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시대의 탄생 - 1980년대의 시간정치
김학선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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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대한민국 현재 시스템의 대부분이 형성된 시기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차별화를 두고자 했던 신군부 정권은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면서 국민들을 24시간 체제로 편입시켰다.

국민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이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7년 헌법 체계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또 지금의 텔레비전 편성 시스템이 갖춰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 드라마를 비롯하여 연속극, 아침-저녁 뉴스 등 정기적인 시간에 고정적인 방송을 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유튜브, OTT 등 다양한 매체가 생기면서 TV 방송도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시스템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당분간 독서 모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북으로 보이길래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상사, 문화사, 정치사, 경제사 등 다양한 관점을 일정 부분 각각 차용하고 있다. 읽기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며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야기다.


1980년대 역사를 다룬 책은 보통 3s 정책, 경제 발전에 집중하여 기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이 그것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점을 두어 신선함을 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근대적 시간체계의 시간은 기억정치의 장(場)이다. 때문에 시간의 기억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 간의 충돌은 계속된다.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한 시간을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그중 어떤 시간은 삭제하고 어떤 시간은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 그 시간의 의미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 국가 또는 사회의 갈등을 유발함과 동시에 통합으로 이끌기도 한다.


과거에 모두에게 달랐던 시간은 근대에 오면서 동질화되고 수량화되면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추상화된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24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업이 노동자를 쥐어짤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밤샘 근무를 비롯하여 노동의 강도는 더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 더욱 심화된다. 


'노동자의 날'은 본래 '법의 날'에서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메이데이가 그 기원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 의미는 삭제하고 법의 날로 만들었다. 

1989년 정부는 법의 날 행사를 개최했고 한국노총은 같은 날 세계노동절 행사를 개최하려다 정부에게 저지당했다.

지금은 당연한 '노동자의 날'(근로자의 날은 박정희가 명명한 개념이다)이 이런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같은 날을 두고도 해석을 달리 했다는 것은 이를 비롯해서도 많다.


국경일과 법정공휴일을 정하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정부는 양력으로 국경일과 법정기념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정했다. 이후 미군정의 서머타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연호는 단기를 채택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5.16 이후에서야 국가 연호는 서기로 채택되는 과정을 거쳤다.

서머타임제는 대한민국 실정과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서구 근대를 받아들인다는 명목 하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는 현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 시간이 연장되고 야간화되어 시위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명절이 공휴일에 포함되는 과정이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설, 추석, 한식을 의미 있게 보냈다.

그러나 이는 1980년이 되어서야 공론화되고 지금의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1980~1984년까지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자는 의견이 공론화되었고, 1985~1988년에 관공서 공휴일로 법제화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전까지는 명절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음력설을 명절로 쇠는 것은 마치 이중과세 논리로 치부되어 억압되었다.

추석은 이전까지 추수절로 불렸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음력설과 더불어 법정공휴일로 비로소 안착되었다고 한다.

한식은 일제강점기 때 식목일로 그 의미가 변경된 뒤로 그 의미가 굳어져버린 경우다(요즘 한식이라는 명칭을 아는 이들도 드물 것 같다).


이 책은 1980년대를 설명하기 위해 멀게는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4시간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 주체들은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시간정치에 의해 다른 삶과 기억을 가졌다는 것에 여실히 공감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권은 자기들 구미에 맞는 정책을 펼치지만 국민은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정권에 반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한 사회는 상이한 역사적 시간성을 가진 주체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이는 근대적 시간의 전일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근대적 시간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체들 간에는 시간 분배와 배치를 둘러싸고 시간기획과 시간정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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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의 여성들

톰슨이 구축한 단일한 서사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주의 페미니스들의 대답들.
->
-정신분석 이론 -> 이중체계분석
-마르크스주의의 변형
-포스트구조주의 담론 이론

포스트구조주의 담론 이론의 입장은 계급(의 역사) 범주를 분석의 대상이자 계보학 관점에서 받아들이므로 저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통해 톰슨은 계급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짐을 강조했으나 그 개념 자체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음.


3부 역사 속 젠더

5장 남성과 여성의 노동 정체성: 1848년 파리 의류산업에서 노동과 가족을 둘러싼 정치

의류업은 이 시기 파리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가 고용돼 있는 부문이었다고 한다. 의류업은 (주문 제작 방식이던 것이 ) 기성복 산업의 성장으로 변화가 있을 무렵이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새로운 작업 방식에 저항하며 운동에 나섰다.

[참고 - ‘생시몽주의’를 알기 위해 생시몽에 대해서 알아보기]
클로드앙리 드 루브루아 드 생시몽: 그는 인류 역사의 발전적 전개를 자원을 독점한 지배계급과 이들에 의해 어쩔 수없이 피지배계급이 된 계층간의 갈등으로 발전한다고 주장, 봉건 영주와 산업자의 계급 투쟁으로 이어진 프랑스의 역사를 개선하여 양쪽이 협력, 지배하는 계획 생산의 새 사회 제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은 천재적이었지만, 종교적·도덕적이고 공상적인 것이었다.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이념과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숙련노동과 공방은 동의어가 되고 가정에서 일하는 이들은 비숙련으로 정의되었다. 특히 1848년 2월 법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노동법에서 가족 작업장이 제외되었는데 이는 고용주를 포함한 입법자들이 가정에 대한 사찰을 반대했고 가내노동으로 인한 착취가 가족생활의 질서를 파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성 봉제사 조직가들은 (남성 봉제사 조직가들과 다르게)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관행(고용주의 탐욕, 수녀원 및 감옥과의 불공정한 경쟁, 시장의 변동) 뿐 아니라 남녀의 불평등한 위계 속에서 찾았다.

페미니스트 여성 봉제사들은 여성이 생산자로서도 역할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임금소득을 제시했으나, 남성복 제봉사들은 비숙련 단순 임금 노동자를 분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럼으로써 여성은 배제되는 기반이 되었다.

가족을 자본주의 대안으로 재현한 노동자들은 여성성을 사랑과 감정적 유대와 관련지었다. 여성봉제사로 일한 딸들은 낮은 수입으로 굶어 죽거나 매춘부가 되는 선택의 기로에 내몰렸다(장인인 아버지가 직업을 잃어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된 딸은 절망 속에서 매춘부가 된다. 한 남자가 왔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 그녀는 자살을 감행한다.).

톰슨은 정치 개념을 재정의·확장하고, (지적 생산성을 남성적 일로 만듦으로써) 노동 개념에 예술적 창조를 포함하며, 정치와 계급에 대한 젠더화된 재현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든다. 여기서도 남성적 코드화는 그대로 유지된다. 실제로 톰슨은 예술을일련의 받아들일 수 없고 배제된 용어들, 즉 여성적으로 코드화된 모든 것-가정적인 것, 영적인 것, 감정적인 것, 종교적인 것, 규율되지 않은 것, 비이성적인 것-과 대립하는 남성적인 것 안에 포함함으로써 수용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다른 방법으로도 - 예를 들어, 여성적인 것으로 여전히 코드화되어 있는 예술 개념은 그대로 둔 채 (남성적) 정치와 상호 보완적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방법도 똑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겠지만, 톰-
슨은 자신이 쓰고 있는 전통 속에서 계급과 정치에 부착돼 있었던 이 같은강력한 의미를 인정하는 쪽을 택했고 그것들을 문제 삼지 않았다. - P157

바버라테일러는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들 내에 존재했던 서로 대립하는전통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노동계급 정치에 대한 단일한 관점에 도전했다. 그녀의 연구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들이 서로 경합하면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투쟁하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보여 준다. 테일러는 페미니즘이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특히 가장 창의적이고 급진적인 구상의중심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페미니즘의 관심과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유토피아주의가 합리주의적 "과학적 사회주의"에 의해 대체된 것과 관련돼 있다고 본다. 이처럼 노동계급 정치를 다르게 정의하려 했던 과거의시도들에 대한 테일러의 기록 작업은 페미니스트들의 역사적 선례들을확고히 함으로써 현대 페미니즘 비평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 - P160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은 역사적·담론적 구성물로서 변화하는 다른범주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즉, "여성"은 불안정한 집합으로 여성개개인은 아주 다양한 위치에 놓일 수 있으며, 따라서 "여성 주체의 명백한 - P164

연속성이라는 것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하나의 집합으로서의 "여성"은공시적으로나 통시적으로나 모두 불안정하며, 동시에 한 개인에게도 "여성이 된다"는 건 너무 변화무쌍해서 존재론적 기반이 될 수 없다.

만약 노동자나 노동계급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의식이 아니라 재현의 조직화와 어떤 특정재현 체계의 맥락과 정치의 문제로 방향을 전환해서 질문해야 한다. 정체성은 본질적인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정치적 충성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역사학의 접근 방식은 톰슨의 이야기를 변화시킨다.
톰슨의 목적론을 거부하면서 그 이야기를 성차의 재현을 통해 정치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로 다시 쓰는 것이다. 계급과 젠더는 이런 다시쓰기에서 - 재현으로서, 정체성으로서, 사회적·정치적 실천으로서 -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 P165

계급의 의미-그 용어나 정치적 기획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상징적조직화나 언어적 재현의 역사를 질문하지 않고서 계급에 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주장은 곧 페미니스트 노동사 연구자들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같은 이야기 속에 여성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그런 방식으로 쓰인 책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적 작업을 거쳐야만 젠더와 계급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개조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노동계급 정치사를 이론화할 수 있을 것이다. - P168

1848년 이전에 남녀 노동계급 모두 이와 같은 참여에서 배제돼 있긴 했지만, 그 참여와 관련한 조건은 남녀에 따라달랐다. 남성들은 부와 재산에 근거한 차별에 맞닥뜨렸지만,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서 명백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시민권을 거부당했다. 권리의요구는 당시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젠더 차이를 고려하며 이루어졌다.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남성 노동자들은 재산의 의미를 지해석해 숙련노동이 그들에게 투표 자격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페미니스트 노동자들은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 첫 번째 주장은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서, 생산자로서 남성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장인들의 정교하고 특출한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숙련도에 따라 구별하기보다는 임금노동자라는 동질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남성 노동자들과의 차이와 관련된 주장으로, 여성이하나의 범주로서 투표권을 획득할 만한 고유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 P196

선명한 성별 노동 분업을 제시하고 공격성과 사랑, 경쟁과 협동의 시공간적 공존을 상정하는 부르주아 관념이 작동하는 가운데, 유토피아적 - P200

비전은 새로운 사회질서 안에서 일어날 인간관계의 총체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런 비전 속에 투영된 가족은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없었으며, 자본주의의 주요한 대립항으로 의미화되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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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에서 바우어가 유대인 해방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바우어가 보기에이 문제는 기독교 국가와 유대 종교의 관계로 귀착된다. 이렇게 그는국가를 그 일반적 형태 아래 고찰하지 않고 개별 국가의 유형을 본다.
다른 한편, 유대교에도 그는 일반적인 인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그 종교적 의미만을 고려한다.
반면 마르크스는 일반적 형태로의 이런 이행을 감행한다. 그는개별 국가/개별 종교의 모순에서 국가/국가의 전제들의 모순으로 이행하고, 후자의 모순은 국가/사적 소유의 모순에 귀착시킨다.
이 수준에서 심층적 모순이 나타난다. 그것은 곧 국가 안에서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바깥에 실존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비판적 담론이 - P187

모순의 심층적 의미의 명시화이자-
근원적 통일의 재발견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근원적 통일이란 주체와 그 본질의 통일이다. 인간주체와 그 본질의 이런 통일이 곧 포이어바흐식 비판에서 진리 개념을 정의한다. - P188

포이어바흐는 『철학 개혁을 위한 임시 테제』Thèses provisoires pour la réforme de la philosophie에서 추상을 소외로 특징짓는다.

추상한다는 것은 자연의 본질을 자연 바깥에 정립하는 것이자 사유의본질을 사유하는 활동 바깥에 정립하는 것이다. 헤겔 철학은 자기 체계를 온전히 이런 추상 활동 위에 세우면서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서 소외시킨다. 헤겔 철학은 물론 자신이 분리하는 것을 동일화하지만, 다시분리와 매개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테제 20)

마르크스는 경제를 인간이 다 - P214

른 인간이나 자연과 맺는 관계의 인간학적 역사로 만들고, 그래서 경제적 객관성을 상호주관성이나 감성이라는 형식 아래에서만 인식함으로써, 경제적 객관성이 인간 경험의 변증법 이는 결국 자기의식의 변증법일 뿐이다 으로 사라지게 할 행보를 가능하게 했다. - P215

마르크스는 주권 개념을 예로 든다. 그가 말하길, 주권은 국가신민들의 정신에 다름없다. 따라서 주권은 어떤 실체적 주어의 술어다(마르크스는 이 주어를 ónoxelyevov [휘포케이메논]으로, 실체로 정의한 - P221

다). 소외에서 이 술어, 즉 국가 신민들의 정신은 그 주어와 분리된다.
이 술어는 국가의 본질로 나타난다. 주어와 술어에서 분리된 이 실존은 헤겔이 사변적 작업을 완수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새로운 분리를통해, 주권을 현실의 국가에서 분리하고 그것의 관념을 자율적 존재로 만든다.
이 자율적 존재에는 담지자가 있어야 한다. 이 자율적 존재에 담지자를 제공하는 것은 헤겔적 이념인데, 마르크스는 이 이념을 신비적 이념이라 부른다. 주권은 이 신비적 이념의 한 규정이 된다.
이러한 추상의 운동이 일단 완수되면 헤겔은 반대의 운동을 가동해 구체적인 것으로 다시 하강해야 할 것이다. 추상적 관념과 구체적인 경험적 현실의 연결은 신비적 방식으로만, 즉 육화incarnation를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육화를 통해 추상적 규정은 구체적인것에 실존할 수 있을 것이다. 신비적 이념은 개별적 개체, 곧 군주로육화될 것이다. 이 경우 헤겔 철학에서 주권의 직접적 실존으로 나타날 것이다. - P222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원시적 축적)에서 직접생산자가생산수단과 분리되고 생산수단이 자본으로 변환되고 나면, 직접생산자인 노동자의 유용한 노동은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으로서만 발현될수 있다. 이로써 유용한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의 동일성이 곧생산의 일반법칙이 되는 조건이 창출된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징들이 노동생산물의 단순한 상품형태 안에이미 포함되어 (eingeschlossen) 있을 수 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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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언어는 경험에 대한 해석적 정의를 제공하고, 행동은 이런 해석적 정의 안에서 조직. 

스테드먼 존스가 정의한 정치란 ->
- 대결로서의 정치: 계급 정체성의 형성
- 집단 운동의 목표로서의 정치: 공식 참여

스테드먼 존스의 「차티스트운동 재고」글에서는 정치의 두 번째 정의를 사용.

결론적으로 차티스트운동의 발흥과 쇠퇴가 "국가의 성격 및 정책 변화"와 연관돼 있다. 
 
언어는 의미나 지식의 전체 체계를 드러내. 의미는 관계를 통해, 차이화를 통해 만들어지고, 관계들을 구성.

젠더는 차이를 표현하고 자연화하는 방법을 제공했으므로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

차티스트운동은 1832년 선거법 개정안으로 인한 논쟁 속에서 표명된 정치적 권리와 대표성의 문제에 대한 목소리. 
차티스트들은 선거권이 박탈된 사람들과 무산자인 노동자 남성을 위한 노동 자산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키려 했음. 
그들은 개인의 노동 혹은 노동력의 산물이 자산이므로 자산을 개인의 정치적 권리 향유와 관련지었음(로크)

계급의 남성적 재현 -> 노동계급의 젠더화에 영향(적 문제)

차티스트들이 말한 계급의 언어는 여성과 아이를 부차적이고 의존적인 지위에 위치시켜.



스테드먼 존스는 차티스트운동의 역사를 재개념화하는 첫단추를 끼우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데, 이는 그가 "언어"를 의미체계나 의미 작용 과정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P116

차티스트운동의 언어는 정치적 연합의 조건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들 간의 유사성 혹은 공통점을 확고히 하는 역할도 했다.

차티스트들은 개인의 노동 혹은 노동력의 산물이 그자체로 자산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산을 개인의 정치적 권리 향유와 관련지은 로크 이론의 한 측면을 발전시켰다. 그러면서 차티스트들은 이미선거권을 획득한 이들과 자신들 사이의 또 다른 유사성 - 그들 모두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차티스트들은 성인 남성의 보통선거권을요구할 때 (기존의 선거 자격 요건을 그대로 가져와) 오직 남성만이 사회계약을 체결하고 이런 계약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실제로 차티스트들이 선거권을 이미 획득한 이들과의 유사성으로 주장했던 것은 그들모두가 남성 자산 소유자라는 점이었다. 동시에 차티스트운동은 젠더를 이용해 자신들의 운동을 민중운동의논쟁 안에 자리 잡게 하고, 그 속의 일부 흐름들, 특히 감정 표출적이거나 - P122

결사체적이거나 종교적인 흐름들과 자신을 구별했다. 그들은 그런 유토피아적 운동들을 "여성적인 것으로, 차티스트운동을 "남성적인" 것으로묘사함으로써 젠더를 활용했다. - P123

계급의 남성적 재현은 노동운동에서 노동자 문제를 정의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은 노동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 - P124

므로, 여성의 초저임금 고용이 특정 직종 남성들의 경쟁력 위기를 가져왔을 때, 여성들을 해고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을 찾기 어려웠다. 여성노동자의 지위를 본격적으로 옹호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상상력의 결여나 남성 우월주의가 아니라, 생산성과 남성성을 동일시한 계급 개념의 구성이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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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3-04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역시 빨리 시작하시고 빨리 나아가시는 거리의화가 님!! 저도 곧 시작하겠습니다.
 

11. 스피노자: 데카르트의 경험론에 대항해 '본질인 인식 대상은 현실 대상과 절대적으로 다르다'라고 주장

마르크스: 현실대상과 인식대상은 구별되어야. 현실대상은 사고가 만든 결과물. 인식대상의 생산과정은 인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현실대상의 생산과정은 현실 질서에 따라 이루어져. 사고는 원재료(이론 실천의 대상), 생산수단, 사회의 구조와 맺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구조에 의한 시스템이자 체계.


15. 인식문제(실제문제 X)는 이데올로기 형식 내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정의하는 것

이데올로기 질문은 이데올로기 공간(닫힌)에서 벗어나야. 닫힌 공간은 이중적 거울 관계라고 일컬은(라캉) 순환의 장.

서양 근대철학은 이 순환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 공간에서의 탈출은 새로운 공간에 대한 문제 설정을 하고 이데올로기 위치를 재인지하는 구조 속에서 현실 문제를 정립시킴으로써 가능.


17. 실용주의는 사실을 실천했을 때 성공하는가를 증명하는 것. 

과학적 실천에서 실천 기준은 내부에 포함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과학적 실천과 다른 실천과 맺는 관계를 포함해야.


18. 인식생산의 역사에 관한 이론은 인식이라는 생산물의 고유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함

메커니즘은 인식 하에 인식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제


19. 역사 생산 결과물을 사회로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자본>의 연구대상.

자본주의에 고유한 사회효과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에 대한 해명



"헤겔은 현실적인 것(das Reale)을, 자신 안에서 자신을 총괄하고 자신 안에서 자신을 심화하며 자신으로부터 운동하는 사고의 결과로 파악하는 오류에 빠졌다. 그러나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방법은 사고를 위한 방법, 곧 사고가 구체를 전유하고, 정신적 구체 (geistig Konkretes)라는 형태 아래 그것을 재생산하는(reproduzieren) 양식(die Art)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39 헤겔이 역사에 대한 절대적 관념론이라는 형태를 부여하는 이러한 혼동은 그 원리에서 본다면 경험론의 문제설정을 특징짓는 혼동의 한 변형에 불과하다. 이러한 혼동에 맞서 마르크스는 현실대상(인식의 생산"이전과 이후에 머리 [Kopf] 바깥에서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존속하는 현실적 총체로서의 현실구체)과 인식대상의 구별을 옹호한다. 이 경우 인식대상은 사고의 구체(Gedankenkonkretum), 사고의 총체(Gedankentotalität)로서, 곧 현실대상, 현실구체, 현실총체(사고의구체, 사고의 총체는 정확히 이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다)와 절대적으로구별되는 사고대상으로서, 사고가 생산하는 사고의 산물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구별이 단지 두 대상만이 아니라 두대상 각자의 생산과정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P119

나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철학이라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칸트, 헤겔을 거쳐 후설에 이르는) 서양 관념론 철학과 일체를 이루는 전통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인식문제‘라는 이데올로기적 정립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인식‘문제‘의 정립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 문제가 그것에 대한 ‘답변‘에 입각하여 그것의 정확한 반영물로서 정식화된 것인 한에서 그렇다. 곧 이러한 인식문제라는것은 실제문제problème réel가 아니며, 사람들이 제시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해법을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만들기 위해 먼저 정립되어야 하는 그런 문제다.이 점은 이데올로기의 형식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이며, 원칙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인식connaissance(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가 인식문제나 인식이론이라는 형태로 인식을 성찰할 때 이데올로기가말하는 인식)을 재인지reconnaissance라는 현상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 P142

전적으로 사유안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사유 바깥에, 현실세계 속에 존재하는 현실대상에 대한 인지적 전유를 생산하는가? 또는 달리 말하면, 인식대상의 생산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사유 바깥의현실세계 속에 존재하는 현실대상에 대한 인지적 전유를 생산하는가? - P149

마르크스의 이론적 실천이 생산한 인식의 ‘진리‘ 척도는 이론적 실천 자체에 의해, 곧 논증의 가치에 의해, 인식생산을 보증한 형식의 과학성이라는 지위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생산한 인식의 ‘진리‘ 척도는 마르크스의 이론적 실천이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이 우발적 가설이 아니라 분명 인식이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생산한 인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를 산출한 것이며, 여기에서는 단지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자체도 이론의 자기성찰 및 내적 발전을 위한 적합한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다. - P157

이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이 상이한 사회효과들의 생산 메커니즘이 각양각색의 생산양식에 따라 상이하다고 사고할 만한 모든 이유를 갖고 있다. 『자본의 이론에함축되어 있는 엄밀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의식이 우리에게 새로운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다는 점을 우리는 간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마르크스가 역사의 결과물로서사회의 생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철학의 빈곤과 1857년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의 통찰력 있는 몇 대목의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함의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현존하는 현실사회 그 자체인 이 결과물에 의한 사회효과의 생산이 취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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