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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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 <인생>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고 해야 하겠지. 중국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번역본으로 함께 읽었다.


어느 청년이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나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원어 제목은 活着(활착: 살아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원어 제목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 1940년 후반 무렵부터 1960~1970년대 무렵까지 중국이 배경이므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국공내전, 문화대혁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비중을 높게 두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사건은 밑밥 역할만 할 뿐이고 그걸 맞닥뜨린 개인의 역경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겪게 될까.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름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사회 생활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개인의 환경에 따라, 사건을 맞닥뜨리는 태도와 자세, 행동력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젊은 시절 푸구이는 노름과 여자에, 폭력까지 쓰니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이가 들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그래도 끝까지 캐릭터를 품기는 어려움). 아내인 자전, 딸인 펑샤, 아들인 유칭이 갈수록 안쓰러워 독서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 혼났다. 보통 슬퍼도 눈물 찔끔 흘리고 마는데 펑펑 울고 말았다.


어릴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잘 몰라 쉬이 지나쳐버리고 뒤늦게 후회를 하곤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 중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학교 친구는 학교를 떠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각자 일이 바빠 소원해져서 헤어지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직장을 떠나면 그만이다(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는 적이 거의 없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결혼 여부도 변수가 된다. 친한 친구들도 각각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무래도 각자 배우자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까. 그저 주기적으로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이 다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부고를 듣는 경우가 참 많아졌다. 


위화의 부모님이 의사 출신이라 죽음을 간접적으로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상으로 특별한 순간보다는 일상과 평범함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가 은연 중에 드러나있다. 살면서 대박을 만난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있고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고, 몸이 아프지 않다면 1차적으로는 다행이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이는 부가적인 사항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아무리 힘겨워도 견디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인생>을 통해서 남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폐 끼치지 않고 죽느냐, 죽을 때 내가 먼저 죽느냐, 나중에 가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전의 삶을 통해 얻었다. 결국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에게 잘 하고 논란 만들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무척 어려울 듯).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원래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음표가 생긴다. 내가 먼저 죽는다면 그가 살아야 할 짊도 만만치 않겠구나, 그가 먼저 죽는다면 나도 또한 그리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살아온 세월만큼 그 그리움이 더해지지 않겠는가. 


사람도 때가 되면 익어야 하는 법이라네. 배가 다 익으면 땅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


천천히 들판은 고요 속에 잠기고,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노을빛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평범해서 좋았던 문장들이 꽤나 많아서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론자는 아니다. 다만 주어진 환경이 다를 뿐이고 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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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7-23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이 본래 제목 쓴 거 보고 생각났어요 예전에 그 제목으로 나온 적 있다는 거... 그때 봤는지 ‘인생’으로 바뀌고 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보기는 했지만 꽤 예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네요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자기 삶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자신이 정해야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7-23 17:18   좋아요 1 | URL
영화가 나온 지는 몰랐네요^^
내용만으로 보면 단조로운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인물의 상황에 이입되어서인지 감정을 끌어올리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갈수록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되네요^^; 희선 님 댓글 감사합니다.
 

7장

경제적 조건의 변화와 피임법의 개발.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사상이 뿌리내림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열권 운동가들은 이대로의 진행이 곧바로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와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것으로 낙관하였다. - P387

많은 여성의 직업 진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의 종속은 지속되고 남성과 여성간의 진정한 대화는 열리지않았으며 여성의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 속에 빠져 있음에 주목하여반성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모성 체험을 중심으로 한 성차에 대한 재해석과 여성주의적 문화 운동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다. - P388

모성적 체험과 부모-자식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온 이러한 연구가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경험의 이분화가 사고 성향의 이분화를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분화는 무의식적 사고 구조의 차이에서부터 구체적 관심의 차이에까지 걸쳐 나타나는데 우선 코넬, 터시웰Cornell and Thurschwell (1987)과 버틀러 Butler (1987) 등은 개체의 특성을 분리성과 차이성에서 찾는 이분법적 논리 구조가 남성 지배 체제와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음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이 이원론 - P390

적 사고 구조는 여성 억압뿐 아니라 자연 파괴적 세계관의 바탕이 되어왔다고 보고 궁극적으로 인간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의관계를 규정해온 이원론의 극복 가능성은 우주 질서를 유기적으로파악하고 상호 의존성을 인식해온 여성들에게서 찾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P391

억압된 집단의 해방이란 그 집단이 지배 집단의 언어나 인식 범주를 통하지 않고 체험을 그 자체로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 P396

 기존 체제에 살아남기 위해서 핵심부와 주변부를 왕래하며 살아야 했던 주변인은 마치현장에서 참여 관찰을 하는 문화인류학자처럼 두 개의 세계를 경험하고 비교해볼 기회를 가지며 이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 이로써 주변인은 기존 체제를 더욱 객관적이고 상대적으로 볼 눈을 갖게되는 것이다.  - P398

일단 여성들이 자신의 억압 상태를 인식하게된다면, 그는 이미 인간 억압을 체험적으로 느껴온 터이므로 모든 종류의 억압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자각한 여성은 억압된존재로의 자신 속에 길러진 부정적 성향을 인지하고 극복해나감과동시에 억압당하는 집단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를 분명히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또한 피지배자로서 지배자와 공존하여 살아가는 동안 지배집단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개발해왔다. 곧 자기 자신을 의심해보고 성찰하는 경향, 남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감정 이입적 이해의 능력으로서 이것은 더욱 인간적이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주요 자원이 될 수 있다. - P400

한국의 여성 운동은밖으로는 가부장적 원리의 핵심을 이루는 약육강식의 원리에 근거한 - P403

세계의 지배 질서에 안으로는 ‘민족‘과 ‘분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온온갖 비인간적 폭력과 억압에 대항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 P404

여성들이 공유하는 이상향은 약자를 보살피고 인간 관계 자체에서성취감을 느끼며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노동하며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이때 기존의 거대 조직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나눌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로 분권화되고, 인간의 개성과 이로 인해 창출되는 다양성은 최대로 존중되며 나라 예산의 가장 큰 몫은 국방비가 아니라 교육비로 쓰여질 것이다.
이는 곧 인간과 인간간의 위계 관계를 극소화하고 평등한 협동 관계를 극대화한 사회이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여성은 출산이 원죄의 고통이나 전생의 죄의 보상 행위가 아니고 고통 후에 오는 결실이며 생명 창조의 기쁨을 만끽함과 동시에, 모성의 체험은 문화적인 것이며 따라서 남성도 나누어가질 수 있음을 깨우쳐주게 될 것이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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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부분

제주는 육지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많은 제한을 받아왔으며 특히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 위주의 행정력과 비공식적 지도자로서의 귀양 선비들의 활동은 제주도의 삶에 무시 못할영향력을 미쳐왔다. 16세기 이후부터 1900년 전후에 걸쳐 일어난 많은 민란에서 보여주듯이 제주는 외적 권력에서 부단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역사를 보임과 동시에 외적 권력에 아부하는 역사의 이중적면을 보이고 있다. - P308

육지가 관개 수리 사업과 가축의 힘을 토대로 한 남성 노동 중심의미작(米) 농업을 발전시켜온 반면, 제주는 생태적으로 특히 토질과강우량 등에 있어 여성 노동 중심의 밭농사 위주로 생업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여기에 해변 지역에서의 잠수업이 첨가되어 제주는 명실공히 여성 노동력 위주의 생산 체계를 이루어왔다. 이것이 제주 사회가 육지와 매우 다른 문화 구조를 형성케 된 주요 기반이라 하겠다. 또한 섬이라는 지형적 변수는 제주 문화의 또 다른 독자성의 근거가 되어왔다. 대중 교통이 편리해지기 전인 최근까지 육지와의 왕래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제주는 외부에 대한 지향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문화를 형성해왔다. - P309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가의 제주도 경제 개발 기본 방향은 3차산업 중심으로 바꾸어진다.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 수준의 관광지로개발한다는 목표 아래 ‘관광 종합 개발 계획‘을 작성하고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로 외화 수입을 증대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1, 2차 산업 개발을 위한 투자는 3차 산업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동시에육지부와 외국의 대규모 자본이 제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제주경제의 이중 구조적 특성을 창출하였는데, 즉 국내 자본과 국외 자본을 중심으로 한 관광 서비스 산업과 제주 자본과 노동에 근거한 1차산업의 이분화가 그것이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이루어진 급격한 경제 성장은 제주의 고등 노동력을 대거 육지로 이동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 P310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는 여성의 낮은 지위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학설이 있다. 특히 부권제 가족내의 여성의 불안한 위치와 남편의 재산을 갖기 위한 부인들간의 경쟁과 갈등 등의 주제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의 무력하고 불행한 여성이 묘사되고 있다(D‘Andrade, 1966 - P328

Martin and Voorhies, 1975).
용마을의 경우, 이런 상식적 경우와는 반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고, 또 실제로 자립하고 있는 모중심적사회에서 오히려 무력하고 불안한 남편의 위치에 대한 해결책 또는보완책으로서의 일부다처제가 장려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 P329

자주성이 또한 이 마을 여성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상부상조하지만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 P330

용마을의 유교는 윤리 체계라기보다는 남성 우위의 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계 조상 제사의 복합체이다. 즉 토착화 과정에서, 유교는 윤리 체계에서 교조적 남존여비의 이데올로기로 변형.
전승되어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 P335

양편 비우세의 사회는 남녀에게 기회 균등이 이루어지는 평등의사회는 아니다. 남녀 불평등의 사회인 점에서 세계에 편재한 대부분의 남성 중심의 사회와 비슷하나, 남성 지배적이 아닌 점에서 특이하다. 이는 남녀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으나 두 세계가 최소한의 자치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남성 지배적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 P337

100년간의 근대화를 통하여, 특히 최근 10여 년간내, 경제적으로는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으로, 사회 문화적으로는 도시화와 대중 교육 및 대중 매체의 보급에 따라 제주는급속히 육지 경제에 종속되고 육지의 지배 문화에 동화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주의 경우는 기질적으로 여성들이 더욱 활달하고 ‘일‘ 중심적이어서 현대적 직업 활동에 적합한 면을 보이지만 이러한 기질과 역할의 상응성은 국가의, 그리고 육지형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일방적 규제 속에서, 그리고 제주도 문화 자체의 독특한 남성 우위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무시되어왔다. - P375

제주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과 높은 적응력은 1970년대까지는.
지나치게 여성 노동이 강요되기는 했으나 상당히 발휘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바탕을 둔 체제 아래서 여성적자질은 본격적으로 억압되기 시작했으며 여성상은 왜곡되고 있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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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남아의 남성화가 매우 문제시된 사회들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1) 남녀 역할의 분명한 분리2) 어머니의 아동 양육의 독점3) 남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비중이다. 역할의 분명한 분리란 남녀 역할이 얼마나 상호 배타적으로 규정되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덜 엄격한 사회에서는 ‘남성다움‘이란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구분이 많고엄격할수록 ‘남성다움‘이 문제시된다.
두번째로 어머니의 자녀 양육의 역할이 독점적일수록, 또 그 양육기간이 길수록 남자 아이를 여성의 품에서 떼어 남자답게 만들기가힘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아들이 유아기와 아동기의 경험을 통하여어머니에의 귀속감과 애착을 강하게 가질수록 남성다움이 문제화될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 P278

셋째로 남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비중의 문제이다. 생계 유지가거의 여성들에 의해 가능한 사회에 비해 남성의 경제·사회적 역할이 사회의 존속에 매우 중요한 경우, ‘남성다운‘ 남자를 기르는 것은심각한 사회적 과제가 된다. 이는 대개 남성이 경제적 생산이나 방어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이며 또한 남성간의 협력과 유대가 매우 중요한 사회이기도 하다. - P279

초도로우의 논의의 초점은 ‘모성적 성향의 재생산‘에 있다. 그는.
프로이트가 밝혀낸 대상 관계 이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프로이트가제시한 대로 자아 발달의 과정을 무의식적 감정적 심리 구조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초도로우가 프로이트와 크게 의견을달리하는 것은 가족을 사회 조직의 한 단위로 보았다는 점과 어린 아이의 자아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어머니로 보았다는 점이다. - P284

‘모성적 성향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곧 여성이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것은 원초적인 모녀 밀착 관계의 회복이자 삼각 관계의 재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여성의 관계 중심적인 사고, 여러 가지 상황적 변수를 고려하는 복선적인 논리 성향, 상호 의존성,
그리고 감정 이입적 이해력은 여아가 유아기의 자아 형성 과정을 거치면서 습득된 특질이다.
반면에 남아는 개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자신의 일차적인 밀착관계를 거부하여야 하였고 이 과정에서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일차적 애착의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의 거부는 곧 일반적 관계성 및 자신 속에 잠재해 있던 모성적 성향의 억압을 의미한다. - P287

남자 어른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남성의 성격, 가치나 행동 체계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남성다워야 한다고 느끼는남아들은 남성의 역할과 서구적 이미지에 맞는 남성다움을 상상함으로써, 또한 모든 여성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남성다움을 추구하게 - P294

되고 이러한 신분적 정체감을 통한 남성다움의 추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채 고정된 남성상을 낳게 되었다. 따라서 남성다워지고자 하는 남성은 끊임없이 "능력있고 책임감 있는 남성"이 되고자하든지 "인기있는 남성"이 되려고 애쓰게 되는데, 이런 인위적 노력은 실상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다움에 자신감을 잃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남성다움에 대해 자신을 잃은 남성들이 생김으로써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는 심각하다. 주목될 현상으로 마치스모 machismo를들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남성다움에 자신을 잃고 불안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거나 폭력을 쓰거나 여자들이 하지 못(안)하는 무모한 짓을 함으로써 자신이 남자인 것을 과시. 과장하고수시로 확인해보는 행위를 말한다(Michaelson and Goldschmidt, 1971346).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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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1 - 1898년~1920년대 중반 여성문학의 탄생 한국 여성문학 선집 1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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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지식과 문화의 유입은 여성들의 삶과 지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학교를 비롯한 근대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자각한 여성 주체들의 움직임,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등장, 개화 계몽의 열기로 꽉 찬 공론장의 부상은 여성의 읽기와 쓰기를 이끈 요인들이다. 이 시기 공적 담론은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를 통해 유포되었고, 이와 같은 공론장에 글 쓰는 여자가 출현한 것은 여성문학사의 기원을 이루는 중요한 장면이다. 특히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의 강제 해산을 반대하며 대중들이 광장에서 연설의 장을 열었던 사건은 집 안의 여성들이 ‘소문’이나 ‘신문’이라는 간접화된 통로로나마 공론장의 열기를 경험하고 광장의 목소리를 내도록 촉발했다. <여자계>(1917), <신여자>(1920), <신여성>(1923) 등 여성 매체는 논설, 독자 투고뿐 아니라 수필, 소설, 시 등 문학적인 글쓰기를 훈련하는 장을 마련했다. 여성의 권리와 각성, 자유연애에 대한 열망을 담은 이 시기의 작품들은 민족이나 가부장적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개인의 목소리를 근대적 문학 양식에 담은 신여성에 의한, 신여성에 대한 글쓰기다. - P15~16


한국 여성문학 선집 시리즈는 남성 중심의 문학사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한국문학(사)에 여성문학을 여성의 관점으로 서술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다. 그동안 여성문학 선집이 출간된 이력이 있으나 대부분 시기가 1960년대 이전으로 한하고, 장르도 소설로 편중되어 있었다. 이번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여성 연구자들이 20년 정도를 투자하여 특정 시기,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근현대 시기 여성 문학 텍스트를 엄선해 골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펀딩하기 전에 어떤 텍스트가 실릴지 감이 오지 않아 고민했었는데 막상 작가의 목록을 보니 아는 작가의 이름도 있지만 알더라도 이름만 아는 경우,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구입하기를 잘했다 생각한다. 시리즈는 총 7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898년 무렵부터 1990년대 이후까지 넓은 시기를 아우른다.


1권은 한국 여성문학이 탄생한 시점인 독립협회 활동 시기인 1898년부터 1920년대까지를 다룬다. 


성상 폐하의 외외탕탕하신 덕업으로 임어하옵신 후에 국운이 더욱 성왕하여 이미 대황제 위에 어하옵시고 문명개화할 정치로 만기를 총찰하시니 이제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가 성의를 효순하야 전일 해태한 행습은 영영 버리고 각각 개명한 신식을 준행할 새 사사이 취서되어 일신우일신 함을 사람마다 힘쓸 것이어늘 어찌하야 일향 귀먹고 눈먼 병신 모양으로 구습에만 빠져 있나뇨. 이것이 한심한 일이로다. 혹자 이목구비와 사지오관 육체가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야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남의 절제만 받으리오. - 여학교설시통문, 이 소사 김 소사 , P36~37


이 글의 주인공은 두 ‘소사’다. ‘소사’는 결혼한 여성을 일컫는 말로 이 소사는 양성당 이씨로 왕가 종신 출신이었고, 김 소사는 양현당 김씨로 순성여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인물이다. 양성당 이씨는 찬양회 회장이었기도 했다. 찬양회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 여기고 순성여학교 설립을 후원하는 역할을 한 모임이었다. 찬양회는 이후 나오게 되는 여성 단체들의 모델이 되었다.

이 글을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당시는 대한 제국이 있던 때로 여성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를 새울 취지를 남긴 글이다.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는데 남자가 주는 것만 받아 먹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띈다. 


길바닥에, 구을르는 사랑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나와

사람 사람의 귀를 흔들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처녀의 가슴에서 피를 뽑는 아귀야

눈먼 이의 손길에서 부서져

착한 여인들의 한을 지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내가 미덥지 않은 미덥지 않은 너를

어떤 날은 만나지라도 기도하고 

어떤 날은 만나지지 말라고 염불한다

속이고 또 속이는 단순한 거짓말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서

눈먼 이의 손길에 부서지는 것아

내 마음에서 사라져라

오오 ‘사랑’이란 거짓말아! - 저주, 김명순, P53




아랫목 벽에 걸린 로댕의 ‘다나이드’를 사진 박은 그림이며 머리맡에 롱펠로의 ‘화살과 노래’란 영시를 흰 비단에 옥색으로 수놓은 족자며, 또 이름 모를 물새가 방망이에 붙들어 매이어서 그 자유인 오 촌 가량의 범위를 못 벗어나고 애쓰는 그림이 어느 것이나. 자유를 안타깝게 바라는 소련의 취미가 아니랴. 이런 것들을 뒤돌아 보는 소련의 마음이 어찌 대동강의 능라도를 에두른 이류가 합쳐지지 않기를 바라랴. 흐름은 제방을 깨뜨린다! - 도라다볼때, 김명순, P123


1권에 등장하는 작가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이가 김명순이다. 일단 생각이 깨어 있다는 것에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글을 정말 유려하게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을 보면 평소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경험하는지 절로 알게 된다. 

그녀는 특히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겼다. 김명순은 매일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했고 개인 시집을 내기도 했으며 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발간된 조선 시인 선집에 여성 작가로 유일하게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저주>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얼마나 덧없고 유한한 감정인지 알 것이다. 이를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도라다볼때>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 여자의 감정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박사가 된 여성의 설정은 당시 신여성의 트렌드를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어쨌든 지금 생각하니 내가 생각하는 이성은 그이와 같은 이는 아니었나이다. 남성답지도 못하고 줏대가 없고 여자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이왕 상당한 아내를 둔 이상 절대로 정조를 지켜야 하겠다는 자각이 없는 그이었나이다. 

내가 처음에 그를 사랑한 것은 이성이라고는 도무지 접촉해보지 못하다가 부모의 명령으로 눈감고 시집을 가서 친절하게 구는 이성을 대하니 자연 정다워진 데 지나지 않는 것나이다. - 자각, 김일엽, P223


우리의 조선 여자 사회는 아직도 유치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 이때는 어느 때입니까? 세계는 바야흐로 개조가 되려 하고 새 문명의 서광은 훤-하게 비치옵니다. … 몇 세기를 두고 우리를 냉혹하게도 압박하고 우리를 극심하게도 구속하던 인습적 구각을 깨뜨리고 벗어나서 우리 여자가 인격적으로 각성하여 완전한 자기 발전을 수행코자 함이외다. 남자들은 이를 이르되 파괴라, 반항이라, 배역이라 하겠지요. 고래로 우리 여자를 사람으로 대우치 아니하고 마치 하등 동물같이 여자를 모두 몰아다가 남자의 유린에 맡기지 아니하였습니까? -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김일엽, P232~233


김일엽은 이화학당 출신으로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주인공이다. 이후 입산 후 수계를 받았다. 시나 소설보다는 논설이나 수필을 많이 썼다. 

<자각>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남편이 결국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뒤 여자가 모진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되는데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지만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서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자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환경이 바뀌어도 본인이 깨닫지 않으면 결국 변할 수 있는 기회는 없으니까. 

수필이나 논설을 많이 썼다고 하더니 역시 달랐다. 소설보다 아래 논설문의 글이 훨씬 좋았다. 읽고 있으면 절로 손목을 불끈 쥐게 된다.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 인형의 가 제3막, 나혜석, P240


나혜석은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글(이는 그림도 마찬가지)을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작품들이 적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녀는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정신여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고 매일신보에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삼일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다른 독립 운동가들을 돕기도 했다. 화가로서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서 꾸준히 입선하는 등 그녀는 참으로 귀재였다. 

<경희> 등 여러 소설을 남겼다. <인형의 가>는 조선판 노라를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인형으로 살지 않겠다는 주체성의 포효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앞에는 원문, 원문이 끝난 뒤에 현대어를 실어 두어서 보기가 좋았다. 원문이 해석이 어렵지는 않지만 단 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아무래도 오늘날과 다른 철자의 표기, 띄어쓰기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능한 원문으로 읽어보고 뒤에 현대어로 변경된 부분을 읽는다면 비록 그 시기를 경험하지는 못했더라도 작품을 통해서 그 시간을 더 잘 경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2권은 1920년부터 1945 해방 이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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