대해, 인간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지와 권리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자살이란 말을 니체를 인용해 ‘자유죽음’이라 칭한다.


죽음이란 경멸받아 마땅한 조건 아래서 벌어진 경우에만 자유롭지 못한 죽음이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찾아온 죽음, 이는 겁쟁이의 죽음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죽음은 다르다. 아무런 사고 없이 똑똑한 의식을 가지고 택한 죽음, 이것은 자유죽음이다. (61쪽)


누군가 자유죽음을 옹호하는 책이 아닐까 오해할 수 있다. 자유죽음에 대해 논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에 대한 담론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누구인가. 저자가 거론하는 이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이거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접하고 만난 이들처럼 명예나 사랑 때문에, 성적의 압박이나 진로에 대한 두려움 등 자유죽음을 선택하는 이유 저마다 다르다. 그들과 자유죽음에 실패한 이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동일하다. 그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그래도 사는 게 낫다는 동정심 같은 말들. 그렇게 말하는 이들 가운데 그들을 대신해 살아줄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저자가 ‘뛰어내리기에 앞서’, ‘손을 내려놓는’으로 정의한 자유죽음의 과정이자 실체를 마주하는 일은 힘겹다.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에세크’(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의 위협을 가장 분명하게 느꼈을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생각한다. ‘뛰어내리기에 앞서’, ‘손을 내려놓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메시지와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침내 자유죽음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게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동시에 지난 삶에서 ‘에세크’를 마주했을 때 나 역시 죽고 싶었다는 걸 나도 모르게 털어놓게 된다.


손을 내려놓으며 우리의 자아가 자신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가운데 혹여 처음으로 완전히 자신을 실현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이제는 존재의 끝이기 때문이다. 있으므로부터 탈출했기 때문이다. (137쪽)


자유죽음은 모든 존재로부터 해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로 사는 건 나,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이도 나뿐이니까. 어쩌면 이런 생각은 자유죽음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건 자유죽음에 대한 변호나 두둔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전쟁을 겪으며 차마 거론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고문과 고통의 시간을 견딘 저자만이 던질 수 있는 물음과 사유다.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지 묻는 근원적 질문이다. 돌봐야 할 가족, 사랑하는 연인, 집단과 사회 구성원 속의 개인을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나라는 실존에 대한 뜨거운 고찰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죽음에서 죽음이 아닌 자유에 집중해야 한다. 자유로운 나,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삶을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결정적인 선택을 내려야 할 인생의 순간에 홀로 처절히 외로움을 곱씹는다. 이런 결정은 내가 나와 일 대 일로 마주 본다는 각오로만 내려져야 한다. 그 어떤 단체의 이상, 내가 보기에는 망상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 어떤 사회적 이상에 헌신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행동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실존적인 자기 결단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포기하려는 결정조차 그 개인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일 따름이다. (186쪽)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없는 삶에 대한 저자의 독보적이고 거침없는 글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웅장한 울림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이제 자유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야 한다. 자유죽음은 부조리하지만, 어리석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자유죽음을 품은 이거나 실행한 그들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행위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은 모두의 그것처럼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나를 사랑하며 나 자신을 사는 일이 소중하고 중요하듯 말이다.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 ‘에세크’란 장벽은 여전하다. 그 세상에 나는 존재한다. 죽음이라는 실체와 맞닿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존엄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장 아메리의 말을 심연에 새기며 살고자 한다.


삶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감이었던 것처럼, 죽기로 각오한 당당함은 삶의 길을 열어준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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