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 A World of Empires
찰스는 대부분의 유럽을 점유했음에도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교황과 프랑스왕이 그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렀고 이탈리아 왕자도 찰스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다. 찰스는 재임 기간 동안 전쟁에 수많은 비용을 쓰면서 점점 더 재정적으로 가난해졌고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땅을 아들인 필립에게 준다. 찰스는 동생인 페르디난트에게 신성로마제국황제 자리를 물려주었다.
콜럼버스 이후 콩키스타도르 항해가 시작되었다. 필립 2세가 남아메리카에 금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고 스페인의 금광으로 마침내 돈을 끌어모으게 된다. 아프리카 땅은 점점 더 악화의 길로 치닫게 된다.

CH2: Protestant Rebellions
오늘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영연합국은 같은 국가이지만 17세기만 해도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이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5살 때 어머니인 Mary of Guise로부터 왕권을 계승했다. Mary of Guise는 가톨릭 신자여서 딸인 메리가 프로테스탄트에 물들까 프랑스로 보내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서 13년 간 자라게 했고 몇 년 후 그녀는 사망했다.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전도사인 John Knox는 여성(특히 가톨릭교도 여성)이 남자들을 제치고 왕권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주장했다. 당연히 메리는 동의할 수 없었고 18살이 되자 자신의 왕권을 찾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입성한다. 그녀는 가톨릭교도였으나 프로테스탄트도 스코틀랜드 땅에서 잘 살아나가기를 바랐다. 그녀는 프로테스탄트 교도인 귀족 Darnley경과 결혼을 했다. Darnley는 메리보다 더 큰 권력을 갖기를 원해 프로테스탄트 귀족 일부와 함께 그녀를 감금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계략을 꾸민다. 메리는 이 음모를 알게 되었지만 태중에 아기가 있어 그를 용서하기로 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후 Darnley 집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메리가 살해한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은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를 왕위(13개월짜리 아기)에 올리고 메리는 갇힌다. 메리는 탈출하여 영국으로 가 사촌인 엘리자베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힘이 두려웠고 결국 메리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CH3: James, King of Two Countries
엘리자베스 여왕이 1603년에 사망하자, 가까운 친척이었던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영국 왕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영국은 세 개의 종교 집단이 맞서고 있었다. 가톨릭, 성공회 교도, 청교도다. 이들은 제임스 6세에게 각자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청원한다. 이 와중 가톨릭교도인 Robert Catesby와 Guy Fawkes가 제임스와 프로테스탄트 의회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의회 건물을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고 건물 지하 터널을 몇 달동안 판다. 그러나 Guy Fawkes가 지하실에서 성냥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저세상으로 가고. 제임스는 영국에서 숨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을 법으로 압박한다. 의회도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법 위에 왕이 존재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오늘날 제임스는 성경을 새롭게 번역(킹 제임스 성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제임스 왕은 필립 2세가 남아메리카에 금을 캐는 것을 보고 부러워 북미에 금을 찾고자 부자들을 3대의 배를 태워 보낸다. 1607년 5월 13일 우여곡절(돌풍을 만나고 등등...) 끝에 미국 땅을 밟았다. 원주민인 포하탄을 만난 영국인들은 마을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리더인 존 롤프와 포하탄의 딸인 포카혼타스가 결혼한다. 영국인들이 정착한 곳은 제임스타운으로 현재도 그대로다.

CH4: Searching for the Northwest Passage
사뮈엘 샹플랭은 1604년 프랑스 앙리4세의 명을 받은 뒤 몇몇 프랑스인들을 이끌고 캐나다를 탐험한다. 여러 곳을 조사한 끝에 마침내 퀘백에 정착하여 거주 환경을 조성했고 이것이 오늘날 퀘백주의 시작이었다.

CH5: Warloads of Japan
영국이나 프랑스 탐험가들이 북서쪽을 향하는 동안 일본에서는 약해진 황위에 다이묘들이 영지 제각각을 다스리며 내전 중이었다. 혼란한 정국을 통일한 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지만 한국을 지나 대륙인 중국 진출에 실패했다. 그가 죽고 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권력을 이어받는다.

CH6: New Colonies in the New World
신대륙에 많은 청교도인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은 후 플리모스 플랜테이션 북부에 2천명이 넘는 청교도인들이 매사추세츠에 입성했다. 오늘날의 매사추세츠 이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신대륙에 뉴잉글랜드, 뉴프랑스, 뉴스페인이 이런 식으로 형성되었다.
독일은 아직 그 기반이 없는 상태였다가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뉴암스테르담에 자리하며 세력을 자리잡을 수 있었다.

CH7: The Spread of Slavery
뉴 암스테르담을 원했던 영국인들은 모피 부역으로 영국에 돈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미국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많은 부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킹 제임스는 제임스타운 식민주의자들이 금을 찾아내기를 희망했지만 버지니아의 흙은 보석이나 값비싼 광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John Rolfe가 버지니아에서 담뱃잎(green gold)를 사들여서 부를 끌어모으게 되었다. 담배를 비롯한 플랜테이션 상품의 삼각 무역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노예들이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땅의 일부를 점령하기를 원했고, 서아프리카의 Ndomba가 그 대상국이 되었다. 양국 간 전쟁이 30년 넘게 이어졌는데, 포르투갈은 Ndomba 왕가의 공주인 Nzinga를 포섭하여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게 만들고 평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욕심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었고 결국 포르투갈은 야심을 드러내 Ndomba를 다시 쳐들어온다. 수년간 싸움 끝에 포르투갈인들은 마침내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갔고 Nzinga는 평화롭게 Ndomba를 죽을 때까지 다스릴 수 있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 고국인들이 그녀를 전쟁의 신으로 불렀던 것처럼 포르투갈인들은 나라명을 ngola로 명명했고 이것이 오늘날 앙골라가 되었다.

CH8: The Middle of the East
중동에 모하메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이슬람 제국이 들어섰다. 한편으로 아시아 유목 세계에는 투르크가 등장했다. 그들은 어느 순간 세력을 키워 아랍군보다 더 군대력을 발휘하게 된다. 투르크계 중 Ghaznavids는 이슬람 율법을 거부하고 페르시아 땅으로 건너갔는데 몽골의 침입으로 페르시아는 무너졌다. 이스마일은 동족과 함께 몽골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여 사파비 왕조를 세운다. 압바스가 황제가 오른 뒤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가 재건되었다. 투르크 군을 기술과 무기를 들여와 훈련시키고 무역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갈수록 흉포한 정치를 하고 형제들과 자식이 자신의 권위를 노릴까 두려워하여 의심한다(아들은 심지어 죽임).
투르크의 지도자 중 하나였던 오스만은 추종자들이 지중해 북서부에 모여 살도록 했고 투르크는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 중동에는 페르시아와 오스만이라는 두 강자가 집권하게 되었다. 오스만 투르크는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을 넘어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에 부가 쌓이자 집권자들은 부패의 늪에 빠지고... 무라드 술탄은 자신의 권위를 찾기 위해 칼을 갈고 기다렸고, 시간이 되었을 때 거침 없이 정적들을 제거했다. 나중에는 무자비하기까지 했다.

CH9: The Western War
무라드 술탄이 중동을 두고 오스만 투르크와 전투를 하고 있을 때 유럽은 30년 전쟁(1618~1648)으로 피해를 겪었다.
당시 독일은 페르디난드 2세가 통치자라는 명목을 가졌으나 여러 개의 지역마다 세력이 있었고, 종교도 달랐다. 페르디난드 2세는 가톨릭 신봉자였는데 프로테스탄트인 보헤미아 지역이 가톨릭 법률에 항의하며 들고 일어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페르디난드 2세는 신성 로마 제국까지 가지고 싶은 욕구를 가졌고 독일의 7 지역의 왕자들을 포섭하고, 오스트리아, 스페인까지 끌어들여 자신을 뽑아달라 설득했다. 이때 덴마크 왕인 크리스티안 4세는 페르디난드 2세의 권위를 두려워하여 3만 군대를 이끌고 독일로 쳐들어온다. 페르디난드 2세는 알버트 월런스타인 장군을 기용하여 대응한다. 스웨덴 왕인 구스타부스 2세(프로테스탄트)는 페르디난드 2세를 대응하기 위해 적극 준비를 하여 덴마크 밖으로 그들을 몰아낸다. 스웨덴인과 독일인은 프로테스탄트 연합이 되어 독일의 심장부에서 페르디난드의 수도인 비엔나를 향했다. 구스타부스가 전투에서 사망하자 프로테스탄트 연합은 쪼개지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독일의 각 지역의 리더들과 페르디난드는 평화 협약을 맺어 나갔다. 그런데 프랑스가 페르디난드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전쟁은 이어졌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사망하면서 전쟁의 동력은 점점 떨어져나갔고 베스트팔렌 조약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페인은 11년 전쟁을 더 하여 1659년까지 이어졌다.

CH10: Far East of Europe
도쿠가와 이에야쓰 사후 아들인 히데타다가 차기 쇼군이 된 뒤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치뤄지고 있을 때 예수회를 비롯한 가톨릭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 바람에 기독교인이 많이 있었던 시마바라에 폭동이 일어났으나 철저한 진압으로 그들은 항복하고 순교의 길로 갔다(<침묵>의 내용이 이를 배경으로 함). 일본은 그 뒤 한참동안 가톨릭 선교를 철저히 배제했고 내면을 가꾸는 선불교(신라 8~9세기 무렵에도 선불교가 유행)가 유행했다.
중국의 명이 쇠퇴할 무렵 이자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진압당했고 청 왕조가 들어섰다. 민족을 철저히 가르고 분리했던 시기를 지나 강희제 때 들어서 민족 간 통합 정책을 펼치면서 그는 중국을 부강하게 했다.

CH11: The Moghul Emperors of India
인도는 자한기르의 아들 샤 자한이 왕이 들어서고 나서 인도 전역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아내 뭄타즈 마할이 있었는데 아내 사랑이 지극했다. 하필이면 전쟁을 함께 나갔다가 아내가 병을 얻어 사망한다. 아내가 죽자 너무 많이 울어서 시력을 잃을 정도였다고… 그는 2년의 애도 기간 후 타지마할을 짓는다.
샤 자한은 아들 중 현명한 아우랑제브를 놔두고 다라라는 아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아우랑제브는 반란을 일으켰고 아버지의 권위를 빼앗아 등극한다. 아우랑제브 시기 영국은 벵갈 지역에 도시를 내어 공장을 짓고 항구를 만들었는데 그곳이 현재의 캘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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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9-14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거리의화가 2024-09-20 20:39   좋아요 0 | URL
괭님 한참 앞서나가고 계실듯합니다^^ 열심히 따라갈게요!

청아 2024-09-1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합니다 >.< 저도 읽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4-09-20 20:40   좋아요 1 | URL
ㅎㅎ 청아님 시작하셨군요^^ 남은 9월동안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장

교만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타인들 위에 있다는 생각과 다른사람들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수반하는 특성이다. 교만에는 많은 형태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교만의 한 가지 형태만갖기도 한다. (인종적 교만을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계급적 교만은없을 수 있고, 그 계급적 교만 대신에 인종적 교만에 매달릴 수도있다.) 하지만 남자들이 미국 내 위계질서 어디에 위치해 있든 간에, 오랜 전통들은 그들에게 여성은 충분히 중요하지 않으니 봐도 괜찮다는 젠더적 교만을 공급해 왔다. 교만은 탐욕과 질투 같은다른 나쁜 성질들에 부추김 당하기도 하는데, 이 다른 성질들이 교만함과 결합하면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유독해진다. - P56

대상화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현상이다. 자율성과 주체성의부정을 수반한 수단화에는 깊숙한 내적 근원이 있다. 바로 교만이라는 악이다. 다른 사람들(그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 집단들)이 온전하게 실재하지 않고 자아만이 실질적인 시야에 들어와 있으며, 노력의 초점이 된다. 시기와 분노는 교만의 사촌들이다. 인간성이라는 아름다운 비전은 거부하고 본질적으로 자신을 왜곡하는 경향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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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대상화


사람을 사물로 다루는 데에는 여덟 가지의 별개 개념, 여덟 가지의 방법이 있다.
1. 수단성(Instrumentality): 대상에 자율성이나 자기 결정이 부재한다고 여긴다.
2. 자율성의 부정(Denial of autonomy): 대상에 자율성이나 자기 결정이 부재한다고 여긴다.
3. 타성성(Inertness): 대상에 행위자성 및 활동성 역시 부재한다고 여긴다.
4. 대체 가능성(Fungibility): 대상을 같은 종류의 다른 대상 A, 혹은 다른 종류의 대상 B와 교환 가능하다고 여긴다.
5. 가침성(Violability): 대상에 온전한 경계가 부재한다고 여겨 그것을 깨고, 부수고, 침입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여긴다.
6. 소유권(Ownership): 대상을 누군가에게 소유되었거나 소유 가능한 것으로 여겨 사고팔 수 있다거나 재산처럼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7. 주체성 부정(Denial of subjectivity): 대상의 경험이나 느낌을 (만약 있다고 해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8. 침묵시키기(Silencing): 대상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다룬다.

인간 존재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특징이 있다. 주요 종교들과 널리 퍼진 세속적 문화가 오랫동안 바르게 가르쳐 왔던 자율성과 주체성이다. - P28

성차별주의는 여성이 남성보다 구체적인 면에서 열등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신념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차별주의자는 그 신념 체계를 이용해서 여성의 참정권과 고등교육 등을 부정한다. 여성 혐오란 그와 반대로 실행 메커니즘이다. 여성 혐오자는 견고한 특권 속에 들어앉아 여성을 그 안에 들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 P37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물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상이나 펜을 사물로 다루는 것을 두고 ‘대상화‘라 부르지는 않는다. 책상과 펜은 그 자체가 사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상화는 사물로 변환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로는 사물이 아닌 인간 존재를 사물로 다루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대상화는 그 대상에 인간성이 존재한다고 여기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더 많은 경우 완전한 인간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까지 의미한다. - P41

라우만과 동료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남성은 그들이 한 섹스가 합의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것이 강요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은 남성들의 특권 의식이 여성들은 남성에게 무언가를 해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반쯤 의식적인 신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이 남자들은 자신들이 강요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용적인 사회적 합의 속에서 자신의 몫을 요구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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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9-12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작했어요. 열심히 읽어봅시다!!

거리의화가 2024-09-20 20:50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잘 지내셨지요? 이 책 주말 동안 다 읽어버릴까 생각 중입니다^^

다락방 2024-09-20 21:46   좋아요 0 | URL
앗 저도 그러면 한 번 도전해볼까요? 주말 동안 다 읽기요!!
 
허삼관 매혈기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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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할까?

야곱 알만스의 일개 백성도

장미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죽어갈 수 있을까?


남들 앞에서는 다소 비굴해 보이지만, 자식과 마누라 앞에서는 자신만만해 집에서 늘 잔소리가 많은 사람. 그는 그의 삶이 그렇듯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허삼관이다. 


허삼관은 성안의 날실 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로 일한다. 이 부근에는 피를 팔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피를 잘 만들기 위해 몸을 관리하는데, 물도 마시지 않고 물을 마신 뒤에는 오줌까지 참는 모습이 웃프기 짝이 없다. 혈두는 병원에서 피 파는 걸 관리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값을 받으려고 아첨을 하며 갖은 노력을 다한다. 방씨와 근룡은 허삼관과 피를 함께 파는 동지다. 


방씨가 말했다.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허삼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 힘이란 게 주머니 속의 돈이랑 똑같은 거군요. 쓰고 나서 다시 벌어들이는...."


허삼관에게는 허옥란이라는 아내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라고 하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소위 바람 잘 날 없는 일들이 많을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허삼관은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고 35원을 받은 후 돼지간볶음에 황주를 먹으러 가는 것이 루틴이었다. 


잠시 후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세 잔이 나왔다. 허삼관이 돼지간을 집으려고 젓가락을 들다 보니, 방씨와 근룡이는 술잔을 먼저 들어 입술에 살짝 대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한 모금씩 마셨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카" 소리가 터져나왔고, 찌푸렸던 얼굴이 기지개를 켜듯 팽팽해졌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됐구먼."

방씨가 한숨 돌리며 말했다.

허삼관도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살짝 맛보았다. 황주가 목줄기를 타고 따뜻한 기운을 전하며 흘러내리자 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카"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씨와 근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일터에 문제가 없다면, 사회가 혼란하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문화대혁명으로 먹고 살 길이 어려워지고, 농촌 소개령이 떨어지지 않고, 아들과 떨어져야 할 일이 없었다면 집안은 덜 힘들지 않을 수 있었을지.

이 때 먹는 돼지간볶음과 황주는 자신의 몸을 내어 놓고 소정의 보상을 받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피를 한 번에 팔 때 두 그릇을 뺀다고 한다. 몸에 들어가는 주사 바늘 자체가 싫은 나로서는 검진 때 한 번씩 빼는 그 주사 바늘만큼의 피도 겁이 나는데 하물며 두 컵도 아니고 두 그릇이라니 생각만 해도 버거웠다. 아무튼 한 번 피를 팔고 나면 세 달은 쉬어야 보충이 될 정도라고 한다. 1950~1960년대 무렵은 중국도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다. 먹는 것이 부실한 마당에 피를 내어놓는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행위일지 모른다. 


가끔 아버지가 만들어주셨던 오이냉국이 생각날 때가 있다. 찬 음식에 시큼한 식초를 더한 이 음식은 원래 내 기호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어릴 때는 집안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아버지가 싫어 피해다니기 바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가 찾아왔는데, 이따금씩 오이냉국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내어주시곤 했다. 그때는 이 음식을 먹으면서 '참 맛대가리 없다.'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 없이 먹고는 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 지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따금씩 이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 때의 기억이 또 떠올랐다. 구체적인 기억도 아니고 그저 스냅샷 같은 장면으로 기억될 뿐인데도 내 뇌리에 잔상처럼 남은 것을 보면 이는 내게 제법 중요한 기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긴 인생을 지나며 고비는 찾아온다. 허삼관의 인생에도 여러 번 고비가 있었다. 작품 마지막 무렵 최후의 죽을 고비가 지나고 시간이 꽤 흐른 뒤 허삼관은 거리에서 어떤 냄새를 맡으며 피를 팔고 나와서 먹던 음식들을 떠올린다.


"난 그냥 돼지간볶음하고 황주가 먹고 싶어."


마침내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 두 냥짜리 황주 두 사발을 마주한 허삼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음식 자체에 대한 욕구보다는 아픔과 고통을 넘기고 승화시킨 그 때의 기억과 감각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각자의 삶에서 다시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고비가 찾아오면 사라지는 것이 낫겠다 싶을 때도 있지 않나. 그런 험난한 순간을 넘어온 이들에게 이 책은 결코 웃을 수 없는 씁쓸함을 남기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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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는 다음과 같은 책을 읽었다.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꽤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특히나 이번에 주역의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 참고 도서를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국철학사 읽을 때 주역의 이론과 개념을 접했으나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일단락짓고 넘어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본 원리라도 이해하고 넘어가자라고 생각했기에 선택한 책이었다.

주역이 점술의 원리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기'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확장된 세계관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8월에는 광복절이 끼어 있었는데 신임 광복회장에 논란이 될 인사가 발탁되어 한참 시끄러웠다(그뿐만이겠는가). 내가 읽는 책들이 현실 도피용이 아닌, 현실 세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늘려가기 위한 공부여야 함을 되새기며 다짐하게 된다.


의미 깊은 책은 뭉우리돌 시리즈였고 흥미 있게 읽은 책은 청명상하도였다. 


(다)문화, 인종, 민족은 근래 들어 계속 뜯어보고 있는 주제의 책들이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해서 겹치는 개념, 이론들은 이해를 강화시키고, 새로운 개념이나 주장을 접하면 다른 시각을 접하게 되는 것이니 그만큼 공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 구글 Assistant에서 Gemini를 써볼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왔길래 궁금하여 전환을 하고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1.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간단히 말해 특정 민족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심을 강조하며,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사상입니다.

핵심 개념:

 * 민족: 공통의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하며, 자신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 소속감: 자신이 속한 민족에 대한 강한 귀속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 독립 국가: 자신들의 민족이 독자적인 국가를 건설하여 자주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민족주의의 특징:

 * 다양한 형태: 민족주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 긍정적 측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 부정적 측면: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척을 야기할 수 있으며, 과도한 민족주의는 국가 간 갈등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 속의 민족주의:

 * 근대 민족주의: 근대 시민 혁명과 함께 등장하여, 국민 국가 건설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습니다.

 *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주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 현대 민족주의: 다문화 사회의 등장과 함께, 민족주의의 개념과 의미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

Gemini도 'Context(맥락)'을 고려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민족주의의 정의에서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라는 구절에서는 물음표가 따라왔다. 


2. 한국의 민족주의의 특징


한국 민족주의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요 특징:

 * 저항 민족주의의 강한 유산: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며 형성된 민족주의는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종족적 민족주의의 강조: 혈통과 언어, 문화를 중심으로 한 종족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 단일 민족 신화: 한국인은 단일한 혈통을 가진 동질적인 민족이라는 신화가 강하게 작용하며,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 국가와 민족의 동일시: 국가와 민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남북 분단의 영향: 남북 분단은 한국 민족주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통일 문제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 근대화와 산업화의 영향: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 다양한 표현 방식: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민족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역사 교육, 문화 콘텐츠, 스포츠 등을 통해 민족주의가 강조될 수 있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긍정적 측면:

 * 국가 정체성 확립: 민족주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가 통합에 기여했습니다.

 * 저항 정신 함양: 일제강점기의 경험은 한국인에게 저항 정신을 심어주었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국가 발전의 동력: 민족주의는 국가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되어왔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

 * 다문화 사회에 대한 수용성 저하: 단일 민족 신화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수용성을 낮추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 배타적인 민족주의 심화: 과도한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강화하고, 국제 사회에서 고립주의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 비판적 사고 저해: 민족주의는 비판적 사고를 저해하고,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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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은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과 꽤 비슷하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구성원들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집에 세탁기를 건조까지 되는 트윈워시로 바꾸고 제습기를 추가로 구매했다. 예전보다 쾌청한 날이 덜하고 습도가 높은 날이 많아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탁 및 건조까지 되니 삶의 질이 높아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수건 건조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어제 큰 결심을 하고 운동을 위해 개인PT 수업을 등록했다. 이곳을 선택한 것은 여성전용 휘트니스 센터라는 점 때문이었다. 지금의 몸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는 운동을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요즘은 자도 계속 피곤하고 아픈 곳이 늘어나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여겼던 것이다. 

추석이 껴 있는 지라 시작은 그 이후로 하기로 했다.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라도 의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이제 운동이 재미 없다는 핑계는 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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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08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팔월에 읽으신 책 뜻깊어 보입니다 저는 2024년엔 다른 해보다 책 못 보는데, 7, 8월엔 더 못 보기도 했군요 운동을 깊이 있게 몸에 좋게 하려고 하시다니 멋지네요 운동도 하다보면 즐겁기도 하겠지요 앞으로 운동하시고 피곤함이 남지 않으면 좋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9-08 09: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여름에는 작년과 제작년에 비해서 덜 읽었다는 생각입니다.
PT까지 굳이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동영상 보고 따라하는 것도 요령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서 결심을 했어요. 허리나 어깨나 무릎, 발목 같은 관절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것도 있고요. 운동을 하면서 부디 제 삶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생각하며 열심히 해보려고요. 희선 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4-09-10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와 올여름에 제습기를 추가 구매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년에는 나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PT 수업을 받는 건강한 가을이 되겠네요.

거리의화가 2024-09-11 08:42   좋아요 0 | URL
습도가 높으니 높은 온도에 집 전체가 한증막이 되더라고요. 어제, 오늘 많이 덥지만 며칠 지나면 좀 낫겠지요?^^;
이제 더는 건강을 팽개치지 않고 잘 가꿔보려고 합니다. 독서든 운동이든 잡은 것을 놓치지 않고 올해가 가기 전 정리해보아야겠어요. 자목련 님도 9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