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일과 개인 일정이 모두 바빴던 날들이었다. 


올 상반기에 일이 몰아닥쳐 3개월여를 고생했던 적이 있었는데 10월도 마찬가지로 일이 많았다. 

출장도 몇 차례 있었고 사무실에 있을 때도 쉴 틈이 없었다.

의견을 조율하여 결정할 사항들이 잦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퇴근 무렵이 되면 신체적일 뿐 아니라 정신적 소모가 컸다.

과거 내 일에만 집중해도 되었던 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그 때는 실력에 대한 심적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에 결국 과거나 현재나 고충은 있는 셈인 것 같다.


그동안은 퇴근 후 독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일주일에 최소 2번은 운동 수업에 투자하기 위해 체육관에 간다.

필라테스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한달 조금 넘었는데 총 10차례의 개인 수업을 했다. 주말에는 복습 운동 차 귀찮아도 체육관에 한 번 더 나가고 있다.

무릎과 허리가 안 좋아서 아직 기구 운동에 집중하기에는 무리라 판단해서 매트 운동을 좀 더 많이 하고 조금씩 기구 운동을 늘려가는 중이다. 

무릎과 허리를 단련시키려면 복부와 허벅지, 엉덩이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할 때마다 "악!" 소리가 나온다는. 

운동이 재밌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못하고 역시 살자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ㅜㅜ


10월은 정말 몇 권 읽지 못했지만~










읽은 책들이 모두 알짜배기여서 좋았다.


<세계철학사> 3권은 내용이 어렵기도 해서 빨리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정말 정독하려고 노력했다. 근대에 와서 학문이 분화되는 과정(과학철학 -> 철학, 과학...)이 흥미로웠고, 서양 근대 사상의 정점인 칸트, 헤겔 뿐 아니라 아시아의 사상가들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어느 세계 철학서에 정약용, 왕부지, 최한기, 대진, 물라 사드라, 오로빈도 고슈를 만나볼 수 있겠는가. 

함께 읽는 책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세계 끝의 버섯>은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들이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읽으며 현대 일본과 한국의 사상과 개혁의 흐름이 왜 갈수록 달라져가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세계 끝의 버섯>은 송이버섯이 교란된 생태계에서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교란, 오염에 대한 용어의 기존에 대한 나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에는 편견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반성하는 계기이자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죄와 벌>은 몇 년만에 재독이었는데 과거와 현재의 내 삶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 있는지 들여다보며 생각과 태도에서 바뀐 부분인지 비교하며 읽게 되더라. 라스콜니코프의 행동과 그 후의 끊임없는 번민과 내면의 갈등, 사람들과의 대화를 보면서 인간의 선악에 대한 기준을 과연 세우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제7일>은 번역본과 중국어 원서로 병행하며 10월부터 읽고 있는 중이다.

이제 얼마 후면 완독할 것 같은데 앞서 읽은 작품들과 결이 달라 흥미롭게 읽고 있다.

원서 수준도 그동안에 읽은 위화의 책들 중 가장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어떤 문장들은 번역본을 읽지 않고도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내가 그동안 헛으로 공부하는 것은 아니였구나 느끼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모임이 있어 속리산 근처의 펜션에 다녀왔다.

바로 전날까지 비가 온 덕분에 공기가 께끗해서 좋았다. 

비록 올해 단풍은 안 예쁜 것 같지만 멀리서 보니 또 괜찮더라는.

내일이 지나면 반짝 날이 추워지는 것 같던데... 이제 가을도 끝물인가보다.


이번 달에는 이런 책들을 읽을 작정이다.


개인적으로 읽는 책들은 아래 2권이다









<세계철학사> 4권

<백치> -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중


함께 읽는 책은 다음과 같다.


이 책들만 읽어도 한 달이 후딱 가지 않을까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11-0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11월 계획도 빠듯합니다. 만만치 않겠어요. 함께 열심히 읽어봅시다.
그나저나 산은 참 좋네요. 산이 참 좋습니다.

희선 2024-11-05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빠도 여러 책 만나셨군요 어려운 책도... 저는 위화 책 《제7일》은 못 읽었어요 예전 것만 몇 권 봤어요 중국말로 쓰인 말을 바로 읽었을 때 기쁘셨겠네요 공부한 게 있는 거겠지요 이달에도 즐겁게 책 만나시기 바랍니다 운동도 지난달보다 익숙해지기를... 거리의화가 님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4-11-05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두대간속리산관문
중국인줄 알았습니다.^^

청아 2024-11-05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곡 저도 욕심나네요. 요즘 산에 못갔는데 덕분에 사진으로나마 만끽합니다^^
 




[011] 거리는 지독하게 무더웠다. 게다가 후텁지근한 공기, 혼잡, 여기저기에 놓인 석회석, 목재와 벽돌, 먼지, 근교에 별장을 가지지 못한 페테르부르크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독특한 여름의 악취, 이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청년의 신경을 한꺼번에 뒤흔들어 놓았다. 이 지역에 특히 많은 선술집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와 대낮인데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술 취한 사람들이 거리의 모습을 더욱 불쾌하고 음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사람들이 거리를 휘젓듯 다닌다. 도처에 악취가 진동하고 불쾌한 기운이 떨쳐지지 않는다. 당시 페테르부르크는 인구가 폭증하여 실업률이 증가하고 범죄율도 높았다고 한다. 같은 것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는 일은 이때도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오래 지속되었던 농노제에 대한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자유와 해방에 대한 생각들이 꿈틀거리고 있을 때였다. 온갖 사회, 과학 이론들이 쏟아져 나올 때니 자칫하면 어느 이론에 경도되어 휩쓸리기 쉽지 않았을까. 프랑스 혁명으로 민중의 힘이 폭발했으나 나폴레옹 이후 다시 돌아온 황제의 권력은 계급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낳았을 만하다. 


몇 년 만에 <죄와 벌>을 재독했다. 역시 도 선생님의 인간 심리 묘사는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라스콜니코프는 예민한 신경과 감성을 지녔고 편집증으로 발작과 혼란을 거듭 느끼는 인물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사람은 일정 정도 미쳐 있는 부분이 있다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관리하고 또 화해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088] 어떤 일이 생기든 상관없이 무엇이든 결행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삶을 아예 거부하든지!>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렇게 소리 질렀다. <있는 그대로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활동하고 살고 사랑하는 모든 권리를 거부하고, 자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목 졸라 죽여 버려야만 한다!>


[124] 그 허약하고 어리석고 사악한 노파의 삶이 사회 전체의 무게에 비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 노파의 삶은 바퀴벌레와 이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어쩌면 그보다 더 못하다고도 할 수 있어. 왜냐하면 그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그 노파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잖아.


라스콜니코프는 내면적 갈등 끝에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혐오에 대한 의식이 존재했음을 느끼게 한다. 과연 누가 타인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함부로 단정지어서도 안 되는데도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가볍게 재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203] 그것은 마주치는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거의 생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혐오감이었다. 그것은 집요하고 사악한, 증오에 가득 찬 혐오감이었다. 그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들의 얼굴, 발걸음, 행동거지, 모든 것이 그랬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와중에 (오지랖으로) 타인을 동정하며 구한다. 술집에서 만난 마르멜라도프의 가족들을 위로하며 수중의 돈을 건네고, 늦은 밤 술에 취해 벤치에 앉아 있던 여성이 위험한 일에 빠질 거라 판단한 여성에게도 간섭을 한다. 


[046] 네놈은 이 보드카 반 병이 내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나? 내가 이 병 속에서 찾은 것은 슬픔, 슬픔이었어. 슬픔과 눈물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난 그것을 찾아서 맛보았단 말이다.


마르멜라도프은 술을 마시며 이렇게 변명을 해댄다. 얼마 후 그는 불행한 일을 당해 사망을 한다. 술에 취해 도박빚을 지고, 집 안에 있는 돈을 훔쳐서 달아나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부족하여 몸을 파는 딸에게까지 가서 손을 벌리는 그를 마냥 두둔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면에서는 과거가 떠올랐는데 개인적으로 동정이 들다가도 혐오감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변명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피해는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적 피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증오와 혐오의 증가로 인한 심리적 피해가 문제였다. 이는 개인적 피해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337] 용서를 한다고요? 만일 이 사람이 오늘 … 않았다면, 항상 그렇듯이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 나는 해가 뜰 때까지, 이 사람의 옷과 아이들의 옷을 빤 다음, 창에 걸어 말려야 해요. 해가 뜨면 나는 다시 옷을 기워요. 이게 내가 밤마다 하는 짓이에요!



<죄와 벌>은 인간의 본성과 환경(양육)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볼 수 있게 만든다. 나는 본성보다는 환경에 좀 더 기우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이는 오래도록 인간들이 고민해온 주제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환경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칫 범죄자들을 두둔하는 논리로 악용될 수도 있어 위험할 것 같다. 


[468] 그들에게 모든 것은 <환경이 나쁘기> 때문이야.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어! … 만약 사회가 정상적으로 건설되면 단번에 모든 범죄들도 사라지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돼. … 본성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아. 


[477] 저는 제 주된 사상을 믿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큰 분류 아래로 수많은 작은 부류들이 무한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들은 대단히 명확합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로 말해서 자기 천성상 보수적이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복종 속에서 살아가면서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모두는 그 능력에 따라서 법률을 어기는 파괴자들이거나 그럴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는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습니다.


과연 두 번째 부류라고 말하는 비범한 사람이 기존의 틀을 깨고 파괴하는 사람이라면 혁명가, 범죄자를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272] 나는 다른 것을 알고 싶었어요. 그것이 나를 충동질했어요. 나는 그때 알고 싶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이>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말이죠. 내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나는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범죄를 탄로날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동안 여러 번 신경 착란 증세를 겪는다. 이후 여러 사람들과의 논쟁을 거친 뒤 소냐,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고백하며 자신의 범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424] 로디온 로마노비치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지요. 머리에 총알을 박든지, 아니면 블라디미르카 대로로 나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092] 그는 새롭고 이상한, 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면서, 이 창백하고 여읜 균형 잡히지 않은 모난 얼굴과 준엄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는 그 온순한 푸른 눈동자, 분노와 분개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떨고 있는 그녀의 작은 몸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더더욱 이상하게 여겨졌고, 불가사의하게 생각되었다. <유로비디다! 유로비디야!> 그는 속으로 단언했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에게만큼은 성직자나 예수, 성모 마리아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남이 나의 죄를 사하여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주체의 생각과 행동이 중요하다. 교회에 가서 참회한다고 해서 내가 저지른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158]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양 끝을 가리키고 있다. 서로 다른 양 끝을.> 


[515] 그는 그날 밤 무엇에 대해서든 오랫동안 생각할 수 없었고, 어떤 것에든 생각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당시에 아무것도 의식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516] 이제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에서 북펀딩 문자와 알림을 곧잘 받곤 하는데 그 횟수가 늘어나다보면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방금 전 북펀딩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차학경의 딕테가 북펀딩으로 온다는 소식이다.

누가 좀 다시 번역해주었으면 하고 얼마나 간절이 바랐던가...

11월 17일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2249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을 2024-10-28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넘 반가왔어요^^

거리의화가 2024-10-31 12:59   좋아요 0 | URL
정말 반갑더라구요. 이렇게 나와주어 참 다행입니다.

건수하 2024-10-28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올 거란 말을 어디서 들었었는데 정말 나오네요! 반가운 소식이에요. 사실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고고씽하기로 😊

햇살과함께 2024-10-28 14:26   좋아요 1 | URL
저도 이해못할 것 같지만 고고씽!

거리의화가 2024-10-31 12:58   좋아요 2 | URL
사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더라구요. 구비하는 차원에서 고고씽했습니다^^

다락방 2024-10-28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식 듣고 반가웠지만 도무지 제가 딕테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어휴..

거리의화가 2024-10-31 13:01   좋아요 0 | URL
그건 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소화력과는 별개로 일단 구비해놓자는 생각으로ㅠㅠ
나중에 정작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을 때가 오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일단 펀딩했습니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진보’를 거부하는 흐름에서 ‘인간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집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다가 아니여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교란’과 ‘오염’이라는 개념이 ‘상생’과 ‘협력’에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10-31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진작 읽으셨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교란 과 오염, 폐허에 대해 다름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고생하셨어요!!

거리의화가 2024-10-31 12: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다락방님이 함께 읽자고 하지 않았으면 넘길 뻔 했어요. 송이버섯에 대한 생태 환경과 역사에서 느끼는 단상들이 놀랍도록 좋았습니다.
 
세계철학사 3 -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 세계철학사 3
이정우 지음 / 길(도서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성’을 견인한 강력한 추동력들 중 하나는 바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그리고 근대성은 자연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를 덧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탐구하는 매우 새로운 방식,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독특한 ‘방법’을 개발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 P22


서구 근대 철학의 시작은 데카르트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내가 있다(는 것은 참이다)’라는 명제를 내걸며 합리주의 인식론(환원주의)을 펼쳤다. 그리고 사람의 노동력이 아닌 기계로 움직이는 힘(동력)이 있음을 주장하여 기계론의 기초를 닦았다. 사실상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되는 이성과 과학의 논리가 그에게서 최초로 제기되었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학문은 근대에 들어와 성립한 것이다. 원래는 ‘철학’의 한 부분이었던 ‘과학’은 자연/우주의 진리를 관조하는 행위였고 ‘기술(공예)’은 ‘기술’과 ‘예술’로 추후 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물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사물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인간의 능력을 보여주는 시험의 장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통해 자연세계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극복하고 힘(운동)의 과학을 구축한 인물은 뉴턴과 라이프니츠다. 뉴턴은 질량, 운동량, 힘을 정의하고 법칙들(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정의하며 물체 간 운동성을 이야기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과 달리 물체 자체에 힘이 있다는 개념(능동성)으로 ‘동역학’을 주장했다. 


관념의 기능은 사물들을 표현하는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표현’이란 서로 다른 존재면들 사이에서의 번역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인과론적 세계관을 펼치려 노력했다. 스피노자는 정신을 신체의 관념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정신과 물질은 신과 자연의 동시적 표현(일원론)인 반면 라이프니츠에게서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른 계열체들의 표현(다원론)이다. 


18세기 계몽의 시대가 되면 관념적 면에서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로크는 마음의 구성요소는 관념들(ideas)이라 보았고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를 분석하는 5가지 개념으로 색(대상), 수(지각), 상(감응), 행(행동), 식(마음)을 제시했다. 흄은 모든 관계들이 외부적이고 마음을 구성하는 것은 지각의 덩어리들이며, 인간적 삶의 기초는 정념으로 이 때문에 주체들은 서로 다르다고 보았다. 

구체적 세계에서는 유물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루소처럼 자연을 풍요로운 존재이자 신비로운 존재로 보는 철학자들도 있었다. 


칸트는 인간 의식의 구조를 규명하여 실제 경험 이전에 확인하는 과정(선험적 작업)에 집중했다. 그는 이성을 중요시하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고 실재 세계의 현상 너머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칸트 이후에는 자아의 자기 정립을 중요시 여긴 피히터, 셸링의 객체 자체로서의 탐구, 인간의 주체/이성을 극한으로 중요시 여긴 독일/관념론으로 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헤겔은 범주들도 존재화하여 세계의 이념들로 파악하고자 했다(자연을 탐구하는 이성, 타인/사회/세상을 인식하는 이성, 자기를 구현하는 이성). 


동북아의 철학자들은 주자학이 12세기 이후 500년을 군림하는 동안 한편으로 주자학을 비판하며 ‘기’에 대한 탐구를 통해 사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기(氣)’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공(空)[비어있음]’,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허(虛)’, 성리학의 ‘리(理)’를 뛰어넘고자 한 개념이다.

기학적 표현주의의 대표적 인물은 왕부지와 정약용이다. 왕부지는 태극을 음양의 기로 해석하여 장재의 기 일원론을 내재화하고 장재와 주희의 사유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리(理)와 성(性)이 심(心)의 기반에서 발현되는 정(情)인 세(勢)가 서로 다투며 세계는 결국 나선형으로 발전해나간다고 보았으나 그가 말한 세계는 중화중심주의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다. 정약용은 추상화된 개념이 경험의 세계에서 환원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초목금수와 같지만 인간만이 도의를 가진다고 보았고 비록 도의와 기질이 갈등을 일으키지만 인간은 노력을 통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학은 성리학을 넘어 현실에서 새롭게 유교적 가치를 사유하고자 했다. 경학과 경세학은 근대적 개념을 현실에서 규명하고자 했다면 기학은 객관적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자 했다. 대진은 ‘태극=기’로 기질지성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최한기는 각종 기들이 서로 통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혼란스러운 배경 속에서 태평천국과 동학을 비롯한 민중사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근대 말이 되면 주축 세력이 귀족에서 시민, 민중으로 변화한다. 

홉스는 개인주의(개인이 중요하다)를 펼쳤고, 스피노자는 대중의 역량과 개개인들의 내적인 힘, 개인 간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민주정(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을 제시했다. 로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부가 시민사회/국가 위에서만 성립이 가능하며 시민사회의 저항성을 강조했다. 반면 루소는 최소한의 정부를 이야기했다. 

칸트는 조약을 맺음으로써(물론 국가의 형태는 공화국이어야 하고 각 국가의 시민은 계몽된 시민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존재했음) 영구평화가 가능하다(영구평화론)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헤겔은 시대정신을 담지하는 국가가 세계를 이끄는 주인공이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힘의 논리가 작용할 때 위험 요소를 떠안은 모습이 엿보인다(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는 논리가 되었을수도). 


현대 정치체의 두 축인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이 무렵 등장했다. 

자유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 정치철학이 대표적이다. 공리주의는 자본주의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과학기술의 힘을 통해서 사회의 기본 구조를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까를 고민하면서 나온 철학이다. 벤담은 어떤 행동이 쾌락을 증가하고 고통을 감소시켰는가를 중요시하며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밀은 사상의 자유와 토론의 장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의 통제가 적절히 조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은 노동의 산물, 노동활동,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삼중고를 당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계급 투쟁이 중요하며 역사란 그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표현하고 나아가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를 주장했다. 


왕조였던 이슬람의 사파비 왕조, 오스만 왕조와 인도의 무굴 왕조는 국민 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슬람 시아파의 철학적 기초를 다진 인물은 물라 사드라이다. 물라 사드라는 신비주의 전통과 지성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슬람 철학을 본질주의에서 실존주의에서 전환시켰다. 

이란 이슬람에서 물라 사드라의 역할이 컸다면 오스만 이슬람에서는 와하비즘과 네오수피즘이 중요했다. 와하비즘은 알 와합과 추종자 와하비들은 쿠란과 하디스만을 따르라는 개념이었고 네오수피즘은 예언자 정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며 개개인의 영적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마치 신라 시기 불교의 교종과 선종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무리수가 있지만). 이슬람 세계의 철학은 종교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오스만은 탄지마트를 통해 어느 정도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근대화도 함께 진행되었다. 오로빈도 고슈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해 일어난 흐름 중 급진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인도의 전통 철학(베단타철학, ‘’多中一一中多’, 화’의 논리)을 현대에도 계승해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치와 종교를 결합시키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세계도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 다양한 흐름이 이어졌다. 중국은 동도서기론을 바탕으로 한 양무파와 변법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양무파는 전통을 고수하되 서구에게서 배우자는 입장이었다. 변법파는 양무파처럼 봉건 전통을 포기하지 않으면 중국이 바뀔 수 없다 주장하며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은 서양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개화파가 있었던 반면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위정척사파가 존재했다. 종교를 바탕으로 민중을 계몽하고자 한 동학, 대종교의 흐름도 나타났다. 

일본은 요시다 쇼인에서 시작한 제국주의의 씨앗이 후쿠자와 유키치를 기점으로 사회진화론에 국가주의가 결합하여 많은 폐해를 낳게 된다. 반면 나카에 초민은 민권을 주장하고 평화외교론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교토쿠 슈스이, 오스키 사카에처럼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슬람과 인도 세계의 철학은 아직 이해가 부족하여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동북아세계의 근대 철학은 역사가 좀 더 친숙하니 이해가 쉬웠다. 


이 책을 통해 특히나 동양 철학가들 중 대진이나 최한기, 물라 사드라, 오로빈도 고슈 등을 알고 가는 것은 수확이다. 다만 이슬람과 인도 철학은 비중이 확연히 적어 언급 정도에 그친 것이 아쉽다(아무래도 근대 시기 철학은 서양 철학이 더 촘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다른 세계철학서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이름들일 것 같아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 


근대 서구 인식론은 동시대 동북아의 인식론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치밀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동북아의 경우 근대 학문은 인문과학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사물들과 문헌들을 탐구하는 경험주의적 학문이었다. 그리고 이 학문의 정초로서 새로운 근대적인 주체의 개념화가 있었고,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이 주체를 신기를 내포한 형이상학적 주체로까지 고양했다. 이런 과정은 대체적으로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수학적 물리학이라는 합리주의적 과학과 근대의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난 경험주의 사이에 인식론적 분열증이 있었다. 우리는 로크에게서 이런 분열증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양한 갈래의 모색들을 거쳐 칸트에 의해 이 분열증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았다. 그리고 칸트 사유에 존재하는 다원성을 극복하려 한 일원성의 사유들이 이어졌다. 서구 철학은 이렇게 인식론적 분열증을 앓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성과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P583


이번 3권은 특히나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개념들이 많아 과연 내가 읽고 이해한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을 여러 번 가지면서 읽었다. 그래도 밑줄 열심히 긋고 개념도 정리해가며 읽었기에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마지막 4권이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