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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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걷기는 여러 효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햇빛 아래에서 걷는 일은 우울감을 떨쳐버리는 데 정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어떤 일에 부딪치거나 관계상으로 어려움이 생길 때면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걸었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과거의 문인들이 걷기를 예찬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솔닛의 에세이를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 그녀의 에세이를 추천 받아 읽고 반해서 더 많은 작품을 읽어봐야지 했었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읽느라 또 한동안 방치 상태가 되었다. 무심코 책장에 꽂아둔 이 책(구입한 것은 한참 전인데)을 발견한 것은 아마도 얼마 전 짧게나마 여행을 갔기 덕분인 것 같다. 걷는 것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나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이다. '한 편의 이야기와 한 번의 여행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걷기 예찬론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걷기를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나는 걷기하면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거나 해서 도피용으로 휴식을 위한 걷기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다가 아님을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백록을 지은 루소는 걷기를 하며 사유에 천착한 전형적인 경우다. 그는 평생에 걸쳐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는데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여러 친구들을 만났다고 한다. 편집증이 있어 관계에 늘 어려움을 겪어서 걷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화시켰다고 보인다.

키르케고르는 루소처럼 다양한 지역을 유랑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역지(코펜하겐)에서 지내며 틈틈히 걷기를 행했다. 그는 걷는 동안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기에 걷기와 생산 노동에 비슷한 점이 있음에 자연스레 주목했다. 그는 알려져서 사람들 눈에 띄기를 원했으나 스스로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죽는 순간에도 걷고 있었다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결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루소, 키르케고르는 행동 패턴과 방식은 달라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18세기에 접어들면 걷기의 목적이 진화한다. 이때 이후 다양한 여행 코스와 안내서, 여행자 모임이 만들어지게 된 덕분이다. 앞선 사람들의 여행기를 통해 여행의 욕망을 키운 상태에서 여행 코스마저 다양해지니 다양한 루트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다양한 사람이 오가고 교류하니 자연스레 수많은 예술 작품도 쏟아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남성에 비해 공간적, 사회적 활동의 제약이 컸던 여성들은 이때 조금씩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워즈워스는 걷기가 여행의 수단이 된 대표적인 철학자다. 그는 자연과 시골, 유년기를 예찬한 시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평생 걸은 거리가 29만 킬로미터에 육박한다니 참으로 놀라웠다(나는 과연 최후의 날이 되면 측정할 수 있는 걸음수가 얼마나 되려나 궁금해졌다^^;). 반면 디킨스는 전형적인 도시의 산책자였다. 그의 작품 배경이 런던이었던 만큼 오랫동안 그는 런던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19세기에는 떠돌이와 방랑자들의 자기 고백이 이어지며 보행수필이 시장의 주류가 된다. 특히 장거리 보행자가 늘어나면서 공간의 확장에 따른 이야기의 상상력은 더욱 극대화된다. 등산 서사시와 등산 회고록 등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며 관련 책을 쓰기 위한 수집을 하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벤야민이 연구를 진행할 때만 해도 파리는 보행자들을 위한 천국 같은 도시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솔닛이 가보았을 때는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도시에 보행자들을 위한 기능이 많이 줄어서 아쉬웠다고. 다만 조금씩 파리가 산책자들을 배려하는 방식을 다시 도입중이라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20세기 이후 도시의 개발화가 진행되면서 교외화가 심화되었다. 지금의 서울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서울은 주거비용이 비싸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심에서 벗어나 교외로 이동한다. 도심은 업무 시간이 끝나면 텅 빈다. 울산, 포항 같은 산업 도시는 공장 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공장화, 기계화로 육체 기능이 점차 퇴화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한다. 하긴 자동차가 생기고 나서는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도시에 헬스장이 생긴다는 것은 과연 날씨가 안 좋아서 야외에서 부득이하게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선택해야 하는 대체장소이기만 할까. 저자는 헬스장이 근육과 피트니스를 생산하는 공장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부식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라고 말한다. '보행은 여러 가지 자유와 기쁨, 예컨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닫혀 있지 않은 멋진 공간, 구속 받지 않는 육체라는 생태계의 지표종이다.'


여기까지였으면 이 책이 다른 책과 별반 다른 책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솔닛은 역시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걷기가 아닌 모두를 위한 걷기를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일, 환경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며 걷는 일 등등 말이다. 이때 걷기는 낯선 사람과 함께 걸으며 하나가 된다는 인식으로 걷게 되기에 앞선 걷기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나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 1977년 5월 아르헨티나 광장에서 벌어진 어머니들의 행진은 뭉클했다. 마치 세월호 투쟁을 떠오르게도 했다. 사라진 자식을 돌려내라는 외침은 연대가 되어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이 혁명(육체가 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전히 온전한 사고 원인 규명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되서다.

또한 이제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일에 대한 시선에 여전히 불편함이 따른다. 과거에는 단순히 치마를 입고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에 처해지거나 성폭행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남성도 거리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여성은 그 빈도면에서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걸어도 아무 문제 없는 사회가 정상이지 여성이 홀로 길을 걷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걷기는 문화적 행위이기도 하는 동시에 인간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걷기가 연대이며 걷는 행위는 읽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에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나 스스로도 걷는 행위는 나를 일구어 변화를 일으키는 시간이자 경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두 발로 읽는 것은 두 눈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적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걸으며 나와 세상을 만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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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12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걸으면서 글을 다 썼다고도 하더군요 이름 알았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옛날 사람은 걷는 게 생활이었겠지만, 예전 철학자는 자주 걸었네요 걸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썼겠습니다 여성이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하는데...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어야겠네요 저는 거의 혼자 걷지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위해 걷기도 하는군요


희선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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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통해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시간과 기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과 인연도. 같은 운명을 마주해도 선택하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누구를 감히 구원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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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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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 사이에서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 이어지면서, 탁, 탁, 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더없이 자명하면서도 더없이 모호한 이 보행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슬며시 종교, 철학, 풍경, 도시 정책, 해부학, 알레고리, 그리고 애통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날씨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걷는다. 예전보다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같은 풍경을 마주 대하더라도 걸을 때 신기하게도 새로운 경험을 얻기에 계속 걷게 되는 것 같다. 걷기는 신기하게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걷기가 좋아서 계속 해왔는데 역사 속 과거의 많은 사람들도 걷기를 예찬했던 것을 보면 이것에 분명 어떤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주 대마도를 짧게 여행하고 왔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단절된 국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 이르러 재개되자 조선은 일본에 조선통신사를 에도 시기 총 12차례 파견하였다. 조선통신사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양국 간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조선통신사 기록은 201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가장 먼저 상륙했던 곳으로 에도(도쿄)까지 총 17차례의 지점에 걸친 대장정의 시작점이었던 곳이다. 대마도는 섬의 90% 이상이 산지로 척박하여 옛부터 어업 이외에는 자체 농업 생산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그곳은 무역이 발달했던 곳으로 대마도의 ‘대마(对馬)‘가 ‘말을 대기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을 확인해봐도 주민들이 섬의 활로를 어느 곳에 방점을 찍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과 북으로 길게 뻗은 대마도는 북단(히타카츠)과 남단(이즈하라)에 항구가 각각 있을 정도로 서로 거리가 있었다. 나는 가는 날은 남단으로 가면서 여행을 시작하고 떠나야 하는 날은 북단으로 이동하여 여행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했다. 대마도는 산길에 구불구불한 길이 많은 데다 도로폭이 무척 좁았다. 그래서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렌트를 이용하거나 관광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하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 생활해야 하는 주민들은 이런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생활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재는 쓰시마섬으로 불리는 이곳이 만약 대한민국령이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잠깐 생각해보았다. 개발을 명목으로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널찍한 도로를 내었을 것이고 바닷가 앞에는 수많은 펜션과 주점을 만들며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현재의 훼손되지 않은 빽빽한 나무숲과 께끗한 바닷물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대마도의 자연이 유지되는 것은 최소한의 인위성을 배제하고 자연을 지켜낸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봉축비를 보면서 당시의 어두운 시대와 신산한 그녀의 삶을 생각했고 구권 5천엔의 주인공인 소설가의 삶과 사랑을 생각하기도 했다. 수백 년간 이곳을 지나다녔을 조선통신사 사절의 모습을 상상하며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차 대전이 끝난 뒤 부산에서 송환선이나 밀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넜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게도 되었다. 지금도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뱃길로 최소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당시는 본토까지 가려면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이런 저런 골목길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좋았고 어선들이 항구에 떠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고즈넉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무엇보다 울창한 나무숲을 바라보고 걷는 일은 힐링이었다. 초여름의 뜨거운 볕 사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기분은 짜릿했다.

꿀 같은 휴가를 보내고 일상에 복귀했다. 낮에는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시작된 걸 보니 이제 여름에 진입했구나 싶다. 아무튼 이번 여름도 즐겁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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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1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뿐 아니라 숲도 만나셨군요 섬이지만 산이기도 하네요 예전에 조선 통신사가 처음에 간 곳이라니... 조선 통신사로 간 사람은 조금 힘들었을 듯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꽤 오랫동안 걸렸을 테니 말이에요 그런 시대가 있기도 했는데...

유월이 오고 하루하루 잘 가는군요 오늘이 가면 삼분의 일이 가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남은 유월 건강 잘 챙기면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5-06-11 15:37   좋아요 1 | URL
산이 90% 이상인 곳인데 신기한 것은 높은 산들이 없어서 어디 막혀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거에요^^
그 시절에는 정말 먼 길이었겠죠. 17코스를 거쳐서 에도까지 갔을테니~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를 반복하며 이 길이 언제 끝나나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하며 갔을 것 같아요.

대선이 끝나고 여행 다녀오고 나니 이 달도 1/3이 지나가버렸습니다. 희선 님 남은 달 즐겁게 마주하시기길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25-06-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마도!
날씨가 좋은 날엔 부산 바다에서도 살짝 보이던 대마도로군요.
대마가 말을 대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군요.
근데 요즘 기온이 올라 좀 더웠겠어요. 그래도 바다 근처라 바람은 시원했을 듯도 하구요.
숲 속 풍경 멋집니다.^^

거리의화가 2025-06-11 15: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역시 나무 님 잘 아시네요! 제가 갔던 날은 날이 흐리고 해무가 껴서 얼핏 형체만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햇빛이 세서 양산과 선글라스는 필수였고... 바람 불면 시원했어요. 어딜 가나 초록초록을 볼 수 있어 힐링 잘하고 왔습니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며 자극제이다.

걷는 사람에게는 모든 곳이 연결돼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동적 육체는 인간의 보편적 육체가 아니라 도시 사무직 노동자의 육체다.

육체가 실제성의 기준이라면, 두 발로 읽는 것은 두 눈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적이다.

걷기는 곧 읽기이다.

책은 걷기라는 ‘읽기’를 통해 세계를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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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힘 우리 시대의 고전 16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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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법의 중요성과 당위를 이렇게나 깨달았던 적이 있었던가. 메타 질문(해체적 질문)은 비단 법과 정의, 도덕, 정치에 대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적용해볼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특히 책임 있는 방식으로 개입하여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말에 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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