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주체적으로 살기를 원한다.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면 독립을 떠올릴 것이고 같이 살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 유행을 따르지 않는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삶을 생각할 수도 있다. 역시 자유와 책임이 함께 온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시민 불복종』을 읽으면서 주체적인 삶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이웃으로부터 1마일 떨어진 숲속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는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의 가장자리에 손수 집을 지었고, 내 두 손으로 직접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나는 그곳에서 두 해 두 달을 살았으나 지금은 문명 생활의 일시 체류자로 다시 돌아와 있다. (11쪽)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기록한 글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다. 1900년 대의 삶이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사고와 철학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주제별로 쓴 글은 때와 장소를 바꾸어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가치도 변화하니까.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가운데 필요한 노동을 회피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소로의 말처럼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건 중요하다.


인간에게 필요한 노동을 조직적으로 회피함으로써 탐욕스러운 여가를 얻은 학생은 치욕스럽고 실익 없는 여가를 얻는 것이며, 인간의 여가를 유익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체험을 자신인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중략)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생활 실험을 직접 해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젊은이들이 인생을 더 잘 살아낼 수 있겠는가? (72쪽)





누군가는 현재는 소로처럼 살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의도적인 삶을,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공부하기에 현대인은 너무도 바쁘고 철학적 사유에 집중할 수 없을 테니까.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여전히 소로의 삶을 원하고 소로의 글을 찾는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121쪽)


얼핏 자연과 하나 되는 평온한 삶을 꿈꾼다면 그건 착각이다. 생각해 보라,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밭을 일구고 집을 보수하고 겨울이면 난방을 위한 노동이 필요하다. 한 번씩 찾아오는 지인과 여행객들의 질문에 답도 해야 한다. 소로를 찾는 이들에게 소로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으로 여겨겼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해 너무 관심이 많다. 혼자의 삶을 위해 선택한 삶에 방문객은 반갑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연에서의 삶은 계절의 흐름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 경이로운 장면을 소로는 세밀하게 기록한다. 월든 호수가 어떤 모습인지 그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지 자연관찰 그 이상으로 훌륭하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서 얼었던 호수가 녹기 시작한다. 봄의 호수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소로는 우리를 그곳으로 부른다.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 표면의 파문을 쳐다보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환희와 젊음으로 가득 찬 호수의 맨 얼굴은 그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가장자리에서 반짝이는 모래의 즐거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호수 표면은 물고기 비늘처럼 은빛으로 반짝거리는데 마치 호수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 같다. 이것이 겨울과 봄의 극명한 대조다. 월든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412쪽)


월든은 읽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평범한 에세이라 하기엔 너무도 비범한 소로의 사유가 담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든은 한 번에 읽을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시민 불복종」은 뭐랄까 정치적인 글이다. 소로는 주민세를 납부를 거부해서 구치소에 감금되기도 했다. 단 하루 동안이지만 그 안에서도 소로는 평온하다. 이어지는 그가 바라는 정부, 권력에 대한 글은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력이 국민의 손에 있을진대 그들 중 과반수가, 그것도 지속해서, 통치하도록 허용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의 정의롭다거나 소수에게 가장 공정할 것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물리적으로 가장 힘이 센 자들이기 때문이다. (「시민 불복종」, 449쪽)


나는 노예제를 지지하는 정부를 한순간도 나의 정부라고 인정할 생각이 없다. (「시민 불복종」, 452쪽)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정부 발전 형태에서 가장 나중의 것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가갈 수는 없는가? 정부가 개인을 한층 더 높고 독립적인 힘으로 인정하고, 그 힘으로부터 정부의 권력과 권위가 나오며, 또 개인을 그런 위상에 걸맞게 대우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고 개명(開明) 된 국가라 할 것이다. (「시민 불복종」, 477쪽)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로의 정부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 대한 통찰은 귀한 지침이다. 우리가 왜 소로의 글에 이토록 놀라고 감탄하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만 때로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소로라는 등대를 따라가도 좋겠다.


*현대지성의 월든은 풍경 사진 66장이 함께 있어 더욱 풍성한 월든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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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 축하드려요 *^^*
pc로 자목련님 사이트 들어오니 고양이가 딱 ! 고양이는 언제봐도 예뻐요 *^^*

자목련 2022-02-11 09:55   좋아요 1 | URL
미니 님의 2관왕 저도 축하드립니다.
야옹이는 사랑이에요^^

thkang1001 2022-02-10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2-02-11 09:54   좋아요 1 | URL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2-10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 축하드려요 ^^ 다시보는 사진도 예쁘네요~!!

자목련 2022-02-11 09:54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야옹이는 언제나 예뻐요.
날씨가 많이 풀린 것 같아요.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02-1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2-02-11 09:5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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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제목이 시놉시스를 대신한다. 정지윤의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이 그러하다. 유령이 등장할 거라는 기대와 세상 끝 아파트가 가리키는 것이 결코 해피엔딩은 아닐 거라 짐작한다. 세상 끝 아파트는 유일무이한 존재,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기도 전에 제목과 표지에 끌린다는 건 나쁜 징조는 아니다.


증강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가까운 미래, 그것과 거리를 두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아파트 ‘베니스힐’가 있다. 저마다의 선택으로 텐서칩과 확장 현실을 거부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친한 친구 J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십 대 소년 ‘요한’과 그를 돕는 과외 선생 ‘쌤’이 비밀에 다가선다.


요한의 친구는 죽기 전에 ‘베니스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라니. 과연 무엇일까? 요한은 친구가 죽은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 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요한의 어머니에게 신뢰를 쌓은 쌤은 요한과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요한에게 ‘베니스힐’를 벗어난 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증강현실이 가능한 삶,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놀라고 감탄한다. 요한은 소설 밖 독자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요한을 통해 독자는 함께 증강현실의 세계로 빠져든다. 동시에 왜 ‘베니스힐’는 증강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 중심에는 요한의 부모가 있었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과 부동산 투기가 있었다.


쌤은 밖에서 요한은 ‘베니스힐’안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명문대 출신인 쌤은 요한이 ‘베니스힐’에서 도청과 해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요한은 ‘베니스힐’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인간의 욕망과 마주한다. 놀랍게도 요한의 어머니가 개입되었고 쌤도 자신의 외삼촌 죽음을 밝기기 위해 요한을 이용한 것이었다.


가상으로 그려낸 미래의 모습이지만 과연 가상으로 끝낼 수 없다. 증강현실,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설 속 ‘베니스힐’처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의 공동체 공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모두에게 과학의 발전을 강요할 수 없으니까.


모든 연구와 과학의 발전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기술을 독점으로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런 경고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SF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지니면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르포 형태의 현실 고발 소설이다. 짧은 스토리에 담긴 강력한 주제가 오래 남는다. 소설 속 미래가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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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1-12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검색하다가 이 책 시리즈 보았는데, 다른 책보다 가볍고 소재도 괜찮은 것 같았어요.
잘읽었습니다. 자목련님, 추운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자목련 2022-01-13 09:21   좋아요 1 | URL
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이라 어디서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듯해요.
서니데이 님, 오늘은 눈이 가득입니다.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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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는 아직 읽지 못한 김연수의 책이 있다. 어떤 책은 시작도 못했고 어떤 책은 읽다가 말았고 어떤 책은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다. 그가 먼저 읽고 쓴 글을 보고 그가 추천한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김연수의 글을 좋아하고 믿는다. 좋아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산문이나 소설을 통해 그가 ‘우리’를 놓지 않고 있다는 것과 보편적인 일상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시절일기』는 어떤 시절을 지내고 견디는 것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글을 읽는 일은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통로처럼 다가온다. 일기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적 영역보다는 칼럼이라 할 수 있다.


문장을 하나 쓴다. 그다음에는 침묵이다. 그러다가 문장 하나를 더 쓴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이다. 문장을 쓸 때마다 만나는 이 침묵은 완벽한 무無처럼 느껴진다. 그때 나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곳, 인식의 끝에서 더듬거리는 중이다. 그렇게 수백 번 혹은 수천 번의 무와 대면한 뒤에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8쪽)

살아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지고 편안해질 거라 여겼지만 반대로 현실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면 살아가는지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세상이니 누군가는 쓰는 일과 읽는 일이 무용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루하루 꾸준하게 쓰는 작가와 그것을 읽는 나에게는 유용하다. 말하지 않아도 여전히 거대한 슬픔으로 존재하는 사건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나의 일이 아니니 관심을 거둘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김연수의 글로 다시 되새기는 그날의 기억과 기록은 몸에 박힌 가시처럼 따갑고 아프다. 글이 주는 깊은 울림, 그 힘을 믿는 것이다.그게 무엇이든 쓴다는 것, 멈추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글쓰기는 중요하므로. 대단한 글이 아니더라도 미완성의 글로 남더라도 쓴다는 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질문을 던지는 일이니까. 어쩌면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한순간 무너지고 부서졌을 것이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 (49쪽)


무언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거기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문학이 애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문장이 어떤 날의 나를 지탱하게 했으니 나는 읽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 어느 시절, 그 문장은 김연수의 것이기도 했으니 우리는 한 시절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바라봤다고 여겨도 좋다. 낯선 도시 서울에서 어느 계절 남산타워를 보면서 그가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남산타워에 그토록 끌렸던 까닭은,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거기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서울에서 누군가는 천국에라도 온 것처럼 기뻐하고 누군가는 지옥에 떨어진 죄인처럼 괴로워할 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남산타워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처럼 서 있었기에. 인생이 여행이라도 되는 양, 짐짓 여행자처럼, 그 모든 기쁨과 고통을 바라보는, 그러나 더없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눈동자로. (127쪽)


오래 머무르고 싶은 부분이 많았고 읽고 있어도 도통 잘 모르겠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깊은 사유의 시작이 오랜 글쓰기와 폭넓은 독서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혼자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청춘의 문장들』이나『소설가의 일』과는 다른 글의 무거움과 깊이는 50대에 접어든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장래희망으로 다시 할머니를 말하는 글에서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함께 즐거웠다.


나는 읽는다. 때로 쓰기도 한다. 읽고 쓰는 존재라 말하고 싶다. 작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예술의 존재에 대한 이런 글에서 예술은 우리의 인생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유한하며 소멸하는 것, 그래서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사라짐을 경험하는 일이 의미하는 것들을 가늠해 본다.


예술은 사라짐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심리상태, 재능, 예술가로서의 위상 등등이 모두 소진되는 과정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고 나면 작품 자체도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라짐을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65쪽) ​


김연수의 『시절일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걸 각인시킨다. 매일 경험하는 세계가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의 인생과 겹쳐지는 순간은 이어질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분노하고 어느 순간에는 감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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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글은 어떤 내용이든 참 곱고 차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ㅎㅎ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1 | URL
입꼬리가 올라가는 아침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2-10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2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맑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2-10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2 | URL
^^*
금요일과 이어진 주말 신나게 보내세요^^
 
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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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말이다. 복잡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과 같은 개념이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삶을 누리는 이는 적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를 다스리는 일, 심연 깊은 곳으로의 침잠은 절실하다.


인간은 몸으로 사는 존재이자 욕망의 관계로 사는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갈수록 소란하고 위험하고 급진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낼 독립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내면의 장소, 내 영혼의 깊은 숨을 쉬는 오롯한 장소가 필요하다. 내 작은 방은 하나의 은신처이자 전망대이다. 이 은신처에서 나는 영혼의 파수꾼이 되고 상처 난 인간의 위엄을 가다듬어 세우고, 그 순간 이 은신처는 희망의 전망대로 전화轉化한다. (11쪽)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 『내 작은 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작은 방이 된다. 이 작은 책이 우리의 영혼을 달래고 쉴 수 있는 작은 방이라는 거다. 37장의 흑백사진으로 만난 삶, 그 안의 작은 공간에 담긴 사연과 시인의 사유가 우리를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지 묻는다. 고요하고 아득한 작은 방을 채운 쓸데없는 상념들을 하나씩 지우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52쪽)






어느새 나는 흑백 사진의 그 방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터전을 잃어버리고 길 위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 돌아갈 집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부모, 그곳이 어디든 가족과 함께 있다면 작든 크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지상 최고의 집이라는 게 내게로 전해진다.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힘겹고 고단한 시간을 어떻게 건너고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진이 말하지 않는 어떤 슬픔과 고통에 동참한다.


집이란 언제든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가 있는 곳.

다친 새처럼 상처받은 존재들이 그 품 안에서

치유하고 소생하고 다시 일어서 나가는 곳이니. (42쪽)


살아가는 일은 때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라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가꾸고 단장하며 살아가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프고 힘든 이들에게 나의 작은 집, 나의 작은 방을 내어줄 수 있는 삶의 고귀함을 배운다.





그 모든 시간이 내 소중한 인생이고

이 인생길의 주인은 나 이기에. (86쪽)


과연 나는 내 한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내게는 슬픔을 위로하고 포옹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있을까. 어쩌면 거기 그 자리에 있던 그 방을 모른 척 외면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더 넓고 더 따뜻한 집에 살면서도 어느 시절 반지하의 방, 겨울에도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날들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나를 본다.


‘어찌할 수 없음’ 투성이인 우리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고’ ‘어찌해야만 하는’ 것은 내 마음 하나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목적지는 내 마음의 빛이고, 내 마음의 방으로부터다. (15쪽)


여기 내가 쉴 곳이 있는데, 하루를 마치고 누울 곳이 있는데, 무엇을 더 갖고자 욕심내고 불평하는가. 진정한 내 마음의 방 하나를 꾸리지 못한 지독하게도 가난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라도 고요와 환한 빛으로 채울 수 있는 내 마음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나를 돌보며 살아가고 싶다.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나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 내 마음의 방, 119쪽)


메마른 우리 영혼을 따뜻하고 보드랍게 채워줄 에세이가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팍팍한 삶으로 치진 당신에게 작은 여유를 선물하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쉴 곳으로도 충분하니 마음의 방을 이곳에 마련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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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10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라카페 갤러리 가서 보고 싶어요 ^^

자목련 2022-01-11 09:09   좋아요 1 | URL
직접 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01-10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은 참 단아하고 좋습니다. *^^*

자목련 2022-01-11 09:10   좋아요 1 | URL
음, 단아하지 않지만 단아란 말은 좋아합니다. ㅎ

Falstaff 2022-01-1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도 댓글 썼다가 지웠는데요....
지금 시대 대표적 운동권 소설가이기도 한 이인휘의 <건너간다>를 보면 요즘 박노해가 그쪽 사람들한테 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혹시 이젠 이런 책을 낸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댓글을 달았다가 왼쪽 오른쪽 따지는 게 싫어서 말입니다.

자목련 2022-01-11 09:14   좋아요 1 | URL
같은 길로 간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가늠할수 없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으로 만난 박노해의 글과 사진이 좋을뿐.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고블 씬 북 시리즈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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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과 영원히 함께 살 거라는 생각뿐 이별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며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365일 겨울만 지속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카야’와 그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의 관습대로 얼음 속에 엄마를 보관하고 볼 수 있다. 카야는 매일 얼음관 속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에 다녀온다. 거기 엄마가 있으니 괜찮았다. 엄마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봄이 있는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카야는 엄마가 들려준 봄을 기억한다.


그런 엄마의 얼음 관을 ‘스미스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으로 승진과 집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카야는 아빠에게 화를 냈지만 겨울을 스미스 일가가 마을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철도를 만들었다. 카야는 이제 학교를 마치고 스미스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아빠가 출장을 간 사이 친절한 스미스 씨는 카야를 저택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가까이서 엄마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카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카야를 엄마처럼 꾸미려 했다. 그건 카야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스미스 저택에 엄마가 있지만 카야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스미스 씨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알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카야는 죽었을 것이다.


아빠도 출장을 간 게 아니었다. 다친 아빠까지 모든 게 스미스 씨의 계략이었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공동체였던 마을에 스미스 일가의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카야는 더 이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을 떠나 봄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래서 엄마와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도끼로 직접 엄마의 얼음 관을 깨고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얼음 관을 올려다봤다. 무질서하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부드러운 리본처럼 얼음 관을 휘감았다. 얼음 관에 금이 가고, 표면에 미세한 육각형 무늬들이 새겨졌다. 반짝이는 얼음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눈의 결정들이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얼음 관 속의 엄마도 빛이 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한껏 젖히고 빛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두 눈 가득 담았다. (124쪽)


아름다운 얼음 궁전을 떠올리는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는 소설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이별, 스미스 씨가 상징하는 권력자의 횡포, 그 모든 걸 경험하는 카야의 성장기라 볼 수 있다. 성장은 주저하며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야의 용기와 결단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판타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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