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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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일은 무엇보다도 침묵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이다. 첫째로 나의 언어가 아니라서 들리지 않던 침묵하는 말이 들리게 한다. 번역가는 에코처럼 숲속 깊이 숨어 있어 눈에 보이지 않고 나르키소스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지만, 나르키소스의 혼잣말을 멀리,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전한다. 또 번역가는 원저자의 언어만 번역하는 게 아니라 침묵까지 번역한다. 번역은 언어의 빈틈을 다룬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읽고, 그 의미를 번역된 글의 여백에 눈에 보이지 않게 다시 침묵으로 담는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자신의 길을 밟아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가는 편이다. 작가는 번역가의 길에 들어선 후 20여 년 넘게 꾸준히 그 일을 해왔다. 그 열정과 노력만으로 이미 대단한데 그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코 계속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어떻게 해서 번역가의 일을 하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주변에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부딪쳤을 때 잡혀갈 뻔한 위기에서 자초지종을 영어로 설명하여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일로 아버지는 오히려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그 시절 아버지의 안목과 혜안이 탁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자구적으로 찾아 나가셨던 것이니까. 아무튼 놀라웠다.

번역가는 유독 호평보다는 혹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번역이 무난하거나 좋을 때는 별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반대라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번역서에는 번역에 관련된 평이 상당수를 차지하니 번역가들은 다른 번역가나 독자의 의견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번역가는 늘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고민하며 선택의 기로에 선다. 발터 벤야민 같은 경우는 원문에 대한 직역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원문이 어떤 장르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문학 같은 경우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해야 하는 만큼 독자의 이해에 맞춰 의역 쪽에 가깝게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문학(특히 시)은 직역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제국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근대화를 경험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번역의 원문 충실성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대로 온라인 서점이 성장하면서부터는 독자 리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오역 논쟁이 벌어지니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AI번역까지 등장했다. 물론 AI 번역에 대해서는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계 번역은 방대햔 양의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난한 번역은 가능할지 몰라도 특별하고 유일한 번역이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시대에 따라 문화가 변하는 것처럼 언어도 멈춰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번역서도 시대의 요구사항에 따라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여긴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지금까지의 번역 연구가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식민화 과정에서 번역이 지배자의 세계관이나 통치 체계를 강제하고 식민지의 언어와 문화를 왜곡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역할을 했음에도 번역 연구는 그 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문화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예전처럼 위계에 따른 묘사를 답습한다면 그 번역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이제는 한국어 책이 외국에 번역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가 논쟁에 휘말린 것처럼 과거의 이론이나 가부장적인 사고를 담고 있는 책을 번역할 때는 오늘날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의 본질은 변화다. 언어는 고정되지 않는다.

번역에 대한 역사(번역의 방법에 대한 차이), 번역가의 입장에 대한 이해 등을 충실히 담고 있다. 번역서를 많이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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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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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오염수를 저장한 탱크 부지 사진을 보고 놀랐다. 규모가 그리 컸다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된지 어느덧 10년도 훌쩍 지났다. 심지어 일본이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한다고 했던 것도 몇 년이 훌쩍 지났지만 제대로 된 대응 및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후쿠시마 제1원전 누출 사고를 규명하기 위해 장장 9년간 잠입 취재를 바탕으로 한 르포르타주다. 작가는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로 끈질기게 사고를 추적하며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수차례 만났다.
출간되고 얼마 안 되서 이 책을 구입했는데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니 좀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읽게 되어서 다행이다.

사고 후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참담한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폐선 등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고 탱크 내부는 녹아내려 폐허와 다름 없었다고.

취재기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국에서 일어난 각종 재난 사고의 재현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대응 메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원청, 그나마도 초반에는 억지일지 모르지만 사과라도 했다면 갈수록 철판을 깔고 자신의 살 길을 찾아가는 도쿄전력과 정부의 행태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피해를 본 건 결국 삶의 터전을 잃고 유리되어 흩어진 사람들과 도쿄전력 근로자, 하청 근로자들이다. 피해를 그나마도 복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발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과 근로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근로자들은 각종 사고에 노출되었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긴 세월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특히 고향을 등지고 떠나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근로자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일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정말이지 큰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오래 떨어져 지내다 가족들과도 소원하게 되어 결국 결단을 내려 원전 근로자를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작업자들은 여러 모로 시달렸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호복에 마스크에 두겹세겹 장갑을 끼고 각종 장비를 했더라도 그들의 체내외에 피폭이 누적되었다. 그들은 누적되는 피폭량에 민감했는데 피폭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회사에서는 나가라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정작 쓸때는 급하게 쓰면서 버려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피폭에 노출되니 솔로는 결혼도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불면증에 우울증, 번아웃, 알코올 중독, 부상, 사고까지 이어졌다.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된 상황에서 사고 수습을 위해 발벗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참여한 것일까 궁금했다. 특히 나는 한 인터뷰 참여자의 사연이 가장 공감되었다. ˝전기를 쓰면서도 원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공기 같은 거였죠. 나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달까?˝ 후쿠시마 지역은 수십 년전부터 원전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 중 일하는 근로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원전과 함께 살아나간다고 해도 무방한 지역이었기에 그들에게 원전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사고 수습을 지휘한 사람 중 ‘요시다 소장‘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0년 제1원전 소장으로 취임해 사고가 터진 뒤에는 사고 현장을 선두지휘하며 독려했다. 사고 다음 날 원자로 노심 용융(녹아서 섞임)으로 통제 불능의 위기가 닥치자 그는 결단을 내려 냉각수 공급이 끊긴 원전 1호기에 해수 주입을 시작했다고 한다. 윗선의 지시가 내려오기까지 기다렸다가는 더 큰 사고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일부 비판도 받았으나 주변 사람들은 요시다 소장이 아니었으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을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게다가 그는 현장 작업자들을 하나 하나 다 챙긴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고 후 1~2년이 흐르기까지는 그나마도 언론에서 보도가 되고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있었지만 2013년 이후가 되면 관련 보도도 줄어든다. 작업자들이 사고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자신들도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정부는 도쿄, 후쿠시마의 일상화를 외치며 작업자들의 보상 규모를 줄여나간다. 작업 중 일어난 작은 사고나 부상은 언론에 보도조차 하지 않고 병원으로 호송되어야만 발표했다. 그나마 헬기 이착륙장이 생겨서 부상자 호송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그전에는 러시아워를 뚫고 다른 지역의 헬기 이착륙장까지 이동해서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만 했다).
도쿄전력 임원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되었으나 최종 무죄를 선고받는 등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나서 다른 원전들도 모두 가동을 중단했었으나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원전이 재가동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까지 30~40년을 잡고 있던데 세부 작업 기한이 하나 둘 늦어지고 있는 마당에 솔직히 현실 가능한 플랜인지 모르겠다.

사고 초반부터 시작해서 2019년에 이르기까지 피해 복구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앞부분에 제1원전 부감도와 조감도, 부지 내부 등을 비롯한 각종 사진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머리를 울렸다. 나는 원전은 가급하면 운영하지 않아야 한다는 탈원전의 입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생각하니 현실적으로 이를 위한 타개책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방향은 탈원전으로 가는 게 맞겠지만. 대한민국은 과연 원전의 안전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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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일기 - 세계의 중심, 북경을 가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7
조헌 지음,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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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을 간 사신인 조헌의 여정을 담은 기행문이다. 누가 갔는지를 보지 않고 북경에 간 기록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청이 들어선 이후 양국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니까 북학파 등이 활동했던 시기다. 그러나 주인공은 조헌으로 선조 때 활동했던 관료다. 당시는 명과 조선의 조공-책봉 관계가 철저히 지켜지던 때라는 점이 중요하다. 

조헌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출신의 관료다. 그가 어떤 관료였고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 기행문을 읽는 일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교류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조헌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보자. 그는 학문적으로는 이이를 계승했으며 정치적으로 자기 주장이 강했던 쪽에 속했던 것 같다. 소위 바른 말을 했다가 눈 밖에 여러 번 났다고. 그의 동료들조차 이러다 무슨 일 나겠다고 걱정을 했을 것 같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격문을 지어 군사를 모집했고 문인들과 함께 각종 전투에서 왜구를 물리쳤으나 금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조천일기'는 1574년 명나라로 가는 사절단에 그가 질정관의 역할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질정관이란 조선 시대 문서의 음운(音韻)이나 제도 따위에 대한 의문점을 중국에 질문하여 알아 오는 일을 하는 임시직이다. 비록 임시직이지만  쓰는 말과 소리 나는 말이 다른 언어를 기반으로 확인하고 질문하는 일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외교 문제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5월 11일 출발하여 다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11월이니 총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실질적으로 이동 시간이 길고 북경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단 1개월 뿐이었다. 북경에서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일정을 소화하려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것은 9월 14일 이후의 조헌의 기행기는 전하지 않고 있어서 사절사로 동행했던 허봉의 '조천기'를 참고하여 뒷부분이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다 그의 눈과 귀를 통해 기록된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조헌이 이용한 사행 경로는 요령을 지나 우가장을 거쳐 산해관으로 들어가 북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후 조선 후기가 되면 요령에서 우가장이 아닌 성경부를 찍고 산해관으로 들어가 북경으로 향하는 코스로 바뀐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첫 번째 코스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지내던 곳의 지붕에서 물이 새 유숙을 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 조헌은 그 와중에도 마치 동정호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즐겼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 놀라웠다. 그는 쉽게 좌절하지 않고 사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는 그가 이전에 그림이나 책에서 만났을 중국의 여러 명승 고적지를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었을 때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당시는 한자가 지식인의 기본 언어였으니 한자 문화권에 가서도 별 무리 없었을텐데, 그는 중국어로 듣고 말하는 일이 가능했다. 외국에 갔을 때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경험의 폭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짧은 경치를 보더라도 더 깊은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산해관의 망해정은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백이숙제의 묘(현재의 하북성 노용현)를 찾아가 벅찬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백이숙제의 묘는 조선 지식인들이 답사를 하게 되면 필수로 찾는 코스였다고.


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다. 상술처럼 뇌물을 받아먹는 관리, 길을 지나가려면 돈을 내놓거나 합당한 선물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들, 귀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공자가 있는가 하면 선정을 행하는 관리들도 있었다.  

특히나 조선과 중국 경계나 변방에 사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관리들을 보면서 그도 배우는 바가 많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조헌이 귀천을 막론하고 열심히 독서하는 유소년을 보면 가지고 있던 책 등을 선물하고 여러 조언을 하는 장면은 참으로 흐뭇했다. 사실 당시를 생각하면 신분 차별로 그 아이가 성인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기에 그 아이는 평생 책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가 북경에 있었던 기간은 8월 5일부터 9월 5일까지였다. 당시 천자는 12살에 불과했는데 그런 어린 황제를 보고도 감격했다는 그의 감정을 생각하며 뭉클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열대 과일인 용안과 여지를 맛보았던 일,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방문했을 때의 소회, 조선 사실들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환송연을 2차례 열어주어 감읍했다는 소회까지 적혀 있다. 

조헌은 명황제인 만력제의 생일 축하를 기념하여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간 것이었다. 만력제를 보았고 다양한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소회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귀국길에 벼루와 부채 등을 주고 명의 사신을 통해서 책을 교환한다. 조선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던 중국의 각종 고전이나 서책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컸을 것이다(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벼루나 부채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만 책은 쉽지 않으니까). 


조선 시대 역사서를 얼마만에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가벼울 수 있지만 어쨌든 조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당시 사행사들의 경로를 통해 중국과 조선의 풍속을 경험하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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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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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걷기는 여러 효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햇빛 아래에서 걷는 일은 우울감을 떨쳐버리는 데 정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어떤 일에 부딪치거나 관계상으로 어려움이 생길 때면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걸었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과거의 문인들이 걷기를 예찬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솔닛의 에세이를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 그녀의 에세이를 추천 받아 읽고 반해서 더 많은 작품을 읽어봐야지 했었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읽느라 또 한동안 방치 상태가 되었다. 무심코 책장에 꽂아둔 이 책(구입한 것은 한참 전인데)을 발견한 것은 아마도 얼마 전 짧게나마 여행을 갔기 덕분인 것 같다. 걷는 것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나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이다. '한 편의 이야기와 한 번의 여행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걷기 예찬론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걷기를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나는 걷기하면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거나 해서 도피용으로 휴식을 위한 걷기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다가 아님을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백록을 지은 루소는 걷기를 하며 사유에 천착한 전형적인 경우다. 그는 평생에 걸쳐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는데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여러 친구들을 만났다고 한다. 편집증이 있어 관계에 늘 어려움을 겪어서 걷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화시켰다고 보인다.

키르케고르는 루소처럼 다양한 지역을 유랑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역지(코펜하겐)에서 지내며 틈틈히 걷기를 행했다. 그는 걷는 동안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기에 걷기와 생산 노동에 비슷한 점이 있음에 자연스레 주목했다. 그는 알려져서 사람들 눈에 띄기를 원했으나 스스로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죽는 순간에도 걷고 있었다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결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루소, 키르케고르는 행동 패턴과 방식은 달라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18세기에 접어들면 걷기의 목적이 진화한다. 이때 이후 다양한 여행 코스와 안내서, 여행자 모임이 만들어지게 된 덕분이다. 앞선 사람들의 여행기를 통해 여행의 욕망을 키운 상태에서 여행 코스마저 다양해지니 다양한 루트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다양한 사람이 오가고 교류하니 자연스레 수많은 예술 작품도 쏟아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남성에 비해 공간적, 사회적 활동의 제약이 컸던 여성들은 이때 조금씩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워즈워스는 걷기가 여행의 수단이 된 대표적인 철학자다. 그는 자연과 시골, 유년기를 예찬한 시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평생 걸은 거리가 29만 킬로미터에 육박한다니 참으로 놀라웠다(나는 과연 최후의 날이 되면 측정할 수 있는 걸음수가 얼마나 되려나 궁금해졌다^^;). 반면 디킨스는 전형적인 도시의 산책자였다. 그의 작품 배경이 런던이었던 만큼 오랫동안 그는 런던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19세기에는 떠돌이와 방랑자들의 자기 고백이 이어지며 보행수필이 시장의 주류가 된다. 특히 장거리 보행자가 늘어나면서 공간의 확장에 따른 이야기의 상상력은 더욱 극대화된다. 등산 서사시와 등산 회고록 등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며 관련 책을 쓰기 위한 수집을 하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벤야민이 연구를 진행할 때만 해도 파리는 보행자들을 위한 천국 같은 도시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솔닛이 가보았을 때는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도시에 보행자들을 위한 기능이 많이 줄어서 아쉬웠다고. 다만 조금씩 파리가 산책자들을 배려하는 방식을 다시 도입중이라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20세기 이후 도시의 개발화가 진행되면서 교외화가 심화되었다. 지금의 서울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서울은 주거비용이 비싸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심에서 벗어나 교외로 이동한다. 도심은 업무 시간이 끝나면 텅 빈다. 울산, 포항 같은 산업 도시는 공장 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공장화, 기계화로 육체 기능이 점차 퇴화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한다. 하긴 자동차가 생기고 나서는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도시에 헬스장이 생긴다는 것은 과연 날씨가 안 좋아서 야외에서 부득이하게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선택해야 하는 대체장소이기만 할까. 저자는 헬스장이 근육과 피트니스를 생산하는 공장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부식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라고 말한다. '보행은 여러 가지 자유와 기쁨, 예컨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닫혀 있지 않은 멋진 공간, 구속 받지 않는 육체라는 생태계의 지표종이다.'


여기까지였으면 이 책이 다른 책과 별반 다른 책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솔닛은 역시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걷기가 아닌 모두를 위한 걷기를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일, 환경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며 걷는 일 등등 말이다. 이때 걷기는 낯선 사람과 함께 걸으며 하나가 된다는 인식으로 걷게 되기에 앞선 걷기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나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 1977년 5월 아르헨티나 광장에서 벌어진 어머니들의 행진은 뭉클했다. 마치 세월호 투쟁을 떠오르게도 했다. 사라진 자식을 돌려내라는 외침은 연대가 되어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이 혁명(육체가 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전히 온전한 사고 원인 규명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되서다.

또한 이제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일에 대한 시선에 여전히 불편함이 따른다. 과거에는 단순히 치마를 입고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에 처해지거나 성폭행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남성도 거리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여성은 그 빈도면에서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걸어도 아무 문제 없는 사회가 정상이지 여성이 홀로 길을 걷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걷기는 문화적 행위이기도 하는 동시에 인간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걷기가 연대이며 걷는 행위는 읽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에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나 스스로도 걷는 행위는 나를 일구어 변화를 일으키는 시간이자 경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두 발로 읽는 것은 두 눈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적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걸으며 나와 세상을 만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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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12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걸으면서 글을 다 썼다고도 하더군요 이름 알았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옛날 사람은 걷는 게 생활이었겠지만, 예전 철학자는 자주 걸었네요 걸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썼겠습니다 여성이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하는데...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어야겠네요 저는 거의 혼자 걷지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위해 걷기도 하는군요


희선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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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통해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시간과 기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과 인연도. 같은 운명을 마주해도 선택하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누구를 감히 구원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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