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 - 미조의 시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서수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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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참 많은 문학상이 있다.
몇년전부터 꾸준히 나오는 젊은작가상 을 포함해
대작가의 타이틀을 단 문학상도 다수 존재한다.
젊은작가상 수상작의 경우 매년 단행본으로 나올 때 읽어본 적이 몇 번 있다.
작년은 건너뛰었던 것 같고^^;
그래도 이런 단행본의 장점은 대부분 단편이라 부담이 없고
이야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몰아서 읽거나 나눠서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겐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처음이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알게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2014년 등단하여 6년 정도 공백기를 거쳐 첫 소설집을 냈다고 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얼마 전에 또 하나의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의 글을 보니 소설이 아닌 현실을 잘 담고 있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시선이 차갑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5천만원으로 전셋집을 찾아다니는 모녀. 우울증을 겪는 엄마. 집을 나간 뒤 알바를 전전하는 오빠. 잦은 이직과 퇴사로 취업문을 자주 두드려야 하는 나.
성인 웹툰 보조로 원형탈모증까지 겪게 된 수영.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오빠라곤 있지만 집을 나가버려서
사실상 가장은 나(미조) 이다.
미조는 경영 악화 등으로 회사를 이직해야 해서 본의 아니게 취업문을 여러 번 두드리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면접관의 싸늘한 질문 뿐이다.

우울증을 겪는 엄마에게 시를 쓰라고 권했고 그런 시를 딸에게 읽어줄 때만큼은 엄마는 시인이자 연극배우가 된다.
엄마는 미조에게 버팀목이자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엄마에 대한 몰이해의 장벽에 시를 세우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첫째 딸은 나이지만 둘째 딸은 시인 것이고, 그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둘째 딸에게 내 역할의 일부를 떠넘기고 있는 건지도,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럴 줄 알았으면 딸 하나 더 낳을걸 그랬다는 후회를 시로 해결해보라고 등 떠미는 건지도. - P18

IT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수영은 회사 오너의 요구에 따라 성인 웹툰을 그리고 있다.
점점 더 가학적인 말도 안되는 스토리와 그림을 그리라는 요구에 원형탈모증까지 겪어가며 꾸역꾸역 일을 해나간다.
그런 수영은 시대의 요구라며 다 그런 거라며 자위하고

나는 저 여자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걸 만들고 있는 거야. 시대가 가발을 만들어야 돈을 주겠다고 하면 가발을 만드는 거고, 시대가 성인 웹툰을 만들어야 돈을 주겠다고 하면 그걸 만드는 거야. 그렇게 단순한 거야. 마찬가지인 거야. - P30
미조야 너 그거 아니?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야. - P31

오빠는 남보다 못한 존재이다.
전셋집 문제로 전화를 했더니 전국 맛집 탐방을 하고 공장 건물을 사진 찍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미조는 수영이 힘들게 돈을 벌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본 적 있어?
없는데?
그냥 구경만 하려고 간다는 거야?
충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왜라니. 멋지니까.
이런 공단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나 좋아하라고. 그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힘들 거 아니야.
오빠보다 훨씬 힘들게 일할 거 아니야. 멋지다니. 그냥 멋져서 구경만 하고 온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오빠는 그런 말도 못 들어봤어? 그 쇳물 쓰지 마라. - P35

5천만원으로 서울 안에서 전세 구하기는 애시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부동산에 가서 여러 집을 구하기는 하지만 사진과는 다르게 실상은 집들은 과대포장되었다.
볕도 잘 안드는 어두컴컴한 반지하. 남의 발이 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그들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갈까?
미조와 엄마는 집을 어떻게든 구할 것이고, 미조는 일기를 쓰고 엄마는 시를 쓰고, 수영은 산책을 할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문장을 쓰고, 언니는 아마도 걷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멀고, 우리의 집은 더 멀고, 민들레 꽃씨가 날아와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는 꿈은 가까운 그런 밤이었다. - P40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조금 더 그들에게 안온한 볕이 드는 세상이길 소망했다.


《미조의 시대》 뿐 아니라 최진영 작가의 《차고 뜨거운》 도 좋았다.
시대마다 각기 달라왔던 여성들의 모습을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그려볼 수가 있다.
임신과 출산, 육아.
엄마는 엄마의 시대를 살았고 나는 나의 시대를 살고 싶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여성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것들이 많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닌데 엄마는 예전 자기가 키웠던 방식을 고집하는 것처럼.
가부장제는 여전히 여성들을 곤란하게 한다.
그러니 연대라는 서사가 머릿 속에서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은 오랫만이었다.
중견 작가의 글을 수상작에서 보는 것도 어쩌면 생경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수상작들이 현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적으로 잘 읽혔다.
장애인, 동성의 사랑 등 한 번쯤 고민해볼 일이 담긴 주제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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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8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 읽고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 작품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거리의화가 2022-03-18 10:0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은희경 작가 작품을 아주 오랫만에 읽었네요. 반갑기도 하고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필력은 여전하신듯요

그레이스 2022-03-18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은희경 작가 반갑기도 하고 이 리스트에서 보는게 어색하기도 하네요^^
저도 <새의선물> 좋았어요!

거리의화가 2022-03-18 13:39   좋아요 2 | URL
그쵸. 저도 수상작품에서 은작가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새의선물 좋았다고 하시니 궁금해지네요^^

페넬로페 2022-03-18 13: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문학상에 관심도 많고 자주 챙겨 읽었는데 요즘은 잘 보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생소한 경우가 많아요. 관심 갖고 읽어야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3-18 13:41   좋아요 4 | URL
요즘 작가들 중 박상영, 김초엽, 천선란 등 아주 이름난 작가 아니면 사실 저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만큼 관심을 덜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저도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지만 이런 단편들을 읽으면 당시의 흐름도 알 수 있고 필진들도 얻어가는 맛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폭도들은 인지 분배관의 사직서를 받아내기 위해 필요한 폭력을 모두 동원했고, 테러로 위협하면서 인지의 하선이나 분배를 사전에 봉쇄해버렸다. 어떤 경우에는 폭도가 무력시위를 벌이자마자 분배관이겁을 집어먹고 사표를 던졌다. - P194

반란 기질은 경우에 따라 좀 더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매사추세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분열이 이미 존재하고 인지세법을 지지하는 쪽도 분명히 있는 지역에서 폭거와 폭동은 더욱 극단적으로 발전했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다른 파당에게 인지세법의책임을 뒤집어씌우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적들이 영국 내각과 음모를꾸며 아메리카의 자유를 파괴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 P195

인지세법에 관한 소식이 알려지자 뉴포트에서 자유에 민감한 사람들은 심하게 동요했지만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의감정은 곧 폭발할 예정이었는데, 인지세법 때문이 아니라 영국 해군때문이었다. 해군은 연초에 아주 무자비하게 선박 나포를 실시하여뉴포트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해군은 그 작업을 할 선원들이 필요했는데, 그들을 고용하기 위한 일처리도 세심하지는 않았다. 5월에 들어와 일련의 강제 나포가 발생하자 배들이 뉴포트 항구를 기피했고, 그리하여 무역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군함 메이드스톤호는 어리석게도 군함에 실린 보트를 부두로 보냈다. 그러자 약500명에 달하는 폭도들이 그 배를 붙잡아서 불태워버렸다. - P204

10월이 되자 의회는 아메리카에서 도착한 오싹한 폭동소식들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폭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지고 그것이 인지 분배관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나자, 의회의 분노도 커지기 시작했다. 의회가 재개되기도 전에, 아메리카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대역죄‘, ‘무정부’, ‘반란‘ 등의 어휘가 동원됐다. 그리고 12월 의회의 회기가 시작되자, 많은 의원이 인지세법 철폐에 반대했다. 철폐는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고 통치권을 훼손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 P218

의회는 대영제국의 주권 기관이므로 식민지에 영향을 미치는 법령을제정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다만 법률 제정이 의회 주권의 핵심적 사안 중 하나이지만 과세권은 포함하지 않으며, 과세권은 대표 기관들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입법권과 과세권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규정하든, 그들은 영국 의회가 오랫동안 소중하게여겨온 권리에 도전하고 나선 것이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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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식민지에 대해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그다음 절차는 내각 또는 공식적으로는 추밀원-의 지시를 받아 남부장관이 그 소식을 식민지 총독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식민지 관련 정보는 보통 이런 식으로 전달됐다. 그렌빌은 이런 통상적인 절차를 무시했고, 단지 재무관료인 토머스 웨이틀리가 여러 식민지 관리들에게 13개 식민지에서 사용하는 법률 문서의 성격에 대해서 물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서들에 붙이는 인지가 과세의 대상이 될 예정이었다. - P153

의회 내 인지세법 반대파는 연설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투표에서는 패배했는데, 결국 의회에서 중요한 것은 투표였다. 인지세법에 찬성하는 사람들 절반은이미 너무 오래 끌어온 과세 문제에 분노했고, 나머지 절반은 식민지가 방위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확신했기에 찬성표를 던졌다. 의회의 토론 기록을 믿는다면, 그들은 오히려 쉽게 찬성표를 던졌다. 대부분의 반대 의견은 토론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하원의원들은 빠르게 마음을 정했고, 필요한 지원을 확보했다고 생각한그렌빌은 반대파의 통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이치욕으로 느낄 정도로 쉽게 법안을 밀어붙였다.


인지세법은 아메리카에서 전례 없는 위기를촉발했다. 어떤 의미에서 1765년 여름과 가을에 벌어진 폭동과 시위는 인지세법 도입 사건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시위와 폭동도 흥미로웠지만, 위기 사태에 시위대가 조직되고 현지 정치가 재조직된점은 그보다 더 주목할 만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식민지의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게 수립되는 과정에서 식민지인의 자의식이 발현되었다는 사실이다 - P161

버지니아 하원은 5월 31일 일련의 결의안을 승인했다. 본국의 정치체제는 과세권을 주민 또는 그 주민들의 대표들에게 한정시키고, 이 권리는 영국 정치체제 아래 사는 영국 신민인 버지니아인에게도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숨겨진 뜻은 너무나 분명했다. 아메리카인이 대표를보내지 않은 기관인 영국 의회는 그들에게 과세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 P162

1766년 초가 되자 대부분의 식민지 정치 상황은 인지세법이 통과된 1765년 3월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매사추세츠는 폭력 행위가 처음 시작됐고 정치도 변모해 갔다. - P172

오티스는 봄에 두 편의 소논문을 발간했는데, 그의 이전 논문 영국 식민지들의 권리〉(1764년)에서 취한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을 뒤집는 내용처럼 보였다. 이 두 소논문은 영국 의회의 주권과 영국 의회의 식민지 과세권을 인정했다. 그다음에는 기이하게도 식민지는 사실상 영국 의회에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지만 법률에 의해표를 파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 P178

글을 발표하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기로 결심한 소수의 사람들은매사추세츠 인지 분배관으로 임명된 앤드루 올리버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열 나인 Loyal Nine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자유의 아들들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들은 장인과 가게 주인 등으로 구성되었고, 존 길John Gill과 함께 《보스턴 가제트》를 발간했던 인쇄공 벤저민 이데스Benjamin Edes도 일원이었다.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가 이들과 비밀리에 몇 차례 만나기는 했으나,
이 그룹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의회 지도자는 없었다. 로열 나인 중에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유일한 인물은 존 에이버리 John Avery 였다. 그는1759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상인이었고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다. 로열 나인은 하노버 광장에 있는 체이스와 스피크먼 증류소에서자주 만났고, 거기에서 8월 14일의 폭동을 계획한 듯했다.43 폭동이라는 거친 일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은 유경험자를 동원했는데, 바로 최근에 통합된 노스 엔드와 사우스 엔드의 폭도였다. - P181

따를 사례가 필요했든 아니든, 보스턴 폭동은 아메리카 전역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인지세법에 대한 혐오감은사회 모든 집단에 퍼져 있었고, 인지 분배 업무를 맡은 세금 징수관과그 일당에게 자연스럽게 분노가 집중됐다. 10월 말에 이르면 아메리카로 임명된 인지 분배관들 중에서 두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사임했다.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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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3세 즉위
총리인 윌리엄 피트의 리더십으로 전쟁 승리
군사, 재무 중심의 국정 운영을 통한 관료제 ->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지배 체제 공고화

18세기 아메리카 식민지: 자치 행정 + 식민지 의회
종교부흥 운동인 대각성 운동으로 지역적 연대

피트는 18세기의 경이적인 인물이었고, 음울한 정치가들과 몽매한 대중을동시에 환호하게 만든 지도자였다. 특별한 호소력을 가진 그의 기질과 심성으로 강력하게 일을 완수했으며, 사회적 통념과 반대를 모두 무시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피트는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그런 성품대로 일을 완수했으며, 평범하고 뻔한 것을경멸하면서 화려한 웅변으로 자신의 입장을 멋지게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면서 영감까지 불어넣는 그의 웅변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 P24

유럽인에게 위대한 국가는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유럽의 귀족,
은 프랑스 문화를 존경했고, 프랑스의 도서를 수집했으며, 잘 꾸민 방에 프랑스 가구를 들였다.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옷을 입었고 프랑스어를 했다. 영어는 영국 사람이나 쓰는 말이었다. ‘필로조프philosophes‘라 불린 18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 계몽철학자들은 과감함과 상상력을 존중하는 유럽 사람들에게 높은 지적 수준을 제시했다. - P29

유럽이 영국을 한 수 아래로 보는 태도는 사실 편견에 따른 것이다.
영국 문화는 야만적이지 않았다. 물론 생생한 활기를 자랑하는 프랑스 문화와 같은 과감함과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귀족제의 세련된 매너가 프랑스의 미술과 문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귀족이 예술을 애호한 것은 사실이나 그건 영국 귀족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이든 프랑스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자는 귀족이 아니었고, 그들이 세련된 수준과 기준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 P32

영국인이 볼 때 공기 중에는 더 이상 유령이나 요정, 복수의 여신인 퓨리스Furies와 정령, 마법사나 귀신 등이 넘쳐나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더 이상 예언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이 활약할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들은 한 세기 전만 해도 충만한 성령의 흐름 속에서 세상을집어놓으려고 했다. 공기 중에 아직도 환상이 가득 차 있고 영국에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해야 한다는 과도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여전히있었지만 그 공기를 정화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 P40

영국에서 모든 정부는 왕의 정부였다. 교구의 가장 낮은 관리에서총리에 이르기까지, 행정 업무는 모두 왕의 이름으로 수행되었고, 행정은 정교하지만 효율적이지는 못한 정부 구조로 제도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제도적이라기보다는 왕 자신의 개인적인 행정이라 할 수있었다. 왕은 정부 조직의 맨 꼭대기에서 능동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는 행정부의 지도자, 왕실의 권한을 행사하는 장관들의 지도자였다.
왕은 일정한 제약 내에서 자신에게 봉사하는 장관들을 선택했다. 그제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의회의 지도자들이 다른 의원들과함께 정부의 일을 할 용의가 있어야 하고, 상하 양원의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왕에게 내각 구성이나 각료 개인에 관한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의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입맛대로내각을 구성하려는 왕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다. 단 자신들이 왕의지명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했다. - P42

충분히 검토한 바가 없으면서도, 영국 내의 일반적인 의견은 식민지 관계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분명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식민지는 식민지일 뿐이므로, 13개 식민지는 속령‘이며, 윗사람이 심어놓은화초이고, ‘모국‘의 ‘자녀들‘ 이며, ‘우리의 신하‘라는 것이었다. 식민지와 그 예속 상태를 묘사하는 이러한 언어 선택은 어떤 특정한 현실을묘사한 것이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식민지 경제는 영국의 요구 사항에 부응해야 한다. 경제생활에서의 예속 상태는 절대적이지는 않아도실질적이어야 한다. - P62

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는 사실상 각자 독립해 있었으므로, 그들사이의 정치적 협력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고 누구도 식민지를 단합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인디언 문제나 전쟁 등의 공동 관심사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단합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 P69

아메리카인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국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종교는 그런 여러 방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심지어 혁명에 미온적이고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도 종교는 중요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무엇보다도 아메리카에서 종교가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종교는가치, 이상, 세상을 바라보고 반응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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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태동

땅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 이동한 아메리카인.
분쟁을 잠재우기 위해 설정된 인디언 보호구역.
설탕법을 둘러싼 논란.

영국 각료들은 상당한 기량을 갖춘 정치적 전략가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놀라운 실수를 저질렀다. 아메리카인의 생각을 잘 모르는 채로 정책을 결정한 것이 최악의 실수였고, 그들이 생각을 분명하게 표명했을 때 타협하기를 거부한 것 역시 심각한 실수였다. 영국 각료들은 아메리카인을 통치하는 과정에서 타협과유연성의 필요를 망각해버리는 등 정치적 감각을 잃은 듯 보였다. 아메리카와 영국 사이의 아주 먼 거리도 이들의 정치적 감각을 둔화시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통치하는 일은 현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평소 예리한 후각을 가진 많은 정치가도 결국은 아메리카의 관심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 P112

사실관계는 명확했다. 땅에 굶주린 아메리카인은 인디언을 무시하면서, 또 인디언의 땅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단속하는 토지 감독관들의 지시를 무시하면서 계속 서부로 흘러들었다. 토지 회사들은 토지의 배타적소유권과 판매권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허가를 따내기 위해 런던과 식민지의 중심지에서 경쟁을 벌였다. 인디언은 저항했고 토지 획득에 혈안이 된 백인을 당연히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P120

그렌빌 내각은 애팔래치아산맥과 미시시피강 사이의 서부 지역에 백인 점령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공식 선언했다. 또한 이 선언에서 퀘벡, 이스트플로리다, 웨스트플로리다라는 3개 식민지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공표했다. 이 지역들은세인트로렌스밸리의 프랑스 정착촌과, 예전에 스페인 땅이었다가 7년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할양된 땅이었다. - P125

1763년 영국의 국가 부채 규모를 살펴본 각료라면 누구라도 너무놀라서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1763년 1월 5일 당시 재무부 회계에 따르면 국가 채무는 1억 2260만 3336파운드라는 엄청난금액이었다. 더욱이 이 원금에 대한 1년 이자만 440만 9797파운드나되었다. 1년 후 700만 파운드 정도의 부채가 더 늘어났고, 그렌빌이내각을 떠난 지 6개월 뒤인 1766년 1월에도 700만 파운드가 추가됐다. - P126

그들은 세수 증대를 위해과세를 해야겠다는 영국 의회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권리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 권리를 누렸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권리는 언제나 사치품 같은 것이었다. 아메리카인들은 곧 그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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