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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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기발한 SF세계로의 초대. 작가노트를 통해 소설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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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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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다.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건 극소수다. 한 사람의 재능은 주변 사람이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부모나 선생님 말이다.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그 재능을 뒷받침해 줄 여력이 충분하다면 재능은 아름답게 꽃피울 것이다. 최근에 가장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처럼. 천체물리학자 하킴 올루세이의 자전적 에세이 『퀀텀 라이프』를 읽으면서 그를 응원하고 후원하는 이들이 그의 생애 조금 일찍 등장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는 잘 성장했고 현재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활동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말이다.


때때로 한 사람의 과거를 듣는 일은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가 아닌 우리가 알 수 없는 과거에는 놀라운 일들로 채워지기도 하니까. 하킴 올루세이의 유년 시절이 그러했다. 아니, 유년 시절뿐 아니라 대학에 가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 순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아빠를 떠나 엄마와 누나 브리짓과 함께 시작된 삶의 기억. 빈민가를 전전하며 수없이 많은 전학을 하면서 생활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엄마에게는 돌봄을 받을 수 없었고 누나 브리짓이 유일한 보호자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엄마에게도 삶을 버거움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흑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미국에서 흑인에게 무시와 냉대가 일상이었으니까.


어려서부터 하킴 올루세이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뭐든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을 즐겼다. 요즘 같으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고 칭찬했겠지만 열이 심하게 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브리짓에게 아들을 맡긴 엄마에겐 골치 덩어리였다. 몇 년 후에 다시 아빠를 만나 아빠와 생활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가는 일보다는 집안의 농장 일을 돌보고 마리화나를 파는 일을 돕는 게 더 중요했다. 그를 안전하게 보호할 울타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책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뿌리』와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호기심은 더욱 팽창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만났을 때 폭발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일상은 그를 일탈로 이끌었다. 대마초를 피우는 흑인 학생은 훈육의 대상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건 튜바였다. 역시 음악은 아름답고 훌륭한 치유를 선물한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때 튜바가 아닌 엄격한 훈육을 받았더라면 현재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과학에는 더욱 열심히 했던 하킴 올루세이는 대학교에서 열리는 과학전람회에 참여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분해와 조립을 좋아했던 그에게 컴퓨터는 새로운 세상이었지만 집에 IBM 컴퓨터를 가져갈 수 있게 허락한다. 그는 결국 과학전람회에서 대상을 탔다. 백인과 흑인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그가 해낸 것이다. 그리고 장학금과 대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군 입대를 제안받는다. 드디어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의 집인이라는 생각에 나는 덩달아 흥분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예민했던 피부염이 아토피였다는 사실과 함께 군에서 명예 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한 친구가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투갈루 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그는 수업에도 학생들에게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생겼다. 투갈루를 자퇴한 그가 언제 하킴 올루세이가 마약 흡입과 판매에서 벗어나 오롯이 물리학에만 정진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몰랐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그를 향한 혐오의 시선은 여전했다. 그의 실력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그때마다 그는 좌절했다. 그때 그를 격려하고 지지한 사람은 그의 스승 ‘아서’ 교수와 아내 제시카였다. 마약 중독자였던 그는 치료를 시작했다. 아서 교수가 있었기에 그는 천체물리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


“인생이 쉽게 풀릴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라. 물리학은 원래 어려운 거야. 어쩌면 학과 교수들 몇몇을 납득시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다. 그러나 자네는 분명 똑똑한 학생이야 그래서 자네를 우리 연구진에 참여시키고 싶었고, 나는 자네를 믿네. 그동안의 일을 잘 잊고 극복해낼 거라고 믿는다.” (334쪽)


아서 교수 역시 하킴 올루세이와 같았다. 흑인이었기에 대학에서는 그의 연구나 업적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았다. 아서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증명했고 하킴 올루세이도 그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아서 교수는 하킴 올루세이를 어떻게든 내보내려는 대학교를 상대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가 있다는 걸 확인한 하킴 올루세이는 확신한 목표를 향해 나갔다. 아서 교수의 연구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연구가 아서 교수의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하킴 올루세이는 세상을 잃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인생에서 우연히 얻어지는 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빛을 낼 수 있도록 그것을 꺼내 연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킴 올로세이의 재능도 그러했다. 그것을 알아봐 준 아서 교수와 고난과 역경을 함께 이겨내고 곁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전하고 싶은 것도 다르지 않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지지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는 희망을 말한다. 그가 미국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건너간 이유였다. 역사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꿈을 꾸는 한 한계는 없다. 수천억 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매우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학생들의 얼굴에서 그 무한한 희망을 보았다. (418쪽)


이 책이 또 다른 하킴 올로세이와 만난다면 더 크고 위대한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눈부신 조각이 될 것이다. 천체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전공을 하는 이에게도 훌륭한 교재뿐 아니라 동기부여를 안겨줄게 틀림없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동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물리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양자역학에는 양자 터널링 quantum tunnel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벽을 뚫고 통과하려고 해도 매번 벽으로 가로막힌다. 벽을 통과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낮다. 그러나 분명 아주 희박하게나마 벽을 통과할 확률이 아주 조금은 있다. 이 희박한 확률로 벽을 뚫고 통과하는 현상을 양자 터널링이라고 한다. 나의 삶은 마치 새로운 벽을 마주해서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튕겨나가면서도, 결국은 벽을 통과하는 데에 성공하는 진동 패턴과도 같았다. 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삶은 이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프롤로그,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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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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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최저시급이 확정되고,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학생에게 소송을 당하고. 노동자를 위한 정확한 임금과 법은 너무 멀다는 생각. 그러니 이 책은 더 많은 이들과 법을 만드는 이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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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7-07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뉴스를 거의 못보고 있는데 연세대 관련 뉴스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제 이런 일이 더 나오겠구나 싶더라구요.

수이 2022-07-07 12:08   좋아요 2 | URL
저도 라디오로 들었는데 졸업생들이 너무 수치스럽다고 또 단체 성명서 내고 그러더라구요. 연대 법대 졸업생들이 팀 꾸려서 청소노동자분들 변호 맡는다는 뉴스 듣고 잘 풀리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요

자목련 2022-07-11 17:53   좋아요 0 | URL
점점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mini74 2022-07-08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학생뒤엔 누가 있을까요란 의심도 들고 ㅠㅠ 약자에 대한 혐오와 이기심을 고작 20살이 ? 한창 정의로울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참 슬프네요 ㅠㅠ

자목련 2022-07-11 17:56   좋아요 0 | URL
청소노동자의 휴계실과 샤워실에 대한 뉴스를 보고 여전한 실태에 놀랐습니다. 최소한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 사측의 태도도 여전하고요.

청아 2022-07-08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지하는 학생들이 훨 많던데 소송한 학생들 떳떳하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이 소송에 참여했다고 당당하게 공개도 못하겠죠. 저도 사두기만 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2-07-11 17:57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나는 책입니다. 우리의 현실이라는 게 취재를 통해 내가 몰랐던 노동의 실태를 알게 돼 부끄럽기도 했고요.
 

올해의 수국이다. 첫 수국이자 마지막 수국이 될 것이다. 직접 수국을 보러 가지는 못하고 결국 주문을 했다. 아이의 얼굴 보다 큰 수국 두 송이가 너무 예쁘다. 이번 수국은 작년과 다르게 꽃 수술이 적게 떨어진다. 해서 더 좋다. 수국이 도착하고 수국 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자꾸 수국을 찍는 일이다. 언제나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은 크고 결과는 그저 그렇다. 그래도 좋아하는 수국을 보고 있으니 모든 게 다 괜찮다. 수국은 실제가 더 예쁘다.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운 빛을 다 보여줄 수 없다.




알만한 분들은 알겠지만 맥주잔에 담긴 수국이디. 맥주잔에는 맥주도 좋지만 꽃이 꽃혀도 나쁘지 않다. 긴 머그 컵이 화병 역할을 제대로 했다. 수국은 땅의 성질에 따라 꽃의 빛깔이 달라지는 걸로 안다. 처음에는 모두 같은 수국이었겠지만 봉오리가 생기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고 확인하는 수국이 되었을 것이다. 수국의 성장이라고 할까. 모두 같은 수국처럼 보이지만 결코 같은 수국은 없다.







하루하루 물을 갈아주면서 조금씩 시드는 수국을 목격하는 일은 조금 슬프다. 줄기를 조금씩 잘라주면서 줄기에 스며든 물을 흔적을 확인한다.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식물이라는 걸 생각하면서도 사흘 정도 지나면 습관적으로 물만 갈아주게 된다. 그 마음이 수국에게 전해질까 미안해졌다.


밤에는 이런 사진도 찍었다. 아, 정말 신나는 수국놀이였다. 그림자를 담는 일,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처럼 그림자가 생겼다. 흔들린 사진이지만 나는 이 사진이 좋다. 더위와 장마, 습도, 그리고 슬그머니 자라는 불쾌지수를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수국. 올해의 수국, 올해도 수국수국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내년의 수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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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05 0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긴 맥주잔에 꽃혀 있는 수국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색깔도 어쩜 저리 오묘한지요~ 꽃잎마다 조금씩 다른 색이 보이네요. 내년에 올려주실 수국 사진도 기대됩니다^^ 습도 가득한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아름다운 사진 감사드려요.

자목련 2022-07-05 10:17   좋아요 3 | URL
네, 수국의 색을 보고 있노라면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요. 내년에는 내년의 수국을 만나겠지요.
화가 님도 시원하고 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서곡 2022-07-05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꽃을 각종 빈 병에 꽂아도 괜찮더라고요...

자목련 2022-07-05 10:16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모든 건 화병이 될 수 있죠^^

기억의집 2022-07-05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이쁩니다~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색의 수국이네요!!!

자목련 2022-07-07 08:48   좋아요 0 | URL
네 보는 동안 내내 행복해요. 수국의 색은 신비로움 그 자체인 것같아요^^

희선 2022-07-06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수국을 보셔서 기분 좋으셨겠습니다 2022년 처음이자 마지막 수국이라니... 다음해에는 그해 수국을 만나시겠네요 같은 수국이라 해도 늘 다르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2-07-07 08:49   좋아요 0 | URL
똑같은 수국처럼 보여도 저마다의 색이 다 다르더라고요. 내년에도 예쁜 수국을 기대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7-06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마다 수국 모종을 사서 구경하고 꽃대 잘라 놓음 그 다음 해는 꽃이 안피더라구요.ㅜㅜ
그렇게 3 년째네요^^
수국 이파리만 있는 화분은 늘어나고 있고, 수국꽃은 포기가 안되어 올 해 또 샀는데 확실히 수국의 종류가 다양하여 볼때마다 새롭습니다.
자목련님처럼 주문해서 예쁜 병에 꽂아서 감상하는 방법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꽃이 이쁩니다.
예전엔 파랑 수국이 가장 예뻤는데 요즘엔 자주나 분홍 수국이 또 예뻐 보이더라구요.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2-07-07 08:52   좋아요 1 | URL
왜 그럴까요? 구매한 화원에서는 이유를 알려주셨을까요? 저도 화분을 들이고 싶은데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
작약과 수국을 주문해보니 나쁘지 않아서 계속 주문해서 보려고 해요. 내년에는 저도 분홍을 한 번 주문해볼까 싶어요^^
 
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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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죄는 다른 거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인간이 범한 죄를 정확히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247쪽)


최근에 법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기 때문일까. 소설에서도 무조건 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승소를 바라고 있다. 정작 범인의 죄 유무는 상관없이 말이다. 일본 여성 작가 유즈키 유코의 장편소설 『최후의 증인』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제목을 통해 짐작 가능하듯 재판에 관한 것이다.


소설은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으로 시작한다. 호텔에 투숙한 중년 연인 중 여성이 남성을 향해 나이프를 겨운다. 그리고 시작된 재판 장면, 피의자를 향한 여자 검사 쇼지의 질문이 날카롭다. 그에 비해 상대 남자 변호사 사카타의 활약은 눈에 띄지 않는다. 피의자의 목욕가운과 살해도구인 나이프에 남겨진 지문, 검사는 유죄를 확신하고 피의사를 몰아붙인다. 주변 인물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와 피의자는 연인이었고 그로 인해 치정의 살인이 목적이라고 말이다.


뭔가 놀라운 반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리숙한 모습의 변호사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변호사 사카타는 전직 검사로 도쿄에서 변호사 사무실이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은 도쿄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지방 도시다. 도코가 아닌 곳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자신의 상사였던 이의 부하 검사와 재판을 해야 하는 사카타. 그가 사건을 맡은 이유는 사건 전개가 흥미로울 것 같아서다. 정말 이런 이유로 변호를 맡는 게 가능하긴 할까. 뭔가 비밀이 있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은 살인사건의 재판 진행 과정과 함께 7년 전 일어난 사건을 교차로 들려준다. 7년 전 이곳에서 의사인 다카세와 미스코의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스구루가 사망했다. 비가 오는 날 학원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를 위반하고 음주운전 차에 치여 숨졌다. 친구가 그 모든 걸 목격했지만 경찰은 비 때문에 잘못 본 거라고, 운전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아이의 잘못으로 죽은 거라고 결론을 맺는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건에 부모는 경찰과 검사를 만나 항의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건설회사 사장인 가해자 시마즈가 경찰과 유착했다는 게 뻔했다.


7년이 지났지만 다카세와 미스코는 그 슬픔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진행 중인 사건의 당사자다. 미스코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시마즈에게 접근했다. 그 과정에 미스코가 말기 암을 진단받는다. 다카세는 아내를 말리지만 단호한 아내의 모습에 동의한다. 미스코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미스코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복수의 성공만을 바랄 뿐이다.


재판의 진행과정은 검사 쇼지의 일방적인 승리처럼 보인다. 재판이 끝나는 마지막 날 사카타가 기다리는 건 한 명의 증인이다. 사건을 의뢰받고 재판을 진행하는 지금까지 증인에게 증언을 부탁했다. 하지만 사카타가 찾아올 때마다 증인은 거부했고 마지막 날 그가 법정에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판결이 나오는 날, 등장한 최후의 증언. 그의 증언으로 반전이 시작된다. 7년 전 교통사고의 죽음과 현재 사건의 연결점, 드디어 밝혀지는 진실까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유즈키 유코가 숨겨놓은 트릭에 감탄한다. 놀랍고 뛰어난 결말을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재미와 스릴이 넘친다. 그만큼 빠져드는 소설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부와 권력으로 사건을 음폐하고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만드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다. 사카타의 말처럼 죄를 지은 이는 마땅히 죄를 받아야 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보편의 진리를 말이다.


“재판의 목적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겁니다. 재판이 검사나 변호사를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피고인과 피해자를 위해 있는 거지요. 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351쪽)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소설이다. 일상의 무게에 치진 이들에게 기막히게 멋진 도피처를 선사한다. 다가올 휴가철에 함께 한다면 더욱 즐겁고 신나는 휴식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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