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을 좋아한다. 고독과 몽환으로 이끄는 글이 좋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은어낚시통신』이 아니라 남쪽 계단을 보라로 처음 만났다. 때문에 소중하고 특별한 책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아, 저 표지를 어쩌란 말인가. 절로 단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떠올리게 만든다.(물론, 내용은 묻지 말기를).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소설엔 절기가 등장하고, 바다와 산이 자주 등장한다. 그 바다, 그 숲을 다시 만나고 싶다.

 

 책은 책을 불러온다. 정녕 그러하다. 신해욱의 시집 『생물성』의 시「자루」의 속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란 싯구는 염승숙의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제목은 분명 신해욱의 시에서 온 게 아닐까. 소설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야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신해욱의 『생물성』으로 인해 『간결한 배치』도 궁금해졌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는 자명한 사실, 나만 몰랐던 걸까?

 

 

 

 

 

 

 

 

 

 

 

 

 

 

 

 

 

 

 

 

 

 

 그는 폐가 없는 듯이 숨을 쉰다.

 나는 내용물이 가득한 자루를 끌어안고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

     *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는 나를
 숨 쉬는 가구들이 들어찬 방으로 밀어 넣고 있다.

 배설물이 가득한 꿈을 강요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무럭무럭 자라는 베개 속에서
 내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지도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나는 간신히 자루를 붙잡고 있다.

 자루 속에
 숨을 수는 없다.
 일을 해야 한다. (「자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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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1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책을 주문하려고 했다. 궁금한 내용이기도 했고 적립금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책을 정말 읽고 싶냐는 질문이 불쑥 올라왔다. 아니다, 라는 답이 들려왔다. 아주 솔직한 마음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읽어야만 할 것 같아 구매하는 행위, 진심으로 그 책을 원하는지 확실한 답을 미루고 그저 먼저 사면 될 거라 믿는 부끄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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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8-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도 이럴 때가 있어서 마음을 접고 주문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최근에 어느 책에서 또 한번 실망을 했지만요.^^

자목련 2013-08-20 19:49   좋아요 0 | URL
책을 선택하는 일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같아요. ㅎ
프레이야 님이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전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을 읽고 있는데 진도가 더뎌요^^

프레이야 2013-08-21 10:19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뒤늦게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읽고 있어요.
자목련님은 읽어보신 책일 것 같은데요^^

자목련 2013-08-21 21:30   좋아요 0 | URL
최근에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을 읽으면서 생각난 책인데, 프레이야 님이 만나고 계셨군요. 책과 서점,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라도 반가워요^^
달콤하고 시원한 밤 보내세요^^*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책이다. 그것이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더욱 반갑고 기쁘다. 최근에 친한 지인에게 선물한 책을 다른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그 책은, 김 언의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다. 선물 받은 책은 또 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두 번째인 오현종의 달고 차가운이다. 조해진의 책에 이어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보니 계속 모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가까운 이가 읽고 추천하는 책이라면 주저 없이 곁에 두게 된다. 좋아하는 동생이 먼저 읽고 남긴 글을 보고 바로 구매한 조엘 디케르의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경우가 그렇다. 지인이 소개한 책이라면, 읽기 전에 기대가 상승한다. 이제 막 첫 장을 펼치려는 웬디 웰치의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은 그래서 더 궁금하다.

 

 

 

 

 

 

 

 

 

 

 

 

 

 

 

 

 

 

 

 엊그제부터 밤이 안온하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 바람이 다르다. 밤을 가르는 듯 우렁찬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다짐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시도한다. 나는 항

 상 물거품이다. 나는 항상 신비하고 절망한다. 나는

 항상 이유다. 나는 항상 결론이고 거의 없다. 나는 항

 상 무한하고 있다. 나는 항상 결정적이고 온다. 멀어

 져가는 대상에 대하여 나는 항상 단정하고 대상이다.

 나는 항상 불가능하고 없다. 홀로 던져져 있다. 나는

 항상 마주하고 적이다. 흑이고 백이다. 나는 항상 흘

 러넘치는 선물. 거리 곳곳을 옮겨 다니는 식물. 어떤

 시각이든 필요하고 어떤 청각이든 고통을 빼먹는다.

 핑계가 아니면 변명으로. 흐름이 아니면 덩어리로.

 액체가 아니면 젤이라도 바르고 나타나서 밤을 움직

 인다. 밤에 움직인다. 나는 항상 서 있다. 거의 죽어

 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묵직하게 달아나는

 영혼을 붙잡고 있다. 돌로 눌러놓고 있다. (125쪽, 나는 항상 실패한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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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3-08-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소개한 책이라면, 읽기 전에 기대가 상승한다라는 말씀 저 저 저 너무 공감해요~
왠지 믿고 본다고 할까요?ㅋㅋ

자목련님의 글을 보며
<엊그제부터 밤이 안온하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 바람이 다르다.>의 말씀에 끄덕이며
저도 평온해집니다.

자목련 2013-08-16 16:1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꾸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요. ㅎ

지금 이곳엔 바람이 가득해서 무척 시원해요. 이 바람을 블루데이지 님에게 보내드리고 싶어요^^

2013-08-16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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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목표라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이가 많지 않다는 거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완전하다고 느끼는 삶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가벼운 나날』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삶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소설은 건축가 남편 비리와 아내 네드라의 평범한 이야기다. 부부에겐 사랑하는 두 딸과 친구, 애완견이 있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듣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대화의 주제를 위해 책을 읽고, 아이들을 위해 직접 동화를 쓰고 연극을 준비한다. 누가 봐도 그들은 행복한다. 가장 완벽하게 연출된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부가 꿈꾸는 삶은 달랐다. 비리와의 결혼이 탈출구였던 네드라에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리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은 생기를 잃은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51쪽

 

 네드라와 비리의 일상을 통해 엿보는 타인의 삶, 그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쇼핑을 즐기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돌아오는 삶에 만족이 결여되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타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네드라의 갈망은 우리의 내면의 소리와 닮았다. 해서 어떤 장면에서는 마음을 들킨 듯 소름이 돋고, 어떤 장면은 덤덤하게 넘기고, 어떤 장면에서는 화끈거린다. 비리는 능동적으로 삶을 이끄는 네드라가 부러웠고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둘은 이혼을 결정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마흔 하나의 네드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난다.

 

 ‘축제는 끝났다. 아이들에게 그가 수없이 읽어주었던 이야기, 세 가지 소원을 다 써버린 가난한 부부처럼, 그는 절실히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분명히 보았다. 다 말하고 나니 그가 정작 원했던 건 단 한 가지, 아주 작은 소망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집에서 자라길 바랐었다.’ 325쪽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삶과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 나의 생, 역시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삶에 속한다. 물론 네드라와 비리가 부부였을 때처럼 다 안다고 믿는 공통의 삶도 존재한다. 그건 때로 포장을 원하고 영혼 없는 웃음을 요구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삶은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이 균형을 이룬 삶인지도 모른다. 네드라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니까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밀 조각들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삶 말이다. 네드라의 말처럼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옮겨가면서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의 접점에 닿는 순간과 마주할게 될 것이다. 그 접점을 우리는 결혼, 이혼, 죽음이라는 말로 부르는지도 모른다.

 

 “전과 다름없다…… 아녜요. 누구도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옮겨 가고 있어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에요.” 352쪽

 

 제임스 설터는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삶의 순간을 포착한다. 평이한 순간들을 아름답고 선명하게 담아내 특별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가다. 차마 잴 수 없었던 삶의 무게를 적확하게 측량하는 것이다. 그의 문장으로 태어난 삶은 이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몰랐던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삶이 궁금하다. 투명하거나 불투명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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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바닥이 따뜻하다. 눅눅한 기운을 걷어내려고 보일러를 돌렸다. 발바닥에 타고 전해지는 따뜻함이 좋다. 어김없이 콧잔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래도 좋다. 아, 뜨거운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아침에 듣는 음악이 좋고, 커피가 좋고, 자두가 좋고, 복숭아가 좋고, 맥주가 좋고, 치킨이 좋고, 책이 좋고, 글이 좋고, 당신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 내가 좋아하는 걸 모르는 당신,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걸 아는 당신, 좋은 것들은 이리도 많다.  

 

 한 작가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생성되는 걸까? 첫 인상, 입소문, 출판사의 홍보 문구, 표지, 지인의 추천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구병모, 김경욱, 이응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간이 유혹하는 아침이다. 이 작가들과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만난 구병모는 신선했다. 이어 만난 <고의는 아니지만>은 놀라웠고 <아가미>는 독특했다. 신간 <파과>는 어떤 느낌일까. 김경욱의 소설은 단편 드라마로 만났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위험한 독서>가 제일 좋았다. 아니, 읽지 못했기에 그의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는 야구에 대한 소설일까? 표지를 장식한 토끼의 의미가 궁금하다.

 

 이응준과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은 무척 아름답다. 요즘 제목의 대세는 밤인가 보다. 이증준의 <밤의 첼로>는 얼마나 매혹적일까?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으로 만났던 감성을 떠올린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여름 거짓말>이야말로, 이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저절로 표지에 손이 간다. 물결의 말들이 내게로 스며들 것 같다.

 

 

 

 

 

 

 

 

 

 

 

 

 

 

 

 

 

 

 

 

 

 

 

 

 

 좋아하는 동생의 글에 의하면 좋은 것을 좋아하려면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좋아하니까, 때로 싫은 것도 싫어하지 못하고 서운함도 감수해야 한다는 거다. 읽히지 않는 책을 덮지 못하는 일, 읽지 못하는 책을 구매하는 행위의 근원에도 사랑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랑에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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