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계년사 9
소명출판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08년부터 1910년까지의 3년 간의 역사를 다뤘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스토리였다.
아는 내용인데도 마주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1. 전명운과 장인환의 미국인 스티븐스 암살

정부 고문관 스티븐스가 휴가로 제 나라에 3월 21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지역 신문기자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기사가 실린 뒤 샌프란시스코의 우리나라 인민들은 분노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3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공립관에서 공동회가 열렸고 대표 최유섭 문양목 정재관 이학현 등 네 명을 보내 스티븐스를 방문토록 했다. 네 사람은 스티븐스에게 우리나라 정세를 묻고 신문 기사에 대해 따져 물었으나 스티븐스는 잘못을 바로잡을 게 없다 말했다. 네 사람은 화를 참지 못하고 스티븐스를 폭행했으나 주변 이들이 말려 겨우 진정하고 사태 수습 후 돌아갔다.
3월 23일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오클랜드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전명운과 장인환이 세 발의 총을 쏘았다. 스티븐스는 넘어져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사망하고 장인환은 전명운이 쏜 총에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12월 23일 두 사람의 판결은 장인환 25년 징역, 전명운 95개월 징역에 처해졌다. 애국심에서 한 행동이 인정되어 정상 참작된 것이다.

스티븐스는 말했다.

"한국에는 충신 이완용이 있으며 또 이토 히로부미 통감도 있으니 한국과 동양의 행복입니다. 내가 한국의 형편을 보건대, 태황제의 허물이 너무 많았습니다. 고집 센 무리들은 백성의 재산을 도둑질했으며, 인민은 어리석어 독립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빼앗아 가지지 않았더라도 일찍이 러시아가 강제로 합쳤을 것입니다. 나는 일본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 - P24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대장 대신은 극동지역을 시찰하기 위해 하얼빈에 왔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와 만나 만주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걸어서 각국의 외교관들, 인민들 앞으로 와서, 악수를 하고 일본인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갑자기 러시아 군대가 있는 쪽에서 총탄이 발사됐다. 이토 히로부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안중근은 체포되었다.
11월 3일 안중근 및 이 사건에 관련된 8명이 여순에 도착했다. 한 대의 마차에 나누어 싣고 시가지를 거치지 않은 채 산길을 돌아 곧바로 여순의 감옥서로 향했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는 사형장에서 동양의 평화에 있는 힘을 다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안중근의 두 동생은 그 시신을 귀국시켜 그의 고향에 장사지내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일본인이 허락하지 않아 여순의 공동묘지에 장사지냈다. 

여러 사람들은 아내나 자식 일에 이르게 되면 슬퍼하고 눈물 흘리며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독 안중근만은,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내나 자식은 생각하지 않으며, 암살 사건은 달리 관계된 사람은 없고 오직 자기 한 사람의 뜻이었다고 했다. - P53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은 가득찬데, 오히려 또 간사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일본의 보호정책에 한국의 인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따른다'며 각국에 발표하여 세계를 속여넘겼다. 이제야 한국의 뜻 있는 사람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잔인한 행위와 한국인들의 복종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널리 드러내어 알리기 위해 많은 수가 외국으로 나아갔다." - P130

"나는 사천 년의 우리 조국을 위하여 이천만의 우리 동포를 위하여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하여, 우리 백성과 나라의 권리를 짓밟고 우리 동양 평화를 어지럽게 하는 간악한 도적을 죽이는 하나의 거사, 이것이 나의 목적이다. 이와 같이 바르고 옳으니, 나는 국민의 커다란 의무로서 살신성인하려고 한 것이다." - P136


3. 이재명 등의 이완용 암살 시도

1909년 12월 22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이 벨기에국 황제 레오폴드 2세 추도회 참석 후 돌아가기 위해 나섰다. 이재명이 길 옆에서 나와 단도를 휘두르며 인력거 앞으로 달려들었다. 인력거꾼을 찌르니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다. 수레가 뒤집히고 이완용이 허리와 어깨가 찔리자 순사들이 이재명에 맞서며 상처를 입혀 이재명은 결국 붙잡혔다.
1910년 5월 13일 이재명 등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방청인들이 1천여 명이었는데, 방청권을 얻은 사람은 1백 여명을 넘지 않았다. 변호사 안병찬, 이면우, 오사키 유노쇼, 이와타 센소, 기오가 줄지어 앉았다. 한국과 일본의 신문기자 수십 명도 자리했다. 독일 통신사의 사원 보리안(정확한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다)도 있었다. 이재명의 아내 오인성과 백 소사 등 부인 다섯이 있었다. 사법청 관리 10여 명과 독일의 총영사도 자리했다.
최종 선고로 이재명은 사형, 김정익 김병록 이동수 조명호는 징역 15년, 오복원 전태선은 징역 10년, 김용문 박태현은 징역 7년, 이응삼 김병현 김이걸 이학필은 징역 5년에 처해졌다.

"이완용이 죽어 마땅한 죄는 하늘과 땅에 가득하여, 낱낱이 지적할 겨를도 없다. 5조약의 이전과 7조약 이후의 드러나지 않은 죄는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으므로 이쯤에서 그만두겠다." - P218

"이재명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한 사람의 이재명이지만, 죽은 뒤에는 수천 수백의 이재명으로 바뀌어져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분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빨리 통감을 없애버리고 당장 5조약과 7조약을 폐기하며, 그밖에 옮겨지거나 빼앗긴 모든 우리 나라의 권리나 물품을 일일이 돌려 받아, 뒷날의 두려워할 만한 일을 벗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P224


국민들에게는 그 어떤 시도들보다 통쾌한 소식이었겠지만 이들이 암살 또는 기도 이후 법정에서 하는 이야기와 암살 배경 스토리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리고 변호를 맡은 안병찬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변호인으로써 최선의 변론을 하는 모습은 정말 뭉클했다. 안병찬 선생은 안중근, 이재명 재판에 변호를 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이 아니면 변호 자체가 거부되어서 달려갔음에도 변호를 할 수 없어 무척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재명 변호는 진행은 되었으나 1심의 결과 그대로 사형이 내려졌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셨을 것이다.


4. 일진회의 (끊임없는) 한일합방 상소

전 일진회 부회장 홍긍섭이 이토 히로부미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일진회 총재 송병준과 한일합방의 문제에 대해 은밀히 논의했다. 귀국해서 일진회 회장 이용구와 이 일에 대해 은밀히 논의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연합한다는 ‘한일연방’의 이야기와 한국과 일본이 한 나라로 합친다는 ‘한일합방’의 이야기, 일진회 회원들이 화계사에 모여 ‘합방선언서’를 기초했다는 이야기 등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며 인심이 떠들썩했다.
1909년 12월 2일 밤 이용구는 일진회 본부 앞에서 총회를 열었다. 참석한 회원은 수백 명이었다. 한 회원에게 성명서를 낭독시키게 한 뒤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발표했다.(이때 여러 회원은 갑자기 이 말을 듣고 까닭을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했다. 이용구는 회원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인정한다고 생각해 만장일치 가결이라 했다.) 우편으로 성명서를 내각과 부 원 청 및 13도 관찰사와 군수, 서울과 지방의 각 사회단체, 학교와 신사들에게 발송했다.
12월 3일 밤 대회에서 한일합방의 문제를 결의하여 황제에게 상소했다. 또 한 통의 상소를 통감 소네 아라스케에게 보내 일본 황제에게 아뢰어 달라고 부탁했다. 또 이완용과 소네 아라스케에게도 편지를 올렸다.

일진회는 1904년 8월 송병준이 일본군을 배경으로 유신회가 조직되었다가 일진회로 개칭된 후 9월에 동학 잔존 세력이던 이용구의 진보회를 흡수하여 최종 통합된 조직이다.
따라서 천도교 세력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상소로 인하여 일진회 회원 중 많은 이들이 탈퇴하고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손병희, 오세창, 권동진 등도 이 때 일진회와 결별하게 된다. (손병희 등이 일진회에 몸담았다는 것이 사실 그들의 인생의 오점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물론 이후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나는 이전부터 일진회라는 세력 자체의 기원과 이후 조직이 전개되는 과정이 매끄럽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이 때의 시대적 상황이 그렇기도 했고 조직이 여러 번 변화를 겪었던 과정이 있지만 그럼에도 껄끄럽고 찜찜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어쨌든 한일합방 청원 상소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같은 민족이면서 마치 일본인의 입장 같은 발언을 일삼는 그들을 보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법률에서 '정치적으로 나라를 합친다'고 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합병'은 나라의 영토를 큰 나라에 딸려 붙이는 것이라느니 갖가지 다른 잘못된 말로 선동하면서, 인심을 의혹시키고 나라의 방침을 어지럽게 하여 갈수록 헛갈리게 합니다. 앞길을 아득하게 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은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련한 정치가와 의분에 찬 뜻 있는 선비들은 이 일에 대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책이 이를 너그럽게 인정할지를 알지 못하여 애써 속을 태웁니다. 일본의 황실과 정부의 여론이 이를 너그럽게 인정하는 것은 우리 이천만 국민 모든 사람이 진실로 호소하고 요청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 P68

근대 세계의 대세가 크게 바뀌고 국제 경쟁이 더욱더 격심해져 이긴 자는 흥하고 패한 자는 망하는데 이것은 진화의 법칙으로 보아 당연한 것입니다. 인도 미얀마 자바 필리핀이 멸망한 것이나 베트남 타이가 거꾸러진 것, 중국이 쇠퇴해진 것이 다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 P80


이들의 논리의 기저에는 진화론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약하고 일본은 강하다라는 논리, 그 흐름 속에 대한제국은 사직과 백성을 위해 일본에 합쳐져야 보전될 수 있다라는 흐름으로 가게 만든다. 당시 일진회는 전국적으로 80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합방 청원 상소 이후 채응언 등 의병들은 들불처럼 일어났고 이용구 등을 처단하라는 상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용구는 합방 청원이 거절당했으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생각해 이후 연이어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상소, 국민대연설회가 줄기차게 이어졌고 이들을 처단하라는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잘 울지는 않지만 도무지 눈물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 그랬는데 한 번은 안중근의 변론과 사후 과정.
다른 한 번은 이재명의 변론 후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한일강제병합 소식이다.

두 분 모두 재판 과정에서 결코 굽힌 적이 없고 시종일관 기개가 있었고 당당했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내 삶을 생각하지 않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분들이다. 남에게 손벌리거나 아첨하거나 그러기 쉬웠을텐데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이들이다.

비록 1910년 대한제국은 망했으나 그 과정이 진행되기까지 선택의 순간들은 많았다.
국가의 선택의 순간들.
개개인의 선택의 순간들.
당시의 선택들이 그 당시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현재는 그 선택에 따른 평가를 각기 받게 되었으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12 2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국가는 망했지만 국민들은 망하지 않았단 생각들어요. 그 용기와 기개는 정말!!!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거리의화가 2022-03-13 11:58   좋아요 1 | URL
대다수의 백성들의 행동이 권력자들의 오만이나 잘못을 참고 두고 보지 않았다는 게 놀라워요. 지금도 계속 이 전통(!)은 이어지는 것 같아서 뿌듯함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보고 들을 때마다 존경스러워요. 개인의 삶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고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scott 2022-03-15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08년부터 1910년까지 고통스러웠던 한반도


화가님 읽는 동안 흘러 내리는 눈물 ㅠ.ㅠ

역사의 과오, 독립 운동가들이 흘린 피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2-03-15 17:41   좋아요 2 | URL
눈물 훔치며 읽었어요.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할 수가 없다는.

역사에서 배울 수만 있다면 지금 이렇지 않을텐데... 왜 늘 반복되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전진할 수 있기를 희망할밖에요^^
 

<엑소시스트>의 다양한 패턴과 갈등을 통해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대립이 남자와 여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싸움이라는 것을알 수 있다. 이 싸움은 검은 옷을 입은 노파/마녀와 머린 신부, 크리스맥닐과 그녀의 남편, 데미안 신부와 그의 어머니, 데미안 신부와 병원에버려진 여자들, 리건과 의사들 및 교회의 신부들과의 관계 안에서 드러난다. 더 광범위한 대립이 리건과 데미안 신부와의 사이에서 표현되고,
있거나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은 유사와 대립의 패턴에 연결되어 있다. 악마로서의 리건이 강력한 반면 신의 대변인인 데미안 신부는 약하고무기력하다. 그는 믿음을 잃었을 뿐 아니라 교회를 떠나려고 생각 중이었다. - P80

<엑소시스트>는 질서가 재정비되기 전에 관객으로 하여금 정상적으로는 터부로 여겨지는 행동에 동일시하여 탐닉하도록 하기 때문에정화의 제의와 다르지 않다. 물론 이것이 공포영화의 핵심 매력이다.
그러나 <엑소시스트>의 다른 점은 괴물성과 여성 신체의 시각적 결합이다. - P81

비체는 자기를 구성함에 있어 반드시 추방되거나 제거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상징계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기 위해서 주체는 용납될 수 없거나, 부적절하거나, 혹은 지저분하다고 여겨지는 행동, 언행, 그리고 존재양식의 모든 형태를 거부하거나 억압해야만 한다. 거부되어야만 하는주체의 개인적 역사 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아기의 신체적 경험그리고 배변 훈련과 연관이 있다. 담즙, 오줌, 똥, 콧물, 침, 피와 같은신체적 배설물의 모든 표시들은 비체로 취급되어야 하며 깨끗하게 치워져서 눈앞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런 담즙, 피, 침, 오줌, 토사물과같은 아브젝션의 한 특징인 신체적 배설물을 전시하는 것이 <엑소시스트>의 핵심이다. - P82

악령이 들린 여성 주체는 상징계 질서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적절한 자리에 위치하기를 거부하는 존재이다. 그녀의 저항은 전 오이디푸스 단계로의 귀환, 기호계적 코라로의 귀환으로 재현된다. 그러나일반적인 사건의 상태는 전복된다. 이자 관계는 아이의 ‘깨끗하고 적절한 몸이 아니라 지저분하고 훈련되지 않았으며 상징화되지 않은 몸의귀환으로 드러난다. 아브젝션은 불결하고 탐욕적이며 육욕적인 여성육체의 반란으로 구성된다. - P83

리건은 그녀가 상징계 질서의 법에 의해 정착된, 자기의깨끗하고 적절한 몸을 구성하고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주요 터부를깨고 있기 때문에 기괴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이런 법과 터부의나약함을 강변한다는 사실이다. 리건의 빙의는 이런 비체적 요소들이절대로 성공적으로 제거되지 않으며 그저 주체 정체성의 경계에서 그정체성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조용히 잠재해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리건의 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체와 비체 사이의 갈등이 묘사되는 방식이다. 이런 갈등의 격전지가 바로 리건의 몸인것이다. 이 갈등은 말 그대로 몸의 내부에서 그리고 몸을 가로질러 일어난다. - P83

<엑소시스트>는 우리의 기원이 되는 어머니의 몸과의 화해란 오직 우리 문화의 비체와의 조우, 그 공포와의 조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성은 그녀가 상징계적 질서를 공격하고, 약점을 드러내고, 그 나약함을 가지고 놀 때 악령에 홀린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여성은 상징계적 질서가 성적 억압과 어머니의 희생 위에 구축되었다는 것을 강변한다. 마지막에 리건과 어머니는 다시 결합한다. 두 명의 ‘아버지’들은 죽었다. 상징계의 질서는 회복되었지만, 그것은 오직 명목에 불과하다. - P88

남자는 여자를 욕망하지만 그를 소진시키는 죄 많은 음식과 그가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그 자신을지켜내야만 한다(ibid). 나는 죄/아브젝션이 내부로부터 비롯되는 어떤것이라는 정의가 여성을 기만하는 반역자로 위치 짓는 길을 열었다고생각한다. 그녀는 겉으로는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는 악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외면적으로는 아름답지만 내면은 썩었다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악한 본질을 말하는 가부장적 담론 안에서 매우 인기 있는 정형이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체(abject)라는 개념을 알기 위해 추천받은 책이다.
2016년에 쓰여져서 메갈리아 논쟁, 강남역 살인사건 등 그 시기 이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 실례의 신선함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비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여성괴물에서 비체 개념을 처음 접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행히 이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는데 얇으면서도 개념이 명징하게 잡혀서 정말 좋았다.


비체는 abject. 객체object와 어떻게 다를까?
단어를 보면 알겠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객체는 말 그대로 대상이다.
비체는 정해진 위치에서 벗어난 것. 기존의 질서로는 이해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항상 흐르고 있어서 쉽게 잡히지 않는 존재이다.


비체는 흐르는 것이자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며 고체화되지 않기에 어떤 규정, 어떤 언어로도 잡히지 않는다. 비체가 대상object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주체의 모든 규정성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비체는 손에 잡히는 착한 대상이 아니다. 비체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더럽다고 여겨졌던 것이며 잡힐 수 없기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비체는 철통방어라고 여겨졌던 경계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존재이며, 따라서 특정 사회적 질서와 동일성을 강화하려는 자들에게 경계를 위협하는 비체는 공포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 P29


비체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혐오집단으로 치부된 이유는
남성이 여성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여성을 끊임없이 객체로 몰아갔던 이유가 있다.
이 굳건한 지배 구조에서 비체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억압된 것이다.
남성들은 굳건한 지배구조를 깨뜨리거나 흐트러뜨리는 비체를 공포스럽게 느끼며 혐오집단화했다.


이 책은 객체와 비체가 어떻게 다른지. 객체에서 비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시화의 시대 속에서 여성 비체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여성혐오가 인정 욕망과 왜 연결되는지 이론과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체라는 개념을 얻은 것 외에도 비체가 존재하는 공간이 사회 밖이 아니라 사회 내부라는 사실도 되새겼다.
무엇보다 여성혐오가 인정 욕망과 연결되고 신자유주의 사회의 폐해까지 더해지면서 확대된 것에도 공감이 가서 좋았다.


비체는 항시 흐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비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비체들이여!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11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화가님 감사합니다. 비체, 정리 넘 잘해주셔서 쏙 들어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3-11 20:13   좋아요 1 | URL
이 책 읽고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리됐어요. 이제 여성괴물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습니다^^

독서괭 2022-03-11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체들이여!! 라는 말씀이 멋지네요^^

거리의화가 2022-03-11 20:17   좋아요 2 | URL
앗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낯설고 어렵더군요. 모르는 게 너무 많고 해서 그저 짧게 정리하는 수준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리뷰 쓰는 거 자체가 어려운데 이렇게 조금씩 시작하는거겠죠^^;

수이 2022-03-11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읽기도 전에 개념 잡히니 넘 좋아요. 이제 저도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3-11 21:40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비타님 아자아자!

다락방 2022-03-11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거리의화가 님 같이 읽게 되어서 너무 좋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ㅠㅠ 게다가 이렇게 글도 써주셔서 진짜 감사드려요. 복받으세요! ㅠㅠㅠ

거리의화가 2022-03-11 21:44   좋아요 1 | URL
어휴 다락방님 무슨 말씀을… 이 책 읽고 여성괴물 읽으니 확실히 이해가 잘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여성의 날 이벤트를 하기에 책을 주섬주섬 담았다.(롱머그의 유혹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주문에 포함을...^^; 흰색과 카키색 찜!)





4월의 여성주의 도서와 리베카 솔닛의 신간, 다락방님이 추천해주신 책 중 미투운동, 기후위기, 그리고 미 대선 이야기가 담겨 있는 리베카 솔닛 책과 과학자의 이야기가 재밌어 보여서 추가로 선택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언젠간 구매해야겠다 생각했던 책이라 주문에 포함시켰다.

이것저것 담다보니 또 많아졌네.



지난 주에는 에릭 홉스봄 평전과 조소앙 평전이 한꺼번에 나와서 나를 반색하게 했다.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데 에릭 홉스봄과 하워드 진을 특히 좋아한다.

한국사에서는 여운형 선생과 안재홍 선생을 존경하는 것처럼.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극단에 치우친 주장을 경계하게 된다.

이 책들도 조만간 읽게 될 것 같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2-03-11 1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롱머그 주문하시는 건가요 화가님 ㅎ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3-11 11:32   좋아요 3 | URL
ㅋㅋ 유혹에 넘어갔어요ㅠㅠ 집에 없던 디자인이라고 합리화해봅니다ㅋㅋ

새파랑 2022-03-11 12:12   좋아요 3 | URL
롱머그의 유혹은 독서괭님이 뿌리신거 아닌가요? ^^ 역시 스트레스에는 책 쇼핑이죠~!!

거리의화가 2022-03-11 13:07   좋아요 3 | URL
이벤트 보자마자 롱머그 이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ㅎㅎ 그리고 주문은 이미 했습니다!ㅋㅋ 몇 권은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에요. 15일 출고라고 뜨네요.

독서괭 2022-03-11 14:16   좋아요 1 | URL
저는 잘잘라님에게 유혹 당했습니다 ㅎㅎ

수이 2022-03-11 11: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카키와 화이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커피는 화이트지! 하고 화이트로 결정 :)

거리의화가 2022-03-11 13:08   좋아요 2 | URL
비타님 전 카키색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옷도 카키색을 즐겨 입는답니다. 야상 정말 자주 입어요..ㅎㅎ 어쨌든 다른 디자인이라 두 개 사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2-03-11 13:12   좋아요 3 | URL
저는 화이트, 그레이, 그린이 오고 있습니다. 😌

수이 2022-03-11 13:18   좋아요 2 | URL
야상 자주 입는 저도 갈등하다 하나만 골랐는데 왜 다들 이렇게 많이 골라요?! -.-;;;;;;

거리의화가 2022-03-11 13:26   좋아요 0 | URL
머그 많이들 담으시는군요. 알라딘 장사 맛집 맞는듯^^;

독서괭 2022-03-11 14:16   좋아요 1 | URL
오 저는 블루인데!!

수이 2022-03-11 14:28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머그 받으면 인증샷 콜?! 😊

독서괭 2022-03-11 15:37   좋아요 1 | URL
콜!!😆 원래 오늘 받을 예정이었는데 출고지연 되어 늦어질 것 같아요 흑

건수하 2022-03-11 22:45   좋아요 1 | URL
저는 카키!

수이 2022-03-11 22:48   좋아요 1 | URL
방금 전에 또 질러서 카키도 옴! ㅋㅋㅋ

다락방 2022-03-11 23:14   좋아요 0 | URL
브라보!! ㅋㅋㅋㅋㅋ

mini74 2022-03-11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힘내서 결국 주섬주섬 책을 담는군요. 화가님 저도 ㅠㅠ 롱머그 잘 와야 헐텐데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3-11 13:26   좋아요 1 | URL
넵 미니님 역시 스트레스엔 책 구입이 짱!ㅎㅎ 안 깨지고 잘 오겠지요^^ 갑자기 머그 주문이 많이 늘었을듯...ㅋㅋ

페넬로페 2022-03-11 1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롱머그 집에 구비해둬야 알라딘 서재의 일원으로 남는건가요?

거리의화가 2022-03-11 17:33   좋아요 2 | URL
그럴리가요^^; 하나 둘씩 머그 담아가신 분들이 느신 것은 맞지만 안 사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 집에 머그 많아서 쳐다도 보지 말아야지 했어요. 근데 자꾸 보다 보니 밟혀서...ㅎㅎ 제가 넘어간거지요뭐^^

그레이스 2022-03-11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짝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응집력이 생기니까.
밀물에도 물러나는 파도는 있구요.

거리의화가 2022-03-11 17:34   좋아요 3 | URL
앞으로 갈 때 살짝 후퇴했다가 전진하는 것같은 이치겠지요^^ 여성들이 단결할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것 같습니다.
 

언제 다시 길을 나서게 될까?

2019년 6월. 후쿠오카 여행이 마지막이 되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짧은 감기처럼 금방 지나갈 줄 알았건만 3년째 계속되는 전염병과의 사투는 진을 빠지게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보게 된 대선 결과.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니길 바랐었다.

그래서 쉬이 잠에 들지 못했던걸까?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밤사이 엎치락뒤치락 했을 득표율에 일희일비했을 사람들의 간절함이 잠시나마 떠올랐다.

난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옆지기와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둘다  잠시 허탈했지만 결과를 뜯어보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몇십만 표 차이이기에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졌을 뿐 결코 당사자는 오만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뽑은 이들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뽑지 않은 이들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여성 득표율의 2/3은 이재명을 지지했기에 윤석열은 그 결과를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혐오가 아닌 존중의 정치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윗 글은 아침에 쓴 글이다.

참으로 길고 멍한(?)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잠을 설쳤는지 집에 오니 코피를 쏟았다. 

이거 몇 년만인지... 몸이 쉬라고 하는 신호인가보다 싶다.


5년의 시간이 답보 또는 후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소리를 내질러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ini74 2022-03-10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ㅠㅠㅠ 코피까지 나셨다니 ㅠ 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요 우리 !!!! 아프지 마세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3-11 09:09   좋아요 2 | URL
어제는 꽤 잘 자고 일어나서 괜찮습니다. 이젠 몸 뿐 아니라 정신도 챙겨야 할 것 같죠? 같이 힘냅시다!

페넬로페 2022-03-10 2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몇 십만표에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그까이꺼 깡그리 잊어버리고 무시할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3-11 09:10   좋아요 3 | URL
총선 때 저력을 다시 보여줘야죠. 그래서 무시가 답이 아니라 더욱 잘못된 지점을 이야기하고 소리높여야할 것 같아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없습니다!

청아 2022-03-10 23: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멋져요! 이렇게 근소한 차이가 나왔으니 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서실장 인선에 참 어이가 없었지만 더 두고봐야겠죠. 함께 기운내요~^^♡

거리의화가 2022-03-11 09:12   좋아요 3 | URL
네. 만약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고 자만한다면 바로 실패하게 될 겁니다. 주변의 인물들을 고루 뽑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정말 단임 대통령제가 아닌 새로운 정치 구도로 바뀌는 등 개혁 바람이 불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