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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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아졌다. 닳은 때까지, 고장이 나서 고치지 못할 때까지 쓰는 물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꼭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다.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결핍을 알지 못한다. 아니, 결핍을 두려워하는 게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이 항상 여유로웠나.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새 것을 사들였던가.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 제법 잘 사는 나라란 말에 흥분하여 거품이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깨우치듯 다리는 무너졌고, 백화점은 붕괴되었다. 황석영은 강낭몽에 이어 낯익은 세상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그 곳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기도 하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곳이다.

 산동네에 살던 딱부리와 엄마가 꽃섬으로 이사를 오며 소설은 시작한다. 그곳에서 아수라 아저씨의 아들 땜통을 만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산동네 보다 나은 삶을 기대했을 것이다. 분명 그랬다. 꽃섬은 쓰레기 집하장이다. 재활용과 분리 수거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던 시절이다.   

 ‘이곳은 분명 사람들이 쓰다 남아서 또는 싫증이 나서 아니면 못쓰게 된 물건들을 버리는 쓰레기장이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서 내몰리고 버려진 인간들이었다.’ p.44

 넘쳐 나는 쓰레기는 사회 문제였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열심히 일을 한 만큼 돈을 모을 수 있고, 하루 세끼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쓰레기로 둘러 쌓인 곳으로 누가 봐도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아니었지만, 꽃섬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찬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자고 일어나도 언제나 고약한 냄새며 먼지와 파리떼에 괴물같은 덤프트럭들이 쏟아내는 온갖 물건들의 추악한 형상에 비하면 무서울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갈퀴 끝에서 어떤 동물의 썩은 몸통이 나와도 발치로 획 밀어내리면 곧 다른 물건에 뒤덮여버리곤 했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건의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그것들은 생선 머리처럼 원래의 모양을 잃고 복잡하고 자잘하게 분해되어 있어서 기계가 처음 만들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괴한 사물로 보였다. 아아,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다.’ p.122 

 아이들은 곰팡이가 피고 버려진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스스로 자랐다. 일을 하러 나간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 했고 제대로 된 학교엔 다니지 않는다. 딱부리는 땜통을 통해 꽃섬 형편을 익혔다. 유기견을 돌보는 할아버지와 빼빼 엄마를 알게 되고 김서방에 식구들을 만나게 된다. 딱부리가 만난 김서방에 식구들은 꽃섬으로 변하기 전의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이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논에서 벼가 익어가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러니까 꽃섬에도 쓰레기 꽃이 아닌 진짜 꽃이 피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해 남아 있는 혼령인 것이다. 

 꽃섬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며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수라 아저씨가 싸움에 휘말려 감옥에 가자 엄마는 땜통을 아들처럼 여겼다. 딱부리는 땜통에게 도시를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꽃섬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목욕을 하고 냄새나는 옷이 아닌 새 옷을 입으니 딱부리와 땜통이 아닌 정호와 영길이가 되었다. 백화점에서 게임기을 사고 햄버거를 사 먹으니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돌아갈 곳은 꽃섬 뿐이다. 김서방네 가족들처럼 말이다.

 외부 사람들은 꽃섬의 존재, 낯익은 세상인, 그곳의 삶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낙후된 전기, 수도, 방역으로 인해 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폭발음이 들리고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었을 때 영길이는 빠져 나오지 못했다. 꽃섬에 남은 땜통은 김서방네 식구들을 만나서 행복할까. 더미 꽃섬을 떠나 딱부리는 꿈꾸던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소설은 급격하게 성장한 우리 경제에 가려져 숨겨진, 가려진 삶을 소년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버려지고 잊혀진 그곳에 존재하는 삶에 대해 말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낯설다 말하고 싶은 그 세상,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 삶은 아닐까. 우리가 모른 척, 부인하며 외면하고 싶은 과거가 현재 우리를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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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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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때때로 함께 절망하며 분노하고 때떄로 함께 웃고 기뻐한다. 그리하여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소설은 그런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설렌다. 작년에 이어 『제 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궁금했던 소설이다. 그러니까 1년을 기다린 거다. 기다림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재개발로 철거 중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 김애란의 <물 속 고리앗>은 마치 이 때를 기다려온 것처럼 적절했다. 모두 떠나 버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중인 어머니와 소년 단둘이 남았다. 철거 중인 아파트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고립되었다.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들의 생사는 불투명하다. 세상은 물로 가득찼고 어머니 마저 죽었다. 혼자 남겨진 소년은 썩은 냄새와 더러운 오물을 헤치며 누군가를 만날 꺼란 희망을 안고 세상을 향해 나간다.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도 같은 맥락으로 읽었다.  미래 어느 날 지구는 종말의 시기에 이른다. 집들은 점점 땅 위로 솟아 오른다. 사람들과 엄마 아빠가 사라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직 소년와 소녀 뿐이다. 그들도 곧 자신이 사라질 꺼라는 걸 알고 있다. 소년과 소녀의 삶은 불안과 초조함의 연속이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소년과 소녀는 성장한다는 걸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다투고 싸우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물 속 골리앗>과 <허공의 아이들>이 존재하는 누군가의 부재가 주는 고통을 그렸다면 이장욱의 <이반 맨슈코프의 춤추는 방>은 영혼의 외로움과 방황을 담았다 볼 수 있다. 러시아란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들은 액자식 소설처럼 펼쳐진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타인의 몸짓과 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감정을 소통할 수 없는 화자가 느끼는 고독은 내면에서 시작된 것이다.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화자에게 어느 날 모든 것이 뒤틀려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담은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원하는 대로 육체를 소유할 수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담은 김이환의 <너의 변신>은 독특하고 흥미로우나 섬뜩하다. 도덕과 윤리,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모습을 떠올린 탓인지도 모른다. 

 5편의 소설이 지닌 상처를 감싸주는 김유진의 <여름>과 정용준의 <떠떠떠, 떠>은 아름답다. 두 소설의 내용이 무조건 아름답다는 건 아니다. <여름>은 테이블을 만드는 남자와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기는 여자의 일상이다. 남자가 만들어 내는 먼지를 참아내지 못하는 여자는 한 공간을 공유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담담하게 절제된 묘사는 서늘하다. 

 <떠떠떠, 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힘은 지닌 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없는 남자와 때때로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는 동물의 탈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간다. 놀이공원에서 사람이 아닌 동물 인형으로 일하는 그들은 서로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사자와 팬더로 분한 그들의 삶을 누군가는 불행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게 삶은 행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사랑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김애란에 대한 믿음은 커졌고 작년에 이어 수상한 이장욱과 김성중의 소설은 휠씬 재미있었다. 권태로운 불편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김사과, 섬뜩하고 기이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유인하는 김이환은 놀라웠다. 어디 그 뿐인가. 점점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김유진과 어떤 색을 가졌을지 궁금한 정용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올 여름은 장마와 태풍이 함께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의 집은 부서졌고 누군가의 삶은 무너졌고 누군가의 삶은 끝이 났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게 내가 아니라는 것에 우선 안도한다. 이처럼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행과 불행 중 어느 쪽에 속할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모두가 행으로 가는 길이라 믿고 살아갈 뿐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줄 누군가의 존재를 믿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 역시 그런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려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 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 밖에 나오니 물속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추운 느낌이었다. 어쩌면 조금 있다 체조를 해야 될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기다려야 했다. 비에 젖에 축축해진 속눈썹을 깜빡이며 달무리 진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p. 46~47 - <물 속 골리앗>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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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전함이 무언가를 잡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손이라면, 공허함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애써보았던 손이다. 더 나아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후회’ 같은 것이다. 휘둘렀던 무수한 손들이, 그 에너지들이, 공허함의 배후에 후광처럼 있다. 애쓴 흔적이 썰물처럼 쏴, 하고  빠져나가면서 무늬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애써 잡아보려고 마음을 크게 먹었던 모든 손아귀에는 공허함이 묻어 있다. 허탕이 되었든, 무언가 잡히긴 했으나 바라던 것은 아니었든, 원하던 걸 잡긴 잡았는데 꼭 쥔 손을 펴보았을 때에 그것이 초라해 보였든, 잡아챈 그것이 원하고 원하던 바로 그것이든, 그 모든 손 안에 공허함은 존재한다. 공허함은 휘둘러보았던 마음의 손, 그 손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매복해 있다. 그런 점 때문에 공허함은 허전함보다는 훨씬 절대적이며, 훨씬 철학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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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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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날로 잔혹한 뉴스를 들려준다.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갓난 아이가 발견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생활고를 위해 몸을 파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사는 사회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는 일들이다.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삶,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소설 『환영』의 윤영도 마찬가지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너무 큰 소망이었을까. 모두 윤영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하는 남편, 며느리 대접을 해주지 않는 시댁,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던 아버지, 윤영에게 모든 걸 떠맡기고 남자를 택한 친정 엄마, 노름에 빠진 동생까지 말이다.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p 58~59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당장 아이를 키워야 했고, 공부하는 남편에게 부담을 줄 수 없었다. 그런 남편과 아이가 그때는 희망이었다. ‘왕백숙’으로의 출근은 그렇게 시작했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멀리 시 외곽의 한적한 곳까지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안채와 별채는 다른 세상이었다. 닭백숙이 아닌 욕망을 파는 곳이었다.  별채는 음식을 나르고 벌 수 없는 돈이 주어졌다. 악을 쓰며 돈을 해대라는 동생의 입을 막을 수 있고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돈이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아이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녹슨 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를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분했다. 어린것에게 어미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떨어져 지내니 그런 생각은 들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가볼 생각을 못 했다. 나도 아이가 두려웠다. 아이가 나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었다.’ p.124~ 125p    

 윤영에게 삶은 진흙탕을 건너는 일이었다. 온 몸에 진흙을 묻혀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겨우 빠져 나왔다 싶어 마지막 발을 꺼내려 몸부림쳐도 발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단 하루도 마른 땅을 밟을 수 없는 깊은 수렁들. 언제 끝이 날까, 다른 길은 없을까, 아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는 걷지 못했고 일자리를 얻어 나간 남편은 사고를 당했다. 윤영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한데,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엄마였기 때문일까.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p. 193

 소설의 마지막 문장, 다시 왕백숙집 여자로 출근하는 윤영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비장한 이 말이 비참하게 다가온다. 누가 세상이 살만하다 말하였나. 누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뜻 그녀를 응원하기도 겁나는 게 사실이다. 윤영에게 삶은 환영(幻影)을 보는 일은 아니었을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은 것 말이다. 환영(幻影)이 사라지고 손에 잡히는 삶을 그녀가 살아갈 날이 올까. 온다면 언제일까. 

 작가 김이설은 『나쁜 피』,『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이어 『환영』에서 더 냉정하고 잔혹해졌다. 간결하고 강한 문장으로 사실적이고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더 깊이 파헤쳐 그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해서 읽는 이는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누군가는 왜 이리 잔인하고 혹독하냐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등단작 <열세 살>, <엄마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주목하는 삶은 변두리 이하의 삶이며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삶이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도록 신이 만든 존재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피하고 싶은 삶이 누군가의 삶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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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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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5: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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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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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0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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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눈
구경미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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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에도 분명, 지리한 장마가 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얼마나 더울지, 얼마나 많은 밤을 열대야와 싸워야 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여름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받아들이기 편할지 모르겠다. 한 번쯤 새하얀 눈이 가득한 여름을 상상한다면 더위가 사라지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눈이 내리는 듯하다. 주목받는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구경미, 김유진, 김이은, 김현영, 박주영, 서유미, 조해진) 눈을 테마로 쓴 소설집 『사랑해, 눈』을 읽는 것도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고 즐겁게 지내는 방법은 아닐까. 
 
 새해 첫 출근길, 폭설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립될까 두려운 한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한 담은 서유미의 <스노우맨>과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눈이 보고 싶다며 자식들을 대동해 눈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구경미의 <첩첩>은 평범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눈 때문에 여행을 떠나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든 이들에게 눈은 소중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반면 눈 덮인 세상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눈은 거대한 세상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뚫고 나가야 할 삶 말이다.   

 ‘팔을 움직이면서 흘린 땀 때문에 셔츠가, 허리까지 쌓인 눈 때문에 구두와 바지, 속옷이 다 젖었다. 남자의 삽은 점점 느려졌고 눈이 쌓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삽을 쥐었던 손바닥엔 어느새 물집이 잡혔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파고 온 길이 삐뚤빼뚤 꼬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앞아 아니라 옆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저분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삽으로 퍼낸 눈 뭉치들이 원래의 자리로 굴러떨어졌다.’  p.25 - 스노우 맨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떠나 30년 만에 유골 상자로 만나는 엄마와 눈처럼 녹아 없어질 걸 알면서 시작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조해진의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은 쌓였다 하더라도 금세 녹아 사라지는 눈을 떠올렸다. 소복하게 쌓인 아름다움이 금세 걱정으로 변하는 눈처럼 아픈 딸을 혼자 키우는 직장 선배를 향해 시작된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 시간은 눈이 녹기 전까지 짧았다. 엄마의 인생과 딸의 사랑은 나약하고 슬픈 눈 같았다. 

 제목에 담긴 것들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김이은의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과 박주영의 <소설 小說 小雪>은 신선한 재미가 가득했다. 첫눈에 담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김현영의 <눈의 물>은 몽환적이며, 무료하듯 반복되는 일상을 섬세하고 잔잔하게 묘사한 김유진의 <눈 위의 발자국>은 한 폭의 부드러운 풍경화을 보는 듯하다. 

 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기어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인 비와 다르게 대기 중의 수중기가 찬 기운을 만난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다.  얼어야만 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사람들에게 사계절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비보다 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많은 이가 첫 눈을 기다리지만 첫 비를 기다리는 이는 없으니 말이다.  눈이라는 테마는 같았지만 각 단편들은 작가의 개성을 보여주듯 다양했다. 일곱가지 눈 이야기는 모두 흥미로웠다.  

 어떤 소설은 마치 동화 『눈의 여왕』에 초대된 느낌이었고, 어떤 소설은 이게 눈인가 싶을 정도로 진눈깨비 같았고, 어떤 소설은 눈이 내려 쌓여가는 과정을 담은 듯 느껴졌다. 눈이 가진 아름다움, 눈이 가진 폭력성, 눈이 가진 여러 성질과 느낌들을 잘 살려낸 소설들이다. 

 ‘올해의 첫눈이 오늘, 내렸으니까. 몇 년째 애인인지 이제는 헤아리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오늘 너의 그녀는 오늘 너의 사랑. 그러니 첫눈은 당연히 그녀의 것이지. 그녀와 너의 것이지. 7년 전의 그 봄날. 봄이었는데, 화사한 봄날이어야 마땅한데, 때아닌 폭설이 쏟아졌어. 지금까지도 거기 갇혀 잇는 내게 첫눈이란, 그래, 네 말대로야. 물에 물 타기, 눈 위에 눈. 그래봤자  눈. 겨우, 고작, 눈.’ p.182 - 눈의 물 

 누군가는 벌써부터 첫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봉숭아 물을 곱게 들인 손톱을 깍지 못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눈이 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할 것이다. 결국은 ‘물에 물 타기, 눈 위에 눈. 그래봤자  눈. 겨우, 고작, 눈’ 인데 말이다.  나 역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한 여름에 내리는 사랑스런 눈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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