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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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하면서도 가슴 아픈 십 대의 사랑으로 남은 소설. 사랑이라는 게 참 예쁘면서도 슬프다는 생각. 기억은 또 얼마나 서글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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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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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의 갈등은 봉합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사회 어디에서나 가장 힘든 문제가 되었다. 경험을 토대로 건네는 조언은 잔소리가 되었고 자신의 상황이 제일 어렵고 중요할 뿐이다. 그건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관계 일지도 모른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가족이라서 그렇다는 근본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예상하게 만드는 류현재의 소설 속 가족도 그러하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입에 든 찹쌀떡 때문에 숨이 막혀 죽어간다. 그 곁에 아버지도 칼에 찔려 죽음을 맞는다. 부부는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다. 부족할 것 없는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연 이런 참혹한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뉴스에 등장하는 존속살해인 것일까. 제목을 떠올리면 그게 정답일 것 같은데. 이 비극의 시작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아버지가 모임에 나가고 어머니 혼자 산에 오르다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다.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지내기를 원하는 엄마. 아버지 혼자 엄마를 감당하기는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부부에게는 아들 둘 딸 둘 자녀가 있다. 큰 아들은 의사, 큰 딸은 선생님, 이혼해 아들을 키우며 어린이집 교사를 하는 둘째 딸, 부모와 함께 살면서 공무원 공부를 하는 막내. 이미 익숙한 전개로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둘째 딸이 아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와 부모를 모신다.


돌봄은 어렵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만 생각할 뿐이다. 돌봄을 받는 부모는 둘째 딸이 마음에 차지 않고 딸은 그런 부모가 서운하다. 모든 걸 자신에 맡긴 형제에게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둘째 딸을 시작으로 가족 가족 저마다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가족에게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다.


둘째 김은희는 일을 그만두고 엄마를 간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잘한 선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요구 조건과 잔소리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건 술과 동생 친구인 세탁소 아들 광수였다. 의사로 성공한 큰아들 김현창은 부모가 환자처럼 여겨진다. 어머니가 위급할 때마다 자신을 찾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부담스럽고 힘들다. 가족으로부터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한 큰 딸 김인경은 일을 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겨우 끝났다고 여겼는데 엄마가 쓰러진 것이다. 둘째가 모시기로 했으니 경제적으로 보태면 된다고 여겼다. 막내 김현기는 자신을 향한 기대와 염려가 불편하다.


어쩌면 부모의 죽음은 소설 속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족의 짐이 되기 싫었고 아들의 교통사고로 인해 막대한 합의금이 필요했던 큰 딸은 부모의 집을 둘째에게 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언니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간 둘째 딸은 가족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아버지와 형제들 때문에 막내는 일터에서 집중할 수 없었다. 둘째 딸의 말을 한 번쯤 들어보고 한 번쯤 해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진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194쪽)


범인이 누구일까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헛헛함과 쓸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가족이라는 게 무엇일까. 부모는 무엇이며 자식은 무엇인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늙음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까.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앉은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서 말다툼이 싸움으로 이어지는 건 그만큼 소통이 없었던 때문일까.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한 탓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니 막내 김현기의 말처럼 핏줄이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핏줄이라는 말은 사기다. 진짜 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은데,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니까. 혹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핏줄이 연결돼 있다면 그건 아래로만 향해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핏줄이 이어져 있는데, 자식의 핏줄은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을 향해서만 뻗어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식을 향한 핏줄이 연결되는 순간, 부모 쪽에서 온 핏줄은 막혀버린다. 거추장스러운 넝쿨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161쪽)


부모 없이 존재하는 이는 없다. 설령 그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끝까지 참담함을 걷어내지 못하는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순간 울컥하게 된다. 이제 내게 부모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떠난 형제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앞으로 고아로 살아갈 내 삶이 서글퍼서 그런지도 모른다.


부모가 늙고 병들게 되면 어느 가족이나 거처야 하는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 길고 긴 간병의 세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과 외로움. 다른 형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죄책감, 분노, 가족들이란 말만 들어도 치밀어 오르는 피곤과 싫증에 대하여.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당신네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따듯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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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2022-07-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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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로운 작가의 발견처럼 여겼는데 점점 몰입도 힘들고 이해는 어렵다. 나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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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5-2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3~4년전인가부터 이해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구입을 못하고 있는데 이번 해가 특히 어려웠나보군요.
소설이 어느 정도의 공감이 필요한데 저도 배경 자체가 이해가 안되거나 상황 설정 자체가 이해 범위에서 벗어나면 읽기가 어렵더라구요^^; 자목련님만 어려우신 건 아닌듯 합니다. 젊은작가상의 특성상 실험적인 작품들도 많이 들어가는 듯해요!

자목련 2022-05-26 10:36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저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에요. 소설보다 시리즈도 그렇고요. ㅎ 취향과도 닿는 듯하고요.
 

누군가 열렬하게 좋아하게 되면 그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진다. 유명 연예인의 팬이 그러하듯 기사를 사진을 찾아보고 기사나 인터뷰 내용을 읽고 그를 알아간다. 독자에게 소설가도 다르지 않다. 특히 나에게 황정은이라는 작가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사적이면서 내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일기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모든 걸 다 기록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밀스러운 뭔가를 감추기를 바랐다. 이상한 마음이지만 그랬다.


그의 글에서는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출퇴근을 하는 동거인과 사는 작가에게 파주의 공간은 뭐랄까 어떤 경계처럼 다가왔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나눠진 것 같았다. 산책을 하는 일상, 눈이 오면 베란다에 눈사람을 만드는 일, 화단에 식물을 가꾸는 일, 그것은 보편적인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그만의 시간과 그만의 사유는 우리의 그것과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내부를 보여주다가 한 발짝 다시 뒤로 물러나는 그 모습이 나는 좋았다. 물론 이 모든 건 나의 기분이며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나는 그녀가 좋고 그녀를 읽고 그녀를 기대하는 게 전부인 것을.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이기에게 책갈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이런 한 문장에서 나는 괜히 고마웠다. 그 역시 내게는 다른 사람이고 그가 만들어 낸 것으로 나는 위로받았고 무기력했던 어떤 시간을 구했으니까. 그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게 새삼 고맙다고 할까. 우리에게는 우리를 구원할 누군가의 글, 누군가의 음악, 누군가의 영상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19쪽)


사실 황정은의 글에 대해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더 안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 그의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작은 기쁨 같은 것들에 대해 그게 맞냐고 질문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글은 때로 아무 말도 필요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저 거기 있어 읽고 읽은 후 가만히 후련해지고 뻐근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황정은의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글들이 그러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거리에 나가 집회를 참여하고 목포항에서 바다에서 건져올린 처참하고 녹슨 세월호를 보는 시간이 그러하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함께 그 순간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붙잡고 간직하려 애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쪽)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듣고 같은 걸 겪는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전혀 같지 않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과 나를 같게 둘 수는 없다. 코로나를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온 시간은 곧 삶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천둥과 번개처럼 다가오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황정은이 추천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소설이나 동생들의 동의를 얻고 꺼내놓은 상처의 기억들. 나는 그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소설이 무언인지 알 수 있었고 그가 언급한 책들의 목록을 잊기 않기로 했다. 어쩌면 그는 삭제하고 싶었을 말들이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독려한 그것이 바로 그런 책이니까. 글이 힘이니까. 내가 황정은의 글에서 얻는 그것처럼.


그래도 나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사람의 선의를 믿고 굳이 희망하는 마음을 나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160쪽)


알 수 없는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지켜보는 일은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거기다 여전한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치를 행한 기대일 수도 있고 예술을 향한 마음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문장을 붙잡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루를 견디며 하루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버팀목이 되면 좋겠다. 황정은의 글은 아마도 그 버팀목 가운데 든든한 하나가 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그의 글을 읽고 살아갈 것이다. 함께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기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될 수 있으니 얼마나 반갑고 좋은 일인가.


더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읽기를 바라면서도 어떤 글은 나만 읽고 싶은 욕심을 부린다. 이런 우습고 보잘것없는 서툰 마음이 사랑이라는 걸 수줍게 고백해 본다. 고백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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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24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를 많이 좋아하시는군요. 한 권도 읽은 책이 없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아래 책들은 혼자서만 읽고 싶은 욕심나는 책들인가요?😁

자목련 2022-05-25 14:39   좋아요 1 | URL
네, 황정은 작가와 그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천천히 둘러보시고 끌리는 대로 만나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페이페에 언급된 책 목록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책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낮에는 많이 덥네요.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2022-05-25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5-25 0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님
고백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올려주신 책표지가, 록산 게이 <헝거>여서 참 좋습니다! 저는 <헝거> 읽은 후, 팬심 생겨 몇날 며칠 덕질하였는데 자목련님께서는 황작가님 인터뷰를 찾아 읽으시며 음미하셨네요^^

자목련 2022-05-25 14:41   좋아요 3 | URL
좋아하는 작가를 말하는 마음의 떨림이 전해집니다. 즐겁고 신나는 오흐 이어가세요^^

- 2022-05-26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만 알고 싶지만 나만 알아서는 안되는 황정은의 에세이가 자목련님에게도 도착했군요. 건강하세요.

자목련 2022-05-27 09:08   좋아요 3 | URL
나의 황정은은 우리 모두의 황정이어야 해요! 공쟝쟝 님, 남은 5월 눈부시게 보내세요~

mini74 2022-06-10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정은작가님 좋아해요 자목련님 ㅎㅎ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2-06-10 17:19   좋아요 1 | URL
황정은 작가, 진짜 좋죠!

새파랑 2022-06-10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홈페이지로 들어오니까 또 색다른 기분이 드네요.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6-10 17:18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10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6-10 17:1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저도 축하드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6-1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6-1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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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3회를 맞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어느 하나 비슷하거나 포개지는 게 없다.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마다 수상작품집의 소설을 읽는 편이다. 점점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 많아진다. 나와 접점이 없는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어떤 것이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대상 수상작인 「초파리 돌보기」는 평생을 자신이 아닌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엄마 원영의 삶을 소설가가 된 딸 지유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과거 실험실에서 초파리 돌보는 일을 했던 시절을 원영은 그곳에서 일하는 게 좋았다. 자신의 공간이 있었고 자신에게 지급된 것들이 좋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원이 끊겨 일을 그만두었고 그 일이 원영의 마지막 일이었다. 원영은 이후로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다. 지유는 원영의 건강 악화를 실험실에서 찾으려 하고 원영에게 그 시절의 기억을 질문한다. 소설에 등장할 거라는 질문에 원영은 적극적을 대답하고 지유의 소설에 자신의 의견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행복한 결말 같은 것 말이다.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는 소재 면에서는 독특하지만 뭔가 아쉽게 다가온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지 못하며 살아온 원영과 원영의 돌봄으로 살아온 딸 지유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며 할 수 있는 일이 그녀의 소설 결말을 엄마의 바람대로 끝내는 것이라는 게 말이다. 내가 품었던 임솔아의 이미지보다 약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유의 선택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멜라의 「저녁 놀」은 두 번 읽은 단편으로 여전히 좋았다. 서로의 이름이 아닌 ‘눈점’과 ‘먹점’이라 부르며 함께 살아가는 여성 커플이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지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보편적인 관계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눈점’과 ‘먹점’이라 말을 사용하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움츠리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의 사랑을 그려내는 김멜아의 의도는 멋지다.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소설 보다 : 봄 2022』에서 만난 「윤광호」가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발표 순서로 보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 먼저다. 이 소설의 화자 역시 게이 소설가로 소설 속 인물인 주호를 인권단체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 주호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도착한 ‘나’는 주호의 연인 인주와 함께 주호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성애자 주호와 인주의 만남 과정과 과거 ‘나’와 주호의 사이를 추억하다 ‘나’는 주호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주호를 안다고 여기고 함부로 내뱉은 말들, ‘나’는 주호의 개별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에 대해 생각한다.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얼마나 작고 편협한 틀에 갇혔는지 말이다. 나와는 전혀 닿을 일 없는 다른 세계의 삶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던가. 무지의 판단이다. 해서 김병운의 작가노트의 이런 구절이 오래 남는다.


소설과 삶이 서로에게 무용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 소설과 삶이 서로를 외면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 요즘 내게 점점 더 중요해지는 건 이런 일들인 것 같다. (139쪽, 김병운 작가노트 「더 중요해지는 것」, 중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차별적 공격에서도 피해자에게 기우는 책임을 일갈하는 김지연의 「공원에서」나 독서 모임에서 자신이 소유한 것들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옳은 선행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엄마들과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약자다움을 강요받는 미애와 해민 모녀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김혜진의 「미애」는 가장 현실적인 소설처럼 보인다.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폭력에서 보호받을 없는 약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 복지의 안과 밖의 경계에 누가 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빛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의 무게는 언제나 그림자에 속하는 현실은 서수진의 「골드러시」에서도 있다. 호주에서 보다 멋진 삶을 선택한 진우와 서인은 점점 더 늪에 빠지는 듯하다. 호주 정착에 필요한 비자를 획득하면서 꿈꾸던 황금빛 미래는 자꾸만 미뤄진다. 진우와 서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결혼 7주년의 여행에서 둘의 간극은 극심해진다. 그들의 바랐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진우와 서인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 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진우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서수진 「골드러시」, 253쪽)


서이제의 「두개골의 안과 밖」은 무척 실험적이 소설로 다가온다. 새의 개체수가 급증한 미래에서 인간과 새의 관계를 상상하는 일은 섬뜩하다. 그동안 인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을 당한 동물들, 그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까. 소설 속 새의 목소리는 서글프면서도 참담하다. 하지만 내게 파격적인 형식의 소설이 강렬하게 다가온 건 아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작가의 몫이고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한 권으로 다양한 단편을 만날 수 있는 이런 수상작품집에서 독자가 선택한 대상은 다를 수 있다. 그런 이야기의 장을 열어주는 일, 젊은작가상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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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5-2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멜라 작품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결국 완독을 못했어요...올해 작품들이 유난히 저는 어렵더라고요.

자목련 2022-05-24 09:59   좋아요 0 | URL
점점 더 젊은작가상을 읽는 일이 버겁게 느껴져요. 나와의 그들의 거리가 멀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서이제의 소설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