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텍스트들은 어떤 저작에 대한 고찰, 비판이나 반박들에 대한대답, 공연에 대한 분석 등으로서 거의 모두가 어떤 정세 속에서 탄생했다. - P43

각기 어떤 특정한 계기에 탄생한 이 텍스트들은 그렇지만 하나의 동일한 시대와 동일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각기 나름의방식으로, 마르크스 속에서 사고하고자 한 내 나이 또래의 모든 철학자들이 겪어야 했던 하나의 특이한 경험, 즉 역사가 우리를 몰아넣은 이론적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수 불가결했던, 마르크스의철학적 사고에 대한 탐구에 관한 증언들이다. - P44

철학한다는 것은 청년 마르크스의 비판의 오디세이 여정을 우리 스스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었으며, 우리에게서현실을 훔쳐 간 환상들illusions의 층을 뚫고 나간다는 것이었고, 비판의 영원한 감시 아래 서로 조화하는 현실과 과학이 주는 휴식을 마침내 찾기 위해 유일한 고향 땅인 역사의 땅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독해 속에서 철학의 역사라는 질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소산된 환영 fantasme의 역사, 통과된 암흑의 역사가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오직 현실의 역사만이 존재한다. 현실의 역사는 잠자는 이에게 앞뒤가 맞지 않는 꿈들을 꾸게 할 수 있지만, 이 심연의 유일한연속성에 정박하고 있는 그 꿈들은 그 자체로 결코 역사의 대륙을 구성할 수 없다. - P59

교조주의의 종언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현실에 대면하도록 했다. 자신의 역사 이론을 창설하는 행위 바로그 속에서 마르크스에 의해 창설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레닌이 그주춧돌만 놓였다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 앞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현실. 교조주의의 어둠 속에 우리가 겪으면서 논쟁한 이론적 난점들은 그 모두가 작위적인 난점들이 아니었으며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철학이 정교제작되지 않은 데 기인하는 것이었다는 현실. 더적절히 말하자면, 우리가 감내하고 유지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경직되고 희화화된 형태들, 두 개의 과학이라는 이론적 기괴성을 담고있는 그 형태들 속에 모종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눈멀고 괴기한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었다는 현실 - 그 증거로는 최근에 재간행된이론적 좌익주의의 저서들(젊은 루카치와 코르쉬)만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약간의 이론적 실존과 정합성이 부여되기를 원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운명과 임무는 아주 단순하게도, 백일하에 이 문제들을 제기하고 이 문제들에 대면하는 것이라는 현실이 그것이다. - P61

포이어바흐는 청년 헤겔주의 운동의 이론적 발전에서 등장한 위기의 증인이자 동인지이다. 1841년과 1845년 사이 청년 헤겔파의텍스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이어바흐를 읽어야만 한다. 특히우리는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포이어바흐의 사상이 어느 정도까지 스며들었는지 볼 수 있다. - P89

한인간이 자신의 연계들을 통해서만큼이나 자신의 단절들을 통해서자신을 드러낸다면, 마르크스처럼 엄격한 사상가도 자신의 이후 진술들을 통해서만큼이나 포이어바흐와의 단절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포이어바흐에 대한 지식이 또한 마르크스와 헤겔의 관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해주리라고 말하려 한다. - P94

마르크스가 보기에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땅에 머물러 있었으며, 비록 그가 헤겔의 땅을 비판했더라도 그 포로로 남아 있고, 헤겔 자신의 원리들을 헤겔에게 되돌려 들이댈 뿐이었다.
포이어바흐는 "요소"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헤겔에 대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요소를 바꿀 것을, 즉 포이어바흐가 그것의 반항적 포로로 남아 있던 저 철학적 문제설정을 포기할 것을 전제한다. - P95

이데올로기적 역사의 진리는 그것의 원 - P132

리(원천)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것의 결말(종말) 속에 있는 것도아니다. 그것은 사실들 자체 속에, 이데올로기적 의미들. 주제들. 대상들을 그것들의 문제설정 그 자체로 현실적 역사에 종속되어 있는 "매여 있고" 유동적인 이데올로기적 세계의 기반 위에서 생성되는 문제설정의 은폐된 기반 위에 결절적으로 구성하는 것 속에 있다. - P133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 자신의 시작으로 인해 갖게 된 저 환상의 베일을 찢어 버릴 실제적 경험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부터 현실로의 이런 뒤로 돌아오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철학"의 텍스트들 속에서 어떠한 반향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근원적으로 새로운 현실에 대한 발견과 일치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에서 발견한 것은 조직된 노동자계급이었다. 엥겔스가 영국에서 발견한 것은 발전된 자본주의였고, 철학 그리고 철학자들과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법칙들을 따르고 있던 계급투쟁이었다. - P150

마르크스 자신의 시작이 부과한 이 이론적 "장정"에서 마르크스는 무엇을 얻었는가? 그가 결말로부터 그토록 먼 곳에서 시작함으로써, 철학적 추상 속에 그토록 오래 체류함으로써, 현실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그런 공간들을 편력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그가 개인으로서 비판적 정신을 날카롭게 가다듬게 되었다는 것과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역사적으로비견할 수 없도록 주의 깊은 "임상적 감각을 취득했다는 것일 터이요, 그뿐 아니라, 특히 헤겔과 접촉함으로써, 모든 과학적 이론의 구성에 불가결한 추상화의 감각과 실제, 즉 헤겔 변증법이 그에게 그추상적이고 "순수한" "모델"을 제공한 이론적 종합 및 과정의 논리의 감각과 실제를 익힌 것일 터이리라.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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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신문을 보고 이 전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되었다는 전시는 2월 중순에 마무리되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명절이 끝나고 나면 아무래도 가보기 어려울 것 같아 다음 날 결심을 하고 길을 나섰다.


수묵화를 잘 알지 못하지만 보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먹의 농담만으로 다양한 표현을 해내는 수묵화는 어느덧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되었다. 거기에 채색을 더하면 화려한 수묵채색화가 된다. 


이번 전시는 제목처럼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 수묵 화가들의 작품들을 총 148점 만날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 수묵(채색)화는 종종 전시에서 만났지만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경험은 결코 흔하지가 않기 때문에 가기 전부터 무척 흥분되었다는 사실^^ 


한국과 중국은 고대부터 같은 문화권 내에 자리하여 공생하여 왔다. 그러나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두 나라의 문화를 전시품들을 만나면서 더욱 잘 느끼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한국 작품은 근대를 대표하는 수묵채색화가들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대 한국화가의 작품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중국 작품은 자오즈쳰, 우창숴, 치바이스 같이 중국 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려져 있는 작가 뿐 아니라 현대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중국 현대 작가는 직업 화가이면서도 교편을 잡고 있거나 미술관 관장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근대 시기 한국은 기존에 사용하던 ‘서화’란 호칭 대신 글씨와 그림을 분리하여 붓과 종이, 먹으로 그린 그림을 ‘동양화’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 그림에서는 서양 미술의 영향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이 적용되어 서양적 색채를 띠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부 그림에서는 전통을 고수하거나 동서양의 기법을 융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도 안중식의 <백악춘효>를 볼 수 있었다(벌써 3번째 정도 보는 것이어서 너무나 익숙해진 그림). 봄의 새벽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림은 여름과 가을에 그려진 것이다. 이번에는 여름본이 걸렸는데 가을본에는 백악산이 왼쪽으로 치우치고, 오른쪽의 해태상이 보이지 않는다. 1915년 그려진 그림으로 이 시기가 되면 경복궁의 전각들이 철거당하던 때여서 작가는 기억과 사진에 의존하여 그렸다. 실제보다 경복궁을 더 크게 부각하여 작가의 숨은 의도를 엿보게 한다.


1930년대에 오면 수묵은 ‘산수’를 주로, 채색은 ‘인물’을 주로 표현하게 된다. 



이용우의 <점우청소>도 그런 대표적인 그림들 중 하나다.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뒤의 산은 흐릿하게 표현하고 앞의 나무와 강둑은 세밀하게 표현하고 진하게 표현하여 대비를 주었다. 



채색 선면화는 부채 모양에 아름다운 수묵채색화가 그려진 그림이다. 이 작은 공간에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는 것이 놀랍다. 작가마다 추구하는 미학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1950년대가 되면 모더니즘의 열풍으로 동양화에도 추상 양식이 차용된다. 



<구월>은 포도넝쿨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가슴을 드러낸 채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보자마자 구릿빛 피부에 건강함이 느껴졌다. 배경이 포도라서 그런지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장운상은 서울대 예술대학 미술부를 1기로 졸업한 뒤 평생토록 동양화를 그린 작가다. 이 그림은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태학의 <전우>는 군에 입대해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한국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된 1961년 그림으로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인물들의 동작만으로 당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다양한 면으로 입체감을 표현하여 사실화이면서도 추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김기창의 <군마>(1955)는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말 다섯 마리가 하나도 같은 모양이 아닐 정도로 각기 다른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 말의 기상처럼 우리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일까.


1960~1970년대에는 국가적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민족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는데 이는 미술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생활 속 일꾼들의 모습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경을 그린 산수화가 다시 유행하였다.



안상철의 <영 62-2>(1962)은 이런 것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나 할 정도로 파격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시회 내 같은 공간에서도 한 눈에 차별성을 엿볼 수 있어 단번에 눈에 띠었다. 이 작품은 총 3개의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 위 화면과 중간에 설치된 목판, 바닥판이 있다. 맨 위층과 중간층에 돌들을 배치해 놓고 화면의 아래쪽을 가로로 길게 찢어서 그 틈을 통해 중간의 돌들을 볼 수 있게 한 구조다. 그래서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적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영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영> 시리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에는 한국적인 소재와 현대 미술 양식을 접목하여 동양화를 현대적인 분위기로 이끌기 위한 많은 작가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원문자의 <정원>(1976)은 선염법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 여백이 거의 없는 것이 눈에 띄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자연의 풍경을 포착하여 집에 들여온 것 같은 느낌이다.



박생광의 <제왕>(1982)은 불교적 색채를 느끼게 한다. 박생광은 민족회화를 탐구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나갔다.



석철주의 <외곽지대>는 도시 외곽의 산등성이나 산비탈 같은 높은 지대에 밀집한 판잣집 달동네를 그려서 당시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당시 상황을 확인하게 한다. 재료가 너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장판지에 먹을 입힌 그림이라고 한다. 



송수남의 <붓의 놀림>(1997)은 한국 현대화 중 내가 가장 오래도록 머물렀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송수남이 현대화에도 수묵화가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추상 수묵화를 연작으로 발표한 그림들 중 하나다. 지필묵만으로 이렇게 현대적인 그림을 나타낼 수 있다니 볼수록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현대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2024년 불과 작년에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그림이다.



이진주의 <볼 수 있는 21>. 이 그림의 독특성은 흰 배경이 아니라 검은 배경이라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2017년부터 이런 블랙페인팅 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저마다의 인식 체계 속에서 다르게 풍경을 인식한다. 작가의 의도도 이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연작은 광목천에 아교를 발라서 바탕을 만들고 물에 부푼 채색 물감을 사용해 색을 칠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물의 잔털까지 보일 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중국의 전통 수묵화는 예술로 역사와 시대를 표현하고 사회와 삶을 반영하는 동시에 자연과 인간을 함께 표현하거나 시화로 미학성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족의 문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자오즈첸은 청나라 말, 이름을 날렸던 예술가이다. 



<화훼>는 서예와 전각을 접목한 화조화다. 강렬한 먹선으로 바위를 강조하고 외곽선을 살려서 사물을 더 입체감 있게 나타내었다. 뒤쪽에 해당화가 그려져 있어 바위와 함께 고풍스러운 기상을 느끼게 한다. 사실 자오즈첸이 유명한 것은 금석화파의 창시자여서이기도 하다. 서예와 전각, 그림이 무척이나 조화롭다.



우창숴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가로 중국 근대화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학자 집안에서 자라 서른 살 무렵에야 직업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구슬 빛>(1920)은 등나무를 묘사하고 있다고 하는데 언뜻 보면 그냥 먹을 대충 벅벅 그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또 저런 붓질이 없었다면 그림에 생동감이 덜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호쾌하면서도 자유로움이 엿보이는 그림이었다.



사실 앞서 소개한 자오즈첸과 우창숴보다 내게는 치바이스라는 이름이 더 각인되어 있다. 치바이스는 20세기 중국 예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그래서 치바이스의 그림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 그저 감격스러웠다. <연꽃과 원앙>(1955)에는 두 마리의 원앙과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연꽃과 원앙의 그림을 다른 기법으로 표현하여 마치 두 개를 다른 사람이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먹과 채색만으로 이런 풍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판제쓰의 <석굴 예술의 창조자>(1954)는 둔황석굴을 표현하였다. 화려한 뒷면의 석굴 그림과는 다르게 앞에 그려진 화가와 후원자들은 간소화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현대로 가면 국가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진다. 최근에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예술 표현을 확장하는 데 주목하게 된다.



라오빙슝의 <자조>(1979)는 항아리를 깨고 나왔지만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표현했다. 예술과 자유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자유를 빼앗겨 억압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해학적인 묘사 속에서도 서글픔이 느껴진다.



천다위의 <끓어오르는 마강>(1960)은 중국 산업현장인 마강(당시 철강 기업 이름)의 건설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분주한 산업 현장의 인부들과 건설 현장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산업 현장의 열기를 느끼게 한다. 



양즈광의 <광산의 새로운 일꾼>(1972)은 여성 광부의 모습을 표현해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양화의 기법을 활용해 화려한 색채감으로 인물을 강렬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배경은 간결하게 표현한 데 반해 여성 광부인 인물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물을 부각시킨다. 인물은 마치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후밍저의 <영원>(2008)은 암채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이다. 암채화는 천연 광물로 만든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도 다양한 색상의 암석을 갈아 알갱이로 만들고 알갱이를 접착제와 혼합하여 안료로 사용하였다. 광물성 안료는 색이 깊으면서도 오래 보존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암석들 사이에서 중앙에 하늘색 공간이 눈에 띠는데 마치 빠져 들고 싶을 만큼 깊숙한 공간감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류윈취안의 <넓은 마음으로 바라본 세계>(2018)은 제목에서 일단 눈길이 가고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한 그림에서 관객을 또 한 번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글씨에 주목하시라. 여백의 미를 강조하여 인간의 좁은 시선을 넓은 시야로 확장하라는 작가의 주문을 보여주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중국 현대 작품들 중 가장 오래 시선을 머무르게 한 작품이었다.


총 3시간을 넘게 들여 전시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허락한다면 5~6시간을 봐도 모자르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다만 전시 도록을 사려고 했더니 품절이라고 해서 좌절했다. 아니 전시에 도록이 없다니 너무하잖습니까. 2월 중순에 전시가 끝나는지라 또 보러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한 번 더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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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1-28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바이스!
꼭 가봐야 겠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5-01-29 08:24   좋아요 1 | URL
작가별로 여러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려 치바이스니까요^^ 가시면 좋은 시간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5-01-29 08:35   좋아요 0 | URL
내일 예약했어요
무료네요?!^^

거리의화가 2025-01-29 16:22   좋아요 1 | URL
예약하셨군요^^ 간 김에 궁궐 구경도 하실 수 있겠습니다.

hnine 2025-01-28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전시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설까지 친절하게 올려주셔서 전시 볼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5-01-29 08:25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전시 보실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희선 2025-01-29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묵화에 추상 양식을 쓰기도 하는군요 지금 생각하니 그런 거 얼마전에 보기는 했네요 그런 걸 또 보니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수묵화 하면 옛날 수묵화가 먼저 떠오르네요 멋진 전시회에 다녀오셨군요 시간을 더 들여서 보고 싶으시다니...

거리의화가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1-29 08:27   좋아요 0 | URL
수묵화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패턴이 있는데 현대에 올수록 방식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새로움을 주는 것 같아요.
시간이 더 날지는 모르겠지만 근래 들어 본 전시 중 단연코 가장 좋았습니다.

희선님 명절 연휴 즐겁게 보내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요!
 
제국주의와 남성성 - 19세기 영국의 젠더 형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573
박형지.설혜심 지음 / 아카넷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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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과 성적인 차원의 거리두기는 반드시 지켜야 할 식민 정책의 근간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성차별이 인종차별과 함께 행해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 질서는 인종적 우월성과 식민 담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지배 담론의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피치 못하게 인종 간의 성적 결합이 발생할 경우에는 양자간에 인종적 위계질서가 형성되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오직 백인 남성과 원주민 여성의 결합만은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밖에 다른 형태의 인종 간 성적 결합은 완전히 금지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영 제국의 식민 체제를 가장 대표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특징은 남성다움이 된다. - P47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로웠고 재밌었다. 특히 나는 1장과 5장에서 얻은 바가 많았다. 


1장에서는 인도 항쟁이 영국 제국주의와 결합했을 때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알려준다. 


우선 ‘인도 항쟁’이 아닌 ‘세포이 항쟁’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내게 사건의 이름조차 새롭게 다가왔다. 19세기 후반 강하고 정력적이고 냉철함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영국 제국의 남성성은 제국주의와 함께 식민 통치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영국 제국 초기였던 183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인들은 식민지의 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예를 들면 유럽 남성이 원주민 여성과 결합하는 것을 종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식민 정책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물론 이는 식민지 입장에서 보면 제국주의적 시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 1830년 이후가 되면 동인도 세력의 힘이 떨어지고 기독교의 선교가 확장되면서 영국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개혁의 바람이 분다. 거기에 식민지의 경제적 수요가 증가하고 인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해지면서 인도의 수탈은 강화되었고, 식민 정책이 강경하게 바뀐다. 인도 항쟁은 강경 식민 정책으로 돌아서는 데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건이라도 사건 자체로만 이해하면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 전후 사정의 과정을 이해하고 주변을 확인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단편적인 시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인도 항쟁(세포이 항쟁)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5장은 영국이 추종하는 ‘신사’에 대한 개념에 대해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었다. 

막연히 영국의 신사하면 떠오르던 외양이 있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신사는 퍼블릭 스쿨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퍼블릭 스쿨의 시스템은 질서를 중시하고 계급적 위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차별 구조를 정당화하였고 이런 엘리트주의를 이용하여 배타성을 키웠다. 거기에 스포츠맨십을 이용하여 남성성을 더 강화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퍼블릭 스쿨이 고대의 이상인 현인과 중세의 시사적 영향을 이어받은 인간상을 만들어내려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퍼블릭 스쿨은 이렇게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냄으로써 영국 제국주의의 기초가 되는 남성들을 만들어냈다.


6장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인물들을 통해 영국인이 바라는 신사의 개념을 들여다본다. 소설을 읽지 않고 6장을 읽었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급하게 <위대한 유산>만 읽었다. 사실 <위대한 유산> 뿐 아니라 <데이비드 카퍼필드> 소설도 다루기는 하지만 <위대한 유산>만 읽어도 6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물론 가능한 소설을 읽고 6장을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만약 내가 6장의 내용을 읽지 않았다면 ‘신사’에 집착하는 어떤 남성의 성장기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 같다. 신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곱씹게 해주는데 과연 당시 영국의 신사들이 도덕성과 인격을 갖추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애당초 주인공이 모델로 삼은 신사는 허울 뿐인 외양과 자본을 갖추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소설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제국주의의 첨병을 달려 가던 영국의 환경을 들여다보게 하면서 식민지/피식민지민 간에 계급적이고 위계적인 차별 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시간 내에 읽었다면 더 흡입력 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요즘 일이 너무 몰려서 일정상 후반부에 몰아 읽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영국의 식민 전략은 인도에 있는 영국인들에게 식민 통치에 부합하는 제국주의자가 되도록 강요하였다. - P40

표상은 다양한 권력 속에서 만들어지고, 인지되며, 해석된다. 따라서 타자의 몸에 대한 담론은 결국 그 몸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이수반하는 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유추하고, 추출하여 정립하기 위해 한 시대의 합리적 방식, 즉 이른바 <과학적 방법들이 적용되었다. 여기서 19세기의 <과학>이 <타자의 몸>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띤 가치를 몸에 투영하기 위해 당시의 과학을 <동원>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P92

영국인들은 인도인에 대한 보복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도 항쟁기에 일어난 <여성들과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이용하여 <집안의 천사>라는 개념을 더욱 강화시켰다. 여성들은 폭도들의 위협을 받는 영국적인 가치의 상징이자 비유의 핵심으로 강조되었고, 영국 남성들의 기사도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제국의 한가운데 놓인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의 천사>는 무언의 상징적 중심이었을뿐 그 자체로는 적극적 역할을 전혀 담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의 사회와 가정의 가치를 의미하는 허구적인 표상으로 기능했으며,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가혹한 제국주의의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작용했다. - P154

19세기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중세 문화를 이상화하면서 흠뻑 젖어들던 시기였다. 고대의 이상과 중세의 영향이 가장 집약되어 녹아든 곳이 퍼블릭 스쿨이었다. 그곳에서는 그리스어를 비롯한 고전교육 위주의 커리큘럼과 스파르타식 교육, 중세의 기사도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고전 교육, 설교, 독서, 교과서 등을 통해 남성들 사이의 우정 혹은 애정을 미화하는 내용을 늘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소년들로만 이루어진 퍼블릭 스쿨은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중세 수도원의 형태와 가장 근접한 곳이었기에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수도사나 독신 사제의 금욕에 대한 예찬이 이곳에서도 강하게 주입되었다. - P208

퍼블릭 스쿨은 엄격한 위계와 의식화된 코드, 계율과 질서의 총본산이다. 19세기의 많은 퍼블릭 스쿨에서는 상급생이 하급생을 지도하고 관리, 감독하는 프리펙트패깅 시스템 prefect-fagging system이라는 조직 체계를 운영하였다. 프리펙트 prefect나 프리포스터(preposter, praeposter)는 상급생 가운데 선발된 감독생을 일컫는 말인 반면, 상급생이 부려먹는 하급생은 흔히 패그fag라고 불렸다.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는 퍼블릭 스쿨에서 상급생과 하급생의 관계, 나아가 프리펙트-패깅 시스템은 학생들에게 엄격한 위계 질서를 체화하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했다. - P213

1857년 10월 4일 안젤라 버뎃 쿠츠Angela Burdett Coutts에게 보낸 편지에서 디킨스는 대량학살에 대한 충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인도의 최고사령관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할일은 그 동양 인종을 불시에 습격하여, (....) 그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 최근에 자행된 잔혹한 행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인종을 근절시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 내가 그곳의 책임자라면, 다양한 처형 방법을 강구해 그들을 완전히 뿌리 뽑아 한시 바삐 인류에서 사라지게 했을 것이다." - P238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는 『문화와 제국주의 Culture andImperialism』에서 『위대한 유산을 논의하면서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달리 이 소설은 식민지로의 추방이 가졌던 <영속성>을 사실상 위반하며,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매그위치의 영국 귀향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이드는 <갱생을 위해 설계되었으나, 이송되었던 영국 범죄자들의 본국 송환은 사실상 금지되었던 형벌 식민지였다>)고 오스트레일리아를 설명한다.
매그위치의 귀환에 대한 금지령은 단순히 형벌의 의미가 아니라 제국주의적인 것이다. 국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장소로 이송될 수 있지만, 디킨스의 모든 소설이 입증하듯 모국의 개개인들이 만들어낸 계급조직이 철저하게 도식화하고 확보하여 이미 구성원들이 거주하고 있는 모국의 공간으로 ‘귀환‘이 허락될 수 없었다. - P262

핍은 영국 남성성의 다양한 정의에 관해 고심하면서 자신이 <신사>에 대해 최초로 내렸던 정의, 즉 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신사는무책임하고 파산 상태에 빠진 상류층 젊은이로서, 좀처럼 존경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소설 끝부분에 이르면 핍은 실제로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심정적으로는 진정한 신사이다. 막연한 상상이 점차 현실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핍은 자신이 속한 영국 사회가 물질적인 것, 특히 식민지 자본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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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27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페이퍼랑 인용해주신 문장 읽어보니 저도 그간 읽은 내용이 샤샤삭 정리되네요. 저는 이제 막 5장 들어가고 있습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님!

거리의화가 2025-01-28 08:0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감사합니다^^ 이 책 예상만큼 좋았습니다. 얼마 안 남으셨네요. 완독 응원합니다!
 

6장

레트윈과 길무어의 가장 주된 차이점은 신사의 위치를 빅토리아시대의 계급적 구조 안에서 파악하는지의 여부이다. 그런데 계급을초월했다는 레트윈의 견해와, 좀더 역사의식이 반영된 길무어의 견해를 함께 감안하면, 우리는 당시의 신사 역할에 대해 보다 폭넓은이해를 할 수 있다. 레트윈과 길무어 모두 진정한 <신사>는 계급이나 지위의 개념을 초월한다는 데 동의한다. 신사는 단순히 특정한계급의 구성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장점과 자질에근거하여 그 명칭이 부여되었다. - P230

『올리버 트위스트』와 『데이비드 카퍼필드 David Copperfield』, 그리고 『위대한 유산과 같은 디킨스의 빌둥스로만들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를 누린 소설에 속한다. 이 소설들은 모두 신사가 되는 것의 의미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년의 성장에 관한디킨스의 반자전적 이야기들의 핵심에는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로거슬러 올라가는 신사다움, 즉 신사가 되는 방법과 신사의 지위를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염려가 자리 잡고 있다. - P233

1857년 10월 4일 안젤라 버뎃 쿠츠Angela Burdett Coutts에게 보낸 편지에서 디킨스는 대량학살에 대한 충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인도의 최고사령관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할일은 그 동양 인종을 불시에 습격하여, (....) 그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 최근에 자행된 잔혹한 행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인종을 근절시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 내가 그곳의 책임자라면, 다양한 처형 방법을 강구해 그들을 완전히 뿌리 뽑아 한시 바삐 인류에서 사라지게 했을 것이다." - P238

애니 세드린이 주장하듯, 이 소설은 <범죄와신사다움의 상호 관련성을 핵심적으로 짚어내면서도 불편한 심기를드러낸다>. 『위대한 유산』은 진보와 발전을 향한 시도마다 앞을가로막으면서, 핍과 독자에게 다윈의 지배를 받는 삶의 그물망을 상기시킨다. 즉 『위대한 유산의 모든 것들은 그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 P242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는 『문화와 제국주의 Culture andImperialism』에서 『위대한 유산을 논의하면서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달리 이 소설은 식민지로의 추방이 가졌던 <영속성>을 사실상위반하며,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매그위치의 영국 귀향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이드는 <갱생을 위해 설계되었으나, 이송되었던 영국 범죄자들의 본국 송환은 사실상 금지되었던 형벌 식민지였다>)고 오스트레일리아를 설명한다.
매그위치의 귀환에 대한 금지령은 단순히 형벌의 의미가 아니라 제국주의적인 것이다. 국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장소로 이송될 수 있지만, 디킨스의 모든 소설이 입증하듯 모국의 개개인들이 만들어낸 계급조직이 철저하게 도식화하고 확보하여 이미 구성원들이 거주하고 있는모국의 공간으로 ‘귀환‘이 허락될 수 없었다. - P262

핍은 영국 남성성의 다양한 정의에 관해 고심하면서 자신이 <신사>에 대해 최초로 내렸던 정의, 즉 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신사는무책임하고 파산 상태에 빠진 상류층 젊은이로서, 좀처럼 존경하기힘든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핍과 허버트의 빚은 작가인 디킨스가 어린 시절에 빚 때문에 아버지가 투옥되었던 경험과 관련하여겪은 가장 큰 충격에서 비롯된, 그들의 삶에 대한 심오한 질책으로이해해야 한다. 소설 끝부분에 이르면 핍은 실제로 경제적 능력과상관없이 심정적으로는 진정한 신사이다. 막연한 상상이 점차 현실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핍은 자신이 속한 영국 사회가 물질적인것, 특히 식민지 자본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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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강건한 기독교도란 기독교의 신념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신사를 말하는데, 정직, 예의, 협동심, 용기, 리더십과 더불어 강한 체력과 애틀레시즘athleticism (스포츠애호주의)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강건한 기독교주의는 그 특성이<남성다움 manliness>의 고양이었으며, 남성다움이란 전체를 위해희생할 수 있는 용기라고 주장되었다. 강건한 기독교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톰 브라운』 시리즈"를 통해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 P196

집을 떠난 소년에게 낯선 곳은 곧 모험의 공간이 된다. 최근 제국주의 연구들은 1880년 전후로 나타난 청소년 문학을 제국주의적 선전과 강하게 결합하여 발달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문학에서 제국은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동시에 소년이 성인이 되는 곳이다. 나아가 그 주인공은 제국주의의 영웅으로 숭앙받는다. 톰 브라은 제국이라는 바깥 세상 대신 영국 내에 <퍼블릭 스쿨>이라는모험 공간을 설정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고향에서와는 다른 새로운 자아를 만나야 하고, 영웅으로 거듭난다. - P201

19세기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중세 문화를 이상화하면서 흠뻑 젖어들던 시기였다. 고대의 이상과 중세의 영향이 가장 집약되어 녹아든 곳이 퍼블릭 스쿨이었다. 그곳에서는 그리스어를 비롯한 고전교육 위주의 커리큘럼과 스파르타식 교육, 중세의 기사도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고전 교육, 설교, 독서, 교과서 등을통해 남성들 사이의 우정 혹은 애정을 미화하는 내용을 늘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소년들로만 이루어진 퍼블릭 스쿨은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중세 수도원의 형태와 가장 근접한 곳이었기에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수도사나 독신 사제의 금욕에 대한 예찬이 이곳에서도 강하게 주입되었다. - P208

퍼블릭 스쿨은 엄격한 위계와 의식화된 코드, 계율과 질서의 총본산이다. 19세기의 많은 퍼블릭 스쿨에서는 상급생이 하급생을 지도하고 관리, 감독하는 프리펙트패깅 시스템 prefect-fagging system이라는 조직 체계를 운영하였다. 프리펙트 prefect나 프리포스터(preposter, praeposter)는 상급생 가운데 선발된 감독생을 일컫는 말인 반면, 상급생이 부려먹는 하급생은 흔히 패그fag라고 불렸다.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는 퍼블릭 스쿨에서 상급생과 하급생의 관계, 나아가 프리펙트-패깅 시스템은 학생들에게 엄격한 위계 질서를체화하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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