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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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입성에 성공한 십자군은 이제 방어를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예루살렘 초대 왕은 고드프루아가 맡았으나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동생인 보두앵이 18년 간 예루살렘 왕을 지켰다. 그 기간동안 십자군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부근 정복을 끝낸 뒤 에데사, 안티오키아, 트리폴리, 예루살렘으로 세력이 쪼개지면서도 통합 세력을 유지했다.

제2차 십자군의 발단은 에데사를 잃은 일 때문이었다. 그곳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예루살렘 부근의 십자군 세력을 방어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중요했던 것이다. 사태를 심각하게 여긴 로마 교황도 자신이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대리 자격으로 수도사인 베르나르두스를 보내기로 한다. 1차 십자군이 민중들과 봉건 제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는 최고 권력자인 프랑스 왕(루이 7세)과 독일 황제(콘라트 3세)가 직접 참전했다. 이는 베르나르두스의 설득이 먹혔기에 가능했다. 또한 1차 때 부족했던 물자 보급 문제를 위해서 이번에는 이탈리아 해양 세력을 이용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난다.
다만 규모는 1차 십자군에 비해 소수였는데 그래도 정예병이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소아시아를 지나면서 투르크군의 게릴라 작전에 당해 상당수의 병력을 잃고 황제가 부상을 당하는 손실을 입는다. 프랑스군도 적의 기습으로 병력을 일부 잃고 한동안 고립을 겪었다.
그래도 목적지인 다마스쿠스를 위해 남은 병력은 이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군량도 부족해지고 십자군에게 특히나 익숙하지 않았던 극심한 더위는 그들을 곤란하게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이슬람의 우누르였던 알레포 지역의 누레딘(그의 아버지인 ‘장기‘가 지략가였다)이 다마스쿠스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 십자군은 다마스쿠스에서 철수를 결정한다. 이로써 2차 십자군 입장에서는 전쟁이 실패했다.
독일 황제와 프랑스 왕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유럽으로 돌아간다. 로마 교황도 실패의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 교황 대리로 떠났던 베르나르두스가 그럼에도 성인에 올랐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다치고 죽은 병사들은 자신의 고향도 아닌 외국의 어느 산야에 묻혔으나 책임을 지지 않았던 사람은 정작 성인에 오른다는 것이...

당시 이슬람의 시아파 주류는 셀주크투르크족이었고 수니파 주류는 아랍족이었다.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힘이 약해지자 재상인 샤와르의 아들 카릴이 수니파 권력자였던 누레딘에게 군대를 요청한다. 이때 장군 시르쿠의 조카였던 살라딘이 이집트로 향했다. 샤와르가 급사망(!)하면서 살라딘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 누레딘은 카이로(시아파)까지 지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고 권위자는 누레딘이었지만 살라딘은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다마스쿠스에 전진기지를 세우고 길을 나선다. 이때 유럽 세력은 올 여력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그리스도교 보호를 위해 나선 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을 중심으로 한 종교 기사단,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병사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세력 중심의 군대가 아코를 떠난다. 다마스쿠스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목을 막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라딘은 하틴 전투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갈릴리 지방을 손에 넣는다. 사실상 팔레스티나 지방의 항구도시를 수중에 넣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1차 십자군 방어를 맡게 된 발리앙 이벨린은 60여명 정도로 예루살렘을 맡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 예루살렘 내 있던 16살 이상의 장정들을 모두 기사로 임명한다.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던 상황에서 그는 회담을 택한다.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생각이었기에 그의 결정은 현명했다고 보여진다.
아무튼 이슬람 세력은 그렇게 88년 만에 예루살렘 성도를 자신의 영역으로 얻게 되었다.

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으로 대표되는, 수도사와 기사의 겸업 집단인 종교 기사단은 십자군의 산물이다. - P.34

중근동에 건설된 십자군 사이의 성채는 대표적인 것만 해도 백개가 넘는다. ‘성채가 아니라 요새‘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는 소규모 건축물과 감시원만 두고 있던 탑까지 더하면 2백개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방어 시설이 근동 서쪽 절반의 좁은 지역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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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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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지금까지 유럽 안에서 그리스교도끼리 해온 일을 이제 전도의 범위를 오리엔트로 넓혀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전개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포부의자 의지였다. 

당시 로마를 비롯한 서유럽은 가톨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비잔틴제국은 그리스 정교회, 동방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등지까지 이슬람이 확장세를 떨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스교 측은 이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탈환이자 해방이라는데 상대 측에서 보기에는 과연 어떨지... 


아무튼 1차 십자군은 가난한 민중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데서 이후 십자군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은자 피에르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 있던 군중이 현재의 삶에 불만을 품고 일어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차 십자군의 주요 멤버는 로렌 공작인 고드프루아와 그의 동생 보두앵, 풀리아 공작인 보에몬드와 그의 조카 탄크레디, 툴루즈 백작인 레몽, 교황의 대리인인 아데마르 주교였다. 


안티오키아로 향하는 여정길에서 십자군은 도릴라이움 전투에서 승리하고 에데사를 얻는다. 보두앵은 에데사 영주가 되고 주변은 에데사 백작령이 된다. 

십자군은 드디어 안티오키아에 당도한다. 안티오키아는 고대 번영 도시였으나 이무렵에는 쇠퇴의 길에 접어든 때였다고 한다. 안티오키아 성벽은 탑만 4백여개로 방어에 최적인 곳이었다. 당시 시리아는 셀주크투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시리아 영주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두 명의 칼리프(종교 지도자)가 존재했다.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로 수니파였고 카이로는 파티마 왕조로 시아파였다. 


안티오키아 총독은 전투를 앞두고 그리스도교 신자 남성들을 그곳에서 추방한다. 그러자 안티오키아 위성 도시의 주민들이 봉기했다. 십자군은 이곳을 공격함으로써 안티오키아 공략에 대한 키를 얻는다.

그러나 어느 전쟁이든 문제가 되는 것은 식량의 부족이다. 1차 십자군 여정을 확인하면 너무 준비 없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전쟁을 하는데 식량과 무기, 교통 수단 등에 대한 준비는 기본인데 1차 십자군은 그 부분이 너무 미흡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십자군에 탈주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 영국에서 군량을 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문제가 일정 해결될 수 있었다. 이때 군량 뿐 아니라 탑이 함께 도착했는데 이는 안티오키아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었다.

셀주크투르크군이 참여하면서 안티오키아 성벽은 무너진다. 그러나 셀주크 투르크군이 안티오키아 성벽을 둘러싸자 십자군은 성 안에 갇히고 이때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는 자기 군대를 철수시켜버림으로써 십자군을 분노케 한다. 

이때 셀주크투르군 내 분열이 일어나자 보에몬드가 그것을 이용하면서 십자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향할 무렵 십자군에 참전한 제후는 이미 11명에서 6명으로 줄어 있었다. 제후의 수가 줄었다는 것은 민중군과 일반 병사들의 사상자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중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자는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십자군 전쟁을 다룬 국내 번역서 중 오랫동안 중쇄를 거듭하고 있는 책이다. 

십자군 전쟁사를 언젠가 읽어보겠다고 생각만 하고 미루다 이제야 읽어볼 결심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국내 번역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선택지가 너무 좁았다. 

십자군 전쟁 자체만을 다룬 책으로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십자군 전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은 많이 있다. 그러나 당장 그 책들을 다 읽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결국 로마인 이야기도 거른 내가 이 책을 구입해서 집어들었다는 이야기.


이 책은 전쟁 자체에 대한 역사라기보다는 십자군을 이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역사서지만 딱딱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대중들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읽으면서 계속 찜찜한 것은 영웅 서사와 제국주의적 시각에 대한 불편함이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짓는 것은 어느 한쪽을 문명으로 생각하고 전제한 개념인데 이것이 지금도 통용될 수 있을런지. 

저자는 재판을 하면서 유럽인, 그리스도교 관점에 대한 시각에서 아랍인의 관점에 대한 시각을 더해 균형감을 맞췄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었음을 느끼게 하여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도 중쇄를 거듭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선택을 결국 받는다는 방증이겠다. 개인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도록 새로운 흥행 대중역사교양서가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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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핑주의자 선언
익명 지음, 홍명교 옮김 / 미디어버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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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이목을 끄는 신간이 없지만 그중에 간혹 눈길을 이끄는 책이 있다. 물론 관심이 가는 책들은 새 책 목록을 직접 읽으면서 고르거나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며 발품을 팔 때 더 많이 찾게 되지만. 이 책은 전자의 경우를 통해서 알게 된 책이다. 


제목이 탕핑이다. 음? 탕핑이라니? '탕핑'은 드러눕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탕핑주의자'는 '드러누운 사람들'이란 의미다. 드러누움으로써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례적 삶에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애써 일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중국의 젊은이들을 파고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몇 년전 '욜로'라는 말이 뜰 때가 기억난다. 이것은 지금도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지난 부모 세대 아래서 너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깨달은 바 있는 청장년층의 의지가 담긴 삶의 패턴이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욜로'적 삶의 연령층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중 하나인 것 같고. 예를 들면 '인생 뭐 있어?'한 태도 말이다.

그렇지만 탕핑주의자들이 하는 말을 언뜻 생각하면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너무 천하태평 아니야? 게으름을 조장하는 행위 아니야?'로 볼 수 있는데 사회적인 요인들이 더해지면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눕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손쉬운 행동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반대로, 탕핑주의자들은 오히려 누워버리는 그 순간부터 이미 국가의 외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또 다른 종족집단을 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몸을 뉘인 그 땅조차 이전의 국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편제 바깥의 땅이 되어버렸다. 만약 이러한 상태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길 원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주권이나 재산권과는 무관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에 '드러눕는다'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떠올린 장면은 전장연의 지하철 파업의 모습이었다. 파업을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권리를 빼앗겼을 때, 내 목소리를 이웃 또는 사회가 들어주지 않을 때, 애초에 그마저도 권리 영역 자체가 없을 때가 아닐까. 절박함에 나오는 행동의 발로라 생각된다. 도저히 살아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전장연 파업 때 유독 신문지상에서 본 단어는 그것이었다. '오죽하면 그럴까.' 그들의 파업으로 불편을 겪었을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하철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 턱을 넘어야 하고 더 긴 시간을 돌아서 가야만 한다. 이마저도 모든 지하철에 관련 시설이 존재하지 않고 들쭉날쭉하다. 지하철만 예로 들었지만 다른 교통수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애시당초 선택권 자체가 없는다는 것이 차별의 시작이 아닐런지. 


몸을 일으켜 문을 나서면, 마치 시시포스의 거대한 바위를 방불케 하는 어렵고도 힘든 일이 될 수 있을까. 영원히 그 문을 나설 수는 없겠지만, 계속해서 걷고 또 걷는다. 밥 먹을 때든, 아니면 잠을 잘 때든 말이다. 잠결에 꿈 속에서도 마치 이미 오랫동안 걸어서 쉬지도 못하는 것처럼, 노동의 의지는 이처럼 우리가 배척하는 노동의 신체 안에 관철된다. 앞서 찾아온 미래에서 우리는 이처럼 치유할 수 없는 가속주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파업이라는 단어가 낮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 삶이 정상적으로만 흘러가는 경우가 오히려 더 드물었다. 급여를 받지 못해 소송을 걸어야 했을 때가 있었고 집이 날아가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을 위기도 있었다. 대통령의 무능과 아집에 칼을 들었던 촛불집회부터 시작하여 불과 몇개월 전 내란을 일으켜 국가적 위기 또는 재난에 봉착해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야?' 생각하여 국민적 행동을 해야 했던 일까지. 개인적 파업은 사회적 파업과도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드러눕는 행위는 '거부권'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를 확장해서 볼 수도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서도 관련한 언급이 나온다. 비단 이는 특정 계층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탕핑주의는 어떤 한 사회의 순환로에서 벗어나 발생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고리로부터 발생한다. 탕핑주의는 특정 사회계층과 신분집단의 결별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에서 발생한다. 입시와 일, 보육과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한 거절을 연결시키고자 했고, 그렇게 해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현 질서 하에 억압받는 모든 세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강요와 복종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 남성과 여성, 노동자와 실업자, 시민과 농민, 유목민, 건달, 학생과 지식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그리고 그밖의 성소수자들, 노숙인과 마이너스 주택 대출자들을 연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에 있다. 이보다 더 비밀스러운 협약 속에서 천천히 진행되는 총파업이 또 있을까?


아주 얇은 책이라 짧은 시간 내에 읽을 수 있지만 이처럼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특별한 것은 한글 뿐 아니라 한자, 영어로도 실려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독자를 위한 배려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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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29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열심히 사는 사람도 대단하다 싶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건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즐겁게 열심히 하는 건 괜찮겠네요 사람마다 사는 건 다르고, 다르게 사는 것도 있다는 걸 알면 좋을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5-04-29 13:30   좋아요 0 | URL
중국의 젊은 세대의 생각도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으로 인해 일부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 같고요. 얻을 것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시니컬해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순리인 듯도 합니다. 동일한 잣대로 볼 수는 없겠지요. 말씀대로 사는 패턴은 다르고 상황과 환경은 다를테니까요.

그레이스 2025-04-2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마드, 천개의 고원을 생각하게 하는 글일까요?

거리의화가 2025-04-29 13:31   좋아요 1 | URL
ㅎㅎ 제가 그 책을 오래전 찜만 해두고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조금 더 지식력이 쌓이면 읽어야지 했는데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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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내리고 어제, 오늘은 정말이지 쾌청한 봄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날씨에 사무실에만 있기 아까워 잠깐 Refresh한다는 핑계로 나와서 기지개를 켜고 연녹색의 나무와 다양한 색의 철쭉을 만났다.
그것만으로 힐링이 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2.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퇴근 후 PT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다며 흡족해하셨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무슨 말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스스로 답답했다. 몸에 익지 않은 것을 알지만 자꾸만 속도를 내고 싶었던 것도 있다.
어쨌든 그런 고비의 순간들을 넘기니 이제는 자세를 알려주면 용어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할 때마다 너무 힘들고 억억 소리를 내며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되면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처음에 운동하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호흡법을 가장 먼저 알려주셨다. 운동하는데 호흡이 그리 중요한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호흡이 안 되면 운동할 때 다치기 쉽고 운동 효과도 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내 호흡에 문제가 있다 하셨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고 해보세요.”
내 호흡법의 문제점은 결국 몸에 늘 긴장이 있다는 데 있다. 긴장을 풀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잘 안된다. 몸이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서 목이며 허리며 근육이 경직되기 쉬운 것이다.
모니터를 오래 보며 일하는데 가끔 바쁠 때는 한 자세로 고정하여 1시간을 넘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책 읽을 때도 마찬가지^^;
요즘은 그것이 얼마나 목이며 허리며 안 좋은 것인지 알게 되어 의도적으로 자주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악력이 없었는데 악력도 좀 생겼고 팔뚝살도 흐느적대지 않는다.

3.
중국어 원서를 조금씩 레벨업해서 읽어가고 있다.
최근 한 드라마를 보았는데 보통 드라마 제작 시 원작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반대였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대본이 소설로 나온 경우다.

드라마는 여주가 좋은 일을 하고 우연히 팔찌를 선물 받은 뒤 변신할 수 있는 기능을 소유하게 되면서 온갖 일을 겪는 이야기다.
과연 그녀는 그 팔찌로 좋은 운을 얻게 될까? 마무리가 깔끔했는데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서 좋았다.

드라마 분량이 32회다. 그동안 원서를 읽어오기는 했지만 아동용이나 청소년용 책을 겨우 읽는 수준이었는데 이런 긴 소설을 어떻게 읽지 싶어 우려스러웠다.
그래도 드라마 원작이 있으니 그걸 믿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 재밌다. 드라마에서 다 담아내지 못하는 전후 과정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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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2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철쭉 보고 철쭉이 벌써 피었네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사월에 피는 거 맞군요 예전에 좀 더 늦게 피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벚꽃은 좀 늦게 피었지만, 다른 꽃은 빨리 피는 것도 같네요

숨쉬기만 잘 해도 괜찮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운동할 때 숨쉬기 중요하군요 여러 달 해서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군요 앞으로 더 좋아지겠습니다 중국어 원서도 즐겁게 만나세요 드라마도 재미있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4-25 08:26   좋아요 1 | URL
작년에는 철쭉이 이보다 훨씬 더 일찍 개화를 시작해서 5월에는 이미 다 졌던 걸로 기억해요. 올해는 그나마 좀 늦어진 것 같고요.

운동을 해보니 자연스런 호흡이 무척 어렵더라구요. 숨쉬는 것이 가장 편안해야 하는데 저는 역행하는 호흡을 하고 있었고 교정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너무 열심히 하려다보니 자연스럽지가 않고 인위적이 되어서 문제가ㅎㅎㅎ 천천히 나아지겠죠^^

날이 정말 좋습니다. 2주 정도 지나면 여름 초입이 될테니 그전까지 봄을 충분히 즐겨봐야겠어요. 희선님도 행복한 일상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