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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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대를 산다는 건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다. 유행하는 문화를 함께 즐기고 놀라운 사건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함께 한 친구는 특별하다. 비밀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방패가 되어주는 친구가 있어 힘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영원한 우정이 존재하리라 믿었던 시절이 있는 것처럼.

 

 소설 속 지혜, 세미, 준모도 그랬다. 의지로도 제어할 수 없는 뚜렛 증후군을 앓는 준모, 잊고 싶어도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을 가진 지혜,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부유한 조부모의 집에 짐처럼 맡겨진 세미는 삼총사였다. 중학교 때부터 언제나 함께였다.  그들이 지나온 1990년대는 놀라운 사건이 많았다.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졌고 김일성이 죽었다. 정이현은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1990년대 서울의 강남을 복기시킴과 동시에 혼란스러웠던 십대의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세 아이들의 이야기는 세미가 화자가 되어 들려준다.

 

 ‘스무살이 되는 해는 1997년이다. 가깝지만 머나먼 숫자였다. 유리잔 밑바닥에 남은 우유 찌꺼기처럼 희뿌옇고 탁했다. 1988년에는 1991년이, 1991년에는 1994년이 그렇게 느껴졌었다. 시간은 늘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처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앞만 보고 뛰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63~64쪽

 

 입시로 기억되는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이 되는 것보다 스무살이라는 말이 더 가깝게 느꼈을 때다. 세미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조부모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였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집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고모마저 사랑이 아닌 학벌을 택해 결혼을 하자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새 여자를 대동했고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 안은 엉망이 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교수 부모를 두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지혜와 점점 심해지는 뚜렛 때문에 유학을 결정하는 엄마를 따라야 하는 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마음을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세미와 친구들은 더 단단해지고 비밀을 나눠가질 수 있었던 거다.

 

 ‘불행은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다. 해석하거나 납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해석되지도 납득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불행이 가진 본성이니까. 이상한 낌새를 채고 어, 어, 어쩌지, 하는 순간에 불행은 토네이도처럼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정신을 차려보면 움푹 꺼진 구덩이와 그 주변에 어지러이 널린 일상의 잔해뿐이다. 잔뜩 물때가 끼어 있는 불투명 욕실 슬리퍼 한쪽. 그런 것만이 우리가 간신히 목격할 수 있는 불행의 실체이다.’ 174쪽

 

 소설은 1990년대 강남 세태를 담았지만 90년대는 아릿한 어느 시절을 꺼내오는 촉수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가슴 속 깊이 간직한 비밀 상자를 열게 만든다. 비밀 상자에 담긴 게 좋았던 추억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지나야 했던 시절의 상처나 잊고 싶은 기억 말이다. 정이현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게 새로운 기억이듯 감당할 수 없었던 과거의 시간은 살아갈 시간으로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안녕, 내 모든 것>이란 제목처럼 아프고 슬픈 것들과 안녕을 말해야 할 때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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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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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싸움터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하고 끝내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싸움터 말이다. 어떤 이가 반칙을 쓴다는 것도 안다. 알면서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 진정한 승리는 때로 승패와는 상관없으니까. 김언수의 소설집 『잽』에서 그려내는 세상도 그렇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바탕 싸우고 나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표제작 「잽」은 정말 멋지다. 아니, 아름답다. 화자인  ‘나’는 열일곱 고등학생이다. 평범한 학생이다. 수업 시간에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회오리바람을 보기 전까지. 윤리 선생에게 빰을 맞고 반성문을 제출을 거부하고 3년 동안 화장실과 운동장을 청소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난다. 화를 표출하기 위해 권투를 배운다. 관장은 싸움의 기술로 잽과 홀딩을 알려준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잽을 날리고 싶었을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윤리 선생, 혹은 세상 전부인지도 모른다. 아니, 잽보다 홀딩이 더 좋은 기술이라는 걸 관장은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홀딩이라는 좋은 기술도 있지. 좋든 싫든 무작정 상대를 끌어안는 거야. 끌어안으면 아무리 미워도 못 때리니까. 너도 못 때리고 그놈도 못 때리고 아무도 못 때리지.” (26쪽, 잽 중에서)

 누구나 잽을 날리고 싶었던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잽을 날리는 이는 많지 않다. 그토록 열심히 잽을 연습했지만 결국 한 방을 내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매일 세상이라는 싸움터를 향해 나가지만 상대도 나처럼 고단하고 피곤한 상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주먹을 내밀지 않고 있는 고요한 세상이어서 도대체 어디다 잽을 날려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31쪽, 잽 중에서)

 

「금고에 갇히다」는 제목 그대로 금고에 갇힌 이야기다. 화자인  ‘나’는 사기가 전문으로 금고털이 기철과 금고업체 여직원과 함께 금고를 턴다. 그 과정에 어이없게 금고에 갇힌다. 안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는 거대한 금고에 갇힌 셋은 서로를 원망하다 밖으로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다 금고에서 금으로 만든 주사위를 발견하고 뱀놀이판을 만든다. 그들이 견디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건 보석도 귀금속도 아닌 그저 놀이였을 뿐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금고 밖에서 꿈꿨던 환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고 속에서만 빛을 발하는 보석도 마찬가지. 우리 스스로 무엇에 갇혀 살고 있는지 묻는 소설이다.

 

 ‘사기꾼은 환상을 파는 직업이다. 그리고 그 환상은 거짓보다 진실에 휠씬 가깝다. 진실에 가까운 환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갈 수 없는 곳에 가려 하고, 자신이 움켜쥘 수 없는 것들을 움켜쥐려고 한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환상 때문에 사람들은 사기꾼과 손을 잡는다.’ (43쪽, 금고에 갇히다 중에서)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암살범으로 지목된 화자  ‘나’의 이야기다.  ‘나’는 정체를 모르는 남자의 압박과 고문을 이겨지 못해 진술서를 작성한다.  ‘나’는 나를 잊어버리고 진짜 암살범이 되어 그들이 내 준 자료에 맞게 진술서를 쓴다. 어떻게든 진술서를 써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한데 점점 진술서가 좋아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따른 진술서를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고민이나 걱정 따위는 사라지고 완벽하게 그 틀에 들어가면 편했다. 문득,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진술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소설 속 화자가 애잔하고 애틋하다.

 

 ‘나는 자료를 해석하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사건을 조리에 맞게 결합했다. 나는 날마다 진술서 속의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느끼고 호흡했다. 그러자 나는 진술서의 세계가 점점 좋아졌다. 아무런 의혹도 모순도 없는 세계! 이처럼 논리적이고 명확한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지!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더이상 나에게 암살범이라는 가짜 암시를 주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암살범 그 자체이고, 진술서 그 자체였다. 나는 이제 자료만 준다면 어떤 진술서도 열두 시간 안에 완벽하게 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143쪽,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 중에서)

 

 김언수가 그려낸 인물은 평범하다. 대표로 나설 싸움꾼이 아니라 의자를 지키고 있는 후보 선수들이다.  술집 뒷골목의 풍경을 담담히 그려내며 그곳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단발장 스트리트」, 그저 그런 날들의 반복 속에서 소파 옮기는 일이 특별한 사건이 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소파 이야기」, 한때 잘 나가던 과장이었지만 실직 후 아버지 병원비로 아파트까지 팔고 슈퍼를 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는 「빌어먹을 알부민」 속 가장 등 모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시민이다. 그래서 더 정이 간다.

 

 김언수가 고맙다. 때로 답답하고 때로 외로운 세상에, 이토록 유쾌한 잽을 날려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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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식탁엔 감자가 주인공이었다. 감자조림을 하고 싶었지만 감자볶음과 감자찌개를 했다. 음식 솜씨가 없어서 그냥 먹을 만 했다. 아니, 먹을 수밖에 없었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감자볶음은 괜찮았지만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내고 고추장, 간장, 마늘, 올리고당으로 맛을 냈는데 감자찌개는 무슨 맛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요즘 제철 맞은 감자를 먹고 있다. 막 찐 뜨거운 감자와 커피를 가장 많이 먹는다. 소금만 넣고 찐 감자는 정말 맛있다. 본연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감자는 감자의 맛이 나고, 밥에서는 밥의 맛이 나고, 책에서는 책의 맛이 난다.  

 

 책은 소개나 추천의 글이 아닌 직접 읽어야만 맛을 말할 수 있다. 읽고 있는 책은 캐슬린 그리섬의 『키친 하우스』다. 나는 이 책이 무척 지루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정말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니까 이 책의 맛은 달콤하다. 책의 맛은 어디서 느낄 수 있는 걸까. 문장, 사건, 구성, 캐릭터 설정, 홍보 문구, 작가의 이력에서도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화영의  『여름의 묘약』은 표지와 제목에서 그 맛이 전해진다. 이 여름과 어울리는 톡 쏘는 청량음료나 시원한 과일 맛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가 하면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무척 매울 것 같다. 내가 만나온 김영하의 소설에서 각인된 맛이라 그렇다. 할인행사를 시작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중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은 쓴맛이 날 것 같다. 늦여름은 마지막 여름이라 할 수 있으니 아쉬워서 쓴맛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가을이 오기 전에 늦여름을 곁에 두고 싶다.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은 어떤 맛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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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클래식 - 우리 시대 지식인 101명이 뽑은 인생을 바꾼 고전
정민 외 36명 지음, 어수웅 엮음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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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다. 모든 고전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일부 맞는 말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끝까지 읽어내는 끈기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고전을 향한 애정이 식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속에 삶에 대한 웅숭깊은 지혜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읽어주고 친절하게 해설까지 해주는 책『파워 클래식』이 반가운 이유다.

 

 책은 101명의 지성인이 한 지면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고전을 추천한 책들 중 37명이 선택한 38권을 엮은 것이다. 고전을 추천한 이들은 소설가 김연수, 영화감독 김대우, 문학평론가 김형중, 한문학자 정민, 사회학자 송호근, 화가 김병종 등 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추천한 책은 인생의 책으로 빠지지 않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 카뮈의 『이방인』과 같이 익숙한 책들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박경리의 『토지』 같은 한국문학과 내게는 다소  생소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까지 다양하다.

 

 37명의 저자들은 저마다 한 권의 책이 흔들리는 삶을 어떻게 붙잡아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들려준다. 좋아하는 저자가 선택한 고전을 먼저 읽거나, 내가 읽는 고전을 저자는 어떻게 읽었는지 비교하며 읽어도 좋겠다. 같은 부분에서 밑줄을 그었다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그들이 모두 학창시절에 고전을 만난 건 아니었다. 책이라는 게 어떤 시점에 읽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다 좋은 느낌으로 남는 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특별한 고전이 존재한다. 시인 김경주가 겨울이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읽고, 청소년기에 『데미안』을 통해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한 심윤경이 엄마가 된 현재 새로운 데미안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은 37명이 지닌 고유한 글을 만나는 즐거움과 해당 고전에 대한 어수웅의 설명이다. 작가의 이력과 작품에 대한 설명이 고전에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아직 읽지 못한 고전에 대한 책은 더더욱.  김형중이 소개한 <당신들의 천국>은 앞 부분을 읽다가 멈춘 책인데, 어수웅의 이런 글이 인상적이다.

 

 ‘1970년대 개발 독재 한국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가 『당신들의 천국』을 읽는 첫 번째 키워드지만, 작가 이청준이 묻는 자유와 권력, 개인과 집단, 자아와 세계, 그리고 사랑과 공동체에 대한 희망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아직 펄펄 끓는 키워드다. 『당신들의 천국』이 지닌 문제의식은 여전히 젊다.’ (184~185쪽, 잃어버린 사유와 성찰의 시간 중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고전을 읽는다는 건 삶이라는 게 되돌이표와 같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욕망으로 쌍둥이처럼 닮은 잔인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 역사의 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인생의 미로 앞에서 우리가 주저앉지 않을 힘을 얻기 위해서.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속 대사처럼.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야 해! 음악이 저렇게 기쁘게 연주되는 걸 들으니, 조금만 있으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왜 고통을 당하는지 알게 될 것 같아. ……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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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브렌델 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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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을 감은 채 음악에 나 자신을 맡길 수도 있고, 아무런 성찰 없이 단순히 음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음악을 체계화할 수도 있고, 음악을 지적인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음악을 심리적으로 형상화할 수도 있고, 음악을 시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10쪽, 들어가는 말 중에서>

 

 우리 삶에 음악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음악은 건조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 음악에 더 가까이 닿고자 직접 연주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 수많은 악기 중에 피아노는 가장 대중적인 악기다. 하지만 피아노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피아노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엔 피아노를 위한 책이자 피아노와 음악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긴 것이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피아노를 들려준다. A의 Akkord(화음)부터 Z의 Zusammenhang(연관성)까지의 키워드로 음악, 피아노 연주 기법, 유명 작곡가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때문에 피아노를 비롯한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반갑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같은 이유로 단순히 피아노 연주를 듣는 일반 독자에게는 음악 전문 용어는 생소하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무척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연주가로서 어떻게 연주를 해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며 전달할 수 있는지 글을 통해 그의 진심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노래하는 인간의 목소리로 변할 수도 있고, 다른 악기들의 음색을 모방할 수도 있으며, 오케스트라가 될 수도 있고, 무지개가 우주의 음향으로 변할 수도 있지요. 이 변화의 가능성, 연금술은 피아노의 풍요로운 재산이랍니다.’ <91~92쪽, 피아노 중에서>

 

 책에서 만나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 쇼팽 등 유명 작곡가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쇼팽은 다른 악기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오직 피아노라는 악기에 헌신했으며, 모차르트의 소나타는 아이들에게는 쉽고 연주자에게는 너무 어렵고, 피아노 연주시 페달을 신경 써서 밟아야 할 작곡가는 슈베르트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연주하는 작품에 대한 사랑은 음악적 형식이나 구조에 매몰되지 말고 그 틀을 뛰어넘어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만 하죠. 색감, 온기, 열정, 감각미가 더해지면 사랑의 대상은 살아있는 존재로 깨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끝에서 탄생한 생명체에 우리 손으로 피를 흘리게 하거나 멍들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죠.’ <107쪽, 사랑 중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것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들을 때 알프레드 브렌델이 소개한 부분을 읽고 듣는다면 분명 전과는 다르게 들릴 터. 작품에 대한 사랑이 연주자의 손끝에서 어떻게 피어나는지 귀를 기울이고 마음으로 들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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