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작약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배송 중이니 아마도 오늘 중으로 작약을 만날 것이다. 작약 보다 먼저 도착한 책이다. 연두와 초록, 봄기운을 가득 담았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기다렸을 한강 작가의 에세이 『빛과 실』, 1쇄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1쇄가 아니라서 서운하지 않다. 얇고 작은 책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 주문한 책들은 모두 그러하다. 표지에 반해서 냉큼 주문한 박세미의 『식물 스케일』은 제일 작고 얇다. 아, 『소설 보다 : 봄 2025』도 표지가 한몫했다. 성해나의 단편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표지에 딸기가 없었더라면 조금 주저했을 것이다. 책을 사는 이유도 다양하다. 아무튼 세 권의 책은 모두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책의 첫 문장을 옮겨본다. 에세이의 경우, 짧은 글 가운데 첫 문장은 작가가 책을 통해 처음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일까 싶다가 아무래도 편집자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박세미의 책에는 ‘들어가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 부분을 처음이라 여기고 싶지 않다. 소설은 정말 처음 말하고 싶은 문장이겠다. 그냥 내 짐작이다. 『소설 보다 : 봄 2025』의 첫 문장은 성해나의 단편 「스무드」 의 첫 문장이다.

발 없는 식물이 인간의 손에 들려 집 안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 『식물 스케일』)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 『빛과 실』

제프의 방한은 이번이 세 번 째였고 나는 처음이었다. (「스무드」)


각기 다른 작가의 문장을 하나로 이어 읽거나 순서를 바꾸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문장들이 이어가는 재미, 독서모임을 한다면 이렇게 읽어봐도 좋겠다. 책 하나로 뭐든 할 수 있으니 참 좋구나.


세 권의 책이 단짝친구 같다. 책이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잘 지냈어? 환한 봄이야!

책과 함께 작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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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4-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한테 ‘손’이나 ‘발’이 없다고 여기는 말은 어쩐지 안 맞지 싶습니다. 풀꽃나무가 사람을 보면, “어머 쟤들은 어떻게 뿌리도 잎도 줄기도 가지도 없어? 저러고 어찌 살아?”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정작 풀꽃나무는 사람한테 뿌리나 잎이 없어도 걱정하거나 따지지 않으니까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으려면 늘 들숲메바다를 품을 노릇인데, 우리가 시골을 등지고 서울에 뿌리를 내리면서, 들숲메바다를 통째로 잊어버린 뒤에, 조금이라도 푸른빛이 그리워서, 숨통을 틔우고 싶은 사람이 처음으로 “서울(도시) 겹집(아파트)에서 집에 꽃그릇(화분)을 들였지 싶”습니다. 1970∼80년대까지도 ‘도시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마당에 풀꽃나무를 두었을 뿐인데, 풀꽃나무를 더 두고 싶으나 자리가 모자란 탓에 그제서야 꽃그릇도 마련해서 곳곳에 더 놓기도 했고요.

자목련 2025-05-02 10:29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각자의 손과 발이 존재하겠지 싶어요. 어린 시절 마당이 있었을 때에는 몰랐는데 아파트에 살면서 저도 화분을 들입니다. 잘 키우지 못해서 미안하지만요.
푸르른 5월 건강하게 지내세요!

망고 2025-04-3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딸기 표지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우리집 화분에 심은 딸기가 지금 저렇게 주렁주렁 열렸거든요😄

자목련 2025-05-02 10:30   좋아요 0 | URL
주렁주렁 딸기, 하나 따서 먹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4-30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짝친구인 책인데 요즘 조금 멀어진 느낌입니다. 폭삭 속았수다 보려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바람에요 ㅠㅠ
작약의 계절이 왔군요.
덩달아 자목련님께서도 작약같으십니다^^

자목련 2025-05-02 10:31   좋아요 1 | URL
저도 얼마 전 밤 늦게까지 폭삭 속았수다~~
벌써부터 작약의 계절이 짧아지는 게 아쉬워요!
작약이라 부러주세요 ㅎㅎ

서곡 2025-04-3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자목련님 저는 이번 4월에 작약꽃을 선물받았어요 네 송이요 너무 예쁘네요 시들어서 꽃송이만 떼어놓았습니다 어서 작약이 도착하길 저도 바래봅니다

자목련 2025-05-02 10:32   좋아요 0 | URL
꽃송이만 떼오놓는 마음, 저도 알 것 같아요^^
도착한 작약으로 행복한 날들입니다~~

책읽는나무 2025-05-0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해의 작약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됩니다.^^

자목련 2025-05-02 10:33   좋아요 1 | URL
해마다 비슷한 작약이지만 언제나 처음처럼 반갑고 좋아요^^

젤소민아 2025-05-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있는데, 식물스케치는 없어요~~사러 가야쥐~~감사합니다~~

자목련 2025-05-09 09:41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 님과 같은 책을 곁에 두었네요^^
 


글을 쓴다. 빈 공간이 채워진다. 잡념으로 채워졌던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그래서 쓰는 일은 좋고 제법 괜찮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빈 자리』 를 읽으면서 텅 빈 공간을 떠올렸다. 잠시 자리를 비운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영영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의 부재를 채우려고 쓰는 마음. 어쩌면 그건 보뱅을 글을 빌미로 쓰고 싶은 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책 날개를 펼치고 마주하는 첫 문장(“살아갈 길이 없기에 우리는 글을 쓴다.”)에 울컥하고 말았으니까.


그러니까 이 글은 보뱅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어떤 시선, 그가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서 느끼려는 온기, 사라진 이의 흔적을 찾으려는 마음, 설명할 수 없는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읽고 쓰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보뱅의 글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감탄하고 아름다워서 슬프다. 아름다워서 헤매고 아름다워서 아프다. 그가 당신이라 부르는 이는 유일한 존재이거나 무한의 존재다. 그런 존재의 부재를 인식하고 애도하는, 상실의 모든 감정을 맑고 맑은 글로 써 내려가는 보뱅. 그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나의 당신을 기억한다.


무심하게 흐르는 하루, 닿을 수 없는 당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차분하게 부드럽게 하나의 문장으로 매만지는 보뱅. 보뱅의 글은 읽을 때마다 같은 통점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녀가 너무 궁금해서 정체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의 소설 『마지막 욕망』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하나가 되기 위해 죽음을 택한 여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뱅이 사랑한 연인인가 짐작한다. 이내 포기한다.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 보뱅의 글은 그렇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글이자 모두를 위한 글이니까. 모두를 만하게 만드는 능력. 그러니 그의 부재는 그가 남긴 글로 채워진다.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마음과 멀어지려고, 그 슬픔과 떨어지려고 모니터를 켜고 자판에 손을 얹고 아무 말이 쓰려 했지만 결국 내가 쓰고 있던 건 내 마음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육체와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던 건 괴로움 마음이었다. 그제야 인정하니 오히려 쉬웠다. 왜 괴로운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보였다. 그랬다. 나도 살아갈 길이 없기에 글을 쓴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 글을 읽을 때 부끄러운 마음도 크지만 그때보다 괜찮은 나를 마주할 수 있어 반가움 마음도 크다. 상실과 부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발견했다는 사실. 붙잡을 수 있었던 단 하나, 읽고 쓰는 일이 있었다는 큰 위안. 그것은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읽으며, 당신이 읽는 것은 곧 당신 자신이다.” (27쪽)란 보뱅의 문장과 맞닿아 포개질 수 있어 나는 보뱅의 글을 더 사랑할 수밖에. 나의 보잘것없는 글을 사랑할 용기가 자랄 수밖에.

그런 용기는 나를 둘러싼 주변을 살피는 마음으로 변한다. 나의 존재와 내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게 되는 불변의 진리.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을 내일 같은 시간에 마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 그리하여 정말 신비로운 비밀로 가득한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결국 침묵으로 돌아가고, 붙잡은 것은 결국 손을 떠난다. 한 줌 속 맑은 물을 어찌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 역시 통제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벗어나 우리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만을 소유할 뿐이다. 꿈속의 나무 한 그루, 침묵 속의 한 얼굴, 하늘의 빛 한 줄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분노에 휩싸이는 날이나 정리하는 시간에 버리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68쪽)


보뱅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없는 고요가 샘솟는다. 활기차고 아름다운 소란 속에서 솟구치는 고요라고 할까. 다정하게 응시하는 눈빛,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나를 감싸앉는 기분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쓴다. 당신에게 보뱅과의 만남을 주선하고자. 내가 받은 회복의 느낌을 전하고 싶어서.


시간은 일 속에서, 휴가 속에서, 어떤 이야기 속에서 소모된다. 시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속에서 소모된다. 그러나 어쩌면 글쓰기는 다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시간을 잃는 것과 매우 가까운 일이지만, 또한 시간을 온전히 들이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남아서 눅눅해진 시간을 조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 순간은 감미로워지고 모든 문장은 축제의 밤이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영혼은 길 위에 흩어진다. 길을 잃어 헤매기도, 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다 단 하나의 단어가, 단 한 차례의 숨결이 흩어진 영혼을 다시 모은다. 왕의 만찬처럼 풍요로운 말, 맛의 정수를 담은 사랑의 글자. (112쪽)


『빈 자리』 를 읽으면서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이 계속 생각났다. 보뱅에게 부재의 대상은 특정 지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글을 시작하는 캐스린 슐츠의 책은 다르지만 비슷한 결을 지녔다. 우리 삶에서 잃어버리는 것들,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닌 부재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삶을 지탱하는 한 방식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인 글쓰기가 얼마다 훌륭한지 알게 된다. 상실과 부재 속에서 멈춘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는 사랑 속으로 나가야 한다고.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과 동시에 새롭게 발견하는 사랑.


우리는 삶의 모든 단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상실하지만, 그 비율은 시간에 따라 고르게 나타나지 않고, 상실은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빈번하게, 더욱 파괴적인 내밀함으로 충격을 가한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직면하는 어려움의 유형이 달라진다. 사랑이 우리에게 처음 제기하는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다. 한데 사랑이 꾸준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삶이 꾸준하게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는 결국그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다루며 살 것인가이다. (『상실과 발견』, 290~291쪽)


『빈 자리』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살아갈 길이 없기에 우리는 글을 쓰고 읽는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무거운 감정이 조금은 사라진다. 슬픔과 상실의 본질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막막했던 마음에 틈이 생긴다. 새롭게 생긴 틈을 채울 그것이 무엇이라도 괜찮다. 글쓰기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상실과 부재, 그리고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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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레이첼 웰스 지음, 장현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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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이별은 힘들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반려동물을 잃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니까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의 슬픔과 절망 말이다. 방송을 통해 주인을 구하는 개나 죽은 어미 곁을 지키는 새끼 강아지 사연을 본 기억은 있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이 이어진 적이 없다. 레이첼 웰스의 소설 『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속 알피를 만나면서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주인공 ‘알피’는 가족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주인 마거릿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기 때문이다. 마거릿의 딸과 사위는 알피를 보호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알피는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집 밖을 나선 순간 알피는 길고양이로 전략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알피는 공격하는 고양이들, 내쫓는 인간이 많았다. 아, 알피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알피는 굴하지 않는다. 알피에게 ‘마당냥이’라는 걸 알려준 단추가 있고 맘에 드는 에드거 로드를 만났으니까. 이제 알피는 가족이 될 만한 인간만 찾으면 된다.


알피는 이삿짐을 내리는 집을 발견했고 슬그머니 그 집으로 들어갔고 클레어를 만났다. 클레어는 알피를 발견하고 안아주며 길을 잃을 고양이라 여기고 먹을 것도 챙겨줬다. 목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알피라고 불러주고 주인을 찾아주려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알피는 클레어와 살기로 결정했다. ‘무릎냥이’로 마거릿과 살 때와는 달랐기에 다른 가족을 더 찾아야 했다. 클레어가 출근하면 혼자 있어야 하니까. 그런 알피 앞에 등장한 후보는 조너선이란 남자. 클레어 집에서도 가깝다. 조너선 혼자 살기에는 무척 넓은 집이다. 알피를 발견한 조너선은 불평을 하지만 내던지지 않았으니 합격이다. 클레어와 마찬가지로 목의 이름표를 보고 전화도 걸었다. 알피는 고마운 마음에 쥐를 잡아 조너선의 현관 매트 위에 올려놨다.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며 두 사람을 관찰한다. 클레어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런던으로 이사를 왔다. 클레어는 혼자라는 사실에 슬퍼했고 우울해했고 싱가포르에 살던 조너선은 해고를 당하고 그 때문에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이곳으로 왔다. 둘의 사정을 알게 된 알피는 클레어의 슬픔과 조너선의 외로움에 공감한다. 다리에 털을 비비거나, 애교 있는 눈망울과 울음소리를 내거나 맛있게 밥을 먹는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자신만의 가족을 찾아 나선 알피의 여정과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이 있다. 매일 씻는 인간을 재미있다고 여기는 알피. 알피는 인간으로 치면 자존감이 높은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가족이 더 필요했다.


인간들은 재미있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침 안의 성분으로 그루밍하는 고양이와 달리 씻는 행위를 하고, 그런 다음 수건이나 옷으로 몸을 감싸는 게 말이다. 고양이로 사는 게 훨씬 더 쉬웠다. 우리는 항상 몸에 털을 두르고 있고, 원할 때면 언제나 씻을 수 있으니까. 정확히는 털을 깨끗이 닦는 동시에 빗질까지 할 수 있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더 잘 설계돼 있는 생물이다. (145쪽)





에드거 로드에서 새로운 두 가족을 발견한다.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보다는 훨씬 좁은 두 집, 아이가 있다. 둘 다 남편의 직장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아기와 적응하기 힘든 폴리는 알피가 아기를 헤칠까 걱정이 많고 폴란드에서 이사 온 프란체스카는 영어와 이웃의 편견 때문에 힘들다. 그러니 이 두 가정에도 알피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가정들은 서로 다른 형태의 공통점이 있었다. 클레어네도, 조너선네도, 폴리네도, 이곳도 각자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그들에게 끌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는 내 사랑과 다정함이 필요했고, 내 지지와 애정이 필요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175쪽)


아, 알피는 이제 네 집을 오가며 지내야 했다.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에서는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프란체스카의 아이와 놀아줘야 하고 불안한 폴리를 들여다봐야 하니까. 어디 그뿐인가. 클레어의 남자친구 조와 조너선의 여자친구 필리파도 주시해야 했다. 조는 형편없는 남자였고 필리파는 이기적이었다. 배려를 모르고 무엇보다 둘은 알피를 싫어했고 학대하기까지 했다.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을 이어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꼭 실행해야만 했다. 미리 알려주자면 알피의 계획은 성공했다는 것.


네 가족을 만든 알피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가만히 곁을 지킨다. 불평과 불만을 알피에게 털어놓던 조너선은 알피와 있을 때 편안했고 사랑받기 원했던 클레어는 알피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알피가 바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모두 알피의 가족이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도, 고양이도 완벽히 상처로부터 치유될 수는 없다. 그저 이해하게 되는 것뿐이다. 한편으로 회복 중이더라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상처 입은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격의 일부가 되고, 결국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회복은 그렇게 진행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까. (185쪽)


세상에 혼자 남았던 알피가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따뜻하고 보드랍다. 유쾌하고 유머가 넘친다. 거기다 감동적이다. 알피는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 속에 있던 알피가 책 밖으로 나와 내 다리를 감싸는 것만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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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트리플 31
장아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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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귀신을 봤다거나 반려동물이 말을 걸었다거나.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 헛것을 봤거나 들었다고 말할 게 뻔하다. 그뿐인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된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꺼내는 순간은 쉬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오긴 올 것이다. 장아미의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속 이야기처럼.


장아미가 들려주는 세 편의 이야기는 기이하면서도 슬프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시대가 변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무너지고 붕괴되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표제작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1년에 한 번 음력 7월 보름인 백중(百中)에 은비는 죽은 친구 재희를 만난다. 그러니까 귀신이 된 친구를 본다는 거다.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소설처럼 1년에 단 한 번 죽은 이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날의 일들이 나를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재희는 은비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은빛 방울 키 링을 건네고 사라진다. 그건 은비가 재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은비는 산모퉁이에서 새어 나온 불빛을 보고 걷다가 마주한 금줄을 넘는다. 한밤중에 펼쳐지는 야시장, 그곳에서 은비는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그림 속에 갇히고 만다. 은비를 노리는 건 인간이 아닌 귀신이니까. 어디선가 나타난 재희는 은비에게 고양이라고 말하고 은비는 정말 고양이가 된다. 위험에서 빠져나온 둘은 은비의 집 앞에서 헤어진다.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그 둘을 연결해 주는 존재가 누구일까. 제목에서 짐작했듯 은비가 기르는 고양이 ‘포’다. 원래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재희가 기르던 고양이였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존재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건 아닐까.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에서 죽은 이를 보는 고양이처럼 「능금」에서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를 보는 이가 등장한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능금’이다. 그녀 앞에 부상을 당한 남자 ‘해수’가 등장한다. 처음 보는 해수가 낯설지 않은 능금은 그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둘은 함께 지내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해수의 몸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한다. 해수는 타인을 해하려는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를 사냥하려 한다. 누가 봐도 해수는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할 거라고 생각하죠. 아뇨, 신은 울어요. 짖고 포효해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죠. 신이 제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게 좋겠지만, 모두 경악하며 달아날 거예요.” (「능금」, 101쪽)

해수가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 아버지가 절대 팔지 말라던 산의 신령일까. 아니면 인간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하는 자연일까. 과연 해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금 같은 이들은 존재할까. 문득 괴물 같았던 지난달의 산불이 떠오른다. 마구잡이로 산을 깎고 파헤치는 인간의 욕망.


장아미가 그리고 싶은 건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죽음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그런 세계. 설령 그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용기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삵, 직녀, 파도 같은 영적인 존재가 인간으로 변해 만나는 「산중호걸」이 그렇듯 말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고 바라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그래, 여기는 현실이 아니니까.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세계니까. 그래서 우리가 닿아있을 수 있나 봐.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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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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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하나로 연결된다.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이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의 다른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설사 읽었다 하더라도 기억에 남지 않았으니 읽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첫 느낌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짧은 글은 벤야민의 가장 근본적이고 내면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책은 꿈과 몽상, 여행과 이동, 놀이와 교육론으로 3부로 나눠져있다. 『고독의 이야기들』의 표지부터 본문에서 만나는 벤야민이 사랑한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은 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많은 이야기가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어진다.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벤야민의 내면을 채운 모든 걸 꺼내어 풀어놓은 것 같다. 상상 속 미지의 공간으로 걸어가는 기분, 조울증에 걸려 불안과 동행하는 삶의 이미지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꿈속에서 깨어나 꿈을 기억하려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 쓰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벤야민 자신일 수도 있고 그가 마주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독신남이 등장하는 「두 번째 자아」에서는 그 남자를 따라 독자도 낯선 가게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묘한 상대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이야기 제목인 두 번째 자아인 것이다. 두 번째 자아는 독신남에게(그러니까 첫 번째 자아)를 비난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은 새해를 맞이 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후회하는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때 저 길로 가고 싶었는데

그때 저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때 저 사람을 구해주고 싶었는데

(…)

그때 저 책을 읽고 싶었는데

그때 저 기회를 잡고 싶었는데 (「두 번째 자아」, 43~44쪽)





신기하게도 문예학자이자 비평가인 벤야민도 방황과 갈등, 고민을 반복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게 큰 위로로 다가온다. 그가 자란 곳에 있었다는 꿈 이야기로 시작하는 「또 한 번」과 익숙한 공간을 묘사하는 「달」은 무의식의 흐름이 어디로 그를 존재와 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끌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의 짐작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SF 영화의 한 장처럼 한순간 해체되는 존재의 무기력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이런 문장을 오래 읽었다.


하늘에 떠 있던 보름달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지구를 산산조각 냈다. 거리에서 올려다보이는 철제 발코니에 앉아 있던 우리 앞에서 발코니 난간이 산산이 부서졌고, 우리의 몸도 순식간에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들이닥친 달은 깔때기가 되어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빨아들였다. 그 무엇도 원래 모습대로 빠져나가기를 바랄 수 없었다. “지금은 고통이 있으니 신은 없다”라고 선언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 89쪽)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 그것은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벤야민의 글쓰기와 같은 맥락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 그것은 여행이며 삶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그런 것처럼. 여행을 통해 경계를 넘어가고 다른 이를 만나는 것. 그러 면에서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선인장 울타리」에 등장하는 ‘오브라이언’은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별난 사람이다. 화자인 나와 함께 그물을 걷기 위해 바다에 나와 그물의 매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감동적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찾아야 할 인생의 답 같다고 할까.


“이 매듭을 단 번에 짓는 사람은 꽤 잘 살아온 사람이고, 자신을 좀 쉬게 해줘도 괜찮아요. 은퇴하다,라는 말뜻 그대로요. 매듭 집기는 요가 기술 같은 거라서요, 어쩌면 세상 모든 이완 방법을 통틀러 이렇게 효과가 뛰어난 방법도 없을걸요. 배우는 방법은 연습 또 연습뿐입니다. 연습은 배를 탓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집에 있을 때도 합니다. 완벽한 평정 상태에서도 하고 기울어도 하고 비가 와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근심 걱정이 있을 해 하지요. 이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201쪽)


‘오브라이언’이 벤야민일 수도 있고 화자가 벤야민 일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벤야민을 모르고 그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책이 특별한 책이라는 걸 안다. 어렵고 잘 모르겠고 읽는 시늉만 했지만 말이다. 생전에 발표하지 않은 이야기,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을 이야기를 만난 것이니까. 그건 비밀을 알려주는 것과 같고 친구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하여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은 모두를 친구로 만들고 혼자가 아닌 함께 여행을 떠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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