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소련 붕괴 후 유럽의 파시즘에 대한 분석은 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2000년대 초반의 분석으로는 극우 정당이 주류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환경의 지도가 많이 달라졌다.
주류가 분명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미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한 부분이다.

각국 정부와 주류 정당들은 1970년 이후 서유럽이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들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식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전후 호황기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이제는오히려 위험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정부대로 강력한 경쟁주의적 압력을 가하는 유럽과세계의 떠오르는 시장에서 혼자만 떨어져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었던국가가 이제는 평범한 유럽 시민들의 손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을만큼 거대한 유럽연합(EU)이나 세계 시장에 떠밀려 그 권위를 일부상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복지 프로그램은 이제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신규 고용시 주어야 할 혜택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세입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복지국가가 외국인들까지 돌보아주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었다. - P409

1945년 이래 서유럽에서 ‘파시즘의 유산‘이 존재한것은 사실이며, 1980년 이래 정상화되었으나 여전히 인종주의적성향을 띤 새로운 세대의 극우 정당들이 지방과 중앙 정부에 소수정당으로 참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후 유럽의 상황이 너무나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고전적 파시즘을 직접 계승한 극우 정당들이 크게 세력을 떨칠 여지는 크지 않다. - P423

소련을 계승한 동유럽 국가에서는 1989년 이래 어디서나 극우운동이 출현하였으나,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세력이 미약했다. 그러나 우격다짐으로 도입한 민주주의의 부작용과 경제적 압박은 계속되는 영토 분쟁이나 소수민족의 불만과 더불어 극우 세력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당장은 유럽연합(EU)에 합류하려는 열망 때문에, 대부분의 동유럽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불완 - P425

전한 상태로나마 필수적 전제로 받아들인다. 대안으로 내세우는 순수 민족주의는 그 끔찍함은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선명하게입증된 바 있다. 주변부의 소수 세력에게 호응을 얻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 P426

라틴 아메리카 독재 정권들을 파시즘이라는 시각에서 평가하는것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헛된 꼬리표를 다는 정도에 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가 작업을 통해 고전적 파시즘의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질 수도 있다. 비교를 제대로 하려 다양한 차원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유사점으로는 독재의 메커니즘, 선전과 이미지 조작의 기술, 조합주의경제 조직 같은 특정 정책을 자주 차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정치적 배경 그리고 이 정권들이 사회와맺고 있던 관계의 성격을 살펴보면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외과용 메스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라틴 아메리카는 그 메스로 수술하는 대상이 유럽의 경우와는 달랐다. - P441

일본 정부는 파시즘을 취사선택해 받아들인 셈이었다.
국가 행동에 의한 ‘선택적 혁명‘을 통해 조합주의적 경제 조직과대중 통제의 수단을 일부 취하는 한편, (모방한 것이기는 하지만)명백하게 파시즘 운동의 성격을 띤 무질서한 대중 행동주의는 억압했던 것이다. - P446

알 카에다나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파시즘이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에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는 이들이 제 기능을못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위계 사회에서 일어난 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단결은 에밀 뒤르켐 식으로 표현하자면 기계적이라기보다 유기적이다. 게다가 이들은 ‘자유주의 제도를 포기‘ 하지도 않았다. 애초부터 자유주의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456

파시즘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셔츠 색깔을 보거나 20세기 초반 체제적인 국가주의적 생디칼리스트들이 내세운 구호의 메아리를 찾아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파시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선전 구호와 증오 범죄처럼 잘 알려진 경고 표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않다. 파시즘의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위기에 직면한 정치적 교착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경고 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다. 이때는 위협을 느낀 보수 세력이 적법 절차와 법의 지 - P458

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 헤매며, 국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들을 빌리기 시작하고파시스트들의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파시즘 추종 세력을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것이다.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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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당과 국가의 갈등을 매우 흥미롭게 묘사한 한 가지 사례는 망명 학자인 에른스트 프랭켈(Ernst Fraenkel,
1898~1975)이 나치 독일을 ‘이중 국가(dual state)‘라고 표현한 :이었다. 프랭켈은 히틀러 정권 때에는 합법적으로 구성된 정부 당국과 기존의 관료조직으로 구성된 ‘표준 국가(normative state)‘가
‘당의 ‘동형 기구‘로 만들어진 ‘특권 국가(prerogative state)‘와 권력 - P277

11)다툼을 벌였다고 썼다.
프랭켈의 나치 통치 분석 모델에 따르면, 파시즘 정권의 ‘표준적‘ 영역은 계속해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법을 집행했으며 관리의임명이나 승진 기준도 능력과 근속년수라는 관료주의적 기준을 따랐다. 반면, ‘특권적‘ 영역에서는 지배자의 변덕이나 당 활동가들에 대한 보상 혹은 ‘선택된 민족(Volk, razza)‘에게 예정되어 있다고가정된 ‘운명‘ 외에는 특별한 규칙이 없었다. ‘표준 국가‘와 ‘특권국가‘는 갈등을 빚으면서도 어느 정도 손발이 맞는 협력 속에서 공존하였으며, 그 결과 정권은 관료주의적 형식주의와 독단적인 폭력이 혼합된 기묘한 형태를 띠었다. - P278

파시즘 정권 안에서 끝없이 계속된 권력 투쟁에서, 당이 초기에 - P283

세력을 키우느라 만들었던 동형 조직들은 복합적이면서도 모호한역할을 했다. 이 조직들은 전면 공격 대신 측면에서 보수파의 허를찌르려고 했던 파시즘 지도자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동형 조직들은 야심만만한 당 급진파들이 지도자의자리에 도전하는 데 필요한 자율적 권력 기반이 되기도 했다. - P284

‘홀로 통치하는 전능한 지도자‘ 라는 극단적 의도주의 시각과, 아래로부터의 추진력이 역동적 파시즘의 주요 동력이라고 보는 극단적 구조주의 시각 중 어느 쪽도 완전히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에 신빙성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 두 시각을 포괄하는 설명이확립된 뒤에야 비로소 지도자의 은밀한 소망을 미리 예측해서 그소망을 향해 ‘내달리는‘ 중간층 지도부 내부의 경쟁이 합당한 위치를 부여받은 동시에, 목표를 설정하거나 한계를 제거하고 열성적인측근들에게 상을 주는 지도자의 역할이 불가결한 요소로 인정받게되었다. - P292

나치 의학이 희생자에게 끔찍한 고통을 야기하기는 했으나 단순한 잔학성의 발로로만보기는 어렵다. 나치 의학은 광범위한 기초 공공보건 연구를 출범시켰다. 예를 들어, 독일 과학자들은 세계 최초로 담배와 석면의 발가능성을 의심했다. ‘인종‘ 개선은 또한 대가족 장려를 뜻했고, 파시즘 정권들은 출산 장려 정책을 펴기 위해 특히 인구통계학발달을 뒷받침했다. … 나치 행정관들은 슬라브인의 마구잡이식 유대인 학살과는 달리 자기들이 이 문제를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처리한다고 자랑스러워했으며, 의사 - P305

나 공공보건 담당 관리들에게 다양한 권한을 부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의학적 살인‘ 에 가담했다. - P306

인기 아니면 공포라는 이분법은 지나치게 경직된 측면이 있다.
나치즘조차도 야만적인 폭력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연구의 한 가지 특기할 만한 발견은 나치 정권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필요한 경찰 기구의 규모가 매우 작았다는 사실이었다. 열성적인- 혹은 시기심 많은시민들로부터 들어오는 고발이 워낙 철저했기 때문에 게슈타포 조직은 시민 10,000~15,000명당 경찰을 한 명만 배치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전후(戰後)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국가공안부 슈타지(STASI)에 비해 배치 비율이 훨씬낮은 셈이었다. - P309

원자화를 나치의 성공 필수요건 중 하나로 파악했다는 점에서아렌트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아렌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은 역사적 관점에서 저술되기는 했으나, 기원과 역사를 논한다기보다는 극단적인 급진화에•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책으로 보아야 한다. 사회의 파편화 및 원자화가 파시즘이 뿌리를 내리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는 미흡할지 몰라도, 통치의 파편화 및 원자화는 파시즘의 마지막 단계인 급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 P358

1939년 9월에서 1944년 말 사이 폴란드와 소련 내 나치점령 지역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유대인 처리가 거의 전적으로 나치행정관들의 개인적 재량에 달려 있었으며 지역적 편차도 어마어마하게 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치안 문제, 물자 부족, 토지 부족,
•만연하는 질병 등 상상도 못할 만큼 심각한 문제들을 알아서 해결 - P363

해야 할 처지가 된 그들은 현지에서 온갖 종류의 해결책을 실험해보았다. 게토(ghetto, 유대인 강제 거주 지구)를 만들어 수용하거나강제노동을 시키기도 하고 재정주 정책을 사용해보기도 했다.) 새로 장악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폴란드 동부에서 일부 나치 행정관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유대인 남성들을죽이는 선을 넘어,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유대인 인구 집단 전체를학살하기 시작했다. 1941년 8~9월경부터 시작된 학살은 현지 행정관들의 자체 결정에 따른 처사였음이 분명하다(물론 베를린 중앙정부에서 승인해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P364

나치 친위대는 표준 국가가 거의 역할을 수행하지못했던 점령지에 독자적인 군사. 경제 제국을 세웠다.)이 주인없는 땅에서 관료적 규칙이나 도덕적 원칙은 쉽게 밀려나고, 지배인종의 요구만이 유일한 행동 기준이 되었다. - P371

파시즘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불안정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겁에 질린 보수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최종 결론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정권들이 점점 무모하게 성공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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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어느 누구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지 않았다. 집권 전에 무력으로 기존 정권을 위협하거나 집권 후에 (곧 보겠지만) 무력을 동원해 정부를 독재 체제로 변환시키기는 했지만,
어느 쪽도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가장 신중한 저자들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권력 강탈‘ 이라는 표현을사용하지만, 이 표현은 이 두 파시즘 지도자들이 정권을 잡게 된 과정보다는 정권을 잡은 후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더 적절할 것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두 사람 모두, 군사부문 고문과 민간부문 고문의 조언을 받으며 합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원수에 의해 정부의 수장으로 ‘초대‘ 받았다. 즉, 두 사람 모두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헌법에 기초 - P225

해 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한 결과 정부의 수장이 된 것이다. - P226

파시스트들은 좌파와 권력을 나누지 않고도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정권을 유지해 나갈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고, 이 방법은보수 세력의 사회·경제적 기득권이나 정치적 지배권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다. 또 보수 세력은 그들대로 권력의 문을 여는 열쇠를쥐고 있었다. - P241

비교를 통해 살펴보면 파시스트들의 집권 성공 여부는 파시즘지식인층의 명민함이나 파시즘 지도자들의 자질보다는 위기의 심각성이나 잠재적인 동맹 세력의 절박함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파시즘이 뿌리를 내리는 첫 단계에서는 기존체제가 정통성을 상실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지성사(intellectualhistory)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집권 단계에서는 이는 제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파시즘 이전의 교착 상태, 좌파의 성장, 보수계층의 불안이라는 위기에서 어떤 종류의 정치 공간이 생겨났는지, 왜 다른 세력이 아닌 파시즘 세력이 그 공간을 메우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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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휘몰아치는 찬바람에 날씨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12월 들어서니 날씨가 역시 다르구나 싶다. 이래야 겨울이긴 하지만 추위에 취약한 나는 벌써 걱정스럽다.

12월이 되었다는 것은 올해도 달력이 한 장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것을 세는 것도 별 의미는 없다 싶다. 매 해 시간 가는 것이 빨라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연말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10월에 십수 년만에 혼자 해외 여행을 다녀왔는데 11월은 함께 사는 사람과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느낀건데 옆지기는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화에 관심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물론 스포츠 만화는 좋아한다).

나는 엔터테인먼트보다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유물이나 유적을 체험하고 서점, 도서관 등에서 책을 보는 일이 즐겁다.

그러고 보면 '문화'라는 개념은 방대할 수 있겠다.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생각해서 코스 일부를 나눴다. 나는 도쿄대학교나 메이지 신궁을 홀로 여유있게 즐겼다.

물론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여행은 함께 했다(술집에 갈 때는 둘이니까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이 사람이 이런 것에 관심이 있구나 체크하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것도 있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한지 10년이 넘었다고 해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 재미가 있다.





작년에 이곳에서 영어 원서를 함께 읽었다. 사정상 중단이 되어 아쉬웠는데 다시 진행이 된다고 해서 다시 참여해야겠다 생각했다. 원서를 꾸준히 읽는다는게 결코 쉽지가 않아서다. 혼자서도 읽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중 시간을 따로 내어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 결심을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 전에도 원서를 안 읽은 것은 아니지만 매일 지키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영어 원서 읽기 실력은 늘 지지부진하다. 

그나마 원서를 며칠 계속 읽으면 아주 조금씩은 스스로 나아진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걸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각설하고 10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The Affair>를 읽는 중이다. 10월에는 스케줄이 많아서 시작을 못했고, 11월 들어서자마자 시작하려고 했는데 책이 늦게 도착한데다 개인 스케줄이 많아지는 바람에 늦어졌다. 

읽어보니 기존에 읽어왔던 책들보다 리딩 수준이 더 높은 것 같다. 분명 쉬운 단어와 구조로 된 문장이 있지만 군대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숙어 표현이 많아 번역서 없이 읽으려니 진도가 수월하게 나가지 않는다.

번역서를 읽어야 하나 싶은데 아직까지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서를 읽어본 일은 없어서 그냥 원래대로 읽어보려고 한다. 대강 느낌과 맥락만 파악하며 읽지 않을까 싶다. 


중국어 원서는 계속 읽어나가는 중이다. 웨이신두슈의 도움이 큰 것 같다. 종이책을 펼 시간조차 나지 않을 때는 앱을 켜고 다만 한 페이지라도 보려고 하고 있다(그럼 킨들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생각해보니 민망하군). 다른 언어도 그렇겠지만 중국어도 단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아서 나올 때마다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단어, 숙어들을 볼 때마다 머릿 속에 착착 입력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안되니까. 별 수 있나. 알던 것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니 그저 매번 나올 때마다 반복하는 수밖에 없겠지.


올해 구입만 하고 읽지 않은 책을 점검하다 건너뛰었던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얼마전 읽었다. 이걸 읽다 보니 같은 작가가 쓴 <키르케>를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불현듯 펀딩한다고 산 원전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보면서 뜨끔했다. '아이고! 아직도 이리 건너뛴 책들이 많다니...' 꺼내는 놓았으나 선뜻 손이 가질 않고 있다ㅎㅎㅎ(키르케는 도서관에서 빌려볼 작정)

지난 달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았는데 독서 모임 책으로 <파시즘>을 읽게 되었다. 자연스레 구입해놓은 <죽음정치>가 수면 위에 떠오르는...

손택의 <해석에 반하여>를 펀딩 신청해놓고 그 전에 <여자에 관하여>를 봐야겠다 싶었다. 읽고 있는데 놀랍게도 뒷부분에 파시즘이 언급된다. 전체주의와 미학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묻고 답한다. 리펜슈탈(의 영화)을 몰라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파시즘, 전체주의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너무 읽을 게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니 이제는 정말 선택과의 싸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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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잭 리처 원서 읽기는 제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제가 번역본으로 읽으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막연하게 원서는 더 재미있겠지 했던건데, 하- 군대 용어.. 때문에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실력이 된다면 잭 리처 계속 영어로 읽고 싶지만, 번역서로 읽는게 훨씬 나은듯 합니다. 그래도 잭 리처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긴해요.
거리의화가 님, 힘내셔서 얼른 완독하시고, H 마트에서 울다로 오세요. 컴온!

[키르케] 저 책은 저도 사둔지 한참인데 안읽었어요. 그러고보니 [죽음정치] 도 있네요... 그건 여기, 싱가폴에... [파시즘]은 담아갑니다.

거리의화가 2025-12-03 08:56   좋아요 0 | URL
계속 읽다 보면 잭 리처 원서로 읽는 것도 수월해질 날이 오지 않을까요?^^ 다음 원서는 H마트... 군요^^ 안 그래도 언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잘됐습니다. 속도 내서 읽고 따라갈게요!

파시즘 두껍지만 책은 무겁지 않아서 좋더라구요. 다락방 님의 싱가폴 생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희선 2025-12-0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일월에는 일본에 다녀오셨군요 시월, 십일월 기억에 남을 해인 듯합니다 오늘은 많이 춥네요 여기는 눈이 조금 오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니 첫눈이더군요 첫눈이라고 다를 건 없지만...

어느새 마지막 달이네요 거리의화가 님, 남은 날 동안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시고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5-12-03 21:55   좋아요 1 | URL
남부는 눈이 온다더니 정말 왔군요^^ 이번 겨울 첫눈이네요. 오늘 이곳도 날이 온종일 추웠어요. 산책은 포기못해서 점심 먹고 나갔다가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요ㅎㅎ 이제 본격적인 겨울입니다. 건강 잘 챙기면서 좋은 책 많이 만나시길 바라요^^

독서괭 2025-12-0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강 느낌과 맥락만 파악하며 읽어도 됩니다 화가님,ㅋㅋ 저도 그랬습니다 ㅋㅋ

거리의화가 2025-12-03 21:56   좋아요 1 | URL
ㅎㅎ 괭님 위로가 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주말에 진도 좀 빼야겠어요ㅋㅋ
 
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 교양과 상식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의 역사
유홍준 지음 / 눌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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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려고 시도했거나 읽어본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책장 한 켠에 여전히 그 책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행을 하기 전 관련 지식을 훓어볼 때 도움을 받곤 했다.
이 책이 나온지는 꽤 되었으나 그동안 구입을 망설였다. 분명 도서관에 많이 들어올 것 같아 도서관을 통해서 볼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책의 소개글 취지에 마음이 움직여 구입을 하게 되었다. 저자의 한국미술사 강의 내용을 한 권에 담았다고 하여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다.
한국사를 공부하고 관련 책을 읽지만 늘 문화와 미술에 대한 부분은 막히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외울 것도 많고 볼 때마다 왜 매번 헷갈리는지… 아무래도 용어가 한자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아서 한글만 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인 것 같다.

책은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한국 미술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각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면서 관련 용어,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여 이해를 돕고 유산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여 이해를 더욱 높였다.
또 무엇보다 업데이트된 소식을 다룬다는 점이 좋았다. 여전히 한반도에서 과거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음에도 평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기가 쉽지 않은데 아주 최근인 2023년까지의 소식도 다루고 있다(그야말로 따끈따끈하다). 또 한반도 이남의 유물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지역을 근거로 삼아서 좋다. 북한의 유물, 유적은 직접 가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관련 설명과 사진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600 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이지만 관련 내용을 외운다는 강박을 갖지 않는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진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올컬러로 내지를 선택했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더 생생하게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간단히 언급해보려고 한다.

석굴암의 조형미는 완벽하다. “실제로 신라인들은 기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석굴암을 지었으며 1밀리미터의 오차가 없는 정확한 시공이었다”(P176)고 수학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는 성덕대왕 신종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를 녹음하여 공학 박사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종의 높이와 너비, 종 높이와 천판에서 당좌까지의 길이가 서로 같다고 한다. 어떻게 그시절 이런 정확한 측량을 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랍다. 둘 다 종교에 과학적 측량을 바탕으로 정확성을 더하여 예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야와 발해의 역사 기록이 전하지 않는 것, 고려 시대 궁궐과 사찰 중 보존된 것이 없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가야의 역사를 신라인이 기록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발해의 역사를 고려가 챙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되는 것 같다. 고려 시대 궁궐과 사찰이 보존되지 못한 것은 몽골의 침입 때 피해가 컸던 것도 있겠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이유도 있을 것 같다.

고려시대 불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함에도 남아 있는 수가 극히 적으며 그마저도 일본에 가 있다. 다행히 승탑과 불상이 여럿 남아 있어 아쉬움을 덜게 한다. 승탑은 통일신라 시대 선종이 유행하면서 퍼져나간 것으로 고승의 사리를 모신 것이다. 팔각당의 몸체를 가졌던 승탑이 고려 시대에 오면 석등 모양(경주 불국사 사리탑), 사리호 모양(충주 정토사 홍법국사탑), 석종 모양(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등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불상은 현실적인 부처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로 지방적 특색을 담아 파격적인 양상을 보였다.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는 구부린 편안한 자세를 취한 윤왕좌 금동보살좌상이라던지 추상화 그림을 그린 듯한 이미지의 순금제보살좌상은 보고 있으면 재밌어서 한참을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원래 고려청자는 처음 중국에서 수입했었으나 5대10국 시대 때부터 수입길이 막히면서 자체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17세기 송과의 교역이 재개되면서 송인으로부터 노하우를 얻은 뒤 완벽한 비색 청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남아 있는 유물이 많아 조선 시대의 분량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조선 자기와 회화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자기는 항아리나 병 등보다는 문방구에 눈길이 많이 갔다. 필통은 백자에 그림을 그린 것도 있지만 몸통 자체를 투각하여 무늬를 만든 것도 있는데 갖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갔다. 연적도 마찬가지, 모양도 다양하고 기법도 다양해서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백자는 금사리 사마 때 전성기인 달항아리가 만들어졌고 분원리 가마 시절 상업이 발달하고 공인의 수도 많아지면서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 사옹원에서 생산되던 백자가 근대 말 분원자기공소가 되면서 민영화가 시작되었고 번자회사, 분원자기주식회사로 바뀌었다가 1916년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추기 산수화는 소살팔경도로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 산수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시절 대표 화가는 안견과 안평대군이 있는데 안견의 작품은 의외로 몽유도원도만이 확실히 그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하도 그의 작품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많아서인 것 같다). 16세기가 되면 화원이 아닌 사람들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인간이 중심이 된 산수인물화가 그려지고 화원의 세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탄은 이정은 세종의 현손으로 대나무 그림에 특출났다. 조선 시대 3대 묵죽 화가라고 평가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묵죽은 필법이 굳셀 뿐만 아니라 한 화폭에서 농담을 달리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가 되면 진경 산수화, 문인화가 그려지고 속화가 유행한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압구정은 역시 압도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선과 친분이 있었던 인물로 관아재 조영석이 있었다. 정선이 산수에 일가견이 있었다면 그는 인물에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새참과 우유 짜기 그림은 너무나 사실적인 장면과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표암 강세황은 서양 화법을 도입한 선구자이자 남종화를 시작하게 한 장본인이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사이에 또 한 사람 고송 이인문이 있다. 이인문은 김홍도와 동갑내기로 절친한 사이로 궁중기록화에도 참여했으며 산수, 인물 모두 뛰어난 화가였다. 김홍도가 대상을 부각시키는 기법을 쓴다면 이인문은 풍경의 시야를 넓혀서 보는 기법을 썼다고 한다.
조선 말 추사 김정희 이후 완당 바람이 일었다. 근대 묵죽 화가하면 석파 이하응만 떠올렸는데 자하 신위(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 중 한 명)가 있었다. 그도 김정희처럼 시서화에 모두 능해해서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대나무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묵죽화를 보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북산 김수철의 그림은 너무나 현대적인 그림으로 충격을 주었다. 지금 그렸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화가의 인품을 알수는 없지만 결코 범상치는 않은 분이었을 것 같다.
문자도, 책가도는 여러 번의 전시회를 통해 봐서인지 익숙했다. 문자도는 서체도 다르고 글자 안에 그림을 넣는 등 참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각 지방별로 특색이 있어 보는 맛이 있다. 책가도는 서가에 책을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한 자리에 그린 그림이다. 궁궐과 양반사회에서 유행하였다.

저자는 이 책을 밑줄을 치며 공부하지 않고 소파에서 편안히 기대어 독서하기를 희망하며 썼다. 강박감을 갖지 않고 이 책을 거듭 읽다 보면 한국 미술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면서 빠른 시일 내에 문화 유산을 만나러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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